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분을 잘 모르지만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재밌어하고 좋아하는 제가 이따금 태어나 자란 한국에서 사는 게 유난히 불편해질 때 느꼈던 감정을
너무 잘 표현해주셔서 공유해와욤.
저에게 역사와 문학은, 음악과 그림과 철학과 종교는, 여러 과학은, 외국어와 폰사진찍기와 가끔 비행기타기와 자주 전철타기는, 돌아보면 뒷산 약수터까지 달리기나 옆동네 올리브영까지 산책 겸 장봐오는 그 모든 것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
나와 처지나 시선이 다른 이웃의 주장을 이해하도록,
이방인의 시선을 이해하도록 돕는 프리즘이었습니다.
생각하는 힘.
공감하는 힘.
비판도 상대를 이해하면서 할 때 진짜 비판이 나온다는 것.
방송이나 곳곳에서 올바른 역사관, 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올바른, 의 기준이 뭘까? 우리 민족? 나의 계급? 아니면 내가 지지해야할 계급?......근데 이게 과거 국가주의나 획일성과 과연 뭐가 다를까, 역사가 애국심을 고취하는 수단이 되고 마는 게 과연 최선일까......마음이 좀 쓸쓸했는데요.(물론, 공동체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자는 선의가 컸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선생님글에 눈이 번쩍!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동방에 아름다운 대한민국 나의 조국"을 잘 부른다고 칭찬받던 꼬마가 박정희전두환국가주의의 그늘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오도록 도와줬던 첫번째는 물론 예수님이었지만, 두번째는 국가를 두려워하면서도 업수이 여겼던^^ 외할머니였지만,
역시나 세번째는 80년대후반 고딩시절 눈을 떼지 못했던 권정생샘 글과 전교조샘들의 에세이였어요.
국가주의와 자민족최고주의가 왜 문제인지 눈뜨게 해줬던 분들이 지금 누구보다도 그 틀 안에서 해석되는 걸 보면
그때 제가 무엇에 감동받았는지를 언제고 한 번은 써보고 싶단 생각이 듭니다.
설민석의 이집트사 강의 오류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된 후, 재즈 강의에 대한 오류 문제도 나오면서 그의 전문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대체로 언론이나 일부 전문가들이 설민석에 대해 내리는 비판의 요점은, 그가 전공자가 아님에도 무리하게 강의의 영역을 확장하다가 결국 많은 거짓 정보(팩트 오류)를 제공하게 됐고, 이것은 결국 '예견된' 참사였다. 뭐 이런 식이다.
언론과 일부 비평가들이 주로 비전문가의 역량 부족이 불러온 문제라고 비판하는 가운데, 설민석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설민석 만큼 재미있게 강의하는 사람이 어딨냐”, “그런 실수야 노력해서 없도록 하면 되지”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거기에 설민석은 ‘벌거벗은 세계사’프로의 오류에 대해서 [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의 말씀들 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여기고, 더 성실하고 더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한마디로 앞으로 더 철저히 준비를 해서 다시는 사실 관계의 오류로 인한 논란이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설민석이 납작 엎드리는 가운데 방송은 예정된 강의들을 그대로 진행하고, 사람들은 또다시 그의 예능 강의를 계속 듣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싶다. 마치 인기 연예인이 예능프로에서 저지른 실수로 논란이 일자 고개 숙여 ‘반성’하고 곧바로 해당 프로에 복귀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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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집트사나 재즈 강의 이외에도 설민석이 한국사를 강의하면서 사실 관계에 어긋난 내용들을 발언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페북 등에서도 전공자들의 많은 지적이 있었다. 나도 술자리에서 다른 전공자들과 같이 얘기하다보면 설민석의 강의에 대한 오류를 무더기로 지적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 뭐 사실 관계 틀리는 거야 예전부터 지적된 문제니까. 하지만 과연 설민석의 문제점이 단순히 팩트 오류뿐일까. 그 자체도 전문성을 지향하는 강의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사실 더 크게 지적하고 싶은 점은 설민석의 강의가 지향해온 바가 무엇인가하는 점이다. 오히려 그의 강의를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결론과 메시지가 갖는 사회적 해악이 더 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설민석의 강의는 예능프로의 숙명이겠지만, 소비 위주의 강의, 즉 사람들이 익숙한 주제를 선정하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방향으로 스토리라인을 구성하여 결론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대중들에게 익숙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적 정서를 중심에 두는 가운데, 마지막 결론부에서 그놈의 ‘올바른’ 역사관을 강조하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식으로 마무리한다.
