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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 설갑수의 조지 카치아파카스에 대한 재반박 - 광주in

설갑수의 조지 카치아파카스에 대한 재반박 - 광주in


설갑수의 조지 카치아파카스에 대한 재반박

설현 UNITE HERE! 기업분석/국제 캠페인
승인 2017.08.06 22:27
댓글 1

조지 카치아파카스(이하 조지)와 같은 이와 사실의 진위 논쟁을 하는 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그는 단순한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한 가지 사실에다 수많은 거짓을 퍼부어 진실을 희석하는 것이 조지가 행하는 일반적 거짓 형태다.

또한 상대방을 끝없이 분열시키는 것이 그의 거짓의 특징이다. 예컨데, 조지는 7월 20자 “반박문”에서는 정작, 반박할 대상인 5월 단체와 5.18 기념재단의 공동성명 대신, 재단 상임이사 김양래를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8월 4일자에서는 나만 물고 늘어진다.

조지가 뻔한 사실을 두고 논쟁을 만드니, 말이 길어지고, 에너지 소모도 많다. 그러나 조지의 최근 반박문이 나 자신에 대한 거짓 정보로 일관하고 있으니, 별도리 없이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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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다음을 밝힌다.

1) 8월4일자 광주인에 실리고, 스스로가 여기저기 뿌려된 조지의 글은 7월 26일 그가 내게 보낸 이메일의 확장판인듯 하다. 나는 답신으로 그의 거짓 주장에 대해 반박했으나, 8월 4일의 그의 글에서는 그 점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2) 그 후 이메일에서 조지는 내게 법적 소송을 할 것이라 말했다. 내게 미국과 한국에서 변호사를 선임해 그들의 연락처를 보내달라고도 말했다. 따라서 지금 이 글이 조지의 주장을 반박하는 마지막 공개글이 될 것 같다.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3) 사실 조지는 나와 이메일을 통해 논쟁을 시작한 초기부터 빈번하게 내게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해왔다. 이미 7월 23일 글에서 밝혔듯이 나는 송사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믿는다. 또한 그 모호한 법귀로 말미암아, 강자에게 유리하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한국의 명예훼손법에 나는 반대한다.

5.18민주화운동 37주년 국제학술세미나가 '광주일지: 민주주의와 자유의 집단 기억” (Gwangju Diary: A Collective Memory of Democracy and Freedom)'라는 주제로 지난 5월26일 유엔본부(Conference Room 11)에서 5.19기념재단 주최로 열리고 있다. 도도널드 그레그(Donald P. Gregg) 전 주한 미대사(왼쪽에서 두 번째)와 대표적 진보적 한국학 학자 브루스 커밍스 (Bruce Cumings) 교수(맨 왼쪽)가 발제자로서 참여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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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백인 미국인 교수가 미국적을 취득한 재미 한국인에게 한국에서 취할 명예훼손 소송의 꼴이 가관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가 소송을 감행한다면 회피할 생각은 없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따라서 조지가 법정소송을 행하려는 동안, 그를 직접 상대할 이유도 필요도 나는 없다.

그가 변호사를 선임해 그로 하여금 나와 연락 하기를 바란다.(이 점은 이미 조지에게 통고했다). 변호사이던 누구이던 삼자를 통하지 않고 조지와 직접 상대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4) 마지막으로, 이 글의 내용은 나의 개인 입장이지, 이 글에서 언급될 단체나 개인의 입장과 무관하다. 다시말해, 나는 그들의 의견을 대표하지 않는다. 모든 존칭과 존어는 생략한다.

조지가 그의 문단마다 번호를 붙혀 왔으니, 나는 그 길을 좇아 반박해 나가겠다. 글읽는 사람들은 두 글을 비교해서 읽어도 좋으리라.

1.

나는 단 한차례도 나를 “광주일지”의 단독 번역자로 소개한 적이 없다. 그러기에는 공동번역 편집자의 닉 마마타스 (이하 닉)의 공과 우정이 너무 크고 깊다. 책이 어떻게 번역하게 됐는지는 2015년 5월 오마이 뉴스 기고문에서 밝혔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10872

한국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미국에 온 나는 내 영어가 완벽하다고는 절대 여길 수 없다. 그래도 미국에서 영어글 써서 먹고 사니, 책 번역할 실력은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조지가 내게 보낸 이메일과 그리고 공개된 그의 반박문 속에서 곧잘 문법적 오류가 나온다. 우연히, 곧 인용할 조지의 이메일도 문법적 오류를 품고 있다 이 점에 대해, 소위 내티브 스피커이자 대학교수인 조지의 변명이 궁금하기는 하다.

궁금한게 한 가지 더 있다. 왜 나만 영어를 잘해야 하나, 정작 조지는 아직도 한국말이 서툰데? 조지가 광주를 들락달락한지도 대략 20년이 넘었고, 그 동안 두 명의 한국인 아내를 맞았다. 그런데 한국어 수준이 간신히 의사소통은 하나, 한국말 책이나 신문을 읽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조지는 그의 수많은 이메일 중 하나에서 고백했다.

또 다른 이메일에서는 조지는 어디에서인가 그가 한국어 연설로 연설하자,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썼다. 그의 연설내용이 감동적이라서 그런 격한 반응이 나왔는지, 혹은 한국말하는 것이 기특해서 기립박수가 나왔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가 빈번히 번역글에 의존하다 보니, 특히 한국어 글에 대한 오해도 잦았다. 또한 글이 잘못 번역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한국어 를 배우던지, 전문번역사를 고용하라고 몇 차례 충고했다.

2.

광주일지”를 번역 편집자 그리고 기고자인 브루스 커밍스와 팀 모두가 애초에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을 사실이다. UCLA Monograph Series가 비영리 출판 프로젝트였기 때문이었다. 우리 4인은 “광주일지”를 절대로 절판하는 일이 없을거라는 편집자의 구두 약속을 믿고, UCLA와 계약을 맺었고, 책은 적어도 30여개 미국 대학교에서 교재로 쓰였다 (자세한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오마이 뉴스 기고문을 참조하기 바람).

조지는 애초부터, 내가 재단으로부터 4000-4800만원을 받고 판권을 넘겼다고 나를 몰아붙였다. 나는 그런 터무니없는 액수를 받은 적이 없다고 여러차례 밝혔다. 조지의 최근 반박문의 기초가 된 7/26일 이메일을 공동번역자 닉에게 비밀참조(bcc)로 보내면서, 조지는 내게 물었다. “그 돈 받아서 닉에게도 공정하게 줬니?” 한 마디로 내가 그 엄청난 액수를 혼자 챙겼다고 가정하고, 닉과 나의 반목을 꾀한 것이다.

굳이 내가 반박할 필요가 없었다. 닉은 즉시 조지에게 답장을 보내, 내가 책에 관련된 모든 문제에서 그를 공평하고 평등하게 대접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속된 말로 “그만해라”라는 충고도 조지에게 해줬다.

그래서 밝힌다. 조지가 굳세게 믿는 액수는 터무니없고, 재단에게 받은 금액은 닉만 아니라, 팀과 커밍스에게도 적절하고 공정하게 배분됐다. 판권은 기증했고, 금액은 금년에 나온 개정판과 앞으로 있을 수 있는 모든 개정판의 수고비였다.

이 모든 것은 문서화됐고, 나는 서명했다. 자세한 내용은 5.18 재단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여하튼 금전이 오가니, 나도 “기증”이라는 말이 맘에 걸려, 김양래 상임이사님에게 말씀드렸다. 그 후로는 재단 측에서도 “기증” 대신 “판권 확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3.

조지는 “설갑수는 내가 그는 CIA를 위해 일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대신, “그[설갑수]가 30년 동안 CIA요원이었던 도널드 그레그와 일한다” 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은 6월 14일 그가 팀에게 보낸 이메일의 일부이다.

“To complicate matters, I believe Mr. Kap may also have mentioned all this to Donald Gregg, thereby possible bringing CIA attention to me.”

우선 글을 해석하기 전에 명칭과 문법의 오류부터 바로잡자. Mr. Kap이 아니라, Mr. Seol이 맞다. 한국을 20년 왕래하고 “광주일지”를 빈번히 인용한 조지는 내 성이 뭔지 구별하지 못했다. 또한 “possible”이 아니라 “possibly”가 문법적, 어법적으로 맞다.

해석인 즉슨,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즉슨, 나는 설갑수가 이 모든 것을 도널드 그레그에게 말했고, 따라서 CIA가 나를 주목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지는 내가 CIA를 위해 일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또한 이 지리한 논쟁의 발단이 된 조지의 5월28일자 이메일 “518-CIA connection)에서 조지는 다음과 같이 썼다.

“518 기념재단이 미국과 CIA에 밀접하게 다가가는 것은 정말 중요한 정치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I think there is a real political issue about the 518 Foundation’s drawing close to the US and the CIA.“

그의 글 자체가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믿기에, 달리 반박하지 않겠다. 또한 “중국을 통한 북한 압력은 소용없다”라는 그레그의 글을 국내 언론에 싣도록 돕는 일이 “30년동안 CIA에서 일한 사람과 같이 일한다”는 표현으로 퉁칠수 있는 것일까? 그런식으로 말하는게 비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4.

내가 그레그가 70년대 중반까지 일했다고 한 것은 오타였다. 그는 82년 즉 중반까지는 CIA에 적을 두며, 백악관 NSC에서 일했다. 글이 올라간 후, 비슷한 오타를 한 가지 수정했으나, 저 부분은 놓쳤다. 여하튼 오타는 나의 불찰이고, 따라서 그 글을 읽은 분들께 사과한다.

나는 그레그가 80년 5.18의 결정당사자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또한 조지가 그레그가 그렇게 중요한 인사였다고 믿었다면, 그의 책에서 다만 세 차례, 세 문장만 그레그를 언급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5월 22일 백악관 회의 이틀 전에 쓴 메모를 보면, 그레그가 미 군부와는 사뭇 다른 관점을 견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의 메모의 링크: http://digitalarchive.wilsoncenter.org/document/122097

5.

