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2

알라딘: 나는 왜 김구 선생을 사살했나

알라딘: 나는 왜 김구 선생을 사살했나

나는 왜 김구 선생을 사살했나 - 안두희의 시역의 고민   
안두희 (지은이)타임라인2020-12-15
기본정보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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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안두희가 김구를 저격 사살하는 직접적 계기 가운데 하나인 경교장을 배후로 암약하던 국회 침투 남로당 프락치들을 일망타진하게 되는 경위 등을 밝힌 역사적 기록물이자 현재 우리 사회의 정치적, 이념적 혼란의 근원을 분석하기 위한 중요한 역사적 사회적 텍스트이다.

안두희가 김구 저격 직후 체포되어 방첩대(CIC, Counter Intelligence Corps) 영창에 갇힌 다음날인 6월 27일부터 첫 공판일 전날(8월 2일)까지 사건의 전말과 심경, 취조, 심문과 공판 준비 과정 등을 일기 형식으로 정리한 옥중수고獄中手稿이다.

1955년 10월 26일 <弑逆의 苦憫>이란 제목으로 초판 발행된 뒤 사장되었다가 65년 만에 <나는 왜 김구선생을 사살했나>란 제목으로 복간되는 개정증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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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책을 출간하며]

이 책은 안두희가 김구 저격 직후 체포되어 방첩대(CIC, Counter Intelligence Corps) 영창에 갇힌 다음날인 6월 27일부터 첫 공판일 전날(8월 2일)까지 사건의 전말과 취조, 심문, 공판 준비 과정에서의 심경을 일기 형식으로 정리한 옥중수고獄中手稿이다. 또한 김구를 저격 사살하는 직접적 계기가 된 경교장을 배후로 암약하던 국회 침투 남로당 프락치들을 일망타진하게 되는 경위 등을 밝힌 역사적 기록물이자 현재 우리 사회의 정치적, 이념적 혼란상의 근원을 분석하기 위한 역사적·사회적으로 중요한 텍스트이다.

안두희는 종신형 확정 후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까지 특별 감형과 잔형 면제를 통해 육군 포병 소위로 복귀, 전쟁에 참전한다. 이어 휴전과 함께 전쟁이 끝나고 1953년 12월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영창에서 쓴 한 달여 동안의 일기를 초고로 삼아 1954년부터 1년여의 준비를 거쳐 1955년 10월 26일 『시역弑逆의 고민』이란 제목으로 초판 발행한다. 1949년 8월, 재판정에 방청하러 온 아내에게 건넨 옥중 일기를 아내가 집 마루 밑 땅 속에 묻어 감추어 둠으로써 그 내용을 온전히 보전하여 책으로 묶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형 확정 후 수형 기간 법정진술 등의 공판 내용을 기록한 일기는 6.25전쟁 통의 형무소 방화로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저자는 그것을 후속편으로 펴내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시역弑逆의 고민』 초판본은 약 1년여 서점가를 통해 판매된 것으로 보이나 안두희에 대한 중상모략과 테러가 빈발하며 사회적 봉인과 대중의 기억 속에서 강제 삭제된 채 오늘에 이르렀다. 이 책 『나는 왜 김구선생을 사살했나』는, 1955년 초판본에 조사와 어미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명사 또는 명사형 어휘들이 한자로 표기된 바 원문 그대로를 한글로 바꾸어 표기했으며 맞춤법만 지금에 맞게 바꾸었다. 당시 말글의 쓰임새 또한 사건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이해하는 한 단면이라 판단하여 극존칭의 경어체도 그대로 살렸다.

저자에 대한 반역 낙인과는 별개로 초판본 출간 이후 사회적 분위기는 책 자체를 불온시 했다. 특히 4.19 이후 민족주의가 득세하며 특정 정치·이념 세력에 의해 조작 또는 저자가 의도를 갖고 창작한 위작으로 매도 사장된 채, 한 갑자 60년 이상을 세인들의 관심에서 삭제되어 왔다. 그러나 일기문 전체에 담긴 저자의 고뇌와 출판을 둘러싼 낭설과 왜곡, 중상모략에 대비코자 한 저자의 진심은 우리 사회 지성의 양심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행위 주체로서 안두희의 독자적 결단이고, 그 나름의 충심에 바탕한 의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적 사회적 실체가 분명한 안두희의 김구 저격은, 그것이 ‘사살’이든 ‘암살’이든 덮는다고 덮어지고 지운다고 지워질 수 없을 뿐 아니라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사건 자체가 한국현대사의 거대한 의미 단위이자 우리 사회 담론 생산의 시원始原이 되어야 한다. 아울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현재성을 규정하기 위한 치열한 텍스트란 사실을 자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렵게 찾은 텍스트 ‘시역의 고민’을 『나는 왜 김구선생을 사살했나-안두희의 시역弑逆의 고민』으로 복간해서 독자 제위께 내놓는다. 청년장교 안두희의 ‘고민苦憫’에 대해 만시지탄이긴 하지만 이제라도 우리의 양심이 응답해야 할 시점이라 믿기에. 더 늦기 전에!  접기

[그날, 안두희가 던진 질문 10가지]

“국회 소장파와 선생님 사이에 일찍부터 내통되어 있다는 것은 세상의 정평이요, 이번 그를 피검被檢 시 김약수를 선생님께서 숨기셨다는 억측까지 가지게 되었던 것이온데, 선생님과 그들과의 관계는 정말 어떤 것입니까?”

“선생님께서 남북협상 당시 서울을 떠나시며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렇게 굳은 서약을 하시고서, 돌아오신 뒤에 왜 뚜렷이 대국大局의 전망과 선생님의 심경을 밝혀 말씀치 못하셨습니까? 무슨 숨은 사정이 계셨습니까?”

“왜 모든 것을 국민 앞에 천명치 못하셨느냐는 말씀입니다.”

“협상 다녀오신 후에 태도는 어떠하셨습니까? 미군의 철퇴를 주장하셨고, 미국의 원조를 거부하셨고, 유엔의 처사를 비방하시면서 급기야는 5.10선거까지 부인하신 것, 어떻게 그렇게 그 주장하심이 공산당과 꼭 같으십니까?”

“전라도 방면을 순회하실 적에 정부를 부인하시고 미국을 침략자로 규정지으시며 이 박사를 사대주의자의 전형적인 존재로 매도하셨으니 공적인 국면도 국면이오나 그렇게도 국민 전체가 쌍벽으로 모시던 두 분의 교의가 끊겼다고 생각될 때에 온 겨레의 실망은 어떤 것이었는지 아십니까?”

