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성노동 프로젝트 3회
멜섭이
멜섭이
2020.04.06 조회 256 댓글 1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멜섭왹비
저는 이 글을 통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선언할 것입니다.
저번 미아리 텍사스 소개 글을 썼으니까,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본격적으로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이번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거는요. 여러분, 사람들은 성매매/성노동 문제를 너무나 단순하게 생각해요. 다층적인 맥락은 살펴보지도 않고, 단지 ‘여자’ 당해서 성매매에 유입되는 줄 알아요. 사람들이. ‘여자’ 당한 나는 성매매 같은 거 안하고도 잘 먹고 잘 사는데, 너는 ‘공장’이나 ‘콜센터’같이 정상적인 직업 놔두고 왜 성매매하니. 결국에 성매매가 좋은 거지? 여성 인권 낮추는 창년아. 이런 말 들으면 저는, 제가 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여자’ 당했음에도 성매매에 유입될 수밖에 없고, 성매매를 계속하는지 이야기해요.
그러면 사람들이, 너 이 포주새끼 결국에 가난한 여성들 보고 성매매 권유하는 거냐고 해요. 그래서 제가 한동안 내가 왜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었고, 계속해야만 하고, 탈성매매가 불가능한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화가 나서, 이 이야기를 하는 자체만으로도 내가 소진되고, 소모되는 느낌이라 속상했어요. 저 사람들은 그냥 편하게 액정 두드리면서 제가 진짜 절박한, 생계형 창녀인지 심판질 하고 있는 거잖아요. 저는 그거에 놀아나는 거고. 기초생활수급자 복지 받을 때도 제가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가고, 앞으로도 그런 절망적인 삶이 이어질 거라고 국가에 증명해서 받아냈어요. 제가 이거를 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하고 있으니까 허무하고, 슬퍼져서.
그래서 가급적이면 제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어요. 불행 포르노로 읽히기 좋은 삶이라. 저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성노동자에 대한 특정 이미지만 고착화 시키는 거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더 이상 그런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저의 삶을 증명하고, 제 삶이 조각조각 내져서 포르노로 소비 당하는걸 거부하고 싶어서. 화나고, 말도 제대로 안 나오고, 속이 답답하지만 글을 계속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포르노로 소비하기 전에 제가 먼저 스스로의 이야기를 통해 성산업에 유입되는 사람들의 구조적인 맥락을 살펴보며, 교차성의 땔감으로 써먹자는 다짐을 하면서요. 이 이야기를 하면, 성노동자가 ‘도움이 필요하고 불쌍한’ 사람으로 인식될 수도 있겠지만, 기존에 ‘성노동자’를 대표하던 ‘비장애인-시스젠더’의 이미지는 탈피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단 거, 맞아요. 저는 제가 겪는 문제들에서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성산업에서 안전하게 일하고 싶고, 성노동 중 성폭행을 당하면 가해자를 신고하고 싶고, 사건과 관련해 양질의 물질/심리적 지원도 받고 싶어요. 영업진이 성추행하면 하지 말라고 말한 다음에도 업소를 그만두고 싶지 않고, 성노동을 하다 임신하게 되면 임신중절 수술을 받고 싶어요. 성병에 걸리면, 제 몸과 직업을 고려해서 저에게 알맞은 예방/치료 방법을 제시해주는 의료 서비스를 받고 싶고, 언니들이랑 업소에서 파업하게 되면, 업주랑 싸우는 기간 동안 일상을 버텨낼 수 있는 자원도 가지고 싶어요. 탈성매매하면, 국가에 지원을 받아 차근차근 제가 걸어온 길을 정리하고 싶고, 후에 제가 성노동을 했단 이유만으로 새로운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해서 글을 씁니다. 여러분들이 더 많이 성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민해서 성노동은 성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판을 키워줬으면 좋겠어요. 포주나 성구매자를 더러운 쓰레기라고 욕하는 거에 그치지 않고, 성산업에 얽혀서 성노동자의 몸으로 이득을 취하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으면 해요. 가령, 금융대부업, 유흥업소 구인/구직 사이트, 랜덤 채팅앱, 건물주, 토지주, 성형업, 의료업, 업소 주변 상권, 이주민 브로커, 홀복 판매처, 성매매 업소와 유착해있는 경찰 등. 이렇게 셀 수도 없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요.
