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26

[란코프] 90년대말 북한 대기근과 아사자

[란코프] 90년대말 북한 대기근과 아사자


[란코프] 90년대말 북한 대기근과 아사자

란코프 ∙ 한국 국민대 교수
2013-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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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부터 북한 사회가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수십 년 동안 국가 주는 배급을 받아 살아왔던 북한 주민들이 갑자기 국가가 준 배급표로도 식량을 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참혹한 대기근의 시작이었습니다.
북한 대 기근은 95년부터 아주 심해졌고 200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극복되었습니다. 5년동안 굶어 죽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얼마 정도나 될까요? 최신 연구를 보면 이것에 대한 믿을 만한 추정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90년대 말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으로 알려진 대기근에 아사한 사람들의 규모에 대한 추정이 너무 많았습니다. 요즘에도 대기근 당시 북한에서 2백만 명에서3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가끔 들려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통계는 믿기 어렵습니다.
2백만 명,3백백만 명 설의 기원을 보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90년대 말에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는 중국 내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북한 식량상황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그들은 탈북자들이 본래 살던 지역에서 사람들이 어느 정도 굶어 죽었는지 조사했고 이를 토대로 북한 전역에서의 사망률을 계산해서 아사자들의 숫자가 2백만에서 3백만에 달한다고 추정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중국에 있던 탈북자들은 북한에서도 최악의 식량난을 겪었던 함경남북도 출신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까 97~98년의 함경도지역의 아사자 숫자가 북한전체의 대표적인 아사자 숫자는 아니었습니다.
둘째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90년대 말 북한당국이 기근규모에 대한 비밀조사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비밀자료에도 아사자의 숫자가 100만 명에서 최대 이백만에 달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북한 당국자들이 아사자를 조사했을 때 정확한 통계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인민반장들을 통해서 등록주소지에서 없어진 사람 즉, 행방불명 된 사람들을 다 아사자로 계산했습니다. 이것도 과장된 통계숫자를 가져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자기집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들은 아사한 것이 아니라 탈북하거나 꽃제비 아니면 장사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나라의 학자들은 새로  통계조사를 실시하고 90년대 말 북한기근의 규모에 대해서 더 믿을 만한 주장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학자들은 당시 굶어 죽은 사람들이 적게는 60만 명, 많게는 100만 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남한학자인 이석박사는 아사자의 숫자가 58만명에서 98만명정도로 추정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독일 학자 2명은 최신자료를 분석함으로써 고난의 행군 때 굶어 죽은 사람들이 적게는 25만명, 많게는 49만명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바꿔 말해서 고난의 행군 때 아사자들이 50~60만 명 정도라는 것이 사실에 가까운 통계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은 그동안 주장해 온 2백~3백만명 보다 훨씬 낮은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의 행군은 아시아 근,현대사에서 제일 참혹한 기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 전체 인구의 2%가 굶어 죽은 것입니다. 아시아의 역사에서 지난 50년 동안 전체인구의 2%가 굶어 죽는 대기근을 겪은 나라는  고난의 행군을 겪은 북한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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