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5

[210호 평화이야기] 같은 길을 가는 한 식구처럼 < 복음과상황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210호 평화이야기] 같은 길을 가는 한 식구처럼 < 복음과상황 < 기사본문 - 
같은 길을 가는 한 식구처럼
정토회 유정길 법사 - 개척자들 송강호 전도사 대담

기자명 복음과상황
승인 2008.03.18 12:16




▲ ‘개척자들’송강호 전도사(왼쪽)와‘정토회’유정길 법사 ⓒ복음과상황 신철민불교평화단체 ‘정토회’와 기독교평화단체 ‘개척자들’은 다른 종교를 가진 닮은 꼴 ‘친구’ 같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처음 만난 둘은 현장에서 일하는 자세와 공동체로 살아가는 모습에 서로 감명을 받고 자극도 주고 있다. 그리고 두 단체를 창립한 유정길 법사(49)와 송강호 전도사(51) 역시 비슷한 면이 많다. 91년 개척자들을 시작해 대표 역할을 맡아온 송강호 전도사는 2005년 대표직을 내려놓고 쓰나미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 아체로 달려가 아체 평화사역의 문을 열었다. 그는 “한 사람의 카리스마보다 내부의 비전과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단체가 되는 것이, 멀리 내다볼 때 모두가 다 함께 성장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개척자들은 모든 활동가들이 4년에 한 번씩 일 년 동안 분쟁 현장에 나간다는 원칙에 따라 리더들도 자연스럽게 바뀌는 시스템을 실험하고 있다.





뒤로멈춤앞으로

정토회는 매 1000일마다 모든 사람들이 직책에서 '짤리'고, 모든 활동이 제로베이스로 돌아가서 다시 정비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88년 정토회가 만들어질 때부터 2002년까지 에코붓다·JTS·좋은벗들·평화재단에 이르기까지 계속 “대장” 노릇만 했던 유정길 법사는 “그동안 남에게 드러나는 일로 공덕을 많이 깎아먹었는데, 공덕을 많이 쌓기 위해서는 밥하고 청소하는 공양주가 되어야 한다”며, 스스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밥을 설게 한 것은 자기 마음을 놓친 것이라며 후배 선재법사들에게 된통 혼도 나며 깊은 ‘마음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 후 유정길 법사는 아프간에 가서 3년 동안 현장 개발지원을 했다. 그는 “내가 계속 대장만 했다면 내 꼬라지를 제대로 모르고 기고만장했을 텐데, 다시 내려가서 활동하다보니까 바닥의 활력이나 에너지도 느낄 수 있고 같이 일하는 후배들의 정서도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며 지금껏 “후배들 눈치 보면서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유정길 법사와 송강호 전도사가 3월 7일 <복음과상황> 사무실에서 만나 평화와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진솔하게 나누었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삶이 선교지요"

