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노무현정부 때 첫 실험 뒤
MB때 2차례, 현정부서 2차례
전문가들 “제재·압박 필요해도
출구는 대화에서 찾아야”
뉴욕타임스 “오바마 정책 실패
협상 재개해야” 주문 나와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5차례 핵실험 가운데 4차례가 대북 강경책을 앞세운 이명박·박근혜 보수정부 시절에 이뤄졌다. 북한을 힘으로 압박하는 보수정권의 강압적인 대북정책은 사실상 북한의 핵문제 해결에 무력했음을 방증하는 사례로 풀이된다.
북한의 핵실험은 2006년 10월 첫 실험만 노무현 정부 때에 이뤄졌다. 반면 2009년 5월의 2차 핵실험과 2013년 2월의 3차 핵실험은 모두 이명박 정부 시절에 일어났고, 올 1월 4차 핵실험과 이번 9일의 5차 핵실험은 박근혜 정부 임기 중 발생했다. 그동안 새누리당 등 보수세력은 북한 핵실험의 원인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퍼주기’ 때문이라고 공격하곤 했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5차례 핵실험 가운데 80%가 대북 강경책을 구사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8년간 일어났다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일방적인 주장이다.
실제 핵실험의 전후의 상황을 살펴봐도 한국·미국 정부와 북한의 대화 통로가 차단된 채 대북 강경책만 몰아치는 정세가 북한 내부의 정치적 사정 등과 맞물려 핵실험 등 극단적인 반발을 불러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06년 10월의 1차 핵실험은 당시 조지 부시 미국 정부가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을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해 북한의 예금이 묶인 상황, 곧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대한 반발 성격이 컸다. 북한은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 등을 추진하기로 한 9·19 공동성명 합의 직후 발생한 이 사건에 강력히 항의하며 첫 핵실험을 강행했다.
2009년 5월의 2차 핵실험 상황은, ‘북핵 불능화’까지 진행하던 6자회담이 2008년 12월 북핵 검증의정서 채택 실패 이후 다음 회의 일정도 잡지 못하는 등 표류하던 때였다. 게다가 2008년 2월 임기를 시작한 이명박 정부는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이행 거부, 금강산 관광 중단 등으로 북한과 대립각을 세웠다.
북한은 이후 남북, 북-미 대화가 단절되고 군사적 대결 구도가 뚜렷해지자, 2013년 3차 핵실험과 올 1월 4차 핵실험에 이어 9일엔 5차 핵실험까지 단행하게 된다. 북한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과 김정은 정권 등장 이후 2012년 4월 개정 헌법에 핵보유국 명문화, 2016년 5월 당규약에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 명문화 등을 통해 핵개발을 공식화하는 절차를 밟아 나갔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원장은 “현 정부가 대화와 협상을 배제한 채 모든 에너지를 대북 압박에 올인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대북 압박은 필요하지만 결국 마지막 출구는 대화와 협상일 수밖에 없다.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올 수 있는 적극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 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10일(현지시각)치 ‘북한에서의 큰 폭발, 미국 정책에 대한 큰 의문들’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7년여 동안 오바마 대통령은 한때 ‘전략적 인내’라고 불린, 제재를 점진적으로 높이는 정책을 채택했다”며 “그러나 9일 북한의 핵실험은 그러한 접근법이 실패했다거나 북한이 핵무기 폭발의 기초를 완전히 습득했다는 것에 대한 어떤 의심도 없애버렸다”고 단정했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함께 대북 강경책을 뒷받침해온 정책 기조이다.
