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간의 현지 훈련을 마치고 드디어 중대에 배치되었다. 월남전에서 한국군은 미군은 연대나 대대 급으로 주둔하는 것에 비해서 중대단위로 작전지역을 나누어서 공군력이 없는 베트콩이 접근 할 수없는 고지대에 3, 4 중 철조망을 치고 진지를 지어 놓고 주둔을 했었다. 그 때까지 "뭉쳐야 산다."는 고전적인 전술을 고집하고 있었던 미군은 한국군이 이렇게 "흩어져야 산다."는 전술을 펴자 처음에는 위험한 전술지역에서 소규모의 부대가 고립해서 주둔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이 없다며 매우 회의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마치 두더지가 굴을 파고 들어가 앉아 있는 것처럼 스스로 고립되어 벽을 쌓고 사는 것 같지만 명령이 내려지면 가까운 거리의 기지에서 나와서 작전과 매복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비교적 사상자가 적은 것으로 나타나자 나중에는 미군도 따라 해보다가 실패했다고 한다.
나로서는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고 편의시설과 오락시설까지 갖추어져야 하는 미군들이 최소 생존의 조건만 갖춘 한국군 같은 생활을 장기간 동안 할 수 없었던 탓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당시 미국과 한국의 생활수준이 차이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수있는 일이다. 두 나라의 생활 수준의 차이는 마치 오늘 날 이것저것 갖추고 사는 남한 사람의 생활과 밥만 먹으면 되는 북한 사람들의 생활과의 차이만큼 났었기 때문에 한국군에게는 가능한 열악한 기지 생활이 미군에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시 내가 가본 미군 중대 단위 막사는 개인용 침실에 냉장고는 물론이고 당구대까지 갖춘 시설이었다.
그러나 비록 미군의 철수로 전황이 급격하게 변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베트콩이 아닌 월남 정규군의 남침으로 극소수 피해를 당한 일은 있었지만 대부분의 한국군의 중대 단위 전술기지는 베트콩이 접근 할 수없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박격포 공격을 당하는 경우는 하늘에서 번개 맞을 확률일 정도로 안전했었다. 

대부분의 병사들의 월남에서의 생활은 대부분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작전지에 투입되려면 헬리콥터를 기다려야 하고, 매복을 하면 쥐 죽은 듯이 숨어서 베트콩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중대 기지와 가까운 거리는 도보로 수색 정찰을 할 수있지만 조금 먼 거리로 이동하려면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헬기를 이용할 수 밖에 없어서 참전군인들 가운데는 1년간 월남에서 복무하면서 월남 마을이나 월남 사람을 본 일이 없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 수송선을 타고 월남에 가서 하선 하자마자 트럭과 헬기를 타고 중대로 가서 기지에서 생활을 했던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0 만 파월 장병 중 절대 다수인 소총수들은 월남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가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끔 미군의 월남전 참전 영화를 볼 때가 있는데 한국군이 그 영화에 나오는 미군 병사들처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면 아마 월남에 말뚝을 박고 싶었을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사실에 있어서는 정찰, 수색 외에 대부분의 한국군의 생활은 한국에서와 똑같이 부대 밖으로 나가볼 수조차 없는 생활이었다. 

수색 정찰은 나가서 베트콩을 발견하면 앞에 가는 첨병은 그대로 보내버리고 그 뒤에 오는 본대를 노렸지만 베트콩은 전술적인 승리보다 심리전, 선전전 차원에서 전투를 하기 때문에 우리의 첨병을 노렸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공격을 당하는 것은 맨 앞에 가는 첨병들일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첨병은 가장 경험이 많은 병사로 세우되 한 사람에게 3 개월 이상 시키지 않았다. 때문에 첨병생활을 끝내면 월남생활의 3분의 2는 무사히 넘겼다고 보아도 지장이 없었다.
