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8

뒷모습 싼마오三毛, 김택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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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싼마오의 수필이 무척 궁금하시죠? 지금 싼마오의 수필집은 모두 절판 상태라 구해보시기 힘들 거예요. 제가 그녀의 수필 한 편을 번역해본 적이 있어요. 즐감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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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싼마오三毛, 김택규 역

그 공원묘지는 호세와 내가 늘 지나치던 곳이다. 

과거에 우리는 새로 이사 온 이 섬의 산등성이를 산책할 때마다 그곳의 두터운 순백색 담장을 즐겨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묘지 안에만 자라는 가냘픈 삼나무와, 꽃 문양을 박은 고풍스러운 큰 철문을 바라보았다.
네모나게 에워싸인 그 고요한 땅을 왜 항상 질리는 법도 없이 두리번거리고 마치 고향을 그리워하듯 연연해했을까. 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결코 알지 못했다. 얼마 후, 그 묘지가 호세가 돌아갈 곳이 될 줄은.
그렇다, 호세는 영원히 잠들어 버렸다.

이른 아침의 묘지는 새소리가 맑게 울리고 바람에 나뭇잎의 신선한 향기가 실려 온다.
멀지 않은 산비탈 아래, 호세가 마지막으로 일하던 장소와 오래 된 마을이 보인다. 당연히 코발트색 바다도 눈에 보인다.
매일 황혼이 될 때까지, 어두운 밤이 천천히 죽음의 그림자를 사방에 드리울 때까지 나는 넋을 잃고 앉아 있다.
그러면 늘 똑같은 묘지기가 낡은 열쇠를 단 커다란 구리 고리를 들고 다가와 나지막이 타이른다.
“부인, 돌아가시죠. 날이 어두워졌어요.”
나는 답례의 말을 하고 묵묵히 그를 따라 한줄 한줄 십자가들을 통과한다. 마지막에 그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철문을 잠그는 걸 보고나서야 비로소 집집마다 환하게 불을 밝힌 마을로 걸음을 옮긴다.
임대 아파트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만 들리면 부리나케 문을 여신다. 온종일 나를 기다린, 초췌한 아버지, 어머니가 눈앞에 나타났다.
늘 그랬듯이 “아빠, 엄마, 저 왔어요!”라고 소리친 뒤, 침실로 들어가 천장을 보고 누웠다. 그렇게 여명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새벽 6시, 공원묘지의 문이 열리면 다시 호세에게 달려갈 수 있다.
부모님이 곧장 침실로 따라 들어왔다. 어머니가 또 미음을 받쳐든 채 내 안색을 살피며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한 숟갈만 먹거라. 이제 무덤에 가지 말라고 하지 않으마. 제발 한 입만 먹어, 이렇게 몇 날 며칠을 안 먹고 어떻게 버티겠니?”
굳이 어머니의 뜻을 거역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아무 것도 먹고 싶지가 않았다. 고개를 젓고는 부모님을 외면한 채 베개 속에 비스듬히 얼굴을 묻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한참 동안 서 있다가 미음을 들고 나가셨다.
거실 쪽이 쥐죽은 듯 조용했다. 부모님도 얘기를 나누고 계시지 않는 듯했다.
호세를 묻고 며칠이나 되었을까. 수북이 쌓인 화환은 이미 말라 시들어 버렸다. 나는 무릎을 꿇고 화환을 묶은 철사를 힘껏 풀었다. 그리고 흩어진 가지들을 한아름씩 안고서 멀리 있는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다.
꽃이 사라지자 햇볕 아래 누렇게 마른 흙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이 눈부신, 내가 천 번, 만 번을 확인한 이 땅 아래, 내 평생 가장 사랑한 남편이 긴 잠을 자고 있다.
새 꽃을 사서 맑은 물을 채운 큰 화병에 꽂았다. 이름 없는 그 누런 땅은 여전히 고집스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산들바람 속에 빨갛고 하얀 장미가 간들거렸지만 끝내 생명의 기별은 전해지지 않았다.
그날 정오, 나는 묘지에서 내려와 차를 주차한 뒤, 오가는 차들과 행인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따금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 발을 멈추고 섬의 오랜 풍속에 따라 내 두 손을 잡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몇 마디 애도의 말을 중얼거리고 고개를 숙인 채 멀어져 갔다. 나는 그냥 기계적으로 감사하다고 했을 뿐,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내 손에는 꼬깃꼬깃한 쪽지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이제부터 맞닥뜨려야 할 여러 가지 일들이 빼곡히 적힌…….