미국 정부는 이제 ‘불편한 선택’에 처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북한의 핵 고도화를 막는 데 분명히 실패한 점진적 제재 강화 정책을 고수하느냐, 아니면 동북아를 긴장에 빠뜨릴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정책을 취하느냐, 아니면 불쾌하지만 핵동결을 놓고 북한과 ‘거래한’ 전임 정부의 선택을 반복하느냐는 선택에 부딪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신문은 사설에서 “제재만으론 대북 정책이 성공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북한과 협상에 나서라고 강도 높게 촉구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suh@hani.co.kr
MB때 2차례, 현정부서 2차례
전문가들 “제재·압박 필요해도
출구는 대화에서 찾아야”
뉴욕타임스 “오바마 정책 실패
협상 재개해야” 주문 나와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5차례 핵실험 가운데 4차례가 대북 강경책을 앞세운 이명박·박근혜 보수정부 시절에 이뤄졌다. 북한을 힘으로 압박하는 보수정권의 강압적인 대북정책은 사실상 북한의 핵문제 해결에 무력했음을 방증하는 사례로 풀이된다.
북한의 핵실험은 2006년 10월 첫 실험만 노무현 정부 때에 이뤄졌다. 반면 2009년 5월의 2차 핵실험과 2013년 2월의 3차 핵실험은 모두 이명박 정부 시절에 일어났고, 올 1월 4차 핵실험과 이번 9일의 5차 핵실험은 박근혜 정부 임기 중 발생했다. 그동안 새누리당 등 보수세력은 북한 핵실험의 원인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퍼주기’ 때문이라고 공격하곤 했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5차례 핵실험 가운데 80%가 대북 강경책을 구사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8년간 일어났다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일방적인 주장이다.
실제 핵실험의 전후의 상황을 살펴봐도 한국·미국 정부와 북한의 대화 통로가 차단된 채 대북 강경책만 몰아치는 정세가 북한 내부의 정치적 사정 등과 맞물려 핵실험 등 극단적인 반발을 불러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06년 10월의 1차 핵실험은 당시 조지 부시 미국 정부가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을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해 북한의 예금이 묶인 상황, 곧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대한 반발 성격이 컸다. 북한은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 등을 추진하기로 한 9·19 공동성명 합의 직후 발생한 이 사건에 강력히 항의하며 첫 핵실험을 강행했다.
2009년 5월의 2차 핵실험 상황은, ‘북핵 불능화’까지 진행하던 6자회담이 2008년 12월 북핵 검증의정서 채택 실패 이후 다음 회의 일정도 잡지 못하는 등 표류하던 때였다. 게다가 2008년 2월 임기를 시작한 이명박 정부는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이행 거부, 금강산 관광 중단 등으로 북한과 대립각을 세웠다.
북한은 이후 남북, 북-미 대화가 단절되고 군사적 대결 구도가 뚜렷해지자, 2013년 3차 핵실험과 올 1월 4차 핵실험에 이어 9일엔 5차 핵실험까지 단행하게 된다. 북한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과 김정은 정권 등장 이후 2012년 4월 개정 헌법에 핵보유국 명문화, 2016년 5월 당규약에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 명문화 등을 통해 핵개발을 공식화하는 절차를 밟아 나갔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원장은 “현 정부가 대화와 협상을 배제한 채 모든 에너지를 대북 압박에 올인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대북 압박은 필요하지만 결국 마지막 출구는 대화와 협상일 수밖에 없다.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올 수 있는 적극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 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10일(현지시각)치 ‘북한에서의 큰 폭발, 미국 정책에 대한 큰 의문들’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7년여 동안 오바마 대통령은 한때 ‘전략적 인내’라고 불린, 제재를 점진적으로 높이는 정책을 채택했다”며 “그러나 9일 북한의 핵실험은 그러한 접근법이 실패했다거나 북한이 핵무기 폭발의 기초를 완전히 습득했다는 것에 대한 어떤 의심도 없애버렸다”고 단정했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함께 대북 강경책을 뒷받침해온 정책 기조이다.
미국 정부는 이제 ‘불편한 선택’에 처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북한의 핵 고도화를 막는 데 분명히 실패한 점진적 제재 강화 정책을 고수하느냐, 아니면 동북아를 긴장에 빠뜨릴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정책을 취하느냐, 아니면 불쾌하지만 핵동결을 놓고 북한과 ‘거래한’ 전임 정부의 선택을 반복하느냐는 선택에 부딪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신문은 사설에서 “제재만으론 대북 정책이 성공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북한과 협상에 나서라고 강도 높게 촉구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suh@hani.co.kr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