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21

[이북 방문기]9차례 연재물 수록

이야기방 > 북한이야기 > [이북 방문기]9차례 연재물 수록



[이북 방문기]9차례 연재물 수록

작성일 : 08-09-27

글쓴이 : minjok
조회 : 4,470

민족통신 편집인 노길남 박사는 "북녘 동포들은 모두가 한 식솔이었고 전체가 <일심단결>로 굳게뭉쳐 있었다. 그래서 이북 사회에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가 나 붙어 있다. 이북 동포들은 또 지도자, 당,군민이 하나로 된 사회이다. 그래서 지도자의 마음이 군민의 마음이고, 동시에 당의 마음이 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9.9절 60주년을 전후하여 2주 동안의 방북취재를 통해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관찰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9.9절 60주년 방북취재-9>를 마지막 연재로 <북녘동포 모두가 한 식솔>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을 포함하여 연재물들을 차례로 여기에 소개한다. 제목 위를 짤각하여 열람하기 바랍니다.[민족통신 편집실]

[9.9절 방북취재-9]북녘 동포 모두가 한 식솔

[9.9절 방북취재-8]북녘에서 느낀 <통일염원> 열풍

[9.9절 방북취재-7]북녘 동포들 대부분 <인테리>

[9.9절 방북취재-6]<백두산은 역시 혁명의 성산>

[9.9절 방북취재-5]진짜<예수>는 북녘에 있었다

[9.9절 방북취재-4]이북의 정보안보능력 놀랍다

[9.9절 방북취재-3]북부조국은 <예술문화 강국>이다

[9.9절 방북취재-2] 강성대국 건설 2012년 목표에 총력

[9.9절 방북취재-1]북녘 동포들 신심에 불타고 있다

Links do not work.

======================
재미동포전국연합회



북부조국은 창건(9.9절) 60주년 기념일 전후하여 전국이 축제분위기로 들끓었다. 사진은 9.9절 행사 준비에 한창인 장면으로 8월30일 주체사상탑 꼭대기에 올라가 인민대학습당을 바라 본 <김일성 광장>에서의 민간인 열병식과 횃불행진 종합연습 광경-민족통신 자료


[9.9절 방북취재-1]북녘 동포들 신심에 불타고 있다.






8월26일 김일성 광장에서 종합연습을 끝내고 9월9일 행사에 참가한 민간인 열병식 모습
[평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9.9절을 전후 하여 이북동포들의 모습은 안정된 표정이었으며 강성대국 건설에 불타는 신심을 보였다. 미사일을 포함하여 핵 보유국으로 부상한 이북 동포들은 만나는 사람들 마다 “그 어떤 제국주의자들의 침략도 분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타내면서 “이제는 경제강국을 위해 김일성 수령님(주석님) 탄생 100돌이 되는 2012년을 향해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어 젖히는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모습은 기자가 북부조국을 2주일 동안 방문하면서 각계 각층의 동포들을 만났고, 량강도, 평안남도, 황해북도, 개성특별시, 수도 평양특별시 지역 주민들을 만나며 관찰한 소감이다.

북부조국 창건 60주년을 전후한 시기에 해외동포 기자들과 함께 지난 8월27일부터 9월3일까지 방북여행을 하고 중국 심양으로 나와 중국지역에서 이틀간 중국 내 조선족 기자들(료녕일보)과 만난 다음 9.9절 취재를 목적으로 9월6일 다시 이북을 방문하여 일주일 동안 이북의 여러 곳들을 방문했다.

이번 9.9절 행사에는 재일동포 5백 여명, 재중동포 2백 여명, 재미동포, 유럽동포, 러시아 동포, 카나다 동포, 대양주 동포 등 1백 여명 등 총 8백 여명이 참가했다. 해외동포들은 고려호텔을 비롯하여 창광산 호텔, 해방산 호텔 등에 분산하여 머물면서 금년부터 다시 시작한 <번영하라, 조국이여>라는 집단체조 공연과 <아리랑>대 집단예술 공연, 인민소년문화회관에서의 소년소녀들의 종합공연, 백두산 지역 참관, 김일성화와 김정일화 전시장 참관, 묘향산 지역 참관, 개성지역 참관(개별), 종합예술공연(개별) 등을 감상했고 가족상봉을 포함하여 해외동포 기업인들, 해외동포 체육인들의 부문사업 등을 전개했다.

해외 동포들은 북녘동포들이 강성대국을 향해 “신심에 불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해외동포들은 특히 김일성 광장에서 진행된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소년 소녀들이 함께 참가하여 진행한 이른바 민간인들로 구성된 로농 적위대, 붉은 청년근위대, 중학교 5,6 학년 소년단 학생들(남녘의 고등학교 2,3학년)도 참가한 민간인들의 열병식과 이어서 진행된 횃불시위 행진을 관람하며 모두가 입을 벌일 정도로 놀람을 금치 못했다.

해외동포들이 앉은 자리에는 1백여 나라들의 외교사절들도 같이 했다. 기자가 만난 외교사절들과 해외동포들은 9.9절 60돌 열병식에 나온 참가자들은 “인민군이 아닌데 어떻게 기계처럼 움직이는가”라고 입을 모으면서 “이들 행진이 일종의 민간인 열병식인데 세계 그 어떤 군인들의 열병식 보다 훌륭하다”고 감탄을 연발했다.

기자는 지난 8월30일 해외기자들과 방북한 기간에 이 열병식에 참가한 노농적위대 참가자들과 붉은청년근위대 참가자들이 김일성 광장에서 종합적으로 훈련하는 모습들을 관람했다. 이들이 정규군인들이 아니고 일종의 민병대와 같은 민간인들이었기에 놀랐다. 이 훈련 대열에는 김일성 종합대학 학생들과 김책공업대학 학생들을 비롯하여 여러 대학 학생들도 참가하였다. 한 간부는 “이들 청년학생들로 묶어 진 붉은 청년근위대는 5백만 명을 자랑하지만 지금은 6백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번 참가자들은 평양시 뿐만 아니라 전국 9개도에서도 참가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외국인들은 이들의 열병식이 있을 때 마다 경탄했다고 말한다. 이 열병식은 북녘 동포들의 <전인민 무장화>와 <전국요새화>를 과시하는 행사로 보였다.

이 열병식이 끝나고 휴식시간에 이어 같은 장소에서 곧바로 평양시 횃불행진이 진행되었다. 수십만 참가자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60주년을 맞아 횃불로 글자 만들기와 색갈 변화로 그림 만들기 등으로 구성된 횃불시위 또한 관중들의 놀람을 자아냈다. 이 행사의 주제는 한 세기에 두 제국주의를 타승하였다는 역사를 형상화하면서 글자만들기를 통해 <해방>, <군사강국>, <사상강국>. <자력갱생>, <선군정치>, <일심단결>, <수령옹위>, <군민일치>, <경제력>, <농업>, <경공업>, <강성대국>, 국제관계 원칙을 상징하는 <자주>, <평화>, <친선>의 글발, 그리고 종장 부분에서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 모형과 함께 6.15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을 형상한 글발들이 횃불시위 마지막을 장식했다.

기자가 머물렀던 2주 동안의 방북기간 이북 전역은 축제로 들끓었고, 이북동포들은 이제부터는 경제강국을 건설하여 오는 2012년을 목표로 강성대국을 이루자는 불타는 신심을 역력하게 보여주었다.



횃불행진 행사를 위해 김일성 광장으로 향하는 평양시민들 모습-민족통신 자료



열병식에서 5백만 붉은청년근위대 여성들이 연발고사포를 갖고 행진하는 모습



9.9절을 전후하여 평양 시가지 건물들과 도로들이 새롭게 단장되고 있다. 사진은 105층 류경호텔 상층부가 오랜만에 건축되고 있는 모습-민족통신 자료



[출처 : 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2008-09-15]
----



<군사강국>과 <사상강국>을 완효하고 경제강국을 통해 강성대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북동포들은 2012년을 목표로 정했다. 사진은 8월27일 이른 아침 대동강변에서 바라 본 주제사상탑과 해돋이 광경-민족통신 자료

[9.9절 방북취재-2] 강성대국 건설 2012년 목표에 총력




[평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이북 동포 누구를 만나도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을 맞는 2012년에는 반드시 강성대국을 이루고 말겠다는 굳은 결심을 보인다.


9.9절 기념행사 중 <군사강국> <사상강국>의 <백승>이라는 글발을 만들며 횃불시위를 위한 밤행사의 종합연습 광경-민족통신 자료


그 결심은 날이 갈수록 가시화 될 전망이다. 왜냐하면 <군사강국>과 <사상강국>을 이루어 놓은 이북은 남은 것은 경제강국이다.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북은 40억 톤의 마그네사이트, 160억 톤의 유연탄과 45억 톤의 무연탄, 2,110만 톤의 아연, 290만 톤의 구리, 50억 톤의 철, 200만 톤의 고령토, 세계 매장량을 합친 것 보다 많은 자연우라늄 등 다량의 지하자원을 갖고 있고, 칠보산, 금강산, 백두산 등 다양한 관광자원을 소유하고 있다. 또한 세계 제1의 집단예술을 개발하여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온 것도 관광자원의 한 부분이 될 수 있고, 그 동안 군수산업을 통한 중공업과 첨단무기 기술을 개발한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술을 갖고 있어 이것을 민수산업 쪽으로 전위하게 되면 경공업은 물론 국제무역을 통하여 경제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 이북은 이미 자체 기술로 지난 1998년 인공위성 <광명성>을 날린바 있다. 그리고 질 높은 노동력과 두뇌를 이용한 미래상품들을 만들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 국제사회는 조선반도, 한반도를 시작으로 시베리아로 뻗는 철도를 비롯하여 유럽연결철도, 아시아로 이어지는 철도에 의하여 세계적 물류체계(시스템)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조국반도에 경제적 관심을 돌리고 있다. 이 물류체계가 창출할 경제가치는 엄청나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진단이다.

