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5

Park Yuha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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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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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평화롭게 보낼 수 있는 사람들도 가슴 한켠 어딘가에는 이런 일도 담아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 주에 한 작품씩 다루었던 이번 학기 강의에서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두 작품 다루었었다. 한국에서도 꽤 알려진 <게공선>(이건 <게공장선>으로 번역 했으면 좋았을 뻔 했다)과<시멘트 통 속의 편지>.
그런데 학생들의 반응은 둘로 갈렸다.
“일본에 학대받는 노동자가 있었다고요? 더구나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일본에도 있었다고요? 놀랍습니다!”
“이건 사회주의 아닌가요? “(혹시 교수님은 세뇌 목적으로 이런 작품을 다루는 거 아닌가요?
)

양쪽에 대해서 적절한 대답을 했으므로 양쪽 다 결국은 얻어 가는 게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새삼 우리 사회의 분열과 주어진 대상에 대한 접근태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체험이었다. 사회주의니 뭐니 하는 이름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연민과 고통을 느껴야 할 국면에서 아직 유연해야 할 학생들이 ‘나중에’ 이름 붙여진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거부하려 하거나 ‘일본’에 대한 편견을 가감없이 드러냈던 장면. 

그런 와중에 포천 이주노동자가 동사했다는 보도까지 봐서 착잡하던 참이었다. 후속 보도를 보니 이 또한 행정미비 문제인 것도 같다. 하지만 누가 해야 했든 노동은 시키면서 인간으로서의 최소환경을 제공하는 일에 게을렀던 건 분명. 고용인이든 정부든 부끄러워 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책임을 져야 한다. 

전에도 썼지만,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징용판결도 ‘임금’투쟁이 아니라 차별과 학대에 대한 ‘위자료’청구다. (그런데 이런 보도를 조선일보밖에 하지 않았다는 건 정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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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한국의 태국 노동자, 5년간 522명 숨져”… 유엔 ”우려된다”
지난 5년간 국내에서 사망한 태국 국적의 이주 노동자가 5년간 500명이 넘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유엔은 이에 대해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밝혔고, 우리 정부는 답변을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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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한국의 태국 노동자, 5년간 522명 숨져”… 유엔 ”우려된다”
톰슨로이터재단 주장
우리 정부는 수치에 답변 거부
김은중 기자
입력 2020.12.23 14:06
지난 5년간 국내에서 사망한 태국 국적의 이주 노동자가 5년간 500명이 넘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유엔은 이에 대해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밝혔고, 우리 정부는 답변을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전경. /조선일보DB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전경. /조선일보DB
22일(현지 시각)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주 한국 태국 대사관이 정보 열람을 통해 데이터를 확보한 결과 2015년부터 한국에서 적어도 522명의 태국 국적 이주 노동자가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84%가 거주나 취업을 위한 허가증이 없는 ‘밀입국(undocumented)’ 신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태국 노동자가 283명이 숨졌는데, 이는 한국 내 외국 노동자들 중 가장 많은 것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약 40% 정도가 건강이나 사고, 또는 자살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과로와 함께 건강보험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한 것이 높은 사망률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삼열 아산이주노동자센터(AMWC) 매니저는 “비자가 없으면 의료 보험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고 병원에서 수술받는데도 1000만원이 넘게 든다”며 “많은 밀입국 노동자들이 아파도 참는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유엔 국제이주기구(UN IOM)는 이런 수치에 대해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외교부와 방콕의 주태국 한국대사관, 법무부와 노동부는 모두 이번 자료에 대해 언급을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태국에선 매년 46만명이 합법, 불법 경로를 통해 외국으로 일하러 나간다고 태국 외교부는 밝혔다. 이들 중 한국이 제1의 도착지로, 약 18만5000명이 근무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는 공장이나 농장 등에서 일하며, 태국 최저임금의 3배가 넘는 월 1100달러 정도(약 120만원)를 벌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이터는 이들 중 다수가 어렵고 위험한 작업 현장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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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崔明淑, 이소 and 134 others
18 comments
Park Yuha

https://m.khan.co.kr/amp/view.html?art_id=202012241236001...


