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로 세운 집 - 기호학으로 스캔한 추억의 한국시 32편 epub
이어령 (지은이)arte(아르테)2015-09-17
언어로 세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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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096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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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한국 현대시 100년, 이어령 교수가 직접 읽고 선정한 한국인의 애송시 32편. 이어령 교수는 '우상의 파괴'라는 파격적인 글로 스물두 살의 나이에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한 후, 60년 동안 글을 쓰고 가르치기를 멈추지 않은 이 시대 멘토들의 멘토이며, 학자들의 스승이다. 이 책은 30여 년간 대학 강단에서 문학을 가르쳐온 그가 대중을 위해 펼치는 시 문학수업이다.
이 책은 그저 시에 대한 주관적 감상평을 나열한 뻔한 해설서가 아니다. 한국 문학 비평의 신기원을 열었던 이어령 교수는 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시인의 전기적 배경에 치우쳐 시를 오독해온 우리에게 시어 하나하나의 깊은 의미를 일깨워주며, 문학 텍스트 속에 숨겨진 상징을 기호학으로 분석함으로써 일상의 평범한 언어에 감추어진 시의 아름다운 비밀을 파헤쳐 보여준다.
목차
책을 펴내며 -6
엄마야 누나야-김소월, 시의 숨은 공간 찾기-12
1부
진달래꽃-김소월, ‘사랑’은 언제나 ‘지금’-32
춘설(春雪)-정지용, 봄의 詩는 꽃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42
광야-이육사, 천지의 여백으로 남아 있는 ‘비결정적’ 공간-50
남으로 창을 내겠소-김상용, 오직 침묵으로 웃음으로-58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봄과 여름 사이에서 피어나는 경계의 꽃-65
깃발-유치환, 더 높은 곳을 향한 안타까운 몽상-72
2부
나그네-박목월, 시가 왜 음악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80
향수(鄕愁)-정지용, 다채로운 두운과 모운이 연주하는 황홀한 음악상자--87
사슴-노천명,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생명의 알몸뚱이-96
저녁에-김광섭, 슬프고 아름다운 별의 패러독스-102
청포도-이육사, 하늘의 공간과 전설의 시간을 먹다-109
군말-한용운, 미로는 시를 요구하고 시는 또한 미로를 필요로 한다-116
3부
화사(花蛇)-서정주, 욕망의 착종과 모순의 뜨거운 피로부터-124
해-박두진, 해의 조련사-132
오감도 詩 제1호-이상, 느낌의 방식에서 인식의 방식으로-140
그 날이 오면-심훈, 한의 종소리와 신바람의 북소리-148
외인촌-김광균,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에 숨어 있는 시적 공간-156
승무(僧舞)-조지훈, 하늘의 별빛을 땅의 귀또리 소리로 옮기는 일-164
4부
가을의 기도-김현승, 죽음의 자리에 다다르는 삶의 사계절-174
추일서정-김광균, 일상적 중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언어-182
서시-윤동주, ‘별을 노래하는 마음’의 시론-189
자화상-윤동주, 상징계와 현실계의 나와의 조우-196
국화 옆에서-서정주, 만물이 교감하고 조응하는 그 한순간-204
바다와 나비-김기림, 시적 상상력으로 채집한 언어의 표본실-212
5부
The Last Train-오장환, 막차를 보낸 식민지의 시인-222
파초-김동명, ‘너 속의 나’, ‘나 속의 너’를 추구하는 최고의 경지-230
나의 침실로-이상화, 부름으로서의 시-238
웃은 죄-김동환, 사랑의 밀어 없는 사랑의 서사시-248
귀고(歸故)-유치환, 출생의 모태를 향해서 끝없이 역류하는 시간-255
풀-김수영, 무한한 변화가 잠재된 초원의 시학-262
새-박남수, 시인은 결코 죽지 않는다-271
덧붙이기
시에 대하여-280
인덱스-390
접기
책속에서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의 시적 언술은 ‘강변에 살자’라는 여성 공간의 희망적 메시지 속에 ‘강변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남성 공간의 절망적 언어가 깔려 있다. 자연 속에서 살려고 하면서도 끝없이 자연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문명 속의 인간.음과 양처럼 양면성을 지닌 인간의 현 존재가 강변이라는 경계 영역 위에 통합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강변에 살자고 호소하면 호소할수록 ‘강변에 살 수 없는’ 반대의 현실 고백을 듣는 것 같다. 그리고 강변의 아름다운 묘사가 짙을수록 우리의 마음속에 떠오르고 있는 것은 우리가 상실한 산수화이며 공해에 찌든 살벌한 도시의 풍경이다. 그래서 시 「엄마야 누나야」는 티 없이 맑고 순수한 노래처럼 들리면서도 다른 목가와는 달리 슬픔을 지닌 여운으로 울려온다.