그 동안 이북 당국이 경공업을 개발할 줄 몰라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나라의 주권을 생명처럼 여기기 때문에 그것을 보호하기 위하여 온갖 희생을 감수하면서 사력을 다하여 노력하여 온 것이 바로 북부조국이다.

이북동포들은 다시는 제국주의자들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에 기초하여 그 동안 먹을 것을 줄이고, 입을 것을 절약하며 때로는 고난의 행군 길을 걸어 오면서도 조금도 흔들림 없이 전 세계가 주목하는 <군사강국>, <사상강국>을 건설하였다. 이 때문에 경공업과 함께 경제강국을 이루는 문제가 연기되어 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금 이북동포들은 정치사상적으로 혼연일체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은 하나같이 <사상강국>을 자랑하며 <일심단결>을 자부하고 있다. 전체는 하나를 위하고 하나는 전체를 위하는 세계 제1의 단결된 나라로서 지도자, 당, 군대, 인민들이 강철같이 똘똘 뭉쳐있다. 그래서 이들은 <일심단결>된 힘이 자신들이 가진 미사일이나 핵 무기보다 더 강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북 동포들은 또 미사일과 핵 보유국으로 <군사강국>을 이뤄냈기 때문에 그 어떤 제국주의의 침략행위도 저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쳐있다. 그래서 이들은 이제부터 경제강국을 위해 힘을 넣을 수 있는 여유를 보인다. 지금 지구촌에서 이처럼 군사강국을 이룬 나라는 10개국에도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강대국들은 자기들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이 미사일이나 핵 무기 등 첨단기술 무기들은 절대로 만들 수 없도록 강압하면서 이른바 최고의 첨단무기 독점권을 행사하며 다른 나라들을 간섭하고 지배하며 자기 휘하에 두어 종속화 해 왔다. 그러나 이북 지도자들은 절대로 이런 강대국들의 횡포를 용납하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서방국가들뿐 만 아니라 냉전시기에 소련 공산권이나 중국 공산권 나라들 사이에서도 언제나 독자노선을 걸어 온 나라가 바로 북부조국이다. 소련과 그 위성국들이 붕괴되었으나 북부조국의 이른바 주체사회주의가 무너지지 않고 건재하여 온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도 몇 가지 요인들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북동포들은 이미 식량주권을 위해 토지개혁을 비롯하여 물 문제, 종자혁명, 2벌 농사 등 주체농업의 기초를 다져 놓고서 강성대국을 이룬 후에도 식량문제만은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는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9.9절 행사 연습을 나온 중학교 학생들(강반석제1중학교)이 이른 아침 대동강변에서 휴식시간을 이용해 공부하는 모습-민족통신 자료

오늘의 이북동포들이 지향하는 사상철학의 근저에는 <위대한 김일성 수령(주석)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북부조국의 간부들은 이에 대해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국방위원장)의 정치철학도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주석)의 정치철학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주체사회주의 나라, 북부조국의 미래에도 이 정치철학은 변하지 않는다고 이북동포들은 설명한다. 이 때문에 이북 동포들은 지금의 <일심단결>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심이 된다고 해설한다. 김일성 주석의 집권시기에는 북부조국의 중심은 김일성 주석이었다. 그의 서거 후 북부조국의 핵심적 중심은 곧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승계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사회주의의 창시자인 초대 지도자가 세상을 떠났어도 이민위천 사상으로 다져진 그의 정치철학은 후계자에게도 그대로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북부조국이 구현하여 온 주체철학과 이에 기초한 혁명철학과 맥을 잇고 있다. 북부조국은 이미 전민 주체사상화 되었고 전민 인테리화 운동을 통하여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단결단합의 나라가 되었다. 그 결과 지금의 <일심단결>은 혁명1세대에 의해 천거된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해 그대로 구현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북의 혁명전통은 주체철학의 창시자이며 주체사회주의의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정치사상으로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그 철학은 지속적으로 대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도 김일성 주석의 항일혁명 정신과 그 업적, 그리고 대미결전을 통하여 이룩한 성과에 기초하여 내 세운 독창적인 정치방식이다. 이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위대한 김일성 주석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지적하면서 주석의 위상을 그대로 놔두고 주체사회주의의 정신적 기초로 다져 놓았다고 분석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신을 주석으로 내 세우지 않고 당 총서기, 또는 국방위원장으로 북부조국을 운영하여 온 것도 바로 김일성 주석의 혁명전통을 그대로 이어가자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것도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과의 차이점들 중에 하나로 꼽힌다.

북부조국은 또한 다른 나라들과의 대외관계에서도 자주성을 기본으로 하여 평화와 친선의 원칙에서 관계하는 것을 기본 정책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서방 국가들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비동맹국가들(불럭불가담 나라들) 사이에서 가장 모범을 보여 왔다.

북부조국이 지금까지 사회주의권 나라에 속했지만 중소분쟁시기에도 그 어떤 나리에 구속되지 않고 자기 길을 걸어왔고, 대미 외교 전에서도 승승장구로 백전백승의 기백을 발휘해 왔다. 이북 당국은 빈말을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최고 지도자가 결단하면 반드시 해 내고 마는 것이 북부조국의 특징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조미외교관계 충돌>에서도 구체적으로 증명된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1)프에블로 나포사건(1968.1.23)에서도 미국의 린든 비 죤슨 대통령이 사죄를 해야 했고
(2)미정찰기(E-121)침범사건(1969.4.15)으로 이북이 미국정찰기를 공대공미사일로 추격시켜 33명의 미군이 즉사했는데도 닉슨 대통령은 항공모함 4척으로 위협하는 척하다가 끝내는 아무 실효 없이 끝난 사건이 있었고,
(3)미루나무(포플러) 벌채사건(1976.8.18)도 포드 대통령이 집권한지 3년째 되든 해 미군병사 30여명이 공동경비구역에 있는 미루나무를 도끼로 자르려고 하자 4명의 이북병사가 맨손으로 달려들어 못하게 하자 미군 한 명이 던진 도끼를 받아가지고 막바로 미군을 향해 던지자 그것이 명중하여 2명의 미군장교가 즉사하고 4명의 이북병사들이 태권도로 나머지 28명을 미군들을 옆 차기등으로 물리쳐 미군들이 도망간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미국은 폭격기와 항공모함 <미드웨이>를 들이대며 위협하였으나 북을 공격하지는 못하고 이북이 유감(regret)이라는 정도로 끝낸 사건,
(4)조미간 최초의 핵 대결(1993-94)에서도 클린턴 대통령은 말로만 1만 명 미군증파니 하며 위협하다가 결국에는 93년 6월2일 뉴욕교섭 통해 94년 10월21일 제네바합의서에 양자가 서명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뉴욕교섭 몇 일전인 93년 5월29일 이북이 하루에 지대지 미사일 3발을 발사했는데 하나는 일본 근해, 나머지 두발은 괌과 하와이 근해에 명중시키는 바람에 미국측서 질겁을 하고 조미합의서에 서명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6자회담도 부쉬가 처음에는 악의 축이니 뭐니 하면서 핵을 가진 북한과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오만한 자세를 보여왔으나 결국에는 대화탁상에 들어오게 되었던 사실을 회고해 볼 수 있다.

이북동포들은 조국반도의 기본 장애물로 되어 온 북미관계가 더 이상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북이 이제는 미사일 뿐만 아니라 핵 보유국으로서 <군사강국>이 되었기 때문에 제국주의 나라들이 함부로 침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북동포들은 또 미국이 국지전을 유발한다고 할지라도 대미대결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지략과 <선군정치>를 통해 백전백승해 온 발자취를 지적하며 조미관계가 평화협정으로 될 수 밖에 없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래서 자위력을 갖춘 이북은 이제부터는 경제건설에 힘을 넣어 김일성 주석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2012년에는 기필코 경제강국으로 부상하여 강성대국을 이룩하겠다는 신념에 불타고 있다. 기자는 2주 동안의 방북취재를 통해 이것을 확인했다.



외교사절들과 해외동포들은 민간인 열벙식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사진은 청년학생들로 구성된 붉은청년근위대와 로농적위대 차량들이 주석단 앞을 지나는 모습



민간인 열벙식을 관람하며 박수를 치고 있는 내각 지도자들과 인민군 지휘자들 모습
----
13년에 다시 시작한 집단체조<번영하라 조국이여>의 한 장면


[9.9절 방북취재-3]북부조국은 <예술문화 강국>이다




[평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북부조국은 세계적인 <철학강국>, <군사강국>인 동시에 <예술문화 강국>이다. 그 철학은 민족의 자주성을 기초로 구성되었고, 군사체계는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한 자위력을 기본으로 이루어졌고, 예술문화는 민족의 넋을 빛나게 하면서 그것을 길이 보존하기 위한 평화와 번영을 촉진하는 목적으로 기여해 왔다.



새로 시작한 집단체조의 한 장면
북부조국은 그 동안 남북이 모두 단군을 신화적 인물로 평가해 왔으나 지난 1993년 10월 평양 강동군에서 <단군릉>을 발굴하면서 신화적 존재에서 실재인물로 규명하게 되었다. 당시 단군릉에서 단군과 그의 부인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굴하고 ‘전자상자성 공명법´(電子常磁性 共鳴法)’을 적용해 측정한 결과 그 연대가 지금으로부터 약 5011년 전의 것으로 확증됐다고 밝혔다. 그 이후 김일성 주석의 요청으로, <단군릉>에 대한 대대적인 복원공사를 추진하여 자손만대에 우리 민족의 시조를 모신 거대한 건축창조물, 단군릉을 건설하여 이 곳에 그 유골을 보존해 놓았다. 이 같은 업적으로 우리 민족은 “단군과 고조선은 실재했으며 고조선의 수도는 평양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게 되었다.

