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9

홍세화 “민주건달들이여 진보를 참칭하지 마라”, 착한 임금님 ,문재인 정권무엇으로 진보

홍세화 “민주건달들이여 진보를 참칭하지 마라”



홍세화 “민주건달들이여 진보를 참칭하지 마라”
입력2020.12.19. 오전 10:01

● 文, 임금님 그만두고 대통령으로 돌아가라
● 국정 철학 없는 대통령, 선의의 약속과 침묵의 정치
●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모르는 민주건달들
● 공수처는 더 큰 권력일 뿐… 민주적 통제 아니다
● ‘우리가 조국이다!’와 상징폭력
● 도대체 어떤 멘탈이기에 추미애를 수호하나



원본보기홍세화 장발장은행 은행장. [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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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놓고 해석이 분분했다. 2020년 12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혼란스러운 정국이 국민들께 걱정을 끼치고 있어 대통령으로서 매우 죄송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마침내 사과’라고 했고, 누군가는 ‘사과 같지 않은 사과’라고 했다. 혼란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략된 ‘수수께끼 같은 사과’라고도 했다.

홍세화(74) 씨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호한 화법과 처신을 ‘착한 임금님’에 비유했다. 25년 전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으로 화제를 일으킨 바로 그 홍세화다.

“일방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자리는 불편하지 않다. 임금님은 불편한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고 불편한 자리에 가지 않아도 되지만,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팽목항에 가야 했던 것도 임금님이 아니라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불편한 질문, 불편한 자리를 피한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은 대통령보다 임금님에 가깝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으로 백성한테서 ‘상소문’을 받는다는 점도 그렇다.”(한겨레 2020년 11월 20일자 기고).


“헛소리 그만두고 택시 운전이나 해라”

원본보기2020년 2월 25일 민갑룡 경찰청장과 홍세화(오른쪽) 장발장은행장이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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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착한 임금님’일까. 불편한 자리는 피해도 선의의 약속을 하는 자리는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만나 위로하면서 진상규명을 약속하고, 김용균 씨 유가족을 만나 위로하고 김용균법을 약속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지지부진하고 ‘김용균이 적용되지 않는 김용균법’이 제정되자 대통령은 침묵한다. 부동산 문제, 공직자들의 미투 사건, 낙태 합법화, 성소수자 문제 같은 불편한 자리에서 대통령은 질문을 받는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무엇보다 국민과 열심히 소통하겠다는 약속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홍세화 씨는 현재 ‘장발장은행’ 은행장이다. 2015년 2월 25일 설립된 ‘장발장은행’은 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은 사람들 중에 벌금을 낼 형편이 못 돼 교도소에 갇혀 강제노역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벌금을 빌려주는 은행이다. 이자도 없고 담보도 없고 신용조회도 하지 않는다. 대출한도는 300만 원, 6개월 거치 후 1년 동안 분납 상환하는 조건이다. 장발장은행은 지금까지 8900여 명이 보내준 11억6000만 원의 성금으로 864명이 교도소에 가지 않도록 지원했다.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가서 강제노역을 하는 사람이 연간 3만5000명에 이르는 현실에서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시도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통념부터 깨야 한다던 그가, 이번엔 민생을 외면하는 이 정부에 단단히 화가 났다.

용산구 효창원로에 있는 인권연대 사무실에서 홍 대표를 만나자마자 ‘우리 대통령은 착한 임금님’ 제하 칼럼의 후폭풍에 대해 물었다.

“평생 먹을 욕 다 먹었습니다. 나이 칠십이 넘은 내게 ‘헛소리 그만두고 (파리로) 가서 택시 운전이나 하라’더군요. 자신들의 생각과 조금만 달라도 바로 튀어나오는 말이니까 이젠 신경 안 씁니다. 다만 그 글을 쓴 의도가 편한 임금님 노릇 그만하고 대통령이라는 엄중한 자리로 돌아가라는 바람이었는데 지금 대통령을 보면 제 뜻이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네요.”


설득하기는 어렵고 선동하기는 쉬운 사회-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인정해 주라는 ‘톨레랑스(관용)’ 개념을 한국에 전파했는데, 진영 논리에 따른 앵톨레랑스(불관용)가 활개를 치는군요.

“예상했던 반응이긴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합리적 사고가 진영 논리에 완전히 갇혀버렸다고 할까요. 진영이 블랙홀이 돼버렸어요. ‘논리의 힘’이 아니라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죠. 그 위험성은 여러 학자가 지적했어요. 사회심리학자인 어빙 재니스 교수가 집단사고를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고 하는 사고의 경향’이라고 했고, 철학자 마이클 린치는 ‘지적 오만함은 파벌적일 때 가장 치명적이다’라고 했어요. 우리는 여기에 ‘빠’와 ‘양념’의 정치, 공작 정치가 더해져 진짜 정치는 실종된 거죠. 그래서 제가 설득하기는 어렵고 선동하기는 쉬운 사회라고 한 겁니다.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수정하거나 변화시키는 설득보다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더 극단으로 몰아가는 선동이 더 쉽거든요.”

-국민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현안에 대통령이 침묵으로 일관한다고 지적했는데요.