가장 괴로운 경험은 매복 작전이었다. 매복이라는 것은 적이 나타날만한 지점에 나가 며칠이고 진을 치고 기다리는 것이다. 3, 40 Kg의 무거운 군장을 짊어지고 매복 지점에 도착하면 우선 먼저 전방에 실 같은 구리줄로 된 인계철선과 45도 방향으로 크레모아를 설치한다. 인계철선에 조명탄을 매달아 무엇인가가 인계철선을 건드리면 저절로 조명탄이 터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조명탄이 터져서 전방이 대낮같이 밝아지면 격발기를 눌러서 크레모아를 터트리게 되어 있었다. 크레모아 안에 900 개의 구슬이 있어서 격발기를 누르면 구슬이 터지는데, 위력이 엄청나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하염없이 오지 않는 임을 기다리는 것이 매복의 기본이다. 
매복에 나가 좌표지점에 자리를 잡으면 철수를 할 때까지 일체의 소리도 빛도 냄새도 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 보다 훨씬 현지 실정에 민감한 베트콩에게 포착이 되면 작전이 수포로 돌아가던지 아니면 도리어 우리가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남에서는 밤 말은 베트콩이 듣고 낮 말은 새가 듣는다는 말이 있었다. 수도원에서 침묵 수도라는 것이 있다고 하지만 이보다 더 철저할 수 있으랴 싶다. 작전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매복을 하다가 기다리던 적을 발견하면 타격을 줄 수가 있지만 반대로 적에게 우리의 존재가 들어나면 우리가 당하는 것이 마치 숨바꼭질 같은 것이다. 물론 병사 개인의 입장에서 최선은 적이 오지도 않고 들키지도 않아 무사히 부대로 돌아오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다행히도 매복을 나갈 때 마다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정글 속에서 엎드려서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엎드려 있으면 정글 속의 각종 곤충들이 친하게 지내자고다가온다. 어찌하다 벌레가 전투복 안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는 일이 발생하면 이건 베트콩이 문제가 아니다. 작전지에서 전투복을 마음대로 벋을 수도 없는 일이어서 옷을 입은 채로 손을 넣어서 잡아야 하는데 이게 마음대로 안 되니 참으로 사람 환장을 할 지경이다. 
오줌을 누워도 서서 누면 소리가 커서 무릎을 꿇고 누어야 하는 판에 함부로 부스럭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거기다 비까지 오면 정말 곤란하다. 비가 많이 오면 그대로 물구덩이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데 발이 군화 속에서 퉁퉁 붓도록 서 있어야 한다. 그래도 한 가지 좋은 점은 비가 오면 웬만한 소리는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피부에 모기약을 바르면 모기를 물리칠 수 있지만 약 냄새를 피울 수가 없어서 바를 수가 없다. 모기를 피하기 위해서 밤만 되면 모포로 뒤집어 써야 하는데 월남 모기는 모포도 뚫는다. 밤에 교대로 잠을 자지 않고 전방을 주시해야 하는데 이 때 코를 고는 전우가 있으면 정말 문제가 크다. 옆에서 코를 고는 소리가 마치 탱크가 굴러 오는 소리처럼 들려서 코를 골 때마다 가슴이 벌렁 벌렁 해지는 판이다. ‘드르렁’ 소리가 나기 전에 코를 틀어막아야지, 전방을 주시해야지, 그야말로 신경이 곤두서는 밤을 보내야 한다. 그것도 나보다 신참이 코를 골면 발로 한 번 씩 차기라도 하지만 선임이 코를 골면 애인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장기간 버텨야 하기 때문에 식수를 목숨 보다 귀하게 여겨야 하지만 한 번은 예정보다 훨씬 빨리 철수 명령이 떨어져 너무 덥고 온 몸이 끈적끈적하고 소금기가 버석버석해서 군장도 줄일 겸해서 3 수통의 물을 손수건에 적셔서 목욕을 했다. 그것은 내 생애 최고의 목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