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미군이 3만5천명 살해했다?" 신천대학살 진실 게임
최석진 기자
기사승인 2018-10-03
한국전쟁 중 발생했다는 신천대학살 사건의 진실을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사진은 북한 신천참사박물관 내 그림.
“피는 피로 갚아줘야 하고, 미 제국주의자들의 만행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빚을 청산해야 한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
최근 북미간 대화가 급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70여년간 진실 논란에 휘말려 온 '신천대학살' 사건이 새삼 조명되고 있다.
신천 대량학살 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였던 1950년 10월 17일부터 12월 7일 사이 미군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일련의 민간인 대량학살 주장의 한 부분이다. 52일 간의 이 기간 동안 3만5천 명이 넘는 북한 민간인들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행위가 미군에 의해 저질러졌는지 아니면 다른 집단에 의해 자행되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이 대량학살 사건들과 사망자 숫자, 그리고 책임소재와 관련해서는 여러 다양한 경로들에서 상충되는 기록들이 존재한다. 미국 매체 ATI는 신천대학살사건을 진단했다.
▷신천 대학살의 배경, 책임은?
1950년 말의 약 두 달 간에, 결과적으로 신천 지역에서 많은 사망자를 기록하도록 하는 몇 건의 대량학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학살 사건들의 시발은 1950년 10월 18일 신천 지역의 공습 대피소에서 일어났다. 북한 측의 기록에 따르면 대략 900명이 미군의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여성과 어린이 50명이 포함된 520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또 다른 사건은 이틀 뒤인 1950년 10월 20일 경찰서에 속해있던 공습 대피소에 대한 공격으로 발생했다. 이런 식의 대량학살은 최종적으로 사망자 숫자가 추정치로 35,383명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었다.
학살의 책임이 미군이나 한국군에게 있는지, 아니면 북한 공산 게릴라들에게 더 책임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사실, 사건에 연루된 상황은 꽤 복잡해 보인다.
“신천 대학살은 좌우익 간의 살상극으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학자 한성훈 연세대 교수)
한 교수는 “식민지 시기부터 꿈틀대던 좌우 대립이 해방 후 폭발적으로 분출되면서 벌어진 사건으로 삼차원적 시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며 "이 대립은 남북 분열의 결과 남과 북에 각각 별도의 정부가 들어서고, 결과적으로 전쟁으로 이어지면서 이로 인해 계급, 계층 및 종교적 내부 갈등이 악화되는 현상과 맞물려 발생했다”고 말했다.
트라비스 제페센의 책 「평양에서 다시 만납시다」에서 한성훈 교수는 북한군이 신천에서 퇴각하고 지역의 공산 게릴라들이 미군과 한국군에 대항해 전투를 대신 떠맡게 됨으로써 신천 지역은 1950년의 대량학살 시기까지 우익과 좌익 간 상호 공방전의 온상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대량학살의 책임을 어느 한 쪽에 일방적으로 씌울 수 없는 요소가 일부 존재한다.
피카소가 신천대학살을 소재로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
혹자는 학살이 미군에 의해 저질러졌다고도 하고, 다른 기록들을 보면 그 책임이 한국군에게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일부 역사가들은 미군의 명령 하에 한국군들이 학살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1952년 영국, 프랑스, 호주, 이탈리아, 벨기에, 중국, 폴란드, 브라질 출신의 변호사, 판사, 교수들이 함께 미국 대신에 이 사건을 조사하고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를 제출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진실화해위원회의 김동춘 전 상임위원은 이 증거들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북한 게릴라 조직들이나 청년 공산당 조직들에게 책임을 돌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천에서 발생한 이 암울한 사건들은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을 더욱 격렬하게 미워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신천대학살 사건은 공산주의적 성향이던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에도 등장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끌어왔다.
▷현재의 긴장 상태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은 2014년 ‘신천 미국 전쟁 만행 기념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1958년에 처음 지어진 이 기념관을 재정비하도록 지시하였다.
북한 당국은 이 기념관에 대해 수많은 자국 인민들을 희생시킨 미국의 책임을 입증하는 현장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반면에 일부 사람들은 이 기념관이 북한 정권에 의해 미국에 대한 적개심 고취의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 기념관 내에 있는 19개의 방들은 대량학살의 끔찍한 참상을 자세히 관람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각 방들에는 52일 간의 기록을 담은 유적 및 선전물들이 갖춰줘 있으며, 생포된 아동들이 남긴 편지들과 무기들 및 고문 도구들, 그리고 미군의 공습과 화학 무기 공격의 증거물들과 피 묻은 인공기가 특별 전시되어있다.
2014년 방문 당시 김정은은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분명하게 드러냈었다.
그는 당시 “미 제국주의자들이 제아무리 속임수를 써도 우리 조국에 남긴 피의 흔적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그 빚을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신천참사박물관 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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