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6

알라딘: 제시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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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의 일기 - 어느 독립운동가 부부의 육아일기   
양우조,최선화 (지은이),김현주 (정리)우리나비2019-02-28

289쪽155*255mm534gISBN : 9791186843352

책소개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양우조, 최선화 부부 (백범 김구 선생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림)가 중국에서 맏딸 '제시'를 낳으며 1938년부터 1946년 환국 시까지 8년간 기록했던 육아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앞서 이 일기는 외손녀 김현주가 정리하여 1999년에 동 제목으로 '혜윰' 출판사에서 출간된 바 있으나 출판사가 없어지면서 자연스레 절판되었다.

2016년에는 원작 일기가 절판된 상황에서 오늘의 우리만화상 (문화체육부 장관상)을 수상한 만화가 박건웅 작가를 통해 <제시 이야기>라는 그래픽 노블로 출간되기도 했다. 일기가 쓰여 진 지 6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출간되어 세간에 알려진 지도 어느덧 20년이 지난 지금,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 정부 100주년을 맞이하여 <제시의 일기>가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목차
프롤로그, 백 년 전의 그대를 만다다. 10쪽
1999년, 60년 전의 일기를 펼치며 13쪽
추천의 글: 한시준 박사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 16쪽
그가 그녀를 만났을 때 18쪽

1. 중국, 그 대륙을 떠도는 부평초가 되어
(1938년 7월 4일-1939년 4월 30일)

아기 제시의 탄생 33쪽
남쪽으로 남쪽으로 45쪽
긴 배여행을 마치고 새로운 땅으로 54쪽
아기 키우기 61쪽
제시의 피난생활 66쪽
다시 떠나는 피난길 72쪽

2. 그래도 희망을 가슴에 품고
(1939년 5월 3일-1940년 11월 12일)

기강 땅의 제시 85쪽
중국 땅의 ‘푸른 하늘 은하수’ 118쪽
공습경보와 야외 산보 123쪽
아버지가 없는 집 127쪽
새로운 도시 중경으로 134쪽

3. 제2의 고향, 중경
(1940년 11월 13일-1943년 1월 31일)
보금자리 만들기 143쪽
제시에게 희망의 새해를! 147쪽
동생 제니를 만나다 158쪽
중경, 그 끊이지 않는 공습의 시간 162쪽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다 176쪽
두 자매, 제시와 제비 189쪽

4. 그대를 그리며
(2018년 7월)

5. 계속되는 시련과 아픔
(1943년 2월 3일-1945년 8월 9일)

강북에서 중경 시내로 209쪽
헤어진 가족 219쪽
아버지의 ‘엄마’되기 226쪽
근심 어린 손님, 병마가 머무르다 231쪽

6. 소원은 이뤄졌지만...
(1945년 8월 10일-1946년 4월 29일)

광복의 그날이 오다 245쪽
그리던 조국으로 252쪽

못 다한 이야기 (그 후 이야기) 268쪽
오늘에 하는 말 271쪽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언니를 그리며 274쪽
에필로그, 역사는 이어진다 279쪽
일기에 등장한 사람들에 대하여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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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제시가 내게 온 것은 바로 오늘, 음력으로 6월 7일 아침이다.
P. 11 일기 속에 담겨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임시정부 요인분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내 인생을 참 많이 바꿔 놓았다. 다음 세대를 위해 본인들의 삶을 희생했던 그분들의 삶이 참 가슴에 와닿앗다. 오늘을 살면서도 오늘이 아닌 내일을 생각하고 이를 위해 행동하는 비전에 감탄했다. 나는 일기를 읽으며 그분들의 이야기를, 대가족 식솔처럼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임시 정부 요인과 그 가족들의 삶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그때 그곳에서 내일을 알 수 없는 삶 속에서 함께 희망을 만들며 살아 나간 그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출판하기로 했다.  접기 - 피로
P. 271 그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 하지만 이제는 그 시절을 함께 나눌 사람마저도 찾을 수 없다.



나도 어느새 기억이 가물거리고 눈앞이 침침하고, 다리, 허리가 아파 오는 것이 그 옛날 내가 봤던 노인들처럼 되어 가고 있다. 남은 건 그나마 내 머릿속에 남은 자꾸 흐려져 가는 기억들이고, 전해 줄 건 그 시절 이야기 뿐이 되어버렸다. ​그저 최선을 다하고, 하루하루 내 앞에 놓인 과제들을 열심히 해결하려고 했으며, 그토록 바라던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 살았던 그 시절을 남겨 둘 수 있어 기쁘다.  접기 - 피로
할머니는 내게 낡은 일기장을 내미셨다. 처음보는 일기장이었다. 한번 읽어 보라고 주신 그 속에는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할머니의 젊은 시절이 담겨 있었다. 첫 아이를 낳은 젊은 엄마의 모습이었다. 일기 속 두 분의 중국 생활에는 국사 교과서에서 본 낯익은 이름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그분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동지였고, 이웃이었고, 가족이었다.

