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2

김소운 Park Yuha 일제시대의 조선인은 세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일제시대를 산 어떤 이가, 조선인은 세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하는 걸 어떤 책에서 읽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조선인들은
“독립을 주장하는 과격파”거나
“참정권을 주장하는 친일파”거나
“맹목적으로 일본에 매달리는 무지한 사람들” 이었다.
체제에 저항을 하다가 협력파가 된 사람들도 많았다는 걸 생각하면, 한사람을 하나의 태도로만 구분하는 이런 구분은 사실 큰 의미는 없다.
그럼에도 이 구분은 “모든 친일파=반민족”이라는 오래된 주장을 단박에 깨뜨리는 관점이라는 점에서 귀를 기울일 만 하다. 이광수를 “친일민족주의”라고 했던 현대의 일부논자의 관점과도 통하는 동시대 시각인 셈.
그런 의미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이 대충 살았다고 말한 윤서인도, 윤서인 비판을 위해 “친일파모리배”라는 이상한 말을 만들어낸 전우용도, 둘 다 틀렸다.
그리고 나는 윤서인과 전우용의 의견에 귀기울이는사람이 적어질수록 우리 사회가 좋아질거라고 생각한다. 양극단은 극단끼리 싸우게 놔두자.
You, 李昇燁, 이소 and 401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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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서인의 사후 유튜브 방송을 들어봤는데 별다른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위인은 나고
    작황은 다른 법이지요.
    저희 집안을 보아도
    한 부모 슬하에서 같은 전란을 겪었지만 환경과 개인의 노력에 따라 현재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일제와 전후를 겪고 살아남은 96세의 노모는 말합니다.
    일제보다 지긋지긋한 6.25였다고.
    해방 후 70여 년 지난 현재는 어느 의미로 제겐 최악의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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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 윤서이
       사태자체를 두고 한 얘기가 아니에요. 자주 접한거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배금주의 냄새가 강해요. 소시민적 욕망 자체를 윤리적으로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그런 욕망이 당연시되고 추종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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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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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몇해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그런 중도적 시각을 잘 다루어준 거 같아요. 당시 조선의 정부는 참으로 무능했지만 그 안에 백성들은 각자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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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 그들은 위에 세 부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어떤 소수의 민중들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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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론 드라마니까 픽션이 많이 가미된 것을 감안해야겠지만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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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 이석원
       제가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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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어제 제가 오래전부터 좋아해 온 일본 언더그라운드 극단 신주쿠 양산박에 관한 다큐를 보았는데 재일한국인 배우 신대수씨가 "잊지 않는 것을 전제로 손을 잡고 싶다!"고 말한게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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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이상훈
       재일교포로서는 당연한 얘기겠지요. 교포사회 안에서도 국민으로 살지 시민으로 살지를 두고 논의가 많습니다. 교포들에게도 참정권이 부여되어야 할 거고, 그러려면 역사기억도 중요하지만,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의식도 필요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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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극한이념과 사고는 참 지식인들의 말을 경청하려는 자세로 시작되어야 하는데
    답답합니다.
    그 시대의 다양성 이해와 논의,
    현정권 교체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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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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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9년생이신 저희 할아버지는 학교라곤 문턱에도 못 가봤고, 어려서부터 죽을 때까지 농사를 지었습니다. 소작농이었고, 이승만 때 토지개혁 이후 간신히 소농으로 격상. 쌀농사를 지었음에도 명절이 아니면 쌀밥을 먹지 못했고, 밥을 먹고 구들장을 덥히기 위해 몇 킬로를 걸어 나무를 하러 가야 했고, 물이 필요하면 우물까지 가야 했습니다. 기차역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했고, 도로란 도로는 모두 비포장, 비만 오면 진창구렁이 되는 흙밭길. 저희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일제 시대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할아버지에게 일본은 그리고 조선은 그리고 식민지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네요. 저희 할아버지는 이 세 가지 유형 중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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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장부승
       그러게요. 위 구분은 김소운이 한 거에요. 조선민요、민화, 동요,시..를 모아 펴내 일본인들에게 조선인의 마음을 전하려 했던 그 김소운이요. (그런데 친일파 명단에 올랐다는 얘기가 있네요)
      올린 부분에 있는 것처럼 ‘조선어를 뺏는다고 일본인화되는 건 아니’라고 일본문인들에게 흥분하며 한 얘기 중에 있는데, 슬픈 건 이 뒤에 이어지는 “조선인들이 독립하더라도 내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이지요.
      아무튼 할아버님 같은 경우, 정보가 어느 정도 차단된 지역일 수 있으니 중앙에서 어떤 일이 생기든 개인의 생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환경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농업에 종사한 사람이 대다수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고 생각할 수 있을 거 같고요.
      사실 대부분 사람들은 정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생활을 했다고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식자율과 신문구독율에 따라 별로 차이가 나겠지만요.
      지금 역시도 목소리 큰 사람들이 정보를 제공하면서 정치를 이끌고 있고, 지금이야 전국민이 순식간에 모든 정보를 알 수 있으니 그에 따라 움직여지기도 하지만, 그 당시 정황으로 생각됐던 많은 정황은 실은 거의 일부 ‘도시’이야기 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김소운의 구분도 도시 중심이라고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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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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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인들은 그냥 그 시대에 따라
    그냥 살지 않았을까요?