M.KHAN.CO.KR
포천 이주노동자 사인은 간경화…농민 "숙소 해결 지자체가 나서야"포천 이주노동자 사인은 간경화…농민 "숙소 해결 지자체가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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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이주노동자 사인은 간경화…농민 "숙소 해결 지자체가 나서야"
포천 외국인노동자 사망 숙소|전현진 기자
포천 외국인노동자 사망 숙소|전현진 기자
윤지원 기자
2020.12.24 12:36 입력 
지난 20일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캄보디아 국적 이주노동자의 사망 원인이 간경화로 확인됐다. 고장난 난방 시설은 직접적 사망 원인은 아니었다.

경기 포천경찰서는 24일 이주노동자 A씨(30) 시신에 대한 부검 결과 간경화에 의한 간손상이란 1차 소견이 나왔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20일 오후 4시50분쯤 경기 포천시 일동면의 농장 비닐하우스 방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 숨진 채 발견됐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는 23일 “사망 당시 비닐하우스 숙소에 난방 시설은 고장난 상태였고 일동면 지역은 최저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내려갔다”며 “한파로 동사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A씨가 평소 간경화로 병원 진료를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A씨 동료들은 김 목사 측에 “사망하기 전에 어깨 등이 아파 감기약을 복용했었다”며 “평소 건강이 나쁘지 않았다”고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정규 변호사는 “지역건강보험 의무화가 되었지만 보험금이 월 13만원 등으로 비싸기 때문에 가입을 안하는 노동자가 많다”며 “이주노동자의 주거권과 건강권 모두 문제”라고 말했다. 포천시는 전날 A씨와 같은 비닐하우스에서 머무는 동료 4명에게 심리 치료 및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는 사실 등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장주들은 이주노동자에게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통과 주거시설 여건이 열악한 농가에서 이주노동자를 위해 개별적으로 숙소를 짓거나 교통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다.

포천에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또 다른 농민인 장기영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연립주택이나 아파트를 빌리려고 해도 임대인들이 주거 시설 관리 능력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이주노동자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며 “지자체가 공동 기숙사를 만들어 제공한다면 농민이 교통을 부담하는 방안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비닐하우스는 국내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대표적인 기숙사로 꼽힌다. 농지 한복판에 설치한 비닐하우스 안에 조립식 패널이나 컨테이너로 임시 가건물을 만들어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통상 이주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에 살면서 월 20만~30만원 가량을 숙박비로 농장주에 지불한다.

원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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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이 기사의 존재를 알려 주신 분의 포스팅.
https://www.facebook.com/10000.../posts/3454315744622056/...

Thomas Park

Park Yuha 이 포스팅이 content not found로 나옵니다. 참고하시라고..^^


Cho Jung-Kwan

학생운동하던 시절에 '게공선'을 읽어보려다가 말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는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 좌파와 연관된 글들을 읽는게 유행이었죠. 주사파가 운동권 내 지배력을 갖기 이전에, 즉 오래된 학번들 사이에서는 특히 그랬습니다.


Park Yuha

조정관 오, 그러면 그 당시에 꽤 알려진 작품이었나요? “ 7일 만에 배우는 일본어”, 이런 책이 유행 했다는 건 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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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 Jung-Kwan

박유하 서클 들어오면 1학년 마치기전에 일본어부터 가르쳤습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겨울방학 때 으슥한 산속 오두막에서 엠티하면서 집중 교육을 받았죠. 일년 선배였던 79학번이 가르쳤는데 ㅎ 나중에 노무현 청와대에서 중책을 맡았던 (이름 들으면 다 아는) 분입니다. 맞아가며 ㅎ 교육받았어요. 옛날 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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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조정관 그랬군요. 일본어를 교육수단으로 사용하면서도 토착왜구가 되지 않는 교육도 한 모양이네요. 그 이후를 보면.^^
때려가면서 교육했다니 모든 것의 본질이 거기 있는 거 같기도 하네요. 이런 이야기 가끔써주세요.^^



이상노

슬픈 우리 사회의 일면입니다. 그런데 다문화가정이 일반 가정들보다 특혜를 받는다는 것도 이야기가 되어야 되는거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시립 또는 구립 어린이 집에 우선순위에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있지요. 엄마 아빠가 순수한 한국사람이면 뒤로 밀리지요.