나는 읽기를 읽으며 그분들의 이야기를, 대가족 식솔처럼 의로애락을 함께했던 임시정부 요인과 그 가족들의 삶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접기 - 피로
P. 11 일기 속에 담겨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임시정부 요인분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내 인생을 참 많이 바꿔 놓았다. 다음 세대를 위해 본인들의 삶을 희생했던 그분들의 삶이 참 가슴에 와닿앗다. 오늘을 살면서도 오늘이 아닌 내일을 생각하고 이를 위해 행동하는 비전에 감탄했다. 나는 일기를 읽으며 그분들의 이야기를, 대가족 식솔처럼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임시 정부 요인과 그 가족들의 삶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그때 그곳에서 내일을 알 수 없는 삶 속에서 함께 희망을 만들며 살아 나간 그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출판하기로 했다.  접기 - 피로
P. 34 1938년 7월 4일, 중국 호남성 장사.

내 조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나는 내 딸을 가슴에 안았다. ‘상해’에서 시작된 임시정부는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점차 정세가 중국에 불리해지자 중국 정부가 자리하던 남경 근처의 ‘진강’으로, 얼마 후 다시 지금의 ‘장사’로 자리를 옮겼다. (중략) 아기의 이름은 ‘제시’라고 지었다. 집안의 돌림자가 ‘제’자인데 ‘제시’라는 이름이 생각났다. 영어 이름이다. 조국을 떠나 중국에서 태어난 아기. 그 아이가 자랐을 때는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 당당하게 제 몫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아기 또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능력있는 한국인으로 활약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지었다. 세상에 나온 걸 축하한다. 우리 제시!  접기 - 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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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양우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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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성장하였다. 호는 소벽(少碧), 본명은 양명진(楊明鎭)이다. 19세에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해 독립운동가 신규식 선생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매사추세츠 주 뉴베드퍼드(New Bedford)에서 방직학교를 졸업하였다. 그가 방직 공학을 공부한 이유는 내 손으로 조국 동포들을 입혀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학업을 마친 후 미국 흥사단에 가입하여 활동했던 그는 다시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과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 임시정부 생계부 차장등으로 항일활동을 하였다. 정부로부터 그 공훈을 인정받은 그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접기
최근작 : <제시의 일기> … 총 3종 (모두보기)
최선화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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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우조 선생의 아내이자 제시의 어머니로서,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1931년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모교에서 교편을 잡는 신여성이었던 그녀는 1936년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을 결성하고 차후에 한국애국부인회의의 서무부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그녀 역시 정부로부터 그 공훈을 인정받아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최근작 : <제시의 일기> … 총 2종 (모두보기)
김현주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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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소개
우리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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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광릉숲의 요정>,<악마의 일기>,<띠용이야기>등 총 62종
대표분야 : 그림책 23위 (브랜드 지수 2,586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에 즈음하여,
80년 전 일기를 다시 펼치다!

<제시의 일기>는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양우조, 최선화 부부 (백범 김구 선생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림)가 중국에서 맏딸 ‘제시’를 낳으며 1938년부터 1946년 환국 시까지 8년간 기록했던 육아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앞서 이 일기는 외손녀 김현주 씨가 정리하여 1999년에 동 제목으로 ‘혜윰’ 출판사에서 출간된 바 있으나 출판사가 없어지면서 자연스레 절판되었다. 2016년에는 원작 일기가 절판된 상황에서 오늘의 우리만화상 (문화체육부 장관상)을 수상한 만화가 박건웅 작가를 통해 <제시 이야기>라는 그래픽 노블로 출간되기도 했다. 일기가 쓰여 진 지 6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출간되어 세간에 알려진 지도 어느덧 20년이 지난 지금,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 정부 100주년을 맞이하여 <제시의 일기>가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독립운동가의 삶, 그 일상과 따뜻한 인간애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실상을 그리다!

부부의 일기 속에서는 중일전쟁이 한창일 무렵 하루가 멀다 하고 퍼붓는 일본군의 공습을 피해 방공호를 제집 드나들 듯 하면서도, 전란 속에 태어난 어린 딸 제시가 잘 자라길 바라는 부모의 애틋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와 더불어 녹록지 않은 여건 속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의연한 모습과 한교(한국 동포)들 사이의 끈끈한 정도 느낄 수 있다. 창사(長沙장사), 광저우(廣州광주), 포산(佛山불산), 류저우(柳州유주), 치장(?江기강), 충칭(重慶중경) 등 중국 각지를 돌며 진행된 항일 활동 중 만난 중국인들에 대해서도 이국적인 반면 일본이란 공동의 적에 대항해 싸우며 서로 돕고 배려하는 따뜻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1939년 3월 14일, 유주
이제 자신의 힘으로 먹기 위해 하나씩 하나씩 준비를 시작해 간다. 이제 아이가 씹는 것은 음식물 뿐만은 아닐 것이다. 교과서 속 지식을 씹고, 세상 속의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한데 섞어 다져가며, 때로는 기가 막히도록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과 세상의 이중성을 씹고, 성공과 실패로 나누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세상살이를 꼭꼭 씹어 가며 제시 자신의 살로 만들어 갈 것이다.- 본문 중에서

