2016-05-02

더러운 전쟁 5년, 이라크의 절망은 언제까지? / 김재명 | 에코뷰

더러운 전쟁 5년, 이라크의 절망은 언제까지? / 김재명 | 에코뷰

더러운 전쟁 5년, 이라크의 절망은 언제까지? / 김재명

이라크 침공은 결과적으로 숱한 생목숨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미국의 침공이 없었다면 흘리지 않아도 될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더러운 전쟁 5년
이라크의 절망은 언제까지?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지도 어느덧 5년이 훌쩍 지났다. 이라크 사람들에게 그 5년은 비극과 고통으로 가득 채워진 한숨의 세월이다. 2003년 3월 19일 미국이 이라크 바그다드에 대규모 공습을 벌이고, 20일 뒤인 4월 9일 바그다드가 함락된 뒤 지난 5년 동안 이라크의 상황은 줄곧 불바다나 다름없었다. 미군 대 반미 도시게릴라와의 싸움,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종파싸움, 이라크의 혼란이 이어지길 바라는 이웃나라들(이란, 이스라엘 등)의 은밀한 개입 등으로 말미암아 혼란은 계속됐다.
후세인의 독재로 고통 받는 이라크 민초들을 구해내겠다는 명분 아래(실제로는 세계 3위의 석유매장량을 지닌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세움으로써 석유의 안정적 공급선을 확보하겠다는 욕심 아래) 일으킨 이라크 침공은 결과적으로 숱한 생목숨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미국의 침공이 없었다면 흘리지 않아도 될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럼에도  미국 부시행정부는 ‘이라크 테러분자들의 극렬한 준동’ 탓에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고 강변한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우리 미군은 이라크에서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을 벌인다.”고 우긴다. 침공을 합리화하고 석유야욕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가 다름 아닌 미국식 테러전쟁론이다.

미국식 테러전쟁론
생각이 깊은 미국인이나 미국 언론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불필요한 숱한 희생을 낳고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했다는 점에서 부시행정부에 매우 비판적이다. 전사자 숫자와 전쟁비용만 따져도 “21세기의 미국이 1960년대의 베트남 수렁에 이어 또 다른 수렁에 빠졌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전쟁비용은 한 달에 120억 달러 정도 지출되며, 참전 미군 사망자는 침공 5주년을 맞은 지난 3월, 4천 명을 넘어섰다(부상자는 약 3만 명).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라크라는 끓는 가마솥 안에 갇힌 현지 이라크 민초들의 고통이다. 이라크 현지취재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후세인 독재정권 시절이 더 나았다.”라는 자조 섞인 말들을 입버릇처럼 주고받았다. 이런저런 유혈사태로 말미암아 숱한 이라크 사람들이 죽어갔는데 집계하는 기관마다 달라서 정확히 짚어내기 어렵긴 하지만 최소 9만 명에서 최대 120만 명에 이른다. 2003년 5월 부시대통령이 전투복 차림으로 항공모함에서 ‘이라크에서의 주요전투가 끝났다.’고 선언한 뒤 5년이 지나도록 이라크 국민들이 혼란과 죽음의 공포 속에 지내야 한다는 것은 뭔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지난해 2월 시리아 현지취재중 이라크의 혼란을 피해 국경을 넘어온 난민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지금의 혼란에 미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뒤에 벌어진 혼란상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후세인 정권을 대신하는 이라크의 현실적인 힘의 주체이자 점령자인 미국에 상당 부분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정치학자 진 베스키 엘스테인(시카고대학)은 “점령국은 (패전국의)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이 져야 할 책임은 전쟁윤리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라크 국민들의 안전에 미국은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석유이익이냐 인간안보냐
지구촌의 여러 분쟁지역들을 취재하면서 품게 되는 생각은 “참된 의미의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는 정복자 로마인들의 평화였고 로마에 복속 당한 약소민족들에게는 ‘노예의 평화’일 뿐이었다. 강자만을 위한 평화, 약자의 인간안보가 위협당하는 평화는 정의로운 평화가 아니다. 21세기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평화)도 마찬가지다. 이라크 민초들이 바라는 평화는 미국의 평화가 아니라 ‘이라크의 평화’다.
여기서 ‘인간안보’의 개념이 중요해진다. 안보란 흔히 국가안보를 떠올리지만, 인간안보란 국가안보에 머물지 않고 넓게는 인간공동체의 안보이자, 좁게는 인간 개개인의 안보를 가리킨다. 전쟁폭력의 위협으로부터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지킨다는 것은 모든 가치행위의 으뜸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인간안보가 지켜지지 않는 한 이 땅에 평화는 없고, 정의로운 평화는 더군다나 없다.
승전국(점령국)은 패전국 국민들의 인간안보를 책임져야 한다. 미국은 이라크 국민들에게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주었는가. 대답은 부정적이다. 미국의 평화도 챙겨야겠지만 ‘이라크 민초들의 평화’도 챙겨야 한다.
지금 이라크에는 16만 명에 이르는 미군이 주둔중이다. 전선 없는 전쟁터에서 극심한 긴장과 피로감에 시달리는 많은 병사들은 하루빨리 본국으로 되돌아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미 워싱턴 당국자들도 가능한 한 빠른 시점에서 이라크에서 발을 빼려는 전략(이른바 ‘출구전략’)을 세우고 있지만, 이라크의 상황은 탁상 위의 계획처럼 쉽지 않다.
이라크 정부군이 오는 2012년까지 국내치안을 떠맡길 바라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다. ‘침략군인 미군의 허수아비 용병’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이라크 정부군이 제 역할을 잘하길 바라기는 어렵다. 미군 지휘부는 ‘전략적 파트너십’이라는 이름 아래 이라크군과의 공조를 애원하지만, 낮에 미군과 함께 수색활동을 펴던 이라크 정부군이 밤이면 오히려 총부리를 미군에게 겨누는 일마저 벌어지는 상황이다.

