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의 사상 - 시라카와 시즈카, 고대 중국 문명을 이야기하다
시라카와 시즈카 | 우메하라 다케시 (지은이) | 이경덕 (옮긴이) | 사계절 | 2008-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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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학인 우메하라 다케시(梅原猛)가 묻고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가 대답하는 두 일본학자의 대담을 엮었다. 시라카와의 학문 세계 전반을 그가 직접 이야기하며 평생에 걸쳐 얻은 깨달음을 정리한다. 91세와 76세의 노학자들이 평생 화두로 삼아온 이야기를 대화로 풀어내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때로는 교차하고, 때로는 부딪치고 가지를 뻗으면서 거대한 고대 세계의 모습을 그려낸다. 또한 신과 인간의 대화라는 일관된 주제로 전개해 책은 신 없는 세계에서 분절된 존재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신과 인간이 마음을 나누고 대화했던 고대 세계와 인류의 원형에 대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동일한 문자와 문화로 출발했음에도 각기 다른 근대화의 길을 걸으며 갈등했던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이 진지하게 대화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당위적 주장이 아니라 엄밀한 고증을 통해, 각국의 역사와 문화의 기원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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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첫머리에
제1장 한자의 주술 - 복문·금문
시라카와 시즈카의 학문 - 이단의 학문에서 첨단의 학문으로
『만엽집』과『시경』- 갑골문과 은 왕조
세 개의 문화 - 문신·자패·주령
신성한 왕과 점복 - 신과 인간의 소통
'도'와 이민족 - 악령 퇴치
은나라의 신비한 세계 - 주나라의 합리주의적인 사회
은나라 이전 - '하','남' 민족 이동
양자강 중류 - 팽두산 문화
다시 양자강 중류 - 굴가령 문화
황하의 신 - 홍수신 공공
재와 모 - 존재,정화된 것
옥의 문화 - 종·벽·월
청동기 문화 - 주진
주진과 벼농사 - 토기와 청동기
한자의 일본적 번용 - 백제인의 발명,훈독
화문조의 한문 읽기 - '화어'를 살린다
공자,장례를 주관하는 무리 - 묵자,기술자 집단
소동파와 도연명 - 시라카와 시즈카는 세 명?
리쓰메이칸과 다카하시 가즈미 - 『버림받은 아이 이야기』와 「육조 시대의 문학론」
장생의 기술 - 120새의 길
제2장 공자 - 광자의 행로
와쓰지 데츠로의 『공자』- 시라카와 시즈카의『공자전』
양호,공자의 스승? - 가깝고도 먼 사람
맹자,추연,순자,한비자 - 제나라로
공자와 묵자 - 기술자 집단,장송과 기술
공자와 기우제 - 머리카락을 묶지 않고
무녀의 사생아 - 교키 보살
은나라에서 주나라로 - 강족과 강성사국
장자·노자 - 『장자』,신들의 이야기
『논어』에서 선종으로 - 어록의 전통
『초사』- 남겨진 신화
중국의 신화 - 빼앗긴 이야기
남인의 신화 - 복희·여와
은나라와 일본 - 연해족의 풍습
형제·자매의 터부 - 근친혼의 풍습
죽음·재생의 사상 - 새가 옮긴 이야기
제3장『시경』- 흥의 정신
악사 집단과 『시경』- 전승된 「풍」·「아」·「송」
『시경』의 발상법과 표현법 - 부·비·흥
'흥'이라는 한자 - 양손으로 술을 따르는 모양
풀 뜯기의 주술 - 원하는 일을 이루기 위한 행위
「아」의 민속 - '새'가 숨어 있다
물고기와 새,하늘과 바다 - 음양적 개념
<관저>의 위치가 말하는 것 -『만엽집』의 유랴쿠 천황의 노래가 지닌 의미
<석서>의 사람들 - 유토피아 '일본'으로 건너왔다?