“문재인 대통령이 왜 집권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무슨 국정 철학을 갖고 있고, 무슨 정치철학을 갖고 있는지, 무슨 미래 청사진을 갖고 있는지 보이질 않잖아요. 국정 최고지도자라면 국민 사이에 의견이 분열돼 있는 현안에 대해 자신의 뜻을 피력하고 토론하고 설득하고 추진하고 돌파해야죠. 욕먹을 각오를 해야죠. 안간힘이라도 써야죠. 그런데 정치가 팬덤화되다 보니 비판적 목소리는 아예 외면합니다.”

-검찰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여러 차례 확인됐습니다.

“대통령이 계속 검찰개혁, 공수처를 붙들고 있는데 지금 만들려는 공수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더 큰 권력일 뿐이죠. 이것은 민주적 통제가 아니에요.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검찰이 기소를 독점하지 않고 범죄 피해자가 직접 소추할 수 있는 사소권(私訴權)을 인정함(사인소추제도)으로써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제한하고 있어요. 이처럼 시민적 통제가 가능한 제도를 만드는 것이 민주적 통제이고, 국회가 할 일이고, 검찰개혁인 거죠. 그런데 지금은 윤석열만 제거하면 된다, 싫으면 내 편에 서라가 검찰개혁이 돼버렸어요.”


‘우리가 조국이다!’와 상징폭력의 정치-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 모든 국정 이슈를 삼켜버렸습니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하고 저급한 공방이 인민의 삶이 조금도 바뀌지 않는 세상을 가려주는 스펙터클이 된 거죠. 부동산, 일자리, 교육처럼 우리 삶을 개선하는 중요한 문제는 뒷전이고 현란한 권력다툼에 시선을 빼앗긴 거죠. 대통령과 시민이 아니라 임금님과 신민(臣民)인 거죠. 신민이 타율성으로 복종하는 존재라면, 시민은 자율성을 가진 주체적 존재입니다.”

그는 현 정치 상황을 ‘상징폭력’으로 설명했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개념화한 상징폭력은, 피지배자들로 하여금 사회적 위계를 정당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함으로써 지배자들에게 복종하도록 이끄는 지배 기제다.

그는 한국 사회에 퍼진 ‘상징폭력’의 실상을 태극기 부대의 광화문 집회와 “우리가 조국이다!”를 외치는 서초동 집회에서 확인했다. 진영 논리가 정책과 이념을 실종시켰고, 정치인에 대한 호오 감정에 따른 팬덤 정치가 옳고 그름에 대한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했다.

“이 분노의 감정은 논리적이지 않다 ‘조국이 무너지면 문재인이 무너진다’고 비약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잃었던 지난날의 울분과 연결시켜 두 달 전까지 적폐 세력 청산의 주역이라고 박수를 쳤던 검찰에 분노의 화살을 집중적으로 보냈다. 급기야 검찰은 적잖은 사람들에게 악마의 화신이 돼야 했다. 검찰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점을 누가 부정할까마는 자기들에게 동참하지 않으면 수구 세력과 한패인 양 몰아붙인다. 분노의 감정이 논리적 사유의 가능성을 없앤 탓이다.”(홍세화 사회비평에세이 ‘결: 거침에 대하여’ 중 ‘상징폭력’)


수구세력과 보수세력의 권력 요요게임그는 ‘문재인 정권은 무엇으로 진보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질문을 던졌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 조지 레이코프가 ‘자유전쟁’에서 ‘자유를 빼앗기는 것도 위험한 일이지만, 자유 개념을 빼앗기는 것은 더 위험하다’고 했는데, 진보 개념을 빼앗기는 것 또한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묻는다. 문재인 정권은 무엇으로 진보인가?”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국민의 다수가 민주당을 지지하는데, 문재인 정부가 진짜 진보가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뭡니까.

“지금의 보수는 보수가 아니듯, 진보도 진보가 아닙니다. 분단체제에서 수구세력, 즉 극우적인 반북 국가주의자들이 보수를 참칭했고, 반일 민족주의를 앞세운 자유주의 보수세력이 진보를 참칭한 겁니다. 저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권력다툼을 ‘어제까지 아주 좋았는데 오늘 그런대로 괜찮은 세력’(수구세력) 대 ‘어제까지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오늘 아주 좋은 세력’(보수세력) 간에 더 좋은 내일을 누가 차지할 것인지를 놓고 다투는 장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진보가 제자리를 찾으려면 보수가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지금 보수는 자신들이 지켜야 할 보수의 가치가 무엇인지도 몰라요. 그냥 기득권이라 부르는, 어제가 좋았던 것밖에 없는 사람들이죠.

