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26

장수좋은마을_이남곡 님

장수좋은마을_이남곡 님

12/1/2014





좋은 마을에 사는 좋은 아저씨


우리 사회는 전쟁과 분단을 겪은 아픔으로 여전히 좌우 흑백 논리에 의해 편이 갈라져 있고 소통의 부재로 옆에 사는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산다. 돈이면 무엇이든 된다는 생각이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혀 가족과 형제와도 돈 때문에 법정에 서기도 한다. 무엇이 문제인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 간 걸까? 무소유공동체에서 생활하시다 장수 좋은 마을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계신 인문운동가 이남곡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글.정지선/ 사진.나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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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를 소개할 때 인문운동가라고 소개해요. 사람들의 의식과 문화를 변화시키는 운동이에요. 저는 2가지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어요. 첫 번째는 무지의 자각입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실을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자연과학에서 배우듯이 자기 감각기관과 자기 뇌로 들어오는 정보로부터 판단할 뿐입니다. 불교에서는 화두의 테마가 ‘모른다’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자각이 필요해요. 그러면 아집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연찬문화연구소에 핵심이에요. 사물은 분리 독립되어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의 인식입니다. 경험적으로 보는 것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이 따로 떨어져있는 분절된 세계에요. 그런데 깊이 들어가 보면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에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무분절의 세계에요. 무분절 세계를 통과해서 보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을 아는데, 이것이 분절2의 세계입니다. 무분절을 통과한 분절2의 세계에 도달하면 증오와 분노에 대해 자유로워 질 수 있다고 봐요. 대립 갈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미움이나 분노에 의해 촉발되는 것을 넘어서게 되죠.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노동자, 자본가도 치열하게 대립을 하는데 하나의 세계에서 출발한 삶이라는 인식을 하면 달라질 겁니다. 저는 그것을 인문운동이라고 봅니다. 결국에는 정치로 해결 할 수 밖에 없는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인문운동의 토대 위에 정치란 꽃도 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2. 제가 5살 때, 아버지는 좌익으로 6.25사변 중 돌아가셔서 얼굴이 기억이 안 납니다. 연좌제가 있었던 때였고 진짜 가난하게 살았어요. 축복받은 삶이 아니었죠. 어머니가 홀로 되신 후 막내가 5살 때 죽었고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셨어요. 그리곤 자식들 교육을 위해 저와 제 여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 오셨어요. 어머니께서 식모도 하고 이런저런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제가 공부는 잘했기에 어머니께서 저를 제일 좋은 경기고등학교에 보내셨어요. 엄청 힘들게 공부해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고 사법고시를 준비 했습니다. 예비고사가 있었는데 1학년 때 패스를 했었어요. 당시 학생들은 반유신과 민주화를 목표로 하는 지하모임에 들어가 공부도 하고, 유인물도 만들고 하는데 많이들 함께 했어요. 저도 2학년 되던 때에 과학적 사회주의 단체에 들어갔는데, 사회주의가 붕괴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의 변화와 함께 가야 하는 것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2학년 때 그 당시 서울대학교에 북측과 아무 관련이 없는 과학적 사회주의 단체에서 활동을 했는데, 단체의 활동이 제가 생각하고 있는 운동과 달라서 78년에 손을 땠죠. 지하 비밀단체여서 그만 두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1년 후 79년에 난민전 사건(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의 약칭으로 유신체제를 비판하였고, 청년학생위원회를 조직함)이 터지게 되면서 그 전에 활동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 사건이 제 삶을 결정하게 된 중요한 기점이 됩니다.

3. 아버지께서 사회주의자였고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신 그런 요건들이 사회 문제에 눈을 뜨게 했겠지요. 하지만 사회주의자 아버지로 인해 이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객관적으로 보면 연좌제 요건이 고시를 포기하는데 영향을 줬을지는 몰라도 그런 상황 속에서 권력 지향적이고 돈에 욕심을 더 낼 수도 있는데,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진 동기는 저의 배경이나, 복수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유로운 선택들을 한 것 같아요. 저는 북한이 개인숭배를 바탕에 두었기 때문에 그것이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혁명은 사회 제도를 바꾸는 것인데, 제도와 구조를 바꾼다고 변혁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요. 사회주의 안에서 폭력도 봤고요.

감옥에 있을 때 우주적 진화에 대해 얘기하는 테야르 드 샤르댕이라는 고고학자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 시절 새로운 인간, 새로운 사회, 새로운 문명이 함께 변화되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그때 ‘혁명에서 개벽으로 라는 말’이 그 세가지를 다 포함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흐름이 제 삶에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습니다.


4. 40대까지는 불교사회연구소를 통해 이념을 정리해 본 시기였다면, 50대에 제가 가진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꿈을 실천해 보고자 했어요. 새로운 문명의 틀 속에서 인간과 사회가 동시에 변화하는 것을 실험해 보고 싶었을 때 만난 운동이 야마기시 운동이 '야마기시 공동체 : 무소유, 무아집의 삶을 몸으로 보여주며 살아가는 실현지(實現地)’에요. 제 화두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었고 언젠가 도래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실험을 원하여 가족과 함께 합류하게 되었어요. 울타리가 없는 일체사회로 보편적인 실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8년을 생활하면서 보니 아직 사람들은 무소유, 무아집에 대해 받아들이고 실현할 준비가 안되어 있었고, 안 되니까 부자유(不自由)가 생겨나고, 그 부자유를 표현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서 표현 못했기에 허위의식이 생겨나더라고요. 부자유와 허위의식이 사회를 확산시키는데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했어요.