유정길 /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동안 개척자들과 거의 식구처럼 친하게 지냈다. 개척자들 간사가 2003년에 아프간으로 처음 왔을 때 당장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아서 우리 쪽에서 머물러도 좋다고 했다. 그때 우리가 다 같이 아침마다 5시에 일어나서 1시간 동안 기도하고 명상하는데 불편하면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도, 흔쾌히 다 참여하더라. 다른 종교에 대해 여유로움을 갖고 개방적일 수 있는 것은 종교적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믿는 대로 삶을 살려고 하다보니까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일수록 굉장히 배타적인 경우가 많다. 개척자들이 사무실을 구할 때까지 한두 달 동안 같이 살았는데, 두 단체가 현장의 과제를 중심으로 만나니까 종교적인 차이를 느끼거나 불편한 게 거의 없었다. 아마 종교를 앞세웠다면 견해 차이가 많았을 텐데, 둘 다 아프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주된 포커스를 두었다. 현장 중심적으로 활동하는 방식도 서로 비슷했다. 우리는 마을에 들어가 살면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는데, 보통 대사관이나 다른 NGO들은 전쟁지역에서 마을로 들어가서 일하는 것에 기겁을 한다. 일단 마을 사람들과 똑같이 생활하는 게 불편하고, 외국인들은 돈이 많다는 생각 때문에 강도를 당할 수도 있고 위험이 많이 있다. 그러나 NGO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지켜주는 방식으로 가는 게 가장 좋다. 그만큼 그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개척자들은 돈을 최소한으로 쓰면서 직접 몸으로 뛰고, 종교적인 내색을 하지 않으면서 그 사람들의 필요에 의거해서 그 사람들과 같이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를 만드는 활동을 한다. 진정한 선교는 그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때 개척자들이 가진 열정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 송강호 전도사 (개척자들), "우리가 공동체로서의 삶에 좀 더 진지하고 충실해야 한다며, 그때 우리가 받고 있던 용돈이 7~10만 원 정도 됐는데 그걸 더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가 정토회 친구들이 5만 원의 용돈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복음과상황 신철민송강호 / 우리는 선교를 개종이나 전도라는 의미를 넘어서 포괄적으로 이해한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살아가는 삶 자체를 선교라고 믿는다. 분쟁지역에서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한 선교적 과제라고 본다. 그렇지만 많은 교회들이 국가가 갖고 있는 안보의식을 그대로 답습해서, 진취적으로 자기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평화를 만드는 방식에 대해서 오히려 위험한 생각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평화활동 자체를 선교적 활동이 아니라고 보는 편협한 이해 때문에. 우리가 아프간에 교회를 세운다면 많이 지원해줄 텐데 평화활동을 하니까 안타깝지만 지원할 수 없다는 교회도 있었다. 분쟁지역에서 이슬람이나 다른 종교가 이미 뿌리 내린 곳에 새로운 교회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체의 수도 반다아체에는 개신교 교회가 3개 있는데, 다 인도네시아 군인들의 보호 속에 있다. 아체인들은 인도네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원하는데, 교회는 친인도네시아인 것이다. 적어도 그 현장에서 기독교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야 하는가를 생각해볼 때 이미 그 교회들은 많은 문제를 노출시키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자기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해케 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사랑의 실천이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하는 평화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아체에서 인도네시아정부로부터도 미움을 받고, 이슬람에서도 배척을 받을지 몰라도 그리스도가 원하는 삶이 이런 것이라고 순교적인 열정으로 증거해야 한다. 자유라는 말만 해도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 속에서 교회가 당당하게 아체인들의 자유와 정의를 얘기한다면 아마 처음에는 오해도 사고 핍박받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교회와는 다른 오히려 아체인들이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분쟁이 빚어지는 지역에서 선교사님들이 위축되어 떠나거나 제대로 화해의 자리에 서지 못했다. 지난해 분당샘물교회 사건도 그런 한국교회의 기본적인 선교 패턴 속에서 발생했다. 앞으로 교회가 화평케 하는 직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봤으면 한다.



유정길 / 한편으로는 그곳에서 내가 아무리 종교적으로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다면 나는 잘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항상 들었다. 건물도 몇 채 지어주긴 했지만, 이게 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오히려 잘 사는 나라의 우리들이 괜히 우리네 소비생활을 그쪽으로 가져가서 거기 사람들에게 상대적인 소외감을 느끼게 하고, 그 지역의 물가도 올려놓고, 그곳의 가난한 사람들을 더 살기 어렵게 만든 게 아닌가? 알량하게 도와준다고 하면서 결국 구걸하게 만들고, 자꾸 의존하게 만들지는 않았나? <Do no harm>(해를 끼치지 마라)이라는 책에 보면, “거기서 당신이 실제로 도와준 것은 별로 없고, 오히려 해를 끼치지 않았으면 다행”이라고 나와 있다. 아프간에서 우리가 개발지원한 마을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들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줬다고 말했다. 가난한 자신들을 도와줄 좋은 기회를 주지 않았냐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니,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전 세계 사람들이 자원을 골고루 나눠 써야 하는데 우리처럼 잘 사는 나라들이 대부분 독식하고 가난한 나라들이 써야 할 자원을 빼앗아 가난한 나라를 가난하게 만드는 데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의 소비생활이 일조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삶이 진리라면 가난한 나라 사람들도 그렇게 살도록 도와야 하지만, 다 같이 이런 생활수준으로 살게 되면 온 세계가 조만간 끝장날 것이라고 하니 이런 식의 삶이 올바른 삶이 아닌 것이다. 엄청난 쓰레기들을 만들어내는 죄악을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몫을 다시 돌려주는 방식이 해외원조활동인데, 이것은 그 활동을 하는 단체뿐 아니라 죄를 짓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참회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죄를 참회하는 것이기에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생각을 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들에게 내가 참회할 기회를 준 것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