수구와 보수의 권력다툼에 진보의 자리는 없어요. 진보란 어제도 오늘도 열악했던 사람들을 위해 더 좋은 내일을 열어가는 것이에요. 지금 여당이 그런 진보인가요? 수구세력이 엉겁결에 보수가 되니, 보수세력이 엉뚱하게 진보 행세를 하고 있어요. 이렇게 권력의 요요게임을 하는 구도가 서로에게 윈-윈이니까. 겉으로는 티격태격하는데 내용상 별반 차이가 없어요. 포괄적차별금지법,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대해 두 당 모두 관심이 없잖아요. 일본 제품 못 쓰게 하는 게 진보인가요. 일제 부역자 찾아낸다고 죽창까지 등장하더니 이제는 정부가 일본과 관계 개선한다고 하니까 입장이 싹 바뀌죠. 놀랍고 우스운 일입니다. 이런 일에 과거 사회주의자였던 사람들까지 가세하고 있어요. 상대를 부정하는 것으로 정체성을 삼는 세력이 진보일 수 없어요.”

그가 정의하는 진보 정치는 이런 것이다.

“오늘날 더욱 격심해지는 불평등주의 체제의 극복이 진보(정치)의 핵심 과제라면, 토마 피케티가 적시한 임금노동자의 의결권 및 권력 분유(分有), 강력한 누진소유세, 기본소득을 넘어선 보편적 자본 지원, 탄소 배출의 집단적 규제, 실질인 평등주의 교육권 등 가볍게 넘길 사안은 하나도 없다.”

피케티가 말한 “자본주의와 사적 소유를 넘어서서 참여사회주의와 사회연방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의로운 사회를 수립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을 한국 사회라는 현실 속에서 모색하는 정치. 그것이 곧 진보정치라는 것이다. 그 기준으로 볼 때 기업이 0순위이고, 노동이 1순위인 정권이 진보일까. 이념은 진영 속에 묻은 채 검찰과 언론 한두 곳에 정조준하는 정권이 진보일까.

“박근혜 대통령 때 ‘친박’ ‘진박’ 하는 게 우스웠는데 이 정권에선 ‘조국 수호’라니. ‘나라를 수호한다’는 말도 한물간 얘기인데 왜 한 사람을 수호하나요. 그것도 하면 안 되는 일까지 포함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기회의 사재기’를 한 가족을 위해 ‘우리가 정경심이다!’라고 외쳐요. 이제는 추미애를 수호한답니다. 도대체 이런 일을 지지하는 40%가 어떤 멘탈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요.”

-‘생각의 좌표’ 이후 11년 만에 사회비평집 ‘결: 거침에 대하여’를 펴낸 동기는 무엇입니까.

“‘결’은 최근 10년간 제 생각을 정리한 책이에요. ‘이 땅의 기득권 세력이 저지른 윤리적 범죄행위 중에서 가장 앞선 것은 자유의 의미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더럽혔다는 것이다’라고 했죠. 가까운 예로 우리가 코로나19 방역을 잘 해왔다고 평가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과연 개인의 자유, 인권의 문제에 대해 얼마나 고려했는지, 이 모든 걸 그냥 덮고 가도 되는 것인지. 진보라면 그런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죠. 국가주의와 집단주의에 의해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는 문제를 고민해야죠.”


빼앗긴 자유, 버림받은 자유를 위하여-분단국가라는 현실에서 자유라는 개념이 유린당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분단국가에서 ‘공산세계’에 대립하는 ‘자유세계’라는 상상의 공동체가 있었고 기득권 세력은 반대파를 친북 좌경, 빨갱이로 몰아가며 권력을 강화했고 자유를 유린했죠. 당시 우리에게 자유란 이승만의 자유당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와 자유시장이 등장해 또 자유의 개념을 가져갔죠.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빼앗긴 대신 민주화를 외쳤어요. 자유의 가치를 전면에 앞세우기가 버거워 민주화라는 방패 뒤에 숨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민주공화국은 자유로운 시민들을 주체로 하지 않을 때 허울에 지나지 않아요. 노동조합에서 조합원이 동원의 대상이고, 조직의 우산 아래 경제적 이익을 보장받는 수혜자인 것은 자발적 복종이지 진정한 자유가 아니죠.

민주, 정의, 평등, 평화에 비해 뒷전으로 밀려난 자유, 한국 사회에서 자유가 얼마나 왜곡되고 폄하되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개념이 됐는지. 김지하 시인이 엘뤼아르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타는 목마름으로’에선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원래 엘뤼아르의 시 제목이 ‘자유’였어요.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는 줄탁동시(啐啄同時) 관계인데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얘기하지 못하고 민주화만 앞세운 거죠. 민주화가 되면 개인의 자유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불의와 몰상식 앞에서 침묵과 무관심을 거부하고 노예 되기를 거부하는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었습니다.”

-30년 전 민주화를 외치던 86세대가 지금 정치의 중심에 있습니다.

“2009년쯤 내가 한 얘기가 있어요. 이명박 정권은 수구세력이고 민주화운동 세대는 ‘민주건달’이라고 했어요. 제대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모르는 민주건달. 하지만 이들이 집권하는 이 시기도 한 번은 거쳐야 한다고. 토크빌이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했잖아요.”

그는 얼마 전 문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읽었다고 했다.