― 시의 숨은 공간 찾기(「엄마야 누나야」, 김소월)에서 접기
항상 시는 모순어법을 통해서, 일상적인 것에서 일탈(deviation)함으로써 시적 긴장을 만들어낸다. 긴장이 없는 시는 맹물 같은 시라고 한다. 이렇게 음운적 레벨, 구문적 레벨, 의미적 레벨이 모여 하나의 시적 레벨을 이루면서 시적 긴장을 자아내는 것이 정지용 시의 맛이다. 이렇게 외부와 단절된 닫힌 공간과 그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만이 문을 열고 바깥세상과 ‘이마받이’를 하는 행복한 충격을 얻을 수가 있다. 그리고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다”는 지금껏 어느 누구도 느끼지도 말하지도 못하던 소원을 품게 된다. 그러한 소망의 원형이 바로 ‘봄눈’이며 ‘꽃샘추위’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용에 의해서 한국 시의 역사상 처음으로 ‘봄의 훼방꾼’이었던 ‘봄눈’과 ‘꽃샘’이 봄을 발견하고 창조하는 시학(詩學)의 주인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 봄의 詩는 꽃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춘설」, 정지용)에서 접기
그러니까 광야라는 공간은 ‘지금’이라는 말과 짝을 이루는 ‘여기’로서 인간이 살고 있는 현존성을 가리키는 장소이다. 기독교 같으면 에덴의 동쪽인 실낙원이나 세례 요한이 외치고 예수가 기도를 올렸던 그 광야일 것이다. 불교 같으면 고해라고 불리는 사바세계, 현해탄에 몸을 던진 윤심덕이라면 “황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라고 노래 부른 그 광야인 것이다. 그러나 이육사의 그 광야는 천지개벽할 때에도 산맥들이 범하지 못한 원초적인 공간으로서 천지의 여백으로 남아 있는 ‘비결정적’ 공간이다. 강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는 말에서도 암시되어 있듯이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는 미완의 땅이다. 그러한 광야를 가지고 있기에 인간은 그 위에 노래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는다. ‘나-여기-지금(moi-ici-maintenant)’의 실존적 세계를 영원하고 무한한 우주로 확산시켜가는 행동. 그것이 바로 ‘광야’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광야」는 ‘시로 쓴 시론’으로 이른바 ‘메타 시’에 속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 천지의 여백으로 남아 있는 ‘비결정적’ 공간(「광야」, 이육사)에서 접기
동서(東西)를 가릴 것 없이 시인들은 자신의 고향을 지상이 아닌 하늘로 생각해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태백은 자신을 땅에 귀양살이 온 시선(詩仙)이라고 불렀고, 보들레르는 밧줄에 묶여 퍼덕이는 알바트로스의 긴 날개에서 자신의 운명을 보았다. 땅(현실)에 살고 있으면서도 영원하고 무한한 하늘(이상)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을 가시화하면 바로 공중에 매달려서 펄럭이는 그 깃발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영원한 노스탈쟈’는 ‘슬프고 애달픈 마음’으로 자연스레 이어지고 맨 처음 그러한 마음(깃발)을 공중에 매단 사람은 원초(原初)의 시인, 시인의 원조(元祖)가 되는 것이다. 시인의 경우만이 아니다. 실낙원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영원한 노스탈쟈’의 ‘하늘’(천국)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은 인간 본래의 근원적인 감정이다. 세속(世俗)의 중력(重力)에서 벗어나 한 치라도 하늘을 향해 높아지려는 발버둥과 그 처절한 초월의 의지……. 그것이 바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고, 물결처럼 흐르는 ‘순정’이고, 푯대처럼 곧은 ‘이념’이고, 백로처럼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애수’이다.
― 더 높은 곳을 향한 안타까운 몽상(「깃발」, 유치환)에서 접기
그런데 별이 나를 내려다보고 내가 별을 쳐다보는 그 시선이 그러한 눈싸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정반대로 정다운 것이 되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저렇게 많은 별 중에”라고 불렸던 별이 나중에 오면 “이렇게 정다운 별 하나”로 바뀌는 그 의미는 무엇인가. ‘저렇게’에서 ‘이렇게’로 변화하게 만든 그 시점은 누구의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답하는 것이 「저녁에」라는 시 읽기의 버팀목이라 할 수 있다.