일기는 1938년 7월 4일 중국 장사에서 시작되어 8년간 이어진다. 한국판 안네의 일기라 할 수 있는 이 기록은 맏딸 ‘제시’의 탄생으로 문을 연다. 양우조는 “조국을 떠나 중국에서 태어난 아기. 그 아이가 자랐을 때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제 몫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안의 돌림자 ‘제’자를 사용해 딸 이름을 ‘제시’라고 짓는다.”라고 말하며 일기를 써내려간다. 제시라는 영어식 이름을 지어주는 모습에서도 독립운동가 부부의 간절한 조국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아이가 훗날 이국을 떠돌면서 생활했던 이유를 묻는다면, ‘너의 미래를 위해서였다’는 짧은 한마디로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것으로 독립성취라는 간절한 우리의 소원을 담아낼 수 있을까? 그것으로 우리 가족의 이 시간을 담아내고도 남을까? -본문 중에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그리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흑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피난을 가거나 공습을 피해 숨으면서도 밥을 지어 먹어야 했고, 병마에 시달리며 수차례 수술도 받아야 했으며, 점점 커 가는 아이의 재롱을 보며 미소 짓기도 했다. 그런 일상 속에서도 나라를 걱정하고 조국 독립의 희망을 놓지 않는 단상의 기록들은 그들의 결연한 의지를 확인케 한다. 또한 이 책에는 굳이 역사 교과서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친숙한 그 시대의 지식인들, 즉 백범 김구 선생과 도산 안창호 선생 같은 분들의 소소한 일화들도 소개되고 있어 그 재미를 더한다.

전쟁 속에서도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가운데
소박한 가족의 일상 속에서 내일의 희망을 꿈꾸다

딸의 재롱에 미소 짓고 조그만 생채기에도 마음을 졸이던 평범한 가족, 그러나 나라를 빼앗긴 민족으로 전쟁의 포화 속에 타국을 떠돌며 생사를 오가는 동안의 심경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중일전쟁 한가운데 삶과 죽음의 공존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 작품은 타국인 중국에서 자라는 제시를 바라보는 부모의 애틋한 사랑, 독립운동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의연함, 한국 동포들 사이의 따뜻한 정뿐만 아니라 한중 정치인들의 우정, 한국인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도움과 배려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임시정부의 행로와 중국에서의 생활, 독립에 대한 희망을 담은 소소한 일상들을 통해 생사가 오가는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삶의 열정을 꽃피울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높은 사료적 가치를 지닌 보물 같은 일기!

책의 제목이 그러하듯, 이 부부의 일기는 딸 제시의 성장사를 중심으로 기록한 일종의 ‘육아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기는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매우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당시 임시 정부에 관한 기록들이 대부분 소실돼 버린 가운데, 1938년 7월부터 1946년 4월까지 8여 년간의 기간에 걸쳐 기록된 이 일기는 중일전쟁 당시 임시 정부가 일본의 공습을 피해 창사?광저우?류저우?치장을 거쳐 충칭으로 이동한 과정과 실상을 시기별로 정확히 알려 주는 거의 유일한 사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일기가 쓰여졌던 중일전쟁하의 임시 정부에 관해서는 오늘날에 남겨진 자료가 극히 드문데, 이 기록들은 임시 정부가 일본 공군기의 공습을 받으며 장사 ·광주·유주·기강을 거쳐 중경으로 이동한 과정과 실상을 알려 주는 유일한 일기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일기 속에 독립운동가들이 살았던 모습과 그들의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배어 있다는 점이다. 그 점이 이 책을 손에서 떼기 어렵게 만든다.
-한시준 단국대 인문과학대학 역사학과 교수

양우조, 그는 누구인가?

양우조선생은 1897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성장하였다. 호는 소벽(少碧), 본명은 양명진(楊明鎭)이다. 19세에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해 독립운동가 신규식 선생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매사추세츠 주 뉴베드퍼드(New Bedford)에서 방직학교를 졸업하였다. 그가 방직 공학을 공부한 이유는 내 손으로 조국 동포들을 입혀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학업을 마친 후 미국 흥사단에 가입하여 활동했던 그는 다시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과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 임시정부 생계부 차장등으로 항일활동을 하였다. 정부로부터 그 공훈을 인정받은 그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최선화, 그녀는 누구인가?