“좋은 내용은 다 있는데 대통령이 직접 작성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설령 다른 사람이 썼다 해도 내가 하고자 하는 방향, 내 의지와 일치하면 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에게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25년 만이네요”라는 답이 왔다. 1995년 3월 그의 이름을 처음 알린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란 책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신동아’ 기자가 직접 파리로 가서 그와 인터뷰했다. 정확히 말하면 25년 9개월 만이다. 신동아 1995년 4월호에 ‘남민전(南民戰) 사건 홍세화, 파리 하늘 밑의 정치망명자-분단의 상흔 세느강에 씻고…’라는 제목으로 당시 48세의 홍세화가 등장한다. 1979년 10월 9일 발표돼 국민에게 공포를 심어줬던 ‘남조선 민족해방전선준비위’ 사건에 직접 관계한 홍씨가 오랜 정치 망명생활 끝에 ‘갈 수 없는 조국’을 향해 쏘아 올린 피맺힌 외침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1999년 20년 3개월 만에 고국을 방문했고, 2002년 영구 귀국해 현재 가족이 있는 프랑스를 오가며 살고 있다.

25년 전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합니까?

“볼셰비키는 아니고 그런 의미에서는 사회주의자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니까 친북이겠지’라고 말한다면 우습다는 거죠?

“그렇지요. 왜 그렇게 이분법적으로만 사고해야 합니까. 분단에서 온 결과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분법적 사고의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 진보를 생각하기 어렵게 되고, 도대체 사람들의 사고가 한없이 왜소해지지 않겠습니까. 저에게 땅, 사람, 사회에 대해 지금 당장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한다면 질색입니다.”

그는 한결같이 살았지만 그가 꿈꾸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의 에세이 ‘결’에서 찾은 문장이다.

“진실은 소극적이고 정의는 언제나 지각한다.”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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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Tikhonov
1ottSposhnsored  · 
홍세화 선생님은 '국보' 같은 존재이시죠. '진영'을 넘어서, 상황을 인민들의 총체적 이익의 입장에서 조감하실 수 있는 분이시니까요. 저는 홍 선생님 말씀의 대부분에 찬성합니다. 실로 한국의 주류 정치에서는 보수도 진보도 없어요. 보수를 참칭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일제말기의 파시즘 전통을 이어온 극우 국가주의자들이거나, 그냥 사리사익밖에 모르는 지방 토호나 강남 거주의 건물주들이죠. 맹박이 같은 사기꾼도 많고요. 소위 '진보', 즉 현 집권 세력은? 반독재 운동의 명맥을 이은 만큼 진보성이 있다 해도 극히 미미합니다. 진보성의 시금석이란 부자들이나 기업이 내는 세금을 얼마나 올렸느냐, 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에 얼마나 기여했느냐 온실가스 배출량을 얼마나 줄였느냐 재분배되는 사회적 자원을 얼마나 늘렸느냐인데, 이번 정권의 실적은...전혀 없지 않지만, 극도로 저조하죠 (약간의 종부세 인상, 약간의 공공 임대 주택 증축 등등). 그리고 코로나까지 겹쳐져서 인민들이 겪는 고통, 자영업자들의 줄도산 등을 방지하기 위해 주류 정치인들이 별로 하는 게 없다는 점도 사실입니다. 여야 막론해서요. 
그러나 굳이 <동아....>에 인터뷰해주실 필요가 있으셨을까, 싶습니다. 민주건달들보다는 동아/경방의 김씨족벌이나 그 하수인들이 더하면 더할텐데요....나중에 운이 닿아 홍 선생님을 뵙게 되면 한 번 여쭈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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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칼럼] 우리 대통령은 착한 임금님

등록 :2020-11-19 

4년 전 촛불을 들었을 때를 돌아보자. 오늘 무엇이 바뀌었나? 대통령과 장관들, 국회의원들의 면면 말고? 이젠 재벌개혁이란 말조차 나오지 않게 되었고, 교육개혁은 이미 포기한 듯 관심 바깥의 일이 된 지 오래다. 부동산 문제는 악화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프레카리아트’가 되는 일방통행의 길만 있을 뿐이다.


