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06

(16) 강성현 -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긴급 심포지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현 단계를 진단한다> 참관기 ♥> 3....

(16) 강성현 -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긴급 심포지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현 단계를 진단한다> 참관기 ♥> 3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긴급 심포지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현 단계를 진단한다> 참관기 ♥>
3. 무엇이 몸통이고, 꼬리인가?
이원덕 교수는 ‘12.28 합의’에서 일본 정부가 가해 책임을 인정했고, 공식적으로 사죄 반성했으며, 사죄의 표시로 배상적 조치 실시를 약속했고, 현재 이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것을 합의의 몸통이라고 비유했다. 그러면 꼬리는 무엇이겠는가? 예상 가능하듯, 소녀상 언급,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 표명, 국제사회에서의 상호 비판‧비난 자제 부분은 합의의 본질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비유가 왜 등장했겠는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형국에 대한 비꼼일 것이다. 참고로 그는 소녀상 철거에 대한 한일 이면합의에 대한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무근임을 굳건히 믿고 있었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2016년 들어 국민일보를 통해 세 차례 그런 논조의 글들을 쓴 바 있다. 바로 얼마 전 8월 7일자 국민일보 칼럼(위안부 합의에 대한 오해와 진실)은 이번 토론문과 같은 기조의 글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주장처럼 이번 합의가 그 이전의 일본 정부의 표명과 비교할 때 진전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이번 합의에 대한 남기정 교수의 평가도 이원덕 교수와 비슷했다. 큰 틀에서 일정한 성과를 얻은 것으로, 일본 정부가 군의 관여를 인정했으며, 정부의 책임을 통감하여, 총리가 공식으로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고, 일본 정부의 예산조치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사업이 실시된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논의했다. 다만 이원덕 교수가 꼬리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 아니라 벌어진 일로 보고 이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 교섭이 주고 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성과의 반대급부로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이원덕, 남기정 교수의 토론은 김창록 교수의 발표를 미리 읽지 않고 작성한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읽었더라도 이를 외면해야 두 분의 입장이 두 발로 설 수 있기 때문에 이리 썼을 것이다. 심포지움에서 평가의 기준이 다르다는 정도의 말은 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외면하기로 작정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김창록 교수의 발표는 사실 ‘12.28 합의’가 이전의 것과 비교할 때 과연 진전된 것인가를 평가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내가 알기로 2016년 1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회 창립대회 때도, 국회에서 발표할 때도, 그 밖의 여러 장소에서 이 부분에 주력해 분석했던 것으로 안다. 시종일관 매우 능숙하고 확신에 찬 모습으로, 심지어 김창록 교수 같지 않게 단정적 어조를 많이 사용해가며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 이에 대해 얼마나 발표를 많이 했을까 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다.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함.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 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한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12.28 합의 중)
얼핏 보기에 공식적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원덕, 남기정 교수가 평가한 것처럼 이전과 비교할 때 진전된 공식 사죄 표명인가?
김창록 교수는 1993년 고노담화, 1995년 무라야마 총리의 사과편지의 문구를 바로 가져와 비교한다. 그에 따르면, 12.28 합의의 사죄 표명은 고노담화의 것과 비교할 때 진전은커녕 퇴보했고, 무라야마 총리의 사과편지와 비교할 때 거의 똑같다. 정말 그런가? 아래는 1995년 총리 사과편지의 내용이다.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였습니다. 저는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 번 이른바 종군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 우리나라로서는 도의적 책임을 통감하면서 …”(무라야마 총리의 사과편지 중)
이왕 본 김에 길지만 고노담화의 관련 내용도 보자.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영된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 위안부의 모집에 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담당했지만, 그 경우에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고, 나아가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 또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 아래에서의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 당시의 한반도는 우리나라의 지배 아래에 있어서, 그 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전체적으로 보아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졌다. … 우리는 이와 같은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으며, 오히려 역사의 교훈으로서 직시하고자 한다. 우리는 역사연구, 역사교육을 통해 이와 같은 문제를 영원히 기억하고, 같은 잘못을 결코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한 번 표명한다.”(고노담화 중)
이쯤 되면, 김창록 교수의 논지 전개가 예상되지 않는가? 2015년 ‘12.28 합의’는 1995년 사과편지의 복제이지 ‘진일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대독사과’였다는 점에서 ‘퇴보’라고 주장한다. 하물며 1993년 고노담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퇴행인 것이다.