<시월지교>·십과 칠의 수수께끼 - 유왕 원년,기원전 780년
나라가 멸망할 때 - 고대적 개념에서 생긴 문학
<한록>·「대아」의 '흥' - 히토마로의 궁정가
은나라와 일본과……주나라의 농업 - 피·조,보리……벼농사?
원령과 수호령 - 은나라의 후예·송나라 사람,우미사치의 후예·하야토
옛 형태가 남아 있는 「주송」 - 주나라의 종을 울리며 소리 높여 노래하다
대담을 마치며
옮기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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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는 주술의 말이었고, 청동기는 주술의 도구였다
편집부: 은나라의 청동기에 새겨진 문자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사실 은나라의 청동기에는 아직 문자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없고 다만 도상(圖象)이 있을 뿐이며 도상이 한자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도상에서 한자로 이행한 것이 아니라는…….
시라카와: 도상을 문장 속에서 사용한 예가 없어요. 그러니까 도상과 한자는 별개로 사용된 것이지요. 따라서 도상은 문자 체계 속에 들어가지 않아요.
우메하라: 그렇다면 문자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시라카와: 점을 칠 때 신과 소통하는 관계에 있음을 나타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면, 점의 내용이 실현되었다고 할 때 그것을 쓰고 붉은 색으로 보존하는 절차를 거쳐서 점의 실증성을 증명했어요. 그에 따라 왕의 신성함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우메하라: 청동기도 인간과 신의 관계에서 만들어졌다는 말인가요?
시라카와: 그래요. 청동기도 그 형태의 제기(祭器)를 통해서 조상과 소통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 p.56~5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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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바다 위를 홀로 떠다니듯이”* 공자를 생각하다
편집부: 시라카와 선생님이 『공자전』을 쓰고 계실 때, 리쓰메이칸 대학은 학원 분쟁이 격심했고, 가장 격렬했던 분쟁의 한가운데에서 시라카와 선생님이 공자에 대해 쓰셨다고 우메하라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 시기에 공자였을까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면 어떨까 싶은데요…….
시라카와: 소위 체제화가 점점 심해지는 것을 보면서 공자는 이럴 때 어떻게 했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자들은 또 어떻게 생각했을지에 대해 생각했지요.…… 그 이후는 무참했어요. 그렇다고 내가 태어난 곳에서 뛰쳐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우메하라: 결국 선생님은 이기셨습니다. 지금 리쓰메이칸 대학에서는 선생님을 신으로 여기고 있으니까요. 시대가 변하면 다른 것도 변하게 마련입니다. 광견(狂?)의 무리가 중심이 되고 말지요(웃음). 공자처럼 말입니다. - p.14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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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시라카와 시즈카 (白川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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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후쿠이福井 현에서 태어났다. 리쓰메이칸立命館 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교수를 지냈으며 1976년에 정년 퇴직했다. 퇴직한 후에도 연구에 계속 몰두했고 노년에 이르러 본격적인 저술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 96세로 작고했으며 한자학의 최고 권위자이자 현대 일본의 마지막 석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요 저서로 주술성을 바탕으로 고대의 문자와 문명을 해석한 ≪설문신의說文新義≫(전 15권), ≪한자漢字≫, ≪시경詩經≫, ≪금문金文의 세계≫, ≪공자전孔子傳≫ 등이 있다. 특히 1984년부터 간행된 ≪자통字統≫?≪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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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우메하라 다케시 (梅原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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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미야기(宮城) 현에서 태어나 일본 정토종의 영향력이 강한 아이치(愛知) 현에서 자랐다. 1945년 교토(京都) 대학 철학과에 입학했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1964년 NHK 방송 〈불상―형태와 마음〉의 종합 사회를 맡으면서 “불상이라는 ‘형태’의 배후에 있는 불교 사상이라는 ‘마음’을 발견”하고 불교 경전을 읽기 시작했다. 1955년부터 리쓰메이칸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지만, 1970년 학내 분쟁에 휘말려 있던 리쓰메이칸 대학을 사직하고 재야에서 연구하며 불교의 종조(宗祖)에 대한 논고를 발표했다.
