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4

손민석 반일종족주의론자들에 대한 한국 역사학계의 반응

(4) Facebook

손민석


반일종족주의론자들에 대한 한국 역사학계의 반응변죽울리기에 가까운 측면이 있다. 

박유하를 한국 역사학계가 사용하는 넓은 의미의 '수정주의'에 포함시키자면 박유하, 반일종족주의론자 등의 "역사수정주의"(이하 통칭하여 역사수정주의라 하겠다)에 대한 한국 역사학계의 대응이란 사실상 역사수정주의라는 용어의 사용 외에 별다른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그다지 효과적인 반론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학술적으로 역사수정주의가 갖고 있는 의미는 근대에 대한 재해석이다. 주로 경제사적 입장에서 제기된 이러한 입론들의 근원에는 한국에서의 근대의 시작이 어디인가 하는 주제가 있다. 역사수정주의자들은 한국에서의 근대의 시작을 식민지기로 삼으며, 그 뒤에는 경제학적인 이론과 사학사적인 배경이 있다. 둘 모두에서 기존의 한국 역사학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패착을 보이고 있다.

 경제학에서 경제발전단계론 중 가장 유명했던 것은 반反공산당 선언을 쓴 로스토우의 경제발전 5단계론으로, 이 이론은 전통사회, 도약준비단계, 도약단계, 성숙단계, 고도대중소비단계라는 5개의 단계를 거치면서 빈국이 부국으로 발전한다고 가정했다. 이러한 발전단계론은 발전경제학이 1970년대 이후 쇠퇴하고 그 자리를 신고전파경제성장론이 차지하게 됨에 따라 사실상 사라졌다. 
신고전파성장이론뿐만 아니라 경제학 자체가 사실 경제발전단계론 같은 것을 일종의 '사회학적' 연구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의 모델은 소위 신고전 성장이라고 하는 하나의 유형이랄까, 모델이라 해야 할까 그것만을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 소로에 근거한 이 근대적 성장이란 사실상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에 기초해 마르크스식으로 말하자면 확대재생산이 이뤄지는 상황만을 가정한다.

 그렇지만 역시나 인류사의 대부분은 이러한 근대적 성장이 존재하지 않던 시기이기 때문에 전근대 사회에서의 경제를 어떻게 독해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경제학자들 또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대부분은 별 관심 없었지만. 경제학자들이 끌고 들어온 것이 맬서스 트랩이었다. 다시 말해서 맬서스적 균형을 소로의 근대적 성장 앞에 두어 사실상의 경제발전론의 부활이 이뤄졌다. 인류사는 이제 기나긴 맬서스적 트랩에 빠진 시대와 그로부터 벗어나 근대적 성장을 이루는 시대로 나눠진다. 신경제사 연구의 수량화 작업은 이러한 발전단계론을 뒷받침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이론적 변화를 종합한 게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레스콧의 "Malthus to Solow"(2002)이다. 

 프레스콧은 이후에 맬서스에서 소로로의 전환 과정에는 당연하게도 "과도기"가 존재하며 이 과도기 속에서 어떻게 맬서스적 트랩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할 것인가, 노동력의 유동을 구속하는 요소들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다시 말해서 마르크스 식으로 말하자면 "본원적 축적"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변화기를 보통 루이스 전환점, 농촌의 잉여노동력이 다 소비되는 전환점으로 본다. 경제사적으로는 분업의 확대에 주목해 이를 스미스적 성장이라 개념화하여 일본 중국사학계에서 나온 "근세론"과 연결시킨다
이제 경제학적으로 두 가지 경로가 나타난다. 
  1. (맬서스적 트랩 -) 루이스 전환점 - 근대적 성장이라는 현대사회에서의 경제발전단계론과 
  2. 역사발전단계론으로서의 맬서스적 트랩 - 스미스적 성장 - 근대적 성장이라는 경제발전론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신장의 변화 등을 포함하는 생활수준의 측정 문제라든지 지속적인 소득의 증대라든지 하는 지표로 입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학 이론의 발전은 한국경제사 연구에도 큰 영향을 미쳐서 조야한 계급론에 사로잡혀 이론의 공백 속에서 고뇌하던 과거 마르크스주의 계열의 경제사 연구를 하던 많은 이들을 신경제사로의 전환, 신고전파경제성장이론으로의 전향을 행하게 만들었다. 앞서 말했던 역사수정주의 계열 또한 이러한 변화에 기반하고 있다

