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2

대통령께서는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북한의 동참을 호소하셨습니다.





우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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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께 드리는 호소문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평화네트워크라고 하는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정욱식이라고 합니다. 작금의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몇 가지 고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대통령님의 한국전쟁 70년 주년 기념사 감동 깊게 잘 들었습니다. 특히 대통령께서 장진호 전투에서 산화하신 일곱 분의 성함을 말씀하실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마도 대통령께서는 장진호 전투에서 한국군과 유엔군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도 없었을 것이라는 마음을 담아 일곱 분을 거명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대통령께서 남북정상회담의 최고의 명장면으로 뽑으셨던 능라도 경기장의 연설을 떠올려 봅니다. 대통령께서는 김정은 위원장 부부와 15만 명의 평양 시민 앞에서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강산에 더 이상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을 만들겠다고 김정은 위원장과 굳게 약속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이 말씀에 평양시민들이 열렬한 환호로 호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 인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2018년 9월 19일의 감동은 1950년 11월 30일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참전으로 장진호 일대의 약 7만 명의 한국군과 유엔군이 절멸의 위기에 처하자,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핵전쟁을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그러자 약 30만명의 북한 주민들이 필사의 탈출을 위해 흥남 부두를 향해 몰려들었고 약 9만 3000명이 극적으로 미국 함정에 몸을 실을 수 있었습니다. 이 분들 가운데에는 훗날 대통령님의 부모님이 되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이러한 대통령님의 감동적인 개인사는 70년 동안 이어져 온 한반도 핵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도모할 수 있는 역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대통령님의 연설에 북한 주민들이 화답한 데에는 70년 동안 이어져 온 미국의 핵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염원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통령께서는 비핵화의 정의를 둘러싼 북미간의 입장이 확연하게 차이가 났을 때에도 "같다"는 말씀을 되풀이 하셨습니다. 다름이 분명한데 그 다름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결코 같음을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실사구시의 해법은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전 세계 116개국이 비핵지대에 속해 있습니다. 전 세계 육지의 절반 이상이 비핵지대입니다. 그렇습니다. 존재하지도 않고 합의하기도 힘든 비핵화를 두고 헤맬 것이 아니라 이미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어온 비핵지대를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와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부터 먼저 공론화를 하고 북한 및 미국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도모해야 합니다.
대통령께서는 또한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북한의 동참을 호소하셨습니다. 하지만 종전선언을 거부한 쪽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점에서 다소 허망하게 들린 것 또한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의 안목은 종전선언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실질적인 내용이 뒷받침되지 않는 종전선언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종전선언은 미국 대통령이 약속한 한미 연합 훈련 중단과 남북정상회담 합의 사항인 "단계적 군축"과 내용적으로 연결될 때에만 그 실효를 거둘 수 있습니다. 종전을 선언했는데 한미군사훈련이 계속되고 한국의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이 계속된다면, 상황은 더 악화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9.19 군사 합의를 두고 정부에서는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반면에, 북한은 "있으나마나 한"이라고 폄하하고 있습니다. 이 차이를 떠올려본다면, 실질적 내용 없는 종전선언의 위험성은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하여 종전선언 추진은 한미연합훈련과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을 자제하는 것과 병행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종전선언 추진은 평화협정 협상 개시와도 연결되어야 합니다.

대통령께서 언급하신 전시작전권 전환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작권은 당연히 찾아와야 하는 것이지만, 그 목적은 한반도 평화 증진에 맞춰져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전작권 전환의 "조건"을 한미연합훈련 및 대규모 전력증강과 연계시킨 것은 정부의 전략적 패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미 한국군 주도의 연합 훈련에서 한국군의 우수성이 입증되었고 대규모 전력증강에 힘입어 세계 6위의 군사강국으로 올라선 상황입니다. 그렇습니다. 한국군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군통수권자로서 이를 분명히 하고 한미연합훈련 및 대규모 군비증강을 자제하면서 전작권 전환을 추진해주십시오.

끝으로 대통령께서도 말씀하신 인간안보를 진정으로 실현하는 길에 대해서 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일찍이 정도전 선생은 먹을 것이 부족할 때에는 백성부터 먹이고 그 다음 사병을 먹게 하며 장수는 마지막에 먹는 것이 군통수권자의 리더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민생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정도전 선생의 이 말씀을 절실하게 떠올려 봅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온 국방비를 줄인다면 도탄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데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50조 원을 돌파한 올해 국방비를 40조 원 정도로 줄이고 대통령님의 남은 임기 동안 이 정도 수준에서 국방비를 동결하면, 자칫 ‘죽음의 계곡’이 될 수 있는 ‘전환의 계곡’에 생명의 다리 몇 개는 놓을 수 있습니다. 국방부의 당초 계획과 비교할 때, 40조 원 가까이 절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도 일정 정도의 군비증강은 가능합니다. 동시에 민생 구제 예산을 늘리면서 북한과 합의했던 "단계적 군축"의 첫발도 내딛을 수 있습니다. 저는 민생 위기 시대에 군 스스로가 솔선수범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군대를 만드는 길이라 확신합니다. 최고 군통수권자이신 대통령께 호소드리는 이유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프레시안에도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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