나는 이런 형태의 ‘내러티브’를 대학 수시면접에서 수도 없이 목도했다. 어린 학생들은 학업계획서 내지는 자기소개서의 맨 앞, 혹은 맨 뒤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를 매번 인용한다.
그 출처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리고 관심을 갖는 역사적 사건으로 일제 강점기의 종군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왜곡, 강탈당한 한국 문화재의 반환 문제를 든다. 학창시절에 역사와 관련해서 했던 활동을 꼽으라고 하면,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자극되어 교내에서 왜 동북공정이 잘못됐는지, 일본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응방안과 논리를 정리해 학생과 교사들 앞에서 발표한 것을 사례로 든다. 거의 예외가 없다.
일제 강점기는 한국을 피해자로 놓고 일본을 가해자로 하는 명확한 선악구도 속에서 전개되는 획일적인 역사상이 주류이며, 현재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들 틈에서 그들의 역사왜곡에 분연히 맞서야만 하는 약소국인 한국의 처지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유일한 방법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이를 논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바로 자신이 사학과에서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여 그 ‘올바른’ 역사관을 전달하는 첨병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네가 좋아하는 역사가는 누구지?” “설민석이요.”
사실 이게 어린 학생들의 잘못이겠는가. 다 가르친 어른들의 잘못이지. 어찌보면 일제 강점기가 끝난 뒤로 80여 년이 흘렀지만, 기성세대가 만든 국민교육 체계와 획일적인 민족주의 정서 속에서 위와 같은 ‘올바른 역사관’의 강요는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그 과정에서 인문학으로서의 역사학 본연의 목적은 점차 흐려지는 가운데, ‘역사’란 현재의 이데올로기나 정치, 사회, 외교적 이해관계를 정당화하는 수단이라고 여기는 것이 당연시되어왔다. 역사 전공자는 당연히 이런 논리를 만드는데 복무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어린 학생들은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에 대해 이미 정해진 정답의 논리를 달달 외워서 읊으면 훌륭한 역사관을 가진 것처럼 치켜세워왔다.
일선 학교, 그리고 언론에서도 그것이 마치 우리 역사교육의 지향인 것처럼 흔히 다뤄왔으며, 여러 국가기관과 박물관 등에서도 각종 공모전을 통해 비슷한 주제를 반복하며 어린 학생들에게 사고의 획일화를 강요해오지 않았던가. 바보 같은 짓거리들이다. 역사학이 무슨 정훈교육이냐. 그럴 거면 차라리 국민윤리 교육 과정 집어넣든가, 따로 ‘역사사관학교’ 세워서 사관생도들을 키워내든가 하지.
인문학으로서의 역사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단숨에 대답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역사학의 특징은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그들이 모여서 이룬 ‘사회’의 성향과 진행과정을 탐구함으로써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것, 그와 더불어 자기 자신에게 강요되어온 각종 가치관, 이데올로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갖는 것, 한마디로 ‘비판적 성찰의 능력’을 키우는 데 있다고 본다. 특히 자기가 살아가는 한국사회와 자기 주변, 그리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통시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끊임없이 ‘올바른’ 역사관을 강요할 때, 그것이 반공이든, 과도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이념이든간에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자기 스스로 중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학문이라고도 규정할 수 있다.
설민석이 해온 강의에는 그런 인문학적 성찰과 비판의식이 없다. 그가 해온 가장 큰 실수는 단순히 팩트 오류가 아니라, 인문학 본연의 목적과 지금 시점에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역사학자가 지향해야할 비판자로서의 역할을 망각했다는데 있다. 스스로 역사의 ‘그랜드마스터’니, 역사를 바로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가 해온 건 약삭빠르게 사람들이 듣기 좋고, 기꺼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지식’만 뽑아서 쏟아냄으로써 기존에 다수의 대중들을 지배해오던 구태의연한 사회적 정서와 고루한 인식체계에 편승한, 말그대로 ‘예능’을 해온 것에 불과하다.