“건국실천원양성소는 무엇하는 기관이며 혁신탐정사는 누구의 것이며 또 한독당의 소위 비밀당원 조직망이란 무슨 사명을 부여한 결사입니까? 한국 군대는 김구 씨의 군대라는 외인의 평론에 대하여 선생님은 무슨 말로써 반박하시렵니까?
선생님! 제게 8.15기념일을 전후하여 중대한 지령이 있을지 모른다는 예비 명령은 무엇에 대한 준비입니까?”

“여순반란은 누가 사주한 것입니까?”

“(부하들을 이끌고 집단 월북한) 표(무원) 소령, 강(태무) 소령과 기거를 같이한 놈은 어떤 놈입니까?”

“송진우 씨는 누가 죽였습니까?”

“장덕수 씨는 누가 죽였습니까?”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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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안두희 (지은이) 

1917년 3월 24일 평안북도 용천 출생. 본관 순흥順興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저격 사살
1949년 8월 5일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중앙고등군법회에서 종신형 선고
1950년 6월 27일 복역 중 6.25전쟁 발발로 인해 형집행정지로 가석방
7월 10일 국방장관 특별명령 4호로 육군 소위로 복귀
현역 육군 소위 계급으로 6.25전쟁 참전
1953년 12월 25일 육군 소령 예편
1956년 10월부터 강원도 양구에서 사업가로 활동
1996년 10월 23일 사망(향년 79세)


- 학력 및 주요 경력
1934년 평안북도 신의주고등상업학교 졸업
1939년 일본 메이지 대학교 법학과 3년 중퇴
1947년 신의주에서 월남 후 서북청년회 가입 종로지부 총무부장과 중앙 충무부장 역임
1949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8기
1951년 대한민국 육군포병학교 졸업
1952년 대한민국 육군보병학교 졸업
1956년 한국독립당 초급행동위원
1958년 신의기업사 사장 접기
최근작 : <나는 왜 김구 선생을 사살했나>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책은 안두희가 김구를 저격 사살하는 직접적 계기 가운데 하나인 경교장을 배후로 암약하던 국회 침투 남로당 프락치들을 일망타진하게 되는 경위 등을 밝힌 역사적 기록물이자 현재 우리 사회의 정치적, 이념적 혼란의 근원을 분석하기 위한 중요한 역사적 사회적 텍스트로서,

안두희가 김구 저격 직후 체포되어 방첩대(CIC, Counter Intelligence Corps) 영창에 갇힌 다음날인 6월 27일부터 첫 공판일 전날(8월 2일)까지 사건의 전말과 심경, 취조, 심문과 공판 준비 과정 등을 일기 형식으로 정리한 옥중수고獄中手稿이다.

1955년 10월 26일 『弑逆의 苦憫』이란 제목으로 초판 발행된 뒤 사장되었다가 65년 만에 『나는 왜 김구선생을 사살했나』란 제목으로 복간되는 개정증보판이다.

[책 속 결정적인 한 장면]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른 세 발의 총성

1949년 6월 26일 오전 11시가 훌쩍 넘은 경교장 김구의 집무실. 약 30분여에 걸쳐 안두희가 단독직입으로 묻고 김구가 뭉개며 호통 치는 치열한 공박이 이어진다. 두 사람의 공박은 이내 김구의 육두문자 고성에 이은 책 뭉치와 벼루, 붓 등의 투척으로 이어진다. 김구가 던진 책자 모서리에 강타당하며 안두희 머리에서 피가 흐른다. 감정이 고조된 안두희 또한 정치적 부자의 연을 맺은 사제지간의 예와 분별을 내려놓고,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건국 과정을 통해 노골화한 김구의 국체國體 부정, 국가 전복 시도 음모와 행적에 대해 해명을 요구한다. 격앙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김구가 거구를 일으켜 안두희를 덮치려는 순간, 이미 결행을 각오한 안두희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권총 방아쇠를 당기며 소리친다.

빵! 빵! 빵!
영감과 나라와 바꿉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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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injok.or.kr/archives/118422



심판대에 선 안두희
By 민족문제연구소 - 
2020년 12월 2일 


이번 호에 소개하는 자료는 <신천지> 1949년 9월호에 실린 「심판대에 선 안두희」라는 글이다. 1949년 6월 26일 정오 경교장을 찾아가 백범 김구 선생을 저격한 암살범 안두희은 사건 현장에서 붙잡혀 특무대로 압송되었다. 그로부터 39일 만인 8월 3일부터 8월 6일까지 일제시대 만주국 군의(軍醫)였던 원용덕 준장을 주심(主審)으로 한 군사재판이 열려 안두희에게 종신형을 선고한다. 당시 사회부 기자였던 오소백은 참관인으로서 군사재판의 전 과정을 지켜보고 그 상황을 사실 그대로 기술하였다. 이 군사재판은 이승만 정권의 의도대로 암살범 안두희의 배후를 밝히기는커녕 오히려 안두희의 입을 빌려 백범과 한독당의 반정부적 노선을 비난하는 성토장이 되었다. 변호인은 “(김구) 선생은 5•10 선거를 반대하고 단정을 반대하고 임시정부 주석이라 하며 대한민국을 반대했다”면서 피고를 애국자로 규정하여 대한민국에서 표창하고 동시에 무죄석방을 할 것을 주장하기까지 하였다. 이에 반해 검사는 한독당이 합법적인 정당이고 백범과 한독당의 노선이 반국가적이 아님을 수세적으로 입증해야만 했다.
안두희는 재판 후 3달이 지나 특무대장 김창룡의 비호 하에 종신형에서 15년으로 감형되고 6·25가 발발하자 잔형 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포병장교로 복귀하고 1953년 육군중령으로 예편한다. 반면에 당시 한독당 조직부장으로 있던 김학규는 안두희를 김구에게 소개해서 이승만 암살을 도우려 했다는 혐의로 군사재판에 넘겨져 징역 15년형을 언도받아 이승만 정권 내내 징역살이를 하게 된다. ― 편집자주

온 겨레가 다 같이 숭배했고 자기 몸처럼 아껴오던 노혁명가 백범 김구 선생이 불의의 흉탄에 쓰러지신 지 39일 만인 8월 3일부터 동 살해범 안두희에 대한 중앙고등군법회의가 반민자를 처단하던 지방법원 대법정에서 열렸다. 이날 법정에 모여든 사람은 인산인해였고 법원 구내를 물샐틈없이 감시하는 헌병, 기마경찰대 그리고 기관총까지 눈에 띄어 경계는 자못 삼엄했다. 법원 부근 전신주와 벽에는 “대한민국의 초석이며 애국자인 안두희를 석방하라”는 삐라가 공판이 끝나는 날까지 붙어있었다.

