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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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쭝즈의 <중국의 감춰진 농업혁명>은 여러모로 참 재밌는 책이다.
내가 주로 관심을 보이는 명청시대 사회경제사 연구자들은 명청시기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부정하는 이 책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에 담긴 정치적 전망이랄까, 중국 사회발전에 대한 입장이랄까 이런 것은 상당한 파괴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 일본 등과 같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이 다소 서구 의존적인 형태의 경제발전인 외자 의존 - 수출주도형 경제발전을 취했다면 중국은 외자 대신 내부 자원을 동원하는 형태의 경제발전을 취했다. 농촌에 대한 대대적인 착취가 그것이다. 소련의 스탈린 혁명과 마찬가지로 농촌의 잉여를 협동조합 - 인민공사 등의 형태로 동원하여 공업개발을 이뤄내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경제개발과정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농업에서의 생산력의 증대가 필수적이다. 보다 적은 노동력으로 보다 많은 도시의 인구를 부양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임금 상태를 유지하여 높은 이윤율을 얻기 위해서라도 농업에서의 생산력 증대를 통해 값싼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1950~80년까지의 중국은 명청시대와 마찬가지로 내권화가 진행되어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내권화(內卷化)란 involution을 번역한 것으로 한계생산성의 체감에도 불구하고 토지에 대한 노동력의 과다한 투입 증대를 통해 생산량의 확충을 꾀하는 농민들의 대응방식을 말한다. 그 결과로 총생산량은 늘어나도 1인당 생산액과 한계생산액이 떨어져 사실상 농민의 소득은 줄어들고 저임금 형태로 존재하는 과잉인구가 가득한 사회가 되어버린다. revolution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가 인도네시아 농민들을 분석하며 사용한 개념이다. 기본적으로 중국은 토지는 적은데 인구가 과잉이라 잉여노동력이 많았고 그런 잉여노동력을 투여하여 얻어낼 수 있는 생산성의 증대는 더디기만 했다. 서구와 같은 자본집약적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한 결과 중국의 경제발전에 질적 전환이 없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에 공업화 비용을 전가하니 기아가 창궐할 수밖에 없다.
이 내권화는 1980년대 이후 중국 경제의 발전 속에서 끊어졌는데 서구의 학자들이 주로 인민공사의 해체를 통한 가족농의 부활에 따른 근로의욕의 증진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면 황쭝즈는 그러한 주장을 격렬하게 반박한다. 그는 도시의 발달에 따른 농업 생산물에 대한 수요의 확충을 대단히 강조한다. 특히 인민들의 소비 욕구가 다양화됨에 따라 농민들이 고부가가치 상품을 생산할 유인이 생겼다는 점을 강조한다. 쌀만 먹다가 계란, 우유, 고기 등의 다양한 상품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내권화의 고리는 끊어지기 시작했고 생산력은 증대되기 시작했다.
생산력 차원에서만 긍정적인 효과를 낳은 게 아니라 산업의 다변화로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져 기존의 농촌 과잉인구 또한 해소되기 시작했고 도시로 나간 농민공의 실업 문제 또한 농촌이 해소시켜줄 수 있어 사회적으로도 대단히 긍정적인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농촌을 쥐어짜내 경제개발을 이뤄내던 중국식 경제발전은 개혁개방 이후에는 아예 사회적 안전망 역할까지 농촌이 해내면서 사실상 농촌의존적인 경제발전 유형의 질적 전환을 이뤄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황쭝즈는 토지사유화에 집착하는 신고전파적 관점을 비판하며 농촌과 도시 간의 균형발전, 조화로운 관계를 설정할 것을 주장한다. 이미 중국경제는 앞서 말했듯이 농촌에 지대한 의존관계를 갖고 있는 상황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이 갖고 있는 기반을 토지사유화 같은 것으로 해체시킨다면 중국 경제는 사실상 망해버릴 것이다.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중국에 적용되어서는 안된다.