최근에 코로나 사태로 손님들이 줄어들고, 수중에 돈이 없어져서 유흥업소 소액대출, 무직자, 무서류 대출 이런 것들을 검색해봤습니다. 월변, 일수라고 써있는 사이트를 눌러 전화를 걸까말까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고민했어요. 밀린 월세도 내고 싶고, 병원도 가고 싶어서요. 저번에 병원에서 타왔던 소염제들과 먹다 남은 진통제들이 바닥에서 굴러다니고, 시중에 파는 진통제는 이제 들지 않습니다. 저는 왜 수중에 돈이 없어져서 일수를 검색하고 있었을까요. 돈이 없다고 말하니 실장이 자기가 잘 아는 일수업체를 소개해준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아서 그랬던 걸까, 주변 언니들이 일수를 많이 쓰니까 별거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된 걸까, 대출 땡기면 성형하고 사이즈업해서 금방 갚을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한 걸까, 아니면 아파서 일수 갚을 능력도 없는 주제에 일단 돈이나 빌려서 다 쓰고 생각해보자는 심보였을까.
집결지를 그만뒀습니다. 저의 정신과 몸으로는 이제 더는 버틸 수 없었어요. 원룸 화장실만 한 크기의 쪽방에서 매일 대여섯 명 되는 손님과 관계를 가졌던 경험은 정신을 갉아먹었습니다. 질 입구가 찢어진 건지 집에 갈 때 지하철에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아팠고, 성병에 7개나 감염됐고, 몸이 자주 아팠습니다. 방구석 비품 칸에 있는 콘돔이 줄어들지 않고, 몸에 묻어 있는 정액을 닦아낼 때마다 사전 피임약과 사후 피임약 포장지가 발에 걸려 넘어질 뻔했습니다. 눈 감으면 임신이 저와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임신하지 않았을 거라 겨우 믿었지만, 눈을 뜨면 보이는 빨간 조명이 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너무나 선명히 알려줬습니다. 여긴 언제 임신을 해도 이상한 곳이 아니니까요.
언니들과 1층에서 임신중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디 병원이 싸게 해준다더라. 일하던 언니 누가 임신중절을 했다더라. 그런데 결국에 이런 일이 안 생기도록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자기 몸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 하지 않겠니.
집결지에서 제 몸은 온전히 저의 것이었을까요. 성산업에서 성별 이분법적인 시스템으로 코드화되고, 상품화된 여성의 몸을 소유한 사람이 과연 누구였는지. 상품으로서 질염에 걸려도 냄새가 나선 안 되고, 항상 깨끗한 생식기를 유지해야 하고, 생리를 해선 안 되고, 생리하면 솜으로 질을 틀어막아서라도 생리혈을 숨겨야 하고, 몸에선 향수 냄새가 나야 하고, 어떠한 바이러스도 보균하고 있어선 안 되는 저는, 그곳에서 단 한번이라도 제 몸의 주인이었던 적이 있었을까요. 성병에 걸린 사실을 알렸더니, 이번 주 가게에 왔던 손님을 찾아보지 않고 곧장 저를 보건소에 데려가던 업주는, 그게 정말 성병 예방 대책으로서 효과가 있다고 믿었던 걸까요. 아니면 처음부터 ‘손님’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성노동자’인 저의 몸만 규제의 대상이 되어서 그랬던 걸까요.
업종을 옮겼습니다. 작년 연말부터 우리 업소 사이트가 디도스 공격인지, 불법 사이트 단속인지를 맞아 손님이 뚝뚝 끊겼어요. 우리가 수도권에서 꽤 규모가 큰 업소임에도, 평소 대여섯 명 손님을 보던 언니들이 이제 한두 명 보고 퇴근 시간 내내 대기하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설날 끝나고부터 사람이 별로 없어요. 원래 명절 전후로는 손님들이 조용한데, 하필 2월에 들어서자 코로나 사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2월 어느 주에는 출근한 기간 절반 이상 동안 손님을 한두 명만 보거나, 아예 보지 못했어요. 실장은 퇴근할 때마다 미안하다고 저한테 메세지를 남겼습니다.