나는 조자기 2000년 시민법정 기획에 참여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자면, 그렇게 판단된다고 말했다. 동시에, 조지의 반박대로 단지 참여만 했다면, 조지는 그레그가 시민 법정에서 기소됐다는 잘못된 근거로 성명을 통해 그레그의 유엔 518행사 참여를 비판하기 전에 팩트 체크부터 했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모르는 사실을 되는 대로 말한 것 아닌가?

6.

또한 그레그는 그의 비판 성명에서 그레그를 명예손님(honored guest)라고 칭한 것을 철회하지 않았다. 주최측 그 누구도 그레그를 명예손님으로 부르지도 않았음에도 말이다. 조지는 처음에는 그레그가 돈을 받았기 때문에 명예손님이라고 주장하다가, 그레그가 어떠한 댓가 없이 유엔행사에 참여한 것을 알려주자, 유엔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그레그에게 명예로운 일이니, 명예손님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개발했다.

7.

그레그의 비판 성명을 실은 “스리랑카 가디안”이 7월15일까지 수정되지 않았다는 게 나의 기억이다. 그 기사가 따로 정정발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증명할 수 없다고 나는 나의 반박문에서 분명히 말했다. 조지 말처럼, 정정이 6월 26일 전에 이뤄졌다해도 애초 기사가 올라간 13일로부터 열흘 후였다. 다시말해, 518 재단과 깊은 유대를 갖고 있는 스리랑카의 유력지에 거짓 주장이 10일간 정정되지 않았고, 그후 정정 발표도 없었다. 이게 제대로 된 일처리로 보이는가?

8.

얼정한 사실에 거짓을 뒤섞는 것이 바로 가짜뉴스의 근간이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이런 방식이 조지의 화법이었다. 다만 조지에게 묻고 싶다. 내가 무슨 인종차별 발언을 했는지, 그가 백인남자의 특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역차별적 인종주의(reverse racism)가 가능한지를 묻고 싶다.

9.

조지가 그의 주장대로 518 기념 재단이 그레그에게 보고하는 것처러 보이게 만들 의도도 없고, 생각도 없었다면, 왜 7월 23일 반박문에서 다음과 같은 거짓말을 했는지 대답해야 한다. 조지는 518재단의 직원이 “나에게 보낸 이메일이 도널드 그레그에게 함께 참조(CC)로 보내졌다.”라고 주장했다. (A few months later an email sent to me from a member of the May 18 Foundation’s staff was also cc’d to Donald Gregg.). 이메일은 참조(CC)로 보내지지 않았다. 이메일은 재단 직원 유인례가 재단의 국제연대 코디네이터로 승진했다고 발표한 집단 메일이었다. 이에 유인례가 이메일 통해 조지에게 항의하자 조지는 발언 철회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지는 아무 해명없이 7월20일 반박문에서 위의 집단 이메일이 그레그에게도 보내졌고, 따라서 전 CIA요원 그레그를 5.18재단이 “친구”이자 “협력자”로 지칭했다고 비난했다. 그의 어처구니 없는 거짓과 그레그를 “명예손님”으로 우긴 억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패턴이 발견되지 않느가? 1) 사실 하나에 거짓말을 덧부쳐 초점을 흐린다 2) 거짓말이 드러나면 해명이나 사과는 절대 하지 않고, 다른 쟁점을 만들어 논점을 계속 희석시킨다. 보통 페이크 뉴스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10.

이미 말했듯이 조지가 팀의 자료를 무단 사용했다는 공방에 대해 팀의 공식입장이 곧 나올것이고, 그 문제에 대해서 내가 더 이상 발언하지 않겠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었다. 다만, 팀이 제기한 문제의 책, “한국의 민중봉기” (5월의 봄: 2015)의 원저 출판사인 PM출판사의 발행인 램지 칸의 이메일을 조지가 공개한 이상, 그 범위 안에서 내 개인의 의견임을 전제로, 몇마디 덧붙이겠다.

먼저 PM 출판사는 팀의 주장을 옮곧게 살펴보지 않았다. 그냥 일방적으로 조지의 주장을 번복했다. 또한 워낙 소규모출판사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조지의 책에 대해 팩트 체크 등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것 같다.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단언컨데, 편집 과정에서 걸려지고 지적될 문제를 팀은 제기하고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로 말미암아 분주한 팀이 입장 표명을 곧 하기를 바란다.

사실 출판사가 영세해도 편집일을 제대로 해야한다. “광주일지”를 발행한 UCLA Monograph도 금전적으로야 영세하기 짝이 없었지만 편집에는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편집 기간 8개월 동안,경력30년차의 편집자는 물론, 두 명의 한국학 교수와 한 명의 한국학 대학원생이 팩트체크와 인용 사례 하나하나를 점검했고, 내게 10 차례 정도 추가 설명과 자료를 요청했다.

이를 좇아, 나 또한 “광주일지” 재판을 준비하면서 미국의 저명한 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 Magazine)의 팩트체커(fact checker)와 알 자지라 방송의 전 기자를 동원해 편집과 인용상 모든 문제들을 재점검했다. 이 과정은 이번 재단의 간행물 “주먹밥” 8월호의 내 기고문에서 간단히 설명했다.

설갑수, 나는 누구인가?설갑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영문판 편집 번역자.

나의 먹고사니즘은 조지와 나의 논쟁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퇴한 백인 노교수가 직접 내 개인 정보를 캐는 고약한 짓을 하셨으니, 나로서는 대응할 수 밖에 없다. 참 열없는 노릇이지만, 과정에서 조지의 무지와 악의가 드러났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먼저 조지는 내가 기자(staff writer)로 일한 “내셔널 언더라이터” (National Underwriter Magazine)이 존재하지 않는 잡지라고 주장했다. 긴말 필요없이 다음의 웹사이트를 보기 바란다. https://www.nationalunderwriter.com/magazines

나는 조지가 주장하는 것처럼 재산 상해 보험 산업 정보 사이트에서 일한 것이 아니라, 위의 잡지 “생명보험” 에디션에서 일했다. 내가 퇴사한 후, 내셔널 언더라이터는 두 차례 주인이 바꿨고,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도 시작됐다. 조지의 최근 기고문의 원형이었던 그의 이메일을 받고, 나는 이 점을 즉시 지적했으나, 조지는 이를 무시하고 그냥 글을 실었다.

또한, 내가 일했던 또다른 직장, MSCI는 투자회사인 모갠스탠리와 같은 회사가 아니다. MSCI는 소위 인덱스회사, 즉 금융 기업 데이타 분석 전문회사이며, 모갠스탠리에서 오래 전에 분사됐다. 두 회사의 합의에 의해,MSCI라는 약자는 분사된 회사가, 모갠스탠리는 원회사가 사용하기로 했다. 이 점 또한 조지에게 설명했는데, 그는 또한 무시했다.

조지가 말한 것처럼 모갠스탠리는 헤지펀드가 아닌, 일반 투자회사이다. 헤지펀드와 일반 투자회사를 구별하지 못하니, 사회학 박사학위 소지자 조지의 상식 수준이 의심스럽다. 아니면 나에 대한 악의 때문에 아무말 대잔치라도 하고 있는 것인가?

MSCI ESG는 전세계 상장사들의 환경 (Environmental)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 그리고 지배구조(Governance)를 평가한다.지배구조 분석이 내 전문분야였다. 여하튼 회사에서는 불성실하고, 게으른 존재였으나, 가끔 튀기도 해서 내가 쓴 리포트가 2014년 ESG 보고서 중 가장 많이 읽힌 보고서이기도 했다.

사실, 학부 때 나름 학생운동도 열심히 했고, 한 때 스스로를 혁명적 사회주의자라고 믿었었다. 여전히 나는 내가 좌익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넘어넘어” 영문판씩이나 출간한 사람이 금융정보 기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우울하고 슬픈 일이었다. 그래서 나름 틈틈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찾아 할려고 노력했다. 그러지 않고는 미칠 것 같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한 일 중의 하나가 미국의 평노조원 잡지 레이버 노츠(http://labornotes.org/)에 한국 노동문제에 대해 기고하는 일이었다.

미국이라 안심하고 실명 기고를 했는데 5-6년 전 사단이 났다. 회사 누군가가 내 기고문을 보고, 나의 상사가 아닌, 그 상사의 경쟁자에게 보고를 한 것이다. 경쟁자는나의 글을 적절히 내 상사를 공격하는데 사용했고, 그녀는 회사를 떠났다. 정확히 말해, 나 때문에 그녀가 사퇴한 게 아니라, 나는 그녀가 밀려나야했던 많은 이유 중의 하나였다.

솔직히 비참했다. 나의 정치적 글은 저들에게 위협은 되지 못한 장기판의 졸이였다. 여하튼 나는 힘없어서 살아남은 웃기는 존재였다. 그 후 나는 나의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폐쇄했고,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여하튼, 존재와 의식 간극에서 언제나 울쩍했던 나에게 2011년 월스트릿점령(Occupy Wall Steet)시위는 신나는 일이었다. 특히 주코티 공원을 점거한 시위자들이 매일 집회를 통해모든것을 집단적,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보며, 나는 80년 광주의 도청 앞 집회를 떠올렸다.

당시, 한진 중공업의 노동자 김진숙이 크레인을 점거하고 장기 농성 중이었고, 뜻있는 시민들은희망버스로 호응하고 있었다. 2011년 10월9일 나는 그와 손전화를 연결하여, 주코티 공원월 스트릿점령 집회에서 연설하도록 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37758

http://labornotes.org/blogs/2011/10/south-korea-sit-connects-us-%E2%80%98occupiers%E2%80%99

이렇듯, 이러저러한 계기로 많은 젊은 노조운동가들과 친해졌고, 그들의 소개로 국제노조연맹(ITUC) 그리고 미전국노조 연합 중 하나인 UNITE HERE!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너무 기뻤다. 조지가 이메일을 통해, 내가 이들 조직에서 일하는 것을 확인할 수 없다고 그 누구도 나를 모른다고 말했다. 나는 확인할 있도록 도와줄테니, 변호사 통해 연락해 달라고 대답했다 (이미 말한대로, 나는 더이상 그와 직접 소통을 하지 않으려한다). 그럼에도 그는 또다시 일방적으로 글을 올렸다.