장의사에 가서 계산을 치르고, 의사를 찾아가 해부 결과를 알아 보고, 경찰서에 호세의 신분증과 운전면허증을 반납하고, 해군 사령부에 가서 사건경위서를 작성하고, 법원에 사망증명을 신청해야 한다. 또한 시청에 묘지 형태의 허가를 요청하고, 사회복지국에 사망 신고를 하고, 마드리드 본사에 장거리 전화를 걸어 호세의 업무 계약 증명을 요구하고, 대(大) 카나리아 섬에 차량을 돌려 보내기 위한 선적 일정과 비용을 알아봐야 한다. 이처럼 가슴 아프지만 피할 수 없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나하나 처리해야 한다.
어느 일부터 해야 하나 묵묵히 헤아리다가 나는 복사해야 할 문서들을 집에 두고온 것을 깨달았다.
찌는 듯이 무더운 날에 검은 색 상복까지 입은 터라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호세의 사고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솟구쳐 오른 미칠 듯한 갈증이 또 다시 연이어 엄습해 왔다.
이 때, 우체국 문 앞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았다. 시내에서 부모님을 뵙는 건 호세를 매장한 이후 처음이었다. 한번도 두 분을 모시고 나와 함께 일을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온종일 집 안에서 내가 오기만을 고통스럽게 기다려야 했다.
나는 손짓도 하지 않고 그냥 차문 옆에 기대어 있었다. 아버지가 금세 나를 가리키며 어머니를 끌고 길을 건너왔다.
이 날, 어머니는 짙은 남색 셔츠와 흰색 치마 차림이었다. 아버지는 서둘러 이 섬에 돌아오느라 유일하게 챙겨온 회색 양복을 입고 넥타이까지 매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에 노란 카네이션이 들려 있었다.
두 분은 시내 저편에서 걸어오는 중이었다. 그리 더위를 타지 않는 아버지도 땀을 닦고 있었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는 태연하게 물었다.
“호세를 보러 간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나는 여전히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보러 가야겠다.”
어머니가 또 말했다.
“한참을 찾다가 겨우 어느 골목길에서 이 꽃을 샀다. 가게 주인이 하도 돈을 안 받으려고 해서 말도 안 통하는데 꽤나 오래 실갱이를 벌였단다. 그래도 안 받길래 얼마 내려놓고 도망쳐 나왔는데 돈이 얼추 맞나 모르겠구나.”
아버지가 이야기를 읊어 내려가는데도 나는 냉담하기만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부모님은 집에서 먼 길을 걸어왔을 뿐만 아니라 꽃을 사려고 얼마나 헤매고 다녔을지 모른다. 며칠간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고생하던 두 분이 그 연세에 어떻게 그 먼 길을 뙤약볕 아래 걸을 수 있었을까.
“제 차로 같이 가요. 너무 힘드시잖아요.”
“괜찮다. 우리는 아직 걸을 수 있으니 너는 볼 일 보러 가거라.”
어머니는 대뜸 내 제안을 거절했다.
“너무 멀어요, 언덕도 올라가야 하고. 차를 타고 가는 게 좋아요. 돌아오는 길도 있잖아요.”
“됐다, 됐어. 너는 네 일이나 하라니까. 우리는 길도 잘 아니까.”
아버지도 어머니를 거들었다.
“안 돼요, 날씨가 너무 더워요.”
나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걷겠다. 천천히 걸어가면 돼.”
어머니는 이 소리만 되풀이해 말했다. 내가 더 강권하면 금세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그녀의 어조에서 요 며칠간의 괴로움이 억제할 수 없이 묻어났다.
부모님은 말없이 거리를 통과하여 산을 오르는 국도 쪽으로 접어들었다.
나는 그들 뒤에 서서 선뜻 자리를 뜨지 못했다.
