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7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촛불"혁명(?)"을 내세우며 룰을 초월할 것을 지향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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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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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적인 의미의 근대국가란 선출권력이 무언가를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선출권력의 의지를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 내의 여러 국가기구 등이 제한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물며 기초적인 절차, 형식조차 갖추지 못한 선출권력의 행위란 자의적 지배로 이어질 수 있기에 더더욱 제한되어야 한다. 근대국가의 법치란 마르크스가 조소하기는 하지만, 봉건국가의 자의적 지배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써만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근대국가가 불필요하다 느껴질 정도로 절차와 법적 조건들을 갖추는 건 그런 의미이다. 헤겔은 이런 제한 속에 "이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두고 근대국가의 전제적 지배라며 맹렬하게 비판하지만, 그조차도 사적소유에 기초를 둔 근대국가라는 정치적 형태에서는 이러는 게 당연하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가 기존의 국가기구를 장악해 사용하면 된다는 인식을 "망상"이라 조소하며,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을 통해 기존의 국가기구 전체를 해체시켜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형태인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즉 근대국가란 본래 선출권력을 제한하기 위해 존재한다. 당대의 마르크스가 헤겔을 비판하며 말했듯이 그것이 관료의 자의적 지배로 전락할 가능성 또한 지대하지만, 동시에 이것을 막지 못하고 원자화된 개인들이 날뛰기 시작할 때 "광란의 축제"가 사회 전체를 파탄낸다는 점 또한 마르크스는 날카롭게 통찰했다.

 개혁이란 본디 기존에 존재하는 질서, 룰을 부정적으로 인지한다는 점에서는 혁명과 같지만, 혁명과 달리 기존의 룰 자체를 초월하여 스스로를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개혁을 추진하는 집단이란 룰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룰 속에서 룰의 변화를 지향한다. 본인들이 룰을 초월하여 존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상 가혹하게 느껴질지라도 기존의 룰에 맞춰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촛불"혁명(?)"을 내세우며 룰을 초월할 것을 지향했다가 좌파 등의 다른 정치적 집단의 비판에는 룰을 초월해서는 안된다는 식으로 오락가락하는 건 꼴사나울 뿐이다. 그런 집단에 동의할 이는 많지 않다. 

 박근혜 정부 때만 해도 선출권력의 자의적 지배를 제왕적 대통령제니 연성권위주의니 하면서 나와 함께 비판하던 이들이 고작 대통령 하나 문재인으로 바뀌었다고 결사적으로 대통령을 옹호하며 내게 적의를 드러내는 모습을 볼 때 허탈감을 넘어 배신감마저 느낀다. 진보적 지식인들의 입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 걸 보면 기가 막힌다. 좌파라는 작자들이 보수정당의 자리를 민주당이 차지하고 좌파정당이 민주당과 경쟁해야 한다는 철지난 소리를 아직도 읊어대는 걸 보면 한심하다

이인제의 말을 빌리자면 민주당을 찍으면 민주당이 되지, 좌파가 민주당 자리를 차지할 일은 영원히 없다. 세상에 마르크스가 언제 자유주의자들 뒤꽁무니 쫓아다니라 했나.. 저새끼들 줘패고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 혁명의 과제까지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세대의 차이인지 뭔지 모르겠다.
 문재인은 본인이 내세웠던 검찰개혁의 진의를 모조리 배신하고 고작 윤석열 하나 갈아치우네 마네의 문제로 사태를 호도했다. 대체 이런 작자한테 무슨.. 그런데 어제 문재인이 사과하는 모습을 보니 민주당 쪽에서 대통령이 그나마 가장 민주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기가 막힌다.. 지지자들이 대통령 반만 따라갔어도 여기까지는 오지 않았으리라 본다. 이 길은 망하는 길이다. 지금이라도 정신차리고 님아, 제발 그 강을 아사다 마오..