북부조국에 산재한 우리 민족의 문화재들은 귀중하게 보존되고 관리되어 왔다. 전쟁시기에 파손되었던 문화재들도 원상으로 복구되었다. 묘향산에 자리잡은 보현사와 그 박물관에 간직된 8만대장경 인쇄본, 백두산에 보존된 항일유격대의 사적물들, 칠보산, 구월산, 정방산, 내금강 등 가는 곳 마다 귀중한 사적물들이 정성스럽게 보관되어 있다. 고구려 시대의 벽화를 비롯하여 만월대, 성균관, 선죽교, 공민왕릉, 박연폭포 등 명승지와 우리 민족의 고대, 근대, 현대 문화 사적들이 즐비하게 보존되어 있다.

북부조국은 또 <음악의 나라>로 불리 울 정도로 민족음악과 악기들, 그리고 그것을 현대음악에 배합시킨 창작곡들, 무용들, 집단예술 작품들을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 놓았다. 우리민족은 일찍부터 음악을 사랑했다. 북녘의 자료에 따르면 민족악기는 이미 고조선시기(B.C.30세기 초-B.C.108)에 나타났는데 고구려시기(B.C.277-A.D.668)에는 벌써 관악기,현악기,타악기들이 갖추어진 관현악과 군악의 일종인 고취악이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 나온 피리, 저대, 가야금 등 근 20종의 악기들은 당시 이웃나라들에까지 진출하여 명성을 떨친 직업적인 관현악단들의 조직과 활동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발전된 민족악기들이 있음으로 하여 그 후 고려시기(918-1392)와 이조(1392-1910)초기에는 궁중에 백 수십명의 연주가들로 구성된 대 관현악단이 조직 운영되고 15세기에는 이 악단의 연주를 위한 작품들도 창작 되었다. 그 악곡들은 총보 형태로 《이조실록》에 기록 되어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민족악기들은 조선을 강점통치(1905-1945)한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하여 그 존재조차 없어진 민족관현악단과 함께 빛을 잃었었다. 민족악기들은 나라가 광복된(1945.8)후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김일성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은 우리민족의 창조적 지혜와 재능이 비낀 민족악기들을 재생시키고 시대의 요구와 현대적 미감에 맞게 개량 발전 시켜나가는 것을 국가정책으로 내세워 이끌어 준 결과 재래식 민족악기들은 그 음역과 음량이 확대되고 밝고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한 본래의 음색이 더욱 풍부해졌다. 그리고 12반음계를 자유롭게 연주 할 수 있게 되어 다양한 모든 음악작품들을 훌륭히 형상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북에는 새로 만들어 진 민족악기들이 발견된다.



민족의 시조 유골을 모신 <단군릉>
북부조국은 전면적인 민족교육은 물론 각계 각층을 음악과 예술에 접하도록 정서교육을 강조하는 국가정책을 실시해 왔다. 이북 동포들은 그 어느 나라 국민들 보다 음악감상을 많이 하며 동시에 자신들이 최소한 한가지 이상의 악기들이나 무용, 노래, 시 읊기 등을 할 수 있다. 건축공사장에도 음악이 연주되고, 어린이들도 예술기능 교육을 통해 누구나 예술재능을 자랑한다.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연주실력도 세계적 음악가들로부터 높이 평가 받아 왔다. 영화연극도 세계적 수준이다. 고전적 명작인 <꽃파는 처녀> 작품은 이미 1972년 체스코(체코슬로바키아)에서 열린 까를로비바르 국제영화제에서 특등상을 수여 받은바 있다. 만수대창작사 출신의 미술가들과 조각가들은 국제대회에서 여러 차례 그 실력들을 과시하여 우수 상들을 받아 왔다. 지난 2월26일 뉴욕교향악단이 역사적인 평양공연을 마치고 조선국립교향악단과 <김원균 명칭 음악대학> 학생들과 방문기념 협연을 하고서 평가한 이북 음악인들의 수준에서도 그 실력이 세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집단예술부문에서는 이북의 실력이 세계 제1의 나라로 인정받고 있다. <아리랑>대집단예술 공연은 지난 해 <기네스 북>에 올라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예술공연으로 기록되었다. 이 작품에 출연한 배경대의 2만여 명의 학생들은 중국정부에 의해 엄청난 출연료를 받고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출연하여 줄 것을 요청 받았으나 이북 당국이 사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만 명이 출연하는 <아리랑>공연은 2002년부터 시작된 대 걸작품으로 이북에서는 가장 영예로운 <<김일성 상>> 계관작품이다. <아리랑>대 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은 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배경대(2만 명의 카드섹션)의 신기로운 결합으로 황홀경을 이루어 관중들을 경탄의 세계로 흡입하는 거대한 예술작품이다.

서장이 펼쳐지면서 제1장 <아리랑민족>이 소개된다. 초대형 배경대가 시네마스코프 화면으로 변하면서 영상과 함께 무대가 된 운동장에는 수천여 명의 출연자들이 등장한다. 나라 잃은 설움에서 깨어나 항일투쟁의 깃발 높이 들고 제2장에서 항일투쟁을 형상화한 <선군아리랑>장면으로 이어진다. 제3장에서는 나라다운 나라를 건설하여 힘차게 건설하며 신심에 불타는 과정들이 소개되고, <행복의 아리랑>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여기에서는 또 공중에서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손에 땀을 쥘 정도의 공중곡예가 연출되어 하늘과 배경대, 그리고 땅에서 전개되는 입체적 형상들이 관중들을 사로잡는다. 제4장 <통일아리랑>에서는 6.15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상징하여 배경 대에서는 <통일615시대>가 펼쳐지고, 땅에서는 울릉도, 독도, 제주도까지 포함한 우리나라 지도가 수천 명의 출연진들에 의해 만들어 진다. 종장에서는 <강성부흥 아리랑>이 전개되면서 무궁번영의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작품은 지난 8월4일부터 매주 오후6시 4회(월,수,목,토) 공연하며 화요일과 금요일은 지난 13년 동안 장기간 쉬었다가 금년부터 다시 시작한 집단체조 <번영하라, 조국이여>가 낮 시간에 공연한다.



통일조국을 형상화한 집단체조의 한 장면
이 집단체조 <번영하라, 조국이여>도 북부조국이 걸어 온 길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김일성>>계관 작품인 <아리랑>과 함께 국제적으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이 작품을 위해 만들어 진 집단체조창작단은 지난 1971년 11월에 창작되어 70년대, 80년대, 그리고 1995년까지 공연되다가 큰물사태로 오랜 기간 중단되어 왔으나 금년부터 새로 시작된 걸작이다. 아동들로부터 대학생에 이르는 각층의 청소년들과 중학생, 대학생들이 출연하고 있다. 희한한 체조 대를 비롯하여 입체적인 배경 대와 음악 등 모든 관중들의 찬사를 자아내는 대 걸작 중 하나이다. 특히 <민족의 넋 태권도> 출연과 제5절 <꿈을 안고 미래로..>에서 출연하는 어린이들의 집단체조는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고 있다. 이 작품의 창작단은 국내 동포들에게 <조선의 노래>(1977년 4월) 등을 포함하여 수많은 곡들을 만들어 정신적 교양과 청소년들의 체력단련, 국제사회의 친선협조를 강화하는데 크게 이바지 하였다. 이 창작단은 제8차 아프리카 경기대회 폐막식 집단체조와 예멘 통일 16주년 기념집단 체조창작을 협조한 것을 비롯하여 지난 기간 세계 40여 개 나라들의 집단체조창작사업을 도와주어 국제적으로 놀라운 평가를 받아 왔다.

북부조국은 또 <어린이 예술왕국>이다.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을 포함하여 <평양소년궁전> 및 각 지방에 설치된 소년궁전들은 어린이들의 예술기능을 개발해 주는 산실역할을 하고 있다.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을 이용하는 청소년들의 종합공연을 보면 그 수준에 대해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평양시는 <평양학생소년궁전> 하나 만으로 청소년들의 예술학습을 다하지 못하여 지난 1989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커다란 관심과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과외교양의 본보기 단위로 <만수대학생소년궁전>이 준공되었다. 이 건물은 부지면적 30만 평방미터, 연 건축면적 10만 3천 평방미터에 8층 건물로 대리석 기둥과 바닥으로 만년건축으로 지어졌다. 이 궁전은 컴퓨터부문, 과학부문, 예술부문, 체육부문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백 수십 개의 소조실, 활동실, 그리고 2천명을 수용하는 극장을 갖추고 있다. 이 안에는 10만권의 장서를 비치한 도서관, 전자오락관, 로라스케이트장, 수영장, 자동차운전실습장 등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는 하루 5천 여명의 소학교, 중학교 학생들이 과외활동을 벌이고 있다.

북부조국에서 운영되는 각종 역사박물관들의 규모나 내용도 어마어마하다. 고대유적 박물관, 혁명박물관 및 <국제친선전람관> 등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한 유적들과 선물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묘향산 기슭에 자리잡은 <국제친선전람관>에 비치한 <김일성 주석관>에는 180여 개 나라들의 수반과 유명인사들이 올린 222,520점의 귀중한 선물들, 그리고 <김정일 장군관>에는 작년까지 165개 국의 수반과 유명인사들이 올린 56,474점의 희귀한 선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것들을 관람한 해외동포 언론인들은 큰 나라에 조공을 바치던 우리 민족이 이제는 선물을 받는 민족이 되었다고 뿌듯해 하면서 한 동포언론인은 “이 보물들로 지구를 살 수 있겠다.”고 발언하자 평양사범대학교 어문학부를 2005년에 졸업하고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리명숙 해설원은 ‘계산해서는 안될 존경의 마음들이 깃들어 있다.”고 답변했다.