사회주의도 그래서 실패한 거에요. 시스템을 작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자본주의를 철폐시킨 것은 소유제도를 철폐시키는 것이지, 새로운 인간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에요. 물적토대, 하부구조를 바꾼다고 상부구조가 바뀌는 게 아니에요. 사람의 아집을 건드리는 게 시스템이기 때문에 서로 간섭하거나 침범하지 않는 거리가 필요합니다. 동업도 하다 보면 관계가 악화 되잖아요? 자유로운 관계에서 사이가 좋아야 하고 사이 좋게 지내면서 발전된 시스템까지 만들어 나갈 수 있으면 좋지요. 그래서 물적 토대가 아닌, 인문적 토대를 하부구조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형성 되었을 때 새로운 사람, 새로운 사회,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5. 연찬문화연구소는 야마기시를 만나서 연찬이라는 의사소통방식을 만들게 되었어요. 연찬의 핵심은 ‘내가 아는 것이 있느냐? 없다!’ 무지의 자각입니다. (吾有知乎哉? 無知也) 그러나 ‘누구나가 물어오면, 텅 빈 데서 출발해서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양끝을 두드려서(다 검토해서) 샅샅이 살펴보고 밝혀보겠다.'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我叩其兩端而竭焉)는 것이 연찬의 핵심입니다.

첫째는 앞에 설명했던 우리는 아는 게 없다는 무지의 자각이에요. 하지만 대부분은 자기가 아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에 기초하고 있어요. 단정해 버립니다. ‘사실이 그러니까’라고 생각합니다. 단정의 문화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소통은 어려워요.

둘째는 서로 모르기에 탐구를 해서 끝까지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내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알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아집이 생기게 됩니다. 텅 비운다는 것은 ‘자기가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 틀렸다는 것을 자각하고 인정하면 되요. 연찬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같은 방향에서 탐구하는 거에요. 누가 옳은가 그것만 내려놓으면 모두가 가진 지식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거지요. 함께 찾아가는 과정, 탐구하는 과정을 연찬이라고 하는 거에요. 제가 말하는 인문운동은 의식하고 사회 실천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연찬문화연구소에서는 협동조합과 마을만들기, 좋은학교 만들기 등에서 새로운 소통방식을 접목하려고 하고 있어요.


7. [논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이란 책은 마을에 사람들이 들어오기 전에 펴낸 거에요. 마을에서 함께 강독한 사람들도 들쑥날쑥 했습니다. 지속적으로 한 건 아내와 저 둘이에요. 나는 이상주의자들이 어떤 시도를 할 때 사람들의 실태에 바탕을 두고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의무감, 사명감, 소명의식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보다는 진정한 내면의 기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이 하든 안 하든 좋아서 하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할 때 지혜가 필요해요. 따뜻한 거리를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한데 사람들이 그것을 잘 못 해요. 좀 가까우면 뭘 같이 도모하려고 하고, 서로 침범하려고 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이상에 동참하게 하고 싶어해요.

8. 전 원래 변혁을 생각했던 사람이라 끊임없이 변화에 대해서 생각해요. 진화와 진보를 사람들이 따로 보는데, 전 다르지 않다고 봐요. 변화라고 하는 것은 인간 진화의 핵심내용이에요. 인위적으로 막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진화해 가고 있는 인간과 사회의 본질적인 내용이라는 거에요. 그것이 안 이루어지면 침체하게 되어있고 퇴보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해야 해요.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난 우리들은 대학강의를 듣는 느낌이었다. 무분절의 세계에선 너와 내가 하나로 연결되어있다는 삶에 대한 강의였다. 내가 가진 아집은 무엇이었을까 고민하게 만들었고, 어떻게 서로 간섭하거나 침범하지 않는 거리를 가진 자유로운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손수 지어주신 따뜻한 밥을 배불리 먹고 나니, 인문운동가를 만나러 좋은 마을에 종종 놀러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좋은 아저씨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6. 좋은 마을에는 처음에는 저와 관계 있는 사람들이 와서 살았는데, 누가 와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해요. 인간은 누구나 내면 깊은 곳에 숭고지향성이 있다고 봐요. 사람에게는 군자성과 소인성이 다 있어요. 소인적 요소는 동물적 자기 중심성 입니다. 저는 그것이 변하지 않는 인간의 실태가 아니라고 봅니다. 인간은 소인에서 군자로 진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봅니다. 군자성과 신성은 여러 가지 때문에 덥혀있어요. 물질적 궁핍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인간이에요.

아직은 완전한 무소유를 실천할 단계에 현실여건이 와있지 않다고 판단하고 아내(故서혜란; 유기농 먹거리 운동 1세대로서 한살림과 여성민우회를 통해 생협운동을 생활의 영역까지 확장시킴)와 함께 1년여의 준비 끝에 2004년 전북 장수로 내려왔어요. 자유노동을 중시하는 마을 만들기와 장류사업(된장, 고추장 등을 만들어 파는 생협 생산자 활동)을 하고 있어요. 이 마을에 두 가지 제안해 놓은 것이 자유노동과 마을지갑 만들기입니다. 자유노동은 품앗이하고 달라요. 둘 다 철저히 자발성에 기초하는 겁니다. 아무 대가 없이 하는 게 자유 노동이에요. 누군가에 의해 도움(자유노동)을 받았을 때, 내가 그 사람을 도와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면 부자유가 발생하기 시작한 거에요. 다른 사람에게 ‘마을의 지갑에 소득의 1%를 넣어라’ 얘기해도 안 되요. 자칫하면 자유노동, 마을지갑 만들기도 시스템이 되어 버릴 수 있어요. 스스로 자각에 의해 해야 합니다. 자각에 의해 실천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은 왜 안 하지'라는 마음을 갖고 있어도 진짜 자각한 것이 아니에요. 인문적 토대가 갖춰져야 변화된 시스템이 작동될 수 있어요. 제가 지금 그려보는 사회적 진보에 대한 생각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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