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
박유하 (지은이) | 사회평론 | 200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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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출간되었던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의 개정판. 이 책의 저자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일본에서 대학과 대학원, 통역사, 한국어강사, 아나운서 등의 경력을 거친 일본파 지식인이다. 2004년 현재 세종대 일문과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아직까지도 한국민의 감성을 지배하고 있는 반일 감정의 허상을 깨뜨리고자 한다.
이 책에선 반일감정의 원인은 대부분 대중문화에 나타나는 이미지와 표상, 이에 뒤따르는 과장된 해석, 그리고 어긋난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것라고 말한다. 물론 정당한 것이라면 반일이건 반미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오랫동안 우리의 반일담론은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이고, 논리적이기보다는 비약적이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일본을 이야기할 때에는 무턱대고 반발심부터 드는 것이 널리 퍼진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문제의식 하에 저자는 '일본'을 주제로 한국민의 '정신분석'을 시도한다. 1장에서는 언론과 몇몇 이들이 어떤 식으로 일본을 왜곡하고 있었는지를, 2장에서는 한일간의 현안을 둘러싼 담론에 어떠한 오해가 있었는지를, 3장에서는 그런 오해와 왜곡으로 뒤틀린 우리의 일본관을, 4장에서는 이 모든 현상의 바탕에 있는 우리의 민족주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쓴 동기가 일본을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다만 타자와의 '공존'을 방해하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일본을 왜곡하는 것은 곧 우리자신을 왜곡하는 것, 그리고 이는 피해의식을 공고히 하는 왜소한 열등의식을 버리지 못한 채, 과대한 우월감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경직되고 비생산적인 사고방식일 뿐이라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저자 : 박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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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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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말뚝만 뽑으면 민족정기가 살아나는가? 새창으로 보기
인드라나트 ㅣ 2009-01-23 ㅣ
한국인의 반일의식을 가장 자극하는 사건은 무엇일까?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최근에는 한센병 환자 보상 문제 그리고 재일교포 문제에 관심 있는 이들은 우토로 문제를 떠올릴 수 있겠다.
그런데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의 저자인 박유하는 우리 국민의 일상적 반일의식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일제가 민족의 정기를 누르려고 전국 방방곡곡의 명산마다 박아놓은 '쇠말뚝'이라고 보았다.
신문 기사를 검색해보면 지리산과 남한산성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일제의 쇠말뚝을 뽑아내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성대한 행사가 개최 되었다.
쇠말뚝을 제거하는 사람들은 "일제가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명산마다 한민족의 정기를 끊으려고 아울러 명산으로부터 시작되는 민족 정기를 누르려고 쇠말뚝을 박았다"고 한다.
쇠말뚝만 뽑읍면 민족정기가 살아나는가?
박유하는 '일제 쇠말뚝 사건'을 왜곡되고 맹목적인 반일 이미지 확대의 대표적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의 반일 담론이 항상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고 논리적이기보다는 비약적이었으며 심지어는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허상을 둘러싼 비판"이었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민족정기를 말살하는 일제의 쇠말뚝 뽑기'라는 것이다.
쇠말뚝 뽑기는 '일제가 쇠말뚝을 박았다'는 사실(事實)에 대하여 史實(사실)검증을 하지도 않고, 국민 모두가 사실(史實)로 믿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국의 산에서 쇠말뚝을 뽑을 때마다 반일의식과 적대감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독립기념관에도 전시되었다가 지금은 수장고에 보관된 일제의 쇠말뚝에 대하여 박유하는 "문제는 쇠말뚝이 박혀 있었다는 점 자체보다도 누가 어떤 목적으로 박았는가?"를 규명하여야 하는데 이 일을 하는 사람들도,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역사적 검증을 시도하지 않고 기정사실로 받아드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해방 60년이 훌쩍 넘은 올해도 정말로 일제가 박은 것인지, 무슨 목적으로 왜 박은 것인지에 대한 진실은 규명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쇠말뚝 제거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최초의 증언인 백운산 산장 할머니의 증언(열여섯 살 때 일본인이 박는 것을 보았다는 증언)에만 근거하여 국가적 '운동'이 되고, 공무원들의 '실적'이 되었으며 유수한 신문과 방송매체를 타고 안방으로 전해져서 시청자들의 반일의식과 적대감을 키웠다는 것이다.