Taeil Kim
1tS9ponshmoreleda ·


물론 그렇다고 대통령의 징계권과 인사권이 무조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절차를 지키면서 해야 한다. 윤석열과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는데, 백번 맞는 말이고 나는 문재인이 절차 부분에 있어서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비판을 하려면 정확히 해야 한다. 윤석열과 관련된 절차위반을 말한다면 윤석열 징계만이 아니라 윤석열에 대한 인사의 시작부터 비판을 해야한다.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이번 법원의 결정은 "인사라는게, 할때는 맘대로지만 내보낼 땐 아니란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따지자면 법의 취지는 '할때도 맘대로 해선 안되고, 내보낼때도 아니다'가 맞다. 그런 면에서 이런 질문을 생각해봐야 한다. 

검찰총장은 누가 지명하나?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이 구성하되 법무부장관이 참여하지는 않는'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군을 추린다. 그리고 그 중 '딱 한명을' 법무부장관이 선택해서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한다. 그러면 대통령은 그 한명을 그대로 임명해야 한다. 거부권도 없다. 법무부의 총장 징계요청에 대통령이 재가밖에 못하는 것이랑 똑같다. 여기에 적어도 절차법상으로는, 대통령의 입김이 들어갈 구멍은 없다. (그런면에서 검찰총장이 법무부장관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박명림 교수의 주장은 명백히 틀린 말이다. 오히려 법문만 보면 총장은 대통령이 아니라 '장관에게만' 책임을 진다. 검찰은 어디까지나 법무부의 외청이다).
그러나 이는 법문상 그럴 뿐이고, 막상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열이면 열 다 대통령이라고 답할것이다. 지금은 그게 '현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책임을 지라고 비판하는 것이고. 그러나 나는 오히려 진짜 비판지점은 그 '현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 제도 도입 이후 첫 총장 임명 당시, 박근혜는 김학의를 총장으로 원해 추천위에 이런저런 시그널을 보냈다. 그런데 그 직전에 별장성범죄 추문이 추천위원회의 귀에 들어가서 추천위는 결국 김학의를 최종 후보군에서 제외했고, 대통령에게 거부권이 없었기에 박근혜는 하는수 없이 김학의 대신 채동욱을 임명했다. 말하자면 추천위가 '반기 아닌 반기'를 든 것이다. 만약 그때 추천위가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김학의를 총장 후보군에 올렸다면 지금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상상도 하기 싫다. 이후로도 문무일 총장 때까지는 법이 그래도 그럭저럭 문언대로 작동해왔다. 

그러나 윤석열은 달랐다. 그는 이 정권이 시작된 첫날부터 명확한 '문재인의 PICK'이었다.
시계를 2017년 5월 이 정부 막 출범했을 때로 돌려보면, 윤석열은 박상기가 장관되기도 전에, 문무일이 총장되기도 전에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됐다. 절차적으로는 이것은 검찰청법 위반이다(당시 이를 지적하는 기사들도 소수 있었다). 당시엔 장관도 없었고 총장도 없었는데 청와대가 직접, 그것도 전국 모든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최요직인 서울중앙지검장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뭔가 응?했다. 게다가 그전까지 서울중앙지검장이 고검장급이었지만 대통령이 이자리에 윤석열을 임명하면서 다시 지검장급으로 낮추었다. 사람 한명을 위해 관행과 제도를 바꾼 것이다(그 때 시민사회가 이를 비판했어야 했다...). 이후 윤석열이 중앙지검장 되면서 서울중앙지검은 특수통 과밀이 됐다. 반면 문무일이 총장에 임명된 후 대검찰청은 부패범죄특수단이 해체수준으로 축소되었으며 정보라인도 범정으로 개편되어 축소되었다. 공공연히 당시 언론들은 '검찰에 두명의 총장이 있다'는 소리가 검찰에 돈다고 썼다(그런데 작금의 판사사찰에서 보듯 윤석열은 총장이 된 후 대검 정보부서를 다시 부활시켰다).
그리고 2년뒤 2019년 6월의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는 사실상 윤석열을 '추대'하기 위한 거수기에 불과했다. 청와대 비서관들이 후보추천위의 당연직들을 찾아가 윤석열을 꼭 최종후보군에 넣어달라고 로비했다. 최종후보군에 들어가기만 하면 대통령의 사실상 사전명령을 받은 장관이 제청하면 되니까. 그 최종후보군 중에서 박상기는 윤석열을 지명해 대통령에게 제청했고 그렇게 윤석열은 총장이 되었다. 당시 윤석열은 추천위가 꾸린 후보군 중에서 제일 막내였고, 유일하게 고검장이 아니었다. 검찰총장은 고검장 중에서 인선하는게 관행이었지만 무시되었다. 이후 윤석열이 총장되면서 고기수 검사들이 줄줄이 사표를 썼다. 