학교나 공직에서 은퇴한 분들한테서 종종 듣는 말이 있다. “그 자리에 있었을 때 더 충실히 보냈어야 했다. 그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 자리인지 물러난 뒤에야 알았다.” 교직이나 일반 공직이 그렇다면, 대통령의 자리는 엄중하고 또 엄중하다는 말로도 모자랄 것이다. 대통령은 국가수반이면서 최고 정치지도자로서 기자회견이나 국정브리핑을 통해 각 분야의 정책 방향, 그 실행과 검증 과정을 밝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면서 국민을 이끌고 가야 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닮았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 )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을 하겠습니다. (…)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취임사를 듣고 수많은 사람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예감하며 감동했다. 하지만 신기루였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가 경호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금세 ‘없던 일’이 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국민과 열심히 소통하겠다는 약속이 가뭇없이 사라졌는데, 이에 대해서는 설명이든 해명이든 듣지 못했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역대 대통령의 직접 브리핑과 기자간담회를 합친 횟수는 김대중 150회, 노무현 150회, 이명박 20회, 박근혜 5회, 문재인 6회다. 위정자로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하는 자리는 불편할 수 있다. 일방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자리는 불편하지 않다. 임금님은 불편한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고 불편한 자리에 가지 않아도 되지만,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팽목항에 가야 했던 것도 임금님이 아니라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불편한 질문, 불편한 자리를 피한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은 대통령보다 임금님에 가깝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으로 백성한테서 ‘상소문’을 받는다는 점도 그렇다. 임금님인데, 착한 임금님이다. 여느 임금님과 다른 것은 군림 기간이 5년으로 정해져 있어서 이제 1년 반도 채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엄중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지금까지처럼 편하게 보내는 임금님이 아니라 불편하게 보내는 대통령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감히 말하건대, ‘성공한 대통령’의 길이 거기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불편한 자리, 불편한 질문을 피하면서 임금님처럼 처신하는 방식은 비슷한 구도를 갖는다. 먼저 대통령으로 선의의 약속이 행해진다. 약속하는 자리는 불편하지 않다.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불편함이 따르는데 그때부터 질문도 피하고 자리도 피하는 임금님이 된다. 대통령으로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만나 위로하면서 진상규명을 약속하고, 김용균씨 유가족을 만나 위로하고 김용균법을 약속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지지부진하고 ‘김용균이 적용되지 않는 김용균법’이 제정된다. 그때부터 질문도 받지 않고 불편한 자리도 찾지 않는 임금님이 되는 식이다.

1년 전이면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국민과의 대화’에서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고 자신감을 피력했을 때는 대통령이지만, 오늘 전혀 다른 결과 앞에서는 질문을 받지 않는 임금님이 된다. 당 대표 시절 지자체장의 잘못으로 선거를 다시 하게 될 때엔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또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지만, 서울특별시장·부산광역시장의 미투 문제와 부닥치면 임금님이 되어 침묵한다. 집권 민주당이 제1야당과 똑같이 위성정당 방식으로 비례대표제를 왜곡하면서 민주주의에 흠집을 냈을 때에도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국민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사회 현안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침묵으로 일관한다. 과문의 탓인지 낙태 합법화에 대한 문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듣지 못했다. 지금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다. 후보 시절 지지자들의 “나중에!” 연호 속에 피해갔는데 성소수자에 관해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었는지 듣지 못했다. 동성결혼권을 처음 합법화한 나라는 2001년의 네덜란드였는데, 미국에서 2015년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라 동성결혼권이 인정된 후 독일도 2017년에 동성결혼권을 합법화했다. 프랑스에서 사회당 출신 대통령이 법안을 주도했다면, 독일에서는 보수적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주도했다. 특히 메르켈 총리는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라는 독일 헌법 조문을 들어 반대표를 던졌는데, 법안 상정에는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 국정 최고지도자들의 모습이 그랬다. 국민 사이에 의견이 분열되어 있는 사회 현안도 피하는 대신 자신의 뜻을 피력하고 토론, 설득하고 추진, 돌파한다. 우리는 동성결혼권은커녕 생활동반자법도 없는 형편인데, ‘시대의 기후’를 앞서 읽고 자신 있게 소신을 밝히는 정치지도자는 언제나 볼 수 있을까?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국가최고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불온한 시선을 갖고 있어서겠지만, 상이나 훈장 중에는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을 위한 경우도 많다. 전태일 열사에게 훈장을 주는 자리라면, 적어도 그 이름을 딴 ‘전태일3법’에 관심을 표명하고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게 대통령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자신의 소관 사항이 아니라고 여길 만큼 임금님이 되어 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도 하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 기소불욕물시어인)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말이다. 불편함이 싫은 임금님은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 임금님이 두어번 진노하셨을 뿐이니, 참모들도 장관들도 불편하지 않다. 참모, 장관이 불편하지 않으니 관료들도 불편하지 않고 국회의원들도 불편하지 않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에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공방, 국회에서 벌어지는 저급한 공방들은 인민의 삶이 조금도 바뀌지 않는 세상을 가려주는 스펙터클이다.

4년 전 촛불을 들었을 때를 돌아보자. 오늘 무엇이 바뀌었나? 대통령과 장관들, 국회의원들의 면면 말고? 이젠 재벌개혁이란 말조차 나오지 않게 되었고, 교육개혁은 이미 포기한 듯 관심 바깥의 일이 된 지 오래다. 부동산 문제는 악화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란 뜻의 이탈리아 조어)가 되는 일방통행의 길만 있을 뿐이다. 그 위에 코비드19가 덮쳤다.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글이 신민들의 심기를 무척 불편하게 하리라는 것을. 집중포화를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착한 임금님을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여 대통령의 자리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면 그것으로 이 서생은 기쁠 것이다.