최선화선생은 양우조 선생의 아내이자 제시의 어머니로서,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1931년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모교에서 교편을 잡는 신여성이었던 그녀는 1936년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을 결성하고 차후에 한국애국부인회의의 서무부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그녀 역시 정부로부터 그 공훈을 인정받아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어느 독립운동가의 육아일기이자 당시의 임시정부를 보여주는 기록의 대서사시

양우조선생은 미국에서 방직공학을 전공한 지식인으로 쑨원의 <삼민주의>를 번역하는 등 민족국가 건설을 준비한 정치적 식견과 안목을 지닌 인물이다. 방직사업을 하려고 고국을 찾았다가 독립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부인 최선화선생도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한 신여성으로 열네 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동지이자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단신으로 중국에 망명한다. 그의 정성에 감동한 백범 김구는 어지간해 잘 나서지 않는 이들 부부의 결혼식 주례를 서게 된다. 양우조는 1964년, 최선화는 2003년에 작고하였으며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귀한 증거들이 들어 있는 <제시의 일기> 속 주인공 제시가 2010년 9월 10일에 세상을 떠났다.

독립운동가 양우조, 최선화 부부의 첫딸 제시의 출생일로부터 이 기록은 시작된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성장해 가는 일상의 행복 속에서 고난의 행군 끝에 조국으로 귀환하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담담하면서도 비범한 역사의 발길과 숨결이 느껴진다. 그리고 모든 기록은 역사가 됨을 보여주는 경이로움을 우리에게 안겨 준다.
- 이명화 박사, 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도산학회 회장

<제시의 일기>에 나오는 양우조와 최선화가 생활한 중국에서의 삶은 일본군의 공습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신들의 아기 제시가 태어나자마자 시작된 일본군의 공습은 제시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두려움 속에서도 어린 핏덩이와 함께 잃었던 조국을 새로 만들고 독립을 위해 가시밭길을 갔던 이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 김주용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교수

<제시의 일기>를 정리한 양우조, 최선화 부부의 외손녀이자 제시의 딸인 김현주는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교육심리학과 졸업 후, TV 교양 프로와 어린이 프로그램 구성 작가로 일했다. 2000년 미국으로 건너가 두 아이를 키우며 실리콘밸리 한국학교 교사, 교감, 교장으로 재직했으며 KEMS-TV의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현재는 프리몬트통합교육구의 교육위원으로 지역 공립학교 교육을 위해 일하고 있다. 또한 한국 비하 발언과 역사 왜곡으로 논란이 됐던 일본 작가 가와시마 요코의 자전적 소설 <요코 이야기>를 바로잡기 위해 <제시의 일기>를 미 교육국 공식 도서로 지정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요코 이야기>는 미국의 초, 중학교에서 역사교재로 채택되어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한 역사적 배경 설명은 하지 않고 한국인을 가해자처럼 묘사하고 있다는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문제작이다. 미국 내 한국계 학부모들이 2006년부터 <요코 이야기>의 퇴출을 주장하기 시작했지만 미국 여러 주에서는 여전히 이 책이 학생들의 역사교재로 쓰이고 있다. 요컨대 <요코 이야기>가 사실을 왜곡했다면 <제시의 일기>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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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립운동가 부부의 육아일기 새창으로 보기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즐겨 보는 방송 프로그램 중 하나인 『MBC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 배우 한고은님이 언급하면서 이다. 크게 보면 부모가 아이를 낳아, 아이를 기르며 쓴 육아일기지만, 이 육아일기를 쓴 부모는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이었던 양우조, 최선화님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당시 중국에서 생활한 임시정부의 상황이, 당시의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에 한국판 「안네의 일기」라고 할 수 있다.













-독립운동가 양우조&최선화 부부-



이 두분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양우조님은 상하이로 망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하며 흥사단에 들어갔다. 이후 중국으로 다시 건너와 임시정부 요원이 되었다. 최선화님 역시 상하이로 망명한 뒤 한국국민당에 입당하였고, 한국애국부윈회 재건을 하였다. 이 두 사람의 결혼식은 상하이에서 열렸으며, 주례는 김구선생이 보았다. 이들의 삶은 중국에서 임시정부 가족들의 삶과 그 궤를 같이하였으며, 해방 이후 1946년이 되어서야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 책을 편찬한 건 이 책의 주인공 ‘제시’의 딸 김현주 씨다. 양우조&최선화님에게는 손녀인 셈이다. 그녀가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가졌을 때, 당시 살아계셨던 할머니(독립운동가 최선화님)가 빛 바랜 일기를 하나 건네주었다. 그 일기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자신들의 첫 아이, 그러니까 김현주씨의 엄마인 제시를 기르며 기록한 육아일기 였다. 아니, 육아일기이자 임시정부 요인들의 일기였다.






