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4

김민웅 “조국” 그리고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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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 Jung Cho
27ctcSponsorheudm ·





김민웅
m8tSpohnshhored ·

“조국” 그리고 “박원순”

참으로 고통스러운 날이다. 참담하다.

적폐 검찰과 신성가족 사법부의 카르텔 그리고 언론이 한 덩어리로 뭉쳐 이 나라를 짓밟고 있는 것을 온몸으로 겪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정의는 나날이 불가능해지고 있는 것일까?

한 가족을 표창장 하나로 이 지경에 몰아놓고 희희낙락하면서 온갖 오만과 횡포를 부리는 윤석열이 옳았다고 하는 자들. 과연 그렇게 될까?
24일로 미뤄진 윤석열에 대한 심문 결과에 우려가 깊어진다. 사법부의 사고가 이토록 썩었으니 정경심 교수 재판의 기류를 타고 윤석열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오래 전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개표로 결판이 나지 않자 대법원 판사 하나로 결정된 역사가 있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도대체 그 판사가 움켜쥐는 투표권의 수는 몇 개인가? 바로 그런 것처럼 이 나라에서도 판사가 법정에서 결정하는 권한 하나가 누군가의 인생과 엄중한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그 판단이 옳고 정의로우면 근심이 들 까닭이 없다. 그러나 누군가의 마약범죄와 음주운전자 바꿔치기는 슬쩍 그물망을 빠져나가고 누군가의 은행 잔고 문서 사기도 그 처벌이 감감무소식이라면 그건 부정의가 법으로 보장되는 사회다.
애초부터 엉터리 대학총장의 종이짝을 가지고 진본이요 위조요 하고 따지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었다. 진본이라면 자기 이름 옆에 교육학 박사가 써 있어야 한다고 떠들어 댔지만, 그 박사 학위 자체가 가짜인 것이 드러난 자의 말을 따라 수사를 벌인 것 자체가 한심했다. 판사들은 표창장 작성 위임 사실이 없으니 위조작업을 벌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기술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정밀작업을 자타가 공인하는 컴맹 교수가 했다고 판시했다. 원본과 차이가 명백히 나는 데도 불구하고 검찰의 실험결과를 100프로 인정한 판사는 같은 것과 비슷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자다. 이걸 판명하지 못하는 재판은 엉터리가 된다.
한편, 박원순 시장을 성추행으로 온 세상에 고발한 당사자가 쓴 편지는 읽는 이들에게 당혹감을 안겨다 주었다. 4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추행 괴롭힘을 당해왔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쓴 편지에는 박시장에 대한 지극한 존경과 애정이 담겨있다. 이렇게까지나? 라고 여겨질 수 있는 편지.
그런데 아주 잠시, 눈 깜박할 사이에 실명노출 자료인 것 알고 즉시 교체한 순간을 누군가가 본 모양이다. 그걸 문제 삼으려 든다. 정작의 내용은 그렇게 해서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언론이 이 지경이다. 직접 보고 확인한 것도 아니면서 SNS 특징상 확산이 어쩌구 한다. 짐작을 사실로 만든다.
한국 경제야 그렇다고 치고 한겨레는 사실도 틀린 데 다가 내용에 대해서는 제대로 기사로 다루지 않았다. 사건의 진상이 궁금하지 않은 모양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결국 뭐가 중요한 문제가 될까? 누가 머리 숙이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이런 때에 <경기신문>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검찰개혁은 물론이고 박원순 시장관련 사안에 대해서도 취재와 메시지가 분명하다.
손편지 자료가 공개되자 여성단체는 생일날 직원들이 상사에게 함께 쓴 편지라고 주장한다. 그런가? 그러면 먼저 확인할 바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바대로 그렇게 직원들이 반강제로 쓰는 일이 매년 계속되어왔는지 확인할 일이다. 내용도 그런 분위기에서 쓴 게 되는 것이니.
그렇다 해도 편지 내용은 상사의 생일을 축하하는 걸로 보기에는 지나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게다가 자신을 성추행한 상대라고 하는데.
생일이 아닌 날에 보낸 편지도 있다. 이건 뭐라 할건가? 읽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한 사람이 쓴 편지가 이럴 수 있다면 대체 어떤 멘탈의 강력함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여성단체는 이 편지에 대해서는 뭐라고 답할지 알고 싶다.
당사자는 실명노출 문제라는 커튼 뒤에 존재를 감추고 있는 상황이다. 의문이 생겨 물어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다. 상황의 모순이 보이면 질문은 당연해진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박원순 시장은 “권력형 성범죄”를 저지른 자로 그 낙인이 영구화되고 있다. 한편 실명논쟁이 벌어졌으니 그나마 그간 아무대꾸도 하지 않던 자들이 입을 열었다, 다행인 것일까?
조국과 박원순, 이 둘은 공통의 운명 앞에 있다. 한 사람은 여전히 살아 있으나 초죽음의 지경이며 다른 한 사람은 이미 죽고 세상에 없다. 이들이 직면한 비극은 자신의 진실이 법과 제도로 옹호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언론이 가담하여 낙인효과를 극대화한다. 이 둘의 운명이 전락(轉落)하는 것은 즐기고 있는 자들은 그 종류가 서로 그리 다르지 않다. 같은 동네에 살 것 같지 않았는데 그런 모양이다.
진실을 찾아가는 길, 그걸 자기 자리에 세워주는 일은 이토록 힘겹다. 이 사회는 한 번 몰리면 그걸로 달리 출구가 없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매우 잔혹한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 잔인한 칼의 희생자는 누구도 될 수 있다.
억울하게 당해도 하소연 할 곳이 없으며 그렇게 힘이 약하다고 보이면 도리어 더더욱 짓밟히는 사회를 우리는 살아내고 있다. 이 나이에 이런 꼴을 볼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괴물이 된 자들이 법과 제도의 주인 노릇을 하면서 호령하고 부당하게 짓밟고 있는 현실은 반드시 퇴치되어야 한다.
다시 조국과 박원순을 생각해보면, 자신의 편이라고 여겼던 이들조차 거리를 둔다. 공직자 후보들은 박시장을 “권력형 성범죄”로 몬다. 조국 논란이라며 부담스러워하는 자들 또한 드글댄다.
해서 기왕에 말이 나온 김에, 더불어 민주당에 대해 말해보자. 뭐 하나 속시원히 문제를 풀고 있는가? 검찰개혁에 나서다가 곤역을 치른 조국, 그리고 추미애 장관을 어떻게 지켜왔는가? 시민들은 죽어라 하고 검찰개혁의 길을 돌파하기 위해 진력을 다하고 있는데 그대들은 뭘 내세울 수 있는가?
저 치밀하게 움직이면서 단합하고 있는 자들이 보이지 않는가? 밤낮으로 무슨 정치를 하고 계신 건가? 이 울분을 어찌 감당하시려나?
내일 또 태양이 뜨리라. 푹 자고 깨어 일어나 기운차게 나서자. 그것만이 답이다. 모두의 평안을 비는 마음 그득하다.


Jeonghyun Yoon

조국과 박원순이 공통운명이라면 아마 티없이 살아온줄 알았는데.. 티가 있었다는거 아닐까요? 자기눈에는 한없이 작고 남의 눈에는 크게 보이는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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