― 슬프고 아름다운 별의 패러독스(「저녁에」, 김광섭)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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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어령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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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충남 온양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석좌교수,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반평생 동안 이화여자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석좌교수, 석학교수를 지냈다.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으로 활약했으며,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으로 편집을 이끌었다.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과 식전 문화행사, 대전 엑스포의 문화행사 리사이클관을 주도했으며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더보기
최근작 : <한국인의 신화 (큰글씨책)>,<너 어디에서 왔니>,<지성에서 영성으로> … 총 206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의 문학 비평은 이어령에 의해 비로소 문학이 되었다!”
- 고 이병주(소설가)
한국 현대시 100년, 이어령 교수가 직접 읽고 선정한 한국인의 애송시 32편!
머리가 아닌 영혼으로 기억하는 한국의 명시!
그러나 과연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진달래꽃」, 「향수」, 「서시」, 「광야」, 「국화 옆에서」, 「사슴」, 「나그네」, 「가을의 기도」…….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린 한국의 대표적인 명시들이다. 고단한 삶의 파고에 지쳐 영어 단어, 수학 공식은 다 잊어버렸어도 이 시들만큼은 우리 기억 속에 선명하게 살아 있다. 그것은 이 시들이 머리가 아닌 우리 가슴속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제목만 들어도 아련한 느낌에 휩싸이고, 누구나 한두 소절쯤은 읊을 수 있는, 우리 영혼 속에 시의 이상(理想)처럼 자리 잡은 시들. 그러나 우리가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는 그 시들의 깊은 세계를 우리는 정말로 이해하고 있을까?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이별을 노래한 시가 아니라 사랑의 기쁨과 열정을 노래한 시라는 사실을 아는가? 한용운의 『님의 침묵』 속의 님은 도대체 누구일까?
30년간 문학을 가르쳐온 이어령 교수의 시 문학수업!
일상적 삶의 벽을 무너뜨리는 놀라움, 언어의 심층에 싸인 시의 비밀을 밝혀내다!
이어령 교수는 「우상의 파괴」라는 파격적인 글로 스물두 살의 나이에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한 후, 60년 동안 글을 쓰고 가르치기를 멈추지 않은 이 시대 멘토들의 멘토이며, 학자들의 스승이다. 이 책은 30여 년간 대학 강단에서 문학을 가르쳐온 그가 대중을 위해 펼치는 시 문학수업이다. 이 책은 그저 시에 대한 주관적 감상평을 나열한 뻔한 해설서가 아니다. 한국 문학 비평의 신기원을 열었던 이어령 교수는 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시인의 전기적 배경에 치우쳐 시를 오독해온 우리에게 시어 하나하나의 깊은 의미를 일깨워주며, 문학 텍스트 속에 숨겨진 상징을 기호학으로 분석함으로써 일상의 평범한 언어에 감추어진 시의 아름다운 비밀을 파헤쳐 보여준다.
20년 전 수십만 독자들을 열광시킨 이어령의 명시 해설, 비로소 책으로 소개되다!
1996년 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지정된 '문학의 해'기념으로 《조선일보》는 한국의 대표적 지성 이어령 교수에게 『다시 읽는 한국시』라는 연재를 맡겼다. 한국의 대표적인 명시 32편을 직접 선정해 독창적인 시각으로 해설한 이 연재물은 10개월간 수십만의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명시와 명문의 만남으로 회자되던 이 글은 오랜 시간 출판 관계자들에게 구애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신문이라는 한정된 지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잘라내야만 했던 불완전한 글에 대한 노학자의 태도는 단호했다. "제대로 내지 못할 바에야 출간하지 않겠다."는 저자의 완벽주의적인 고집에 가로막혀 이 글은 신문사의 오래된 기록과 사람들의 희미한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전설이 되어갔다. 이 글의 존재를 알지만 제대로 접할 수 없어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의 오랜 설득에 못 이겨 노교수는 20년 후에야 비로소 이 글의 출판을 허락했다. 저자의 꼼꼼한 재확인과 제자 김옥순 박사의 각주까지 덧붙여 세상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이 책은 시를 읽어도 시를 모르는 이 시대의 시맹(詩盲)들에게 시의 깊은 비밀을 밝히는 빛을 던져준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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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눈을 그렇게 떠?˝ ˝아니 아니˝˝너 어디서 반말이니?˝ 구매
undo 2015-10-0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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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배운 것들은 껍데기였거나 헛개비였거나.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그의 해박함과 심오함에 늘 감탄한다. 좋은 책이다. 재독에 삼독, 두고두고 읽어도 좋을 책이다. 구매
finder 2015-11-17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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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의 시 해석 기대됩니다 구매
유찬우 2015-09-1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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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세운 집/시에 대한 이해를 튼튼하게 세우게 된 책~
시를 좋아하기에 만나서 반가웠던 책이다. 일상을 언어로 채우고, 매일 시를 접하고 있지만 시에 대한 분석은 학창 시절 이후론 처음 접하기에 신선했던 책이다. 더구나 이어령 교수님의 구수한 글인데다 시에 대한 논리적인 해석까지 읽게 되니, 다시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느낌도 들었다.