일기 속에 담겨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임시정부 요인분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내 인생을 참 많이 바꿔 놓았다. 다음 세대를 위해 본인들의 삶을 희생했던 그분들의 삶이 참 가슴에 와닿앗다. 오늘을 살면서도 오늘이 아닌 내일을 생각하고 이를 위해 행동하는 비전에 감탄했다. 나는 일기를 읽으며 그분들의 이야기를, 대가족 식솔처럼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임시 정부 요인과 그 가족들의 삶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그때 그곳에서 내일을 알 수 없는 삶 속에서 함께 희망을 만들며 살아 나간 그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출판하기로 했다. P 011






그동안 살면서 몰랐던, 국사책에서만 보았던 내용들이 할머니 일기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김현주님은 그렇게 할머니의 일기와, 중간중간에 할머니와 대화를 하며 이야기를 보충하여, 1999년에 출판을 했더랬다. 시간은 흘러 책은 절판되었고, 그렇게 잊혀졌다가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맞춰 이 책이 다시 한번 세상에 나왔다. 그럼에도 난 이 책의 존재를 몰랐고,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책의 존재를 알았다는 사실에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랬다. 






우리는 김구, 윤봉길, 이봉창 등 국사책에 실린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 가려진 수십, 수백의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앞서 말한 일부 독립운동가에 대해 알고 있는 것만해도 잘 알고 있는 것이라며, 스스로 만족한다. 그러는 새에 더 많이 빛을 봐야할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은 점점 더 잊혀지는게 지금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이, 「제시의 일기」에도 그대로 반영된 듯한 느낌이 들었던거다.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붙잡고 「백범일지」 를 아냐고 물어보면 열이면 열 다 안다고 하겠지만, 「제시의 일기」를 아냐고 하면 열 중 한명이라도 안다고 하는 사람이...과연 나올까싶은, 이런 상황이 그저 안타깝고 또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육아일기는 1938년 7월 4일, 호남성 장사(창사)에서 맏딸 제시를 얻으면서 시작한다. 이후 광둥성 광주(광저우), 광서성 유주(류저우), 사천성 기강(치장), 사천성 중경(충칭)을 거쳐, 1946년 부산항으로 통해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 오며 일기는 끝이 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경로만 보아도 알 것이다. 양우조, 최선화 부부가 다닌 이 경로는 임시정부의 피난길이자 고국의 독립을 위해 애썼던, 그 경로라는 것을. 










1938년 7월 4일, 중국 호남성 장사.



내 조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나는 내 딸을 가슴에 안았다. ‘상해’에서 시작된 임시정부는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점차 정세가 중국에 불리해지자 중국 정부가 자리하던 남경 근처의 ‘진강’으로, 얼마 후 다시 지금의 ‘장사’로 자리를 옮겼다. (중략) 아기의 이름은 ‘제시’라고 지었다. 집안의 돌림자가 ‘제’자인데 ‘제시’라는 이름이 생각났다. 영어 이름이다. 조국을 떠나 중국에서 태어난 아기. 그 아이가 자랐을 때는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 당당하게 제 몫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아기 또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능력있는 한국인으로 활약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지었다. 세상에 나온 걸 축하한다. 우리 제시! P 034






1938년 7월 22일, 광동성 광주



중일전쟁에서 중국이 몰리고 있다 (중략) 제시가 태어났던 ‘장사’. 이른 새벽잠에서 아직 깨지 않은 ‘장사’를 뒤로하고, 모든 임정 식구들은 중국 대륙 동남쪽에 위치한 광동성 광주행 월한철로 전차를 탔다. (중략) 그렇게 기차를 타고 가던 중에는 갑작스런 일본기의 공습도 만났다. 공습이 오자 기차가 멈추었고, 사람들은 기차에서 내려와 주변의 수풀 속에 숨어 적기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P 037






1938년 10월 11일, 광동성 불산



철 없는 제시지만, 백일맞이라 해서 그런지 경쾌한 태도로 아주 기분 좋게 잘 놀고 있다. 그런 제시의 기분과 달리 바깥의 분위기는 스산하다. 매일 아침마다 포탄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고 있다. 적이 가까이 다가온 모양이었다. 오후엔 일본군이 광동, 담수 등의 지방에 상륙하여 물밀 듯 쳐들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불산 거리에는 짐을 옮기는 황황한 모습이 보이고 있다. P 044






1938년 12월 5일, 유주



아침 열 시쯤 되어 공습경보가 났다. (중략) 후에 안 소식으로 우리가 피신했던 5호 동굴 좌우 쪽, 기타 여러 동굴이 폭탄 투하로 매몰되어 버렸단다. 그곳에 사람이 가득 차 있지 않았던들 우리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1938년 12월 5일, 이날의 왜놈의 잔인한 행동은 인류 역사가 생긴 후, 세계 처음으로 꼽히는 참사였다고 한다. 동굴이 오히려 위험하다고 산 주위 숲속, 나무 밑에 은신하고 있던 피난민들은 왜놈의 저공비행으로 기관총을 난사당하여 거의 다 죽었다고 한다. 민간인들을 그렇게도 많이, 의도적으로 죽였던 일본의 잔혹한 행동은 훗날 역사가들에 의해 평가되리라. P 057