기자가 이곳을 관람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가들의 수반들과 유명인사들의 이름들을 접할 수 있었다. 중국 모택동의 열차선물(1953.11), 소련 스탈린의 방탄승용차와 열차선물(1945.8),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의 수정그릇 선물(1996.6.4), 미국의 종교지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의 지구본 비둘기상(1992.4.1), 미국의 알브라이트 국무부 장관의 농구선수 <마이클 졸든의 서명이 담긴 농구공>(200.10.24), 에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의 은촛불대(1986.5.6), 중국의 주은래의 상아조각(96명의 작가들이 공동으로 제작)한 <만경대>(1977.4.15), 팔레스타인 아라파트의 선물(1991.12.19), 아프리카 짐바브웨 로버트 무가비 수상의 <소뿔>선물, 등소평의 선물, 프랑스 메테랑 대통령 수정각 선물(1982.4.15), 푸친 러시아 대통령의 사냥 총 선물(2000.7.20), 라오스 시하누쿠 왕은 무려 2백여 점의 선물들을 올렸고, 레슬링으로 유명한 역도산의 벤츠 승용차 선물(1962.3.13), 5억년 전 화석으로 만든 조각상, 그림, 서예 및 금,은 보석으로 정성 들여 만든 희귀한 선물들이 즐비했다.



총 27만 8천여 개의 선물들(2007년말 현재)이 보존된 묘향산의 <국제친선전람관>의 외형
이 가운데에는 남녘 인사들과 해외동포들의 선물들도 보였다. 김대중(2000.6.15), 노무현 대통령(2007.10.4)을 비롯하여 박정희 대통령의 황청색 꽃병 선물(1972.12.1), 전두환 대통령의 은그릇 주전자(1986.2.12), 노태우 대통령의 큰 자기 비둘기상 선물(1990.9.6), 현대의 정주영 회장의 승용차 선물(1998.10.30), 동아일보에서 보천보 전투승리 소식을 알린 보도판 선물(1998.10.26), 한겨레신문 최학래 사장 선물(2001.2.8), 경제인들의 선물(대우, 럭키, 삼성, LG 등), 박재규 통일부 장관, 강원도지사, 경북도지사, 전북도지사, 인천시장, 민노총가 전교조 등 사회단체들, 세계평화연합 사무총장의 9톤 반짜리 큰 옥돌 선물 등 지난 해 말까지 <국제친선전람관>에 비치한 180여 개 나라들 수반, 기업인, 종교인, 각계 유명인사들, 그리고 남녘 동포와 해외동포 등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에 올린 선물들은 지난 해 말까지 총 27만8천9백94점으로 밝혀졌다.

북부조국 동포들은 이제 <사상철학 강국>, <군사자위 강국>, <예술문화 강국>을 이룩하고 그 기초 위에 지도자, 당, 군, 인민이 하나가 되어 경제강국을 향해 힘차게 도약하고 있다. 이것은 기자가 9.9절 60돌 기념축제를 전후하여 2주 동안 북부조국을 방문하여 관찰한 발견이며 소감이다.




집단체조 공연을 통해 <경제강국>을 결의하는 모습



세계 180여 개국의 수반, 유명인사들이 김일성 주석, 김정일 위원장에게 올린 선물들은 작년 말까지 총27만8천9백여 점에 이른다.



<아리랑>대집단예술 공연을 통해 조국통일을 상징하는 10.4선언을 형상화한 광경



금년 <아리랑>공연도 6.15통일시대를 형상화하여 통일열망(하나의 조국)을 표출한 모습



집단체조에서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자고 결의하는 모습
----



김일성 항일유격대가 백두밀림에 사령부와 근거지들을 두고 항일투쟁을 벌려 백전백승의 전적을 올린 기상을 형상화한 조각품-사진은 삼지연에 세워진 작품.-민족통신 자료
============

[9.9절 방북취재-4]이북의 정보안보능력 놀랍다




[평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국가정보는 그 나라의 안위와 연계된다. 세계에는 2백여 나라들이 있지만 이북처럼 국가정보 안보능력이 뛰어 난 나라도 드문 것 같다.



재미동포들은 백두산에 올랐다가 내려와 백두밀림 고향집을 참관하고 기념촬영-민족통신 자료
정보정치의 나라로 이름 난 미국도 이북에 대한 정보들은 어둡다. 미국정보 관리들에 의존하여 보도하는 미국언론들의 오보사건들은 부지기수로 기록되었다. 동구권이 붕괴될 때 미국 언론들은 이북이 “3개월 안에 무너진다.”에서 시작하여 “3년 안에 붕괴된다.”는 등 온갖 보도들이 난무하였지만 무너지기는커녕 <군사강국>, <사상강국>, <예술문화 강국>으로 우뚝서 왔다.

요즘에는 미국과 일본 언론들이 이북의 최고지도자 건강 이상설을 퍼뜨리며 유치한 대북심리전을 전개하고 있어 지나가는 소가 웃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유언비어를 받아 긴급회의까지 소집하는 이명박 정부의 자세도 희극이지만 이런 미국과 일본 언론들이 유포시키는 유언비어들을 소설을 쓰며 기사화하는 남녘 언론들의 자세들도 코미디 중에 코미디로 보인다. 관변통신이라는 연합뉴스까지 미-일 언론들이 퍼트리는 유언비어에 놀아났다. 9월9일 열병식 행사장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 한가지를 두고, 9월10일자에 별별 추리들을 하면서 연합뉴스는 10일 하루 만에 소설 같은 유언비어 25편을 기사화했고, 9월11일에도 15편의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기사들 모두가 언론의 기본도 무시한 유언비어 그 자체로 분석되고 있다. 그래서 6.15남측위 언론본부와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등에서 이를 비판하고, 지적하며 날카로운 논평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이북의 정보안보능력은 세계적으로 뛰어났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 정보보안 능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미국정부는 위성탐지기를 비롯하여 정찰기 등 온갖 정탐수단들을 동원하여 월평균 180여 차례 이북동정을 살펴왔다. 이것도 모자라 이남 당국의 정보기관을 통해 그리고 해 내외 정보망을 통해 이북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하여 왔으나 제대로 된 정보들을 얻지 못했다. 미국은 한때 이북의 금창리에 핵무기 시설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보기 위해 3억 달러를 지불했으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터로 밝혀져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한 적도 있었다. 지난 시기 미국 3대 테레비죤 방송들도 이북의 최고지도자가 사망했다고 공식뉴스시간에 보도했다가 사과방송을 내 보낸 경우도 있었다.

미국정보망은 첨단기술을 가졌다고 자랑해 왔지만 이북에 대한 정보를 얻기에는 하늘에 별 따기와 같은 모양이다. 미국은 1968년 1월23일 프에블로 간첩선을 원산근해에 몰래 들이 밀었다가 이북의 해군들에게 나포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해양 연구선으로 위장하였지만 그것이 간첩선으로 발각되어 죤슨 대통령이 사죄문을 써야 했던 사건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은 또 이북이 이 배를 위장하여 동해로부터 남해를 거쳐 서해로 끌고 와 대동강변에 전시해 놓은 것도 이 작업이 끝난 사흘 후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미국의 무인잠수함이 북 해군들에 의해 발각되어 이북 당국이 그것을 평양시 대동강변에 끌어와 <프에블로 호> 바로 옆에 전시해 놓기도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42년 2월16일 탼생한 곳이 백두밀림 속에 있는 고향집. 그 입구에 이북에서 말하는 3대장군(김일성, 김정숙, 김정일)의 벽화그림이 보인다. 재미동포들과 일부 해외동포들이 참관하고 있다.(민족통신 자료)
북부조국의 정보안보능력은 오랜 전통을 갖고 유지되어 왔다. 항일투쟁 시기에도 “김일성 장군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바람에 일제 놈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조국해방 시기에는 김일성 주석이 33살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혹자는 노장이었을 줄 알았는데 저렇게 젊다고 지적하면서 ‘가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일제통치의 암흑시기에 항일유격대를 꾸리고 일제대군과 맞서 투쟁을 전개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항일유격대 대원들의 정보안보능력 없이는 빨치산 부대가 존재하기 어려웠던 것은 우리 역사가 증명한다. 특히 항일유격대를 총지휘한 최고사령관에 대한 정보는 극비중의 극비였던 것으로 진단된다.

신간회(1927.2~1931.5)가 지도부의 정보안보능력 부재와 통솔력 미숙 때문에 단명으로 끝나고 <민족대연합전선>으로 꾸려진 <조국광복회>가 1936년 5월1일 발족하여 항일투쟁 주체역량을 마련하게 되었는데 이것도 김일성 항일혁명군 지도부의 정보안보능력이 훌륭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에 김일성 주석은 본명을 쓰지 않고 김동명이라는 가명을 쓰고 그 가명을 조국광복회 결성선언문에 올리고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그 다음 해인 1937년 6월 보천보 전투에서 김일성 항일유격대가 일제를 타승 한 것도 암암리에 백두밀림에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선인민혁명군으로 조직하여 백두산 일대에 근거지들을 두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부조국의 정보안보능력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항일투쟁시기부터 다져 온 전통에 비롯되어 왔다.