한국인이 사랑한 시를 기호학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그중에서 교과서에 나왔던 시를 중심으로 논리적 분석을 한 책이기에 이전에 몰랐던 이야기가 많아서 몹시 충격적이다. 시의 분위기나 시어의 문화적 코드도 제대로 모르면서 여태 사랑하는 시라고 외웠다니, 순간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대한 분석은 나도 무척 충격적이다. 가장 널리 알려졌으나 가장 잘못 읽혀지고 있다는 시이기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보내 드리오리다.
(이하 생략)
-<진달래꽃> 김소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이별을 노래한 시가 아니라 사랑의 기쁨과 열정을 노래한 시라니, 진달래가 이별의 슬픔을 억제하고 너그러운 부덕을 상징하는 꽃이 아니라는 설명을 읽으면서 교실에서 배운대로 익히고 무심코 시를 암기했던 나의 생각없음에 부끄럽기도 했다.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보내 드리오리다'라는 표현은 미래추정형이기에 앞으로의 의지와 바람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진달래꽃>에서는 열렬한 사랑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별의 슬픔은 미래형이고, 사랑의 기쁨은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이별의 가정법을 통해 사랑의 농도를 강조하는 표현법인데다, 역설법의 묘미를 살려 사랑의 기쁨을 내포한 시였다니, 다시 읽으며 새삼 생각이 깊어졌다.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영변 약산! 진달래는 자기억제의 꽃이 아니라고 한다. 하긴 봄은 생명을 잉태하는 발산의 시기이기에 봄의 전령인 진달래는 슬픔이나 이별의 이미지보다 기쁨이나 반가움의 이미지일 것이다.
이 책은 20년 전 조선일보에 연재된 칼럼을 엮은 책이다.
책에서는 진달래꽃, 향수, 서시, 광야, 춘설, 남으로 창을 내겠소 등 너무나 유명한 한국의 대표적 명시 32편을 담았다. 교과서에서도 본 현대시들이기에 더욱 친숙해서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한국의 대표 현대시를 시대적 배경, 시인의 전기적 배경 뿐 아니라 시어가 가진 문화적 상징을 기호학으로 분석했기에 논리학을 읽는 느낌도 든다. 일상의 언어에 담긴 문화 코드를 찾아내고, 시어로서의 기호학적 의미도 분석해 내기에 색다른 시 감상법을 알게 된 책이다.
너무나 사랑하는 시들이기에 빨려서 읽은 책이다.
생각 없이 암기하고, 교과서적 해설에 익숙해진 시들이기에 읽으면서 받은 충격이 세다. 시의 외형에 취해 기계적으로 암기한 탓에 해석적 오해를 하게 될 줄이야. 시험을 위해 생각 없이 시를 암송했던 폐단으로 시에 대한 오류를 저지르게 될 줄이야.
- 접기
봄덕 2015-11-06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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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언어를 중심으로 시 다시 읽기 새창으로 보기 구매
참 제목 잘 붙였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시를 가지고, 시는 언어로 세운 집이라고 하니, 기가 막힌 표현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이런 표현을 쓰기는 하겠지만, 시를 해설하는 책에서 이런 제목을 썼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시에 한발짝 다가서게 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책을 펴내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는 말로 지은 집입니다. 벽돌로 집을 짓듯이 말 하나하나를 쌓아 완성한 건축물입니다. (6쪽)
그렇다. 시를 집에 비유할 수 있다. 온갖 재료들이 합쳐져 집이 되듯이 시 역시 온갖 말들이 합쳐져 시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시는 언어로 세운 집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를 감상해야 할까? 바로 언어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삶이나, 사회적인 상황을 먼저 고려하기 보다는 시에 쓰인 언어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는 것. 이것을 기호학으로 시를 읽어낸다고 하는데...
그런 시에 대한 이론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시를 파악하는데 언어에 먼저 주목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언어를 통해서 조직해 낸 것이 시니까 말이다.