이 일기에서 빠짐없이 나오는 내용들이 있다. 육아일기 인 만큼 ‘제시’에 대한 것은 당연히 나오는 것이니, 그것을 제외하고, 제시 만큼이나 많이 나오는 내용, 바로 ‘날씨’와 ‘일본의 공습’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열이면 열, 상공에 일본 전투기가 나타났고 무차별 공습을 했다고 한다. 양우조, 최선화님은 공습경보가 울리면 매번 제시를 안고 주변에 있는 숲이나, 들판, 동굴, 공동묘지 등으로 피난을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 일과였다. 그래서 그런지,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이 두 분은 아침마다 날씨를 챙기는 게 습관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제시의 육아와, 날씨&공습, 그리고 임시정부가 들어있는 「제시의 일기」는 육아일기 이 전에, 한 권의 항일독립운동 사료였다.



 






1939년 2월 8일, 유주



제시의 부모로서의 역할이 차츰 익숙해지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마치 거울이 되는 것과 같다. 자식들의 모습을 미추는 거울, 부모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거울이 깨지면 그 속에 비춰진 모습도 흉하게 일그러진다. 아이들은 거울을 통해 자신에 대해 눈뜨게 된다. 자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현재의 모습을 확인하고 미래를 그려본다. 이제 나는 한 아이의 거울이 되어 그 아이의 참 모습을 보여주고, 또 깨닫게 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P 065






1940년 1월 29일, 사천성 기강



갈수록 제시는 사람들의 세상살이를 따라하며 배워가고 있다. 그건 좋은 일이기도 하고, 나쁜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취하는 행동들이 제시에겐 가르침이 되는 것이다. 두려워진다. 혹 내가 취하는 행동에 모자람이 있지는 않은지.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서 못난 모습이 눈에 뜨이는 건 아닌지. P 104






1941년 1월 4일, 사천성 중경



이제 이 아이가 세상에서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얼마나 많아질까? 생후 세 돌이 못 된 아이에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욕심이 생겨난다. 내 것이란 이름으로 가지고 싶은 마음. 사물이나 사람이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 함께 보고 나눌 수는 없는 것인가. 세상의 갈등과 괴로움을 단지 소유욕으로 단정 지을 만큼 간단한 일은 아니겠지만, 오늘 우리가 갖는 많은 절망과 어둠이 욕심에서 비롯되는게 아닌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P 148






1942년 6월 1일, 사천성 중경



마마는 제시의 교육 문제로 걱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혼자 몸으로 살림을 하시느라 아직 제시의 공부에 적극적으로 착수를 못하셨다. 때로 창가나 가르치고 가정 교육에 그치고 있다. 둘째 제니는 아직 서서 걸어다닐 생각은 않는 양으로 앉아서 놀고 있지만, 눈치와 말귀는 장족의 진보를 하고 있다. 제니는 침착하며 퍽 능한 편이다. P 186






1942년 8월 4일, 사천성 중경



한 배속에서 난 아이들의 아래위가 서로 다른 성격과 모습을 보여주듯이, 한 아이는 여리고 상냥하고 잘 챙겨주는 모습을, 또 한 아니는 자기 고집이 세고 직선적이며 도전적인 모습을. 두 아이가 어울려 만나는 이 세상은 틀림없이 다른 모습일 것이다. 같은 강줄기에 우리가 만나는 일기가 다르듯이 부모가 지켜보게 될 두 아이의 세상살이 또한 다른 모습일 수 밖에. ​P190






1943년 3월 22일, 사천성 중경



저녁 식사 후, 저 멀리 산보를 몇 시간 하고 돌아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두 어린애들은 오래간만에 나가 다니매 좋다고 한다. 어떻게 가버렸는 지 모르게 가 버린 인생의 푸르른 시간들이다. 심한 역경 속에서도 천진하게 자라고 있는 이 어린애들이 어른들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우리의 결합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P 212






그 누구도 처음부터 부모였던 적이 없고, 부모교육을 받은적이 없기에, 좌충우돌 하고 매시간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독립운동가였던 그들도 역시 그랬다. 첫 아이 제시가 태어나 크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또한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하게 되었고, 많은 생각을 했으며, 그 생각이 독립에 대한 열망을 고취시켰다는 건 그 누구도 반박못 할 사실일 것이다. 내 조국이기에 되찾으려 했던 대한민국은, 이제 내 아이가 자라나야 할 땅이기에 어떻게든 되찾아야만 했다. 조국을 되찾는 다는 건 쉬운일이 아닌걸 알고, 본인들의 희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오로지 내 아이들을 위하여 그 희생을 감수하였다.  부부는 큰딸 제시와, 둘째 제니를 이야기하며 항상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생각했고, 걱정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통해 본인들이 위로를 받았다.