방청석에는 경교장 측근자와 피고의 아내가 눈에 띄었고 피고 안두희 옆에는 감시병이 총검을 들고 서있다. 안두희는 피고석에 앉아서 태연히 얼굴을 쳐들고 방청석을 이따금 바라보았다. 공판이 점점 깊어가자 여러 가지 못한 현상이 있었으니 어떤 변호인은 피고를 애국자로 규정하여 대한민국에서 표창을 하고 동시에 무죄석방을 주장하였다. 피고 안두희는 공판정에서 선생을 반역자라고 말하면서도 가장 숭배하는 위대한 인간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피고 안두희는 엄격을 자랑하는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종신형이라는 판결을 받게 되었으니 법이 규정한 종지부, 모든 문제는 어느 정도 뚜렷이 나타나게 되었다. 기자는 4일간에 걸친 공판을 될수록 치밀히 본 바 그대로 묘사해 보련다.

[기소문 요지]
1. 육군소위 안두희는 국방경비법 제43조 위반¹으로 단기 4282년 3월 중순경 한국독립당에 입당하였음
1 국방경비법은 미군 군정장관이 1948년 7월에 조선경비대(한국군의 전신)의 운용을 목적으로 제정한 법령으로 구성은 ‘ 입대, 보고, 무단이탈 폭동, 도망, 군용물, 군법회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법은 한국정부가 1962년에 군형법으로 대체할 때까지 군사재판의 근거로 작동하였다. 국방경비법 43조는 ‘제9장 군기문란’ 중 정치관여에 대해 규정한 조문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부에 대하여 정치에 관한 청원의 제출, 연설 또는 문서에 의한 자기의 정치적 의견 공표 또는 정치에 관여하여 조선경비대 내에 소요를 양성하거나 또는 차(此)로 인하여 조선경비대의 명예를 손상하는 여하한 군법 피적용자든지 군법회의 판결에 의하여 처벌함.
2, 육군소위 안두희는 단기 4282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혁명투사 김구 선생을 권총으로 불법 살해하였음. 즉 6월 26일 피고가 경교장으로 김구 선생을 방문하기 전 경교장 근처에 있는 다방 자연장에서 약 20분 동안 두뇌를 정리하였다. 그리고 종전부터 맘에 품고 있었던 한독당과 김구 선생의 반정부적인 노선에 대하여 김구 선생의 본심을 타진하고 피고의 거처를 결정할 목적으로 김구 선생을 만났다. 피고는 김구 선생을 향하여 공산주의의 이적행위에 가담하지 말고 본심으로 돌아가서 간신배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권하자 선생은 “네가 내게 반동하느냐? 나에게 반동하면 국가민족에 대한 반동이다.”라고 노하기에 그 순간 정신이 혼란하고 흥분하여 김구 선생이 있음으로써 대한민국에 지장을 주며 그것이 곧 민국 정부 육성에 장해물이 된다고 하고 여순사건, 강태무·표무원 소령 월북사건, 장덕수사건, 공산당과의 합작 등등을 생각하고 미국제 권총으로 약 1미터 거리에서 제1탄을 발사하고 계속하여 3, 4발을 쏘았다.
안두희 심판 고등군법회의 재판정 배치도 신천지 1949. 9.

피 고 : 육군소위 안두희
주 심 : 육군준장 원용덕, 배심: 육군대령 강문봉 외 5인
검 사 : 육군소령 홍영기, 육군대위 김선진
변 호 : 육군소령 김종만(관선), 육군중령 양정수(특별), 이상기(민간)
입 회 : 신문기자

[제1일 공판 오전10시 20분 개정, 오후 4시 30분 폐정]

비밀당원제 없다

검 사 : 직업은?
김학규 : 독립운동이다.
검 사 : 안두희를 아는가?
김학규 : 안다
검 사 : 어떻게 아는가?
김학규 : 홍종만을 통하여 안다.
검 사 : 언제부터 아는가?김학규

김학규 : 나와 만나기 전부터 홍종만을 통하여 한독당에 입당할 것을 이야기했다. 3, 4월경에 입당수속을 하게 하였으며 비서를 통하여 당원증을 교부케 했다.
검 사 : 안두희는 한독당을 위하여 활동하였는가?
김학규 : 아니다. 활동한 일 없다. 안두희는 만났을 적마다 민국에 대한 불평을 말하였으며 때때로는 듣기에도 위험한 이야기까지 하고 또 김구 선생 자신의 증명서까지 얻어달라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그 후로는 홍종만을 통하여 나를 또 다시 찾아주지 말기를 요구하여 사건 발생 약 1개월 전부터는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다.
변호사 : 당원증은 어떤 종류의 당원증을 주었는가?
김학규 : 보통 가지는 당원증을 주었는데 그 후 홍종만을 통하여 비자(秘字) 도장을 찍어달라고 요구하기에 무의식적으로 찍어주었다.
변호사 : 비밀당원이 있지 않는가?
김학규 : 한독당에 비밀당원제는 없다.
변호사 : 위험한 말을 피고가 하더라고 하는데…
김학규 : 일본의 2.26사건² 등을 말하는 것을 듣고 한독당에서는 쿠데타를 불찬성한다고 말했다.
2 1936년 2월 26일 일본 황도파 청년장교들이 일왕의 쇼와유신을 명분삼아 수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일으킨 반란사건을 말한다.
변호사 : 입당시키는 데 있어서 안두희를 심사한 일이 있는가?
김학규 : 없다.
(변호인측으로부터 한독당 조직체와 탈당 여부에 대한 심문이 있은 후 검찰관측으로부터 변호사단의 심문에 따른 보충심문이 있은 후 오전 공판은 하오 0시 17분 휴정하였다. 오후 1시30분 공판 속개)원용덕