전국의 명산마다 발견되는 쇠말뚝 제거를 "한국은 '민족정기'라는 이름의 망령에 씌어 '역사바로세우기'라는 이름으로 전설과 소문을 사실(事實)화하여 사실(史實)이라는 '역사 새로 만들기'에 나서고 있었던 셈"이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밝혀지지 않은 일본의 '의도성'을 조장함으로써 반일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박유하는 풍수설에 휘둘리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풍수설을 믿는다면, 수 센티미터 지름의 쇠말뚝보다도 산등성이 자체가 파헤쳐져 끊임없이 아파트로 변하는 상황부터 걱정해야"하며 "그 중에 '명산'은 없는지, 혹여 민족정기가 서린 '정수리'를 잘라내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하라"고 한다.
이이화와 같은 역사학자 역시 "민족정기 말살론에 대하여 근거가 없는 말이며 지도나 해도를 작성하기 위한 것"이었을 거라고 하였다는데, 근거 없는 풍수설에 현혹되어 더군다나 풍수설 자체를 믿지도 않으면서 아무런 의심 없이 반일 민족주의에 편승하여 분노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책을 읽는 도중에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심지어 "경부선 철길을 놓을 때도 평지 대신에 일부러 산허리를 끊어 철길을 놓았다"며 분노하던 풍수론자들이 전국의 산허리를 잘라서 만드는 고속도로와 고속전철을 왜 반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스님이 생명을 걸고 천성산 터널공사를 반대할 때에 '민족정기'를 걱정하는 풍수론자들은 왜 아무 말도 없었을까? 천성산의 민족정기와 관련이 없는 산이었을까? 고속전철을 타고 서울로 가다보면 수도 없이 많은 터널을 지나가게 되는데, 그 많은 터널은 '민족정기'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일까?
백두대간 산허리 끓는 일은 민족정기와 상관없나?
풍수설을 믿지 않은 많은 사람들과 나 같은 사람도 언제부터인가 일본이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으려 했다는 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일본을 부정적으로 보는 몇몇 지식인, 그들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왜곡을 확인하거나 의심하는 일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확대 재생산해온 언론매체, 그리고 그런류의 보도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 우리 자신이었다.
나 역시 이러한 과정에 편승하여 민족정기를 말살하는 일본의 음모에 분노하며 내 안의 반일 민족주의를 키워왔던 것이다. 투철한 반공교육과 반일교육을 받아오면서 자라서 반공교육의 굴레는 힘겹게 벗어났지만, 반일교육의 틀을 벗어나보지는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반일 민족주의를 더욱 공고히 하였던 것이다.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고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를 역사바로세우기를 받아들였고, <일본은 없다>를 보며 쾌감을 느꼈으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으며 민족의 자긍심을 느껴왔었다.
박유하의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를 읽고 나서야 '민족정기 말살'하는 쇠말뚝과 철심제거를 바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오래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으면서 느꼈던 쾌감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분풀이 소설'같은 끔찍한 일이 생기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박유하의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원래 <누가 일본을 왜곡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2000년에 출간되었던 책을 2004년에 제목을 바꾸어 다시 출간한 책이다. 평론가 김규항은 작가 박유하에 대하여 "이따금씩 괜찮은 학자를 만나면 그것처럼 반가울 수가 없다. 관점이나 의견에 차이가 나더라도 세모를 세모로 네모를 네모로는 보는 눈만 있다면 충분히 기쁘다"고 평가하였다.
세모를 세모로, 네모를 네모로 보는 눈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를 읽다보면 일본에 대하여 세모를 세모로 네모를 볼 수 있는 눈을 키울 수 있다. 일제의 쇠말뚝 문제뿐만 아니라 총독부 건물 철거에 얽힌 '진실 혹은 거짓'(?)과 <노래하는 역사>의 허구성을 <일본은 없다>의 왜곡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황당무계함과 일본문화에 대한 편견과 오해와 무지를 깨닫게 되었다.