내 재산 관계에 대한 조지의 주장에 몇 마디 하겠다. 개인정보를 뒤져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더구나 개인 정보가 잘못된 거라면, 공개헤서는 안된다. 그 개인정보가 이 논쟁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내게 먼저 해명과 설명을 구하는 것이 맞다. 조지는 스스로가 초라해 보이지 않는가?

그레그는 정말 누구인가?

미국 대학은 학생들이 위키피디아를 과제물에 인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오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퇴한 미국 대학교수 조지는 그레그에 대해, 위키피디아를 인용한다. 그레그가 이란 콘트라 스캔들의 정점이었던 펠리스 로드리게스의 친구였으며, 그가 부대통령 부시를 만날 수 있게 해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외에 더 밝혀진 것은 없다. 자세한 설명은 위키피디아가 아닌 이 웹사이트를 참조했으면 좋겠다.

https://www.brown.edu/Research/Understanding_the_Iran_Contra_Affair/profile-gregg.php

조지는 그레그가 피닉스 프로그램을 지휘했다는 주장을 위키피디어가 아닌 다른 근거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레그의 사과

5.18 에 대한 그레그의사과는 분명 미흡했고, 미국의 공식 사과가 필요 없다는 그의 입장은 잘 못된 것이었다. 그러나 5월 26일 유엔 학술회의는 사과 받는 자리가 아니었다. 사과의 유무가 참가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게 아니었다. 모든 학술회의가 그렇듯 최소 동의 속에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는 장소였다.

차라리 그레그의 특징은 그가 필요하다면 사과한다는 것이다. 그는 남북분단의 미국에 책임에 대해 미안하다 했고,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77753.html) 심지어 박근혜를 좋게 평가한 것도 사과했다(http://www.ytn.co.kr/_ln/0104_201611071510062253_001). 그런데 무슨 소용이 있나? 분단의 책임과 광주진압의 개입의 사과를 한다면, 미국인이 아닌 미국정부가 해야 한다.

엔행사에 연사로 와달라고 부탁하자, 그레그는 처음에는 망설였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나는 내가 많이 좌익이라고 생각하고, 당신은 분명히 우익이다. 남북 화해를 제외하고는 당신과 내가 동의할 수 있는 이슈는 거의 없을 것 같다. 나는 당신이 주한 대사로 부임할 때, 반대시위했었다. 그러나 당신이 우익이기 때문에 와야한다.”

그리고 지만원류의 북한개입설을 그대로 흡입한 전두환의 저서전에 대해 언급했다. 그의 표정이 전두환에 대한 불쾌감으로 어그려졌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전두환 웃기는 놈 아니냐? 부디 와서 우익으로서 전두환 주장이 거짓이라고 말해 주기 바란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레그에게 “연민”도 “민망함”도 없다. 다만 당시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책임진 사회자로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게 민망했을 따름이다. 솔직히 조지가 한국낱말 “민망함”의 함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그가 그의 글에서 “민망힘”을 “연민”을 동의어로 취급하니 의문이 난다.

조지는 유엔행사가 광주시민 모르게 계획되었고, 첫 언론 보도가 5월27일에 나오기까지 시민 대부분이 연사가 누구인지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유엔행사는 5.18재단이 매년 초에 발표하는 사업계획서에 나와있다. 그러니 그의 주장은 거짓이고. 황교안 권한대행 정부의 비협조로 유엔 장소를 구하는데 시간이 많이 지체됐으나, 행사 한 달여 전인 4월20일부터는 일정과 연사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기 시작했으니, 그 또한 조지의 주장이 거짓이다. (https://youtu.be/fTnBfakPsrc)

조지의 CIA 정보공개요청

조지는 “내가 학술적 연구를 위해 CIA 문서를 인용하는 것은 5.18기념재단이 CIA를 이용해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라고 주장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재단이 CIA 기밀해제된 문서 중 “5.18 북한개입설을 반박할수 있는 자료를 찾아 분석하고, 커밍스와 그레그의 의견을 듣는게 CIA를 이용하는 일인가? . CIA가 광주의 한 비영리 단체에 이용 당할만한 조직인가?

조지는, 2003년, 부산의 한 활동가로부터 부탁을 받고 10.26 박정희 암살관련 CIA 정보공개 요청(FOIA) 했다고 말했다. 그 자체는 아름다운 일이긴 하나, 조지의 FOIA 요청 문건을(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그가 이런 일을 하기에는 실력도 성의도 모자란다는 것이다. 대강 보아도 사실적 오류가 꽤 많지만, 박정희에 관련 두 가지만 짚어보자. http://www.pmpress.org/content/article.php/20130423151755456)

-. 조지는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라고 주장한다 (Park Chung-hee (later to become president of South Korea from 1961 to 1979) was one such former Japanese officer) 그 소스를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II”에서 인용한다. 인용도 오용했고, 사실관계도 틀렸다.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 급도 못되는 괴뢰국 만주국 장교였다. 이 구별은 매우 중요하다. 5.16쿠테타의 주모자들은 박정희의 만주군 인맥이었지, 일본군 인맥이 아니기 때문이다.

-. 조지는 “박정희가 일본군 정보장교였고, 김일성을 생포하거나 죽이려고 했었다” (Park had been an intelligence officer in the Japanese Army and sought to capture or kill Kim Il-Sung)고 말한다. 이 정도면 거의 소설급이다. 박정희는 정보장교를 할 정도로 뛰어난 주구는 아니었다. 그는 작전장교였다. 또한 이 방면의 탁월한 연구자들인 정운현과 김효순이 그들의 저서에서 밝혔듯이 만군 장교 박정희와 항일 게릴라 리더 김일성이 전투건 추격전이든 조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박정희와 김일성의 활동 지역도 시기도 달랐기 때문이다.

이미 잘 알려진 정보 조차 모르거나 왜곡한 채, 기밀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조지를 보고 CIA 한국 사료담당과 변호사들이 그를 비웃지 않았을까?

그러나 조지의 정보공개요구서의 결정적 결함은 요구한 정보공개가 실현되면 공공의 이익에 어떻게 복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모든 정보공개 요구서의 기본이다. 한 마디로 사실관계는 틀리고 서식도 못맞춘 것이다. 다만, 조지는 그의 연구와 글이 공공의 이익에 계속 복무할 것라고만 이야기했다 (Dr. Katsiaficas' research and writing has, and will continue to, serve the public interest by addressing the history of South Korea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

글을 맺으며

마지막으로 조지는 내가 복수를 다짐하고, 그를 정부에 밀고하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통역을 오역인지, 악의적인 왜곡인지는 나는 잘 모르겠으나, 다만 나는 조지가 그가 행한 거짓과 기만에 대해 책임져야하고 그렇게 만들겠노라고 말했다.

또한 조지의 허위 주장에 대한 나의 반론이 모두 사실에 의거하고 증거가 있으니, “언론기관이나, 책임있는 단체나 정부의 요구가 있다면, 이 모든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조지의 논리대로라면, 광주항쟁의 중요한 자산인 “넘어넘어” 영문판은 은퇴한 89세 요원을 통해 CIA과 연결된 자가 CIA를 이용하는 광주단체를 통해 출간한 셈이다.

따라서 내 요구를 다시 강조하려 한다.

조지의 사과와 해명으로 사태가 진정되기에는 조지는 광주의 전통을 국내외적으로 알리고 유지하려는 많은 사람과 단체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조지는 사과가 아닌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나는 조지에게 수여된 명예광주시민증(2015)과 후광학술상(2016)은 치탈되거나 조지 스스로가 자진 반납해야 한다. 특히, 조지가 팀의 평생 노력을 무단 도용했다면, 이론의 여지없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

설갑수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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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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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ladin.co.kr/author/wauthor_overview.aspx?AuthorSearch=@64132

조지 카치아피카스(George Katsiaficas)

미국의 좌파 정치학자. 대학 시절 68혁명을 경험하며 운동에 참여했고, 당시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을 주도적으로 조직하여 FBI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오랫동안 평화와 정의를 위해 투쟁해온 활동가이자 전남대학교 5·18연구소의 국제 코디네이터이며, 보스턴의 웬트워스 공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신좌파의 상상력: 전 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년》 《정치의 전복》 등이 있다.

카치아피카스는 1968년 5월 프랑스와 1970년 5월 미국 등 전 지구적 운동에서, 혁명에 대한 열망과 투쟁이 매우 빠르게 퍼져나가는 모습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수백만 명의 보통 사람들이 역사의 무대에 갑자기 등장해서 통일된 방식으로 행동했고, 자신들이 사회의 방향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민중들이 대대적으로 들고일어날 때, 정부의 권위, 노동 분업 등 기성사회의 틀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질 수 있다. 민중은 운동의 주체로서 전혀 새로운 현실과 생활방식을 상상하며, 수십만 또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변화된 규범, 가치, 믿음에 따라 살아가기도 한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에로스 효과’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 에로스 효과가 1980년 5·18광주민중봉기의 ‘절대공동체’, 1980년에서 1992년까지 아시아 여러 나라를 뜨겁게 달군 민중봉기들, 2011년 아랍의 봄과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사랑’의 물결에 완전히 매료된 그는 10년간의 방대한 연구와 취재를 바탕으로 《한국의 민중봉기》 《아시아의 민중봉기》를 저술했다.
출간도서모두보기

<신좌파의 상상력 : 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 - 1999년 5월  더보기

거세게 일어난 반란 운동들은 서로를 자극해 왔다. 하지만, 상이한 운동들간의 동시성은 주목할 만한 문제를 가져올 수도 있다. 자신들의 명칭, 의상, 구호 등을 과거로부터 빌려온 나머지, 자신들만의 것을 만들지 못했던 운동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살펴봐라! 명성을 얻을 만한 혁명적 이론은 오직 꾸준히 변화할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 이론은 혁명적 실천에 필수불가결하긴 하지만, 그 기원과 발전의 구체적 조건들에 비판적 거리를 두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수입되어 적용될 경우에는, 운동 자체에 지도력을 부여해 주는 대중적 운동의 능력을 저해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이론적 틀을 교조적으로 적용한다면 이전에 활기차고 생생한 행동가들을 살아 있는 시체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자신들의 동료인 광신적 구성원들과만 관계를 맺는 좀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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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 김양래 5.18재단 상임이사, 조지 교수 '반박'
광주in 승인 2017.07.14 15:33 댓글 1기사공유하기

김 상임이사,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 주장 해명
아래 글은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가 지난 11일 5.18재단을 상대로 주장한 내용에 대해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가 반박한 글 전문입니다. /편집자 주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김양래입니다. 오늘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에 관한 질문을 복수의 기자님들이 물어와서 사실관계만 말씀드립니다. 저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6월12일, 조지 교수가 본인의 주장을 누구에게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의사표명을 했는지부터 알지 못합니다.


