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07

강남순 인문학적 성찰이 정의와 만나야‘만’ 하는 이유가 뭘까요 - 독서신문 책&삶

인문학적 성찰이 정의와 만나야‘만’ 하는 이유가 뭘까요 - 독서신문 책&삶

인문학적 성찰이 정의와 만나야‘만’ 하는 이유가 뭘까요《정의를 위하여》의 저자 강남순
박혜강 기자  |  graceriver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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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호] 승인 201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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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렌다. 잘 알지는 못해도 끌리는 마음과 호기심이 시작이었다. 함께 시간을 보낸 후에는 조금 더 알아가고 싶어졌다.’
이 만남이 그랬다. 최근 여러 매체에 썼던 글들을 다듬어 《정의를 위하여》를 발간한 강남순 교수(텍사스크리스천대학교)는 어떤 담론이나 학자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이러한 데이트와 마찬가지 아니겠냐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비판적 성찰이 담긴 질문을 던지며 자신만의 사유로 사회를 들여다보는 강 교수의 시선은 책 속에서 대화로 옮겨졌다.
코즈모폴리터니즘·포스트모더니즘·포스트콜로니얼리즘·페미니즘 등 현대 철학적·신학적 담론들을 가르치고 있는 강 교수는 처음엔 이러한 담론들보다 실존철학에 더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독일에 가서 지금껏 머리를 싸맸던 이론들이 일상적으로 씨름하는 문제들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 것 같다는 고민이 시작됐다. ‘책상 앞의 세계와 책상 뒤의 세계가 왜 이리도 다른지, 이 간격을 어떻게 좁혀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늘 맴돌았다. 아이를 키우고 결혼생활을 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수많은 어려움은 늘 학문과 동떨어져 스스로 감당해야 할 문제로 남았다. 그러다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는 도중 지도교수의 권유로 관심도 없고 학문적 주제라고 생각지도 않던 페미니즘에 관한 세미나를 듣게 된다. 거기서 그는 제2의 인식론적 회심 경험을 했단다.
  
 
“페미니즘 세미나를 들으면서 내 삶의 구조를 이해하는 개념들을 만났어요. 일상적인 얘기들, 나의 몸, 아이를 키우는 일, 결혼제도 속에 있는 것, 여성이자 엄마로서 전문성을 키우려 할 때 갖게 되는 딜레마들 등 그동안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회적인 문제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배우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가하면 페미니즘에서 논하지 않는 것들이 그에겐 중요한 문제였던 경우도 많았다. 외국에서 살다 보니 젠더 문제, 인종 문제, 언어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총체적으로 경험했기 때문. 그는 다양한 문제를 이해하는 틀인 이론을 연장에 비유하며, 다양한 연장을 갖고 있어야 복합적인 건축물을 지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복잡다층적인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앵글로 유효한 의미들을 읽기 위해 페미니즘-포스트모더니즘-포스트콜로니얼리즘을 우선 공부해보길 권했다. 이를 바탕으로 시대를 읽는 훈련을 해야 유의미한 정치적·시적·철학적·신학적 상상들이 가능해지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시선이 생긴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는 어떻게 이러한 시선을 갖게 되었을까. 돌아온 대답은 ‘자크 데리다’였다. 데리다를 알아가면서 그 역시 사물을 보는 시각이 많이 예리해졌다고. 우연히 지나가는 것 속에서,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 속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을 끄집어내는 데리다의 능력은 탁월했다. 그 역시 데리다를 공부하며 복합적 질문을 던지는 힘은 길렀고, 이는 인문학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도처에 답을 주는 인문학 강좌가 열리는데, 이건 인문학 정신을 배반하는 거예요. 정작 뿌리로 돌아가는 근원적 질문은 사라졌으니까요.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왜 당연한지, 어떻게 당연해졌는지를 사유해야 해요. 서구의 근대 모더니즘이 지배한 500년 역사를 보면 답을 주는 사람은 늘 중심부의 기득권층이었어요. 답을 주기 시작하면 주변인들의 삶의 정황은 무시되고 억눌리게 됩니다. 더 이상 성찰이나 개입을 않게 되죠. 비판적 저항으로서의 인문학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강 교수는 인문학적 성찰이 정의와 ‘만나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 둘의 만남은 인식의 지평을 ‘넓혀야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나에 대해 성찰할 때 한 인간으로서 다양한 권리를 누려야할 존재라고 읽는다면, 너에 대해 성찰할 때도 동일한 인식이 적용돼야 하는 것이기에. 이렇게 서로를 바라본다면 정의 구현은 보다 가까워지지 않을지. 하지만 그는 동시에 경계한다. 함께 살아감의 의미가 깨진 시대에 함께 살아간다는 건 낭만적인 구호가 아니라고. 함께 살아감에는 ‘약자와의 연대’와 ‘사회적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가끔 회의적일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것을 조금이나마 해야 한다는 책임감, 그것이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는 말에서 그의 삶을 어렴풋이 헤아려볼 수 있을까. 자신의 지식이 공공에 어떤 기여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하는 그는 올해 말 《용서에 대하여》라는 책으로 독자들과 만날 계획이다. 《정의를 위하여》로 더 정의로운 세계를 향한 여정에 우리를 기꺼이 초대한 강남순 교수. ‘함께 살아감’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씨름하는 이 학자가 보낸 초대장이 이제 당신 앞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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