홍세화ㅣ장발장은행장·‘소박한 자유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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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베스트 댓글naver 대표계정 입니다.내멋에산다2020.11.19 20:53 · 수정됨
대통령이 모든 사안에 자신의 입장을 말한다면 미국 트럼프 처럼 되지 않았겠어요? 전정권과 무엇이 달라졌냐 묻는다면 더 이상 재벌편에 서있지 않았다는 것, 더이상 역사가 거꾸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지탱해 줬다는것, 더이상 가진자가 부동산투기로 더큰 수익을 얻지 못하도록 세제개편을 단행했다는 것 등 다 헤아릴 수 없지만 그래도 대통령 한사람 바꿨을뿐인데 이런 변화를 가져왔다는 건 대단한 일 아니겠습니까? 근로자의 생존권을 기업주 맘대로 하고자 했던 전정권에 비해 적어도 근로자편에서 노력한 정권이 문재인정부 아니였던가요? 약자 편에서 복지와 의료비를 절감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정권이 문재인정부 아니였던가요? 100% 촛불시민이 바라던걸 다 하지못했다해서 비난조로 문재인정부 성과를 폄훼하는건 견강부회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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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google 대표계정 입니다.earyoung2020.11.21 14:57
@내멋에산다 왕도 고치지 못한 역사를 고친 왕쥐 아닌가? 이 작자 한 일이 무언가? 시작하자 마자 지 보기 싫은놈 모조리 숙청하고 역대 최고 부동산값 올리고 한달에 한번 마눌년 데리고 해외 여행갔다. 무능에 무능으로 개한민국 30년 후퇴시킨 이 쥐새끼 곧 보답이 갈꺼니 각오하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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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kakao 대표계정 입니다.DHKim-철매2020.11.20 15:39 · 공유됨(1)
@내멋에산다 솔직히 말하죠. 그 모든 것에 앞서 우리가 바랬던 대통령의 기본이 안된 사람이었다는 것에 저는 충격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으로 극심한 레임덕을 겪은게 2008년입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대통령이 될때까지 연구한 부동산 정책이 고작 이정도 밖에 안되나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사회 전반에 대한 혐오의식을 줄이려는 노력도 임기 1년차 이외에는 보이지도 않구요. 이번에 터진 공공의대 정책은 노동자를 대변하던 변호사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수준이었습니다. 의사가 부족하니 의사를 찍어내서 의사의 수를 늘리면 될것이다. 라는 이 개념은 IT 인력을 찍어내서 수렁으로 빠트렸던 DJ 당시 정책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실망한 것은 https 차단과 홍콩 민주화 운동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번 5월 문재인 대통령은 망월동 묘역에서 눈물을 흘렸지만, 정작 홍콩에는 단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횡포라 할 수 있는 홍콩 문제에도 눈을 감고, 중국의 인터넷망 감시인 황금방패의 초기버전인 https 차단을 묵인하였습니다. https 차단문제는 단순히 야동사이트 차단문제가 아닙니다. 국가가 마음만 먹으면 정보의 통로를 막아버리겠다는데에 있습니다. 이 말은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해본적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솔직히 요즘에는 너무 실망스러워요. 임기 초에는 너무 좋았지만, 희미하게 느껴지던 박정희의 느낌이 이제는 점점 커지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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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naver 대표계정 입니다.DaddyKim2020.11.27 15:24 · 공유됨(1)
나도 금년도에는 종부세를 내게 되었습니다. 항상 종부세를 내는 사람을 부러워 했는데, 그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집값이 오르면 뭐가 좋은 모르겠다. 불경기로 벌이는 낳아지는게 없는데, 세금만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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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naver 대표계정 입니다.spiderpi****2020.11.26 01:00 · 공유됨(1)
답없는 문빠들. 객관적으로 홍세화의 논거를 반박하는건 일절 못하고 수꼴들보다 낫다는 것만 앵무새처럼 주장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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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naver 대표계정 입니다.나그네2020.11.23 18:56 · 공유됨(1)
입진보 홍세화씨는 민주사회개혁에 하등 도움이 안되는 장광설을 펼치지 말고 차라리 빠리로 돌아가서 귀막고 택시운전이나 하면서 지내는게 좋겠다. 어쩌면 한겨레랑 결이 저렇게 똑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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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naver 대표계정 입니다.일토2020.11.23 15:47 · 공유됨(1)
'민주노동당은 진보적 정당이 아니다' 라며 박차고 나왔던 그 홍세화씨구만... 아주 세상에 진보는 홍세화씨 본인 뿐이죠? 홍세화씨 이력을 보면 불화가 참 잦아요. 언제나 하루아침에 천지개벽이 일어나기를 무리하게 바라다가 결국 개벽은 없었다며 세상과 그 구성원들에게 욕을 퍼붓습니다. 죄다 홍세화씨 자신의 좌절된 신념과 이상을 좀 시끌벅쩍하게 추모하는 개인적 배설이죠. 자신이 취사선택한 몇가지 사회의제를 들먹이며 그것을 지금 당장 실현시키라고 윽박지릅니다. 이 좁디 좁고 편파적인 세계관이 소위 '진보논객 히피'들의 공통적인 한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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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kakao 대표계정 입니다.ㅇ2020.11.23 14:42 · 공유됨(1)
입진보들의 문제 : 컵에 물이 반이 차 있다. 다 쏟아버리려고 깽판친 방해꾼들과 싸워가며 겨우겨우 채운 것이다. 그러면 입진보들은 어떻게 하는 줄 아는가? 반이라도 채우려고 노력한 사람을 가장 나쁜 놈이라고 욕한다. 그 사람이 무력하고 무능해서 컵이 반이나 비었다는 논리다. 이렇게 최소한의 아량이나 이해심이 없는 것이 입진보들이다. 언제나 All or Nothi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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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naver 대표계정 입니다.ababa2020.11.23 11:35
대통령이 모든일에 나서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게 임금님 취급하는 것 아닌가요? 그 역시 우리와 같은 시민의 한사람일 뿐입니다. 역할이 다를뿐이죠. 대통령을 임금님 취급하는 사람은 당신같은 사람이죠. 그시간에 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보수언론, 검찰, 사학, 야당을 비판하세요. 그게 당신이 시민으로서 당신이 맡아야할 역할입니다. 대통령 붙잡고 해결해달라고 징징거리는게 아니라요. 한사람의 국짐당 국회의원을 떨어뜨려 보려고 노력해 보세요.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 보다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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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twitter 대표계정 입니다.빛알 - Photon2020.12.05 23:07 · 공유됨(1)
@ababa 언제까지 핑계만 댈 것인가요? 중대 재해 기벌 처벌법 하나만 두고 봅시다. 그걸 처리 못 하는 게 야당 탓인가요? 무능의 극치에다가 부패하기까지한 이 정부에 정말 진절머리가 납니다.