1. 언젠가(6월7일) 퇴근무렵, 독일에서 활동하는 화가 정영창 작가가 조지 교수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고 참석할 수 있냐고 물어서 "아직 사무실 일이 끝나지 않았다. 오늘은 참석하기 어렵다"고 통화했던 사실이 전부입니다. 이때는 518재단의 유엔행사에 대해서 조지 교수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때입니다.




5.18기념재단.
2. 제가 2017년 조지 교수로부터 받은 이메일은 4건입니다.


-조지 교수는 6월 13일 15:17분에 518재단의 유엔행사와 그레그 대사 초청에 관한 성명서


-6월 23일 14:35분에는 2002년에 열린 시민법정에 관한 자료를 요청
-7월7일 01:04분에 2002년 시민법정 관련된 내용을 확인하는 메일
-7월10일 20:12분에 저를 공격하는 글


제가 2017년 조지 교수에게 보낸 글은 1건으로


-7월6일 15:43분에 보낸 국영문 해명요구서, 2002 시민법정 자료집 파일입니다. 영문으로 된 해명요구서는 조지 교수의 지인 4명에게 혹시 단어의 사용이 적절치 않으면 의견을 달라고 했던 것이 전부입니다.


조지 교수가 6월17일에 저에게 보냈다고 하는 사과메일을 저는 받은 적이 없습니다. 재단 직원들에게 확인한 결과, 6월 17일 뿐아니라 아무도 사과메일을 받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 사과메일을 보냈는지 재단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5월단체가 공동으로 작성한 해명요구에 대해서는 갑자기 김양래에 대한 비난으로 대응해서 황당한 일입니다.


이 일은 6월22일, 재단 기획위원회에서 위원이 공식으로 "일부 시민사회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말들이 sns 상에서 돌고있다" 문제가 제기하었고, 저는 조지 교수가 해명을 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직 확인할 수 없다고 보고하였습니다. 기획위원회가 공식대응을 요구해서 6월26일, 이사회에 보고되고 5월3단체가 유엔행사는 공동으로 결정하고 참여한 일이라 공식 해명요구서를 낸 것입니다.


이 성명은 조지 교수의 기고문으로 6월15일자 스리랑카 가디언지에 실려 해명요구는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조지 교수가 공개적으로 자신이 기고한 언론에 기사수정을 요청했다는 것은 확인 할 수 없습니다.


3. 조지 교수는 2016년 광주인권상에 대해서도 재단을 공격한 일이 있습니다.


조지 교수는 2016년 광주인권상 수상자인 베트남 출신 누엔 단 쿠에 박사가 고문당하고, 감옥에 갇힌 적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광주인권상 시상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재단은 각 기관, 단체에서 추천된 심사위원들이 공정하게 심사하고 토론해서 만장일치로 심사를 마쳤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2016광주인권상 심사위원장이 가톨릭 주교라는 것과 가톨릭 교회와 이해관계로 결정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건과 관련해서 조지 교수와 친근한 분들에게 메일을 전달해서 의견을 들은바, 가까운 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하기로 하고 조지 교수의 가까운 지인들이 참여한 2017년 광주인권상 개선방향이라는 간담회를 통해 해소하였습니다.


재단은 이후 누엔 단 쿠에 박사와 추천자로부터 투옥과 고문에 대해서 직접 설명을 들었습니다. 조지 교수의 주장은 잘못된 정보를 인용한 것입니다.


4. 지난해 9월 태국 타마삿 대학교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 조지 교수를 초청한 것은 사실입니다. 제 기억에 의하면 조지 교수는 그 즈음 일정이 있어 바쁘고 그리스 방문계획이 있다고 항공권을 미국에서 방콕경유 그리스로 할 수 있냐고 물었고, 재단은 예산문제가 있었고, 조지 교수도 시간조정이 어렵다고 해서 다른 분을 교섭하고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광주인권상 문제를 제기하면서 거부한다고 통보하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5. 도널드 그레그 대사에게 재단에서 조지 교수에서 보낸 메일을 전달했다는 주장은 악의적인 선전으로 정말 황당합니다. 너무 무책임한 말을 함부로 하십니다. 재단에서 도날드 그레그 대사에게 메일을 보낸 적은 있습니다. 행사 초청과 감사편지를 보낸 것이 전부입니다. 또한 저를 포함한 5월단체들은 7월5일 기자회견을 한 사실이 없습니다.


보통 연구자들은 자신이 인용한 팩트가 다르게 확인되면 주장을 거둡니다. 그런데 지난해 광주인권상 관련 문제 제기와 이번 유엔 행사에서 조지 교수는 변명과 개인의 이념적인 주장을 되풀이합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입니다.




<스리랑카 가디언 지에 실린 조지 카치아피카스 기고문>


South Korea: Human Rights Violated CIA officer!


 Jun 15, 2017Jun 26, 2017  Sri Lanka Guardian Diplomacy, Feature, StatementsNo comments


Statement on Donald Gregg’s Participation in the 5.18 International Conference in New York


by George Katsiaficas


( June 15, 2016. Seoul, Sri Lanka Guardian) As reported in the Hankyoreh article entitled, “The spirit of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comes to UN headquarters in New York,” on May 26, 2017, former CIA Seoul station chief and US ambassador to Korea Donald Gregg was the honored guest of the May 18 Memorial Foundation at a conference in New York at the United Nations.


Fifteen years earlier, on May 18, 2002, a Gwangju Citizens’ Tribunal involving hundreds of people found a few US officials (including former President Jimmy Carter) guilty of “crimes against humanity” for their role in the suppression of the 1980 uprising. Gregg has repeatedly asserted, contrary to mountains of evidence, that he has no reason to apologize to Gwangju citizens and that the US did not know what was happening there in 1980. The May 18 Memorial Foundation’s decision to invite Donald Gregg is therefore quite regrettable.


Gregg participated in the May 22, 1980 White House meeting that came to “general agreement that the first priority was the restoration of order in Gwangju by the Korean authorities” (quoted from US government documents by then-US Ambassador William Gleysteen)—a clear signal to Chun Doo-hwan for him to suppress the uprising. Nine days before May 18, 1980, in a meeting in the very same safe house where Park Chung-hee had been assassinated, Gleysteen had instructed Chun the US would not oppose the use of the army against demonstrators, another indication of US knowledge and intent.


So great was public disapproval of Gregg when he was U.S. ambassador to South Korea from 1989 to 1993, he never made a publicized address at any Korean university because of expected protests (according to his own admission). In an article in 2005, he described the results of a 2003 South Korean poll as “shocking” because of the anti-American feelings expressed by so many people.


For the May 18 Memorial Foundation simply to ignore this history and invite Donald Gregg as an honored guest ignores years of Gwangju citizens’ heartfelt grievances—and their righteous condemnation of Donald Gregg and other American officials as the hand behinds behind Chun.


Recent attacks on 518 include false claims that the uprising involved North Korea. It is important to set the record straight, but in doing so, it at least as significant to clarify decades of US government and CIA lies about US involvement. Rather than doing so, the May 18 Foundation routinely uses CIA sources of information to “prove” no North Korean involvement, thereby implicitly endorsing the CIA as a reliable source of information and disrespecting the spirit of Gwangju.


Only If Gregg would apologize sincerely and truthfully reveal his and the US role in encouraging Chun to use force against Gwangju citizens should such an invitation have been m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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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 5.18재단 반박
 광주in 승인 2017.07.11

그레그 전 미대사 유엔 5.18학술대회 참석 놓고 쟁점

아래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의 반박문 전문은 지난달 29일 5·18기념재단, 5·18민주유공자 3단체(민주유공자유족회, 민주화운동부상자회, 구속부상자회)가 지난 5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5.18국제학술대회에 5.18기념재단이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를 초청한 이유와 배경을 설명한 후 조지 교수를 공개 비판한 것에 대한 입장이다. 아래 전문은 11일 새벽 조지 교수가 직접  이메일로 보내온 내용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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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광주의 친구 여러분,

여러 해 동안 광주의 진보적 공동체와 함께 활동한 것은 나에게 특권이자 영광이었다. 구 전남도청이 파괴될 위기에 처했던 2008년 투쟁의 경우처럼, 진보세력 내에서 벌어진 지속적 투쟁은 때로는 가혹했다. 1980년 5.18 당시에도 굴복할 것인가? 투쟁할 것인가? 입장이 대립했다. 두 가지 입장은 여전히 남아있다.

6월 12일 나는 사랑과 연대의 마음으로 비판적 이슈를 제기했다. 나는 존경받는 단체들의 요청에 대해 내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5․18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지난 5월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UN본부에서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광주 다이어리: 민주주의와 자유의 집단 기억’이란 주제로 열리고 있다. ⓒ광주시청 제공
내 성명은 5.18기념재단이 UN에 열린 국제학술회의에 도널드 그레그를 초청한 사실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5일 뒤인 6월 17일 나는 그레그가 2002년 광주시민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던 미국 고위관리 중 한 명이라고 언급한 부분은 실수로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6월 17일 나는 김양래와 5.18기념재단 관련자들에게 공식사과문을 보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은 나의 수정을 즉시 인정하는 답변을 보냈다. (사과문은 이 성명 끝에 첨부돼 있다.)

