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18

애니메이션감독 눈에 비친 일본군 '위안부' - 뉴스앤조이

애니메이션감독 눈에 비친 일본군 '위안부' - 뉴스앤조이

애니메이션감독 눈에 비친 일본군 '위안부'
[인터뷰] '소녀에게' 제작한 김준기 감독

최유리 기자 (cker333@newsnjoy.or.kr)
승인 2017.07.1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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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김준기 감독(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교수)은 9년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에 관한 작품을 만들었다. 정서운 할머니 이야기가 담긴 단편 '소녀 이야기'부터, 군국주의를 주제로 다룬 '환', 일본군 할아버지 관점에서 전쟁과 '위안부' 이야기를 풀어낸 '소녀에게'까지 애니메이션 3편이다. '소녀에게'는 올해 6월 온라인에 공개됐다.

애니메이션은 3D이고 당사자 육성이 직접 나오는 형식이다. 사람들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폭발적인 관심은 아니었지만, 영화는 알음알음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애니메이션을 공유하며 소감을 덧붙였다. "짧은 애니메이션, 하지만 짧지 않은 '소녀 이야기'", "한국인이라면 꼭 봐야 할 단편 애니메이션", "'위안부' 할머니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 많이 만들어져 세계에 좀 더 알려졌으면"이라고 감상평을 남겼다.

10년 가까이 한 주제를 다루는 것도 힘든데, 무거운 주제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소재로 삼았던 이유가 궁금했다. 김 감독은 그간 어떤 마음으로 세 작품을 만들었을까. 7월 13일 '소녀 이야기', '환', '소녀에게'를 제작한 김준기 감독을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에서 만났다. 그에게서 작업 계기부터 최근작 '소녀에게'를 만들면서 느꼈던 아쉬움과 단상을 들을 수 있었다.

'위안부' 할머니를 주제로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든 김준기 감독을 만났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10년 가까이 한 주제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할머니들 이야기에 관심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는 1993년 처음 듣게 됐다. 그때부터 마음의 짐 같은 게 생겼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 증언을 한 뒤, 할머니들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기 시작했다. 여러 마음이 들었다. 나는 당시 만화를 배우고 있던 학생이었고, '내가 하고 있는 일로 이 일을 다룰 수 있을까'라고 혼자 생각했다. 보통 예술가들은 인상적인 일을 경험하면 그것을 자신의 재능으로 풀어내고 싶어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소설로,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음악으로. 나는 만화를 공부했으니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학교를 졸업한 뒤 회사에 취업했는데, 회사에서는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서 학생들과 작업하는 프로젝트를 맡았다. 이 주제를 학생들과 작업하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진행하게 됐다. 총 세 작품을 만들었는데, 한 작품당 제작 기간이 3년 정도 걸린 거 같다.

- 애니메이션 러닝타임이 15분 이내인데, 꽤 오랫동안 만들었다.

스토리 보드를 짜기 위해서는 자료 수집을 해야 한다. 기초 자료 수집에만 6개월 정도 걸린다. 그 이후 작품을 구상하면서도 계속 자료를 모은다. 첫 작품은 정서운 할머니 이야기를 담은 '소녀 이야기'였다.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자료를 구하러 갔는데 쉽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한 게, 작업하는 사람 중에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았던 거 같다.

할머니들 이야기로 창작물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정대협이 도와줬는데 결과물이 좋지 않았던 적이 꽤 있었나 보다. 그러니 내가 갔을 때도 반응이 좋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정대협도 이전까지 애니메이션이라는 포맷은 본 적이 없어, 콘셉트를 이야기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본격적인 작업을 하기 전, 4분 길이로 김복동 할머니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이 영상을 보고 정대협도 적극적으로 작업에 호응해 줬다.

- 첫 작업물에서 정서운 할머니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정서운 할머니를 염두한 건 아니었다. 기획할 때는 영상에 할머니 육성이 들어가는 콘셉트만 생각했다. 정대협에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할머니들 건강도 좋지 않으셨고, 남성인 나에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는 것도 오래 걸릴 거라고 했다. 정대협이 대신 1990년대에 할머니들 이야기를 녹취한 게 있으니 그것을 제공해 주겠다고 했다.

