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1
“적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예비역 4성장군 김진선씨의 <산 자의 전쟁, 죽은 자의 전쟁>
“나는 베트남의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싸운 적들에게 찬사를 보낸다.”(155쪽)
뜻밖의 글이었다. 베트남전 참전군인이며 예비역 대장 출신이 쓴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내용이었다. “당시 내가 베트남의 역사와 약소국의 서러움과 그들이 투쟁하는 목적을 알고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나는 부하들과 함께 미국이 주는 수당을 받고 C레이션을 먹으며 중대원들과 매일 오락과 체육으로 소일하며 중립을 지켰을 것이다.”(157쪽)
최근 베트남전 참전 고백수기 <산 자의 전쟁, 죽은 자의 전쟁>(중앙 M&B)을 펴낸 김진선(61)씨. 그는 육군 보병 7사단장, 수방사령관, 육본 참모차장, 2군사령관 등을 지낸 한국군 수뇌부 출신 답지 않게 베트남전에 대한 파격적인 생각들을 책에 담았다.
그러나 그는 사실 베트남전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맹호사단의 용맹한 중대장이었다. 월맹군이 그의 목에 현상금을 걸 정도였다. 이책의 1부 ‘광란의 전쟁터에서’엔 그 전장의 상황이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동물사냥보다 더한 쾌감 속에 인간사냥을 했다는 그의 회고는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떻게 ‘적’에게 헌사를 보낼 수 있었을까. 2부 ‘베트남, 그 저항의 역사’는 전쟁의 광기가 걷힌 뒤 이성의 눈으로 다시 베트남을 본 결과다. 전역 직후인 94년 베트남을 다녀온 그는 태풍이 휩쓸고 간 암흑투성이 하노이 공항에서 거대한 의문에 휩싸인다. “이 보잘것없는 나라가 어떻게 중국과 프랑스, 미국과 싸워 이겼을까.” 베트남전 당시 자신의 중대를 상대로 죽음을 초월한 8시간의 사투를 홀로 벌였던 어느 베트콩에 대한 기억도 한몫을 했다. 분명히 명령과 복종관계를 뛰어넘는 숭고한 뭔가가 있을 거라고 그는 일찍이 생각했던 것이다.
호치민기념관과 디엔비엔푸 전투기념관, 구치터널을 둘러보면서 그 의문에 답해보려 했던 그는 귀국하자마자 베트남 관련서적들을 탐독했다고 한다. 보 구엔 지압 장군의 <베트남 민족주의> <베트남의 역사>, 웨스트 몰랜드가 쓴 <베트남 전쟁>, 몽고메리 원수의 <전쟁의 역사>… <전투전사> <사이공, 최후의 날> 등. 그리고 결론을 얻었다. “베트남전쟁은 이념보다는 민족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내셔널리즘이 강하게 작용했고, 거기에 공산주의라는 정신적 요인이 가미돼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그는 ‘베트남의 이승만’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고 딘 디엠을 서슴없이 ‘괴뢰정권’이라고 규정했다. “나는 링컨과 호치민을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는 말도 했다.
“우리의 교만이 약소국의 정신을 몰라보게 했다”는 김진선씨. 그의 책은 베트남전 진실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참전군인 출신의 저작 중 하나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한겨레21 2000년 07월 13일 제3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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