주요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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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이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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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한양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서 아시아 문화, 종교 문화, 신화와 축제 등을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신화 읽어주는 남자》 《역사와 문화로 보는 일본기행》 《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 《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하룻밤에 읽는 그리스 신화》 《길 위에서 마주친 우리 문화》 《인문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등이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 《고민하는 힘》 《주술의 사상》 《일본인은 한국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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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이 책은 일본 학계에서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두 학자가 나눈 대담을 엮은 책이다. 주로 후학인 우메하라 다케시(梅原猛)가 묻고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가 대답하는 형식을 취한다. 시라카와가 작고하기 4년 전에 출간된 이 책은 그의 학문 세계 전반을 시라카와 자신이 직접 들려주고 있어 마치 평생에 걸쳐 얻은 깨달음을 총 정리하는 듯하다. 91세와 76세의 노학자들이 평생 화두로 삼아온 이야기를 대화로 풀어낸 점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때로는 교차하고, 때로는 부딪치고 가지를 뻗으면서 거대한 고대 세계의 모습을 그려낸다.
또한 신과 인간의 대화라는 일관된 주제로 전개된 이 책은 신 없는 세계에서 분절된 존재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신과 인간이 마음을 나누고 대화했던 고대 세계와 인류의 원형에 대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동일한 문자와 문화로 출발했음에도 각기 다른 근대화의 길을 걸으며 갈등했던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이 진지하게 대화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당위적 주장이 아니라 엄밀한 고증을 통해, 각국의 역사와 문화의 기원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단의 학자 시라카와 시즈카, 새로운 중국학의 대가로
고대 중국 연구는 신화와 학문의 경계에 있다. 문헌이나 유물이 새로 발굴될 때마다 고대의 모습을 완전히 새로 그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게다가 문헌학과 실증주의 연구 방법에만 매몰된 학계는 제한된 자료와 교조적인 해석으로 고대를 연구하는 한계를 보인다. 시라카와 시즈카는 문자에 주목하여 고대 세계의 모습을 복원해낸다. 문자에는 고대의 생활세계와 형이상학이 오롯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시라카와는 갑골문과 금문(金文)의 고증과 방대한 경전과 문헌의 섭렵,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통합적 연구를 통해 문자가 지닌 고도의 상징성을 해석해낸다. 이를 통해 그는 고대 중국 문명의 핵심은 ‘주술’이라고 파악한다. 이처럼 주류 학계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파격적인 해석 때문에 당시 일본 학계에서 이단 학자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2006년 작고 이후 ‘시라카와 중국학’은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주술과 흥(興)의 정신으로 보는 고대 사회
시라카와는 고대 세계에는 합리로만 이해되지 않는 ‘신(神)’의 세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흔히 상형문자로 이해되는 한자는 단순히 형상을 본뜬 것이 아니라 고도의 주술적 상징을 내포한 기호로 해석되며, 문자는 인간 사이의 소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신과 인간의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문자로 이루어진 기록들은 제례 의식에 사용된 노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공자 역시 유교적 성인이 아니라 무녀의 사생아로 태어나 제사 등의 주술적 기능을 담당하는 무리를 이끌었으며, 실패한 혁명가라고 해석한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이자 동아시아 고전 문학의 규범으로 자리 잡아온 『시경(詩經)』 역시 시적 대상의 생명력을 일깨워 치유력을 발휘하는 주술의 노래로 해석된다. 이처럼 주술이라는 키워드로 고대를 봄으로써, 합리주의와 이성만을 강조하는 근대성을 성찰하고 파편화된 개인을 공동체 그리고 자연과 매개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이 책이 꼭 필요한 이유이다.
시라카와 시즈카는 누구인가?