1. 왜 공개사과문이 5일 후 6월 22일 내 성명에 대한 논의를 하는 회의에서 사람들에게 보고되지 않았는가?

2. 나의 수정과 사과를 밝힌 후 3주가 지난 7월 5일, 김양래 씨는 이미 내가 사과한 그 사실을 알면서도 광주에서 나의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3. 도대체 이게 무슨 업무방식인가?

4. 나는 김양래 씨에 대해 유감을 느낀다. 왜냐 하면 그는 5.18단체들에게 모든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필요를 위해 중요한 정보를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5. 김양래 씨의 성명에 서명한 존경받는 시민단체들에게 김양래씨가 5일 전에 내가 사과했다는 사실에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이유를 조사해줄 것을 요청한다.

6. 지난달 6월 7일(내가 한국을 떠나기 2일 전) 오후 7시경 내 친구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김양래씨에게 내가 전화를 했다. 김양래 씨는 전화를 받았으나, 나와 통화를 거부했다. 그리고 나와 통화할 것을 요청 받았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그는 공개성명을 발표할 때까지 2002년 시민법정에 관한 문서를 요청한 내 이 메일에 응답하지도 않았다. 광주의 한 친구가 나에게 전화했을 때 비로소 나는 김영래 씨가 나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도널드 그레그 초청에 대한 나의 비판

6월 12일 나는 도널드 그레그가 5.18재단이 주최한 2017년 뉴욕 토론회에 초청됐다는 사실에 슬픔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그레그의 2002년 유죄판결 관련 여부와 관련 없이, 나는 그레그를 초청한 결정은 적절치 못했다고 확신한다.

그레그는 미국의 역할에 대해 진실하지 않았고, 그의 손에 묻은 광주의 피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그레그는 악명높은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모임의 참석자였고, 그 모임은 남한 정부에게 5.18 당시 무력진압을 허락했다.


5.18기념재단.
김양래는 씨는 그레그가 뉴욕에서 자신의 “침묵”과 “한국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레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학살당한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가? 부상당한 사람들이 느낀 고통을? 잔혹하게 짓밟힌 도시 전체가 경험한 트라우마를?

‘진실규명’과 ‘사과’는 광주의 정의를 세우는 데 근본적으로 중심적이었다(지금도 여전히 변함없다). 1980년 시민들은 진실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주장했다. 유죄판결을 받은 전두환과 노태우는 미국 ‘열강정치’라는 장기판의 졸이었다.

오늘날까지 도널드 그레그는 미국이 취한 행동의 진실을 밝히지도 않았고 유혈사태에 대한 미국의 책임에 대해 사과하지도 않았다. 미국은 유혈사태에 대해 책임이 없고 따라서 사과할 이유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록 재단이 그레그가 사과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의 사과는 진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고, 따라서 불성실한 사과이며, “사과”라고 부를 가치조차 없다. 과거에 그레그는 미국이 사과할 것은 없다고 공개적으로 되풀이해서 발언했다. 그가 UN토론회에 나타났다고 해서 그런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김양래 씨는 그레그가 귀빈이라고 내가 말했다고 했다. 나의 주장은 그레그를 UN에서 연설하도록 초청한 것은 명예로운 일이지, 그를 감옥에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는 엄격해야 하고, 5.18과 광주의 역사는 더욱 더 엄격해야 한다. 여기에 약간의 문화적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 자신이 잔혹행위를 가한 도시로부터 초청받아 UN에서 연설하는 것은 커다란 명예로 간주한다.

김양래 씨는 1980년에 북한군이 개입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CIA 문서를 사용한 것을 옹호한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다. 내가 CIA 문서 사용을 꺼렸던 것은 거짓말, 외국 지도자 암살, 타겟으로 정한 개인들의 신뢰를 무너뜨리기 위한 수십 건의 거짓정보 캠페인, 의회에 허위 보고서 제출 등으로 점철된 CIA의 과거사 때문이다.

CIA의 가증스런 범죄는 윌리엄 블룸(William Blum)의 <희망 죽이기>(Killing Hope)나 전 CIA 요원 필립 애지(Philip Agee)의 <회사 내부에서>(nside the Company)같은 책에 철저하게 잘 기록돼 있다. 일단 우리가 CIA의 주장을 진실된 것으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미래에 일어날 CIA 작전에 우리 자신을 노출시키는 꼴이 된다.

작년에도 김양래 씨의 진실되지 못한 행동이 분명했다. 나는 재단이 누옌 단 쿠에(Nguyen Dan Que)를 광주인권상 공동수상자로 지명한 것이 유감스럽다는 의견을 그에게 개인적으로 피력한 바 있다.

몇 달 간 논의하는 동안, 재단은 누옌이 고문당했고 감옥에 갇혀 있었다는 주장을 검증할 단 하나의 정보도 발견할 수 없었다. 사실, 누옌은 비록 그가 지속적으로 새로운 정부의 타도를 호소하고, 미국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짓을 찬양하고 미국의 귀환을 희망한다고 표현했음에도 그는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

미국이 베트남 정부를 전복하려고 시도하는 시기에 응우옌은 혁명을 호소했다. 2016년 광주인권상을 수상한 지 몇 주도 안되어, 자유 아시아 라디오(Radio Free Asia: CIA가 설립한)는 5.18재단의 근거 없는 주장을 방송했다.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
518재단의 직원이 나에게 보낸 이메일이 도널드 그레그에게 함께 참조로 보내졌다. 몇 달간 의견교환을 거쳐 5.18 관계자들의 작은 모임이 꾸려졌고, 우리는 수상자 선정과정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재단이 누옌 단 쿠에에게 부적절한 수상을 한 이후, 나는 2016년 타일랜드 방콕에서 열린 한 국제회의에 기조연사로 참여해 달라는 재단의 초청을 거부했다.

만약 내가 쓴 어떤 것이 광주시민이나 단체들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된다면 깊이 사과 드린다. 나는 역사 속에 5.18민중봉기의 미래에 대한 우려와 사랑으로 비판적 입장에서 글을 썼고, 결코 악의적 공격으로 쓴 것이 아니다. 나는 단체들의 오해에 대해 유감을 느끼며, 나와 만나겠다는 여러분의 제안을 환영한다.

핵심 사실의 누락에서 증명된 것처럼, 김양래 씨가 존경받는 광주단체들과의 모임에서 나의 성명을 진실되지 않게 설명한 것은 유감스런 일이며, 5.18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다. 김양래 씨는 되풀이해서 재단을 개인적 목적으로 이용했고, 광주 시민단체들의 법률소송에 직면하고 있다.

http://m.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1199&daum_check&naver_check

김양래 씨가 5.18재단의 대표성을 갖고 있는 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의 사임을 요구함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그와 아무 관계없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조지 카치아피카스
katsiaficas@gmail.com

 

아래 글은 지난 6월 13일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가 5.18기념재단에 보내온 메일 전문입니다. 

  도널드 주한 미대사의 5.18 국제학술대회 참석 유감

지난 5월 26일자 한겨레신문에 “유엔본부에서 열린 첫 5.18 국제학술대회”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http://www.hani.co.kr/arti/PRINT/796398.html)에 보도된 것처럼, 과거 CIA서울지국장과 한국주재 미국대사를 역임한 도널드 그레그가 뉴욕유엔본부에서 열린 5.18기념재단의 국제학술대회에 초청연사로 참석했다.

15년 전인 2002년 5월 18일 수백명이 참석한 광주시민법정은 그레그와 다른 미국 관료들(전 미국대통령 지미 카터를 포함한)이 1980년 광주항쟁 진압에서 했던 역할에 대해 “인류의 반하는 범죄” 혐의로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레그는 수많은 증거와는 반대로 자신은 광주시민들에게 사과할 이유가 없으며 미국은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되풀이해서 주장했다. 따라서 도널드 그레그를 초청한 5.18기념재단의 결정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그레그는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모임에 참석했으며, 이 모임은 “최우선적 과제는 남한 당국이 광주에서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란 점에 전반적 합의”에 도달했다(당시 미국대사 윌리엄 글라이스틴이 미국 정부에 보낸 문서에서 인용).

이것은 전두환에게 광주봉기를 진압하라는 명확한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1980년 5.18항쟁 9일 전에 박정희가 암살당한 바로 그 안가에서 가진 모임에서 글라이스틴은 전두환에게 미국은 시위대에 무력을 사용하는 데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이는 상황에 대한 미국측의 인지와 의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이다.

1989년부터 1993년까지 그레그가 미국대사로 재임할 당시 그레그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너무나 커서, 그는 예상되는 시위 때문에 남한의 어떤 대학에서도 공개연설을 하지 않았다(그레그 자신이 인정한 바이다). 2005년 논문에서 그레그는 2003년 여론조사 결과를 설명하면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반미감정을 표현해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5.18기념재단이 이런 역사를 무시하고 도널드 그레그를 귀빈으로 초청연사로 토론회에 참석케 한 것은 광주시민들의 진심어린 투쟁의 세월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또 전두환을 비호한 도널드 그레그와 다른 미국 관료들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정당한 비판을 무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최근 5.18에 대한 공격에는 광주항쟁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허위 주장도 있다. 역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국의 개입에 대한 미국과 CIA의 거짓말을 분명히 밝히는 것도 최소한 같은 정도로 중요하다.

5.18재단은 진실을 밝힌다면서, 북한의 개입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CIA의 정보를 근거로 사용하고 있으며, 따라서 암묵적으로 CIA를 신뢰할 만한 정보의 출처로 인정하여 광주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

그레그가 진정으로 사과하고 전두환이 광주민중에 대해 폭력을 사용하도록 부추긴 자신과 미국의 역할을 진심으로 밝히는 경우에만 그를 초청했어야 했다.

조지 카치아피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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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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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 설갑수 주장에 반론
 광주in 승인 2017.08.04

어떻게 그가 미래 5.18의 역사를 훼손시킬 수 있는가?