조국해방 이후 분단시기에도 조국반도는 북부조국과 미국과의 대결의 역사였다. 그래서 제 정신을 가진 남북 학자들은 조국분단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남북문제가 아니라 조미(북미)문제가 기본축이라고 진단한다. 북미문제가 풀리면 남북문제는 풀릴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남한의 사회구조는 미국의 식민지 구조에 갇혀 왔기 때문이다. 6.15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이 만들어지고 이행되는 과정에서 미국은 끊임없이 방해책동을 자행해 왔다는 것은 만인이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6.15선언과 10.4선언을 거부하고 공안정국을 조성하며 반민족, 반평화, 반통일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것도 그 배경을 분석해 보면 미국의 대 코리아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금강산 관광객 사건의 왜곡을 포함하여 탈북자 간첩사건 조작, 통일단체인사들 탄압연행사건, 이른바 건강 이상설 유포 등의 현상이 줄지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보제1국가로 자랑하던 미국은 1968년 프에블로호 간첩선을 해양연구배로 위장하여 원산근해로 들어 갔다가 이북 해군들에게 나포되어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게다가 죤슨 대통령이 사죄문을 써야했다.사진은 대동강변에 전시된 <프에블로호>-민족통신 자료
특히 미국과 일본 언론들이 조국반도의 평화와 자주적 통일을 방해해 왔다. 이들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고작 생각해 낸 것이 유언비어라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들은 매달 30~40만 명이 아사로 죽는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가 하면 아무 일도 없었던 이북의 지도자가 죽었다고 하는가 하면 평온한 이북지역에서 데모가 일어났다는 등 별별 유언비어를 퍼트려 왔다. 최근에는 또 일본 와세다 대학의 토시미츠 시게무라 교수라는 자가 주간지 <겐다이>라는 잡지(2008.8월23일~30일)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2003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비슷한 사람으로 대치한 인물이라고 기고해 세계적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미국의 평화운동가 브라이언 윌슨 변호사는 미국정부와 미국정보기관이 제3세계 나라들을 지배하고 침략하기 위해 지난 시기 1만여건 이상의 공작사건들을 만들어 냈다고 지적하면서 적대시 하는 나라들의 지도자들을 암살하든지 아니면 사건을 조작하여 사고로 죽은 것 처럼 만드는 수법들을 자행해 왔다고 폭로해 왔다.

미국은 또 유언비어를 만들어 내는 명수로 알려져 있다. 부쉬 미정부가 이라크를 침략할 때 대량살상무기(WMD) 때문이라고 구실을 잡았으나 그것도 후에 거짓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이 침략으로 미군도 수천명 죽었지만 1백만 명 이상의 이라크의 양민들이 아무 죄없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은 또 한 때 자기편으로 써먹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반역죄에 들씌워 사형에 처한 사건도 조작사건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주권을 생명처럼 여겨 온 북부조국은 <선군정치>를 내세우며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미사일과 핵 억지력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북동포들은 "만약에 우리가 이라크처럼 자위력을 갖추지 못하였다면 몇번이고 미국의 침략을 받아 왔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가 백번 옳았다."고 강변한다.



얼마전에는 미국의 극소형 수중 무인정찰 잠수정이 또다시 이북 해군에 의해 나포되어 이것도 <프에블로 호>가 정박된 바로 옆에 전시하여 놓았다. -민족통신 자료
주권을 지키고, 외세의 침략을 막기위해서는 중요한 국가정보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하는 한 관리는 "그래서 우리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이 철회될 때까지 모기장을 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북부조국의 동포들은 지금까지 고난의 삶을 살아오면서도 더 이상 강대국들의 노예가 되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때로는 풀 뿌리를 캐 먹으며 오늘의 <사상철학 강국>, <군사자위 강국>, <예술문화 강국>을 이룩하여 놓았다고 자부하면서 "이제 남은 것은 경제강국뿐 이다.”라고 강조한다. 이제 북녘 동포들은 그 동안 다져 온 기반 위에 지도자, 당, 군, 인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외세의 방해책동을 저지하며 경제강국을 향해 힘차게 도약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목표도 뚜렷하다. 김일성 주석 탄생 100돌을 맞는 2012년을 경제강국 건설의 해로 정했다. 이북동포들은 그것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는 신념에 불타고 있다. 다시말하면 외세의 방해공작을 막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보안보는 우리 공화국의 생명”이라고 한 간부는 힘주어 말한다. 이것은 기자가 9.9절 60돌 기념축제를 전후하여 2주 동안 북부조국을 방문하여 관찰한 소감이다.



<아리랑>공연의 한장면-민족통신 자료
----


1200석의 자리를 갖춘 평양 시내에 소재한 <봉수교회> 전경-민족통신 자료

[9.9절 방북취재-5]진짜<예수>는 북녘에 있었다




[평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재외동포 기독신자들은 이번 9.9절 60돌 행사기간 중 일요일(9월7일) 아침에 봉수교회를 방문했다. 이 교회 집사가 기도할 때, 그리고 손효순 담임목사가 설교할 때 해외동포 신자들은 펑펑 눈물을 흘렸다. 예배를 끝내고 나오면서 한 동포는 “진짜 ‘예수’는 바로 북녘에 있군요!”라고 감탄을 연발한다. 



<봉수교회>에서 예배보는 이북동포들-민족통신 자료
이날 1천2백 석의 자리를 거의 메운 봉수교회의 예배시간 분위기는 그야말로 교회다운 교회였다. 이곳에는 이북에서 출판한 신구약 성경과 찬송가 책이 의자 앞 보관함에 비치되어 있어 예배보기가 편리했다. 참석자들이 찬송가를 부를 때에는 강단 위쪽에 커다란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고, 그 화면에 찬송가 가사들이 한 줄 한 줄 .'ㅔ' 따라 부르기에 아주 수월했다. 예배순서는 남녘이나 미주동포사회 교회들에서 진행되는 순서들과 똑 같았다. 40여 명의 찬양대 대원들은 남녀노소로 구성되어 혼성4부 합창화음도 조화를 이뤘다.

특히 시작기도를 인도한 봉수교회 여성신자 심삼주 집사의 기도와 손효순 담임목사의 설교(제목: 주님의 견책)를 들으면서 해외동포들은 펑펑 눈물을 흘렸다. 이 예배를 보며 수첩에 이것 저것 기록하던 기자의 얼굴에도 뜨거운 눈물이 냇물처럼 흘러내렸다. 심 집사가 기도를 통해 우리민족이 분단되어 고통의 나날을 보내 온 것이 63년이 되었다고 돌아보면서 “피눈물로 얼룩진 상처를 씻어 주옵소서, 오로지 온전한 화해와 평화의 역사가 임하게 해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합니다.”라고 호소했다. 히브리서 12장 5절부터 7절까지 낭독되고 성가대의 찬양순서가 진행되고, 손 목사의 설교가 이어졌다. 그는 <주님의 견책>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며 서두에 ‘견책’에 대해 이것은 훈계 또는 징계라고 해설하며 주님의 견책은 <진정으로 올바른 삶>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설교 중에 해외동포 목사선생들도 많이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준비하느라고 역사공부도 했다고 고백하면서 백제의 멸망사를 포함하여 신라와 당나라와의 관계, 태봉 국 및 우리민족의 발자취를 소개하며 김춘추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우리민족사를 그르친 사례들을 간략하게 설명하며 지금도 그런 현상이 있으니 정신 좀 차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뜻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올바른 길을 걸어가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며 그 길은 좁지만 결과적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게 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식 예배시간을 끝내고 광고시간을 이용하여 재미동포 윤길상 목사와 오스트랄리아의 한승수 목사 등 재외동포 참석자들을 환영해 주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작년 12월4일 이름난 조용기 목사를 포함하여 순복음교회 교인 2백여 명이 다녀갔다고 밝히면서 그 때 조 목사는 감동적인 간증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이곳의 동족들이 이렇게 뜨거울 줄 몰랐습니다. 지난 날 보수 목사 조용기가 민족을 위해, 겨레를 위해 한 몫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이곳 평양에 <조용기 심장전문병원>을 세우기 위해 착공식 예배도 보았다. 그러나 그 병원의 기초공사가 끝나고 이제 본관 공사가 막 시작될 무렵 남측의 정치변동으로 중단된 상태라고 한탄하면서 그는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이 심장병원이 꼭 평양에 설립되기를 바라며, 이 뜻을 정확히 전달해 주기 바랍니다.”라고 해외동포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평양 <봉수교회>의 성가대 모습-민족통신 자료
해 내외 동포사회에서 혹자들은 조용기 목사를 비판적으로 지적하는 경우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북의 목회자들은 그렇게 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사람이 과거에 허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그 허물을 깨닫고 올바른 길로 나가면 “우리는 과거를 묻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말은 김일성 주석이 항일투쟁을 전개할 때부터 연합전선, 통일전선의 원칙으로 삼아온 이야기이기
도 하다.

그래서 이북 지도자들은 이남의 군대장성 출신인 최덕신과 최홍희를 포함하여 재벌출신 정주영, 종교계 출신 문선명 등과도 과거를 묻지 않고 함께 손잡고 일해 왔고, 그리고 지금도 그런 통큰 정치의 원칙에서 영도하고 있다.

이북 지도자들이 항일투쟁시기와 조국분단시기에 견지하여 온 민족통일전선 또는 범민족연합전선은 단순한 전술이 아니라 진정한 열망이었다. 조국해방 이전의 <조국광복회>나 해방 이후 남북연석회의를 비롯한 남북해외 동포들의 단결단합 정책도 모두 민족통일전선의 취지와 목표에 의하여 비롯되어 왔다. 조국통일 3대헌장도 바로 그런 뜻을 뒷받침하고 있고, 6.15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을 갈망하는 이북동포들의 간절한 소망도 모두 그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1948년 4월19일 평양 모란봉 극장에서 개막된 남북 제정당, 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에서도 사상과 이념, 신앙과 정견, 재산유무를 초월하여 민족대단결로 망국적 단독선거를 단호히 거부하고 민주주의적 통일정부를 세우자고 애절하게 호소했다. 이 남북연석회의는 북녘의 조선 로동당, 조선민주당, 천도교 청우당을 포함하여 12개 단체들과 남녘의 남로당, 근로인민당, 신진당, 청우당, 근로대중당, 민주한독당을 비롯한 31개 정당, 사회단체를 비롯하여 도합 56개 정당과 사회단체 성원 1천만여 명을 대표하는 695명의 대표들이 참가한 역사적인 남북회합이었다. 이 모임을 반대한 것은 오로지 미군정과 이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이승만 정치 세력뿐 이었다.