집에 초가집, 기와집, 벽돌집, 콘크리트집, 아파트, 연립주택, 목조주택, 황토집, 통나무집, 돌집 등 재료나 형태, 기능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붙여질 수 있듯이, 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어느 집이 특별히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집에 대한 관점이 다르고, 좋아하는 집이 다르니까, 시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이름이 붙을 수 있고, 어떤 시가 좋은 시라고 꼭 전법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다만, 집이 좋고 나쁘고를 판단할 수 있듯이(불량재료를 쓴 집은 곧 무너지게 된다. 안 좋은 집이다. 좋은 재료를, 적절한 곳에 써야 좋은 집이다) 시도 좋은 시, 안 좋은 시를 구분할 수는 있다. 이것을 그 시를 좋아하느냐 마느냐와는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 역시 언어로 세운 집이기에, 기본적으로 언어가 적절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시들이 좋은 시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언어를 중심으로 시를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감상법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어떻게 언어에 집중해야 하는가, 언어에 집중하면 시의 맛을 어떻게 느낄 수 있는가를 32편의 시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시를 고등학교 때까지 시험을 위해서 배우고, 그래서 언어를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시험에 어떤 형태로 출제가 되는지를 중심에 놓고 시를 읽었던 습관을 이 책을 통해서 버리게 된다. 시는 결코 시험으로 평가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다보면 고등학교 때까지 배웠던 시에 대한 해석이 이 책에서 해석하는 내용과 다른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시에 쓰인 언어 자체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리가 동요로도 알고 있는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부터 시작한다. 너무도 단순한 달랑 4행짜리 시를 가지고 이렇게 많은 의미가 언어들의 조합을 통해 들어 있음을, 그래서 시라는 집의 안쪽, 우리가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시라는 집의 내밀한 부분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시를 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다른 시들을 읽어가게 되는데, 맨 마지막 시가 박남수의 '새'다. 제목으로는 '시인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했고.
누구나 아는 시로 시작해서 시에 쓰인 언어를 통해 시인은 결코 사라질 수 없음을 주장하는 글로 끝맺고 있다. 시라는 집의 안쪽을, 생활을 본 사람은 그런 집을 지은 시인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고, 그런 집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 한 시인은 사라질 수 없음을 이야기 한다.
아니,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냐 없냐가 중요하지 않다. 시인은 수요자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집을 지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아니라도 좋다고, 언제라도 누군가 자신의 집을 보아주면 좋다는 생각으로.
학창시절 만났던 시들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 그 시들을 새롭게 보게 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책이다.
참고로 이 책에 나온 시들을 열거해 본다. 아마도 거의 대부분의 시들을 이미 학교에서 배웠을 것이다.
엄마야 누나야, 진달래꽃, 춘설, 광야, 남으로 창을 내겠소, 모란이 피기까지는, 깃발, 나그네, 향수, 사슴, 저녁에, 청포도, 군말, 화사(花蛇), 해, 오감도, 그 날이 오면, 외인촌, 승무, 가을의 기도, 추일서정, 서시, 자화상, 국화 옆에서, 바다와 나비, The Last Ttrain, 파초, 나의 침실로, 웃은 죄, 귀고(歸故), 풀, 새
총 32편의 시다. 이미 알고 있지 않다면 한 번 찾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시를 찾아 읽는 민족은 문화민족일테니.
덧글
시에 관한 책에서 조금 아쉬운 점... 특히 제목이 언어로 세운 집인데... 언어가 잘못 사용되면 적절하지 않은 곳에 들어간 건축재료처럼 눈에 거슬리게 된다. 난 두 군데가 거슬렸는데...
하나는 청포도 시를 인용한 부분.
109쪽. 청포도 시에서 5연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
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이라고 인쇄되어 있는데... 이건 명백한 오식이다.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이라고 되어야 한다. 이 책의 주석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255쪽. 유치환의 시 귀고(귀고)에서 11행 행이불언(行而不信)이라고 되어 있는데.. 한자어가 잘못 표기되었다. 행이불언(行而不言)이어야 한다. 역시 주석에는 바로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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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ye91 2016-01-22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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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세운 집]-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사는 것이다 새창으로 보기
시는 말로 지은 집니다. 벽돌로 집을 짓듯이 말 하나하나를 쌓아 완성한 건축물입니다. 초가집이나 벽돌집이니 하듯이 시 한 편은 곧 한 채의 '말집'인 겁니다. (본문 6p)
<<언어로 세운 집>>이라는 책 제목이 무슨 뜻인지 몰라도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이어령 작가의 책이 아닌가? 이유를 불문하고 읽어보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도 강렬했던 책이었다. 이러한 간절함으로 읽어보게 된 책이었는데, '시는 말로 지은 집입니다.'라는 첫 구절에서부터 마음을 확 사로잡혀 버렸다. 시보다 더 시같은 문구가 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나같은 시맹에게도 언어가 주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이 책을 읽는 것에 대해 길 가다가 우연히 굳게 닫힌 남의 집 내부를 힐끔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것과 같은 아주 미묘하고 신비하기까지 한 낯선 공간 체험처럼 지금까지 겉모양만 봐아왔던 말집의, 그러니까 시의 내부 공간을 깊숙이 들여다볼 기회를 갖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 수록된 한국 현대시 32편은 우리 시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대표적인 시인들의 시이니만큼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저자의 말처럼 사실 그동안 우리는 말집의 겉모양만 봐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탓에 이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낯선 공간 체험처럼 설레였다.