5.18 기념재단과 존경하는 세 단체에 대한 나의 응답 내용을 홈페이지에 게재하지 않아서, 나는 광주 5.18 관계자들에게 응답을 보냈다. 한편, 설갑수는 인터넷에 첫 문장부터 마지막 구절까지 노골적인 거짓말, 허위 주장을 진술했다. 설갑수는 어떤 인간인가?  그는 어떻게 5.18재단과 광주를 대변해서 중요한 결정을 하는 권한을 갖게 되었는가?

설갑수의 수많은 거짓말들에 대한 나의 진실규명

1. 설갑수 씨는 자신이 <광주일지>의 번역자로 소개한다. 이는 거짓이다. 그는 공동 번역자일 뿐이다. 그의 영어능력은 번역자로 주장할 만큼 능숙하지 못함을 나는 밝힌다.그가 보낸 26통의 이메일 영어표현에서 확인했다.

2. 설갑수는 그가 돈을 받지 않고 <광주일지>를 번역했다고 주장한다. 아래 기사를 보라. 
http://m.gwangj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93269  
http://v.media.daum.net/v/20161124173938830  
설갑수는 거짓말을 했다. 설갑수는  겨우 92쪽 영어번역을 하고 4,000만원 혹은 4,800만원을 받았다(정확한 액수를 밝히기 바란다).  이제 적은 돈인가? 설갑수는 “ 아무댓가없이” 번역하겠다고 인터뷰하고, 그렇게 많은 돈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부끄럽지도 않은가? 재단의 기금은 5.18 희생자들을 위한 것이다.

3. 설갑수는 내가 그는 CIA를 위해 일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그가 30년 동안 CIA요원이었던 도널드 그레그와 일한다” 고 말했다. 그는 <광주인>에 그레그와 협력한 세부적 내용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즉, 그레그를 UN 회의에 초청, 김양래와 함께 그래그의 집을 방문, 그레그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싣도록 도움을 주었다.

4. 설갑수는 그레그가 1970년까지 CIA에서 일했다고 했다. 이 또한 거짓말이다. 그레그는 1982년 5.18 민중항쟁 시기까지 CIA요원이었다. 설갑수는 그레그가 1980년 광주 유혈사태와 별로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썼다.

5. 설갑수는 내가 2002년 시민법정 기획에 참여했다고 말한다. 또한 2002년에 기소된 미국관리들을 내가 선발했다고 주장하면서, 내가 왜 기억하지 못하는지 묻는다. 하지만 진실은 내가 2002년 시민법정 준비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지 나중에 초청을 받아서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연설을 했다. 

또한  미국관리들을 선정하는데 나는 참여하지 못했다. 재판은 통역 없이 오로지 한국어로 진행됐다. 5.18기념재단 홈페이지에 재판결과에 관한 영어와 한국어 결정문이 있다. 두 문서에서 보여주는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의 숫자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6. 설갑수는 2002년 그레그의 유죄판결에 관해 수정과 사과문을 쓰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실은 6월 17일에 내가 “도널드 그레그에 관한 실수에 대한 사과” 제목으로 한국어와 영어 성명을 썼고, 설갑수, 김양래 외 10여명의 사람들에게 보냈다. 이 사과문은 이미 <광주인>에 게재돼 있다. http://m.gwangj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95945

7. 설갑수는 <스리랑카 가디언>이 7월 15일까지 그레그에 관한 언급을 수정하지 않았다고 썼다. 이는 또 다른 거짓이다. <스리랑카 가디언>은 6월 26일 이전에 수정했다. 편집자가 직업을 잃고 업무중단으로 내 수정문을 받은 후 게재하는데 며칠 더 걸렸던 것이다. 이 또한 이메일 내용으로 증명할 수 있다.

8. 설갑수는 내가 “가짜 뉴스” 확산방식으로 따른다고 했다. 그는 나를 공격하기 위해 이런 개념을 쓰지만,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사람은 잘못을 즉각 수정하지 않는다. 설갑수는 두 번이나 나의 출판사에게 메일을 썼고, 내가 모르게 수 많은 언론사에게 이메일과 소문으로 나에 관한 거짓소문을 퍼뜨렸다. 

나에게는 43일 동안 26차례 공격적이고 수준 낮은 표현의 이메일을 보냈고, 인종차별적 저급한 표현과 나의 피부색을 4차례나 부정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이메일에서 여러 차례 나에게 복수하겠다고 선언했고, 8번의 메일에서 거짓말쟁이라고 나를 모욕했다. 필요하면, 그의 이메일을 모두 공개할 수 있다.

9. 설갑수는 내가 그의 메일이 5.18기념재단이 도널드 그레그에게 보고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를 원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결코 5.18기념재단이 도널드 그레그에게 보고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설갑수의 이런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10. 설갑수는 팀 셔록이 자기가 처음으로 획득한 미국정부의 문서를 내가 사용했다고 나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설갑수는 팀 셔록의 문제제기가 나의 출판사에 의해 결정적으로 거부당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셔록의 문제제기가 근거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진 후에, 두 번이나 내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으니 잘 알고 있다는 증거다.

설갑수는 누구인가?

설갑수는 지속적으로 진실(facts) 왜곡할 뿐만 아니라, <광주인>에 의도적으로 자신의 소속을 모호하게 밝혔다. 자신을 “MSCI ESG 분석가”라고 했다. MSCI는 대표적 헤지펀드(소수 투자자들을 비공개모집 후 위험성 높은 금융상품을 만들어 절대 수익을 남기는 펀드) 기업인 모건스탠리 투자회사이다. 이 회사는 글로벌 금융자본의 눈과 귀 역할을 하며, 그들의 슬로건은 “자본이 변화를 창조한다”이다.

설갑수는 존재하지도 않는 “National Underwriter Magazine”의 기자였다고 소개한다. 설갑수의 글은 National Underwriter Company의 자회사인 “Property Casualty 360”에 실렸다. 이 잡지는 보험업계 중개인을 위해 P&C 보험 소식, 트렌드, 의견, 자료, 판매 요령을 제공한다. 설갑수는 이 잡지에 16년 전인 2001년 6월에 마지막 글을 실었다. 설갑수는 현재 자신이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의 컨설턴트이자 미국 Unite Here! 노조의 분석가라고 주장한다. 내가 직접 확인 한 바, 두 군데 모두 설갑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설갑수에 대한 공식 자료에 의하면, 그는 미국에서 2003년 법적 파산선고를 받고 난 후, 2010년  415,000달러 현금으로 주택을 구입했다( 현재 시세로 하면 4억6,500만원).  파산을 신청한 후 그는 어떻게 돈을 숨겼을까? 매우 궁금하다.

이제 정치적 관점에서 보자. 2017년 5월 27일 <한겨레>에 기사가 실릴 때까지, UN에서 5.18 관련 토론회가 열릴 것임을 아는 광주 시민은 거의 없었다. 특히 도널드 그레그(전두환에게 광주봉기를 진압하라고 명령을 내린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모임의 핵심 참석자)가 초청연사로 참석하는 사실에 대해서 더욱 몰랐다. 

그런데 설갑수는 <광주인>에 그가 여러 달 동안 이 회의를 위해 일했고 도널드 그레그의 집을 방문한 다음 그를 초청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행사를 5.18 재단 관련 단체와 시민들이 모른 채 설갑수가 진행할 수 있단 말인가? 

도널드 그레그는 누구인가?

도널드 그레그는 광주, 니카라과, 베트남에서 수 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관련된 CIA 요원이었다. 그는 31년 동안 CIA에서 일했고, 그 이후에 조지 부시의 국가안보 고문(1982-89년)으로, 그리고 그 이후에는 주한 미국대사(1989-1993년)로 근무했다. 광주시민들의 피를 손에 묻힌 채 3년도 안되어, 이란-콘트라 스캔들, 즉 미국 정부가 이란과 살인적 니카라과 반군(“콘트라”)에 불법적으로 무기를 공급한 불법사건에 관여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Donald_Gregg

1980년 콘트라 반군이 미국인 카톨릭 수녀 3명과 평신도 활동가 1명을 살해하자, 미국 의회는 구체적으로 콘트라반군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을 금지했다. 1983년 도널드 그레그가 백악관 에 메세지를 보냄으로써 콘트라 반군에 대한 미국정부의 불법, 비밀 군사지원 작전이 시작됐다. 그 당시 이 작전을 위해 그레그는 펠릭스 로드리게스와 자주 만났다. 로드리게스는 체 게바라 살해에 직접 가담한 전직 CIA 요원이다. 체 게바라가 살아있던 마지막 사진에 그를 체포한 로드리게스가 함께 있다. 체 게바라는 부상당한 포로로써 결국 살해당했다.


1967년 체 게바라의 암살 직전 게바라와 함께 있는 펠릭스 로드리게스.
그레그는 베트남 전쟁 때 로드리게스의 상관으로서, 그들은 악명높은 불사조 작전(26,000명 이상의 베트남 민간인 살해 사건)에 작전을 지휘했다. 1983년 그레그는 로드리게스를 당시 부통령인 조지 부시에게 소개했다.