그의 강의에는 지금 시대에 한국에서 인문학이 지향해야할, 역사학이 지향해야할 메시지가 없다. 그런 학계의 논의들을 제대로 소화하고 전달할 능력도 없다. 그러고도 그가 마치 역사학에 큰 권위가 있는 사람처럼, 한국사의 대가처럼, 어린 학생들에게 대단한 인생 ‘멘토’라도 되는 것처럼 포장되고 띄워졌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문제이다. 인문학을 가장한 그의 달콤한 언변에 일반 대중들, 그리고 어린 학생들이 몰려간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수준이 그렇게 수년, 혹은 십수년을 퇴보해간다.
결국 방송, 언론, 출판계에서 계속 그렇게 만들어왔잖아. 그렇게 설민석이라는 돈 되는 브랜드를 계속 키워나가고, 니들은 거기에 빌붙어서 같이 돈 벌어먹고. 지금이야 팩트 오류를 지적하지만 결국 또 그 ‘가짜 멘토’를 열심히 키워서 같이 갈 거 잖아!
한편으로 한국사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설민석이라는 존재를 지적질할 때마다 갖는 자괴감이지만, 매번 전공자들이랑 설민석에 대한 비판이 끝나면 다른 한편으로는 무거운 마음이 엄습해온다. 열심히 설득되어 설민석이라는 ‘멘토’가 마음속에서 사라진 학생들이, ‘그럼 한국사 관련해서는 무슨 책 읽어야 돼요?’, ‘교수님들이 쓴 책은 왜 그렇게 어려워요?’라는 질문들에 전공자들은 웃음기가 싹 가신다. 솔직히 서유럽이나 미국, 일본에서는 전공자가 쓴 권위 있으면서도 술술 읽히는 책들도 적지 않은데, 우리는 중고등학생들한테 제대로 추천할 책이 몇 권 없을까.
역사학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결코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은 그 수요를 제대로 읽어내고 거기에 부응할 능력을 제대로 못 갖춘 것이 현실이다. 전국의 대학에서 사학과가 점점 줄고 있는 현실은 단순히 인문학의 숙명일까. 사학과 학생들은 졸업 후 진로를 제대로 설정 못해서 우왕좌왕하다가 공무원 시험으로 쏠리는데, 학과 교수들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학과의 커리큘럼도 거의 바뀌질 않는다. 연구자들은 그저 국가에서 내주는 얼마 안 되는 연구지원금에나 매달리고, 마치 그것이 유일한 생존의 길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전공자들은 이전의 연구자 중심의 사고체계를 못 벗어나고 있으면서 대중역사가들의 무모한 시도에 ‘팩트체커’로 나서서 지적질하는 능력밖에 없는가. 그렇게 잠시 동안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는 거에 의기양양해하는 거야 좋지만, 필연적으로 물어오는 ‘대안’이라는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제2, 제3의 설민석들이 대중들을 상대로 지금 시대에 역행하는, 인문학 본연의 목적에 역행하는 ‘퇴행적’ 강의들을 쏟아낼 때, 이러한 흐름을 돌이키고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는 ‘대체품’을 만들어낼 생각도 해야하지 않을까.
당장 설민석이가 강의에서 틀린 사료를 제시했다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연구자들이 제대로 된 컨텐츠를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에 더 분개해야지.... 아닌가. 그건 지고지순한 학문을 다루는 전문 연구자로서 너무 ‘경박한’ 발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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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승
이 문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연구자는 생산자이고, 중간에서 연구결과를 좀 더 쉽게 풀어서 책을 쓰는 중간도매상이 있을 수 있고, 이를 또 대중들에게 강연이나 TV를 통해 전달하는 소매상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대학의 연구자들이 이런 역할을 모두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저는 중간도매상과 소매상이 너무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수의 사람들이 이를 독점하다 보니, 사고가 나지 않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지요. 대학에서 역사나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석사나 박사도 가능하겠지요), 교사 혹은 기자들이 중간도매상으로 좀 더 활약을 해주고, 또 그런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소매상으로까지 진출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사실 대학의 전문 연구자들은 자기 연구하고 학생들 가르치는 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대중용 책도 쓰고 강연도 하고 TV에도 나가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설민석의 이번 사고는 사실 해당 프로의 피디와 작가들의 잘못이 크다고 봅니다. 피디와 작가들이 충분히 공부를 하고, 자문위원들을 만나서 충분히 말을 듣고, 그리고 예산을 만들어서 자문위원들에게 원고 검토까지 부탁을 했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설민석은 사실 그 프로에서는 배우의 역할을 하는 것뿐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교양 프로의 피디나 작가들도 대부분 문학 전공자들인데, 역사 프로에는 사학과를 나온 사람들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좀 쓰는 사학과 학생들에게는 그런 쪽으로도 진출하라고 권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너무 길게 써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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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k Hwa Kang
박찬승 자문단에 전문가들 있는데 의견 안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Reply · 1 d
박찬승
강석화 그럴 수도 있어요. 저도 자문을 해주었는데, 피디가 잘못된 책을 읽고 와서 끝내 자기 주장이 맞다고 고집을 부려서 그대로 밀고 가더라고요.