검 사 : 한독당의 입당에서부터 입당 후의 활동은?
홍종만 : 김학규 씨한테 안두희를 비밀당원으로 입당시키겠다는 말을 들었으며 활동에 대해서는 모른다. 다만 나는 소개만 하였을 뿐 내부적인 일은 모른다.
변호사 : 안두희는 비밀당원임에 틀림없는가?
홍종만 : 틀림없다.
판 사 : 비밀공작대의 일부와 포병대 내에 세포를 두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홍종만 : 임무에 대해서는 나도 모른다. 다만 포병대에 세포를 두는 것은 안두희가 포병대에 있는 까닭이다.
판 사 : 지하공작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홍종만 : 나도 모른다.
판 사 : 일단 지령이 내리면 모종의 행동을 하라고 지령하였다는데 모종의 행동이란…

선생을 죽이려고 입당했나
판 사 : 한독당에 입당한 동기는?
안두희 : 나는 맨 처음에 조민당에 가입하였으나 별로 정치에는 관념이 없었고 특히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인 대통령 이승만 박사와 김구 선생을 두 국부로 모셔왔고 또 숭배해왔다. 그 후 두 분이 분열되자 첨에는 표면적인 분열이 아닌가 하여 앞으로 다시 합류하게 될 것을 바라며 선생을 모셔오던 중 우연히 홍종만과 가까워졌고 홍종만의 열렬한 권고와 묘한 방책에 나도 이끌려 입당하게 되었다. 당에 입당하는 것은 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선생을 친히 모실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방법으로 생각하고 입당했다.
(피고는 음성을 높여 말했다)

검 사 : 군인은 정당에 가입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가?
안두희 : 잘 안다.
검 사 : 그럼 알면서 왜 입당했는가?
안두희 : 위법인 줄 알면서도 어느 정도 군인도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과 또 김구 선생을 친히 모실 생각에서 입당했다.
검 사 : 군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안두희 : 국가의 방해물을 타도하는 것이다.
검 사 : 그것 말고 중한 것이 있나?
안두희 : 상관의 명령을 절대 복종하는 것이다.
검 사 : 그래 명령을 복종했나?
안두희 : ……
제1회 공판 재판정에 들어가는 안두희. 동아일보 1949.8.4.

검 사 : 입당하여 어떤 활동을 하였는가?
안두희 : 별로 한 일 없다.
검 사 : 어째서 없는가?
안두희 : 단순히 김구 선생을 모시기 위해 입당했으니
까 당의 일은 별로 한 일 없다.
검 사 : 왜 선생을 가까이 모시려고 하였나?
안두희 : 국민으로서 어찌 영도자와 가까이 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판 사 : 김구 선생을 죽일 목적으로 입당한 것이 아닌가?
안두희 : 그런 목적은 추호도 없었다.
판 사 : 권고에 못 이겨 피동적으로 입당했는가?
안두희 : 자기 의사에 따라 입당했다.
판 사: 언제부터 정치에 관여했는가?
안두희 : 해방 직후부터다.
판 사 : 홍종만 증인과의 연락은?
안두희 : 내가 사관학교에 입학한 후 휴가시에 나올 때마다 다방 등에서 홍종만을 만났으며 그럴 때마다 입당하라고 권유를 받았다.
판 사 : 정치적 의식을 가지고 입당하지 않았나?
안두희 : 개인적으로 혹은 당적으로도 김구 선생을 모시고 싶어 들어간 것이다.
(이로써 피고에 대한 죄과, 즉 군인이 정치에 관여함으로써 성립된 죄상에 대해서는 심문이 끝났다)

판 사 : 증인은 26일 사건이 생긴 후 현장에 갔다는데 그때의 사실을 말하라.
의 사 : 26일 오후 1시경 경교장에 갔을 때는 벌써 선생은 절명해 있었는데 저격당한 결과로 보아 이는 연발적으로 총을 쏜 것 같이 보인다. 법의학적으로 나는 증명할 수 없다. 다만 그 당시의 결과를 과학적으로 진찰했을 따름이며 강심제 주사를 3대나 논 것은 측근자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적십자병원 외과의사 이씨)

[제2일 공판 오전 10시 15분 개정 오후 3시 55분 폐정]

점심 먹는 중에 저격했다
이날 안두희는 다만 전일과 달리 군화를 단화로 바꿔 신었을 뿐 옷은 말쑥한 군복을 입었으며 때때로 수건으로 땀을 씻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검 사 : 경찰 경험은?
증인(강주임) : 약 1년 반이다.
검 사 : 당일 보고는 누가 했나?
증 인 : 조순경이 했다. 그래서 나는 곧 현장에 가본즉 범인은 피가 묻은 채 자빠져 있었고 또 아무 저항도 없었다. 나는 다시 2층 현장에 올라가서 보고 곧 본서에 보고했다.
판 사 : 그때 권총을 들고 있던가?
증 인 : 순경이 총을 들고 있었을 뿐이다.
판 사 : 안두희를 구타하는 것을 보았나?
증 인 : 조순경한테 듣고 알았다.
(다음은 경교장 비서 선우진, 이풍식 양인에 대한 증인심문이 계속되었다)

검 사 : 안두희는 몇 시에 왔는가?
선우진 : 12시 전후로 기억된다.
검 사 : 그때 군인은 몇 사람 왔었나?
선우진 : 전부 그때까지 4명이었다.
검 사 : 안두희와 잘 아는가?
선우진 : 몇 번 만났다.
검 사 : 안두희가 찾아온 목적은?
선우진 : 김구 선생을 면회하겠다고…
검 사 : 어떻게 안내했나?
선우진 : 마침 먼저 온 손님이 있었기 때문에 약 1시간 쯤 간담하다가 선생 방에 안내하였는데 그때 시간은 12시 45분이 아니면 50분이다. 이것은 마침 라디오에서 조선 노래가 들렸는데 그것으로 시간은 추측할 수 있다. 선생께 안내하니 선생은 안두희에게 언제 왔느냐고 물었다. 안두희는 3, 4일 전에 왔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곧 내려왔다.
검 사 : 그리고 무엇을 했나?
김구 선생 비서인 선우진

선우진 : 약 20미터 떨어진 지하실에 내려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 먹은 양은 종전의 3분지 1밖에 못 먹었다.
검 사 : 밥그릇은 공기냐 사발이냐?
선우진 : 알루미늄 그릇이라 밥은 그곳에 7, 8부밖에 담지 않았으며… 밥을 먹다 갑자기 쌈질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숟가락을 내던지고 대합실로 뛰어 올라갔더니 때마침 조순경이 안두희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래 2층으로 올라가보니 선생은 의자에서 피로 물들인 채 쓰러져 있어 선생님 선생님하고 불러도 대답이 없었고 맥박이 멎어 있었다. 그래 당황하여 곧 병원에 가보려고 내려왔지만 다른 사람이 갔다기에 그만뒀다.
검 사 : 안두희는 첨에 총을 찼던가?
선우진 : 차고 있었다.
검 사 : 권총은 이것인가? (검사는 권총 실물을 제시하면서)
선우진 : 그것으로 기억된다.
검 사 : 그리고 안두희를 때렸는가?
선우진 : 때렸다.

