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7

1920-1940년대 구미인의 만주 및 간도 인식 - 도시연구 - 도시사학회 : 논문 - DBpia, 연구를 돕는 똑똑한 학술콘텐츠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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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1940년대 구미인의 만주 및 간도 인식
라티모어(Owen Lattimore), 죤스(Francis C. Jones), 영미선교사, 그리고 전후 정책관련자들을 중심으로

Westerners’ Understanding of Manchuria and Chientao (Kando) During 1920-40s : Owen Lattimore, Francis C. Jones, Missionaries, and Post-War Policy Makers

안종철(독일 튀빙겐대)
도시사학회도시연구도시연구 : 역사·사회·문화 제21호2019.04103 - 134 (32 pages)KCI등재
DOI : 10.22345/kjuh.2019.04.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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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연구는 1930-40년대 만주지역, 특히 한국인들이 거주민 다수를 이루고 있었던 간도지역에 대한 서구인들의 인식을 다룬다. 만주지역은 오늘날 중국의 동북 3성 지역에 해당하는 곳인데, 청대말까지 왕조의 발상지로 알려졌기에 청당국은 사람들이 이주하는 것을 금했고, 만주족과 몽골족 등이 거주하던 지역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1930년대 이후 가 되어서야 근대 영토와 국경개념을 통해 경계가 확정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인들의 만주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연구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연구는 1920년대 이후 이 지역을 답사했던 서구인들 중 학문적으로 정책적으로 가장 영향력있다고 판단한 사람들 중, 미국인 오웬 라티모어(Owen Lattimore), 영국인 죤스(Francis C. Jones), 그리고 선교사들의 만주에 대한 인식을 다룸으로써, 이 지역의 중국 본토와 구별되는 특성과 지리적 문제에 대해 설명하려고 했다. 이들은 만주지역이 다양한 종족들(ethnic group)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서, 중국 본토와는 다른 자연환경적 특성에 주목했고, 특히 간도 지역의 전통적인 한국인들의 거주지로서의 특성을 공히 인식했다. 특히 라티모어는 이들 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현지조사와 문헌조사를 통해서 중국사의 변화를 이 지역과 중국 본토의 역사적 접촉을 통해 이해하고자 했다. 또한 죤스는 이 지역을 답사하고 영국에 돌아가 전후 만주에 대한 학문적 업적을 생산했다. 선교사들은 일본식민당국의 만주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만주지역의 독자성을 인식했다. 이러한 인식들은 해방 후 미국이나 영국의 정책제안자들에 의해서 이 지역이 중국 본토와는 구별되는 지역으로서 “신탁통치”의 대상으로 제안되기도 했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1949)의 수립을 통해서 이 지역의 근대적, 배타적 영토주권이 확립되게 되면서 만주에 대한 다양한 기억은 묻혀졌다.

This study focuses on Westerners’ perception of Manchuria, particularly Chientao during the 1920s-40s, wherein ethnic Koreans were the majority resident group. Manchuria is currently composed of 3 Chinese northeast provinces, in which mostly Manchu and Mongolian ethnic groups resided, and had been restricted, up to the 1870s. Thus, this region has been fixed in terms of modern territorial boundaries, and related perception. However, there is scant research on this topic.
Therefore, this study focused on Western intellectuals who had conducted field research since the 1920s, by focusing on scholars such as American, Owen Lattimore, British, Francis C. Jones, and several missionaries. Through this perspective, I want to explain how these Westerners understood this geographical area, distinct from China proper. They shared a common understanding that Manchuria had diverse ethnic groups, with unique geographical features. Also, they shared similar perspectives that Korean residents in Chientao had unique features. Through several field trips a consultation with assorted bibliography, Lattimore explained the evolution of Chinese history, as exchanges between China proper and Manchuria. Jones also traveled to Manchuria, and closely observed the transformation of Manchuria, since 1931. Though missionaries’ approach to Manchuria did not deviate from the purview of Japanese colonial authorities, they also realized Manchuria was distinct from China proper. This type of understanding of Manchuria, influenced U.S. and British policy makers, in that they suggested imperative application of “trusteeship” in Manchuria, distinct from China proper. However, through proclamation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in 1949, diverse memory of this area has been also muted, with application of modern and exclusive territorial sovereig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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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서론
II. 오웬 라티모어(Owen Lattimore)와 만주 및 간도인식
III. 프랜시스 죤스(Francis C. Jones)의 만주와 간도인식
IV. 영미권 선교사들의 만주와 간도인식
V. 전후 영미의 정책관련자들의 만주지역에 대한 인식과 정책제언
VI. 결론
참고문헌
국문요지
Abstract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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