어머니는 손에 꽃다발을 꼭 쥐고 있었고 아버지는 구부정한 자세로 다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고 있었다. 눈부신 태양 아래, 슬픔이 노골적으로 그들의 두 어깨를 내리누르고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사방에서 끊임없이 행인들이 내 앞을 스쳤지만 내 눈은 조금씩 멀어지는 부모님의 뒷모습에 못박혀 있었다. 육체적으로 느껴지는 그 선연한 갈증이 내게 현기증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그곳에 서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내가 왜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지, 호세가 왜 사라져 버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욱이 꽃다발을 들고 누군가의 무덤으로 올라가는 부모님을 보면서 나는 내 눈이 믿어지지 않았다. 머나먼 이역으로 건너와 우리와 함께 살려던 두 분의 꿈은 죽음으로 가는 길 위에서 돌연 끝나고 말았다.
내 눈은 바짝 말라 눈물 한 방울 맺히지 않았다. 그냥 그곳에서 멍하니 과거를 떠올리고 있었다.
길 건너편 서점의 주인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이봐요, 뙤약볕에 그렇게 서 있으면 안 돼요.”
그에게 부탁했다.
“가게에 가서 물 좀 마시게 해줘요. 목이 마르네요.”
그는 내 팔꿈치를 부축하며 길을 건넜다. 나는 또 부모님을 돌아보았다. 처량한 두 그림자와 노란 꽃다발이 아직도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황혼녘, 호세 곁으로 돌아갔을 때 부모님의 카네이션이 다른 무덤에 꽂혀 있는 걸 보았다. 그것은 호세가 죽은 뒤, 옆에 새로 생긴 무덤이었다. 들리는 말로는 어느 할머니가 잠들어 있다고 한다. 두 황토 무덤이 묘비도 없이 나란히 있으니 그들이 착각한 것도 당연했다. 하물며 매장을 하던 그 시각, 부모님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 나 때문에 거의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묘지의 위치를 똑똑히 기억해 둘 수가 없었다.
“할머니, 이 꽃 드릴 테니 호세를 잘 보살펴 주셔요.”
나는 할머니를 위해 주변에 드문드문 뿌려진 모래흙을 잘 다독이고 성기게 꽂힌 꽃다발을 바로잡았다. 그러면서 어서 묘비를 세워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늙은 목수의 가게에서 나는 간단한 십자가 모양을 그리고 사방에 둘러 칠 울타리의 높이를 설명했다. 아울러 십자가 중간에 두꺼운 팻말을 달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 목수는 본래 우리 부부의 친구였다.
“묘비명이 길면 일주일 더 기다려야 하는데.”
그가 미안해하며 말했다.
“필요 없어요. 그냥 간단히 ‘호세 마리안 그로, 편안히 잠들다’라고 하면 돼요. 아래쪽에는 ‘당신을 그리워하는 아내가’라고 새겨주시고요.”
내가 조용히 말했다.
“다 만들면 직접 찾으러 와서 인부에게 작업을 시키렴. 제일 좋은 나무를 골라 새겨줄게. 또 인건비와 재료값은 내가 부담하도록 할 테니, 얘야, 기운 차리렴!”
목수가 거칠고 힘센 손으로 내 두 어깨를 꽉 잡았다. 그의 눈에서 물기가 반짝였다.
“돈은 치러야죠. 어쨌든 고마워요.”
나도 모르게 그를 향해 허리를 숙였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 시절, 밤에는 늘 부모님과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끊임없이 친구들이 집을 방문했고 내가 스페인어로 말하고 있으면 부모님은 침실로 물러났다.
창밖의 바다는 낮에는 파도 한 점 없이 잠잠했으며 밤에는 밝은 달빛이 호세의 생명을 앗아간 그 바다를 더욱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는 헤어진 지 20년 만에 맞는 첫 추석을 그렇게 보냈다.
십자가와 울타리를 가지러 가기로 한 날, 아침 10시에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침 식사를 하지 않은 듯했다. 주방이 썰렁해 보였다. 그는 나를 등진 채 베란다에서 그 도망칠래야 도망칠 수 없는 바다를 보고 있었다.
“아빠, 저 나가요.”
나는 그의 등 뒤에서 나지막히 말했다.
“내가 같이 가줄까? 오늘은 무슨 일을 하러 가니? 아빠, 엄마는 말이 안 통해서 전혀 도움이 안 되는구나.”
아버지의 그렇게 가슴 아파 하는 말을 들으니 함께 나가시자고 부탁드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확실히 그는 스페인어를 못하기는 하지만 같이 가 달라고 부탁드리면 기분이 훨씬 나아질 것이다.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오히려 제가 죄송해요, 이런 일이 일어나 버렸으니…….”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문을 열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아버지에게는 차마 인부를 부르지 않고 내가 손수 무덤을 꾸민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든 나를 따라 나서려 했을 것이다.