차명수, 조영준 등이 주도로 했던 족보연구라든지 신장의 변화라든지, 소득 수준의 변화라든지 이런 것들은 모두 한국에서의 맬서스 트랩이 어디까지 유지됐고, 어디서부터 근대적 성장으로의 전환이 나타나기 시작했는지 등을 탐색하려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나름대로 그것을 행했다. 한국 경제사학계의 정설은 1876년 이후 맬서스적 트랩의 순환이 끊어지기 시작했으며 1890년대 이후 근대적 성장이 개시되어 1920, 30년대를 거쳐 발달하다가 1945~1953년까지의 격변 속에서 잠시 주춤했던 흐름이 1960년대 이후의 대질주 속에서 폭발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이와 같은 근대적 성장론으로의 전환에는 경제사 연구의 학설사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 경제사 연구의 변화 흐름과 그것이 반영된 미국 좌파 계열의 캘리포니아 학파의 중국사 연구라는 흐름이 겹쳐 있다. 일본 경제사는 역사인구학, 수량경제사 등의 발전을 거치면서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적 경제사 연구와 단절하여 전근대 일본, 특히 에도막부 시기의 경제발전을 스미스적 성장을 적용하여 독해한다. 이러한 새로운 사조의 흐름은 스기하라 가오루(杉原薫)에 이르러 일종의 보편사적 이론화에 이르게 된다.

 스기하라 가오루는 앞서 말한 반일종족주의론자들의 스승인 안병직과도 관계가 있다. 박기주가 안병직의 추천으로 스기하라의 저작을 번역하였다고 한다. 아무튼 스기하라는 전근대 일본에서의 경제발전을 서구의 그것과 대비되는 형태로 유형화하여 서구의 자본집약적 경제발전과 일본(과 넓은 의미의 동아시아)의 노동집약적 경제발전 속에서 파악한다. 이를 집약한 용어가 영국의 산업혁명과 일본의 '근면혁명'이다. 근세 시기 일본 에도막부 하에서의 경제발전은 일종의 노동력의 집약화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의 질적인 변화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근면혁명 자체는 이미 하야미 아키라(速水融)가 "일본에서의 경제사회의 전개"(1971)에서 주장했던 것인데 이것이 스기하라에 이르러 보편사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스기하라에 따르면 영국의 산업혁명이 경영하는 토지 면적의 확대, 가축의 사용, 기계의 도입 등을 통해 토지생산력을 증대시켰다면 
근면혁명은 토지면적의 축소, 가족노동력의 활용, 농기구의 발달 등을 통해 토지생산력을 증대시킨다. 
스기하라의 수사를 인용하자면 
서유럽에서의 산업혁명이 인력(man power)의 축력(horse power)로의 전환이었다면 
일본과 아시아에서의 근면혁명은 축력(horse power)의 인력(man power)로의 전환이었다. 

스기하라는 이러한 인력 중심의 노동집약적 공업화는 일본제국주의의 확대 속에서 전全 아시아로 확장되었다고 파악한다. 
일본제국주의적 침략은 동시에 아시아의 노동력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공업화를 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야미의 논리가 단순히 일본 근세의 경제발전이 이후의 근대적 성장으로 이어질 조건의 형성을 논한 것이었다면, 스기하라 등에 이르르면 일본제국주의의 특질을 담보한 동아시아 자본주의 형성론으로 확장된다. 이 일본제국주의의 노동집약적 공업화의 확장 속에서 근대적 성장의 "세례"를 받은 게 바로 식민지 조선이었다. 일본제국주의는 오늘날의 동아시아 자본주의 발전을 선도한 근대적 제국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하야미, 스기하라 등의 입론은 나중에 미국이 캘리포니아 학파에 수용되어 조반니 아리기의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로 집약된다. 여기서 한국의 역사수정주의와 미국의 좌파 간의 분기점이 나타나는데 이영훈 등의 한국 경제사 연구자들은 캘리포니아 학파의 주장에 대단히 회의적이다. 
이영훈은 중국을 근대에 도달하지 못한 야만의 땅으로, 오랑캐의 땅으로 감각한다면 
아리기는 중국의 경제발전이 근대 세계에 가할 충격을 강조하며 새로운 문명으로의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라 본다. 정치적 입장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내부의 입장 차이를 사상하고 역사수정주의라 통칭되는 차원에서 보자면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근대의 본격적인 개시라는 합의 속에서 신고전파성장이론적 입장으로의 선회가 이뤄져 있다. 다시 말해서 이들에 대한 비판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이중의 비판, 즉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근대 이식이라는 차원에서의 "근대" 개념에 대한 비판과 함께 경제학 이론에서의 "근대로의 전환"에 대한 비판이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영훈의 입론을 차치하고 말하자면 박유하의 입론은 명백하게 식민지기를 근대 사회로 상정하고 있다. 그녀의 주장에 깔려 있는 이론적 베이스는 국민국가 비판론인데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박유하의 연구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내셔널리즘에 대한 대단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박유하는 이 내셔널리즘에 입각한 국민국가=제국(일본제국과 미제국)의 여성착취를 대단히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개개의 국민국가를 전유하여 이뤄지는 제국의 광역적 지배 및 그에 협력 - 기생하는 남성 가부장제의 여성 착취전근대에서의 여성착취와 상이하게 다른 형태를 보인다. 

