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원 확충 없는 복지확대’ 언제까지 가능할까? : 경제일반 : 경제 : 뉴스 : 한겨레
‘세원 확충 없는 복지확대’ 언제까지 가능할까?
등록 :2020-02-25 09:51수정 :2020-03-02 02:34
독립연구가 펴낸 <장제우의 세금수업>
세금 관한 잘못된 상식들 밝혀
진보 ‘증세 없는 복지국가’와
보수 ‘낙수효과론’ 모두에 일침
박근혜 정부 ‘증세 없는 복지’
민주당 정권서도 사실상 답습
반도체·부동산 호황 지나고
7년 만에 국세수입 감소 전망
복지비용 지출 느는데 대안은?
“소비세 인상”-“소득·보유세부터”
각자도생 넘어 공동체 강화 향한
‘증세 논의’ 총선 뒤엔 가능할까
“세상에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한명이자 100달러 지폐 속 인물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남겼다는 명언이다. 인간인 이상 아무리 노력해도 죽음은 피할 수 없고, 한 국가의 국민인 이상 아무리 애를 써도 세금을 피해갈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맞을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다르다. 죽음과 달리 세금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세금 문제가 이슈가 되면 보수-진보는 물론, 부자와 빈자, 기업과 시민이 극렬하게 대립한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 법인세 등을 감세할 때도, 문재인 정부가 기업과 고소득층을 상대로 핀셋증세에 나섰을 때도 반복됐던 논란이다.
문제는, ‘뜨거운 감자’인 세금 문제는 외면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점이다. 제대로 정리할 시점을 놓치면 경제가 망가지고 후세대에 엄청난 부담을 남기는 등 공동체에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 최근 출간된 <장제우의 세금수업>(이하 <세금수업>)은 보수와 진보 모두 세금에 관한 허상을 깨야 한다며, 더 늦기 전에 세금구조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한다. 정치적으로 어렵더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학계에서도 나온다.
■ 보수·진보의 잘못된 ‘세금 상식’
“법인세 의존 높은 한(韓), 조세개혁 필요”
지난해 11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도한 <문화일보> 기사 제목이다. 한국이 기업들로부터 걷은 법인세가 국내총생산(GDP)의 3.6%로 미국·프랑스(각 2%) 등보다 훨씬 높다며, 법인세는 낮추는 대신 소득세와 소비세를 늘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며 법인세 인하를 주장하는 것은 보수 쪽의 오랜 모습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기 대학을 중퇴한 뒤 여러 공장을 거쳤다는 독립연구가인 <세금수업> 저자에게 이런 보고서는 ‘제멋대로 통계쓰기’일 뿐이다. 글로벌 기준으로 기업들이 내는 세금은 법인세와 사회보험료, 급여세(직원당 정액으로 징수하되 세목이 정해져 있지 않은 세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9개국에서 운용)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한경연 자료대로 프랑스는 국내총생산 대비 법인세 비중은 2.1%(2018년 기준)에 불과하지만, 사회보험료와 급여세까지 더한 기업 세금 비중은 13.3%로 한국(7.8%)을 압도한다. 전체를 보지 않고, 자기 입맛에 맞는 대목만 떼다가 비교해 현실을 왜곡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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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과 관련해 광범위하게 공유되는 또다른 상식 가운데 하나는, 후진국일수록 역진적인 간접세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소득이나 재산 규모에 비례해 세금을 물리는 직접세(소득세·상속세 등)와 달리 간접세(부가가치세·개별소득세 등)는 재화나 서비스 단위로 매겨져 가난한 이에게 불리한데, 한국처럼 ‘세금 후진국’들이 간접세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믿음도 ‘미신’이라고 설명한다. 세목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간접세인 소비세가 군사독재 시절인 1972~1988년엔 총 세금의 60%가량을 차지했지만, 이후로 꾸준히 낮아져 박근혜 정부 이후 20%대로 떨어졌다. 국내총생산 대비 소비세 비중도 7.5%로 경제협력개발기구 36개국 가운데 30위에 불과하다. 캐나다(5%), 스위스(8%)에 이어 세번째로 낮은 10% 단일 세율인데다, 사교육처럼 엉뚱한 분야를 면세 대상으로 한다. 반면 대부분 선진국은 총 세금 가운데 소비세 비중이 30%대다.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 등은 부가가치세율이 24~25%이고, 기초 생활필수품 등에 경감세율을 적용한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국내총생산 대비 소비세 비중은 10%대 초중반이다.