Park Yuha

이상노 그렇군요. 역차별 문제가 있다면 그것도 합리적으로 고쳐져야겠지요. 하지만 동시에 그건 다른 문맥에서 이야기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Yoshiko Hatano

蟹工船と、もう一つは何でしようか?
学生さんの反応を見て、わたしも若い頃、アメリカの小説「怒りの葡萄」、ジョン スタインベック、を読んで、アメリカにもこんな労働者が!とビックリしたのを思い出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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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Yoshiko Hatano セメント樽の中の手紙です。
ご存知と思いますが、青空文庫で読めます。
https://www.aozora.gr.jp/cards/000031/files/228_21664.html



AOZORA.GR.JP
葉山嘉樹 セメント樽の中の手紙葉山嘉樹 セメント樽の中の手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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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y Troy Ko

이번 포천의 비닐하우스 동사 사건은 정말 이해 할 수가 없네요.
어떻게 한 겨울에 난방도 해 주지 않았는지....참 무지한 사람들...

Park Yuha

Troy Troy Ko 고장났었다고는 하네요.

Lee Jaewoo

일제 때 원산 파업에서 일본인 노동자가 조선인 노동자의 파업을 응원하는 걸 본 김학철의 증언이나, 교도소 안에서 2.26사건 참가자에게 당신들을 이해한다고 말한 박열을 생각하면 ‘연대’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Park Yuha

이재우 맞아요. 민족 차이를 완전히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일본노동운동과 사회주의는 한국의 노동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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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 게잡이 공선 고바야시 다키지 저

지식을만드는지식 출판

구매 종이책 정가 14,800원
전자책 정가 9,600원 (35%)
판매가 9,600원

2017.11.15. 전자책, 종이책 동시 출간

책 소개
≪게잡이 공선≫은 고바야시 다키지의 대표작으로서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뿐만이 아니고, 일본 근대문학사에서 획기적인 작품이다.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사상의 영역으로까지 넓혀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데에 역사적 의의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노동자의 구체적인 행동이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묘사되고 있다. ≪게잡이 공선≫에 의해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은 그 앙양기를 이루어 내게 되었다.
≪게잡이 공선≫은 1926년 홋카이도의 게잡이 공선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취재한 작품이다. 당시 게잡이 공선은 조난 사건과 어부에 대한 학대 문제 등으로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고 있었다. 다키지는 4년에 걸쳐 게잡이 공선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북양 어업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작품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특정한 주인공이 있지 않고, 게잡이 공선에서 착취와 학대를 당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집단으로 그리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일본의 자본주의가 ‘제국주의적·침략주의적’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지금까지 굴종밖에 몰랐던 어부들이 모르고 있던 자신들의 힘에 눈을 떠, 자신들의 손으로 자본가의 착취에 대항해 가는 일련의 과정을 훌륭하게 그려 냈다. 특히 노동자들이 한 번 실패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한번 일어서는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제국주의적인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정신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다.
어부들은 파업이 참혹하게 실패하자 비로소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다시 한번 일어서는 것이다. ≪게잡이 공선≫의 의의는 어부들의, 이 ‘다시 한번 일어서는’ 것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떠한 현실에도 굴하지 않는 태도, 이 불굴의 정신이야말로 노동자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소개
지은이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 1903∼1933)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적 작가다. 그의 문학적 재능은 이때부터 교우회지를 편집하거나 중앙 잡지에 작품을 투고하거나 하면서 일찍부터 발휘된다. 1921년은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이라는 세계사적인 변동으로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이 새롭게 대두하기 시작한 때로, ≪씨 뿌리는 사람≫이 창간되고,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의 조직적인 전개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1924년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홋카이도 다쿠쇼쿠(拓植)은행 오타루 지점에 취직한다. 그는 초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정의감에 차 있었지만, 점차로 사회적 근원을 추구하면서 비판적 현실주의로 나아가, 하야마 요시키와 고리키 등의 작품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1927년경부터 그는 사회과학을 배우면서 사회의 모순을 알게 되고, 그 후 오타루의 노동운동에 직접 참가하며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에도 적극적인 관계를 가지게 된다.
1928년 3월 15일 일본에서 비합법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단체가 큰 탄압을 받게 된다. 소위 3·15사건이다. 오타루에서도 2개월에 걸쳐 500명 이상이 검거되어, 다키지 주변의 친구와 동지들이 다수 체포되었다. 그가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구라하라 고레히토(藏原惟人)의 영향을 받아 완성한 처녀작 ≪1928년 3월 15일≫은 이 사건을 취재한 것으로, 혁명에 참가한 사람들의 모습과 경찰의 참혹한 고문을 폭로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노동자의 불굴의 정신력과 이것에 대비되는 천황 지배 권력의 잔학성을 폭로해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새로운 전기를 제공했다. 그는 이 작품을 ≪전기(戰旗)≫(1928)에 게재하며 본격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 활동에 들어간다.
다키지는 1929년 북양어업의 실상을 취재해 ≪게잡이 공선≫을 완성한다. ≪게잡이 공선≫은 그의 대표작으로,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뿐만이 아니고 일본 근대문학사에서 획기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다키지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인정받는다.