대통령에 대해서: 'bully pulpit'이란 말이 있어요.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널리 알리고 설득하기에 매우 좋은 자리에요.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노변정담이나 연설 등을 통해 이런 모습을 아주 전형적으로 보여 주었고, 미국 사회 전반에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고 뉴딜 동맹을 수립했어요. . 문재인의 취임사를 보면 꼭 그럴 것 같았지요. 하지만, 지난 4년을 돌이켜 보면 홍세화 선생이 글에서 지적한 바와 같지요. 능력도 없고, 내용도 없고, 책임감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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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twitter 대표계정 입니다.나는 친노다 !! 김형래2020.11.23 08:41 · 공유됨(1)
걸레가 아무리빨아도 걸레인것처럼 니들이 아무리 씨부려도 난 니들말 좋게안들려!! 같은편이든 적이든 같이비판해야 언론이 할일이라믿는 니들때문에 십여년전에 한분을보냈다!! 그울분을 토하는심정으로 말한다!!

니들이 정말언론인가?? 클릭에 환장한 기레기들인가??
난 후자라말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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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facebook 대표계정 입니다.황선영2020.11.22 23:32
니들은 박근혜 대통령님한테서
5회씩이나 기자회견을 했다고 생각하세요?

4~5번씩 연습은 하는데 받아쓸 수첩도 없이 들락거리고도 쪽팔리는게 없는 이게 언론의 질인가 싶고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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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naver 대표계정 입니다.한희수2020.11.22 21:18 · 공유됨(1)
한겨레에서 이런 글을 읽을 때, 행복합니다. 한겨레 아직 살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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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naver 대표계정 입니다.Nullnury2020.11.22 19:39 · 공유됨(1)
지극히 합당하고 사리에 맞는 이런 의견도 배척받고 욕먹으면 ... 그 진영에는 앞날이 없다. 그리고 지금 대통령의 처신이 바뀌지 않으면 전임자 두명의 운명이 그대로 문 대통령을 덮칠 것은 너무나 뻔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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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칼럼] 문재인 정권은 무엇으로 진보인가
등록 :2020-06-25

늘 한국의 진보세력은 그 대부분이 이념이든 상상력이든 진영 속에 묻은 채 검찰과 언론 한두 곳을 정조준하고 있다. 만약 윤석열 검찰총장이 물러나기라도 하면 진보세력의 할 일이 거의 끝날 듯한 놀라운 시절 아닌가.


이명박-박근혜의 보수정권에 대비하려고 문재인 정권을 ‘진보정권’이라고 부르게 된 듯한데,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뒤에는 더 폭넓게 부르고 있다. 1958년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조봉암 진보당 당수를 법살한 뒤, 진보는 국가보안법 아래 빨갱이의 언어로 오랫동안 금기시되다시피 했는데, 마침내 진보정권이 성립되었고 장기집권까지 전망되고 있다니 나름 진보 이념을 껴안고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나로선 감개무량할 수 있겠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 당시에는 그래도 살아 꿈틀대던 국가보안법 폐지나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화 요구의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고, 재벌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검찰개혁,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비해 거의 들리지 않는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 조지 레이코프는 “자유를 빼앗기는 것도 위험한 일이지만, 자유 개념을 빼앗기는 것은 더 위험하다”고 했는데, 진보 개념을 빼앗기는 것 또한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묻는다. 문재인 정권은 무엇으로 진보인가?