하지만 ‘간접세 비중이 50%가 넘는다’ 등 엉뚱한 조세통계들이 언론 등을 통해 자주 언급된다. 총 세금에서 사회보험료를 제외하거나, 지방세를 뺀 국세 기준으로 간접세 비중을 계산하는 ‘꼼수’ 또는 부동산거래세처럼 역진성과 무관한 세금도 간접세에 포함하는 잘못된 관행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36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국민이 내는 양대 세목인 소득세와 소비세를 합쳐도 민영보험료에 못미치는 ‘세금빈곤 국가’다. 각자 알아서 위기를 대비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국민 모두가 더 세금을 내고 더 보장을 받는 사회가 나은 것 아닐까.
■ 세금 대신 보험 택한 각자도생 사회
증세라면 바로 법인세를 떠올리는 일부 진보들에 던지는 또 다른 일침도 있다.
“한국은 법인세와 소득세 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가운데 멕시코와 슬로바키아에 이어 세번째로 작다(2019년 기준, 소득세 84.5조원-법인세 72.2조원). 반면에 복지 선진국들인 덴마크·아이슬란드·핀란드·스웨덴·캐나다·뉴질랜드·오스트리아·오스트레일리아 등은 소득세가 법인세보다 110조~380조원씩 더 많다.”
이 가운데서도 복지 일등국인 덴마크와 스웨덴은 국내총생산 대비 소득세 규모가 24.4%, 12.7%다. 한국(5.2%)의 두배~네배 수준이다.(2018년 기준)
종합하면, 한국은 직접세, 간접세를 막론하고 세금이 적다. 실제 한국 조세부담률(소득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약 25%)에 한참 못미친다.
세금을 덜 내는 대신 어디에 돈을 쓸까? 경제협력개발기구 소속 36개국 중 한국이 1등인 지표 가운데 하나는 국내총생산 대비 민영보험료 비중이다. 무려 11.8%(2010~18년 평균)로 6%대인 독일, 7%대인 미국·캐나다·스웨덴 등을 압도한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 대비 소득세+사회보험료(고용주 몫 포함·10.7%) 비중이 민영보험료보다 적은 유일한 나라다. 웬만한 선진국들은 국내총생산 대비 소득세+소비세 비중이 민영보험료보다 10~20%포인트 높지만, 한국만 더 적다(-0.2%포인트). 여기에 민영보험 중도 해지 때 손해액인 납입액과 해지 환급금의 차액도 매년 10조원이 넘는다.
왜 이렇게 세금은 옹색하고 민영보험은 두둑할까. 한국은 각자도생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에 치중하느라 교육·보건·주거·보육 등 분야가 대거 외주화돼 공공의 존재감이 미약하고, 사회안전망 구축은 뒷전이었다. 낮은 정부·정책 신뢰는 높은 조세저항으로 이어졌고, 생존은 개개인 각자의 몫이었다. 문제는 이런 개인들의 선택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큰 비효율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뒤인 2018년 4월 ‘과세 형평과 재정 건전성을 제고할 개혁과제를 발굴하겠다’며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에 재정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강병구)를 꾸렸다. 하지만 재정특위는 기대했던 수준의 개혁안을 내놓지 못했고, 그나마 내놓은 세제개혁 권고안도 기획재정부의 반대 등으로 좌초했다. 정해구 정책기획위원장은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8년 7월3일 강 위원장(오른쪽 셋째)이 회의를 열기에 앞서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 당신의 세금이 우리의 삶을 책임진다면
“복지국가를 만들자며 (보편증세가 아닌) 부자증세를 주장하거나, 낙수효과를 이야기하며 증세에 반대하는 좌우 모두의 위선과 모순을 통렬하게 고발”(이한상 고려대 교수의 추천사)하는 저자가 내놓는 결론은 상식적이고 단순하다. 고소득층으로 갈수록 더 큰 부담을 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제각기 부담을 늘려야 세금과 복지가 온전히 돌아가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국민개세주의(국민이라면 누구나 소액이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민주국가의 중요한 원칙이고, 한국사회에서 보편증세 필요성에는 사회정책과 재정 전문가들 상당수가 동의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야 거의 모든 정치인과 관료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표 떨어지고 머리 아픈’ 얘기이기 때문이다.
‘혁신적 포용국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정부 시절 도입된 무상보육 정책을 확대했고, 아동수당을 도입했다. 노인 일자리 사업 확대,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제 기준 완화, 장애인등급제 폐지 등 복지제도를 꾸준히 확대했다. 올해에도 기초연금 인상(30만원)과 고교 무상교육 도입이 이뤄졌다.
이런 복지 확대 흐름은 보수정권으로 바뀌어도 되돌릴 수 없다. 이미 국민 눈높이가 높아진데다, 저출산·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라는 급격한 사회구조 변화 속에서 재정지출은 큰 폭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문재인 케어)와 돌봄 시스템 확대에 따른 요양병원 증가, 치매 국가책임제 도입 등 여파로 건보재정 지출 증대도 이미 본격화됐다.