차라리 이럴 바엔 조건만남을 하는 게 더 나을 거 같아, 새벽에 택시를 타고 손님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손님이 주말이라 모텔을 예약하지 못했다고, 자기 집에서 하자고 따라오래요. 집에 도착했더니 자기가 원래 다른 사람이랑 같이 사는데, 그 사람이 현관문 걸쇠를 걸고 잠에 들어 집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서로 롱패딩 입은 이 추운 날에 옥상으로 가재요. 여기서 싫다고 집에 가겠다고 하면, 이 사람이 순순히 날 보내줄까. 보내주고 나더라도 지금 돈 못 받으면 월세 못 내는데, 그냥 눈 한번, 한 번만 딱 감고. 다짐했더니 손님이 다짜고짜 노콘으로 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질싸하면 안 되냐, 어떻게 되냐, 질싸하면, 네가, 어떻게 할 건데?
하지 말라고 화를 내니까, 장난인데 왜 정색하냐고 오히려 자기가 성질을 내더라구요. ‘네까짓 거’ 내가 힘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인데 어쩔 거냐는 당당함, 그런 식으로 나를 비롯한 수많은 성노동자를 떠보고, 노콘과 질싸를 강요하며 자신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행위를 시도하는 권력. 성구매자들은 어째서 이렇게 당당하고, 겁내는 게 없을까요. 자기가 범죄를 저질러도 피해 입은 성노동자는 현재 국가로부터 구제받을 방안이 전무하단 걸 알고, 성산업 안에서, 아니, 성산업 바깥으로 나가도 자신이 상대적으로 권력자의 위치에 있단 걸 잘 알고 있죠. 반면에 성노동자는 왜 자신의 안전을 성구매자와 항상 협상해야 하고, 협상이 결렬되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안전망이 하나도 없는 걸까요.
저는, 이런 게 싫습니다. 제 안전을 언제나 누군가의 선의에 의존해야 하고, 상대방이 ‘착하지 않은’ 사람이면 위험해지는 이 상황이 싫어요. 저의 안전함이, 제 협상 능력에 따라 판가름 나는 게 싫다구요.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앞으로도 무수히 겪게 될 성폭력에서 제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서 겁이 나니까. 그동안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지 잘 모르겠고, 어디 나사 하나 빠진 사람처럼 걷다 보니까 여기에 있어서, 혹시 그간 저 스스로 돌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야 안정되고 있는 저를 압도해서 무너뜨릴까 봐 겁이 나서. 사건을 겪은 직후에는 잘 모르는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곧잘 행동하는데도, 정말 저는 괜찮은 걸까요. 이런게 지속되어도 저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 경험들이 제 몸을 좀먹다가 제일 행복한 순간에 저를 죽이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때문에 무섭습니다.
사이즈가 안 좋아서 열악한 업소에서 일하다, 1년에 몇 번 이상 먹지 않는 게 좋다는 사후 피임약을 계속 먹다가, 머리가 어지러워서 매트에 몸이 고꾸라지고, 토악질이 나오고, 배가 아파서 온종일 누워 있었는데, 겨우 괜찮아지니까 다음 달에 다시 먹어야 한다거나, 내가 당한 것도 성폭행이 맞는지 검색해보다 폭행과 협박이 동반되지 않아 성폭행이 아니었구나, 그 상황에서 폭행도 협박도 없었으면, 손님을 잘 구슬리거나 도망치면 되는 거였는데 그걸 못해서, 바보같이, 이런 경험을 누군가한테 말하더라도 몸 팔다 당한 건데 듣고 누가 욕이라도 안 하면 다행이지. 이런 식으로 저 자신을 검열하고 순결한 피해자 타이틀에 맞는지 재단하는 것들을, 이제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이러한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서, 성노동을 하며 안전할 권리를 주장합니다. 그런데 제가 성노동을 지속하면서 안전할 권리를 외치는 것과 성노동을 원할 때 그만둘 수 있는 권리는 전혀 상충하는 게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이분법적인 판을 짜서 저를 끌어들입니다. 그래서, 성노동인데 반성매매인데? 그래서 너, 노르딕 모델 지지해, 성노동 비범죄화 지지해? 저는 둘 다 중요하지 않아요. 성노동이란 단어를 쓰며 반성매매를 말할 수 있고, 성노동자가 노동을 하고 있을 때 안전할 수 있게 사회적으로 보장받아야 함과 동시에, 탈성매매 하는 사람들을 국가가 지원해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성노동 운동에도 관심이 많지만, 반성매매 운동에도 관심이 많아요. 강좌가 열리면 따라가서 듣고, 제가 지향해야 할 운동 방향에 대해 고민해요. 노르딕모델과 비범죄화 등의 법제화 모델을 공부하면서 장단점이 뭔지 파악하고, 한국에 도입하면 무엇이 문제일까, 당장 성매매 특별법이 있는 동안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저 같은 성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을지 생각해요.