이북의 교인들은 그 숫자가 많지 않지만 이들의 신앙자세와 입장은 언제나 민족과 더불어 존재한다고 말한다. 봉수교회의 김영숙 전도사는 이 교회에서 운영하는 3년제 신학원 7기 졸업생이라고 소개하면서 지금 신학원 학생은 10여명 정도라고 밝힌다. 이북에는 기독교계열인 봉수교회, 칠곬교회, 천주교회, 러시아 정교회 등과 지역에 6백여 개의 예배처소들이 있고, 불교계열로서는 64개 사찰에 3백여 승려, 1만여 명의 불교신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묘향산 보현사에 있는 <대웅전> 모습-민족통신 자료
재미동포 목사로 이북을 돕는 일과 관련하여 활약하다가 세상을 떠난 홍동근 목사도 생전에 그런 말을 했다. “진짜 예수는 이북에 있어요.”라고 토로했었다.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 이북을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이 사실을 알게 된다고 말하곤 했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이번 재미동포들의 이북방문에서도 또다시 확인되었다. 그래서 양심 가진 재미동포 목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남녘의 교회들과 해외동포사회 교회들이 이북에 있는 교회처럼 목회한다면 우리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해왔을 것이라고. 그 동안 일부 재미동포 목사들은 기독자적 양심으로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크게 기여해 왔다. 고 김성락 목사, 고 홍동근 목사, 고 노희선 목사, 이승만 목사, 함성국 목사, 유태영 목사, 강위조 목사, 윤길상 목사, 김현환 목사, 백승배 목사, 조명지 목사, 김상일 목사 등과 같은 이름들이 떠 오른다.

이번 9.9절 방북취재를 위해 최근 2주 동안 이북에 머무는 동안 봉수교회에 참관한 것은 기자에게 큰 감동이었다. 재미동포들을 포함하여 해외동포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평양의 봉수교회 목회자들과 이북교인들을 만나면서 “진짜 예수는 북녘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러한 평가는 독일의 유명한 작가이며 녹색당 당수였던 루이제 린제 여사의 고백에서도 지적되었다.



김일성 주석은 1945년 10월14일 모란봉 경기장(지금은 김일성 경기장)에서 첫 대중연설을 하는 장면.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새 조국건설에 기여하자고 호소했다. -민족통신 자료



김일성 주석의 1945년 10월14일 첫 대중연설의 주요 어록을 새긴 돌-민족통신 자료
----


백두산은 어머니 산, 조정의 산으로 불리워져 왔지만 역사적으로는 <혁명의 성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사진은 민족통신 자료

[9.9절 방북취재-6]<백두산은 역시 혁명의 성산>




[백두산=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재미동포들을 포함하여 일부 해외동포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은 북부조국의 창건일(9.9절) 60주년을 맞는 행사들을 참관하고 있는 기간인 지난 9월11일 오전8시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백두산으로 향하는 고려민항기(일루신11기)에 올랐다. 108석의 자리는 꽉 차 있었다.



일부 재미동포들은 삭도를 타고 천지연 물가로 내려가 기념촬영-민족통신 자료
각 일행들은 한 시간 15분 정도 경과하자 백두산 기슭서 1백여리 떨어진 삼지연 공항에 도착했다. 이곳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 백두산을 향해 굽이굽이 꼬부라진 길을 따라 한 시간 이상 올라갔다. 이깔나무, 젖갈나무, 사철나무 숲을 지나고 또 지나자 확 트인 하늘에 위엄을 자랑하는 장엄한 바위산, 백두산이 보인다. 1백만 년 전 화산이 분출하여 형성된 돌산이 희게 보인다고 하여 <백>을 썼고, 높은 곳 머리 위에 있다고 하여 머리 <두>를 써 백두산이라고 이름하였다고 안내원이 설명한다.

백두산 주변 10리 정도의 거리에는 고목이 없다. 잔디처럼 보이는 풀들은 희귀한 식물들 뿐 이다. 겨울에도 피는 <만병초>가 보이고 이름 모를 노랑 풀, 파랑 풀들이 굽이굽이 올라가는 길목에 깔려있다. 군데군데 <만병초 꺾지 맙시다>라고 쓴 나무 팻말이 눈에 띈다. 그 저쪽 하늘에는 위엄과 장엄함을 자랑하듯 백두산 정상이 보이고 새털 구름 바로 아래에 놓인 높고 낮은 능선의 백두산 기슭이 우람한 자태로 버티고 있다.

버스가 산정에 도착하자 서둘러 내린 일부 참관자들은 “야, 백두산 천지가 보인다!”며 소리치며 감탄을 연방한다. 이렇게 높은 곳(2774 메터)에 저렇게 큰 호수가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너도나도 달려가 그 천지를 바라본다. 천지 가운데는 짙푸른 색, 가상자리로 올수록 그 색 갈은 점점 옅어진다. 천지연 가운데 깊이는 전 세계에서 두번째로 깊다고 한다. 러시아의 바이칼 호가 385 메터이고 이곳 천지연 가운데 깊이가 384 메터. 안내원은 이 천지연의 물은 고인 물이 아니고 밑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있어 살아있는 물이라고 설명하면서 “우리나라 쪽으로는 그 물주기가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연결되고 중국 쪽으로는 송화강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있다.”고 해설한다. 천지연의 둘레는 14.4 킬로 메터이고 그 넓이는 9,165평방 메터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북의 지도자에 의해 물고기가 살 수 있는가를 조사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이 천지연 물이 솟는 샘물에 의하여 이뤄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지난 1984년 여름 백만 마리의 <산천어> 새끼를 이곳에 집어 넣어 길러왔다고 한다.

재미동포 일행들 중 대부분은 10유러(16달러)를 내고 삭도(케이블 카)를 타고 백두산 정상에서 천지연 물가로 내려갔다. 가슴 설 레이던 동포들 몇 명은 신발을 벗고 천지연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일부는 바지와 웃옷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 들어 헤엄을 치고 나서 “조국통일”, “조국은 하나다!”를 외치기도 했다. 이것을 본 외국인 참관자들 몇 명도 팬티만 입은 채 천지연에 뛰어 들어 해외동포들과 어울렸다.

백두산과 천지연은 세계적 명물이다. 가슴이 펴지고 심장이 열린다. 해외동포도 경탄하고, 외국인 형제들도 감탄한다.

특히 백두산 산정 어깨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필로 쓴 글발이 선명하게 보인다.

<<혁명의 성산, 백두산-김정일 1992년 2월16일>> 이란 글이 유난히 눈에 띄는 위치의 돌산에 새겨져 있다.



시카고에서 온 김려식 선생은 천지연에서 수영을 한 다음 <조국통일!>, <조국은 하나다!>를 외쳤다.-민족통신 자료
<혁명의 성산>이라는 글귀에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는 것 같다. 하늘의 뜻이기도 하지만 이것보다는 우리 민족의 정기가 서려있는 곳이다. 백두산은 항일투쟁을 통한 백절불굴의 애국정신이 스며있는 성산이며 우리 민족 미래를 환하게 비쳐주는 희망의 성산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남북에 널리 알려진 민족시인, 조기천은 대장편서사시 <<백두산>>을 통해 이 산이야 말로 <혁명의 성산>이라고 노래한바 있다.

분단 이후 북녘 문학사가 ´평화적 건설시기´(1945.8∼1950.6)의 걸작으로 꼽고 있는 조기천의 서사시 「백두산」은 1947년 작품으로 제주 4•3사건을 다룬 강승한의 서사시 「한라산」과 함께 남북에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이 장편서사시, <백두산>은 비단 이 시기의 걸작일 뿐만 아니라 분단시대의 이북 문학 전시기를 통틀어서도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작품은 또 8•15 직후의 빈약했던 우리 문학사에서 드물게 보는 성과로 평가 받을 만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은 1947년 지은 것으로 장편서사시를 통해 북부조국의 항일투쟁 역사와 함께 조국해방을 맞아 새 나라를 건설하게 된 피나는 역사의 과정 과정을 시로 형상화 하면서 8.15해방을 맞아 새 나라를 건설하여 온 배경에는 혁명의 지도자 김일성 주석의 지도력과 혁명적 동지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는 사실을 심금을 울려주며 폐부로 다가온다.

이런 관점에서 장편서사시 「백두산」은 혁명의 지도자와 그의 주체혁명 사상을 담고 있으면서도 예술작품이 지닌 뛰어난 기법과 내용으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어휘와 내용으로 읽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의 시는 백두산의 민족정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추천할만한 걸작품이다. 조기천 시인(1913~1951)은 불과 38세로 타계하였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우리 민족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남녘에서도 많이 알려진 이북노래 <휘파람>의 작사자이며 유작으로 <수양버들>이 있다. 장편서사시 <백두산>은 ‘머리 시’를 포함하여 1장(7절), 2장(7절), 3장(8절), 4장(6절), 5장(6절), 6장(7절), 7장(6절)과 마지막 ‘맺음 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장편서사시 <백두산>전문을 읽으면 백두산의 위용과 위엄을 더 깊게 느낀다. -이 장편시 전문을 민족통신 게시판에 올려놓았다. 이것을 보려면 여기를 짤각 하여 열람하기 바람-백두산)



백두산서 삼지연으로 가는 길목은 한시간 이상 삼림으로 욱어져 있다.-민족통신 자료
이날 청명한 날씨였기에 백두산과 천지연을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안내원은 “1년에 고작 한달 정도가 이렇게 맑은 날씨”라고 설명한다. 이곳을 구경하고 내려오면서 <혁명의 성산>으로 자리매김한 현장을 답사 했다. 백두밀림에 자리잡았던 항일유격대의 사령부에서 활약한 김일성 주석의 항일투쟁 발자취와 김정숙 항일여성혁명가에 의해 태어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탄생지, 귀틀집을 구경하면서 이북의 지도자 가정은 모두가 항일혁명의 애국자들이었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의 귀틀집의 문고리를 노루발톱으로 만들어 추운 겨울에 손이 차지 않도록 한 것을 보면서도 항일투쟁시기의 뜨거운 동지애를 엿볼 수 있었다.

