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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참과 거짓 사이에서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0.11.30
한남대 명예교수
[금강일보] 나는 이제까지 살면서 참말과 거짓말, 참과 거짓 사이를 얼마나 많이 오고 갔을까?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선생님들로부터 거짓말하면서 살라고 교육받은 적은 한 번도 없는 듯이 기억된다. 비록 그분들도 거짓말을 하기는 하였지만, 가르치는 것은 달랐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들이 나를 혹시 거짓말쟁이라고 할까봐 걱정한 적이 많이 있다. 이런 걱정 속에는 참말을 했는데, 그것이 참말 같지가 않아서 동무들이 참말로 믿어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거나, 참말이라고 하였지만 사실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나 자신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지 말고 살라고 가르치는 것은 참말 하기는 쉽지 않으나 거짓말 하기는 참 쉽기 때문이고, 그 거짓말로 자기나 다른 사람이 입게 될 일이 너무 커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참말과 거짓말 사이를 오고가면서 살았을까? 참말을 할까 거짓말을 할까 고민하면서 살게 되었을까? 참말만을 한다고 하는 사람에게도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주 깊은 딜레마에 빠질 때가 참 많다. 그래서 거짓말과 참말 사이에서 꼭 어느 말만이 정당한 것이고 다른 것은 부당한 것이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살다보면 어떤 사람 말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여도 믿는다고 하는데, 또 어떤 사람은 콩으로 메주를 쑤었다고 하여도 믿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도 참 거짓말을 잘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를 보고 그의 말 90%는 거짓말이라고 하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누구는 그는 거짓말을 숨쉬듯이 한다고 하기도 하였다. 사실 거짓말을 밥먹듯이, 숨쉬듯이 한다는 말은 그 거짓말이 곧 그의 생명이요 생명력이란 뜻이 될 것이니 그에게 참말을 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그만 살라는 말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이렇게 말하는 나는 거짓말을 더 많이 했을까? 참말을 많이 했을까? 거짓말 했다가 참말을 하고, 참말이라고 하면서 또 거짓말을 반복하였을까?
참 놀라운 것은 말은 한 번 뱉어버리면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 말을 수습하기 위하여 또 다른 말을 수도 없이 많이 쏟아내고 뱉어낸다. 참말을 했는데도 누구인가가 믿어주지 않는다면 그것도 참 답답한 일이지만, 그런 때는 할 말을 잃을 때가 많다. 그러나 거짓말을 했을 때는 그 말이 거짓이 아니고 참이라고 믿게 하기 위하여 굉장히 많은 거짓말의 연쇄고리를 만들어낸다. 수도 없고 끝도 없는 거짓말을 해야 한다. 그것은 곧 참말이 옳은 것이라는 것을 거짓말하는 것으로 증명하는 것이지만, 그런데도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는 사이에 거짓과 참이 마구 뒤섞여서 무엇이 거짓이고 참인지 모르게 된다. 남도 헷갈리지만 그 말을 한 사람도 언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게 헷갈린다. 그래서 자기가 던진 말에 스스로 얽혀서 꼼짝을 못하게 될 때도 많다. 그런데도 또 거짓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해야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런 거짓과 참 사이를 오고가는 것은 그냥 그 말을 한 그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말을 한 사람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중요하거나, 그 사람이 좀 크다고 평가받는 사람이라거나, 그 말이 사회에 미칠 영향이 큰 일이라면 그 말은 일파만파 퍼져서 멀리멀리 요동쳐 나간다. 이 사람 저 사람을 거치면서 그 말이 참말이라거나 거짓말이라는 말을 이러저러한 것들을 다 동원하여 판단한다. 그것을 판단하는 데도 온갖 참과 거짓이 다 동원된다. 거짓과 참의 물결이 온 사회를 휘젓고 다닌다. 마치 폭풍이 부는 날 온 천지를 휘젓고 다니듯이 모든 사람이 다 이 거짓말과 참말의 회오리바람에 휘말린다. 그 말들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 마치 참 삶을 사는 것처럼 입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한 두 마디 씩 던져 이 말 잔치에 참여한다. 그런데 그 말의 진실과 허위를 그런 것들이 판별하여 종결하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그 말잔치가 적절한 시간에 끝나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제대로 된 일상을 살아나갈 수가 없다. 그래서 그것의 참과 거짓을 판가름하여 달라고 소송한다. 판결은 법원에서 한다. 변호사를 대고, 자기가 직접 참여하여 길고 지루한 과정을 거쳐서 법원에서 일하는 법관의 마지막 판결이 나온다. 그러나 그 판결이 잘 되고 만족스럽다고 양쪽 다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서 그 논란을 일단 종결시키기는 하지만, 그것의 참과 거짓의 그네뛰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것은 법원에서 하는 것도 아니란 뜻이다. 거기에서는 단순히 일단 이렇게 끝내자는 합의를 끌어내는 것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사이의 참과 거짓의 다툼이 바로 이런 문제로 온 사회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나는 누구의 말이 참이고 거짓이라는 점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이런 진실공방이 가지고 오는 사회변동에 맘이 쓰인다. 이것의 시작은 검찰개혁문제다. 이것이 검찰개혁에 어떤 효과를 가지고 오는가 하는 것이 내 관심이다. 이번에 드러난 몇 가지가 있다. 검찰이나 검찰총장의 권력이야말로 대통령이나 청와대보다 더 강력한 살아 있는 권력이라는 것, 그 권력을 지금은 제어할 힘을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모두가 다 검찰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검찰을 제어할 힘이 필요하다는 것, 검찰개혁을 철저하게 시간을 놓치지 않고 해야 한다는 것, 이번 진실공방에서 누가 이기고 짐과는 상관없이 검찰개혁의 길은 넓게 닦여지고, 그 속도 역시 빠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나에게 분명하다. 사회변동의 역동은 참 재미있다. 될 것과 되지 않을 것이 얽혀 되게 한다는 것이다. 검찰이 이기든 지든 검찰개혁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말씀이요 흐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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