박유하가 일본제국의 불법성 입증에 회의적인 것은 그녀에게는 법 자체가 일종의 보편성의 외피를 두른 남성의 여성 지배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본래 법의 지배가 그러한 것인데 법적으로 불법성을 입증한다 한들 그것이 여성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셔널리즘에 기초한 남성 지배계급들 간의 교환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수정주의적 입장은 기본적으로 식민지기부터를 확고하게 근대 사회로 보고, 근대사회의 기초를 개인의 자발성에 기초한 계약적 - 법적 지배에 있다고 본다. 자율적인 개인들 간의 생산 - 교환과 그것을 보장하는 법적 지배가 지속적인 물적 조건의 확충인 경제성장을 낳고 개인의 자유가 확장되어 간다는 것이다. 
  • 이영훈 등이 법적 주체로서의 개인, 사법의 주체로서의 개인 등을 강조하는 것과 
  • 박유하가 비록 비판적이기는 하지만 위안부의 내셔널리즘에 대한 어떤 동의를 강조하는 건 모두 이러한 맥락이다
근대인이란 전근대인과 같이 예속민으로서, 노예로서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만약에 한국의 역사학계가 이를 제대로 비판하고 싶다면 자잘한 실증적 오류, 언어적 실수 등을 꼬투리 잡아서 비판하거나 역사수정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게 아니라 이러한 근대 사회에 대한 이해 자체를 비판하고 새로운 근대상, 우리의 근대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개념을 제시해야 한다. 

 반일종족주의에 대한 여러 비판서와 박유하에 대한 이런저런 비판글들을 살펴보았지만 나는 이들이 갖고 있는 근대 사회에 대한 이해를 분쇄하는 새로운 근대상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대부분 탈근대론적, 탈민족주의적 입장에서의 피상적인 근대비판이라 안티테제의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 한국사에서 근대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동아시아 자본주의 발전에서의 일본의 역할이라든지,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의 변동 속에서 그러한 역할과 의미를 어떻게 보아야 좋을지 등등에 대한 논의를 전제로 비판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 

내가 '마르크스로의 복귀'를 요청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근대 경제학 등의 근대 개념에 가장 효과적인 비판을 한 사상 조류가 바로 사회주의 조류이고, 그 대표가 바로 마르크스(주의)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게 있어 근대란 노동의 존재양태의 혁신에 다름 아니다. 그의 근대론 또한 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 라는 주제의 발제글을 쓰고 있는데 

여기까지 오니 여태까지처럼 역시나 귓등으로도 안 들을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이 들어 현타가 왔다. 왜 내 말을 안 들어.. 다꺼져..
-----
Comments
박성우
정말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이런 글을 공짜로 보다니.. 감사합니다 선생님
 · Reply · 1 d
손민석
좋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
 · Reply · 1 d
Write a reply…

박재우
이 글을 읽으니 그동안 파편처럼 갈기갈기 찢어져있던 여러 논의가 얼개로 짜여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해할 수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뒷부분도 궁금하네요~!
 · Reply · 1 d
손민석
하핫.. 그거슨 돈을 받고 쓰는 것이기 때문에..(먼산..)
 · Reply · 1 d
박재우
손민석 얼른 출판하시고 파세요 ㅋㅋㅋ
 · Reply · 1 d
Write a reply…

서유석
우어!!! 또 배워갑니다! 감사의 꾸벅 드립니다!
 · Reply · 1 d
손민석
서유석 도움이 되셨다면 기쁩니다 🙂
 · Reply · 1 d
Write a reply…

Junyoung Jeong
저작만큼이나 밀도있는 발제 공유해주셔 감사합니다.
 · Reply · 7 h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