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31

YoonSeok Heo < 한국에서 20대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 일본과의 비교

 

< 한국에서 20대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 일본과의 비교 >
YoonSeok Heo tSpe2o3nsorehdSen · < 한국에서 20대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 일본과의 비교 >
최근 내가 참가한 한일 대학생 교류프로그램이 잘 마무리가 되었는데, 여러 가지 면으로 참 즐겁고 유익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동안 묵혀왔던 일본어를 일본의 대학생들과 소통하면서 양국 청년들이 평소 갖고 있던 사고 체계랄까, 사회 인식에 대해 여러 가지 방면으로 공유하였다.
프로그램과 별개로 ‘젠더’(gender)를 이슈로 진행된 사적인 줌 모임에서 일본의 대학생들과 직접적으로 생각을 나누었는데(이들 중 남학생들은 아무도 없었다, 전부 여학생!) 특히 이들은 군복무를 마친 나에게 ‘군대’ 에 관한 생각을 다방면으로 질문해 주었다. 아무래도 일본의 대학생들에게 있어서 군복무를 마친 남학생의 군대 이야기를 듣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궁금한 점이 많은 모양이었다. 정말 이런저런 애기하였고, 요 근래 가장 ‘짧은’ 2시간을 보냈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말에서 여러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가장 먼저 이 모임에 참가한 일본인 대학생들 모두 사회적 이슈에 대한 굉장한 열의와 관심을 보이는 것 자체에 놀랐다. 예전에 일본인 젊은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쓴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젋은이들>에서 묘사하는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는 청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통상 우리는 기성 권력과 체제에 비판적이고 변혁적인 마인드와 거리가 먼 일본 청년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들은 기성 권위에 순종하며 보신(保身)적이며 정치에 무관심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실상은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 그 이상이다. 생각보다 현실세계의 측면에서 이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단선적이지는 않은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적지 않은 일본의 청년들은 ‘탈원전’ 운동이나 ‘친환경적’ 인 생활로의 변혁운동, 젠더 이슈 등에 현실 비판적이며, 사회가 올바르게 변화해야 할 방향성에 대해 인지하고 이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정치적으로 무력하기 때문에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등의 ‘이탈/탈퇴(exit)'를 택한다는 것이 책의 주장 중 일부이다.
먼저 내가 놀란 것 중 하나가, (물론 내가 인적 풀이 얕아서 편향적으로 생각하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SNS 공론장에서 활동하거나 정치나 시사 이슈 등에 나름 관심 있고 정통한 한국의 지인들 중 상당수는 상대에 대한 적대와 자신들의 사회적 대의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정통성> 에 관한 이슈에만 정력적인 소모를 하는 한편(나는 이를 정치병 환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난 일본의 청년들은 <기후문제>의 해결 혹은 <인간평등>을 목표로 후속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국내외 환경조성을 목표로 한, 일상생활에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여러 문화적 조건들의 점진적 개선을 위한 정치의 역할을 논하고 있었다. 그들이 갖고 있던 시선의 높이를 실감할 수 있었고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하였다.
한편, 이들 중 나에게 ’한국에는 촛불집회 등을 통한 정권교체 등 정치적 효능감이 상대적으로 일본보다 높은 것 같다. 또한 양성평등(gender equality)을 위한 페미니즘 적인 시민운동역시 활발하기 때문에 일본보다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더 바람직하지 않느냐‘ 고 물어보았다. 이에 대해 솔직한 내 생각을 답해주었다.
“네, OO씨가 말씀해주신 바, 공감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관점에서 생각할 거리가 많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그 지점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경제적 하부구조가 다른 점을 지적하고 싶네요.
--- 먼저 일본은 과거 고도생산과 대량소비 사회를 구축했던 경제-사회적 기반이 거품경제의 붕괴와 세계화 등의 국내외적 변화로 인해 와해되면서 불평등과 삶의 불안정성이 증가했고, 오래전부터 여성에 대한 차별적이고 배제적인 남성주의적인 가부장적 시선이 현재에도 남아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과거 일본사회의 근간을 이루어 왔던, 가부장적이지만 가족주의와 연동된 공동체주의적인 기류가 지나친 사회적 갈등과 격차의 분출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정치적으로 제어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자민당-공명당 연합의 보수적 지배체제임은 충분히 비판적일 수는 있으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여러 정치적 파벌이 자민당 내에 존재하며 갈등을 수렴하고 조정하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기에 상대적으로 정치적 안정화를 꾀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 한국은 이와는 거리가 멉니다. ‘공정’ 이란 미명 하에 일본보다 더 가혹한 사회적 경쟁 원리와 배제의 기제가 IMF 경제위기 이후 자리 잡았고, 치열한 경쟁에서 패배한, 또는 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 기제가 보수에도 진보에도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그 속에서 양성평등과, 성차별 등의 병폐를 고치고자 한 고학력과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이 주도하는 ‘페미니즘’ 적인 시민운동이 활발해졌지만, 한국의 대다수 중하위 계층의 남성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유리된 채 위선이 가득한 운동이라 폄훼합니다. 특히 제가 이 점을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한국 남자들은 은연중에 여자들이 갖지 못한 ‘군대’ 조직 속 문화체험과 정서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성에 비해 일자리 경쟁을 위한 사회적 출발점에서의 공정성을 보장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여러 언론매체의 보도내용을 접하며 실제로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차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앞서서 일본남성들이 한국남성에 비해 젠더이슈에 대해 사회적 관심도가 낮다고 지적하셨지만 한국은 더욱이 여성과 남성들의 사회적 소통자체가 단절되며 서로 간의 근거 없는 증오와 불신만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기에 저는 일본보다 더욱 엄중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갈등을 해소하고 이익을 조정할 정치의 역할은 한국이 더욱 취약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결코 한국의 민주주의를 일본에 비해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조원들과의 조별 발표가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된 이후에도 양국청년들이 직면할, 그 이전부터 변화해온 사회정세에 관하여 한국 측을 내가 조사, 담당하게 되었다. 내 자료를 보던 중 조원 한 사람이 나에게 카톡으로 이런 질문을 보내 주었다. “윤석 씨의 자료 잘 봤습니다. 근데 궁금한 것이 생겨서요! 자료 중에 한국 청년의 고용률이 OECD 평균에 비해 낮은 이유로 근거로 댄 것 중 하나가 공시족(공무원시험생)의 증가를 꼽았는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공무원이 인기가 많은 직종인가요..? 일본은 오히려 대학생들의 인식 속에는 야근이 많고 격무(激務)에 시달리는 이미지 때문에 지원자 수가 점차 감소되는 추세인데요.” 속으로 헛웃음이 났다. 이 말을 들은 한국의 공시족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참 행복한 젊은이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일본의 공무원학원 사이트에서 공개하는 시험경쟁률만 보더라도 경쟁률이 낮은 축에 속하는 공무원 직종 중 지방의 교육행정직 하나만 보더라도 ‘2대 1’이다. 직위가 높고 교토 등의 수도권 주위에 근무하는 5급 행정공무원의 시험경쟁률 중 가장 높은 것이 ‘30대 1’ 정도이다. 한국의 공시생, 취준생들에게는 30대 1은 경쟁률도 아니다. 다음은 내 답신의 내용이다.