사람들이 성매매 담론에 대해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이야기 할 때, 자신의 운동에서 이익이 될 수 있는 법제화를 제시해요. 살해당하고, 성폭행당해도 신고 못 하는 성노동자를 위해 성구매자와 포주는 처벌하고, 성노동자만 비범죄화하자. 그러면 성산업도 감소시킬 수 있고, 각종 흉악범죄로부터 성노동자를 지킬 수 있으며, 탈성매매 유도를 할 수도 있다. 여러분, 이게 얼마나 허무하고 자기중심적인 발상인지 아세요? 여성운동의 대의를 위해 성노동자를 갈아 버리겠다는 발상이나 다름없는데.
노르딕 모델이 성산업을 몇 퍼센트 감소시켰다는 비율만 보고, 그 제도가 시행된 후 성노동자가 죽어 나갔어도 실제로 수사기관에서 인지되지 않거나,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라 공식적 범죄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범죄가 몇이나 될지 전혀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 싫어요. 자기 좋은 것만 보겠다는 거잖아요. 사람 생명이 걸린 일인데. 성노동자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긴 하냐고 묻고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이런걸 고려하지 않는 게 이상하잖아요. 사실 같은 여자, 피해자를 도와주고 지켜주고 싶다는거 다 거짓말 아닌가요. 성매매가 너무 싫어서 성매매하는 사람들 싹 다 빨리 세상에서 멸종해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노르딕 모델 도입이란 구호만 외치고 있는 거 아닌지.
부끄러운 줄 아셔야 해요. 노르딕이냐 비범죄화냐 구도로 담론을 끌고 가서 정작 중요한 성노동자의 목소리는 지워버리고, 자기들이 서발턴을 대신해 목소리나 내고 있고. 성매매가 여성 인권에 해악이라면서요. 그러면 진짜 줄이려고 노력해보세요. 담론장에서 자기 목소리 내는 거에나 급급해 하지 마시고. 성매매 의제에 대해 할 말이 그것밖에 없나. 노르딕 모델만 외치고, 탈성매매 유도만 하면 성매매가 사라져요? 그렇게 쉬운 거면 성노동과 반성매매 운동이 왜 쉽게 안 끝났겠어요. 이런 단순한 구호 반복만 하고 실제로 성노동자가 이야기할 때 귓등으로도 안 듣는 거 보면 여성 인권에 대해 진정성이 없는 거 같은데. 아니면 파이 싸움에 매몰되어서는 담론장에서 서발턴 마이크 뺏는 것도 파이 싸움의 일종이라 여기시는 거 아닌가.
최근에는 자주 아팠고, 코로나 때문에 일을 쉬어서 진통제 먹으면서 누워 지냈어요. 그러다 우연히, 코로나 덕분에 성매매 업계가 박살 났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고 화를 냈더니,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욕을 먹었어요. 많은 사람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정도로 욕을 하며, 창녀면서 어떻게 페미니스트냐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칭 반성매매 페미니스트란 사람들과 한남인지 뭔지, 불특정 다수들에게 일련의 혐오적인 발언에 노출되면서 제 생각을 정리해본 결과 저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원래부터 우울증이 있어서 정상적인 일자리를 구해 일을 지속하기 너무나 힘들었어요. 겨우 ‘여자당함’이란 조건을 뚫고 일자리를 구해도, 툭하면 죽고 싶고 공황장애가 와서, 게다가 만성적인 통증까지 주렁주렁 달고 생활하니까 일을 지속할 수 없더라구요. 다른 사람들은 주 5일 여덟 시간씩 근무해도 잘만 버티던데, 왜 나는 아파서, 어떻게 구한 일자리인데 이렇게 또 잘리고. 이게 어떻게 구한 일자리냐면, 기초생활수급자 제도에서 계속 지원받을 수 있도록 소득인정액의 상한선을 넘지 않게 구한 건데, 아니면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이 아직 필요해도, 차라리 그거 안 받고 친구들 만나고 제가 먹고 싶은 거 사 먹고 싶어서 지원을 포기하고 최저임금 받을 수 있는 일자리였는데. 정신병 때문에 전부 다 틀어져 버렸습니다. 이대로 내 인생은 돈 몇 푼 벌어보지도 못하고, 가정폭력 가해자랑 영원히 한집에 살면서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정신병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뛰어내리는 엔딩으로 끝나는 거 아닌가.