강제철거의 위기에 처한 재일동포 마을 우토로를 다녀오면서 만약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통쾌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70만 재일교포에게는 얼마나 '끔찍한'일이 일어날까를 상상하면서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박유하의 말처럼 미래를 위한 책이며, 타자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책이며 지금도 반일교육과 민족주의 교육을 받고 있는 젊은이들을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나 지혜의 눈으로 타자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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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 새창으로 보기
한판승의사나이 ㅣ 2007-11-11 ㅣ 공감(0) ㅣ 댓글 (0)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일전 축구경기에 유별나게 열광한다. 35년동안 통치를 받았던 일본에게는 무조건 이겨야만 한다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인지 행여 일본에게 지기라도 하면 다른 나라에게 졌을 때보다도 훨씬 아쉬워하고, 심한 경우는 분노로 표출 되기도 한다. 또, 독도 영유권 분쟁을 보아도, -물론 우리에겐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유리한 역사적 사료가 불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두가지 사례를 통해서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일본에 대해 뿌리깊은 반감을 갖고 무조건적인 비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박유하의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 는 일본을 좀 더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일본, 넘어서는 우리 자신을 왜곡하는 이미지들을 깨뜨려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이 책은 모두 4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 1장 노래하는 민족주의 에서는 언론과 사회가 어떤 식으로 일본을 왜곡해 왔는지를, 제 2장 침략하는 일본, 이기적인 일본인 에서는 한일간의 현안을 둘러싼 담론에서 있었던 오해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제 3장 표상으로서의 일본인 에서는 그러한 왜곡과 오해를 낳은 우리의 일본관을, 제 4장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에서는 이 모든 현상의 바탕이 되는 우리의 민족주의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다.
박유하는 제 1장에서 '쇠말뚝 사건'을 사례로 들어 우리들의 일본에 대한 오해와 맹목적인 비판의식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일본이 앗아간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운다는 취지로 일본이 박았다고 주장하는 쇠말뚝 뽑기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쇠말뚝 뽑기는 누가, 어떤 이유로 박은 것인지에 대한 역사적 진실규명은 미뤄둔채, 맹목적인 반일감정만 증폭시키고 있다. 이것과 더불어 일본에 대한 말도 안되는 엉터리 이야기를 소설에 담아 일본에 대한 우월감을 조장한 이영희의 노래하는 역사에 대한 내용과, 또 2,3, 장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일본문화와 일본인에 대한 여러가지 부정적인 이미지들은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일본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근거없는 비판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4장에서는 한국의 민족주의의 양상을 보여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민족주의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책에 따르면 민족주의는 근본적으로 베타적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민족이라는 개념은, 그 바깥에 있는 집단과의 구별과 배척이 있어야만 가능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또한, 베타성을 토대로 한 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 일본을 배척하고 피해자로서의 우리를 강조하는 데에만 많은 에너지를 쏟아왔다. 나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인한 우리 민족의 상처는 상처의 내면화, 즉 자신의 상처의 원인을 들여다보고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치유가 가능하다는 이 책의 메시지에 매우 공감할 수 있었다. 나아가 자국 문화가 타국문화보다 우수하다고 믿는 어리석은 우월주의 또는 피해의식에 기반을 둔 열등의식을 넘어서 모든 문화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타자와의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하자는 지은이의 생각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이책은 한국사회의 반일감정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려고 한 나머지 현재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반박하는 수준에만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또한, 지은이는 이 책의 취지가 일본을 옹호하는 것이 아님을 서두에 밝혀두고 있긴 하지만, 기존의 생각에 대한 반박이라는 책의 구성 자체가 읽는이로 하여금 오히려 객관성을 잃어 버리게 만들고 있다. 그렇지만 이책은 기존에 우리의 편협된 일본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나아가서는 민족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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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hz-gameover ㅣ 2007-11-11 ㅣ
우리나라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굉장히 민감하다. 예를 들어 스포츠 경기에 한일전을 할 때의 그 열기란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기업이 다른 나라가 아닌 일본에게 뒤지거나, 피해를 보았을 때, 국민들의 여론은 굉장히 사나워진다. 이렇듯 우리는 유독 일본에게 이상할 정도의 피해의식 혹은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다. 물론 역사적인 이유가 있긴 하지만, 이성을 넘어선 감정적이고 원색적인 비판이 오고 갈 때가 적지 않다.