옮긴이 황봉모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 동성중학교, 용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대학에 입학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영어대학을 거쳐, 같은 대학 대학원 일본어과를 졸업했다. 일본 도쿄(東京)대학 대학원 연구 과정과 간사이(關西)대학 대학원 박사 전기, 박사 후기 과정을 수료했고,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적 작가인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 문학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문부과학성 국비유학생이었다. 이후 스미토모(住友) 재단 외국인 연구원을 역임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에서 교육부 박사 후 과정을 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와 전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주요한 연구 분야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재일 한국인 문학 연구다. 일본 근대 문학과 한국 근대 문학의 비교 연구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 야구, 스모를 많이 좋아한다. 겐자스시티 로열즈 팬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고바야시 다키지 ≪게잡이 공선≫의 성립>, <고바야시 다키지 ≪게잡이 공선≫의 복자(伏字)>, <현월 ≪그늘의 집≫ −욕망과 폭력−>, <소수집단 문학으로서의 재일 한국인 문학 −가네시로 가즈키 ≪GO≫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저서로는, 2012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 학술 도서에 선정된 ≪고바야시 다키지 문학의 서지적 연구≫(2011)와 ≪재일 한국인 문학 연구≫(2011), 그리고 ≪현월 문학 연구≫(2016) 등이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부에 출강하고 있다.

목차
게잡이 공선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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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마 요시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하야마 요시키(葉山嘉樹, 1894년 3월 12일 ∼ 1945년 10월 18일)는 일본 후쿠오카 현 출신 프롤레타리아 작가이다.

와세다대학에 진학하지만 학비 미납으로 제적당했다. 외항 선원으로서 홋카이도와 인도 콜카타를 왕래하는 화물선에서 근무한 경험을 훗날 작품으로 발표하기도 하고, 1920년에는 나고야 시멘트 공장에 근무하면서 노동조합 결성을 시도하다가 해고당하기도 한다. 그 후 나고야 노동자 협회에 가입해 각종 노동 쟁의를 지도하고, 1923년에 나고야 공산당 사건으로 검거된 후 미결수로 투옥되어, 옥중에서 창작 활동에 열중하는 한편 관동 대지진을 경험하기도 한다. 1925년 출옥 후 그의 대표작이자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매춘부>, <바다에 사는 사람들>, <시멘트 통 속의 편지>를 발표해 신진 작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얻게 된다. 다소 도식적이고 관념적이던 기존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비해 하야마는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꾸밈없이 그려 내어 문학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한 단계 높였다.