지금 법조기자들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역사상 유래없는 권력의 특혜를 받아 성장하고 있다고 쓴다. 4대 검찰요직을 모두 전전하고 있다고. 개소리다. 이성윤이 받은 특혜라고 하는것들은 실질적으로 윤석열이 받은 특혜에 비할바 못된다. 왜냐면 이성윤은 아무리 요직을 전전했다 한들 검찰청법상 인사 절차를 지키며 받은 것이지만 윤석열은 상술했듯 법절차와 관행을 모조리 박살내면서 특혜를 받은 케이스기 때문이다. 지금 이런말 하면 '그런일이 있었어?'라는 반응이 나올정도로 놀랍겠지만 불과 1년 반 전까지 윤석열은 '대통령의 남자'였던 것이다. (초기에 윤석열이 특수통 제외하면 검사들 일반에게 그리 큰 지지를 받지 못했던 요인이라고도 생각한다. 윤석열이 총장되고 윤석열사단이 요직을 모조리 장악한 19년 하반기 인사 직후에 검사들이 60명 이상 그만뒀다. 법무부는 추가인사수준이 아니라 기존인사명령을 취소해 다른곳으로 보내기까지 하는 등 대규모의 수정인사를 해야했고, 심지어 윤석열이 검사들 달래는 성명을 냈어야했을 정도였다. 참고로 언론들이 윤석열 수족을 잘랐다며 검사들 항의 줄사표가 이어진다고 떠들었던 올해 여름 인사때 그만둔 검사는 10명 정도이다)

그 결과 윤석열은 스스로 대통령의 픽을 받았다는 인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 인식이 지금도 '프라이드'인지는 모르겠지만. 법무부장관이 구성한 총장후보추천위 '따위'와 법무부장관의 지명이 아니라, 제1권력자인 대통령의 능동적 픽을 받았다고 스스로 생각했을 것이다. 국감장에서 '대통령이 메신저를 보내 임기를 지키라고 했다'고 발언한 것도 아마 그 인식의 연장선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눈에 다른 고위공직자가 어떻게 보였을까. 지검장 시절 상관이었던 문무일 총장? 문무일은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여러 후보군중에서 수동적으로 선택된 사람이 불과했다. 박상기 장관? 마찬가지로 그 이전에 여러명의 후보자가 있었지만 다 좌절되고 간신히 장관이 된 케이스였다. 뉴스타파가 조국 수사 직후 박상기와 윤석열의 회동을 보도한 뒤, 박상기가 검찰수사 문제를 지적했다는 부분에 대해 윤석열은 수사 지적이 아니라 상관인 장관이 자기에게 '선처'를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박상기는 즉각 부인했다. 이게 사실이든 아니든 윤석열이 오만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원픽 지명을 받지 않는다. 윤석열도 절차만 보면 박상기장관이 구성한 검찰총장추천위원회가 추천한 네명중의 한명이었다.
(여담으로, 이렇게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지명을 받았다고 스스로 인식했을 윤석열에게 유일하게 무시할수 없는 게 누구였을까? 당연히 조국이었을 것이다. 윤석열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무조건 1순위로 지목된 '대통령의 원픽'이었다. 나는 그래서 초기에는 조국에 대한 수사가 검찰쿠데타가 아니라 문정부 내에서의 2인자투쟁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2인자 투쟁이 생각보다 윤석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조국 수사의 정당성을 대통령이나 청와대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그럴만한 성과도 못내었다. 그러다보니 1인자 투쟁에 나서게 된걸지도 모른다. 뉴스타파의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은 조국수사 시작 당시 박상기에게 보고할때 자녀 입시 문제는 거의 말을 안했고 사모펀드 이야기만 내내 했다고 한다. 내가 사모펀드 많이 해봐서 잘 안다고... 어떻게 민정수석이 사기꾼들이나 하는 사모펀드에 손을 댈 수 있냐고. 그런데 조범동 1심과 정경심 1심 재판결과는 어떤가. 오히려 입시비리가 유죄가 나왔고, 총장이 제일 관심을 가졌던 사모펀드는 무죄가 나왔다.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는 못박음까지 판결문에 나왔다. 검찰수사의 정당성은, 적어도 특수부 수사를 대거 투입하고, 장관 인사청문회날 기소했던 정치적 수사의 정당성은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 오히려 장관 인사청문회날 기소한 건은 진즉에 무죄가 나왔고, 언론들은 침묵했다. )