“하하하, 한국은 완전히 반대이네요. 오히려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높은 학력이라는 신분을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공무원 시험의 합격이 신분상승의 마지막 통로라는 인식을 한국인들은 갖고 있습니다. 웃픈(웃기고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무 듣기 거북한 소리만 늘어놓았다고 여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말한 내용은 결코 ‘불편한 진실’ 이지 틀린 내용은 아닐 것이라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는 일자리 수의 부족은 한국사회의 교육문제와도 연관성을 갖는다. 왜 한국사회에서는 갈등이 제도화를 통해 해소되지 못하고 잔존하는 것일까? 왜 대화와 타협을 통한 갈등-이익의 접점을 찾으며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것일까?
한국청년들은 ‘학교’ 라는 시스템 속에서 고정불변의 진리가 외부에 실재한다는 가정 하에 이를 주입하는 형식의 교육방식과 객관적 평가방식의 노출 속에 살아왔다. 이러한 객관주의적 인식론에 근거한 교육은 세상을 옳음과 그름으로 판단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세계관을 내재화시켰다.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사회적 관계와 대화를 통해 본인 스스로 개별적 진리를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며 그 상대성과 다양함을 인정하는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표준화와 효율성을 강조하는 한국사회에 적합한 획일적이고 규율적인 사람을 길러내는 것에 교육의 초점이 맞춰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원리를 바탕으로 한 주기적인 평가와 대입시험을 통해 ‘경쟁’ 은 정당하다는 믿음을 한국인들은 부여받는다. 경쟁의 결과로 상위 1.5% ~ 8% 에 해당하는 ‘SKY’ 내지 ‘인 서울(in seoul)’을 기준으로 대학은 사회적 위계질서 속 상위계층으로의 편입을 위한 절대적인 권위와 서열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어떻게든 경쟁에서 승리해 상위권의 대학을 진학한 이후에도 앞에 놓여있는 현실은 여전히 살벌한 취업경쟁률이다. 사회적 낙인효과와 차별적 시선 속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에 들지 못하는 것은 부모의 재력이 있지 않은 이상, 향후 만성적인 경제적 부담 속에 살아감을 의미한다. 결국 이 같은 악순환 속에 미취업기간의 장기화 등 인적자본의 적체(積滯)는 물론이거니와 사회적 자원의 배분과정은 상대를 향한 존중과 양보가 아닌 나의 노력을 앞세워 쟁취하는 제로섬(Zero-Sum) 적인 게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YoonSeok Heo < 한국에서 20대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 일본과의 비교
[일본청년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비로소 단언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동일한 조건 하에 평범한 한국청년들과 일본청년들을 동일 선상에 놓고 보자면 일본에서 사는 청년들이 상대적으로 행복할 수밖에 없을 것을. 기본적으로 한국에 비해 낮은 대학진학률을 보이고 있는 일본청년들은 기본적으로 사회에 일자리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판단된다.
청년인구의 감소 등과 관계없이 대기업 정규직 사원의 기본급여와 아르바이트생의 급여 사이의 격차는 예로부터 거의 없었다. 폭넓게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으로의 취업기회가 고졸자에게도 보장되어 있기에 대학졸업장이 꼭 필요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학서열 역시 한국보다는 덜 위계적이고(당연히 사회 인텔리 사이에서는 없지는 않지만, 보통사람들 사이에서는 없다시피 한다.) 입시경쟁, 취업경쟁 역시 한국에 비해 느슨하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다. 국가와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고 무능함에도, 사회는 여전히 강한 공동체적 통합력을 유지하며 그 구성원들의 건전함과 근면성실함, 도덕성, 부패 등의 측면에서는 한국보다는 일본이 지금도 여전히 선진적임은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
  •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고위공직자나 사회지도자급들 인사들의 ‘성비위’ 문제가 이제는 놀랍지도 않는 사회,
  • 주식시장이나 암호화폐 등의 ‘한탕 투기’를 통해 신분상승을 부추기는 사회,
  •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세금으로 수익손실까지 보존해가며 주식투자를 국민들에게 권하며 주식 안 하면 바보 만드는 사회,
  • 21년째 OECD 국가 중 평균 매년 2400명 하루 7~8명의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사망하며 산재사망률 1위를 굳건히 지키는 사회,
  • 사람들을 만날 때 출신지와 대학을 먼저 물어보는 것이 자연스런 사회,
  • 다른 사람에 대한 차별은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라는 믿음이 굳건한 사회.
전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대표하는 한 단면들이다.