그러나 1934년 무렵, 특별 고등 경찰에 의한 사상 통제가 강화되고 일본의 국론이 중국 대륙 진출로 통일되자 하야마는 전향해 당시의 체제에 대한 지지 입장을 강화하게 된다. 1945년 만주로 이주하기 위해 건너갔던 그는 소련군의 만주 점령과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귀국하던 도중, 그해 10월 열차 내에서 뇌일혈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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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통 속의 편지 Author(s) 정, 유리 
Citation 多言語翻訳 
葉山嘉樹『セメント樽の中の手紙』. 
P.28-P.31 Issue Date 2013-03-31
 Text Version publisher URL http://hdl.handle.net/11094/61325 
DOI rights Note 
Osaka University Knowledge Archive : OUKA https://ir.library.osaka-u.ac.jp/repo/ouka/all/ Osaka University 
https://ir.library.osaka-u.ac.jp/repo/ouka/all/61325/mltp_2_028.pdf


시멘트 통① 속의 편지 하야마 요시키(葉山嘉樹) 정유리 역 

마쓰도 요조(松戸与三)는 시멘트 통에서 시멘트를 꺼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②. 다른 부분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지만, 머리털과 코 밑은 시멘트로 잿빛에 뒤덮 여 있었다. 그는 콧구멍에 손가락을 쑤셔 넣고 철근 콘크리트처럼 코털을 뻣뻣하 게 만든 콘크리트를 긁어내고 싶었지만, 일 분에 10재③씩 토해내는 콘크리트 믹 서 속도에 맞추려면 도저히 손가락을 콧구멍으로 가져갈 틈이 없었다. 그는 콧구멍이 신경에 거슬렸지만 끝내 11시간 - 그 동안 딱 두 번 점심시간과 3시의 휴식시간이 있었지만, 점심 때는 배가 고파서 다른 한번은 믹서를 청소하 느라 짬이 없었기 때문에 끝내 코까지 손이 미치지 못했다 - 동안 코를 청소하 지 못했다. 그의 코는 석고 조각상 마냥 굳어진 듯했다. 그가 작업 막판 무렵, 녹초가 된 손으로 옮긴 시멘트 통에서 작은 나무상자가 나왔다. "뭐지?"하고 그는 잠시 수상쩍게 여겼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쓰고 있을 수는 없었 다. 그는 삽으로 시멘트 됫박에 시멘트를 퍼담았다. 그리고 됫박에서 반죽통으로 시멘트를 붓자마자 또다시 시멘트 통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근데 잠깐. 시멘트 통에서 상자가 튀어나올 턱이 없잖아." 그는 상자를 주워 작업치마 주머니 속에 집어 넣었다. 상자는 가벼웠다. "가벼운 걸 보아하니 돈 한 푼 안 들어 있는 모양이네." 그는 생각할 짬도 없이 다음 통을 비우고 다음 되를 퍼담아야 했다. 믹서는 이윽고 공회전을 시작했다. 콘크리트 제작이 끝나고 퇴근시간이 되었다. 그는 믹서에 연결된 고무호스 물로 우선 얼굴과 손을 씻었다. 그리고 도시락통 을 목에 둘러매고 한 잔 걸치고 저녁 먹을 생각만 하며 그의 간이 주택④으로 돌 아갔다. 발전소는 80 퍼센트 가량 완성되어 있었다. 저녁 어스름 속에 우뚝 솟은 에나 산(恵那山)은 새하얗게 눈에 뒤덮여 있었다. 땀에 절은 몸뚱이는 갑자기 얼 어붙을 것 같은 추위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가 지나는 발치에서는 기소 강(木曾 川)이 허옇게 거품을 물며 포효하고 있었다. "쳇! 못해먹겠네, 여편네는 또 배때기가 남산만해져 가지곤......" 그는 우글우글 한 아이들과 또 요번 추위에 맞춰 태어날 아이와 있는 대로 싸질러 낳는 마누라 를 생각하자 맥이 탁 풀려버렸다. "일당 1엔 90전에서 날마다 50전짜리 쌀을 2홉 먹고 90전으로 옷 해입고 집세 내면 젠장 맞을! 당최 술을 마실 돈이 없잖아!" 28 그러다 문득 그는 주머니 속에 든 상자가 떠올랐다. 그는 상자에 묻어 있는 시 멘트를 바지 엉덩이께에 쓱쓱 문질렀다. 상자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옹골지게 못질되어 있었다. "뭘 얼마나 대단한 걸 넣었길래⑤, 못질씩이나 처박아놓은 거야" 그는 돌 위에 상자를 냅다 던졌다. 