한국, 하루 빨리 이라크에서 발 빼야
전쟁이 끝난 지 5년이 넘도록 이라크가 혼란상황을 거듭하는 현실은 어느 나라든 함부로 전쟁을 벌여선 안 된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해준다. 구체적인 이라크 재건 청사진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채 “이라크 사람들이 미군 탱크에 장미꽃을 던지리라.”는 미국인들 나름의 편리한 낙관론 아래 석유를 노리고 밀어붙인 이라크 침공과 그 뒤의 혼란, 이를 가리켜 훗날의 역사가들은 무엇이라 기록할까.
‘21세기의 야만과 패권적 야욕에서 비롯된 참극’이란 혹독한 비판기록을 남길 게 틀림없다. 독일 지식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전쟁을 함부로 벌여선 안 된다고 규정한) 국제법을 패권주의 정치학으로 갈음하는 뚜렷한 일탈행위”라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석유를 노린 ‘더러운 전쟁’(dirty war)이란 비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은 이라크 석유를 노리고 미국이 벌인 그 ‘더러운 전쟁’에 노무현 정부가 끌려들어가 자이툰부대를 파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는 이른바 ‘혈맹관계’인 한미동맹, 한국기업들의 재건사업 참여, 유전개발 참여라는 명분 아래 계속해서 철군을 늦춰왔다. 자이툰부대 철군은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한국인들의 염원이다.
그럼 이명박 정부는 과연 그런 염원을 들어줄 태세가 돼 있을까. 이 대답 역시 부정적이다. 이명박 정부는 한술 더 떠 “(지난 10년 동안 훼손됐던) 한미동맹을 강화하겠다.”고 거듭 밝히고 있는 만큼, 자이툰부대의 조기철군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뜻이 없어 보인다. 그저 하루빨리 이라크에서 발을 빼야 한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글·사진  / 김재명 kimsphoto@hanmail.net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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