송강호 / 아프간에 있던 한 간사가 마을에 들어가 지내면서 마을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먹기도 하고 어떤 때는 얻어먹기도 했다고 한다. 한번은 배가 몹시 고플 때 마을의 아이들이 따뜻한 죽을 갖다 줘서 마음 깊이 고마웠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곳 사람들이 남에게 얻으면서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게 아니라, 친구로서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고난에 동참하고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동반자 역할을 우리가 그들 속에서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아프간에서 활동하던 멤버들에게 우리보다 더 철저하게 현장에 헌신하는 단체가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정토회가 도대체 어떤 단체인지 궁금했다. 아프간 멤버들이 정토회에 자극을 받고 한국에 돌아와서 개척자들이 개혁해야 한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공동체로서의 삶에 좀 더 진지하고 충실해야 한다며, 그때 우리가 받고 있던 용돈이 7~10만 원 정도 됐는데 그걸 더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가 정토회 친구들이 5만 원의 용돈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는 것 아니냐, 좀 더 우리 삶에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자는 얘기를 해서 결국 용돈을 줄였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정토회를 볼 때마다 신선한 도전을 받고 있다. 사람이 많아지면 철저성이 떨어질 수 있을텐데, 그 규모에서도 철저성을 유지하는 상당한 힘이 그 안에 있는 게 아닌가.

유정길 / 지금 80명 정도가 공동체로 살고 있는데, 사실 재정의 상당 부분을 개별적으로 해소하지 않고 공동체 내에서 해소한다. 식사도 같이 해 먹고, 옷도 나눠 입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수준이 아마 7,80만 원의 월급을 받는 사람보다 나을 것이다. 월급이란 게 일반적인 개념과 달리 상당부분 공동체에서 해결하고 차비 같은 것을 준다는 개념에서의 월급이지, 사실 내부적으로 함께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우리는 공동체를 하려고 해서 한 게 아니라, 돈을 안 들이려고 하다보니까 집도 같이 짓는 게 좋겠다고 해서 처음에는 용두리에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거기서 같이 살다가 아예 법당에서 공동체로 지내게 된 것이다. 불교에서는 원래 스님들이나 수행자들이 같이 사는 승가공동체 전통이 있다.

송강호 / 우리가 정토회에서 배운 게 또 하나 있다. 예전에는 새로운 사람을 뽑는 방식이 우리가 필요한 사람이지 보고 기존의 멤버들이 만장일치로 뽑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정토회는 생활 자체가 굉장히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 어려움을 감당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은 막지 않는 방식이다. 우리도 우리가 원하는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자기가 길을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들어와서 일할 수 있도록, 우리 생활수준을 낮추고 지향하는 가치에 동조하고 그 비전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야 한다는 방침으로 바뀌었다. 정토회의 좋은 모델들을 수용함으로써 우리 자신 자신을 변혁시켜나가는 좋은 영향들을 받았다.