일본 정부가 거출한 10억 엔은 어떤 돈인가? 김창록 교수는 이미 아시아여성기금 때 5억 6천만 엔은 일본 국민 성금액이었지만, 의료‧복지 지원 사업 11억 2,000만 엔은 일본 정부가 지출한 것이었고, 그 외에도 아시아여성기금 사무사업 경비도 정부보조금으로 35억 500만 엔을 출연한 것이었다 한다. 하물며 지금의 10억 엔도 배상금이 아니라 인도적 지원금 거출 항목이 아닌가? 무엇보다 한국 정부는 1993년부터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활안정 지원과 기념 사업을 위해 지금까지 150억 원을 지출해왔다. 공식 ‘배상’도 아니지만, 그 규모도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김창록 교수는 그래도 진전인가를 되묻는다.
이와 관련해 나도 몇 마디만 첨언한다.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는 문장에는 주어가 없다. ‘군의 관여하’는 주어가 아니라 조건이다. 실제 아베 및 측근 인사들은, 일본 국내외에서 구 일본군이나 일본정부가 아닌 ‘업자’의 짓임을 강조해왔다. 직접적 책임은 업자(특히 조선인 업자)에게 있고, 일본군과 정부는 간접적, 구조적 책임으로 형해화된다. 이는 법적(형사사법적) 책임이 아니라 도의적 책임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많이 보던 주장이다. 박유하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
“구체적으로 그 시스템을 만들고 이용한 것은 ‘일본군’이지만, 직접적인 책임은 그런 시스템을 묵인한 국가에 있다. 그러나 국가가 군대를 위한 성노동을 당연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에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았던 이상 그것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 강제연행과 강제노동 자체를 국가와 군이 지시하지 않은 이상 강제연행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일본 국가에 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시 말해 위안부들에게 행해진 폭행이나 강제적인 무상노동에 관한 피해는 1차적으로는 업자와 군인 개인의 문제로 물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런 개인이 거의 세상을 떠났거나 찾기 어려워진 이상 ‘범죄’로서 책임을 물을 대상은 이미 없다고 해야 한다. 대신, 구조적 강제성을 만든 책임 주체로서, 일본 국가가 그런 개인들의 ‘범죄’에 대한 책임과 함께 위안부들의 불행을 만든 구조적인 ‘죄’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는 있다.“(<제국의 위안부>, 191쪽)
“그 시스템이 비인륜적이라고 해서 곧바로 그것을 ‘범죄’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법을 만들고 시스템 자체를 바꾸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정해진 규칙에 반하는 행위를 ‘범죄’라고 말한다. 위안부를 대상으로 한 강간이나 폭력이 공식적으로 금지되고 있었으나, ‘국가’가 그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시 말해 국가로서의 ‘발상’과 기획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위안부의 고통이 물리적으로는 업주나 군인에 의한 것인 이상 군인들의 이용을 ‘국가범죄’로 규정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군인들의 강간이나 폭행은 국가가 묵인한 부분이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처벌되었던 것이 사실인 이상,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범죄로 다루어야 할 사안이다. 무엇보다 일본은 ‘군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식으로 ‘범죄’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도의적 책임’을 졌고 그건 ‘죄’로 인정했다는 것이 된다.”(217쪽)
이에 대해 나는 <황해문화> 91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 바 있다.(깨알 같은 <황해문화> 선전^^)
"일본 군과 국가의 구조적 강제성에 대한 죄와 책임은 형사상 범죄와 법적 책임이 아니며, 따라서 법적 책임으로서의 의무적 배상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결국 일본의 ‘도의적 책임’과 ‘배상 아닌 보상’(배상은 국가가 잘못한 상태에 대한 책임을 의미하지만, 보상은 국가가 잘못하지 않더라도 손해를 입힌 사실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임)을 주장하는 논리로 이어진다.