이 책은 19년 전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32편을 덧칠하지 않고 그대로 수록하고 있다. 그 첫번째 시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로 흔히들 가장 쉬운 시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누구나 쉽게 외우고 있는 시이다. 하지만 이 시에는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처음에 보았던 평범한 그림 속에 수많은 형상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과 신기함을 느꼈던 것처럼 우리가 모르는 많은 시적 공간이 숨어 있다고 한다. '엄마야 누나야'는 단지 여성 공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재하는 공간으로 '야'의 호격조사가 바로 현존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 이 시의 화자가 그동안 남자 아이일 거라는 짐작해왔던 것들은 틀렸었던 것이다. 이어령 교수의 해설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짧은 싯구에 정말 많은 시적 공간이 숨어 있으며, 이는 그동안 잘 알고 있는 시라 생각했던 것에 대한 놀라운 반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게다.
그렇다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어떨까? 이 시 역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시이기도 하지만, 가장 잘못 읽혀져온 시이기도 하다고 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대학입시 국어 문제에서도 이 시는 '이별을 노래한 시'라고 써야만 정답이지만, 이 시는 결코 이별만을 노래한 단순한 시가 아니라 미래 추청형으로 쓰여진 이 시는 이별은커녕 지금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 역설은 이 시의 구조적 원리인 것이다.
사랑을 현재형으로, 이별을 미래형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소월의 특이한 시적 시제 속에서는 언제나 이별은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랑의 기쁨과 열정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구실을 한다. (본문 38p)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는 어떨까? 이 시는 형식만 3연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패러다임도 세 국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연의 가을은 "기도하게 하소서"로 기도하기와 시 쓰기를 위한 모국어에 대한 욕망을, 가운데 연의 가을은 "사랑하게 하소서"로 시간에 대한 욕망을 긜고 마지막 연의 가을은 "홀로 있게 하소서"로 고독한 영혼에 대한 욕망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또한 가을의 욕망을 나타내는 이 세 가지 패러다임은 단순한 공간적 비교 축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인 비교 축으로도 전개되어 있다는 것. 이에 [가을의 기도]는 시와 종교를 거쳐 최종적인 죽음의 자리에 다다르는 삶의 과정을 성숙과 조락의 가을로 형성화하고 있단다.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시 윤동주의 [서시]에도 비밀은 있다. 윤동주의 별을 일제에 대한 저항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면 '잎새'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한국 민족이 될 것이고, 바람과 그 밤은 일제의 압제가 되며, 그 별을 광복의 별이고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사랑은 민족애로,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말은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맹세로 볼 수 있다. 만약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보면 잎새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원죄를 지은 모털으로서의 인간이 되고 그 안에는 일제 관헌들까지도 포함되고 있어 '사랑해야지'라는 말은 기독교의 박애 정신과 직결되고 그 길 역시 신앙의 길이 된다. 그렇게 되면 종교와 정치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별을 만들어내고 말기에 [서시]는 정치론이나 종교론이 아니라 고통에서 사랑을 그리고 어둠에서 빛을 탄생시키는 희한한 시의 마술…… '별을 노래하는 마음'의 시론이 된다고 한다.
이 외에는 이어령 교수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대표적인 시인들의 시에 대해 시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해설해주고 있다. 우리는 이 시들에 대해 가장 좋아하는 시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시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이 시들을 읊고 있었지만 정작 우리는 이 시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진달래꽃]이 이별의 노래가 아니라 지금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시라는 것만 봐도, 국어 시험에서 이별의 시라고 해야 정답이 되고 있다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이에 이어령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이 시 속에 숨겨져 있던 아름다운 비밀을 파헤쳐 보여주었고, 독자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시의 비밀들을 마치 숨은 그림찾기 하듯 하나하나 찾아가게 된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보다 더 아름다운 비밀을 감추고 있었던 32편의 시들의 비밀이 하나둘 벗겨지면서 독자는 이 시들이 더욱 아름다운 시로 다가오는 신비함을 경험하게 된다.