김우창 교수의 말씀대로 이 나라에서, 즉 “부도덕한 사회에서는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은 자연스러움을 넘어서 정진과 결단을 요구하는 일” 인 것이다.


Chee-Kwan Kim, 崔吉城 and 2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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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미롭게 읽었다. 균형감과 냉철한 시선이 돋보인다. 사유의 여지도 깊어 보여 읽는 시간이 즐겁다. 좋은 글이다. "부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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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h
  • 너무 길고 주제가 너무 다양해서 사람들과 소통하려면 단편적인 주제를 글로 쓰면 좋을 듯 싶네. 사람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보고 이야기해보면 식견이 넓어진다고 하는데 좋은 경험 했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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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h
    • 신형석
       선생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언젠간 한번 제가 갖고있는 문제인식을 써보고 싶서서요. 마침 제가 경험한 것에 빗대어 글이 나오게 됬네요 🙂 그리고 제가 갖고있는 시선이 아직 짧고 미숙함을 언제나 염두에 두면서 살아가려합니다. 솔직한 평가와 격려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건강 유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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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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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onSeok Heo
       자주 쓰는 건 괜찮은데 글이 너무 길고 글의 주제가 너무 많아서...주제 하나에 글 하나씩 써보는 걸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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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h
  • 제가 일본생활하면서 몸소 겪으며 느낀 (한국사회와 비교하면서 )일본사회와 허윤석님이 글에서 지적해주신점과 너무 비슷해서 놀라게 되는군요~
    일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후진적이고 폐쇄적이라고 하면서 한국이 일본처럼 되간다며 걱정하는 한국의 진보들 보면 기가 차서 말이 안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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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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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단 후쿠시마 이전에 자민당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민주당에 뺏길 정도인데 “정치에 무관심한 일본인” 이미지로는 있을 수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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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h
    • 이재우
       그 사건을 기점으로 일본 내에서도 환경이슈와 원전의 안정성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짐이 자민당 정권교체의 한 몫을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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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h
    • YoonSeok Heo
       예. 거기다가 때마침 중국과 센카쿠/조어도 분쟁이 발생했을 때 민주당 정부가 어버버했던 점도 일본 국민들에겐 불신감을 줬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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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h
  • 제도와 신뢰할 수 있는 시민사회가 부재한 자리에는 맹목적인 투기와 제로섬 게임, 생존이라는 미명 하의 끝없는 모반밖에는 없죠. 한국사회는 서로의 투기와 투신을 조장하고 부추긴다는 점에서 단 하나의 공통된 의식을 가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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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h
    • Zion Kim
       슬픈 자화상입니다. 그 속에서도 서로 밟고 올라가겠다는 사람들로 굴러가는 사회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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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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