그러나 부숴지지 않았기에 요놈의 세상까지 밟아 뭉개버릴 기세로 거칠게 짓밟았다. 그가 주운 상자 안에서 누더기에 싸인 종이쪼가리가 나왔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저는 N시멘트 회사⑥에서 시멘트 자루를 깁는 여공입니다. 제 연인은 파쇄기 에 돌을 넣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0월 7일 아침 큼지막한 돌을 넣을 때에 그 돌과 함께 파쇄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동료들이 구출하려고 했지만, 물에 빠진 것처럼 돌 밑으로 제 연인은 점점 가라 앉았습니다. 그리고 돌과 연인의 몸은 서로를 부서뜨리며 붉고 가느다란 돌이 되 어 벨트 위로 떨어졌습니다. 벨트는 분쇄통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서 강철 탄 환과 하나가 되어 잘고 잘게, 격한 소리 속에 저주의 악소리를 지르며 부숴졌습 니다. 그리고 연소되어 어엿한 시멘트가 되었습니다. 뼈도, 살도, 혼도 가루가 되어버렸습니다. 제 연인은 남김없이 시멘트가 되어 버 렸습니다. 남은 것은 이 작업복 헝겊 쪼가리 뿐입니다. 저는 연인을 넣을 자루를 깁고 있습니다. 제 연인은 시멘트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다음날 이 편지를 써서 이 통 속에 살 짝 넣었습니다. 당신은 노동자입니까, 당신이 노동자라면 저를 가엾게 여기고 답장해 주세요. 이 통 속의 시멘트는 어디에 쓰였습니까, 저는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제 연인은 몇 통의 시멘트가 된 것일까요, 그리고 어디에 사용되는 것일까요. 당신은 미장이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건설인부입니까. 저는 제 연인이 극장의 복도가 되거나 커다란 저택의 담장이 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제가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만약 노동자라면 이 시멘트를 그런 곳에 사용하지 말아 주세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어디에든 사용해 주세요. 제 연인은 어디에 묻히더라도 그 곳에 맞춰 분명 제 할 일을 다할 겁니다. 상관없어요. 그이는 야무진 사람이니까 분명 충분한 역할을 해낼 거예요. 그이는 상냥하고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착실하고 사내다운 이였지요. 아직 젊었습니다. 막 26살이 된 참이었습니다. 그이가 저를 얼마나 예뻐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이에게 수의를 입히는 대신 시멘트 자루를 입히고 있 는 거예요! 그이는 관으로 들어가지 않고 회전가마 속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제가 어떻게 그이를 보내야 할까요. 그이는 서쪽에도 동쪽에도, 멀리에도 가까 이에도 묻혀있는 걸요. 28 29 당신이 만일 노동자라면 제게 답장을 보내 주세요. 그 대신 제 연인이 입던 작 업복 조각을 당신에게 드릴게요. 이 편지를 싸고 있는 게 그것이에요. 이 헝겊 조 각에는 돌가루와 그이의 땀이 깃들어 있어요. 그이가 이 헝겊 작업복으로 어찌나 굳게 저를 안아 주었던지요. 소원이니까요. 이 시멘트를 사용한 날짜와 그리고 자세한 주소와 어떤 장소에 쓰였는지, 그리고 당신의 이름도 실례가 아니라면 꼭꼭 알려주세요. 당신도 몸조 심하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마쓰도 요조는 들끓는 듯한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을 문득 느꼈다. 그는 편지 끝에 있는 주소와 이름을 쳐다보며 밥그릇에 따라놓은 술을 단숨에 꿀꺽 들이켰다. "진탕 취해버리고 싶네. 그리곤 이거고 저거고 싹 다 때려부숴 버리고 싶네"하 고 고함질렀다. "진탕 취해 난동 부려야 되겠어요? 애들은 어쩌라구요." 마누라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마누라의 커다란 뱃속에 든 7번째 아이를 보았다.