설갑수는 그레그가 한국에 대해 올바른 역사적 관점을 가지고, 북한과 미국의 정책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는 그레그가 한국의 정책을 안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레그는 5.18 당시 미국의 책임에 대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레그는 전두환에게 광주에서 “질서를 회복하라”고 명령을 내린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회의에서 자신의 역할을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레그는 미국이 5.18에 대한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http://www.kjmbc.co.kr/board/index.cfm?bbs_name=todaynews&w=view&wr_id=218248

설갑수는 그레그의 역할을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거짓이다. 그레그가 자신의 역할을 알고 있다! 그레그의 손에는 추천명의 베트남인, 한국인, 니카라과인의 피가 묻어 있다. 그레그는 단지 5.18민중봉기에만 연관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광주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다. 광주가 민주주의와 평화가 아닌, 광주시민을 학살한 동조자와 협력했다는 대외적 평판을 받는 것을 매우 우려한다. 설갑수가 날 공격하는 이유는 내가 광주5.18재단과 도날드 그래그 관련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레그에 대한 설갑수의 동조


5.18민주화운동 37주년 국제학술세미나가 '광주일지: 민주주의와 자유의 집단 기억” (Gwangju Diary: A Collective Memory of Democracy and Freedom)'라는 주제로 지난 5월26일 유엔본부(Conference Room 11)에서 5.19기념재단 주최로 열리고 있다. 도도널드 그레그(Donald P. Gregg) 전 주한 미대사(왼쪽에서 두 번째)와 대표적 진보적 한국학 학자 브루스 커밍스 (Bruce Cumings) 교수(맨 왼쪽)가 발제자로서 참여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누리집 갈무리


설갑수는 도널드 그레그가 뉴욕 회의에서 불편함을 느껴 자기가 민망했다고 표현하면서, 광주시민에 대한 연민은 단 한마디도 표현하지 않았다. 광주시민의 씻을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레그가 잠시 불편한 것이 그리도 민망한가? 비록 그레그가 89세라로 해도, 그는 여전히 냉혹한 CIA 충성파이며, 불사조작전, 광주의 유혈사태, 콘트라반군의 살인만행, 그가 참가한 모든 미국의 작전에 대해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가?

광주시민들의 동의도 없이, 설갑수가 그레그를 5.18 UN 학술대회에 연결시킴으로써 5.18의 명예를 영구적으로 훼손시켰다. 그레그를 5.18의 “친구이자 파트너”로 만든 설갑수와 같은 사람들이 5.18재단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랄 뿐이다.

설갑수는 마지막 부분에서 필요시 정부에게 나를 밀고하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그레그에 대한 연민과 48년 동안이나 전쟁 반대 활동가이자 5.18을 사랑하고 전쟁에 비판적인 학자인 나에 대한 이러한 행동은 설갑수씨가 누구를 적과 동지로 생각하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설갑수가 시도한 최악의 거짓은 나를 안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그는 나에 대해서 전혀 모르면서 마치 잘 아는 척 한다. 나는 그를 만난 기억이 없다. 설갑수는 도널드 그레그가 누구인지 연구해야 한다. 어떠한 자격이나 적절한 연구도 없이 설갑수는 광주시민의 동의도 없으면서 마치 5.18운동을 지도하는 지휘관처럼 행동한다. 

그는 게임처럼 “좌익”과 “우익”을 조정하고 도널드 그레그를 UN으로 끌어들였다. 광주인에서 설갑수는 자신의 상상속에 나와 김양래 둘 중 누가 도청에 남을 것인가? 라고 물었다. 나는 분명히 남을 것이다. 하지만 설갑수는 확실히 그 곳에 없다. 1980년부터 37년이 지난 후, 설갑수 같은 사람들은 5.18의 피에서 이득을 챙기려고 하고 도널드 그레그 같은 자들이 살해한 수천명의 피해자들의 피웅덩이에서 기억을 도려내려고 애쓰는 것이 참담하다.

설갑수의 억지주장에 얼마든지 논박할 수 있다. 내가 학술적 연구를 위해 CIA 문서를 인용하는 것은 5.18기념재단이 CIA를 이용해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설갑수는 내가 박정희 암살자료를 CIA에게 요청함을 비난했다. 이는 부산의 매우 존경받는 활동가들이 나에게 공개적으로 요청을 해서 내가 그렇게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설갑수는 31년 동안 CIA요원이었고, 수천명의 피를 손에 묻힌 도널드 그래그와 5.18재단을 연결시키며,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를 공격했다.

나는 5.18을 사랑하는 어떤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를 원하지만,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발언해야 한다. 존경하는 5.18 단체와 광주시민 여러분, 나의 답변을 읽고 광주정신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판단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조지 카치아피카스

2017년 7월 30일
 

PM 출판사 입장- 죠지 카치아피카스의 팀 셔록 자료 인용 건에 대하여

2017. 6.21일 팀 셔록은 죠지 카치아피카스의 인용 및 표절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출판사는 팀 셔록의 주장을 확인한 바, 해당되는 근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팀셔록은 1996년 FOIA에 근무하면서 받은 미국 정부자료를 근거로 제시했다.

이 자료는 2017년에 광주에 공개되었다. 1997년 광주시는 미국 정부의 FOIA문서를 요쳥해서 공개했고, 죠지 카치아피카스는 그 자료를 근거로 연구를 했다. 또한 팀 셔록은 죠지 카치아피카스에게 미국 정보자료를 사용해도 좋다는 이메일을 보낸 것이 확인되었다. 그 메일에는 자신의 이름은 밝히지 않아도 좋다고 적혀있다. 따라서 PM출판사는 팀 셔록이 죠지 카치아 피카스에게 사과 하고,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해 주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Ramsey Kanaan

발행인

PM 출판사

오클랜드, 켈리포니아.

7.1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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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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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99
(앵커)

유엔 본부에서 사상 처음으로
5.18 행사가 열렸다는 내용
어제 전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5.18에 대한 미국의 책임 문제가
단연 화제였습니다.

같은 미국인이라도
미국에 책임이 있다, 없다를 놓고
열띤 공방을 벌였습니다.


현지에서 김철원 기자입니다.

(기자)

1980년 5.18 당시 광주시민들은 미국이 자신들을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인권주의를 표방한 미국 카터 대통령이 전두환을 몰아낼 것이라는 기대는 그러나 가차 없이 무너졌습니다.

미국이 한국의 전방부대인 20사단 작전통제권을 전두환측에게 넘겼고 5월 27일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전두환측과 함께 협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반미감정은 극도로 확산됐지만 아직까지도 미국 정부는 이를 인정하거나 사과한 바가 없습니다.

한국전쟁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5.18의 비극은 미국의 책임이 크다며 미국정부가 사과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브루스 커밍스/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
"미국 정부가 광주를 비롯한 여러 군사독재정권을 너무 오랫동안 지원해온 것에 대해 정말 창피함을 느낍니다.

5.18 당시 미국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책임자였던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는 전직 미국 관료답게 미국 정부가 사과할 일은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녹취)도널드 그레그/전 주한미대사(5.18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책임자)
"광주에 대해서 미국이 사과해야 한다고 여러차례 요구를 받았는데요. 저는 미국이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얘기했습니다.만약 우리가 사과할 게 있다면 너무 오랫동안 침묵을 지켜온 것, 그것은 사과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넘어넘어'의 영문판 번역자는 5.18과 미국의 정확한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는 베일에 가려진 비밀문서를 온전한 형태로 미국 정부가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뷰)설갑수/'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영문판 번역자
"80년 전후의 모든 기록, (미국과 한국 사이의) 외교, 군사, 정치적 모든 기록을 한국 정부에게 넘기라고 미국 정부에 요구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탠드업)
미국이 5.18에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 카터 정부가 전두환 신군부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도와줬는지를 밝히는 일, 반드시 풀어야 할 5.18의 과제입니다.

뉴욕에서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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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 [특별기고] 윤상원에게 물어보라
 나간채 전남대 명예교수(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 승인 2017.08.24

유엔본부 5·18학술대회에 관련하여 초래된 분쟁에 대한 하나의 성찰적 제안


이 글의 목적은, 비록 싸움이 역사 발전에 불가피한 것이지만, 그 자체로 끝나기 않고 그것을 넘어서 화해*상생의 진리에 이르는 길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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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에 큰 관심을 끌었던 유엔본부의 5·18국제학술대회와 관련하여 지난 6월 이후 조지 카치아피카스(이하에서 조지로 약칭함) 교수와 이 학술회의를 주도했던 이들 사이에 제기된 분쟁이 아직 어떤 결말 없이 시중에 떠도는 과정에서 의혹은 증폭되고, 그 결과 관련자들은 물론 5·18 자체에 상처가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에게 이 사안에 관한 질문과 요구가 거듭되었던 바, 필자는 이러한 질문이 시민의 정당한 요구이면서 동시에 광주공동체의 자율적 윤리성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고 본다. 또한 이제 세계적 차원의 역사가 된 5·18의 명예와 존엄을 위해서도 이에 대한 진지하고 엄정한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옛 전남도청 복원을 위한 범시도민대책위원회가 23일 5.18민주광장에서 '1980년 5.18 당시 공군 전투기의 광주폭격 계획'과 관련 정부와 국회에 '5.18특별법 제정',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옛 전남도청 복원을 위한 범시도민대책위원회 제공
문제의 발단은 이 5.18국제학술대회(5/27)에 대한 조지 교수의 비판적 논평(6/13)이었다. 이 논평에 대하여 5·18기념재단과 3개 유공자단체가 공동으로 반박 성명을 발표했고(7/3), 이 성명에 대한 조지 교수의 해명과 질문(7/11), 그리고 뒤 이은 김양래 상임이사의 해명과 응답이 이어졌다(7. 14). 그 과정에서 논란의 쟁점은 학술회의를 넘어서 광주인권상, 방콕학술대회, 표절, 번역문제 등 매우 광범한 주제로 확산되었고, 조지 교수를 공격하는 한국인들이 합세하면서 합리적 토론의 형태를 넘어 감정적 비방과 극언을 포함하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여기에서 8월에도 이어진 이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룰 수는 없다. 초기 상태에 집중하여 사태의 진전양상을 살펴 그 적절성을 논평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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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의 계기가 된 조지 교수 논평의 핵심은 CIA서울지국장과 한국주재 미국대사를 역임한 도널드 그레그를 학술대회에 토론자로 초청한 것이 ‘광주시민의 진심어린 투쟁의 세월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미국이 광주항쟁을 알지 못한다고 되풀이해서 주장했으며, 광주시민법정(2002. 5. 18)이 그를 ‘인륜에 반하는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진정으로 사과하고 자신과 미국의 역할을 진심으로 밝히는 경우에만 그를 초청했어야 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5·18기념재단과 3단체의 공동성명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레그는 광주시민법정에서 인륜범죄자로 판결받지 않았다는 점, 둘째는 그레그는 귀빈으로 초대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전체적인 차원에서 이 학술대회를 통해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보편적 입장을 확인하고 5·18의 진실에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는 점 등을 주장했다. 