이 책,『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에서 작가는 우리나라에 퍼진 이러한 반일 민족주의 정서를 풀어내고자 하고 있다. 일본에 대한 우리 민족의 피해의식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에 대해 우월감을 가져 일본에게 당한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예를 들어 나타내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 된 쇠말뚝 사건이나 김진명의 소설 등의 예는 위에서 언급한 우리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에 대한 여러 편견의 허점을 나타내고, 그 편견에 너무나 쉽게(?) 동의하는 한국 국민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비록 90년대의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 하고 있어 현재의 우리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2000년대 후반에 와 있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우리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온 일본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쇠말뚝 사건이나 조선총독부의 이야기는 나 자신도 오랫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그 사실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의 이야기는 나의 반일정서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일본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버리게 하고 ‘이웃’으로써의 일본에 보게 하는 올바른 시각을 제시 하고 있다.
일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설명하는 중에, 일본 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작가는 언급하고 있다. 물론 문학에 대한 언급을 통해서, 일본은 우리가 이루지 못한 문학적 발전을 거두었고, 우리와 다르게, ‘민족’에 갇혀 있지 않은 일본의 사례를 통해 우리도 ‘민족’이라는 틀을 깨자는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하는 소재이다. 하지만, 이 일본 문학에 대해 이야기 할 때에, 일본 문학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을 경우 필자의 이야기를 쉽게 이해 할 수 없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일본의 문학이 노벨상을 타고, 세계의 공감을 거두어 올바른 성공을 이룬 하나의 올바른 케이스로서 소개가 되어있다. 하지만, 일본의 문학이 보편성을 거두어 성공을 거둔 것이 꼭 올바르다고 만 볼 수 없다. 각 나라의 문학은 특수성을 지니고, 각각 다른 다양성을 지닐 수 있다. 이런 다양성은 언제나 인간 문화발전의 근원이 되어왔었다. 그런 가능성을 배제하고 세계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일본 문학을 하나의 모범 케이스로 지정한 것은 한국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일본의 문화가 우월하다는 논리로 보일 수 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사실들은 많다. 사실 우리는 너무나 일방적인 반일감정과 원인을 알 수 없는 피해의식에 빠져있었다. 일본의 잘못에 비난을 퍼부으면서도, 우리나라 자신의 잘못에는 무관심했다. 우리나라처럼 민족주의가 강한 나라도 없으면서, 일본의 우익단체를 비판하였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우익단체가 바로 애국단체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인데 말이다. 결국 우리가 이런 끝없는 반일의 수렁에서 미래의 진정한 동아시아의 동반자이면서 가까운 이웃으로써의 일본을 맞이하기 위해서 어떤 시각과 태도를 가져야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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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민족주의를 넘어, 새로운 미래로
BestReviewer ㅣ 2007-05-06 ㅣ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지는 반세기가 넘었으나, 한국 사회에서 ‘반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반일’을 일으키는 표면적 요인으로는 물론 일본의 우경화를 들 수 있다. 일본의 극우 세력이 힘을 얻자 한일 간에 독도의 소유권, 동해의 명칭, 역사 왜곡 문제 등을 둘러싼 논쟁이 달아오르면서, 일본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인이 늘어난 까닭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반일은 대부분 배타적 민족주의에 기반하고 있어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일본에 대한 제대된 비판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한일 간의 관계만 악화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의 저자 박유하는, 한국이 이러한 배타적인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일본과 새로이 협력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저자는 우선 책의 1장에서 지식인들과 언론을 중심으로 한 우리 사회 전반이 일본을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를 다룬다. 그리고 2장에서는 한일 간의 논쟁이 어떻게 왜곡되었으며, 이것이 ‘반일’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 후 3장에서는 이러한 ‘반일’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한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이미지를, 4장에서는 3장까지 다룬 내용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의 민족주의를 분석, 비판한다.
우선 이 책의 가장 큰 성과를 꼽는다면 일본을 왜곡하는 한국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여 한국인들이 스스로 무분별한 반일에 대해 돌아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특히 1장에서, 한국인들이 흔히 일제가 한국의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풍수침략’의 일환으로 쇠말뚝을 박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을 볼 수 있다. 한국의 전통을 가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탄압하려 했던 일제가, 과연 풍수지리설과 같은 실로 한국적인 믿음에 기반을 두고 ‘한국의 기를 누르기 위해’ 쇠말뚝을 심었겠냐는 지적 등에 나타나듯이 말이다.