▲ 유정길 법사 (정토회), "다른 종교나 다른 단체들과도 제3세계를 지원하고 환경이나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대화와 만남의 장이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가 꼭 같아야 한다고 볼 필요가 없다." ⓒ복음과상황 신철민유정길 / 공동체에 들어오면 규칙이 있는데, ‘포살’이라고 해서 자신이 공동체 원칙에 근거해서 지키지 못한 것을 스스로 참회하고, 자기가 자기를 잘 모르기 때문에 상대방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겠다고 얘기해주는 ‘자자’라는 것을 본인 동의하에 한다. 오래 있다 보니까 그런 룰이 많아지고 견고해진 면이 있다. 그래서 자칫하면 자유롭기 위해서 공동체에 들어온 건데 그 룰 자체로 인해 서로가 서로에게 자유롭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공동체의 질서를 적절히 지키면서 개인의 자유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큰 과제다. 같이 살면 적게 소비하면서 종교적 삶을 오로지 살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반면에 개인이 공동체에 노출되기 때문에 불편한 점도 있고 자기 멋대로 살기 어렵다. 언제나 그렇지만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그 이유를 상대방에게 돌리면 그건 수행이 아니다. 공동체의 룰은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정말 원리적으로 그렇게 바라볼 수 있다. 같은 사람도 애정있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무슨 행위를 한다고 해서 그걸 보고 싫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실제로 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심정의 문제다. 그때 객관적으로 내 문제라는 걸 바라봐야 하는데, ‘내 문제’가 아니라 ‘네 문제’라고 생각하는 순간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수행의 내용은 모든 것을 나로 돌리는 것이다.



송강호 / 정토회를 보면서 철저하게 자기 수신을 하는 공동체라는 것을 느꼈다. 개척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이 이 정도다 하고 한계를 긋는, 더 수도하려는 노력을 물론 포기하진 않지만, 어떤 면에서 내가 유한한 존재라고 겸허하게 생각하고 그 수준에서 수용해주는 분위기이다. 그러다보니까 서로 흠이 드러나도 나도 잘못했는데 내가 너에게 뭘 잘못했다고 할 수 있나, 이 상황에서 우리가 더 깨끗하게 나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포기하진 않지만 가능한 한 서로 용서해주자는 분위기이다. 이렇게 부족한데도 은혜로 사는 것인데, 남에게 박하게 할 수 있나 서로 수용하고 용서하자는 분위기이다.

유정길 /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는 불교 내에서 보수적인 사람들보다 더 보수적으로 수행을 한다. 일반 절에서는 108배도 하기 쉽지 않고 3000배는 평생 한번 할까 말까 한데, 우리는 3000배, 10000배도 다 한다. 그래서 보수적인 사람들이 우리 활동에 대해서 함부로 말을 못 한다. 그들보다 더 종교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진보라고 하는 분들도 보수적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 이상의 열정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불교나 기독교나 과거 7,80년대에 무수한 정치적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 과정 속에서 본인의 신념을 놓치지 않고 활동했기 때문에 다음 세대의 주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이 다음 세대의 주류가 되고자 한다면, 그들의 신앙을 삶과 수행과 일치시켜서 보수적인 사람보다 더 보수적으로 철저하게 자기 삶을 살아야 그것으로 설득할 수 있다. 옳다, 그르다는 것은 언어의 성찬이기에 그것으로는 누구도 규명할 수 없다. 사람은 말을 믿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삶과 행동을 믿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앞으로 종교를 개혁하려는 사람들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오히려 미래의 대안이 될 만한 삶을 살면서 삶으로 주장해야 한다. 한쪽에선 계속 부패되는 것을 감시하는 역할도 필요하고, 한쪽에선 대안의 씨앗을 만들어나가는 일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옛날의 보수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념적인 갈래로 나눠보는 게 아니고 삶의 형태로 바라보면 훨씬 편안하게 통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종교가 다르더라도 마찬가지다. 삶을 통해 보여줄 때 훨씬 흡인력이나 공감대를 만들 수 있다.