또한 이 성명은 조지 교수가 5·18기념재단과 5·18민주유공자들을 공격하는 행위를 멈추고 잘못된 사실을 공표한 것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공개요구에 대하여 조지 교수는 해명과 아울러 자신의 입장을 천명했다. 첫째, 도널드 그레그가 광주시민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말한 것은 자기가 사실을 잘못 인식한 실수로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했고 이 사실을 김양래 상임이사 등에게 이메일로 알렸다(6. 17).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사실을 회의에서 알리지 않았고, 이미 사과한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의 사과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5·18관련 4개 단체의 명의로 발표했다(6. 29). 김양래 이사의 이와 같은 행위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함과 아울러 관련 단체가 그 경위를 조사해 줄 것을 요구했다. 

둘째, 유죄판결 여부와 관계없이 그레그를 초청한 결정은 적절치 못했다는 점과 그 사유를 밝혔다. 그는 광주진압을 결정했던 백악관 회의(1980. 5. 22)에 참석했으며, 그가 사과한 것은 자신의 ‘침묵’과 ‘한국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 뿐 그 당시 미국이 취한 행동의 진실을 밝히지도 않았고 미국의 책임에 대해 사과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불성실한 사과이며, “사과”라고 부를 가치조차 없다.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조지 교수는 이 밖에도 2016년 광주인권상 수상자 결정과정의 문제, 재단이 주관한 방콕 학술대회에서의 기조발표 초청을 거부한 문제, 더 나아가 김양래 이사의 사임을 공개적으로 요구 등 개인에 초점을 맞춰 더 적극적인 비판과 공격을 펼쳤다.

조지 교수의 이와 같이 강경하고 확장된 공격에 대하여 김양래 이사는 다음과 같이 대응했다(7. 14). 첫째, 그레그가 시민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한 조지 교수의 공식사과메일에 대해서 알지 못했으며, 나중에는 메일확인과정에서 간과한 것으로 말했다. 

둘째, 조지 교수는 2016년 광주인권상 수장자 결정과정에 대해서도 잘못된 정보를 이용했고 가톨릭 교회의 이해관계와 연계하는 듯한 인식도 잘못된 것임을 지적했다. 이밖에 태국학술회의 참가거부 사유에 대한 진설성, 재단과 그레그 간의 연계 의혹에 대하여 조지 교수이 언행을 비판했다. 

또한 필자와의 면담에서 김 이사는 5월단체 이름으로 발표된 해명요구에 대헤서 갑자기 김양래 개인 실명에 대한 공격과 비난으로 대응한 점에 대한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 간의 이메일을 통한 논란이 거듭되는 가운데 미국 현지에서 이번 학술회의를 실질적으로 주관했던 설갑수 씨가 여기기 개입하여 조지 교수를 극단적인 언사로 비하하는 공세를 전개했다. 조지 교수에 의하면 적어도 26회의 인신모독적 공격과 폭언-거짓말, 병적인, 표절의혹, 불쌍한 인간 등-을 거듭했다는 것이다.

김양래 이사도 조지 교수에 대하여 거짓말쟁이, 무책임한 학자 등 치명적인 인격모독의 언사를 거듭했다. 이들은 조지 교수에게 수여된 명예시민증과 후광학술상을 치탈해야 한다는 극언도 불사했다. 

그리고 이러한 잔혹한 폭언으로 조지 교수는 극심한 정신적 상처에 고뇌하고 있음을 알려왔다. 조지 교수의 적극적인 화해 제안과 필자의 상호 직접 소통을 통한 화해 및 중재 제안에 대하여 김 이사는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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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평 >

이상의 사실적 진전과정을 지켜보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1. 발단이 된 조지교수의 대응과 관련하여:

*우선 그레그를 초청을 비판한 그의 논평은 시민사회의 공론장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매우 자연스러운 토론이었다. 사회는 이러한 토론을 통해서 지적, 윤리적 수준을 심화하고 고도화하는 것이다. 다만, 학술대회 주관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대회를 통해서 5·18항쟁에 대한 국제적 인식 확장, 전 지구적 홍보효과 등의 긍정적 측면에 대한 호의적 평가가 함께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있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다된 밥에 제뿌리기’라고 인식하여 결과적으로 학술대회의 성과를 훼손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러나 이 비판이 5.18의 역사적 무게를 높였으면 높였지 훼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전두환 사면을 생각해보면 안다.

*더 나아가 4개 5월단체의 공동성명에 대한 조지 교수의 반박문은 상당히 강경한 공격성을 보여주었고 이것이 김 상임이사의 마음에 큰 충격을 주었지 않나 생각된다. 특히 김 이사에 대한 조사요구, 김이사 개인성명을 거명하여 시민사회와 연계된 공격, 쟁점을 학술대회에서 인권상 문제 등 이전의 문제로 확대시킨 점 등은 조지 교수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다.

*분쟁의 진전과정에서 조지 교수가 상호 직접 소통과 화해를 제안한 점은 유의할 사항이다. 필자에게도 그러한 의도를 표명했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김 이사에게 의사를 전달했으나 그는 한사코 거부했다.

2. 다음으로 김 상임이사와 설갑수 씨의 대응자세와 관련하여: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시민군의 최후 격전지였던 엣 전남도청 전경.

*우선 이 학술대회의 실질적 주관자로서 매우 집중적이고 큰 활동을 성공시킨 점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많은 시민들이 노고를 찬하고 격려한 것이 사실이다.

*이 분쟁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김 이사가 6월 17일에 보낸 조지 교수의 공개사과 메일을 확인하지 못하고, 또 공동성명을 논의할 때 이를 5월단체 대표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사실에서 연유한다. 

조지 교수가 사과한 사실을 알았다면 공동성명 발표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한 5월단체 대표의 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김 이사는 이에 대한 진실된 사실해명과 정중한 사과를 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건강한 시민의 기본 상식이다.

*김 이사는 과격하고 인격모독적인 언사로 조지 교수를 공격했다. 거짓말쟁이라는 표현이나 사실 확인도 하지 않는 무책임한 학자 등의 언사는 양심적인 학자에 대한 치명적인 언어폭력이고 인격모독이다. 

필자가 아는 한, 그는 의도적으로 거짓을 말한 적이 없으며, 사실 확인에 태만한 지식인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김 이사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더구나 거짓말이나 사실확인을 않했다고 공격하는 김 이사 자신이 메일확인도 않는 점에 대해서 무어라 설명할 것인가? 서로 양보하여 소통하는 길이 진리이다.

*특히 설갑수 씨 역시 더욱 인격모독적인 언사로 조지 교수를 공격했다. 특히 그의 비판과 공격에는 자가당착적 문제가 보인다. 이를 테면, 설 씨는 ‘자기를 CIA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고 조지 교수가 단정해서 공격했다고 비판했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CIA 대원인 그레그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잘못 해석한 것이었다. 

조지 교수를 표절자로 지목하여 이 사실을 해당 출판사에 조사요청을 한 결과 그 출판사에서 ‘표절의혹 없음’이라는 회신을 보내자 오히려 출판사를 폄훼하는 듯한 언사를 보인 것은 그의 공격이 갖는 한계를 알 수 있게 한다. 실제로 조지 교수가 표절했다는 문제의 자료는 필자도 기록관 자료실에서 조지 교수에게 직접 보여준 것이었다.

3. 5월관련 단체의 대응과 관련하여:

*5·18기념재단과 유가족, 부상자, 구속부상자의 3개 민주화유공자 단체는 공동의 명의로 조지 교수에게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의 성명을 발표했다. 두 가지 의견을 제시한다.

첫째는 그 공동성명의 말미에는 조지 교수가 ‘5·18민주유공자들을 공격하는 행위를 멈추고 잘못된 사실을 공표한 것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조지 교수의 논평은 단체나 유공자들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국제학술회의의 초청인사 문제로 한정하여 거론했다는 점을 지적해둔다. 대상을 확대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는 표현이다. 그리고 이는 적대적 공격이라기보다는 진정성 있는 비판이다.

*둘째는 일단 단체 대표들이 조지의 공식사과 메일을 김 이사에게 보낸 사실과 공식적으로 사과한 사실을 모른 상태에서 그에 모순되는 문제의 성명이 발표되었다면, 당연히 이 성명은 수정되거나 철회되는 것이 책임성 있는 공공기관으로서 합당한 자세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더 나아가 착오로 발표된 성명에 대하여 공적인 사과도 있어야 한다. 단체의 명예와 존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로 인해 상처받은 개인이 있다면, 이는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를 필자는 각 단체 대표를 면담한 자리에서 직접 전했다. 그러나 아직 이에 대한 응답을 필자는 알지 못한다.

4. 결어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조지 교수와 김 이사 두 분이 직접 소통하기를 다시 제안한다. 필자가 중재할 용의가 있다. 그러면 대다수 오해는 해소되리라 믿는다. 많은 부분이 언어 소통에서 과장되거나 잘못 해석된 결과에서 초래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길이 상호간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고 더 나아가 5·18이 입은 상처도 치유되는 길이다. 망설여진다면 공동체를 위해 몸 바친 열사 ‘윤상원에게 물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간채 전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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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양측을 아는 편이지만, 특히 조지 교수는 근 20년을 함께 연구하고 소통해온 가까운 관계이다. 그 동안 조지 교수는 수 십 회의 해외학술대회에서 5·18연구 결과를 발표하여 5·18의 국제화에 기여했다. 외국인으로 5·18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이고 그의 광주사랑, 5·18사랑은 광주시민에 못지않다. 

따라서 그의 명예시민증은 치탈되어서는 안돼고 오히려 그의 업적과 5·18에 관한 지식은 광주공동체의 값진 자산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이 밖에 그에 대한 폭언들도 거두어들여져야 한다.

*나는 토론문을 쓰면서 가능하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관점을 가지려 노력했다. 그러나 독자에 따라서 달리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토론문과 관련하여 이견이나 질문을 환영한다. 이를 통해서 스스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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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간채 전남대 명예교수(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
나간채 전남대 명예교수(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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