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 말고 행동을 - 교수신문
훈수 말고 행동을
염동규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작가
승인 2018.05.28
대학원생들의 一聲 ⑥
‘교수’가 되겠다는 대단한 포부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석사 과정 첫 학기 때까지만 해도 나는 ‘노력해서 꼭 성공한 학자가 되겠다’고 다짐할 수 있을 만큼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존경하는 선생들의 존경할 만한 논문을 보면서 성장해 왔으니 ‘학계’의 문제적 상황이 거의 눈에 보이지 않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경험들이 쌓이고 선배들과 동료들로부터 이 바닥의 실상에 대해 전해 들으면서부터, 그런 식의 희망 따위는 대부분 사라졌다. 이제 ‘공부’가 안겨줄 유형무형의 보상에 대해 나는 거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해결되지 않았고, 해결될 전망도 없어 보이는 부조리들이 어디 한 두 가지겠냐만 여기서 거론해볼 ‘학회 간사 처우’의 경우 역시 말할 것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부조리를 안고 있다. 예산 관리, 각종 증명서 발급, 행사 홍보, 학회지 원고 수합, 심사 위원 섭외, 저자들을 상대로 한 각종 안내 업무, 편집 회의 참석, 교정 교열, 학술대회와 관련된 제반 잡무 등등. 여기에 더해 3년에 1번씩 연구재단의 학술지 평가 철이 돌아오기라도 한다면 ‘본업’이어야 할 ‘연구활동’이 사치가 돼버리는 건 이 바닥의 누구나 알고 있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가로 간사들이 받는 급여는 형편없다 못해 어처구니없을 정도다. 웬만해선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거니와 ‘연봉으로’ 100만원을 받는다고 하면 ‘그렇게나 많이 받느냐’며 주변인들이 놀라자빠진다는 식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해 우리를 무엇보다도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교수들의 태도다. 노동자성에 대한 인정과 최소한 ‘최저임금’만이라도 보장해달라는 요구는 ‘상황이 간단치 않다’는 이러저러한 설명들에 의해 기각되기 쉽다. 그렇다. 확실히 상황은 간단치 않다. 비용 절감과 예산 확보를 위한 이러저러한 노력들이 심심치 않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돈은 늘 부족하므로, 간사들에게 들어갈 ‘임금’까지 챙겨줘야 한다면 학회로서는 곤란할 수밖에 없기야 하겠다. 간사들이 수행해야 하는 ‘과잉 노동’이 문제라고도 하지만, 그러한 과잉 노동이 없다면 한국연구재단의 등재지 평가 기준을 통과할 수 없거나 통과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등재지가 되지 못하면 자연스레 학회원들의 업적 평가에 영향을 주게 될 테니 학회의 위상은 악화될 테고, 각종 지원 사업으로부터도 멀어지고 말 것이다. 게다가 등재지 평가 기준에는 학술지의 ‘안정성’에 대한 항목까지 있으므로 ‘웬만하면 편집 간사가 몇 년 더 희생해주는 편이 학회의 이익에 부합하리라’는 논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하지만 묻고 싶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상황이 사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그 희생자가 ‘간사들’이어야 하는가? 학술지 생산과 학회의 운영 속에서 ‘갈려나가는 희생자’는 간사들인데, 누구 마음대로 희생자 될 사람을 당신들이 정하는가? ‘거부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는 부탁’의 형식을 빌어서 말이다.
학령인구는 절벽을 향하고 있고, 앞으로 교수는커녕 강사 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인 게 현실이다. ‘간사를 하면 학계의 인싸(Insider의 약어로 무리에 잘 섞이는 사람을 뜻하는 속어)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회유하지만, 이제 그깟 ‘인싸’ 해봤자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공감’해달라는 게 아니다. 공감을 해주면 업무 부담이 줄어드는가? 돈을 더 줄 것인가?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되는가? 아니라면, 당신들은 학생들의 요구에 대한 ‘관념적 훈수’가 아니라 ‘행동’을 해야 한다.
우리도 모르지 않는다. 이런 아수라장은 상당 부분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교수가 문제라고들 하지만 그들 역시 나름대로는 총대 메고 열심히 돈을 부어주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안다. 한국연구재단이라는 문제적 조직의 중앙집권적 통제 정책이 만들어낸, 희비극적 ‘등재지 제도’야말로 간사들에게(또한 교수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헛된 노동을 강요하는 중대한 이유가 된다는 사실도, 그나마도 없으면 학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도 역시 분명하다. 분야별로 천차만별인 상황을 일거에 해결할 방법 따위 없다는 사실도 물론 안다. 그러나 우리가 하고자 하는 말은 오히려 다음과 같은 것이다. 학회는 물론 학계의 미래까지도 옥죄어 가는 현재의 구조를, 간사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간간히 유지만 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바꿔내려는 지속적이고도 분명한 행동을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한, 학계에게 남아 있는 미래는 없다.
염동규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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