미국과 중국의 좌파적 입장들과 대립하면서도 황쭝즈의 결론은 대단히 (중국식) 좌파적이다. 그는 사회주의의 중국 통합과 국가적 개입, 그리고 공유적 기초야말로 농촌과 도시 간의 격차를 메울 수 있는 조건이라 본다는 점에서 중국 공산당의 영도에 찬성하는 편이다. 나는 이 지점에 오면 그의 주장에 다소 실소를 금할 수 없게 되는데 황쭝즈의 논리를 살펴보았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역시나 도시의 발달에 따른 소비구조의 다변화이다. 농촌의 과잉인구와 과잉생산물을 소비할 수 있는 도시의 존재가 농촌의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을 형성했다면 반대로 중국 농촌의 질적 발전을 위해서라도 농수산물 생산 및 소비의 국제화, 세계시장으로의 진출이 훨씬 더 중요한 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 그는 공산당 영도 자체를 부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상 그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사회주의적이고 폐쇄적인 경제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산당의 영도를 제하면 사실 굳이 이런 식으로 할 필요가 없다. 황쭝즈의 주장에 다소 비아냥거려보자면 그는 중국 공산당한테 도시 몇 개 더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폐쇄적인 중화 세계 내에서의 조화, 질서, 균형 등을 주장하는 그의 입장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중국의 진정한 힘은 세계시장에서의 위치에서 나오지, 도시 몇 개 더 만든다고 중국 농촌의 번영이 도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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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감춰진 농업혁명 |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아시아 근현대사 총서 1
황쭝즈 (지은이),구범진 (옮긴이)진인진2016-06-27원제 : 中國的隱性農業革命 (2010년)
중국의 감춰진 농업혁명
정가
25,000원
418쪽
책소개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아시아 근현대사 총서 1권. 개방 이후 중국 경제발전의 전망을 농업의 관점에서 제시한 책이다. 중국 농업경제의 발전과정을 다룬 1편과 현대 중국경제의 현황과 전망을 제시한 2편으로 구분되어 총 11개 장으로 구성되었다.
1편은 18세기 영국과 중국의 농업 시스템을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중국의 경우 '발전없는 성장' 양상으로 농업생산력 발전의 성과가 상쇄되고 있는 현상을 기술하고 있다. 중국의 농업혁명은 개방 이후 '감추어진'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농업 자체의 생산력 발전이 아니라 근대화에 따라, 환금성이 높은 고급 농산물의 수요 증가에 기인한다는 것이 저자가 주목하는 핵심적인 현상이다.
2편에서는 광범한 도시화와 근대화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게 존재하는 비정규 경제와 소자산계급 및 중간계층으로 특징되는 중국 경제의 특성을 분석하였고, 도시와 농촌 사이에 존재하는 공공서비스의 격차를 줄이고, 농업 생산에 있어서 소농장을 기본 생산단위로 하는 합작화된, 고소득의 지속 가능한 농업 시스템 구축을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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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15
제1편 내권에서 감춰진 농업혁명으로
제2장 18세기 영국과 중국 : 두 가지의 농업 시스템과 그 변천 55
제3장 중국 소농경제의 과거와 현재 : 슐츠 이론의 잘잘못 112
제4장 토지제도, 농업 시스템, 그리고 발전 출로 145
제5장 3대 역사적 변화의 합류와 중국 소규모 농업의 앞날 174
제6장 중국의 감춰진 농업혁명 209
제7장 중국의 신시대 소농장과 그 수직일체화 : 선도기업인가, 아니면 합작조직인가? 226
제2편 현대 중국의 사회형태
제8장 중국의 홀시되는 비정규경제 : 현실과 이론 261
제9장 중국의 소자산계급과 중간계층 : 역설적 사회형태 305
제10장 좌·우의 분기를 뛰어넘어 : 실천 역사로부터의 개혁 모색 330
제11장 결론 : 실천에서 출발하는 경제사와 경제학을 향하여 355
참고문헌 379
역자 후기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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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황쭝즈 (黃宗智) (지은이)
최근작 : <중국의 감춰진 농업혁명> … 총 5종 (모두보기)
구범진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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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 재직 중이다. 주요 저역서로는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조선시대 외교문서』, 『최후의 황제들』, 『중국의 감춰진 농업혁명』 등이 있다.
최근작 :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조선시대 외교문서>,<국역 동문휘고 범월 사료 4> … 총 19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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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개방이후 중국 경제발전의 전망을 농업의 관점에서 제시한 황쭝즈 교수의 『중국의 감춰진 농업혁명(中國的隱性農業革命,2010)』 번역.출간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아시아근 현대사 총서 1권입니다.
저자인 황쭝즈(黃宗智, Philip C.C. Huang) 교수는 오랫동안 미국학계에서 활동하다가 2004년 정년퇴직 이후 북경의 인민대학에서 새롭게 부임하여 중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경제사 및 법률사 학자로서, 이 책을 통해 중국경제 발전에 대한 고유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감춰진 농업혁명』은 중국 농업경제의 발전과정을 다룬 1편과 현대 중국경제의 현황과 전망을 제시한 2편으로 구분되어 총 11개 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편은 18세기 영국과 중국의 농업 시스템을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중국의 경우 특유의 ‘인구압’의 영향으로 1인당 단위 생산량 증가가 정체되는 ‘발전없는 성장’ 양상이 명.청 시대 이래 600년간 지속되고 있으며, 이러한 양상은 여타지역에서 농업생산력 발전의 성과가 상쇄되고 있는 현상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농업혁명은 개방 이후 ‘감추어진’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농업 자체의 생산력 발전이 아니라 근대화에 따라, 환금성이 높은 고급 농산물의 수요 증가에 기인한다는 것이 저자가 주목하는 핵심적인 현상입니다.