시의 집 전체를 투시하고 그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바라다볼 수 있는 요술 거울. 그리고 그것으로 비추어 본 32편의 한국 시에 대한 텍스트 분석이 불빛이 새어나오는 창문 그리고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들여다보이는 뜰의 신비한 체험을 얻게 할 것입니다. (본문 10p)
시 자체에서 주는 신비로움, 아름다움도 있었지만 사실 <<언어로 세운 집>>을 통해 그동안 접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의 책을 읽어보았다는 신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많은 작가들이 시를 해석해줌으로써 시가 무엇인지, 시를 어떻게 읽으면 좋은지에 대해 알려주었지만, 본 책은 이와 달리 독자적인 장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시에 대한 '정의'라고 해야할까? 32편의 시에 대한 정답을 알게 된 느낌이었다. 지금까지의 시에 대한 책들이 시를 읽는 법을 알려주었다면, 이 책은 '이 시는 이것이다'라는 느낌. 나름대로 시를 읽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가 가진 비밀이 드러내준, 쉽게 말해 숨은 그림 찾기의 정답이 표시된 그림이라고 하면 되려나. 수업시간에 잘 못 알려준 정답을 명확하게 진실되게 배운 느낌이었다. 시의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보았던 기분. 지금까지 시의 아름다움을 빙산의 일각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면 이어령 교수를 통해 시의 아름다움을 전부 본 느낌이었다. 시의 겉모양이 아니라 시의 내부를 볼 수 있었던 신선한 반전과 충격을 보여준 이 책은 기호학으로 스캔한 추억의 한국시 32편의 <<언어로 세운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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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세상 2015-09-30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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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혀 있던 단어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이어령의 해석 새창으로 보기
이어령의 언어로 세운 집은 모두 32편의 시가 다섯 파트로 나누어져 소개된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시험문제로 우리를 시험이라는 괄호 문제 속에서 주제를 찾아야 했고 소재를 골라야 하는 등 '끊임없이 괴롭히던' 아름다운 시들이라는 것이 문제다.
이 책에서 이어령은 이육사, 윤동주, 서정주, 김소월 등 암울했던 시절, 고난의 시절을 뚫고 나오는 빛나는 단어들을 모아 만든 시를 통해 삶의 한 날을 굵고도 짧게 그리고 진하고도 여리게 자연과 사람을 이야기한 시인들의 시들을 이어령 선생의 언어로 다시 해석된 시들이 모여 있는 책이다. 특히 이 책 후반부에서는 별도의 주석을 달아서 좀 더 깊이 있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저자 이어령은 시험지 답안을 채우는 시로만 공부했던 것을 그의 기호학으로 분석, 이념적인 정답을 제하고 다시 시를 깊이 들여다봐야 함을 강하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학교 다니면서 답안지를 채우기 위한 문제로 민족, 통일 등 그들이 쏟아내놓은 가슴 깊은 시들을 단순하게도 그렇게 연결 짓고 해석을 하는 것으로 시를 배웠었다.
시를 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에 선을 보인 이성복 시인의 시론집을 통해 시인은 시와 글쓰기에 대한 강의 내용을 소개했다. 이성복 시인은 '무한화서'에서 시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한 바 있다. "부분을 통해서 전체를 드러내는 게 이이고, 부분을 떼어 내면 전체가 무너지는 게 시에요. 토씨 하나에도 희로애락이 실리게 하세요. 묻어나는 말, 번지는 말이 시에요. 시이거나 시 아니거나 어느 하나일 뿐, 시 비슷한 건 없어요."-36페이지, 이성복 시론, '무한화서' 중에서
이러한 그의 시에 대한 생각과 관점을 놓고 이번 이어령이 해석한 우리나라 대표시 32편을 보니 시가 새롭게 다가왔다. 무작정 국가, 나라, 민족을 연결해 해석하고 단정 지었던 것들에서 벗어나 시인의 삶과 사랑, 자연을 돌아보니 그 아름다움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다시 해석됨으로 해서 바위에 갇혀 있던 단어들이 새롭게 빛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대체 우리는 뭐냐. 만해가 애써 찾아서 갈고 닦아낸 님이라는 그 귀중한 한국말, 열려 있는 말, 모든 계층과 그 영역을 횡단하는 말, 어느 대상에 가 붙든 그것을 끝없이 새롭게 변형시키고 심화시키는 말, 우리를 목마르게 하는 말, 침묵 속에서 노래를, 어둠 속에서 빛을 그리고 타다 남은 재를 다시 기름이 되게 하는 기적의 말, 그 입체적인 시의 말을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망치로 두들겨 펴서 납작하게 만들어놓았는가. 자유롭고 아름다운 한국말의 그 님을 정치와 종교의 울 안에 가두어 가축처럼 길들이려 했는가."-121페이지, '언어로 세운 집' 중에서
누구나 한 편 정도는 외우고 있을 법한 시, 그러나 어처구니 없이 해석하고 재단했던 시들은 단어와 단어 사이, 행과 행 사이를 통해서 시인이 말하고자 했던 것들을 세밀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본 저자의 노력과 집념으로 우리 시를 다시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정쩡한 9월은 이제 가고 가을 빛 찬란한 그 한때가 올 것이다. 책 읽기 좋은 시간, 시 한편 써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는 시간에 다시 만나는 이 대표적인 한국 시들이 잠자고 있던 영혼을 다시 들썩거려놓는다.