 (1925 년 12 월 4 일) <<본 작품의 한국어 번역 사례>> * 출판연도를 기준으로 나열한다. (1) 김정미 역. 『일본대표단편선2』. 고려원, 1996. (2) 김미숙 역. 『(일본 교과서에 수록된) 일본 단편소설 Best 15』. 거송미디어, 2005. (3) 양혜윤 역. 『일본 대표작가 대표소설1』. 세시, 2008. (4) 양혜윤 역. 『사랑을 위해 죽다』. 세시, 2009. 30 ① 원문:「セメント樽」 일본 근대에는 시멘트를 넣는 용기로, 처음에는 통이 나중에는 자루가 사용되었 다. 1920년대는 통에서 자루로의 이행기에 해당한다. ② 원문:「松戸与三はセメントあけをやっていた」 마쓰도 요조가 담당한 작업은 시멘트 통에서 시멘트를 꺼낸 다음 모래나 자갈과 섞어 콘크리트 등을 만드는 것이다. ③ 원문:「才」 재(才) 용적 단위. 한 변이 한 척(尺: 일본의 전통적 길이 단위로 약 30.3㎝)인 입방체를 말한다. 따라서 ‘일 분에 10재씩 토해’낸다는 것은 일 분에 약 27800㎤, 즉 한 변이 약 30.3㎝인 입방체 10개분의 시멘트가 만들어짐을 의미한다. ④ 원문:「長屋」 일본의 전통적인 집합주택. 좁고 긴 건물을 벽으로 나누어 여러 명이 생활한다. 근대에는 서민이나 노동자를 위한 주거인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長屋는 간 이하고 조악한 주거시설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⑤ 원문:「思わせ振りしやがらあ」 원문을 직역하면 상자가 단단히 못질되어 있어 "의미심장한 기대를 갖게 만드네 " 정도가 되겠지만, 직역이 전체 문맥을 흐린다고 판단하여 쓸데없이 열기 힘들 게 만들었다는 힐난조의 의미를 담아 "뭘 얼마나 대단한 걸 넣었길래"라고 의역 하였다. ⑥ 원문: 「Nセメント会社」 작자인 하야마 요시키(葉山嘉樹)는 1921년 나고야(名古屋) 시멘트 회사에 근무 할 당시 한 직공이 회전가마를 청소하던 중 집진실에 떨어져 전신에 큰 화상을 입고 사망하는 사건을 경험한다. 이 때의 체험이 ‘시멘트 통 속의 편지’에 투영되 어 있다고 일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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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전 시멘트가 된 애인, 그리고 오늘날 쇳물이 된 청년

[기자의 눈] '그 쇳물 쓰지 마라' 보다 100년 전 발표된 '시멘트 포대 속의 편지'

허환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9.19. 10:35:19 최종수정 2020.09.22. 0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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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노동자신가요? 당신이 노동자시라면 저를 가엾게 여겨 답장을 주십시오. 이 통 안의 시멘트는 무슨 용도로 쓰였는지요? 저는 그것이 알고 싶답니다." <시멘트 포대 속의 편지>,하야마 요시키
발전소 건설 현장 노동자로 일하는 마쓰도 요조는 콘크리트 믹서에서 나오는 시멘트를 포대에 부어 담는 일을 한다. 믹서와 동작을 같이 하다 보면, 콧구멍을 후빌 시간조차도 없다. 그의 콧털에는 늘 딱딱히 굳은 콘크리트 가루가 묻어있다.