2편에서는 광범한 도시화와 근대화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게 존재하는 비정규 경제와 소자산계급 및 중간계층으로 특징되는 중국 경제의 특성을 분석하였고, 도시와 농촌 사이에 존재하는 공공서비스의 격차를 줄이고, 농업 생산에 있어서 소농장을 기본 생산단위로 하는 합작화된, 고소득의 지속 가능한 농업 시스템 구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미국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학술활동의 주무대도 미국이며, 주요 저작들 역시 영어로 작성되었는데, 『중국의 감춰진 농업혁명』은 2004년 이후 작성된 중국어 저작으로서 서구적 시각에서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을 담은 이채로움이 더해진 저작이라 하겠습니다.
아시아 근현대사에 대한 기본 역사연구 성과 번역을 기획한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의 ‘아시아근현대사 총서’ 시리즈의 첫번째 기획으로 발간된 『중국의 감춰진 농업혁명』은 농업 경제사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근대역사 이해의 깊이를 더해주는 계기가 될 것 입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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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감춰진 농업 혁명
개방이후 중국 경제발전의 전망을 농업의 관점에서 제시한 황쭝즈 교수의 『중국의 감춰진 농업혁명(中國的隱性農業革命,2010)』 번역∙출간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아시아 근현대사 총서 1권입니다.
저자인 황쭝즈(黃宗智, Philip C.C. Huang) 교수는 오랫동안 미국학계에서 활동하다가 2004년 정년퇴직 이후 북경의 인민대학에서 새롭게 부임하여 중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경제사 및 법률사 학자로서, 이 책을 통해 중국경제 발전에 대한 고유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감춰진 농업혁명』은 중국 농업경제의 발전과정을 다룬 1편과 현대 중국경제의 현황과 전망을 제시한 2편으로 구분되어 총 11개 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편은 18세기 영국과 중국의 농업 시스템을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중국의 경우 특유의 ‘인구압’의 영향으로 1인당 단위 생산량 증가가 정체되는 ‘발전없는 성장’ 양상이 명∙청 시대 이래 600년간 지속되고 있으며, 이러한 양상은 여타지역에서 농업생산력 발전의 성과가 상쇄되고 있는 현상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농업혁명은 개방 이후 ‘감추어진’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농업 자체의 생산력 발전이 아니라 근대화에 따라, 환금성이 높은 고급 농산물의 수요 증가에 기인한다는 것이 저자가 주목하는 핵심적인 현상입니다.
2편에서는 광범한 도시화와 근대화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게 존재하는 비정규 경제와 소자산계급 및 중간계층으로 특징되는 중국 경제의 특성을 분석하였고, 도시와 농촌 사이에 존재하는 공공서비스의 격차를 줄이고, 농업 생산에 있어서 소농장을 기본 생산단위로 하는 합작화된, 고소득의 지속 가능한 농업 시스템 구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미국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학술활동의 주무대도 미국이며, 주요 저작들 역시 영어로 작성되었는데, 『중국의 감춰진 농업혁명』은 2004년 이후 작성된 중국어 저작으로서 서구적 시각에서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을 담은 이채로움이 더해진 저작이라 하겠습니다.
아시아 근현대사에 대한 기본 역사연구 성과 번역을 기획한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의 ‘아시아근현대사 총서’ 시리즈의 첫번째 기획으로 발간된 『중국의 감춰진 농업혁명』은 농업 경제사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근대역사 이해의 깊이를 더해주는 계기가 될 것 입니다.
개방이후 중국 경제발전의 전망을 농업의 관점에서 제시한 황쭝즈 교수의 『중국의 감춰진 농업혁명(中國的隱性農業革命,2010)』 번역∙출간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아시아 근현대사 총서 1권입니다. 저자인 황쭝즈(黃宗智, Philip C.C. Huang) 교수는 오랫동안 미국학계에서 활동하다가 2004년 정년퇴직 이후 북경의 인민대학에서 새롭게 부임하여 중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경제사 및 법률사 학자로서, 이 책을 통해 중국경제 발전에 대한 고유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
저자
황쭝즈 지음, 구범진 옮김
발행
진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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