순간적인 이유로 자살 안 했다
검 사 : 증인 이풍식 씨도 당시에 사정을 말해보라.
이풍식 : 나는 그때 마침 전화가 왔길래 라디오를 끄고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 건 사람은 교통부 차관 비서다.
검 사 : 그때 전화 문답을 말하라.
이풍식 : 경교장이냐? 그렇다. 선생님 돌아오셨나? 돌아오시다니. 출장을 가시지 않았나? 가지 않았다. 계시냐? 계시다. 별 사고 없느냐? 없다. 찾아가도 좋으냐? 찾아와도 좋다. 이런 정도의 내용이다.
검 사 : 그리고 어떻게 했는가?
이풍식 : 전화실에서 나오니 안두희는 권총을 내 쪽을 향하여 들고 있었으며 그 밖에 조순경이 카빈총을 들고 “손들어 쏜다” 하며 고함을 쳤다. 그제서야 안두희는 권총을 떨어뜨렸다. 이국태가 권총을 빼앗은 후 2층으로 올라가보니 주석은 피를 흘린 채 의자에 쓰러진 것이었다. 그래 의자에 기대어 있는 주석을 다다미방에 모시고 맥을 보니 벌써 그쳐 있었다.
변호사 : 지금 증인은 김구 선생을 주석이라 말했는데 주는 주(主)자인가?
이풍식 : 그렇다.
변호사 : 주석이란 대체 무슨 뜻인가?
이풍식 :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이란 뜻이다.
변호사 : 임시정부란 지금 존재하고 있는가?
이풍식 : 금년이 대한민국 31년이 아닌가 …
변호사 : 대한민국이 엄연히 …
(이때 재판관이 변호사의 언권을 정지하고)

판 사 : 증인에 대하여 괴롭히거나 필요 이상의 심문은 금한다.
변호사 : 2층에 올라갈 때 안두희는 모자를 썼던가?
이풍식 : 썼다.
변호사 : 내려올 때는?
이풍식 : 모자도 없고 계급장도 없었다.
변호사 : 그런 점으로 보아 피고는 자수하려고 내려왔다고 보지 않는가?
이풍식 : 그렇지 않다. 자수하는 사람이 왜 권총을 가지고 내려왔단 말이냐.
판사: 아까 증인은 전화를 받을 때 사고 없는가라는 말이 있었는데 사고란 무슨 뜻인가?
이풍식 : 무사하냐는 뜻이다.
판 사 : 단순히 무사하다는 뜻이면 안녕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도대체 선우 비서가 점심을 2분 동안에 빨리 먹는다거나 ‘사고’ 없느냐는 전화가 오는 것 등으로 보아 사전에 모종의 무엇이 있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이로써 상오 공판을 마치고 하오 1시 35분부터 변호인의 요청에 의하여 30분 간에 걸쳐 경교장 검증이 있은 후 다시 법정에 돌아와서 공판은 재개되었다)

변호사 : 한독당에 가입한 일이 있는가?
안두희 : 있다.
변호사 : 저격 전까지 몇 번 선생을 뵈었는가?
안두희 : 일곱 번 찾아가서 만났다.
변호사 : 6월 26일 무슨 일로 면회하러 갔는가?
안두희 : 근 20일 간이나 면회를 안 하였기에 간 것인데 그 전에도 출입을 삼가라는 말을 여러번 들었고 나중엔 왜 왔느냐고 책망까지 들었다.
변호사 : 입당 전과 입당 후의 감상은?
안두희 : 표면상으론 한독당 노선은 유혈 기피 노선이라고 보았는데 그 후 점점 그들의 (김구선생은 제외하고) 언동이 불순하여 나는 이런 정당을 따른다는 것에 대해 침울해졌고 정치적 고민을 하였다. 나는 김학규를 십여 차에 걸쳐 만났는데 4월 중순경부터 반정부적인 말을 하였으며 구체적으로 정부시책을 비판하고 대통령을 공격하였다. 나는 김구 선생을 살해했다. 애국자이며 국부이며 영도자인 선생을 살해했다.
(이렇게 흥분된 어조로 크게 떠들자 변호인의 요청으로 5분간 휴정 후 속개하였다)
안두희 : 이렇게 위대한 분을 내가 살해한데는 의의가 깊다. 나는 저격 후 즉시 자살하려고 하였으나 순간적인 이유로 자살을 중지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생명의 애착을 느끼지 않는다. 김학규는 민국을 정부라고 부른 일이 없고 국회 소장파에 가담하여 정부시책을 끝끝내 반대하고 외군 철퇴를 주장했다. 강태무·표무원 소령 월북사건도 필연코 한독당에서 조종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벌써 탈당 의사까지도 암시하였다. 김학규는 강태무·표무원 소령 월북사건에 대한 각계 동향과 여론을 주시하고 우리 조선에서도 뭘 일으켜야 되며 젊은이래야만 되니 그때를 위해서 비밀조직을 하되 8.15전까지에는 쾌속히 그리고 절대 확실히 비밀세포를 가지라. 김구 선생에게도 말했다고 내게 말했다.
변호사 : 6월 26일 전까지 김구 선생과 만나 한 이야기는?
안두희 : 잘 기억이 안 나나 선생은 외군 철퇴를 지지하였고, UN 한위를 반대했고 1억 5천만불 원조안을 반대했다. 선생은 경교장 경호원은 나를 경호하는 게 아니라 내 동향을 탐지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나는 국내정세가 변할 때마다 김구 선생을 찾아가서 선생이 본심으로 돌아갈 것을 말했으나 선생은 그럴 때마다 화를 냈다.