한 재미동포는 수년 전 겨울 이곳에 와서 백설이 쌓인 숲 속에서 꿩 한 마리가 절뚝거리는 광경을 보고 그것을 잡으려는 순간 어디선가 갑자기 소년 같은 인민군이 나타나 “잡아가면 안됩니다. 이것은 인민들의 재산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다리를 치료한 다음 제 위치로 날려 보내줄 것이라고 설명할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체험을 들려주었다.

삼지연은 군 단위 지역으로 량강도(도청소재지는 혜산시)에 속한다. 백두산 산정서 1백여리 떨어진 곳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이 갈라지는 지역이라고 하여 량강도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이에 속하는 삼지연 군에는 지난 1956년에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휴양소로 지은 현대식 대리석 건물들도 있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새 주택들도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내려 오는 동안 도로변 숲 속안에는 형형색색의 유럽식 주택들도 가득 차 있었다.

일행들은 삼지연 비행장서 6시10분께 고려민항을 타고 평양 순안공항에 7시15분께 도착했다. 공항서 평양시로 들어오자 거리의 풍경은 마치도 크리스마스 트리들 처럼 휘황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길거리 나무들도 장식 등으로 만들어 은하수 별처럼 빛났고, 로터리에는 <창건 60돐>이라고 쓴 구호들이 여기 저기서 등불로 비춰지고 있었다.



백두산의 또 다른 모습-산정에 올라 시각을 바꾸면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민족통신 자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필(92년 2.16), <혁명의 성산, 백두산>이 돌에 새겨져 있다.-민족통신 자료



백두산 산정에서 내려와 백두밀림을 찾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태어 난 귀틀집을 가고 있는 재미동포들-민족통신 자료



일제시기 김일성 항일유격대 사령부 자리에 백두3대장군의 사진들이 모셔져 있다.-민족통신 자료



백두산서 1백여리 떨어진 량강도 삼지연군 한 마을의 거리-형형색색의 유럽식 주택들이 즐비하다.-민족통신 자료



삼지연 마을에 새로 지은 많은 건물들 중 한 주택 모양-민족통신 자료

----


해외동포 기자들은 다른 참관자들과 함께 판문점 인민군 대외협력관으로부터 분단관계와 관련한 역사적 사실들을 청취하고 있다. -민족통신 자료

[9.9절 방북취재-7]북녘 동포들 대부분 <인테리>




[평양/개성/삼지연/향산=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북부조국의 외모가 아주 달라졌다. 평양거리, 삼지연 거리, 개성거리 등이 새롭게 포장되었고, 건물들이 개건사업을 통해 깨끗이 단장되었고 외벽들이 형형색색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었고, 북녘동포들의 표정 또한 밝았고 신심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만나는 이북동포들 모두가 <인테리>처럼 느껴졌다.



김명환 중좌(중위)는 <다섯 형제가 모두 인민군 복무중>이라고 밝히면서 6살때 고아가 되었으나 지도자의 뜨거운 사랑으로 주인노릇하며 제국주의 놈들에게 비굴하지 않고 주권을 가지고 당당히 살고 있다고 말한다.-민족통신 자료
9.9절을 전후하여 기자의 눈에 비친 이북의 도시들은 가는 곳 마다 변화된 모습들이다. 대동강변에 나온 남녀노소들은 모두가 평화롭게 보였고, 개성과 량강도 삼지연 마을에서 본 이북동포들도 한결같이 희망찬 표정으로 내일을 위해 오늘을 뛰는 모습들이었다. 거리의 간판들도 산뜻하고 전부 우리 글로 되었고, 그 규격도 거의 비슷하게 제작되었다.

안내원들의 해설 또한 2012년 김일성 주석의 100돌 탄생을 맞이하는 해에 기필코 경제강국을 이루어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기쁨을 드리겠다는 결의에 찬 음성이었다. 이북의 외모도 달라졌지만 이북동포들의 마음과 자세도 예전보다 한층 더 희망에 차 있었다. 지도자, 당, 군대, 인민이 모두 하나가 되어 혼연일체의 사회를 건설하여 놓았다.

판문점에서 만난 인민군 김명환 중좌(중위에 해당)도 이북의 일반동포들의 생각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다섯 형제가 있는데 모두 인민군에 복부한다.”고 밝히면서 “6살 때 부모와 친척들이 다 죽는 바람에 고아가 되었지만 수령님(김일성 주석을 의미)과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리킴)의 덕분에 제국주의 놈들에게 비굴하지 않고 주권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인민군, 노동자, 농민, 공무원, 교직원, 학생, 예술인, 체육인 등 기자가 만난 이북동포들은 모두가 당당하고 씩씩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이론에 밝았고, 정치사상적으로 의식화된 동포들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예외 없이 <사대주의>를 싫어했고, 조국반도의 평화와 자주적인 통일을 뜨겁게 갈망했다. 어느 도시, 어느 마을의 누구를 만나도 같은 생각들이었다.



출근시간, 등교시간이다. 엄마가 자녀를 데리고 다정하게 걷고있는 장면도 보인다.-민족통신 자료
한 농민(재미동포 이산가족 중 한분)은 “하루 속히 조국이 통일 되어야 하겠는데 남조선에는 새 정부가 들어와서 6.15북남공동선언과 10.4북남수뇌선언을 리행하지 않고 거부하고 있는데 이건 불행한 일입니다.”라고 지적하면서 미국과 일본의 방해책동을 적나라하게 꼬집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부모들이 소작농이었다고 돌이켜 보면서 “수령님과 장군님이 계셨기에 나 같은 소작농 자식도 주인답게 살고 있다.”면서 지금까지의 고생을 낙으로 삼아왔다고 회고한다.

경제학과 출신인 한 이북동포는 “우리는 경제생활의 기본이 자력갱생입니다.”라고 설명하면서 “90년대 중반 큰물피해로 경작지 75%가량이 파괴되었지만 그 이후 전 인민이 일심 단결하여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고, 작년 여름 물난리로 다소 피해를 입었지만 태천 물길공사와 백마물길 공사를 비롯하여 토지정리, 종자혁명 등의 사업을 일으켜 이제는 큰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제강국을 건설하려고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석탄생산 같은 지하자원 개발을 다그치고, 동력, 전기, 화학공업 및 경공업 등을 발전시켜 오는 2012년을 목표로 경제강국으로 일 떠 설 것입니다. 해외동포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는 줄 압니다만 너무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위로해 주기까지 한다.

한 이북동포는 금년 농사가 아주 잘되었다고 말하면서 “8백 만 톤 생산은 가능할 것입니다. 금년에 비료가 좀 부족했지만 지금 석탄공정이 잘되고 있어 흥남에서 70만 톤, 안산에서 60만 톤 가량 생산하여 앞으로 생산량을 더 늘일 계획이라서 작년의 물난리를 극복하고 식량문제는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귀띔해 준다. 그래서인지 농촌의 논과 밭에는 벼와 옥수수 등의 농작물들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감자농사도 잘 되었다고 한다. 이북동포들은 경제강국을 이루어도 식량문제는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



간판들도 산뜻하고 전부 우리글이다.-민족통신 자료
이북동포들의 모습에서 여유도 발견할 수 있었다. 옥류관을 포함하여 각 도시의 식당에는 이북동포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놀이터나 강변에는 애견들을 데리고 나와 산책하는 모습도 보였고, 도시의 공원들 숲 속에는 청춘 남녀들이 쌍쌍이 되어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들도 보였고, 살림집 주변과 거리에는 멋쟁이 같이 잘 차려 입은 손자 손녀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잡고 거니는 모습들도 보였다. 강변에는 낚시 대들을 들고 고기잡이를 하는 낚시꾼들과 옹기종기 모여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둥실둥실 어깨 춤을 추며 신나게 노는 노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9.9절 행사들도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어떤 이들은 음악회에 참석하고, 영화관에 가고, 집단체조를 관람하고, <인민대학습당(국립도서관)>에서 외국어를 배우고, 음악을 감상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관한 독서를 하고, 외국 원전을 읽으며 사전을 찾기도 하며, 컴퓨터를 비롯하여 온갖 지식을 터득하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들도 눈에 띄었다.

이북동포들의 이마에 뿔은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 <금요노동>과 밖에서 일을 많이 하여 얼굴 색갈이 검게 탄 것은 분명했다. 사무직 일꾼들도 금요일이면 반드시 농촌이나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에 나가 노동일을 하도록 하는 제도가 사회정책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토요일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학습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정세분석이나 철학공부 등을 하는 것이 학습시간으로 알려져 있다. 이북동포들은 또 직장단위나 학교단위에서 생활총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일일총화도 있고, 2일총화, 주간총화 등이 있어 이 시간에는 자기 총화, 상호총화를 통하여 좋은 일들은 격려하고 부족한 일들은 서로 지적하여서 자발적으로 고치도록 하는 제도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북동포들은 대부분 아는 것이 많다. 심지어는 15살짜리 어린 이북 소년소녀들도 미국의 선거에 대하여 자본주의의 이모저모에 대하여 많은 지식들을 갖고 있었다. 평양의 한 중학교에서는 <줄기세포>와 인공위성 원리를 공부하는 장면도 목격했다. 이들의 영어교실에는 재미동포들 못지 않게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학생들도 보았다.