지친 하루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권해주고 싶다. 다시 보고, 다시 읽어야 할 한국 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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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mjan 2015-09-30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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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말로 지은 집 새창으로 보기
『언어로 세운 집』 이어령 / 아르테(21세기북스)
1. 육신은 영혼이 거하는 집이라고 한다. 잠시 우리는 그 집을 이용할 뿐이다. “시는 말로 지은 집입니다. 벽돌로 집을 짓듯이 말(語) 하나하나를 쌓아 완성한 건축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일이 힘들 듯이 말로 지은 집인 시(詩)를 읽고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다. 깊은 사유의 언어로 함축된 그 시어(詩語)들을 해독하고 이미지를 그리는 일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시(詩)는 시인들이 주고받는 메시지라는 말도 있다. 과연 그럴까? 시인들은 다른 시인들의 시를 자주 대할까?
2. 저자 이어령 교수는 독자들에게 시의 집 전체를 투시하고 그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바라다볼 수 있는 요술거울을 전해주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비추어본 32편의 한국 시에 대한 텍스트 분석을 통해 불빛이 새어나오는 창문 그리고 반쯤 열린 문사이로 들여다보이는 뜰의 신비한 체험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한다.
3.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가리/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오//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드르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_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전문
이 시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마지막 연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생각한다. “왜 사느냐는 말에 그냥 ‘웃지요’라고 한 김상용 시인의 미소는 말로는 표현 할 수도 논증될 수도 없는 삶 그 자체이다. 애매성과 모순으로 뭉쳐진 삶 자체의 다의성(多義性)을 그대로 옮긴 것이 그 웃음이며 시의 언어이다.”
4.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야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종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면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_유치환 「깃발」 전문
깃발은 바다를 향하고 있다. 해원(海原)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방향을 유도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부분을 이렇게 풀어주고 있다. “그가 묻고 있는 기(旗)의 의미는 ‘바다’가 아니라, 공중(하늘)에 매달린 깃발..... 바다이든 산이든 상관없이 하늘을 향해 나부끼는 원초적인 그 깃발의 의미요, 이미지이다.” 공중에 매달린 기를 바다로 향한 기로 한정해버리면 깃발의 보편성은 개별성으로, 그 수직성은 수평성으로 그리고 상승적 높이를 지닌 나부낌은 확산적 넓이를 지닌 나부낌으로 머물고 만다는 것이다.
5.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바라본다.”
_노천명의 「사슴」 전문
오래전 대학입시에 노천명의 시 「사슴」이 출제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의 시구가 무슨 짐승을 가리킨 것이냐는 물음에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기린’이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젊은 세대들의 시적 독해력 부족과 전통의 단절감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었다. “‘모가지’라는 말 속에는 인간과 동물이 다 같이 공유하고 있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생명의 알몸뚱이가 들어있다.” 목이 짧으면 오히려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공격적 존재로 보이지만 목이 길면 수동성과 생명의 무력성이 드러나게 된다. 모딜리아니가 그린 여인들의 초상이 조금씩 슬퍼 보이는 이유는 예외 없이 그 목이 길게 그려져 있는 탓이다. 어쩌다가 그렇게 목이 빠지다 못해 길어져버렸나.
6. 시는 언어로 세운 집이기에,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사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 이어령 교수는 독자가 그 안에 들어가 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차분하고 세심하게 안내를 해준다. 책 말미엔 상당한 분량의 덧붙이기를 통해 원본시, 작가소개, 주석, 인덱스가 있다. 피상적으로 그 뜻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시들을 다시 만나면서 새롭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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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saint 2015-09-29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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