시라카와 시즈카는 주류 학계와는 거리를 둔 채 평생 동양적인 것의 근원을 밝히는 데 몰두했다. 어린 시절 대도시로 떠나와 국회의원 사무소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맛본 중국 고전들은 자연스럽게 그를 고대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었고, 그는 고대에 다가가는 방법의 하나로 갑골문과 금문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전개되던 1960년대 말 일본에서는 전공투 학생운동이 대학가를 휩쓸었다. 그가 재직하던 리쓰메이칸(立命館) 대학 역시 학내 분쟁으로 들끓었지만, 시라카와의 연구실은 늘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고, 그는 학생들로부터 구타를 당하기까지 했다. 그는 훗날 이 시기와 일본 제국주의 시기를 떠올리며 동양의 정신과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는 광기와 폭력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고 회고한다(본문 270~271쪽 참조). 대학에서 퇴직한 후 오히려 그의 학문은 활짝 꽃을 피워 ‘자서(字書) 삼부작’을 통해 명성을 얻었고, 말년에는 대중 강연을 통해 일본 사회에 고대 문화와 한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자의 주술, 신과 인간이 소통하다
시라카와의 학문적 출발점은 한자이다. 대상의 형상을 본뜬 상형문자로 인식되는 한자는 단순한 상형이 아니라 상징으로서의 표현력을 지닌다. 시라카와는 한자가 지닌 상징성을 주술성으로 풀이한다. 예를 들어 ‘道(도)’의 갑골문과 금문을 분석한 결과, 이민족의 머리를 들고 걷는 모습이라고 풀이한다. 한 민족의 영역 바깥에 있는 이민족 신의 위력을 약화시키고 자신들이 섬기는 영(靈)과 다른 영을 퇴치하기 위해 이민족의 머리를 베어 들고 다닌 모습에서 이 글자가 유래했다는 것이다. 이 글자의 오른쪽에 있는 首(머리 수)에는 그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이처럼 시라카와는 주술적 상징으로서의 문자 이해를 바탕으로 고대부터 유래한 구전과 기록은 신과 인간의 대화이며, 나아가 고대 세계는 주술적 세계였다고 말한다.
무녀의 사생아, 실패한 혁명가, 유랑하는 인간 공자
두 번째 대담에서 시라카와는 공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미 저서 『공자전(孔子傳)』(1973)에서 파격적인 주장으로 관심을 불러일으켰듯이, 시라카와는 공자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갖고 있다. 시라카와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와 후대 유학자들에 의해 굳어진 성인으로서의 공자 해석을 부정한다. 시라카와는 공자가 무녀의 사생아이며, 공자를 비롯한 유가는 원래 장례와 제례 의식을 담당하는 집단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공자의 출신 배경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담은 『논어(論語)』를 낳는 배경이 되고, 이상주의자로서의 공자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공자는 고대 성왕 시대를 이상적인 시대로 상정하고, 여러 나라를 유랑하며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펼치고자 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시라카와는 공자를 ‘광자(狂者)’로 규정하는데, 광자는 단순히 ‘미친 사람’이 아니라 부조리한 현실 체제를 개혁하고자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해 답답해하는 사람이다. 시라카와는 공자에게서 유교의 비조(鼻祖)라는 권위를 탈색하고, 그를 한평생 유랑하며 끊임없는 실패를 밑거름으로 인간과 세계를 깊이 이해한 비범한 한 인간으로 복원한다.