결국 녹취록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여러 할머니들 중 가장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신 분의 사례를 쓰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정대협에 문의한 게 2008년이었는데, 정서운 할머니는 이미 작고한 상태였다. 내가 뭔가를 연출하거나 원하는 사례를 다시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녹취를 들으면서 녹음 상태가 안 좋아 많이 아쉬웠다. 할머니가 당시 겪은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옆에서 개 짖는 소리, 애들 뛰어노는 소리가 들린다. 감독 입장에서는 더 깔끔한 음성을 제공하고 싶었지만 작고하셨으니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할머니 목소리를 더빙하면 더 의미가 없어지고. 결국 한글 자막을 넣더라도 정서운 할머니의 육성 파일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 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 다룬 애니메이션 '소녀 이야기'와 '소녀에게'를 만들었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소녀 이야기'를 만들면서 생각이 많았다. 정서운 할머니 이야기를 담았는데 부정적인 댓글이 많았다. 일본 우익 단체는 물론 일부 사람은 "할머니들은 직업여성이었다"고 말했다. 일본은 문제가 없다는 식이었다. 일방적으로 그녀 말만 들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일본군을 무조건 나쁜 놈이라고 말하고. 이런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쟁·군국주의처럼 큰 담론에 대한 문제 제기 없이 이 모든 상황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닌 거 같았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일본 사람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도 소수지만 당사자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 중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깊이 사죄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들과 함께 이 문제를 풀어 가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소녀에게'의 경우에는 일본군으로 활동했던 할아버지들의 입을 빌렸다.


- 어떤 사람들은 일본군 할아버지들이 당시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피해 사실을 미화할 여지를 준다고 본다.

그것이 미화가 되겠나. 물론 전쟁 상황에서 누구라도 잔인해지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런 게 전쟁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한 사람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그 프레임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증언해 주신 분께는 고맙지만, 전혀 미화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김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느꼈던 것들을 이야기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일본에서 실제로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어땠나.

작업하면서 아쉬웠다. 일본군 할아버지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해 줬으면 좋겠는데 하지 않더라. '소녀에게'는 '위안부' 문제와 함께 전쟁 때 일본군이 했던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다. 훈련 목적으로 중국 사람 목을 베거나, 사람을 나무에 묶어 두고 칼로 찌르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가 있는 '위안부' 여성이 부대에 왔는데, 애가 계속 울자 장교가 애를 낭떠러지 아래로 던지기도 한다.

전쟁의 참혹성을 그렸다. 사실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더 많이 다루고 싶었는데, 그들이 이야기하지 않아서 그럴 수 없었다. 당사자들이 전쟁 학살은 잘못됐다고 참회하는데, '위안부'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어봐도 대충 얼버무렸다. "전쟁 때는 그렇지. 15명이 모여 있다가 일주일에 몇 번 장교가 데려가면 위안소에 출입했지" 등으로만 말하더라. 당시 본인은 일반 사병이였으니까 '위안부' 할머니들이 돈 받고 일한 줄 알거나 다시 자기 고국으로 잘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들 기억과는 달랐다. 실제로 자료와 할머니들 증언에 따르면, 일본군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할머니들을 죽이기도 했다.

- 말한 것처럼, 일본군 할아버지 중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참회했던 사람도 있지 않았나. 그런 분은 섭외하기 어려웠나.

그렇다. 나도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런 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군 할아버지들이 증언은 해 줬는데 자료로 정리해 둔 게 없었다. 가해자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데 녹취를 안 해 놓은 거다. 증언해 주실 분을 찾는 게 어려웠다. 이미 돌아가신 분도 많았고. 이런 건 정부가 나서서 해 줘야 하는 것인데 잘 되지 않았다. '위안부' 할머니들 녹취 사업도 그렇고 좀 더 전문적으로,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 계획하고 있는 작품은 있나.

기회가 생기면 이제 누구보다 잘할 자신은 있다. 또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는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하게 된다면 한국 군인들이 베트남전쟁에서 베트남 여성들에게 저지른 일들까지 다루고 싶다. 그런데 너무 힘들 거 같다. 지금까지는 나 스스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거라고 여기며 작업했다. 그러나 페스티벌에서 이 영화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영화가 배급되지도 않는다.

일단 나는 마음의 짐을 덜고 싶어 세 작품을 했고, 이제서야 하고 싶은 일을 마무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누차 말하지만 이런 일은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리가 문화로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계속 사과하고 배상을 약속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9년간을 후회하지 않고 잘할 자신도 있지만, 이제는 기회가 생겨도 고사할 것 같다.


김준기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은 유튜브에서 '소녀 이야기', '환', '소녀에게'를 검색하면 무료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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