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ison Lee
소아응급센터에서 진료를 한지 6년.
학대로 숨진 16개월 아이의 일로 세상이 떠들썩하지만
사실 이 곳에서 근무하는 우리들에겐 일상에 가깝다.
다만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고, 담담해지지 않는 아주 특이한 일상.
응급실에 딱 일주일만 있어 보시라.
당신의 상상을 초월하는 오만가지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
맞아서 오는 아이.
싸워서 오는 아이.
교복을 입은 채 임신 해 오는 아이.
배달 오토바이를 타다 다쳐 오는 아이.
성폭행 당해 오는 아이.
자살시도 후에 오는 아이.
그러다 자살에 ‘성공’하여 숨이 멎은 채 오는 아이.
학대가 의심되나 보호자가 진료를 거부하는 아이.
자살을 시도했으나 보호자가 나타나지도 않는 아이.
드라마틱한 과정과 결과가 알려지는 아이만
학대당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간, 이 순간, 오늘도, 내일도
아이들은 학대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그렇기에 그 중심에서 매번 아이들을 마주하는 나는
OO야 미안해, 와 같은 SNS 챌린지나
국민청원, 가해자 엄벌을 위한 진정서 같은 것들이
역설적으로 얼마나 무의미하고 방관자적인지,
더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것이 얼마나 가벼운 셀프 속죄의 유희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소아과 의사들은 보통 스물 예닐곱 즈음
내가 치료하던 아이의 죽음을 처음으로 경험하고,
그 순간이 심장 속에 박제되듯
강렬한 기억으로 영원히 남는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죽음, 두 번, 세 번의 죽음,
그렇게 몇 십번의 죽음을 겪어내고
조금씩 눈물이 덜 날 때 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되고, 또 부모가 된다.
직업적으로는 점점 더 익숙해지고, 냉정해지지만
그 때의 나는 엄마가 되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감정이입이 되고,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다시 흐르는 혼란스러운 경험의 반복.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것이 학대아동의 진료다.
학대당한 아이의 진료를 보고, 전후사정을 파악하고,
신고를 하고, 진단서를 작성하고,
입원을 시키거나 혹은 사망선고를 하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말간 얼굴로 안기는 내 자식들을 볼 때
내가 느껴야했던 죄책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감정.
어쩌면 그래서 나는 저 가벼운 미안해 챌린지가
더 야속한가보다.
미안하다는 공허한 말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국민들은 슬픔과 분노를 좇아 쇼를 하고,
그러면 정책결정자들은 쇼에 부응하기 위해
더 쇼같은 법안을 발의하고,
결국 실체없는 보여주기식의 행정이 펼쳐진다.
사실은 아무도 연관되고 싶어하지 않고,
그래서 결국, 아무도, 아무도 진실로 책임지지 않는다.
그리고 학대받던 아이들은 대부분 돌볼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그 지옥도 속으로 다시 돌아간다.
[가해자 엄벌을 탄원할 것이 아니라,
아동보호국을 정식으로 만들라고,
보호아동을 위한 시설을 만들고,
거기에 인력과 예산을 넣으라고 호소해야 한다. ]
약사에게도 신고의무를 부여하자 따위의
되도않은 법령을 발의할 게 아니라
사설기관과 민간병원에만 속수무책 떠넘겨져있는
일을 나라에서 챙겨서 하라고.
그런데 지금 세금은 어떤 곳에 사용되는가.
경찰에는 과연 학대아동과 신고자를 보호 할
재량과 능력이 있는가.
의사들은 신고 후 신분비밀과 생업유지 보장이 되는가.
해결책을 제시하고 나부터 행동하고 싶지만
이런 사건의 중심에서 수십번 같은 상황을 겪고 나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뜯어고쳐야
이게 가능한가 하는 회의가 든다.
이것저것 다 떠먹여주려다
오히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다 찢어버린
아마추어 사회의 단면]이 어제도 오늘도 적나라하다.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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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cho Noh
매우 동감합니다....
· Reply · 12 h
송민준
· Reply · 11 h
이해봉
아.. 너무 공감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 Reply · 11 h
Hyo Kyoung Kim
https://m.blog.naver.com/mogefkorea/221499406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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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ply · 11 h
Lynn Seo
우린 유독 성폭력 가정폭력에 관대하고 무감각한 것 같아요. 어쩌면 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작은 공감들이 쌓여, 꼭 변화를 가져오기를 희망해봅니다.