[제3일 공판 오전 10시 5분 개정 오후 4시 5분 폐정]

눈을 감고 총을 쏘았다
공판 개정 제3일은 8월 5일로 선생이 가신 후 처음 맞는 생탄일이다. 운명의 장난이란 공교롭고도 얄미운 것이 아닌가.
변호사 : 살해 경위를 상세히 말하라.
안두희 : 그날 아침 조반을 먹고 예사로이 포병대에 나가려고 동화백화점 앞까지 와서 자동차를 타려다 어젯밤에 아내가 낙태한 것을 생각하고 돈을 주려고 다시 집으로 갔다. 집에서 나오면서야 비로소 그날이 공일인 줄 알고 영천 친구네 집에 놀러 가려는 맘에서 자동차를 집어탔다. 대한문을 거쳐 이화여중 앞을 지나 로터리에 다다랐을 때 경교장 김구 주석을 만나겠다는 충동이 일어나 그만 차를 내려 자연장 다방으로 발을 옮겼다. 차를 마시며 번민했다. 오늘은 꼭 선생을 만나 최후의 본심을 알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20분 후 자연장을 나왔다. 경교장에 들어가자 선우 비서와 악수를 하고 잡담을 교환하고 있으니 강 대위가 들어왔다. 나는 김구 선생과의 면회를 강 대위에게 양보하고 선우 비서와 포(砲)에 대한 잡담을 하였다. 강 대위가 간 후 나는 선우비서의 안내로 2층 계단을 디딜 때 마침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해방된 역마차’라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들렸다. 내가 선생 앞에 나가 거수경례를 하자 선생은 2미터 앞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권했다. 그때 선생은 매우 표정이 불쾌한 것이 역력했다. 선생은 3.8선 사태 및 포병의 편성상태는 어떠냐고 묻기에 흐지부지 대답한 후 나는 선생에게 일부러 꾸며 거짓말을 하여 본심을 알아보려 하였다. 나는 2, 3일 중 웅진전투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출정하며 선생님께 인사도 드리고 선생님의 포부도 똑바로 알고싶어 왔습니다 하고 말하니까 선생은 국회 소장파 얘기를 꺼내며 세간에서는 경교장을 싸고 여러 가지 낭설이 떠돌고 있는 이때에 너까지 와서 이러면 남들이 색안경을 끼고 들테니 돌아가라고 말하였다. 나는 선생에게 그런말을 하시는 선생을 어찌 의심하지 않았겠습니까? 저마저 선생님을 의심하게 됩니다. 정당이나 언론계에서는 모두 선생을 공산당과 악수한다고 합니다. 오늘은 꼭 선생님의 본심을 확실히 알고야 돌아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더니 선생님은 대노하시며 이놈이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크게 꾸짖었다. 나는 다시 말을 계속했다. 선생님은 선생님이 30여 년간 투쟁한 탑을 선생님 손으로 무너뜨리지 마십시오. 지금 이때가 바로 선생님이 개심할 때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으니 본심으로 돌아가서 회개하십시오 하였다. 그랬더니 선생은 크게 노하시며 이 고약한 놈 나에게 반동하는 놈은 국가와 민족의 반역이다 하고 말하였다. 나는 이 순간 틀림없이 선생님은 국가의 반동이라고 생각했다. 국가를 위하여 선생을 죽이는 것이 좋겠다고 나는 단정했다.
국가의 장래를 위하여 선생을 죽이고 나도 죽겠다고 결심했다. 최고조로 흥분한 나는 선생과 여순사건, 강태무·표무원 소령 월북사건, 장덕수사건 등을 연상하려기에 그 후의 언쟁은 기억이 없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의자에서 반쯤 몸을 일으키고 권총을 내어 눈 감고 제1탄을 발사하였다. 눈을 떠보니 선생은 두 손을 들고 무서운 눈으로 무슨 말씀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연속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나는 총을 쏜 후 선생을 보지 않고 그대로 서쪽 마루로 방을 옮기며 내 머리에 권총을 겨누었으나 순간적으로 죽을 필요가 없다는 영감을 느꼈다. 나도 자존심과 영웅심을 가진 사람이다. 또 국군에 누를 끼칠까 두려웠으나 죽는 것보다 살면 또 국가를 위해 큰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한독당의 비밀을 완전히 폭로하고야 만다고 결심하고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 이국태 등은 그때도 소파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권총으로 선생을 죽였다고 말하여 그들은 당황하며 무슨 말인지 의심하는 것이었다. 이때 밖을 보니 정복 경관이 나를 향하여 조심조심 달려왔다. 나는 계급장과 모자를 다 버렸다. (장내는 긴장한 분위기로 죽은 듯이 고요했다. 재판장으로부터 5분간 휴정을 선언하자 피고는 자기 자리에 태연히 앉아서 장내를 두리번두리번 보았다)

나의 행동은 애국적이었다
검 사 : 김학규가 대통령과 동 부인에 대하여 요설을 한 일이 있는가?
안두희 : 시간과 장소는 기억에 없으나 욕하는 것을 들었다.
검 사 : 그때 홍종만은 있었는가?
홍종만 : 있었다. 대통령 생신날 백성은 굶주려 아우성치는데 생일축하구 머구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검 사 : 강태무·표무원 소령 월북사건에 대하여 필요 이상 말한 일이 있나?
김학규 : 그런 일 없다. 강태무·표무원 소령 월북사건은 안두희가 라디오를 틀고 나에게 전언하기에 비로소 나는 알았다. 대통령 부처에 대하여 욕했다는 것도 다 낭설이다.
검 사 : 8.15의거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가?
김학규 : 그런 일 없다. 한독당에서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
검 사 : 1억 5천만불 경제원조를 반대한 일이 있는가?
김학규 : 없다.
검 사 : 군사고문단 설치를 반대한 일은 있나?
김학규 : 없다.
검 사 : 그 자리에 홍종만이도 있었다는데?
홍종만 : 모르겠다.
이때 홍검사는 신문을 증거품으로 꺼내 1억 5천만불 경제원조에 대하여 국도신문 6월 10일부 한독당 선전부장 담화를 낭독함으로써 동당이 경제원조를 지지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다시 8.15의거사건에 대해서는 화성매일신문, UN문제에 대해서는 경향신문을 꺼내서 한독당의 이에 대한 성명서를 지적하여 피고의 진술이 전혀 근거 없는 낭설임을 명확히 반증하였고 나가서는 한독당의 노선이 반정부적이 아니고 합법적인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이로써 상오 공판은 그치고 오후 1시부터 속개되었다)