    조선시대건 일제시대건
    분단시대건 유신시대건
    체제에 강하거나 약하게 저항하거나
    적극이나 소극으로 협조하거나...
    그냥 공부잘해서 법대가면 판검사
    의대가면 의사 기타 전공에 따라
    일제가 36년만에 망할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극소수가 아닐까요?
    대부분은
    그 시대 그냥 충실하게 살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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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Myung Ho Park
       그런 부분도 있지만 크고 작게 억압감과 고민은 있었습니다. 공부한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살았다는 건, 누구나 독립운동 했을거라는 생각과 다르지 않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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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박유하
       20,30넌대 근대 새로운 문명, 모던이 유행하던 시대에 억압보다는 개인적 삶의 성취가 더 크게 작용했지 않겠습니까? 실제 당시 상해 임정에는 노인네 몇몇뿐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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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윤서인을 극단으로 모는 것은 박유하답지 않니다.
    윤서인이야 말로 박선생님보다 더 일제시대를 객관적으로 보자 주장하는 분이라고 여겨집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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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Myung Ho Park
       글쎄요, 독립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엉뚱한 일 한 사람들도 많아 보이지만, 그럼에도 “대충 산 사람”이라는 생각엔 능력지상주의와 빈곤에 대한 혐오가 보입니다. 그런 사람이 대다수일 거 같진 않은데요.
      일제시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제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페미니즘 혐오를 봐도 저와 비슷할 거 같지는 않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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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그때 당시의 삶을
    겪어보지 않고서야
    구분짓기 힘들지요
    어거지 많아요
    학자의 가치관
    그래서 존엄한거지요
    응원합니다
    Stories Stickers in Feed the text 'so proud' with lines for emphasis sti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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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작년에 돌아가신 저희 외할아버지. WBC때 이치로 선수가 화내는 모습을 보시면서 키득키득 웃으셨고, 일제시대 서울에 맛있는 우동집이 있었다고, 그곳 우동이 그립다고도 말씀하셨고. 잘못하면 전쟁 끌려갈까봐 공장쪽에 취업했다고 하셨고. 일본인 손주며느리(제 아내) 처음 보신 날, 일본어로 자기소개 하시고 매 순간 케이고로 대화해주셨습니다. 24년생이신데 위 세부류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신듯 합니다. 그저 나좀 내버려뒀으면... 하는 태도였달까요. 처가쪽 할아버지에게서도 비슷한 걸 느꼈습니다. 만주국 흑룡강성에서 태어나셔서 자주 중국을 오가셨는데 당시 중국에서 먹던 음식, 당시의 기억들을 다 소중히 간직하고 계십니다. 패망 후에 일년간 뤼순쪽에서 고생하시다가 일본에 건너오셨는데 당시 조선인들, 중국인들이 던진 돌에 맞은 적도 있지만 일자리도 주고 먹을것도 주던 조선인도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야 위의 세 부류에 속하게 되겠으나 그저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던 이들은 매우 다층적인 기억들과 경험으로 그 시절을 체화한 듯 합니다.
    매번 글 잘 보고 있습니다.(교수님께서 번역해주신 가라타니 고진의 책도 잘 봤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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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Lee SJin
       긴 소개 감사합니다. 사실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우리는 너무나 없었지요. 사회가 결론을 정해 놓고 있으면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웠을 거구요. 저도 젊었을땐 이런 문제 무관심해서 아버지한테 많은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게 유감이랍니다 .
      응원 감사하고, 예전 책도 읽어 주셨다니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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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그렇습니다. 이광수는 2.8동경유학생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독립투사입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학병권유등 소위 친일흔적 지우고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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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정화태
       맞는 말씀이지만, 지우거나 상쇄하면서 잘하고 못하고를 따질 것이 아니라、”왜”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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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d
    • 박유하
       최남선은 국학자로 기미독립선언서 하나만으로 일제말기 친일의 흔적은 능가합니다. 김성수도 36년 동아일보 일장기지운걸로도 공이더 커요.
      공과를 따져야지요.
      약산은 훈장을 주고싶다 면서 인촌은 빼앗아요.
      중앙학원에 김형석등 월남한 사람들 받아주고
      조지훈등 납북자의 아들을 고대에 채용하여
      민속학연구를 한 공으로 학병권유광고의 죄과를 덮습니다.
      일제는 1941~45사이 미쳐가는데 그때의 일만으로 1910~40년의 공로를 덮으면 안되지요.
      인간평가는 전체를 봐야지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것만 봐서는 안되지요.
      춘원과 육당은 납북되서 죽습니다. 인촌은 이승만의 독재에
      반대하여 야당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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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d
  • 일제시대때 치열하게 독립운동하신 분도 해방후에는 일본과는 친해져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는 걸보면, 독립운동가=반일이라는 것도 꼭 아닌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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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 Sinhwan Kim
       그러게요. 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이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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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 h
  • 진영 논리에 묶여 실체적 사실을 보지 못하고 살아 온 세월이 안타깝습니다.
    뒤 늦게 알게 된 사실을 말하면 변절자가 되어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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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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