문제는 재원이다. 국채발행(재정적자)을 통한 대응에는 한계가 있고, 재정지출을 줄이지 않는 한 구조적 해법은 증세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인 2017년과 2018년에는 반도체 호황과 부동산거래 활황 등에 힘입어 세수 호황이 이어져 상황이 나았지만, 현재는 다르다. 지난해 통합재정수지(정부 예산+사회보장기금)가 4년 만에 적자 전환할 예정이고, 올해 국세 수입액도 7년 만에 감소 전환이 확실시되고 있다.
개혁진보성향 교수 등 300여명이 참여한 ‘지식인 선언 네트워크’ 2018년 7월18일 문재인 정부의 사회·경제 개혁 포기를 우려하며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 정책의 과감한 실현, 재벌 체제 적폐 청산, 정규직 채용 원칙 등 실현, 후퇴한 종부세 개편안 즉시 폐기 등 적극적인 개혁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선언을 발표했다. 사진은 그해 11월30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촛불정부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가? - 사회정책의 평가와 대안’ 토론회 모습.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세금수업> 저자는 세수 확대를 위해 간접세인 소비세 인상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복지 선진국일수록 소비세율이 높고, 소비세가 전체 세금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론도 나온다. 1600만명 근로소득자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한푼도 내지 않는 소득세 과세 구조 손질, 자산보유세의 점진적 인상 등이 먼저란 얘기다. 황상현 인천대 교수(전 조세연구원장)는 “소득세와 자산보유세 다음으로 법인세를 손볼 수 있을 텐데, 세율을 더 올리기는 어렵고 최고세율(25%) 적용 구간을 (현재 3000억원에서) 예전처럼 200억원으로 환원하는 수준은 가능할 것 같다”며 “소비세 인상은 이런 조치들을 다 시행한 뒤에나 검토해 볼 수 있을 텐데, 그중에서도 (사회적 손실을 발생시키는) 술·담배·유류 등에 대한 교정과세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도 “증세에 찬성하지만 당장 실현 가능성은 작다. 비합리적인 비과세 감면조항 손질과 과도한 재정칸막이로 인한 재정 비효율 문제 개선에 우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증세나 재정효율화 필요성에 대한 논의나 공감대의 장이 실종됐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를 허구라며 비판하던 민주당은 사실상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당시 박근혜 정부를 함께 비판하던 진보진영은 별다른 말이 없다. 국가채무비율이 양호하니 당분간 적자재정은 별문제 없지 않느냐는 위험한(?)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문재인 정부 집권 2년 차인 2018년에 기한이 만료된 조세감면 제도는 89개였는데, 가운데 폐지나 재설계(재정비)가 이뤄진 건수는 13개로 15%에 그쳤다. 박근혜 정부 때 재정비 비율은 30%대였다. 그해 국세수입 대비 감면액 비중(13.9%)도 이명박 정부 이후 10년 만에 법정한도를 뛰어넘는 등, ‘포용적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목표에 배치되는 적극적인 감세 정책을 펼쳤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황 교수는 “현재 조용하지만, 올해 세수가 줄어들 예정인데다 4월 총선 뒤론 당분간 선거가 없어 하반기에는 증세를 논의할 최소한의 여건은 마련된다”며 “여당도 인정할 것은 솔직히 인정하고, 야당도 나라의 미래를 봐서 10~20년 뒤엔 조세부담률을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점진적인 증세에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금 문제에 대한 정부·여당의 ‘저자세’나 침묵은 이해되는 면도 있다. 수많은 정변과 혁명은 세금 문제를 배경으로 일어났고, 박정희 정권 말기 부산·마산 민주항쟁도 1977년 시행된 부가가치세 제도에 대한 서민들의 불만을 배경으로 일어났다. 일본에서도 1980~90년대 소비세(3%) 도입, 인상(3→5%) 때마다 정권이 붕괴했고, 지난해 10월 소비세 인상(10%)으로 4분기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역풍’을 맞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반박도 있다.
“1600만 근로소득자 중 절반인 800만명이 세금을 단돈 1원도 안 내게 되어 있다. 여기에 침묵하면서, 부자·대기업 증세로 보편적 복지 하자고 주장하는 건 사기극이다.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연 1300만원 초과 소득자는 최소한 월 1만원의 세금은 내게 하는 ‘근로소득 최저한세’ 도입을 주장할 용기는 없는가. 서민의 세금으로 국공립 보육원 더 짓자고 설득하고, 여기에 매칭해서 부자들도 세금 더 내라고 압박할 용기는 없는가. 금기에 도전해서 현안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하도 답답해서 지껄여 봤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교수 시절이던 2015년 언론에 기고한 칼럼의 한 대목이다.
이순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hyuk@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29641.html?fbclid=IwAR0EOtTNwA5lOHP54TMMKL2ACgljL2dbNCusWKg6M2QWmbyOU2krZf3bCAo#csidxe02610511eb5ab9a6a20c0b9b7ed4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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