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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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 칼럼] 한국의 핵무장론에 일본이 주목하는 이유

입력 : 2016.02.17 03:20

미·일 원자력협정이 2년 뒤 시한을 맞는다
특권적으로 日에 부여된 핵 주권은 계속될 것이다
그때 외쳐야 한다 "同盟의 형평성"을

선우정 논설위원
선우정 논설위원
여당 원내대표가 핵무장을 주장하자 야당이 "공멸을 부르는 도화선"이라고 비난했다. 근거 없는 비난이다. 지금까지 핵무장 국가가 적대국과 공멸한 경우는 없다. 중국의 핵에 인도가, 인도의 핵에 파키스탄이 핵으로 대응하면서 인도 반도의 분쟁은 줄었다. 세기말까지 갈 줄 알았던 중동전쟁이 4차에서 중단된 데에 이스라엘의 핵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군비 경쟁은 게임이론에서 '죄수의 딜레마' 모형의 전형으로 꼽힌다. 홀로 군축을 택했을 때 치를 대가가 참담하기 때문에 서로 손해 보는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교과서는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신뢰와 벌칙을 제시한다. 현실에서도 핵 게임은 이 틀에서 움직여 왔다. 북한 핵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번번이 해결에 실패했다.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이유는 분명하다. 상대의 전략은 '핵'과 '비핵(非核)'인데 우리의 전략은 '비핵'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핵과 비핵 카드를 동시에 구사해야 게임이 성립된다. 그래야 신뢰와 벌칙이라는 딜레마 해법도 통한다.

한국의 핵무장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도처럼 핵 기득권을 용인받을 수 있는 대국이 아니다. 이스라엘처럼 미국을 장악한 유대인 파워도 없다. 파키스탄처럼 "풀잎을 먹어도 핵"을 외칠 용기도 부족하다. 설사 그렇게 결심한다고 핵무장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파키스탄 핵이 묵인되고 있는 것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9·11 사태로 파키스탄이 미국의 전선(戰線)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요행'을 바라면서 우리의 풍요를 마른 풀잎과 바꿔선 안 된다. 따라서 1970년대 이후 핵 선택에 성공한 3개국은 한국의 모델이 될 수 없다. 물론 북한도 아니다.

핵 카드는 핵무장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핵을 택하면 나도 택할 수 있다는 능력을 믿게 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참고할 만한 모델이 일본이다. 일본은 발전용 명목으로 핵연료인 플루토늄을 47.8t 가지고 있다. 핵폭탄 6000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일본 당국자는 핵무장을 주장한 일이 없다. '비핵 3원칙'을 내세운 총리가 퇴임후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핵무장 능력을 지속적으로 흘려 왔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능력은 확인된 적이 없다. 일본 입장에선 확인돼서도 안 된다. 그런데 세상은 대체로 그 말을 믿는다. 원료와 기술력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핵 카드다.

핵 카드는 공짜로 얻는 게 아니다. 우리 동해에 연한 후쿠이현 해안에 문수보살의 '문수(文殊)'를 뜻하는 '몬주'라는 이름의 고속증식로가 있다. 우리 돈으로 이미 11조원이 투입됐고 유지 관리비만 매년 2000억원이 들어간다. 설계부터 따지면 반세기 가까이 지났지만 잦은 사고 탓에 가동도 못 하는 유령 원자로다. 그럼에도 일본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에너지 자립에 필수라는 명목이지만 다른 해석도 있다. 고속증식로 용도로 비축한 플루토늄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끌어안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런 원자로들을 내세워 1988년 미·일 원자력협정 때 플루토늄 도입과 생산을 인정받았다. 일본의 핵 카드는 미국이 준 것이다.

일본은 지금 한국의 핵무장론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이 '풀잎'만 먹고는 못 살 나라라는 걸 그들도 뻔히 안다. 그들의 관심은 2년 후 30년 시한을 맞는 미·일 원자력협정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한국의 핵무장론은 한·일의 핵 주권 형평성 문제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조용하면 자동 연장될 특권이 한국의 핵무장론에 휩쓸릴 것을 염려할 것이다. 우리가 핵 주권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역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일본은 핵폭탄 피해국이고 원전 사고도 겪었다. 핵무장론은 금기로 통한다. 하지만 핵이 가진 고도의 이중성을 고도의 이중적 정책을 통해 전쟁과 평화 두 측면에서 충분히 활용해 왔다. 1950년대 핵 정책을 수립한 일본 정계의 거물은 98세인 지금까지 핵무장을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가슴에 담은 일본 국방의 종착점은 핵무장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렇지 않다면 핵을 향한 일본의 집착이 그렇게 일관되게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핵 주권을 내팽개친 한국이 북핵 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북한 정권의 변화도 꿈에 불과할 것이다. 핵 주권을 달성한 나라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탁월한 기술도, 능란한 외교력도 아니다. 핵 지식을 섭렵하고 민족주의로 무장한 끈질긴 애국적 정치 지도자들이다. 핵무장론을 말 잔치로 끝내선 안 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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