먼저 피고 안두희로부터 현재 자기는 김구 선생을 반역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자기의 살해행동은 애국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열광적으로 날뛰었다.
판 사 : 애독 서적은?
안두희 : 백범일지와 소련문학 고골리전집이다.
판 사 : 고골리의 작품을 읽고 무엇을 느꼈나?
안두희 : ……
판 사 : 그의 사상을 어떻게 보는가?
안두희 : 제정시대에 읽어서 기억이 없다.
검 사 : 고골리는 제정 러시아 사람으로 별다른 사상이 없다.
판 사 : 내가 무식해서… (판사는 빙그레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이어 한독당 노선에 대해서 민주국민당 함상훈 선전부장이 비판하였는데 동당 노선은 5.10선거를 반대했고 남북협상을 주장하고 현 정부에 협조치 않았다고 증언하였다.
검 사 : 증인 함상훈 씨의 증언을 논박하기 위하여 한독당 노선을 가장 잘 아는 동당 조직부장 김학규 씨와의 연석 신문을 요청한다.
판 사 : 그만 두는 것이 좋다.
검 사 : 필연적으로 한독당 노선은 한독당 간부가 잘 알 것이 아닌가? 논박할 수 없는가?
판 사 : 논박할 수도 있으나 재판장의 권한으로 각하한다.
검 사 : 그렇다면 잘 알겠다.

[제4일 공판 오전 10시 개정 오후 0시 52분 폐정]

노혁명가를 죽인 죄는 크다
판 사 : 사실 심문은 대략 이것으로 끝났는데 지금 피고의 심정은 어떤가? (판사는 낮은 음성으로 묻는다)
안두희 : 마음이 잔잔하다. 다소 정치적 번민은 없었으나 지금은 자기가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것을 다 집어치우고 인간적으로 돌아가면 가신 선생의 생각이 절실하다. 나는 몇 번 죽여주어도 좋다. 빨리 사형을 내려달라. 만일 사형을 나에게 내리지 않고 미온적인 형벌이 있다면 나는 내 자신이 내 목숨을 끊어버리겠다.
판 사 : 우국지성에서부터 그런 일은 했으나 인간적으로 선생을 숭배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고 다시 한 번 재생하여 창공을 바라보는 그러한 맑은 기분을 가질 수 없을까.
안두희 : 내 마음은 지금 창공을 바라보는 것처럼 맑다. 다만 안두희가 인간으로 돌아갈 때 꼭 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백범 선생의 국민장날 수많은 동포들이 아우성치고 발 구르며 우는 소리를 영창 속에서 들을 때 나는 울었다. 빨리 나를 사형해 달라. 
(피고는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판 사 :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처자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안두희 : 사람인 나도 슬프다. 그러나 큰마음으로 생각하면 할일을 했으니… 가족에 대한 모든 것도 머리에서 사라진다.
판 사 : 아무리 선생을 살해하는 동기가 우국지성에서 나왔다 하여도 그것이 국법에 저촉된데에는 어떻게 될지 몰랐는가?
안두희 : 오로지 사형을 바랄 뿐이다.
검 사 : 논고로 들어가기 전에 전제로 몇 가지 말하겠다. 피고는 죄과 1에 대해서나 죄과 2에 대해서나 절대로 유죄인 것은 명백하다. 첫째 국방경비법 43조에 의거하면 테러와 군국주의를 막는 의미에서 군은 정치에 관여 못한다고 뚜렷이 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국가이다. 그런고로 동 조항의 입법정신을 반드시 이행하여야 한다. 더구나 복잡미묘한 현하의 국내정세에 비추어 군의 질서를 확립하여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존엄을 위하여 단연히 처단하여야 한다. 군인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정신무장의 정도로 그 한계를 가져야 할 것이며 직접 어떠한 정치적 행동을 하는 것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여러 사건에서 본 그러한 전철을 밟기 쉽고 나가서는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육군소위 안두희가 노혁명가 김구 선생을 살해한 동기가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간에 그 결과는 커다란 죄악임에 틀림없으며 국군의 위신을 손상시킨 것이다. 
(검사는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한독당은 합법적인 정당이다
검 사 : 다음은 한독당에 대하여 말하겠다. 한독당은 8.15 이후 특히 대한민국 수립 이후 동당의 노선은 UN을 지지한 합법적인 정당이다.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그런 정당은 아니다. 그것은 동당에서 발표한 성명서 및 담화로서 명백히 되어있다. 혹 전술적으로 또는 기술적으로 좌익과 손을 잡는 듯이 했는지는 몰라도 손목을 잡은 일은 없다. 금년 6월 3일부 태양신문에 게재한 것을 보면, 소위 조국민전을 반대한 한독당의 성명이 뚜렷이 대외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이 밖에도 남북협상 이후 대북반박성명을 한 것으로 보아도 명백한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전통적으로 한 개의 이론체계와 세계관을 서로 달리하고 있는 공산당과 한독당이 합작할 이가 있겠는가… 더구나 공산당이 전국을 장악한다면 한독당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동당을 가리켜 반정부적인 정당이라 하는 것은 사실 무근인 허위낭설에 지나지 않는다. 피고 안두희가 주관적으로 옳다 해도 객관적으로도 군기에 비추어볼때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이런 자에 대한 처단이 미온적이라면 기타의 범인에 대해서는 아무 처단도 내릴 수 없게 될 것이다.
(검사는 도하 각 신문을 증거품으로 낭독하며 한독당의 노선을 구명하였다)

대한민국은 안두희를 표창하라
변호사 : 피고는 증인 홍종만의 소개로 입당했다. 이것은 국방경비법 43조에 해당 안 된다. 죄과 제1에 대한 것은 무죄일 것이다. 피고는 한국당을 위해 입당한 것이 아니라 김구선생을 어려서부터 숭배했기 때문에 당에 가입한 것이다. 죄과 제2에 대해서는 살해는 인정하나 대한민국의 장해물을 제거한 동기를 보면 죄과 제1과 어떤 유기성을 갖고 있다. 선생은 5.10 선거를 반대하고 단정을 반대하고 임시정부 주석이라 하며 대한민국을 반대했다. 그뿐만 아니라 무혈통일의 허울 좋은 이념 아래 비현실적인 길을 걸어왔다. 본 변호인은 범행 목적 동기는 정당하다고 인증한다. 국가가 중요한가? 법이 중요한가? 피고의 행위는 대한민국에서 표창할 일이다. 형벌의 목적은 사람을 죽이는 데 있지 않고 이를 회개케 하고 교육하는 데 있을 것이니 육군소위 안두희에 대해서는 무죄석방을 요구한다. 피고는 의식적으로 범행을 하지 않았고 또 자수하였으니 이는 현명한 심판관께서 많이 참작하여 2년 집행유예 정도로 처결을 바란다.