요즘의 육아일기와 다른 점이라면 ‘~가 힘들다’ 라는 말이 유독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쩌면 요즘 부모가 되는 젊은 사람들은 이해 불가능한 육아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세대는 항시 풍족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저 당시의 삶은 결핍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이 결핍에는 조국이 없다는 것 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조국이 있는 우리가 이 시대를 100% 이해하는 건 당연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결핍이 넘쳐나는 삶에서 육아를 하는 게 어떤 일인지, 겪어보기 전 까지는 도무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내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이의 사회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한번 쯤은 요즘 잣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1939년 1월 25일, 유주



요즘의 임정은 ‘한국국민당’과 ‘재건한국독립당’, 그리고 ‘조선혁명당’등 임시 정부 주변의 민족진영이 뿔뿔이 갈라져 있고, 한국 광복 운동 단체 연합회 등 임시정보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치기 위한 노력이 경주되고는 있지만, 진전이 뚜렷하지 않다. 아이의 성장하는 모습처럼 그렇게 움직임이 발전되면 좋으련만. P 063






1940년 3월 14일, 사천성 기강



이동녕 선생님께서 어제 오후에 작고하셨다. 임시 정부의 제일 웃어른이신 분이 가심으로 한교들은 충격이 컸다. 돌아가시면서도 한교들의 화합을 유언으로 남기셨다고 한다. 우리 생전에 독립을 볼 수 있게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애써 오셨던 이동녕 선생님께서 독립의 서광이라도 보고 돌아가셨으면 좋았으리란 안타까움이 남는다. P 110






1940년 11월 29일, 사천성 중경



이층방으로 곧 필제네집(조소앙 선생 가족)이 이사오고 대청마루를 지나 바깥방에는 최형록씨와 조계림이 살고 있다. 일층에는 이청천 선생(지청천 장군)댁과 그 사위 심광식 씨 가족이 우리 방 아랫방에 살고 있더 모두 다섯 세대가 옹기 종기 붙어 있기에 적적한 느낌이 없어서 좋다. P 144






1943년 3월 7일, 사천성 중경



‘중경한국애국부인회’가 재건이 된 후, 엄마는 총무로 피선이 되어 회의에 관한 모든 일을 맡아 보게 됐다. 제일처로 시작한 것은 홍보 활동. ‘중국 중앙방송국’을 통해 세계 만방에 헤어져 살고 있는 우리 여성들과, 더욱이 국내에 있는 부녀자들에게 오늘 저녁 광파 방송을 했다. P212






1945년 5월 1일, 사천성 중경



오늘을 계기로 해서 오랫동안 운동 중에 있던 우리 광복군이 오늘부터는 완전히 ‘한국 광복군’으로 되는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령부 안에는 상하 직원이 거의 다 우리사람으로 개편되고, 필요한 기술자로 중국사람도 얼마가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버지도 오늘부터 광복군에 취직이 되신 모양이다. P237






1945년 8월 9일, 사천성 중경



오후 한 시에 오랫동안 문제로 걸려 있던 일소전쟁에서 소련이 일본을 향해 선전포고를 발표했다. 세상은 미칠 듯이 좋아한다.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발명이 된 미국의 원자폭탄 한 개가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지자 땅 덩어리 3분의 1이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P 240






1945년 8월 10일, 사천성 중경



상오 10시(미국 샌프란시스코 시간)에 일본이 무조건적으로 동맹국에 투항했다는 소식이 중경에 도착한 것은 오늘, 10일 저녁 8시 쯤이었다. 세상은 밤을 새워가며 미칠 듯이 좋아라고 야단을 한다. 그러나 웬셈인지 우리나라 사람들(한국 교포들)은 나와 같은 맘인지 다들 멍하여 가지고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것이다.​ P 245






시시각각 변하는 중국의 상황, 임시정부의 상황이 일기에 그대로 적혀 있다. 특히 이 시기는 임시정부의 3당(한국국민당,한국독립당,조선혁명당) 분열로 인해 힘들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이동녕 선생이 저런 유언을 남기셨을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지, 이동녕 선생의 유언이 있은 뒤 3당 합당이 되었고, 이 3당은 ‘한국독립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후 임정 식구들은 중경, 그러니까 충칭으로 근거지를 옮긴 뒤, 각자의 위치에서 독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최선화님은 애국부인회를 재건했고, 임정요인인 양우조님은 한국광복군에 몸을 담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책 곳곳에 언급되었던 임정 가족들인 이시영 선생, 김구 선생, 지청천 장군, 조소앙 선생, 차리석 선생 등 그 모두가 독립을 위해 노력했고 헌신했다.