내게는 너무 무거운 십자가와 나무 울타리를 혼자 옮기고 호세를 묻은 황토흙을 다시 손가락으로 파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영원한 보금자리를 내 손으로 직접 마련하는 일이기에 기꺼이 큰 돌을 옮기고, 흙을 파고, 십자가를 박고, 울타리를 칠 것이다. 그것은 내가 호세를 위해 이 세상에서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그날은 유난히 바람이 거셌다. 차도 옆 제방에 파도가 부딪쳐 거의 하늘 높이까지 물보라를 흩뿌렸다.
나는 천천히 차를 몰았다. 제방 건너편 인도에도 바람이 몰고온 바닷물이 흥건했다. 그런데 해풍에 부식되어 거의 회색이 된 낡은 나무집들 앞에서 돌연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는 바람 속을, 안개 속을 홀로 쓸쓸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인도에는 어머니 한 사람밖에 없었다. 길에 익숙한 사람도 그런 악천후에 제방 옆 인도를 걸을 리가 없었다.
어머니는 겨드랑이에 지갑을 꼭 낀 채 슈퍼마켓용 대형 쇼핑백 두 개를 힘겹게 들고 있었다. 그것들이 얼마나 무거운지 어머니는 곧 주저앉을 것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천천히 한발 한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칼이 강풍에 흩날렸다. 때때로 눈을 가리기도 했지만 워낙 무거운 물건을 들고 있어 치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금 내 눈 앞에 외로이 걷고 있는 저 부인이 내 어머니란 말인가? 얼마 전, 풍성한 붉은 셔츠를 입고 호세와 나를 좇아 어린애처럼 야생열매를 따러 다니던 그 어머니란 말인가? 그녀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 그녀는 왜 정말로 그녀답지 않게 되었을까?
이 초췌하고 말 없는 부인은 두 말 할 필요 없이 몸에서 강물처럼 영혼이 흘러나간 상태였다. 그녀의 내면에서 깊디 깊은 비애와 억울함, 운명에 대한 복종과 눈물이 이야기책을 펼치듯 스스로를 남김없이 하소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에 단단히 쥐어진 쇼핑백은 어떠한 타격에도 땅에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차를 멈추고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엄마, 어디 갔다 오는 거예요? 왜 나는 안 부르고?”
“시장 보러 갔었다!”
어머니가 별 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슈퍼마켓 쇼핑백을 들고 이쯤 아닐까 하는 곳까지 걸어갔지 뭐냐. 거기서 사람을 붙잡고 쇼핑백에 적힌 글씨를 가리켰지. 날 슈퍼마켓 문 앞까지 데려다 달라고 말이야. 돌아가는 건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잖니. 예전에 호세와 네가 꽤 여러 번 차로 데려다줬으니까.”
어머니가 여전히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평생을 타이베이(臺北)에서 살면서도 길을 잘 몰랐던 어머니다. 그런 그녀가 지금 이역 타향에서 쇼핑백을 들고 손짓 발짓으로 길을 물으러 다니고, 아파트로 가는 소로를 몰라 제방 위로 날리는 물보라를 뒤집어 쓰고 있다니.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자책감에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호세가 떠난 뒤로 나는 한동안 부모님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기적인 슬픔에 젖어 있느라 곁에 부모님이 있는 것도, 그들 역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내가 통역을 해주지 않으면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다는 것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니 그들이 일용품이 떨어진 걸 깨닫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요즘 부모님도 아무 것도 드시지 않았단 말인가? 왜 나는 그런 걸 생각지 못했을까?
호세의 가족이 부랴부랴 장례식에 참석하러 온 몇 시간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진정제 주사를 맞고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약효가 듣지 않는지 계속 “호세, 돌아와요, 호세, 돌아와요!”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당시에는 아버지도 정신이 붕괴 직전에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나를 보러 들어오지 않고, 펑펑 눈물을 쏟던 내 절친한 친구, 글로리아에게 나를 맡겨두었다. 그녀가 의사이기 때문이었다. 그날 일을 떠올리면 주방에서 기름 끓는 소리가 났던 것 같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 어머니는 부들부들 떨면서 작은 프라이팬에 연이어 계란프라이와 볶음밥을 요리했다고 한다. 시어머니와 호세의 형, 누나들에게 식사를 차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식구들은 한바탕 울고 식사를 마치고는 서둘러 거리에 나가 면세품인 술과 담배, 시계, 카메라를 앞다퉈 산 뒤, 휭하니 비행기를 타고 가버렸다. 어머니 되는 사람조차 새 시계를 사서 챙겨가는 걸 잊지 않았다.