· Reply · 1 d
안정준
박찬승 박찬승 선생님 말씀도 맞습니다. 저도 대학에 있는 연구자로서 다른 연구자들이 강의와 논문 때문에 얼마나 바쁘게 사는 지도 알고, 다른 역사 연구자들에게 모두 설민석과 같은 ‘예능인’이 되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마치 연구자들이 열심히 학술 논문을 차곡차곡 쌓아두면, 누군가가 이를 열심히 공부해서 대중들에게 전파하는 역할을 할 거라는 기대도 너무 막연한 것 아닐까요. 그렇게 자연스러운 ‘협업’이 이루지질 기대했지만 현재 이덕일, 설민석, 김용옥 같은 사기꾼, 혹은 역량 미달의 사람들이 부각되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 책임은 온전히 현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무식한’ 대중들에게 있는 건가요, 아니면 우리 모두가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운 때문이라고 해야할까요.
· Reply · 21 h
안정준
역사 전공의 영역은 갈수록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반면에, 이를 ‘대중화’하는 사람들의 수준은 갈수록 낮아지거나 정체돼 있는 게 현실입니다. 미국이나 서유럽 쪽에서는 전공자들이 영화, 다큐 등 다양한 컨텐츠 제작에 진출해서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활용하고, 이를 통해 역사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반면, 한국의 전공자들은 좁다란 대학과 박물관, 국가기관 등의 통로만을 유일한 진출로로 여기고 여기에만 몰입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마디로 역사 전공자들이 다양한 사회적 수요를 읽어내고, 그 시장을 스스로 개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진출로를 누군가가 애써 만들어주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학부생들이 진출하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그들은 어디로 어떻게 진출해야합니까. 대학에 있는 연구자들이 과거의 ‘전통적인 학자’의 역할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방법을 제시하고, 전달의 통로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입니다.
· Reply · 21 h
Hyein Han
박찬승 네 동감합니다
· Reply · 21 h
박찬승
대학에 있는 분들 가운데에도 대중적인 책을 쓰고 또 대중적인 강연을 하실 만한 분들이 있습니다. 또 그런 노력들도 해오셨고요. 고대사쪽의 송기호, 송호정 교수, 조선시대의 한명기, 홍순민교수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지요. 그런 분들은 당연히 그런 능력을 십분 발휘해서 대중적인 책도 쓰고, 또 대중적인 강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능력을 가진 분은 사실 많지 않다고 봅니다. 저도 그런 책을 좀 써보고, 대중적인 강연도 해보려 했지만, 능력부족을 실감했어요. 또 그쪽으로 시간을 쓰다 보면, 연구나 강의가 소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됩니다. 따라서 대학 교수가 그런 일을 본격적으로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지요. 요즘은 대학 밖에 계신 분들 가운데 좋은 책을 쓰시는 분들도 여럿 계십니다. 또 대중 강연도 잘 하시는분들도 계세요. 그런 분들이 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작년에 역사저널 그날 방송을 하면서 보니, 피디와 작가들이 대부분 문학 전공자들이어서 역사에 거의 문외한들이었어요. 의욕은 좋지만, 내용을 채우는 데 어려움을 많이 토로하더라구요. 그래서 사학과 졸업생들도 그런 쪽에도 관심을 갖고 진출했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한 것일 뿐입니다. 작가는 물론 그리 좋은 일자리는 아니지만, 피디는 해볼 만한 자리이거든요. 제 경험의 범위 내에서 말한 것일 뿐입니다.
· Reply · 19 h
안정준
박찬승 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전공자들 성향을 너무 단순화해서 비판한 것 같습니다.
· Reply · 18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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