대신 저자는 업자, 즉 중개업자나 포주들이 조선인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로 끌고 갔으며, 이에 대해서 형사상 범죄와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업자들은 이제 죽고 없다.) 사실 강제연행의 주체로 업자들을 지목한 것은 저자만의 주장은 아니다. 여러 실증적 연구들이 이미 업자들의 역할을 논의한 바 있으며, 일본군의 ‘국가범죄’ 말단의 하수인으로 업자의 역할을 국한한다. 여성들을 끌고 갔던 업자들의 행위는 일본군의 요청 또는 지시와 경찰 및 행정기관의 협력 내지 방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저자는 손과 발이 되었던 업자들의 행위만을 현실적 강제성으로 포착해 범죄화하고, 그 머리에 해당하는 일본 군과 국가의 역할을 구조적 강제성으로 형해화시켜 ‘범죄가 아닌 그냥 죄’, ‘법적 책임이 아닌 도의적 책임’만을 지게하고 있다. 이러니 “위안소를 기획하고 관리한 일제의 큰 불법에는 눈감고, 말단의 실행 행위에 가담한 업자의 작은 불법에만 매달린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 아닌가? 저자의 논리라면 예컨대 제노사이드와 대량학살을 기획하고 지시한 국가권력은 면죄되고, 이 지시를 실행한 말단의 학살 가해자들만 처벌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돌아와, 이번 합의가 과연 진전일까, 퇴보일까? 이원덕 교수는 아베 정부로부터 이 정도라도 확보한 것이 어디냐 라고 말했다. 그런데 꼭 아베 정부와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해야만 했나? 미국의 압력이 문제였다면, ‘위안부’ 문제를 한일 외교의 입구로 삼은 박근혜 정부는 차라리 입구론 기조를 포기하고 다른 사안을 점진적으로 진행했어야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이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위안부’ 문제를 아예 퇴행적 방식으로 해결해버렸다. 2015년은 1965년 한일협정 50주년이었고, 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강제 봉합했다.
이러한 외교 참사를 이원덕, 남기정 교수는 외교 현실로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이것이 주고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두 교수가 하는 주장은 이 두 분이 과연 현실주의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이상주의적이었다. 극단적 이상주의에 빠져 있는 것 아닌가 라는 되물음도 있었다.
이원덕 교수는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 양자외교 차원에서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다시 쟁점화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한·일 외교에서의 일사부재리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와 무관하게 위안부 문제에 관한 연구·조사 활동, NGO의 여성 인권 활동 및 운동, 재발 방지를 위한 추모와 교육은 앞으로도 활발하게 지속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위안부’ 문제 주무부처인 한국의 외교부, 여가부, 교육부는 물론 화해치유재단이 지금 어떤 짓들을 벌이는지 보고 있되 보지 않기로 한 것 같다. 화해치유재단의 이사로 활동하면서 합리적인 수준에서 문제제기하며 좋은 방향으로 틀어보겠다 했지만, 재단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무엇보다 관계 정책 형성 과정에서 자신의 노력과 시도가 거의 작용하지 않음도 인정하기도 했다. 그게 현실이고 본인도 잘 알고 있건만, 동시에 그 현실을 보지 않기로 작정하고 이상적인 믿음을 갖고 말했다.
남기정 교수의 토론은 더욱 경건했고, 심지어 종교적으로 보였다. 중간중간에 추임새처럼 섞는 “제 마음 아시죠”라는 말은 외부 시선에 대한 그의 조심스러움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비판적 수용이라는 그의 입장의 서술은 그렇다 쳐도, ‘나 홀로 결단’으로서의 용서 부분을 읽을 때는 좋게 얘기하면 그의 고뇌를 엿볼 수 있었지만, 나쁘게 말하면, ... (흠... 아직은 말하지 않겠다. 아직도 남기정 선생을... 에고... ^^)
한 가지만 분명히 말하면, ‘위안부’ 문제를 외교 교섭의 문제에서 사상의 문제로 격상시킨다면서 가져온 데리다의 용서론 인용과 함께 이어지는 고백은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4. 합의 폐기는 현실적이지 않다?
5.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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