· Reply · 11 h
이정예
공유합니다
· Reply · 11 h
Sanghoon Chae
이건 정말 소아과 의사들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간접적으로 학대당한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을 신고했을 때 의사들이 겪었던 무관심과 부조리를 모아서 공론화 해야 합니다
2017년에도 이런일은 있었고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No photo description available.
· Reply · 11 h
권기선
세상이 왜이래 테스형 알려주세요
· Reply · 11 h
Heesoo Kim
공감가는 글 감사합니다.😢
· Reply · 10 h
Derik Kim
공유합니다.~^
· Reply · 10 h
Hyun Koh Caplan
Well written...
But it's gotta start somewhere somehow. This could be a start of something big.
It starts with people hearing/knowing about this type of abuse and acknowledging that it's happening more often than not and that we need to do whatever it takes to protect our children even if they are not related to you.
Yes, it takes much more than just a campaign/movement like this to make a difference but it starts with people understanding child abuse is not just a problem for your next door neighbor but it is our problem as a society. So no, this campaign isn't just for show, it's a hope to make a difference in a lot of children's lives.
· Reply · 10 h · Edited
엄효식
최전방을 지키고있는 군인같은, 가장 위험한 곳에서 가장 필요한 역할을 하고 계시네요
· Reply · 10 h
Kim Sera
예전에 방과후 수업갔다가 누가봐도 맞아서 부은 것 같이 보이는 아이를 아주 친하다고 생각했던 현직초등교사에게 얘기했는데 괜히 나섰다가 문제크게 만들지 말고 방관하란 소리를 들었다
그때 처음 느꼈지 이 나라가 이런 나라구나..그러면서 이 사태가 올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 Reply · 10 h
김완희
어린이집 현장에있는 사람으로
아동학대는 어린이집에서만 생기는것처럼 떠들던 무수한이들~~
과연 훨씬많은수의 부모에의한 아동학대를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식~~ㅜㅜㅜ
· Reply · 10 h
Sungbae Lim
Eunji Kim
· Reply · 10 h
김완희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난?이들은
C or E의 choice 에만??ㅜㅜㅜ
슬프다~~
· Reply · 10 h
Yuchan Hong
글 잘 읽었습니다.
미안해 챌린지는 감정선동만으로 끝나고
마녀사냥은 자신들이 심판을 시행했다는 정의감만으로 끝납니다.… See more
· Reply · 10 h
이종완
그래요 아마추어들이 주둥이로 먹고사는 나라죠
· Reply · 9 h
Jiho Choi
공유합니다.
· Reply · 9 h
김재훈
너무 공감합니다. ㅠㅠ 공유하였습니다. 친추 감사합니다.
· Reply · 9 h
송순중
너무 공감됩니다. 챌린지가 뭔 의미가 있을까요..안타까운 아이들이 한둘이 아닌데..다른 아이들은 이 현상을 보며 얼마나 허탈할까요..백만번 공감하며 공유합니다. 꼭 제맘같은 글 감사합니다.
· Reply · 9 h · Edited
Sunvin Kim
공유합니다.!
· Reply · 9 h
Jeongdo Kim
시비걸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이러쿵 저러쿵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해도 결국 자신의 신분이 보장되지 않음 적극적으로 아이를 구하지 않겠다는거 아닌가?
내가 요즘 느끼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생각은
그들은 우리 세대들이 찌질하고 야비한 것을 다 알고 있다 이 단순한 질문
“그래서 뭘 해줄수 있는데요”
또는
“당신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데 보호가 필요한 나를 도와주실수 있으세요?”