하지만 독립은 생각치 못한 방향으로 돌아왔다. 원자폭탄 두대 맞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이 독립은 우리 힘으로 얻어낸 독립이 아니라, 남이 얻어준 독립이었기에, 독립 이후에 일어날 사태에 대해 임시정부 사람들은 우려했다. 그리고 그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은 인정되지 않았기에, 개인자격으로 고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돌아온 고국에는 미국과 소련, 두 나라의 신탁통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1946년 4월 26일



아침에서야 배가 항해하기 시작했다. 우리 조국, 조선 땅으로 가는 배다. 며칠 후면, 그동안 그리던 산하와 가족들을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P 266






1946년 4월 29일, 부산



삼천삼백여 명이나 되는 전체 선객들은 모두 고국 산천을 바라보며 반가워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중국 태생인 우리 애들은 별로 기뻐하는 표정이 없었으나, 엄마 아빠가 내 나라 땅에 왔다니 좋아하고 있다. P 267






개인자격으로 돌아온 조국이어도, 조국이었기에 돌아왔다는 기쁨이 앞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앞 날이 불확실하긴 했지만, 중국 땅에서 임정을 꾸렸듯 그렇게 다시 한번 시작해보려 했을거다. 양우조, 최선화님을 비롯한 임정 식구들 모두가 그랬을거다. 하지만 돌아오니, 친일파가 계속 권력을 잡았다. 이 친일파들은 독립운동가를 좌파라 몰아세우며 잡아들였다. 나라는 두동강났고,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이 분들은 이 상황을 겪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1999년 4월 19일, 대한민국 경기도 분당



이제는 손주들에게 하는 옛날이야기의 한 가지 소재가 되어 버린 그 시절 우리나라의 독립을 바라던 시간들..



먼저 내 얘기를 소중하게 읽고 들어 준 내 손주, 현주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나 또한 그 시간들을 다시 이야기하며 즐거운 마음이 되었다. 지치고 힘겨웠던 기억이라기보다 소중하고 흥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어버린 그 시절 이야기를 기억하고 이야기하면서 마음은 어느새 그 시절로 되돌아갔다. 



그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 하지만 이제는 그 시절을 함께 나눌 사람마저도 찾을 수 없다. 



나도 어느새 기억이 가물거리고 눈앞이 침침하고, 다리, 허리가 아파 오는 것이 그 옛날 내가 봤던 노인들처럼 되어 가고 있다. 남은 건 그나마 내 머릿속에 남은 자꾸 흐려져 가는 기억들이고, 전해 줄 건 그 시절 이야기 뿐이 되어버렸다. ​그저 최선을 다하고, 하루하루 내 앞에 놓인 과제들을 열심히 해결하려고 했으며, 그토록 바라던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 살았던 그 시절을 남겨 둘 수 있어 기쁘다. P 271






담담하게 읽었다. 그렇게 책을 다 읽어가는 와중, 마지막 챕터에 최선화님의 회고를 보았다. 담담하게 읽고 있었는데, 짧은 회고를 보고 눈물을 흘려버렸다. 이분은 어떻게 이토록 헌신적일수 있는 것일까. 독립운동을 하면서 많은 동지들을 먼저 보냈을거고, 광복을 맞이한 뒤에는 친일파에게 동지들이 스러져 가는 것을 보았을거고, 스려저간 일부 동지들이 결국 북한으로 떠난 것도 보았을 거고, 한국전쟁도 보았을 것이며, 한국전쟁 중 대통령이 ‘빨갱이’라는 누명을 씌워 자국의 국민들이 학살하는 것도 보았을 것이다. 이후 군사 독재 정치도 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저 후손들에게 독립된 조국을 넘겨준 것 만으로 기쁘다고 할 수 있다니.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정말 눈물이 났고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고 그랬다. 






앞으로의 대한민국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이 분들에게, 정말 떳떳하게 보여드릴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길 원하고 또 원한다.





일기 속에 담겨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임시정부 요인분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내 인생을 참 많이 바꿔 놓았다. 다음 세대를 위해 본인들의 삶을 희생했던 그분들의 삶이 참 가슴에 와닿앗다. 오늘을 살면서도 오늘이 아닌 내일을 생각하고 이를 위해 행동하는 비전에 감탄했다. 나는 일기를 읽으며 그분들의 이야기를, 대가족 식솔처럼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임시 정부 요인과 그 가족들의 삶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그때 그곳에서 내일을 알 수 없는 삶 속에서 함께 희망을 만들며 살아 나간 그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출판하기로 했다.- P11

그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 하지만 이제는 그 시절을 함께 나눌 사람마저도 찾을 수 없다.



나도 어느새 기억이 가물거리고 눈앞이 침침하고, 다리, 허리가 아파 오는 것이 그 옛날 내가 봤던 노인들처럼 되어 가고 있다. 남은 건 그나마 내 머릿속에 남은 자꾸 흐려져 가는 기억들이고, 전해 줄 건 그 시절 이야기 뿐이 되어버렸다. ​그저 최선을 다하고, 하루하루 내 앞에 놓인 과제들을 열심히 해결하려고 했으며, 그토록 바라던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 살았던 그 시절을 남겨 둘 수 있어 기쁘다.-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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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2020-03-20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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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제시의 일기 새창으로 보기
제시의 일기백번 김구 쌤은 어린애들을 엄청 잘 돌보셨다고....그동안에 아낙들이 밥을 지여서 대령하였띠~~~~~~
sunhee8953 2019-11-1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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