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한국인과 일본인’’한일관계’ ...
에 대해서는 수많은 주장과 논쟁이 흘러넘친다. 어느 한쪽의 주장이 지지를 얻게 되면 상대 쪽에서는 비난의 화살을 멈추지 않는다.
더구나 요즘처럼 양국의 국민감정이 악화된 시점에서 두 나라의 꼬일 대로 꼬인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며 실천하기에는 많은 제약과 어려움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렇다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맡겨두면 될 것인가? 그렇게 되면 양국이 겪어야 할 손실과 타격이 작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양국에 삶의 기반을 걸치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언제나 고민스러운 문제이다. 이런 양국의 대립과 갈등에 대해 외국과 외국인은 과연 어찌 보고 있는지, 제3자의 시선과 의견을 경청하여 보는 것도 하나의 힌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우익적 기사를 많이 생산해 내는 ‘현대비즈니스’ 라는 잡지가 기획한 ‘2020년 베스트기사’로 꼽힌 “‘한국을 싫어하는 일본인’ 을 세계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 라는 기사가 있어 번역하여 소개한다. 이하 번역.
‘한국을 싫어하는 일본인’ 을 세계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2020년 베스트 기사)
이런저런 사정이 뒤엉키어 일본인의 ‘혐한 무드’ 가 예전에 없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일본은 일본대로의 논리가 있지만, 그것을 얼마나 외국인들이 이해하고 있을까 하면 매우 미심쩍다.
‘한국에 친근감이 없다’ 가 70%
연말이 가까운 2019년 12월 24일, 사실 1년 3개월 만이 되는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야후재팬에 소개된 ‘오늘 한중일 정상회담' 이라는 기사에 ‘혐한’ 코멘트가 순식간에 채워졌다.
“이제 와서 간극을 좁힐 필요 따위 없다. 더 거리를 벌리고 단교하는 방향이 좋다”
“거짓말쟁이와 대화 같은 거 해봤자… " etc
한국 관련 기사에 신랄한 코멘트만이 줄을 잇고, 그걸 읽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마구 눌러댄다. 요즘에는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이러한 ‘한국이 싫다’ 는 일본인의 감정은 내각부가 연말에 공표한 ‘외국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에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한국에 ‘친근감을 느끼지 못한다’ 고 대답한 사람은 지난해보다 13.5% 늘어난 71.5%였다. 이 숫자는 1978년의 조사 이래 최악의 숫자다.
돌이켜보면 작년은 장기간에 걸쳐 꿈틀거리고 있던 한일 대립이 순식간에 분출하고 격화된 일 년이었다. 종군위안부와 징용공 등의 역사 문제가 경제에까지 파급되고, 한국 측이 한일 지소미아의 일방적 파기를 통고. 결국 미국의 중재에 의해 파기는 실효 직전에 회피되긴 했지만, 양국 정부 간의 삐걱거리는 관계가 민간부문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1965년의 한일청구권 협정에서 이미 해결된 사안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서 사죄와 속죄를 요구해 온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해 상대할 수가 없다’ 며 일본인이 품고 있는 한국에 대한 불만을 세계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 것인가?
한국의 주장이 ‘무리’ 하긴 하지만
이탈리아인으로 런던 대학 킹스칼리지의 일본 프로그램 부장 아렛시오 바타라노 씨는 “요즘 한동안 한국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일본인들 사이에서의 반감이 높아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고 말한다.
“2015년에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불가역적’이라는 문언이 들어간 합의에 달했다. 한국 정부는 이런 국가 간의 약속을 좀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그걸 없었던 것으로 하고, 게다가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그 내용에는 구체성이 없습니다. 일본인들이 ‘우린 어떻게 해야 되는가?’ 라며 어이없어하는 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덧붙여 국제정치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요 2년간 한국 정부는 언페어한 언동을 거듭해 왔습니다. 지소미아의 일방적인 파기 선언만이 아니라, 18년에는 한국 해군이 일본 자위대에 대해 사격용 화기 관제 레이더를 조사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또 독도 주변에서 대규모의 군사 연습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동맹국에 대한 것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
이전 ‘역사의 종언’ 등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일본계 미국인 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 씨도 마찬가지의 지적을 한다.
“우파인 박근혜 전 정권 시대에 합의에 달한 상황이 크게 좌파로 기운 문 정권이 되자 모든 게 뒤집어졌다. 게다가 마치 중국과 미국처럼 수출입을 둘러싼 옥신각신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한국 국내정치 변동의 크기, 일관성의 결여는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최근 문 정권의 주장이 ‘무리한 논리’ 인 것, 그리고 그것이 일본인의 감정을 거스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세계 식자들의 견해도 일치하고 있는 바이다.
그러나 일본인에게도 동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들 해외의 지식인들이 모두 ‘한국이 싫은 일본인’ 의 심정에 전면적으로 동의하고 있는가 하면, 사안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전술한 파타라노 씨는 “한일 관계를 워치하고 있는 구미 미디어는 양국 문제에 대해 ‘어느 쪽이 맞는가?’ 하며 편을 드는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고 말한다.
“예를 들어 비교적 좌파 성향의 뉴욕타임스는 한국 측의 관점으로 약간 동정적입니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한국 정부의 완고한 자세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으며,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동정적이라고 말하지는 못해도, 일본 국민의 한국에 대한 frustration이 쌓이고 있는 점을 객관적으로 보도합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각 미디어의 정치적 스탠스가 반영된 결과일 뿐이며, 양 국민의 생각에 대해 매우 대등한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잘못된 것은 한국’ 이란 논조가 굳어져, ‘동맹국인 미국도 우리와 마찬가지 견해다’ 라는 말들이 자주 주장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도긴개긴’ 이란 견해가 이루어지고 있다.