이북동포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거의가 <인테리>처럼 느껴졌다. 이들은 지식뿐만 아니라 농담도 잘하면서 때로는 육담도 잘한다. 이들은 그러면서도 도덕적으로 순결했다. 한가지는 이북여성들 가운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단정했고 예절도 반듯했다. 몸가짐 하나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단정했다. 이북동포들은 또한 남녀모두가 순수했다. 기자가 이북을 방문하기 시작하여 이곳을 다닌 숫자는 무려 40여 차례가 넘는 것 같다. 이번에는 9.9절을 전후하여 2주 동안 이곳 저곳을 방문하며 이북동포 남녀노소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아직도 이북동포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은 것 같다. 이것이 이번 방북취재 기간에 배우며 느낀 솔직한 고백이다.
===========

[9.9절 방북취재-7]북녘 동포들 대부분 <인테리>


<아리랑>대집단체조예술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주차장에 모인 이북동포들-민족통신 자료



멋진 옷을 입은 손녀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는 할머니-민족통신 자료



만수대 김일성 주석 동상에서 9.9절 기념 인사를 올리기 위해 기다리는 동포들-민족통신 자료



애견을 데리고 아침 산책을 즐기는 이북동포-민족통신 자료



가족들과 옥류관에 들러 점심을 나누는 이북동포들-민족통신 자료



모란봉 산 속에서 도시미화를 위한 돌벽을 만들고 있는 노동자들-민족통신 자료



평양 시내 한 공원에서 청춘남녀들 쌍쌍이 교제하는 모습-민족통신 자료


----


북녘동포들의 통일염원은 뜨거웠다. 그 열풍은 북녘 사회 구석구석에 가득차 있었다. 민족통신 편집인 노길남 박사는 최근 2주동안의 방북취재 기간 재외언론인들, 재미동포들과 함께 평양을 비롯하여 향산, 량강도 삼지연, 개성 등 여러 곳들을 방문하며 각계 각층의 동포들을 만났다. 이번에도 이들의 통일염원 열풍은 북녘 사회 전 지역을 뒤덮고 있었다고 편집인은 전한다. 그는 이번 방북취재기(8)에서는 "북녘에서 느낀 <통일염원>열풍"에 대해 썼다. 이번 방문기 여덟번째를 소개한다고 민족통신 편집실은 알렸습니다. 이에 소개합니다. -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웹사이트








<아리랑>집단예술공연을 통해 분출된 북녘동포들의 뜨거운 <통일염원>-민족통신 자료

[9.9절 방북취재-8]북녘에서 느낀 <통일염원> 열풍




[평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북녘 동포들이 해외동포들을 만나면 가장 좋아하는 어휘가 있다. 그것은 바로 <통일>이라는 두 글자이다. 이들은 <통일>이라는 어휘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통일>을 아주 뜨겁게 갈망한다. 이런 현상은 <통일운동>을 하는 일부 계층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로부터 똑 같이 나타난다.



<10 .4="">을 형상화한 장면에서도 북녘동포들의 통일열풍이 표출된다.-민족통신 자료
기자가 방북취재를 할 때 마다 한결 같이 느껴온 것은 북녘 동포들의 통일열풍이다. 이번 9.9절 60주년 방북취재 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통일열풍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따로 없었다. 1년 365일 언제 어느 때나 <통일열풍>은 북녘에 가득 차 있었다.

9.9절 행사 어느 부문에서도 <통일>의 두 글자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9.9절 60주년을 총화하며 새로운 결의를 다지는 정치지도자들의 연설에서도, <아리랑>대 집단체조 예술공연에서도, 집단체조 <번영하라 조국이여>에서도, 그리고 종합예술공연과 개별적 대화에서도 <통일>이란 어휘는 언제나 중요한 쟁점으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인위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절절한 가슴으로 그리고 진정 어린 염원에서 분출되고 있었다.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은 물론 노동자들과 농민들을 비롯하여 청년학생들과 학교 교원들과 교수들, 그리고 불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종교인들과 만날 때 마다 언제나 느끼는 공통점이다.

북부조국은 통일염원 열풍의 진원지였고, 민족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고향이기도 했다. 북녘에는 또 백두밀림의 항일유격대의 사령부가 있었고, <선군정치>로 제국주의 침략을 막아 온 평화의 산실이 있었다. 그래서 <민족대단결>의 구호가 여기 저기서 발견되었다. 이곳 북녘은 쑥섬을 비롯하여 조국해방 이후 범민족대단결의 요람인 동시에 한 세대에 두 제국주의를 타승하고 제3세계로부터 추앙 받는 인류사회의 자주시대를 창조한 향도이며 6.15자주통일시대의 등대이고, 10.4선언 이행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이러한 통일염원의 열풍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 뿌리는 오랜 세월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 난 것이었다. 그래서 북녘 동포들은 <김일성 수령님(주석님)의 유훈은 조국통일>이라고 강조한다.



평화통일을 형상화한 <아리랑>작품의 한장면-민족통신 자료
이것은 북녘의 민족철학에서도 반영된다. 김일성 주석의 민족대단결 사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민족대결론으로 승계되어 그 이론적 완성을 보게 되었다. 이것은 북부조국의 국가발전전략의 사상적 지주로 일관되어 왔고 이 사회의 강위력한 힘으로 그리고 온 사회의 일심단결로 구현되었다. 항일투쟁시기와 분단시기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형성되고 완성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민족대단결론>은 사물의 발전원인을 대립물의 모순에서 찾았던 맑스-레닌주의의 철학의 모순론이 아니라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철학의 원리와 사회의 발전원리가 단순히 계급투쟁이 아닌 민중의 단결력에 근거해야 한다는 사회역사원리에 그 세계관적 기초를 두고 있다는 사실도 이번 방북취재를 통하여 다시 한번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집단체조와 <아리랑>집단예술 공연들을 감상하면서도 <우리민족끼리> 사상을 형상한 작품들의 중요부분들을 통하여 북녘 지도자나 동포들이 얼마나 통일을 염원하고 갈망하고 있는가를 통절히 접할 수 있었다. 평양에서 개성으로 뻗어 나가는 길, 개성에서 평양으로 들어오는 길에 설치된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을 보면서도 북녘동포들의 뜨거운 통일염원을 접할 수 있었다.

식당의 봉사원들을 만날 때나 청량음료수 접대원들을 만날 때, 길목에서 지나는 행인들을 만날 때 해외에서 통일 운동하는 언론인이라고 소개하면 그들의 표정은 언제나 다정했고 반겨 맞아 주었다. 북녘동포들은 이렇게 <통일>을 좋아했고, 뜨겁게 갈망했다.

어떤 이들은 북녘의 동포들을 가리켜 이질적이라고 말해 왔지만 처음 방문하는 해외동포들도 진심으로 통일을 원하고 바라는 마음으로 이들을 만나면 한 시간도 되지 않아 혈육처럼 친해지고 가까워지는 광경들을 많이 관찰 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통일>을 원하는 해외동포들이라면 언제라도 이들과 친숙해 질 수 있었다. 9.9절 행사 대표단으로 참석한 대부분의 해외동포들은 이미 <통일의 삶>을 살아 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북녘 동포들과 어울릴 때 언제나 혈육을 만나는 모습들이었다. 해외동포들과 북녘 동포들은 비록 사상과 이념, 신앙과 정견이 다르고, 체제가 다른 사회에서 살아 왔지만 이들이 모두 한데 어울려 허심탄회하게 형제자매처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염원한다는 공통점과 그것을 위하여 우리 민족끼리 <대단결>을 하여야 한다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김일성 주석의 유훈은 조국통일>-해외언론인들과 함께-민족통신 자료
북녘 동포들은 그 누구도 해외동포들에게 사회주의를 강요하지 않았다. 이들은 또 재미동포들이 기독교 신자가 많다는 것을 이해하고 일요일이 되면 봉수교회나 칠곬교회, 또는 천주교회에 가지 않겠느냐고 먼저 제의해 오곤 했다.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재미동포 김성락 목사(전 숭실대학 총장)의 접견을 받고 식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 때 김 주석은 김 목사에게 식사기도를 제의 하였다고 해 이 사실이 해외동포사회에 널리 알려져 한 때 화제거리가 된 일화도 있다.

그리고 북녘동포들은 조국통일의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마다 언제나 <연방제>를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답변해 왔다. 이들은 “우리 공화국이 남측을 보고 사회주의를 해야 한다고 하면 말이 되겠는가. 그리고 남측이 우리보고 개방이니 뭐니 하면서 자본주의를 해야 한다고 하면 말이 되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서로의 이념과 체제를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만 <통일>이 가능하지 않은가라고 말한다. 기자는 이 말에 대해 반박할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왜냐하면 서로의 것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결국에 다툼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6.15선언 제2항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합의한바 있었다.

사실상 남북 최고지도자들은 6.15남북공동선언과 10.4남북정상선언을 통해 이미 자주적 평화통일의 문으로 들어섰던 것이다. 이미 조국의 평화통일 시대는 시작되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북녘 동포들의 한결 같은 마음이었다. 기자는 9.9절 방북취재를 위해 2주 동안 북녘에 머물면서 그와 같은 북녘동포들의 뜨거운 통일염원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설움과 40년의 암흑시대를 형상화한 <아리랑>작품의 한 장면. 그 역사의 뒤에는 바로 미-일음모(가쯔라-태프트 밀약)가 있지 않았는가-민족통신 자료



북부조국은 한 세대에 두 제국주의를 타승한 것을 긍지 높게 자랑하고 있다.-민족통신 자료



북녘의 기독교 신자들과 해외동포들은 9.9절행사 기간 봉수교회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예배를 드렸다. 봉수교회 집사의 애절한 <통일염원>기도와 손효순 담임목사의 찡하는 설교에 해외동포들은 모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조국의 평화통일>을 간구했다. -민족통신 자료----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