그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아프고, 돈 없어도 무작정 짐 싸서 고시원으로 들어간 거, 그렇게 사는 저를 보고 자기 집에 들어와서 같이 살자고 한 친구 집에 붙어살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거, 그 과정에서 성노동을 했던 거, 예전의 삶보단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으니까. 그렇게라도 살아남아서, 제 삶을 스스로 가꿔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 선택이 누구에게도 비난받을 거리라고 생각 하지 않고, 비난받아선 안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성노동을 안 하는 당신은, 자신이 이뤄놓은 게 아니라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자원으로 인해 성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있으니까. 운 좋게 성노동을 고려해보지도, 실제로 하지도 않은 거겠죠. 성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도, 자기가 가진 자원을, 권력을 성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성노동 안 하는 게 벼슬인 양 저한테 욕을 뱉어대시길래.
그런 사람들도 불쌍한 거죠.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이 가진 권력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주변 사람이 없었다는 거잖아요. 보지 파는 게 부끄럽지 않냐고 많이들 말씀하시는데, 보지를 파는 게 부끄러운 행위가 아니라, 성노동자한테 욕이나 지껄이면서 자존감 올리고, 지금껏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위치를 성찰해보지 못한 사람들보다 부끄러운 건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해요.
성노동자를 혐오하고 자신이 가진 권력을 기반으로 운동하는 페미니즘이 싫습니다. 모든 성매매가 성착취라, 여성들이 그런 성착취를 당하지 않았으면 해서, 실상은 자기들이 도와주면 입다물고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받아먹어야 할 성노동자가 제 입으로 자기 생각을 언어를 갖춰 발언하기 시작했을 때, 주류 여성들의 위치가 위험해지는 거 같아, 성노동자들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굴러가는 여성운동이 싫습니다.
트랜스젠더가 여성성을 강화하는 존재라, 존재가 곧 여성 혐오고 여성 인권 하락이라, 젠더론 같은 건 정신병이라고 말하는 시스젠더의 페미니즘이 싫습니다. 존재 자체가 여성 인권을 하락시키는 사람은 없는데도, 여성의 공간을, 존재를 공격한다고 지레 겁먹으며 자신의 알량한 속사정이나 걱정하는 여성운동이 싫습니다. 가난하고 아픈 여성은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나, 항상 페미니즘에서 배제되고, 가난과 건강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데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린 채 머리에 힘주면 해결이 가능하다며, 아프지 않고 가난하지 않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의 대표 이미지로 재현되는 여성운동이 싫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페미니스트가 아닙니다. 저는 트랜스젠더를, 아픈 사람을, 가난한 사람을, 성노동자를 배척하는 페미니즘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제가 배운 페미니즘은, 트랜스젠더퀴어여도, 아프고 가난하고 성노동을 해도, 분절된 우리가 이 세계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이어주는 끈을 만들어주는 게 제가 배운 페미니즘입니다.
제가 배운 페미니즘은, 자칫하면 제 권력을 성찰하지 못한 채 저 혼자만 남들보다 불쌍한 피해자라고 여기는 걸 제지하고, 저의 위치에서 제가 가진 권력을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게 제가 배운 페미니즘입니다. 제가 배운 페미니즘은, 옆에 있는 동료들을 소수자성으로 조각조각 나눠 누가 더 약자인지 따지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동료들을 돌보고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게 해준 게 제가 배운 페미니즘입니다. 저는 파이 싸움이란 명목하에 타인을 배제하고 상처주는 페미니즘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페미니스트가 아닙니다. 그런 페미니즘을 배운 적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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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칸트 후원 5,000P
3일 전
이렇게라도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서 참 다행인 것 같습니다. 쓰린 경험을 내놓으면서까지 가르침을 주신 멜섭님과 귀한 글 공유해주신 열심님 그리고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직 성노동업에 얽힌 담론을 완벽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차근차근 공부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추운 날씨 속에서 부디 건강 챙기시기만을 바라겠습니다. 늘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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