그 후로는? 그 후로는 주방에서 요리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부모님이 뭘 드시는 모습도 보지 못한 것 같다.
“차에 타요, 엄마. 짐이 너무 무거워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나는 목이 메었다.
“괜찮아, 네 일이나 보거라. 나 혼자 갈 수 있어.”
“안 된다니까요. 짐이 너무 무거워요.”
나는 다가가 쇼핑백을 빼앗아 들려 했다.
“시내에 뭐하러 가니?”
어머니가 물었다. 감히 무덤을 꾸미러 간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그녀가 따라나설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할 일이 있어요. 먼저 타시기나 해요!”
“할 일이 있으면 어서 해야지. 우리는 말이 안 통해서 뭐 하나 도움을 줄 수가 없구나. 너는 울 시간도 없이 이렇게 동분서주하는데 말이다. 어른 된 사람으로서 우리는 마음이 참 괴롭단다. 에고, 네 꼴을 한 번 보렴, 입술이 다 갈라졌지 않니. 그런 몰골을 하고 요까짓 무겁지도 않은 짐을 갖고 다투려는 게냐.”
이런 말을 하면서 그녀는 금세 눈시울을 적셨다.
어머니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내가 쫓아올까 봐 두려운지 강풍 속에 뛰어들어 잰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어머니를 쫓아가 쇼핑백에서 무거운 생수병들을 덜어냈다.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넌 척추도 좋지 않잖니? 어서 그만두지 못해!.”
이때, 나는 심장이 쿵쿵 뛰면서 호흡이 곤란해지고 갈비뼈 근처가 쿡쿡 쑤셔왔다. 나는 어머니를 보내고 천천히 차 안으로 돌아와 운전대 위에 엎드렸다. 그리고 아픈 부위를 급히 손으로 눌렀다. 하지만 내가 한숨을 돌렸을 때는 이미 어머니가 멀리 가 버린 뒤였다.
나는 차 안에 앉아 있었고 차는 도로 중앙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백미러 속에 아직도 어머니의 뒷모습이 비쳤다. 그녀의 두 손은 물건의 무게로 금세 땅에 닿을 것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한발, 또 한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가 푸른 보도블럭을 한장한장 밟을 때마다 나는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녀는 비틀비틀 간신히 걸으면서도 끝내 손에 든 짐을 내게 넘겨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하루를 살아도 어머니는 단 일초라도 내게 괴로움을 끼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사랑이 도대체 뭐길래 이토록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일까. 그것을 붙잡을 수만 있으면 죽어도 포기하려 하지 않고, 또 죽어도 달가와한다.
아빠, 엄마, 이번에도 이 못난 딸이 두 분께 상처를 입혀 드렸어요. 얼마 전에야 겨우 말씀 드렸는데, 다시는 속상하지 않게 해 드리겠다고. 그런데 그렇게 약속을 해놓고도 또 다시 두 분의 믿음을 저버리고 말았군요. 그때 더 굳게 마음을 먹었어야 했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저의 두 수호천사여! 두 분은 만 리 먼 곳에서 저를 지켜주려 이곳, 북아프리카로 날아오셨죠. 두 분의 늙고 딱딱한 날개는 언제나 휴식을 취할 수 있나요?
끝내 눈물이 나왔다. 나는 아직 산송장은 아닌 셈이다. 아빠, 엄마, 지금 편안히 주무시고 계시죠? 그러면 저, 두 분 몰래 실컷 울게 해주세요.
진실한 감정이 흘러 넘칠 때, 이 딸은 늘 두 분을 등지고 있네요. 두 분이 제게 깊은 사랑을 보여주실 때도 저는 공교롭게도 매번 두 분의 뒷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언제 얼굴을 맞대고 서로를 숨기지 않을 수 있을까요? 글 속에서 몰래 표현하는 대신, 저는 언제 비로소 이 진심을, 유한한 우리의 삶 속에서 두 분께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요?
강자인 (Jain Kang) 박연미 방현희 이수경 배성혜 김진방 (Jinba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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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자

이런 깨알같은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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