또한 책의 구조 자체가 독자들의 흥미와 변화를 유발하는 데 적합하게 되어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먼저 1장과 2장에서는 한국인들 스스로가 깨닫지 못한 무분별한 반일 ‘현상’을 날카롭게 지적하여, 독자들이 감탄하면서 책을 계속 읽어나가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게 해 준다. 이어서 3장에서는 1, 2장의 반일현상을 부추기는 한국인의 일본상에 대해 이야기하여 독자들이 자신의 일본상을 돌아보면서 저자의 논의에 서서히 공감할 수 있게 한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앞서 다룬 모든 현상을 ‘분석’하고, 그 결과로 폐쇄적 민족주의라는 한국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독자들이 이를 개선하는 데 힘쓸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의 민족주의 비판에 힘을 쏟느라 가끔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인 발상만을 옹호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한 예로 그는 2장에서 “외부의 문화충격에 맞서나갈 힘이 없는 문화라면 오히려 도태되는 편이 낫다”며,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문화를 수입하더라도 정부가 한국의 문화 산업을 보호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문화가 날로 산업화되고 있는 요즘의 현실을 무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영화산업 분야만 하더라도, 할리우드 영화사들의 자본력에 밀려 자국 영화산업의 위기를 맞고 있는 나라가 다수이다. 자금력의 차이 등을 배재하고 순전히 “문화의 힘” 만으로 각국의 문화가 자유로이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현실적이지 못하며, 민족주의 비판을 위해 억지스런 논지를 펴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한국인들이 자각하지 못한 스스로의 맹목적 반일과 이의 바탕이 되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비판한 책이다. 저자는 한국의 반일적, 민족주의적 측면이 나타난 사례를 깊이 파고들면서, 이러한 현상의 바닥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흥미롭게 제시한다. 물론 저자가 간간이 지나치게 자신의 주관적 의견을 진리인 양 피력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기는 하나, 한일간의 감정적 골이 깊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일본과의 진정한 협력관계 구축을 위해서라도 한국인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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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의 카타르시스 새창으로 보기
도사리 ㅣ 2004-05-17 ㅣ
일본에 대해 심정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일제 시대 반민족행위자라도(지금 살아 있다면) 이런 심정적인 반감을 떨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을 단지 일본으로 바라볼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그냥 가까이에 있는 외국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이 책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일문학자이자 뛰어난 번역가인 박유하 선생이 한국의 왜곡된 민족주의의 현실과 그것을 비판한 시론적인 성격의 책이다. 그의 주장은 우리끼리만 즐거운, 그러나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왜곡된 한국의 민족주의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 민족의 무한한 영광'을 위해 제멋대로 해석되는 사실(史實)과 사실(事實)들.
어느 순간부터 일본인들이 이 땅 여러 곳에 말뚝을 박아 '민족정기(? - 설명하기 어려운 아주 고추상의 개념?)를 말살하려 했다는 게 정설로 굳어져 버렸고, 김진명 류의 내용도 없고 전망도 없는 감성 호소적인 국수주의가 건전한 개혁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머리 마저 점령해버렸다. 이 어처구니 없는 현실에서 제대로 일본 제국주의의 과오를 평가하고 청산하자는 주장마저 '국수주의'로 몰릴 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딨을까? 한국의 근대가 일제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주장이나 할 수 있을까? ('한국의 근대는 일본에 빚졌다'는 주장은 '한국의 근대는 일본에 큰 영향을 받았다'로 수정되어야 한다.) 실제로 최근 공부한다는 사람들 속에서 '친일파', '민족' 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살 행위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박유하 교수의 이글은 반일 감정이 우리끼리의 카타르시스로 작용하고,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정치인들이나 언론기관들에 이용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 그리고 우리끼리 들어 즐겁기만 한 근거없는 편협한 국수주의적인 주장들이 얼마나 이 세상의 건강한 상식을 병들게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전히 바로 알아야하고 제대로 평가되고 공유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땅의 사람들이 감정적인 반일주의에 빠져드는 것... 그것이 과연 우리만의 카타르시스인지 아니면 청산되지 않은 많은 것들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이런 부분도 함께 짚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있다.
여전히 민족과 민족주의, 반일감정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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