치유의 노래 주술의 노래, 『시경』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은 오경(五經)의 하나로, 공자가 편집했다고 알려져 문학작품임에도 유교 경전의 하나로 연구되었으며, 동아시아 시가문학의 규범이 되었다. 시라카와는 『시경』이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인 노래로 불리던 시기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시경』의 시들은 악사 집단이 연회나 제사 때 악기의 반주에 맞춰 노래로 불러 전승되었고 후대에 문자로 기록되었다. 대부분의 시가 남녀 간의 사랑이나 서정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편집되는 과정에서 시의 배열과 순서가 조정되고 시편 간의 조합이 일어나면서, 노래의 주술성이 약화되고 그 역사적 배경이 간과되었다고 한다. 시라카와에 따르면 『시경』의 시편들은 시적 대상의 내적인 생명력을 불러일으켜 노래하는 사람을 치유하는 주술의 노래이다. 또한 민중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노래하고 지배층의 폭정을 풍자하는 강력한 정치?사회 비판의 노래였다고 해석한다. 시라카와는 일본의 가장 오래된 시집인 『만엽집(萬葉集)』과 『시경』의 비교를 통해, 둘의 역사적 배경이 유사함에도 그 표현이 다른 것에 주목하고, 중국과 일본 고대 사회의 차이를 유추한다. 중국이 격심한 사회변동을 겪으면서 그 양상이 문학작품에 반영된 것에 비해 일본은 고대 사회의 성격이 비교적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중국 문학작품의 비판적 성격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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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의 사상 / 시라카와 시즈카, 우메하라 다케시
nana35 ㅣ 2016-08-30 ㅣ
1장 한자의 주술 - 복문, 금문
시라카와 : 은이라는 나라는 대통일을 이룬 왕조가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인지라. 그러니까 씨족 세력을 통합한 정도예요. 그리고 여기저기에 자기의 왕자를 파견해서 분자봉건分子封建이라는 방식으로 통합을 위한 정치력을 얻었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각 부족이 불만을 갖고 분리하면 곧바로 붕괴되고 마는 구조지요. 국가라고 할 수 없는 형태였지요.
우메하라 : 그래서 신이 절실하게 필요했겠군요.
시라카와 : 그렇지요. 절대적인 신이 없으면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을테니까요. p.37
시라카와 : 신성왕조는 이러저러한 이민족들에 대한 지배를 포함해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신이 되어야만 하는 거지요.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신과 소통하는 수단이 바로 문자였다고 할 수 있지요. ... 갑골문의 경우, 신에게 "이 문제에 대해 해답을 주세요"라는 식으로 묻는데, 신이 직접 답을 하는 게 아니라서 자기가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물어서 "신도 승낙했다"고 선언하는 것이지요. p.26
시라카와 : 나무를 세운다는 것은 기둥을 세우거나 굿을 할 때 장대를 세우는 것처럼, 신을 부르는 방법이기 때문에 매우 의미가 깊어요. 이렇게 종횡으로 묶은 나무 매듭에 축사祝詞를 넣은 그릇을 붙여요. 여기는 신성한 장소야, 이 공간은 신성한 장소야, 라고 말하는 거지요. ... 이것이 현재의 '재才'예요. 여기에 봉분을 한 무덤을 덧붙이면 '존재存在'의 '재在'가 되지요. 여기에 사람이 살게 되면 '존存'이 돼요. 따라서 '존재'라고 하는 것은 '신성화한 땅과 사람'이라는 의미예요. 그저 있다는 뜻이 아니에요. 신에 의해 '축복받은 것', '정화된 것'이라는 의미지요. p.42
2장 공자 - 광자의 행로
시라카와 : ('儒'자를 보면) 위에 비(雨)가 있어요. 아래에 而는 사실 사람의 모습으로 머리카락을 묶지 않은 사람의 모습을 뜻해요. 보통이라면 머리카락을 묶고 비녀를 꽂아 머리를 정리하지요. 거기서 夫라는 글자가 생겼어요. 그런데 而는 비녀를 꽂지 않은 특이한 모습이에요. 儒는 복장이나 모습도 달랐어요. 이들이 기우제를 맡았기 때문에 儒의 본래 의미는 '비를 기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비가 내리면 '濡'가 되는 거예요. 따라서 유가는 이처럼 무축巫祝 출신이에요. p.114
시라카와 :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로는) 먼저 무리를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교조로서 행동하지 않았어요. ... 그리고 스스로 성인이라고 칭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면 반드시 부정했어요.
또 누군가 인간으로서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은 무엇인지 물으면 공자는 이념적으로는 중용中庸을 지키는 인간이 가장 좋다고 대답해요. 중용이 가장 좋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중용을 잃지 않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요.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지 물으면 '광견狂?'의 무리가 좋다고 대답해요. '광'은 진취적인 사람이에요. '견'은 죽어도 그런 일은 하지 않겠다는 식의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에요.