총살형을 요구한다
검 사 : 지금 변호인이 말한 중 국방경비법 43조에 해당 안 된다는 것은 이단적인 해석이다. 군사법은 다른 사법과 달라서 과실이라 할지라도 엄벌에 처해야 한다. 상부에 명령없이 부하가 맘대로 군대를 움직여 전멸했을 때 이 죄과를 무엇으로 회복할 것인가. 더구나 국군의 장교로서의 피고가 노혁명가 김구 선생을 살해한 데 대하여 무죄와 집행유예 정도의 판결을 주장하는 변호인의 의도가 나변(那邊: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더욱 변호인인 법률가로서 상식에 벗어난 말을 하는 것은 유감이다. 좀더 법률을 …… 
(이렇게 변호인의 반박에 역반박하는 검사에게 판사는 발언을 일시 중지시키며……)
판 사 : 검찰관은 변호인의 위신을 손상시키거나 개인 인신공격 같은 말은 삼가 달라.
검 사 : 그러면 무죄란 말을 곧 취소시켜주면 공격 않겠다. 
(이때 방청객들은 모두 크게 웃었다. 검사는 아직도 흥분한 빛을 보였다)
판 사 : ……
검 사 : 피고 안두희는 전번 공판에서 진술하기를 김구 선생을 살해하고 자기 자신도 죽겠다고 했으니 이는 즉 범죄의식이 잠재적으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검사와 변호인 사이에는 법률적 해석을 가지고서 논박하였다)
검 사 : 변호인의 변론 중 피고의 자수는 본 검찰관도 인증한다. 그러나 엄연한 군기를 무시하면 나라를 망치는 것이다. 때가 때이니만치 군인이 정치에 관여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은 더욱 삼가야 한다. 자칫하면 우리 국군을 전부 파괴시킬 우려가 이 정치관여에 있다. 정치를 위한 군인인지 군을 위한 군인인지 그것부터 명확히 파악하여야 한다. 바라건대 재판장은 객관적으로 모든 것을 무시하고 어디까지나 공정무사한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다. 더구나 피고는 어제까지도 우리와 같은 군인 동지이고 전우였으나 오늘은 서로 숙명적으로 각각 다른 입장에 섰다. 같은 군인이 군인을 구형하고 재판하게 되었으니 여기에 감상적인 인정에 끌리는 일이 없이 동정심에 끌림이 없이 어디까지나 냉정한 처단을 ……
(여기까지 말하는 검사의 언권을 중지하며 재판장을 노기 띤 낯으로……)
판 사 : 그런 검사의 말은 우리 심판관을 모욕하는 말이니 취소하라.
검 사 : 취소합니다.
판 사 : 계속해 말하라.
검 사 : 피고 안두희가 군인이기 때문에 또 상대방이 노 혁명투사이기 때문에 절대로 용서할수 없으니 최극형에 처하라. 마땅히 군인 기본 원칙에 비추어 총살형을 받아야 한다.
판 사 : 일반 방청객이 있는데서 검찰관은 법관을 모욕하는 언사를 하는 것은 앞으로 삼가라. 
(검사는 두 번 강조하는 판사의 말에 재차 미안한 뜻을 표했다)

무기명투표로 종신형 판결!
변호사 : 검사가 피고를 우국지사라면서 극형을 내리는 것은 두뇌의 혼돈이다.
검 사 : 살해동기가 주관적 우국지성에서 나왔을지 모른다고 했지 우국지사라고 한 일은 없다. (이때 재판장으로부터 5분간 휴정을 선언한 후 11시 19분에 속개하였다)
변호사 : 본 변호인은 피고를 애국자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반역자가 애국자를 살해할수도 있고 애국자가 애국자를 살해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검 사 : 피고가 최후적으로 선생의 심정을 알려고 경교장에 갔다는 진술을 보아도 상당한 의식적 결심을 가졌던 것이 명백하다.
변호사(민간, 이상기) : 사행집행만 제외하고 적당한 형을 바란다.
검 사 : 피고 안두희를 총살형으로 구형한다. 절대 총살형으로 구형한다.
(검사는 시종일관 열렬히 논고하였다. 오후 0시 5분)
안두희 : 한독당의 행위는 위선이라고 본다. 5・10선거를 반대하고 군사고문단 반대, 경제원조를 반대한 한독당을 반정부의 정당이 아니라고 말하는 검찰관과 심판관에게 유감히 생각한다. 만일 이 자리에서 공산당과 한독당이 같은 노선이 아니라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라.
(피고는 소리를 있는 대로 높였다.)
판 사 : 이로써 피고의 진술은 전부 마쳤다. 인간이 인간을 재판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국방경비법의 고충은 형언할 수 없으나 어쨌든 동법은 법인 이상 법에 의거하여 공평무사한 판결을 내려야겠다. 제 심판관들은 법의 근본정신에 입각하여 냉정한 판결이 있기를 바란다. 피고에게 한 가지 부탁할 것은 또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기를 양심에 간직하라. 군인이 군인을 재판하는 심판관들의 고충을 알아야 한다. 군인이기 때문에 군인을 위하여 군을 재판하는 것이다.
(이렇게 최후로 주의를 말한 주심은 십분 간 휴정을 선언하였다)
판 사 : 피고 안두희
(최후 판결 직전의 호명이다)
안두희 : ……
(피고는 심판관 앞에서 검사의 인정심문에 다시 답변했다.
판 사 : 육군소위 안두희에 대한 최후 판결에 있어 심판관들의 합의를 본바 죄과1에 유죄 죄과2에도 유죄를 만장일치로 가결하였고, 종합 판결을 무기명투표로 본 결과 과반수의 동의로 피고 육군소위 안두희에 대하여 종신형을 판결한다.(오후 0시 52분)
(방청석에서는 죄과1을 말할 때 또 다시 우렁찬 박수를 보냈다. 피고는 헌병과 감시병의 안내로 법정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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