 미리 말하지만, 진보 이념과 진보정권(정치)의 현실 사이의 괴리가 문재인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령 한국 언론은 <21세기 자본>에 이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된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크게 소개했지만, “자본주의와 사적 소유를 넘어서서 참여사회주의와 사회연방주의에 기반한 정의로운 사회를 수립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그의 이념을 한국 사회라는 현실 속에서 모색하는 정치 역량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워낙 그런 역량이 없지 않으냐고? 일면 그럴듯한 변명이지만, <한겨레>처럼 진보를 표방한 언론이라면 다음의 구체적 실천 과정에 개입하고 담지할 정치사회 역량을 키우고 고무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 실천이 있어야 마땅하다. 즉, “이것은 특히 사회적 일시소유체제 확립을 경유하는데 이 체제는 한편으로는 기업 내 임금노동자들과의 의결권 및 권력 분유와 그 상한 설정에, 다른 한편으로는 강력한 누진소유세와 보편적 자본지원과 재화의 지속적인 순환에 기초한다. 또한 이것은 누진소득세 및 탄소 배출의 집단적 규제로 이루어진 체계를 내포하는데, 이 체계를 통해 사회보장-기본소득-생태주의적 이행-실질적인 평등주의 교육권의 시행을 위한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
오늘날 더욱 격심해지는 불평등주의 체제의 극복이 진보(정치)의 핵심 과제라면, 피케티가 적시한 임금노동자의 의결권 및 권력 분유, 강력한 누진소유세, 기본소득을 넘어선 보편적 자본지원, 탄소 배출의 집단적 규제, 실질적인 평등주의 교육권 등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안은 하나도 없다.
지난 6월23일 경실련은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서울 아파트값이 올라 493조원의 불로소득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서울 아파트 중위값이 이명박 집권기엔 3% 하락했고 박근혜 정부 시기엔 29% 상승했던 것에 비해,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52% 올라 불로소득 불평등 격차가 보수정권 때보다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서울 아파트 가격이 치솟은 원인에 대해 경실련은 문재인 정권이 “집권 초부터 부동산 투기를 조장한” 반면, “공시지가를 현실화하지 않고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주저했으며 부동산 부자들에게 감세를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권이 가장 뼈아프게 들어야 할 부분은 소득 3분위 가구(5분위별 가처분소득 기준)가 서울 중위가격 아파트를 사는 데 걸리는 기간에 관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집권기에는 그 기간이 16년에서 13년으로 줄었고 박근혜 정부 집권기에는 13년에서 15년으로 늘어났을 뿐인데,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에 16년이었는데 지금은 22년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진보정권 아래 이렇게 부동산값이 치솟은 것을 “브라만 좌파(학력 엘리트)와 상인 우파의 공모”의 구체적 예로 언급할 수 있을 듯하다.
1990년을 전후하여 현실사회주의권이 무너진 뒤, 서유럽의 사민주의 정치세력(브라만 좌파)은 노동계급에겐 등을 돌리고 세계화에 올라타는 길을 택했다. 이념적으로 왼편에서 끌어당기는 외부 동력이 사라진 터에 우경화는 일국 단위 대의제의 표밭이 넓어진다는 점에서 집권전략의 일환이었고 실제로 주효했다. 영국 노동당은 신노동당(토니 블레어)을, 독일 사민당은 신중도(게르하르트 슈뢰더)를, 프랑스 사회당은 사회적 자유주의를 표방하였는데, 이런 우경화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또는 학력 엘리트답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정체성 정치를 추구하였다. 녹색 가치가 강조되고 페미니즘 논의가 활발해졌다. 서유럽 성소수자들에게 1990년대 프랑스의 사회연대계약(PACS) 등 생활동반자법을 거친 뒤 2001년 네덜란드의 동성결혼권과 함께 21세기가 ‘해방의 세기’로 열리게 된 정치사회적 배경이다.
최근 수원 영광제일교회 이동환 목사가 교회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8월31일 인천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들에게 꽃잎을 뿌리며 축복했다는 게 이유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회원들이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조속 제정 촉구를 위한 오체투지를 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뿐만 아니라 ‘경제적 차별’까지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의 성안을 마치고 공동발의자를 구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올해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데 진보정권의 여당 국회의원들한테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19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김한길·최원식 전 의원이 발의했던 차별금지법 법안을 자진 철회했던 일, 문재인 대통령 후보 시절,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잠재우려 울려 퍼졌던 “나중에!”의 외침 소리, 그리고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김진표 의원 등이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노골적으로 밝혔던 일뿐이다.
안타깝고 분하게도 남북관계가 파탄 난 지금, 문재인 정권에게 진보는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 노동 존중이 있지 않으냐고 할 사람이 있겠다. 그렇다, 문재인 정권에서 노동은 ‘1’순위다. 다만 기업이 ‘0’순위인 한에서 1순위다. 코로나19 사태에 문재인 정권은 “기업을 반드시 지키겠다”며 긴급자금 100조원 투입을 결정했던 반면, 이 유행성 질병이 확산되는 동안 노동자들에게 직접 휴업수당을 지급하고 해고를 금지하라는 노동계의 요구는 묵살했다.
오늘 한국의 진보세력은 그 대부분이 이념이든 상상력이든 진영 속에 묻은 채 검찰과 언론 한두 곳을 정조준하고 있다. 만약 윤석열 검찰총장이 물러나기라도 하면 진보세력의 할 일이 거의 끝날 듯한 놀라운 시절 아닌가.

홍세화 ㅣ 장발장은행장·‘소박한 자유인’ 대표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50936.html#csidx11ec22079e9297297c15c8cc677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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