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편’ 안에서만 작동하는 ‘사랑’은 사회악이 될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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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종교를 믿더라도 신앙을 통한 구원이라는 것이 중심인 사람은 ‘옳고 그름’ 따위 어차피 안중에 없으니 그저 기복적인 삶을 살면서 타인에게 돌아가는 직간접 피해에도 아랑곳 없이 그 소집단 안에서 끼리끼리만 ‘사랑’하며 지내는 일에 몰두할 테고 (이게 극단으로 가면 '절대복종'과 '내부총질 금지'가 최고의 미덕인 조폭에 점점 가까워질 수밖에 없고 바로 그렇기에 사이비 종교집단에선 온갖 기괴한 사건/사고들이 일어나는 것), 선행이나 수행이 중심인 사람은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을 놓지 않고서 타인에게 끼칠 직간접 민폐/부담의 최소화를 최우선의 가치로 하는 삶을 살 테고. 종교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각각의 개별 종교집단 및 개인의 문제. 누가, 어떤 집단이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를, 그리고 국가의 케어를 제대로 받지 못 하는 취약층의 인지적 정서적 건강이 어떤 수준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코로나의 뜻밖의 사회적 공헌(?)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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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개선이 요원해 보이는 이유는, (1) 저신뢰 사회일수록 소집단/진영의 이익을 대집단의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2) 사회를 운영해 가는 정치에서조차 조폭 수준의 진영논리만 남았으며, (3) 문화적 토양 자체도 옳고 그름을 가리는 행위를 오히려 ‘인격적으로 하자있는 인간들이 잘난 척하려는 데에 목적을 둔 교만한 행위’(*)로 간주하는 위선과 억압이 워낙 뿌리깊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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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조차 시비지심을 인간의 근본인 四端의 하나로 꼽았건만, '神 앞의 겸손'을 가르치는 종교의 성직자만 해당 종교집단 안에서만 할 수 있는 *같은 '논리'를 무려 서울대 명예교수가 일간지 칼럼으로 싣고 또 이런 '논리'가 '지성'으로 환호 받는 것이 한국의 현실. (이게 블랙코미디인 이유는, 남들의 '판단' 행위를 인격적 하자의 증거로 '판단'하는 저자 자신의 '판단' 행위는 데스크도, 독자도,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다는 것. 내로남불에 대한 사회 전체의 무감각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점잖은 척만 하면 모든 비논리를 무조건 심오하다 여겨 주는 반지성주의와 허위의식이 얼마나 병적인지를 보여 준 대표적 사례라고 나는 생각. 온갖 사이비 종교들이 한국에 이렇게까지 활성화되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 현직 대통령 트럼프가 "이번 대선은 조작"이라고 기자회견 하는 것을 폭스뉴스조차 "근거 없다"면서 생중계를 가차없이 끊어 버리는 미국과 매우 대조적. 미국도 "썩었"지만 다른 나라들보다는 그래도 훨씬 덜 썩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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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 안에서만 작동하는 情이 옳고 그름을 대체할 때 생기는 일. 마을 학부형들이 여교사 ('외지인')를 성폭행했는데 주민들은 “젊은 사람들끼리 좋아 지낼 수도 있지!”라고만 반응했던 사건이 생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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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남은 귀촌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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