독일에 배우는 것이 어떤가?
위안부 문제에 징용공 배상문제 그리고 갑작스런 지소미아 파기 소동…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주장으로 이처럼 일이 꼬여버렸는데도 ‘도긴개긴 취급을 받는가’ 라며 다소 의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전 편집장 빌 에못트 씨는 “일본 사람들이 국가 간의 결정을 뒤집어버리는 한국의 행동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고 하면서도, “장기적으로 보면, 역시 일본은 한일 관계의 긴장에 대해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고 말한다.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는 ‘영국사람은 절대 기억하지 못하고, 아일랜드 사람은 절대 잊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배했던 나라와 지배를 받았던 나라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겨나는 법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이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된 후 75년이란 긴 시간도 기억이 희미해지는 데 필요한 시간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습니다”.
오랜 기간 독일에서 살고 있는 작가 가와구치 에미씨도 말한다. “침략한 측과 침략당한 측이라는 한일 관계는 유럽으로 말하자면 독일과 폴란드의 관계와 매우 닮았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양국 간의 관계는 한일 간의 그것과는 다른 우호적인 관계입니다. 독일은 폴란드에 대하여 지금도 전쟁에 대한 죄와 반성을 잊지 않고, 양국간에 공식 회합이 있을 때는 반드시 그에 대한 반성에 대하여 어떤 형태로든 언급하고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반성을 저자세로 거듭해 온 덕분에 폴란드 사람이 독일에 대해 대규모의 데모를 하는 것 같은 광경은 볼 수 없습니다”.
그 말대로 70년에 서독의 플랜트 수상(당시) 은 폴란드를 방문하여 유대인 게트 기념비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고 있다. 또 독일의 교과서는 전쟁의 역사적 사실을 ‘지금을 살고 있는 자신들의 문제' 로 받아들여 이를 반복적으로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미 해결된 것이다’ 는 통용되지 않는다
전술한 에못토 씨는 “일본의 보수 엘리트는 몇십 년에 걸쳐서 한일관계의 긴장을 푸는 것에 실패해 왔다” 고 한다. “일본은 독일이 폴란드에 한 것처럼 전후에 지속적인 관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해야 했다. 확실히 일본은 외교에 있어 몇 번에 걸쳐 사죄를 거듭해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장기간 정권을 담당해 온 여당 자민당의 지지층에는 낡은 생각을 갖고 있는 파워풀한 단체가 있다. 그들 가운데는 역사 문제에 관하여 과거를 바꿔쓰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본 국내의 관점은 차치하고, 해외에서는 그러한 움직임은 불성실한 것으로 취급됩니다.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상 이상으로 구 식민지와의 관계는 복잡하며, 센시티브한 문제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미래에 걸쳐서 오랜 기간 사죄를 계속하지 않으면 화해하기 어렵습니다”.
구미의 표준으로 본다면, ‘이미 해결된 문제다’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한국에 대해 반감을 갖는 일본인의 감정은 ‘번지수가 틀린’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번 크게 파고를 친 일본인의 혐한 감정은 그칠 줄을 모른다.
그런 사실을 상징하듯이 잡지의 표지에는 과격한 타이틀이 눈에 띄게 되었다. ‘한국이 사라져도 아무도 곤란하지 않다’ (『WiLL』'19年11月号). ‘한국 따위 필요 없다’ (『週刊ポスト』'19年9月13日号). 이러한 혐오에는 이미 논리를 초월한 집념조차 느끼게 된다. 한국의 ‘한의 문화’와는 또 다른 부류의 독특한 감정이다.
미국의 싱크탱크 카네기 카운실의 상급연구원 데빈 스츠워드 씨가 이런 상황을 한탄한다.
“한일을 보면서 매우 슬프게 느끼는 것은, 각자 리더가 역사적인 문제를 이용하여 애국심을 선동하고 국내문제로부터 관심을 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일부 미디어도 또한 이에 가담하여 사람들이 기뻐하는 기사를 쓰려 합니다. 서로가 그런 기사로 국민의 편견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해악한 스파이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젠 '어른’이 될 때
이러한 상황을 토대로 미국 싱크탱크 CSIS(戦略国際問題研究所) 환태평양 지부 이사인 브레드 구롯사맨 씨는 “일본인은 더 이상 감정 면으로 한국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는 안 됩니다” 고 한다. “일본인은 한국인을 더 이상 적으로 보고 혐오감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은 국내의 통치에 문제가 생기면, 그 불만이 일본을 향해서 분출하기 쉬운 나라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과 많은 이익과 목적을 공유하는 파트너이기도 합니다. 상대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기반’을 갖출 때까지 참고 견디는 초연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공격적 언동을 당했다고 해서 같은 행동으로 그대로 되갚는 안이한 태도는 삼가해야 합니다”.
전 미 국방 차관보 죠셉 나이 씨는 “일본 사람들은 ‘싫다’는 감정에 따라서 행동할 때가 아니다” 며 경종을 울인다. “지금까지는 한일의 역사적인 논쟁이 재연될 때마다, 동맹국인 미국이 수면하에서 상황을 진정시키고 긴장 완화를 위해 움직여 왔다. 그러나 최근 양국에서 일어난 많은 충돌에 관해 트럼프 정권은 자국의 일로 경황이 없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건 매우 위기적인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젊은 독재자가 핵무기와 미사일을 추구하고 있는 북한과 정치경제 양면에서 대두하고 있는 중국이란 나라의 슈퍼파워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미일이 협조하여 행동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말로 과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합니다. 양국 국민은 ‘어른’이 되어야만 합니다”.
세계의 지성들은 한일 대립과 서로 혐오하는 감정의 향방을 매우 냉정하게 주시하고 있다.
「週刊現代」2020年1月11日・18日合併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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