그렇게 일상적인 하루 일을 마무리할 무렵, 믹서에서 나온 시멘트 속에서 자그마한 나무상자가 나왔다. 뭔가 싶어 상자를 깨부수니, 그 안에는 헝겊 조각에 똘똘 말린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편지를 쓴 사람은 시멘트 공장에서 포대를 꿰매는 여공이었다. 그녀가 편지를 쓴 사연은 이렇다.

제 애인은 몇 통의 시멘트가 되었나요? 

여공의 애인은 조쇄기(돌 깨는 기계)에 돌을 집어넣는 일을 했다. 어느날 아침, 돌을 집어넣던 애인이 그 돌과 함께 조쇄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죽고 말았다. 시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조쇄기를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애인의 시신은 함께 빠진 돌과 함께 섞이고 부서져버렸다. 그리고는 부서진 돌가루와 함께 컨베이어 벨트로 옮겨진 뒤, 분쇄통으로 들어가 달궈진 뒤 완전한 시멘트가 되고 말았다. 

여공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넝마 같은 애인의 작업복 조각 뿐. 애인을 그렇게 처참하게 떠나보냈지만, 여공은 시멘트가 된 '애인'을 넣을 포대를 꿰매는 일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녀가 작업복 조각 속에 이 편지를 싸서 시멘트 통 속에 몰래 집어넣은 이유다. 

편지에서 여공은 묻는다. 이 통 안의 시멘트는 무슨 용도로 쓰였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고 했다.

"제 애인은 몇 통의 시멘트가 되었나요? 그리고 어디 어디에 쓰였나요? 당신은 미장공이신가요. 아니면 건축업자신가요? 저는 제 애인이 극장의 복도가 되거나 큰 저택의 담이 되거나 하는 꼴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제가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만약 노동자라면 이 시멘트를 그런 곳에 쓰지 말아 주십시오."

여공은 애인이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이제 막 스물여섯 살이 되었다. 그 사람이 자신을 얼마나 안아 줬는지, 귀여워해 주었는지를 회상했다. 그런데 자신이 그 사람에게 수의 대신, 시멘트 포대를 입히고 있다고, 그 사람은 관이 아니라 회전 가마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이러한 사연이 담긴 편지를 받은 노동자 마쓰도 요조는 "술에 떡이 되도록 취하고 싶다. 그리곤 죄다 때려 부수고 싶다구"라고 말한다. 그리고 부인 뱃속에 있는 일곱 번째 아이를 바라보며 소설은 끝이 난다.

하림 '그 쇳물 쓰지 마라' 노래부르기 캠페인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작가인 하야마 요시키가 1926년 발표한 '시멘트 포대 속의 편지'라는 작품 내용이다. 하야마 요시키가 토목 공사 현장에서 노동을 하면서 쓴 짧은 단편이다. 

이 오래된 소설을 2020년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게 노동자의 현실 때문이다. 하루 5명이 일하다 사망하는 곳이 한국이다. 일하던 중 끼어서, 떨어져서, 맞아서 죽는다. 

그나마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죽음을 멈춰야 한다는 사회적 움직임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최근 가수 하림 씨가 시인 제페토의 '그 쇳물 쓰지 마라' 시에 작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었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프로젝트퀘스천의 '그 쇳물 쓰지 마라' 함께 노래하기 챌린지의 일환이다.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시와 '시멘트 포대 속의 편지'의 내용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시인 제페토 씨는 2010년 한 철강업체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섭씨 1600도가 넘는 쇳물이 담긴 전기로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연을 모티브로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시를 만들었다. 

'그 쇳물 쓰지마라'의 작곡자인 가수 하림 씨는 지난 8일 자신의 SNS에 "노동환경에서 발생하는 사고들에 대해 우리의 생각을 정리하고 또 이런 생각들이 모여서 또 다른 단계로 움직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며 캠페인 참여를 독려했다.

언제쯤 우리는 일하다 죽는, 그리고 시신조차도 찾을 수 없는 죽음의 현실에서 벗어날수 있을까.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91818023799229?fbclid=IwAR3JXGebGjfVobst_ahiLsiUoae_lOI_c4MXnNOncjjy5mlI0yCimSqKhRA#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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