하여간 문정부 출범 이래 지금까지의 사태를 길게 돌아보면, 검찰총장을 어떤사람으로 뽑아야하는지는 몰라도, 어떤 사람을 뽑지 말아야 하는지는 알것 같다.
'대통령의 1픽'이 검찰총장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게 제도가 주는 교훈, 문정부가 배워야할 교훈이었다. 

이것은 한낱 대통령의 사람보는 눈을 못믿겠다던지 후보가 어떤사람이냐는지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자의 '최선'은 사실 얼마든지 '최악'이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찰총장이라는 강대한 권한이 대통령의 과도한 신임까지 받으면 통제불능의 위험이 될 수 있다는것. 그 사람이 좋은사람이냐 나쁜사람이냐, 민주당이냐 국힘당이냐, 진보냐 보수냐 하는건 큰 의미가 없다. 사람이 누구던간에, '나는 대통령이 직접 선택한 총장이다'라는 시그널이 검찰총장 머릿속에 들어가면 안된다. 이 시그널이 들어가면 대통령에 충성하는 총장이 될수도 있고, 대통령 신임을 믿고 막가파식으로 행동하는 총장이 될수도 있고, 정치에 나갈 딴 생각 품는 총장이 될수도 있다. 민주국가의 강대한 권력자로써 필수적 자질인 '겸손' 따위가 전혀 필요 없는 총장이 되버린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느쪽으로 가든 파국이다. 

반면 대통령의 입김을 받지 않는 후보추천위원회가 선정한 후보 중에서 한명을 지목하게 된다면, 대통령의 선택은 '최선'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차악'을 고르는 것이 될 것이다. 법무부장관이 참여하지 않는 후보추천위가 후보를 고르고, 그중 한명으로 낮은 확률을 뚫고 법무부장관에게 간신히 지명된 검찰총장이라면 '나는 법무부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따위의 말을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차기 장관 지명일날 장관후보자 압색을 들어가지도, 인사청문회날 소환조사도 없이 부인을 기소하지도 않을 것이다. 돌아보면 적어도 문무일은 그렇게 처신했다(그런 면에서, 적어도 다음 검찰총장은 이성윤이 되어선 안된다. 설령 이성윤이 된다 해도, 윤석열 때처럼 청와대가 법무부의 인선과정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논자들이 지면에서 묻더라.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하고. 그래서 나라면 첫번째로 대통령이 윤석열 한명을 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하기 위해 절차와 관행을 모두 깬 2017년 5월 19일을 꼽겠다. 두번째로, 제도의 취지를 무시하고 총장 인선에 청와대가 사실상 직접 개입했던 2019년 6월을 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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