우메하라 : 그것은 '중中'과는 반대가 아닙니까?
시라카와 : 광견의 무리가 좋다고 대답하지만, 지혜로운 자가 좋다고는 말하지 않아요. ... 공자는 몇 번이고 쿠데타를 일으켰어요. 그러나 번번이 실패하고 제齊나라에서 도망치거나, 또는 위衛, 송宋, 진陳, 채蔡나라에서 초나라까지 도망쳐야 했어요.
...
우메하라 : 무녀의 사생아, 그리고 실패한 혁명가라면 광견이 맞겠군요.
시라카와 : 그래서 공자를 깨달은 인간의 부류에 넣어서는 안 되지요. (웃음) pp.72-3
시라카와 : 만약 그가 성공했다면 한 사람의 정치가로 삶을 마쳤을 거예요. 그런데 그는 마지막까지 실패했고, 방랑을 해야 하는 참담한 삶을 살아야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삶 자체가 하나의 사상이 된 것이지요. 그리고 유교라는 사상 체계가 만들어지게 되었지요. 즉 그의 인격적인 구심력이 많은 제자를 불러 모았어요. 유교의 사상이라는 것은 실제로 그 제자들에 의해 구성된 것이에요. 핵심이 되는 부분은 공자가 말한 것이지만, 그것을 유교적인 체계로 조직한 것은 그의 제자들이지요.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지요. 본인들은 그런 대단한 것을 말하지 않았어요(웃음). p.104
3장 <시경> - 흥興의 정신
시라카와 : 문자를 통해서 살펴보면, '興'이라는 글자의 윗부분은 '同'이라는 글자를 써요. 이렇게 술을 따르는 대롱(筒) 모양의 용기예요. 이것을 양손으로 쥐고 양손으로 바치는 것이 '興'이라는 글자예요. 그리고 양손으로 술을 따르는 것 또한 '興'이라는 글자예요. 술을 땅에 붓는 거지요.
왜 이런 일을 하는가 하면, 어떤 곳에서 어떤 행사를 하게 되어 의례를 거행하는 경우에, 먼저 그 토지의 신을 안심시키고 진정시켜야 해요. 토지의 신을 진정시킬 때에 '同'이라는 잔에 술을 따르고 모두 술을 땅에 부어서 토지의 정령을 달래는 거지요. 그렇게 하면 토지의 정령은 그 행위 때문에 잠에서 깨요. '興'이라는 것은 '잠에서 깬다',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의미가 있잖아요. 잠에서 깬 토지의 정령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듣게 되지요. 토지의 정령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흥'이에요. 따라서 '흥'이라는 것은, 노래를 통해서 어떤 것이 지니고 있는 내적인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의미하지요.
... 얼핏 보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를 통해 주제를 끌어낸다는 의미가 있어요. '흥'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주제를 끌어낸다는 의미를 지니는 거지요. 원래는 토지의 정령을 불러 깨우는 것이 '흥'이지만, 그것을 확대해서 수사법에 적용시킨 거예요. pp.198-9
시라카와 : 당시의 사람들은 자연 그 자체를 영적인 세계로 여겼고, 그러한 영적인 세계의 다양한 발신發信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 세계가 '주呪'의 세계예요. ... <시경>에도 이 '흥'적 발상법을 가진 노래는 거의 대부분 주술적인 노래예요. p.203
시라카와 : (은나라는 아직 신화를 갖고 있어서 신화적인 세계관 아래에서 제정일치적인 정치를 하던 신성왕조였는데) 주나라는 그것을 무너뜨렸어요. 그렇지만 주나라는 은나라의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신화 체계를 갖고 있지 않았어요. 따라서 우리는 천명에 의해 왕권을 쥐었다는 것 이외에 왕권의 근거를 보여줄 것이 없었지요. 그래서 천명을 받았다고 말했던 거예요. 정치의 이념으로 천명이 주장되었기 때문에 <시경> 속에서는 주술적인 관념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었던 것이구요.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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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비밀 새창으로 보기
leeza ㅣ 2009-11-19 ㅣ 공감(2) ㅣ 댓글 (1)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자는 옛 사람들이 서로간의 소통을 위해 만든 문자이다. 확실히 지금 한자의 지위는 그런 소통의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글과 한자의 논쟁이 불거지는 이유는 바로 그런 관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예전의 한자의 지위가 그런 정도였을까?