송강호 / 개척자들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시대에 어떻게 응답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삶의 내용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중요한 출발의 동기가 되었다. 오늘 교회에 대해 청년들이 굉장히 비판적이 되고, 나중에는 교회에서 수용하지 않으니까 교회를 떠나가는 현실을 보면서, 청년 사역자로서 청년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세계에 응답하는 증인으로서 우리의 신앙을 남이 보든 안 보든 자기 자신의 목전에서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개척자들에 모였다.

대안을 찾는 공동체 더 많아져야

유정길 / 나도 평화와 공동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어서 자료를 찾아보니, 기독교 안에 전통들이 많이 있었다. 아나뱁티스트와 같이 평화를 지향하는 내부의 전통이 녹록치 않게 있어왔다. 종교의 외형적인 성격들은 오염되었다 할지라도 끊임없이 근본으로 가려고 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그 종교를 이어가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거대한 종교가 유지되는 것이다. 불교에도 그런 얘기가 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믿고 있다 하더라도 정법이 아닐 경우에는 하루아침에 어이없이 무너진다. 그렇지만 정법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으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이것이 금방 보편화되고 확산되는 경우가 많다. 성경에도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 의인 한 명이 중요하다는 대목이 나오지 않나. 올곧게 살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다.

송강호 / 나는 개척자들이 아직 평화사역에 본격적으로 진입하지도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라크나 다르푸르 같은 심각한 분쟁지역에서 평화를 만드는 일을 해야 하는데, 아직 그런 현장에서 일하는 것이 굉장히 위험하고 어렵다. 법적으로 넘어야 할 장벽도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난관들을 극복하면서 가장 심각한 분쟁지역에서 평화 만드는 활동을 해나갈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개인적으로는 개척자들에서 교육원을 맡고 있는데, 앞으로 국제적으로 종교나 인종, 역사 등 다양한 이유 때문에 분쟁을 겪고 있는 곳에서 평화를 만들어갈 청년들을 장기적으로 교육하고 훈련하기 위한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활동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유정길 / 정토회 초기 80년대에는 오로지 불교종단 개혁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다양성의 관점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종단 개혁활동도 소중하지만 그런 단체만 있으면 안 된다. 새롭게 방향을 잡고 대안의 길을 모색하는 단체도 많이 있는 게 중요하다. 개혁이란 것이 이걸로 하자고 깃발을 꽂는다고 좇아오는 게 아니지 않나. 누군가 대안적인 실험을 통해 현실 속에서 점검을 해줘야 이것이 우리 길이구나 하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런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는 집단이 많이 있어야 한다. 예전에는 우리가 중심에 서서 모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부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새로운 실험을 하고 모색을 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본다. 다양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중심이 어디 있고 주변이 어디 있겠나. 그동안 나는 정토회에서 환경활동도 했고, 아프간이나 인도 등 제3세계 개발지원 활동을 해왔는데 지금은 남북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평화재단’에 있다. 환경과 개발과 남북문제를 통합할 수 있어서 나에게는 좋은 기회이다. 그 동안의 북한 지원이 구호 형태였다면, 이제는 지속가능한 개발로 넘어가야 한다. 경제적인 부분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삶의 질과 환경도 고려하고 북한 주민들의 자립이나 자발성에 근거해서 북한에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이 세 가지가 통합될 것이다. 다른 종교나 다른 단체들과도 제3세계를 지원하고 환경이나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대화와 만남의 장이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가 꼭 같아야 한다고 볼 필요가 없다. 환경이나 남북문제와 같은 과제를 중심으로 해서 함께 해나가면 그것 자체가 종교 간의 대화와 평화가 되는 것인데 이념이나 종교성만 가지고 대립하면 끝장이 안 난다. 앞으로 종교들이 환경이나 제3세계 지원과 관련해서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정리 최소란 (본지 객원기자)
사진 신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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