에 명쾌한 대답을 해주기 전까지 우리는 암묵적 가해자일거 같다
뭐라해도 그 상황에 적극적으로 또는 행동하는 양심이 되는 사람이 몇있을까
딱 드는 생각은 “휘말리지 말아야지” 아닌가 싶다 여기에 머무는한 늘 공염불일거 같다
이런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행동하는 양심이 보고 싶다
· Reply · 9 h · Edited
Sanghoon Chae
그럼 선생님이 앞장서서 움직여주시죠 저는 따라가겠습니다
· Reply · 8 h
Jeongdo Kim
Sanghoon Chae 안 따라오셔도 되고 그런 아이를 보면 도우시죠
저도 도와보려고요 적극적으로
· Reply · 8 h
Miller Sk
김정도 살면서 죽어가는 아이 여러번 살리셨나보네요
· Reply · 5 h
Jeongdo Kim
Miller Sk 빈정거리고 싶어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아마 의사신거 같은데… See more
· Reply · 44 m · Edited
Write a reply…
김경애
매우공감합니다
· Reply · 8 h
김동욱
공감 ㅠㅠ
· Reply · 8 h
임정
그나마 지금은 아동학대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라도 받죠. 저 어릴때는 내 자식 내가 맘대로 두들겨 팬다는데 니가 뭔데 간섭이냐는 시대여서 참 누구한테도 도움을 청할수도 없었던 시절이었죠.
· Reply · 8 h
김종민
공감합니다.
공유합니다.
· Reply · 8 h
Hee-kyeong Jeong
말씀 감사합니다. 공유합니다.
· Reply · 7 h
Kelly Seo
동감하고 공유합니다.
· Reply · 7 h
장윤성
공유해요...
그동안 무거웠던 제 마음을 읽어주는 글이었어요
· Reply · 7 h
황윤억
절절합니다.
· Reply · 7 h
Soyeon Kim
그것이 슬픔과 분노를 쫓는 쇼라 할지라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사회가 바뀌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
· Reply · 7 h
나정관
백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개돼지들의 디엔에이 ...있는법도 안지키면서 일만 터지면 앞다투어 법만든는 무능한 국개의원과 실행자들...나만아니면 돼 시간이 약이야 기득권쥐면 법위에 군림하려는 무리들 ...오늘도 피곤한 개돼지들은 밥달라고 끙끙 ...곧지나가리라를 되뇌이며...어찌 쓸어버리고 종자를 갈아야 하는지 누가좀 일러주...
· Reply · 7 h · Edited
이건주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이 글이 좋아서 현직 교사들의 현장 연구 단체인 미래학교현장연구소의 웹진 [학교]에 수록하고자 합니다. 비영리 무료 웹진으로서 상업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니 동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m.blog.naver.com/lkjwin87
웹진 [학교]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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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ply · 7 h
Jaeseok Park
미안하다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또 다른 일인 입니다 공감합니다. 어떤 말로도 지금 심정을 표현할 수 없어서 그저 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ㅠㅠ
· Reply · 7 h
Hyun Lee
공유합니다
· Reply · 6 h
Bae Sungyeol
태명문입니다
· Reply · 5 h
Joong Seok Oh
가슴아픈 많이 가슴아픈...그 죄들을 어떻게 받을까.
· Reply · 4 h
Yuny Jang
공유합니다..갈길이 멀군요.. 귀하고 힘든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Reply · 4 h
Hyojoung Bae
.
· Reply · 3 h
김석현
연예인들 이때다 싶어서 챌린지 동참하는,,,,건 아니겠지.
· Reply · 3 h
조진석
말씀하신 내용 공감하고, 모두를 위해 공유합니다.
· Reply · 1 h
Joonyoung Sung
잘 모르고 분노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중대한 제안에 대한 공론을 거듭 제기하는 것만이 많은 보통시민들이 할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인것 같습니다. 공유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Reply · 1 h
Jae-won Yoon
그래도 지렁이처럼 꿈틀이라도 해야
· Reply · 1 h
정진영
공유합니다... 이런 방법들이 공론화 되길 기대하며...
· Reply · 1 h
손윤경
깊이 공감하며 공유합니다.
· Reply · 1 h
Min Kwon
공감하고 공유합니다
· Reply · 57 m
서재은
정말 현실그대로의 날것을 꼭꼭 짚어서 말씀해주셨네요. 적극공감합니다...
· Reply · 32 m
Dong Jun Kim
학대부모의 부모들이 목사 라는데
어떻게 이런짓믈 할수 있는지
왜 입양을 했나?
죽일거면
· Reply · 18 m
서명석
공유합니다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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