이 책은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의 한자학 대담을 기록한 책이다. 이미 '한자 백가지 이야기'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책 또한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거다. 한자의 발생 기원을 밝히고 있으며 한자의 비밀을 알려 주는 책이니까.
한자는 결코 사람끼리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글자가 아니다. 바로 이런 주장으로 풀어쓸 수 있는 책이 이 책이다. 그건 곧 신과의 소통을 위한 창구였을 뿐이다. 우린 지금 발견할 수 있는 태초의 한자가 쓰여진 도구가 거북 앞 껍질(갑골문), 쇠(금문)임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그건 제사의 예식을 기록한 것이거나 왕의 치적을 하늘에 알리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이 책은 한자를 공부하는 전문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좋은 책이다. 난 이 책에서 시경의 육의(풍아송부비흥) 중, 흥의 문체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비와 흥의 차이를 놓고 많이 고민했으니까. 비와 흥은 얼핏 보면 똑같다. 비유적인 표현으로 시체를 구성하는 것이니까. 둘다 같다면 굳이 시체를 나눠놓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경에는 엄연히 두 가지 체제가 나눠져 있지 않은가?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보고서 어느 정도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이런 한자에 대한 전문서라는 점이다. 이 두 가지를 가지고 고민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집어 들고 찾아보길 바란다.
한문 문장과 씨름하며 한자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한자라고 그리 가만히 넘겨볼 수 있는 게 아니더라. 한자 또한 심오한 사상과 역사를 지닌 거니까. 한문을 공부하다보니 한자의 매력에 까지 빠질 수 있어서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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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의 관점에서 바라본 중국 고대사와 공자 새창으로 보기
울프심 ㅣ 2008-09-26 ㅣ 공감(5) ㅣ 댓글 (0)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공자가 주술집단의 우두머리라는 광고물을 보고서 도올 김용옥이 어느 책에선가 공자가 야합(野合)으로 태어났다고 말한 바와 오버랩이 되면서 읽고 싶다라는 충동을 느껴서이다.
우선, 중국의 청동기 문화와 공자 그리고 시경을 響,狂,興으로 나누어서 한자의 기원인 갑골문을 고찰하면서 시대상과 문화 나아가서 제례까지 연결시킨 시라카와 시즈카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청동기 유물과 각종 신화상에 나타나는 인물과 사건이 단순히 과거의 사실의 나열이 아닌 중국 고대인이 꿈꾸었던 세계 아니 경배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불,물,공기로 시적인 상상력을 연결시켰던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가 많이 생각되었다.
이 책의 신선한 면은 시라카와 시즈카의 독특한 관점과 학문적 열정이겠지만, 일본사와 비교하는 관점에 들어서면, 결국은 이 두 대담자인 우메하라 다카시와 시라카와 시즈카의 한계가 보이지 않나 싶다. 시경과 만엽집의 비교, 나아가서 고대 이족과 일본 고대인과의 비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차라리 반도인과 일본 도래인의 관계 나아가서 만엽집이 책에서 언급했듯이 백제가 이두를 창제 - 이건 처음으로 접해본 사실(?)- 하면서 한자를 음독과 훈독 양쪽을 읽을 수 있게 됬다면 신라의 향가의 비교가 더 적합한 것은 아니었는지 굳이 시경과 만엽집의 비교를 통한 보편적 설명을 추구하는 것은 조금 무리라고 생각되었다.
어쨋든, 누가 뭐라해도 늦은 나이에도 학문에 정진했던 시즈카와 시즈카와 우메하라 다카시의 학문태도에 경의를 표하면 나 역시 그 나이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공부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조금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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