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해의 마지막 epub
김연수 (지은이)문학동네2020-07-31
종이책 페이지수 248쪽,
eBook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편집장의 선택
"백석을 만난 김연수, 8년 만의 장편소설"
"그때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따뜻한 것들로, 좋아하는 것들로, 다정한 것들로. 이를테면 잘 길들여진 돼지처럼 순하고, 남국의 산록같이 보드라운 것들로." (185쪽)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삶.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중) 거대한 세계의 질서에 휩쓸리고서도 여전히 꿈을 멈추지 않는 개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온 소설가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통해 사랑하는 개인들의 숭고함에 대해 이야기한 후로 8년, 매일 읽고 쓰고 달리는 작가 김연수가 기행을 만났다. 시인 백석.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일명 기행이라고 소개되던 남자. 1930년대의 흥성하고 눈부셨던 백석의 시간을 지나 이제 김연수의 소설이 그리는 순간은 1958년 기행의 시간. 기행은 아프리카의 기린의 목에 (혁명의) 붉은 깃발을 단 동시를 썼다는 이유로 비판받는다. 아프리카의 기린이 현실의 삶을 반영하기엔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게 그 이유이다. "당은 생각하고 문학은 받아쓴다는 것."(55쪽) 자아가 너무 많은 기행은 그들의 문학을 따를 수 없고, 그의 자아는 그 존재만으로 비판의 이유가 된다. (한때 그는 '박시봉'의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 했었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없고, 꿈꿀 수 없는 곳에서 개인은 무엇을 해낼 수 있는가. 김연수가 물음을 계속한다.
이 소설의 첫 장 첫 문장은 "벨라와 빅토르는 시인이다."로 시작하고, 다음 장 첫 문장은 "기행은 시인이다."로 시작한다. 시인은 어떻게 시인이 되고, 어떻게 시인으로 남을 수 있을까. 시인으로 살기보다 러시아어 번역가로 살기로 한 기행이 러시아 시인 벨라에게 보낸 시작노트가 벨라의 러시아어 시 두 편으로 돌아오면서 기행의 삶은 그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김연수는 작가의 말에서 "이것은 백석이 살아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던 소망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어떤 이야기는 소설이 된다.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 같던 꿈. 눈 내리는 정주의 풍경을 그리던 시인의 꿈은, 60년 전 그에게서 시작되어 마침내 지금 우리에게, 김연수의 아름다운 문장을 타고 도달한다.
- 소설 MD 김효선 (20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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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개인이 밟아나간 작품 활동의 궤적을 곧 한국소설의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로 만들어내며 한국문학의 판도를 뒤바꾼 작가 김연수의 장편소설. 삼십 년 가까이 작가생활을 하는 동안 김연수는 에너지와 불안으로 가득한 청춘의 눈빛을 가장 가까이에서 기록하는 한편으로 사랑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며 그만의 지적인 사랑학 개론을 펼쳐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방대한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사실로는 가닿을 수 없는 빈틈에서 개인의 진실을 발견해내는 작업을 해오기도 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후 8년 만에 펴내는 이번 장편소설은 청춘, 사랑, 역사, 개인이라는 그간의 김연수 소설의 핵심 키워드를 모두 아우르는 작품으로, 한국전쟁 이후 급격히 변한 세상 앞에 선 시인 '기행'의 삶을 그려낸다. 1930~40년대에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다가 전쟁 후 북에서 당의 이념에 맞는 시를 쓰라는 요구를 받으며 러시아문학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는 모습에서 기행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시인 '백석'을 모델로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행은 원하는 대로 시를 쓸 수 없는 상황, "희망과 꿈 없이 살아가는 법"(64쪽)을 새롭게 배워야만 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시를 붙들려 하지만 번번이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시를 향한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더라도, 개인을 내리누르는 현실의 무게가 압도적이라면 그 마음은 끝내 좌절되고야 마는 걸까. 속수무책의 현실 앞에서 작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도저히 버려지지 않는 마음,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일곱 해의 마지막>은 이러한 물음을 안고 한 명의 시민이자 작가로서 어두운 한 시절을 통과해온 끝에 마침내 김연수가 내놓은 대답처럼 보인다.
목차
1957년과 1958년 사이 009
창작 부진의 작가들을 위한 자백위원회 061
우리가 알던 세상의 끝 109
무아(無我)를 향한 공무 여행 167
일곱 해의 마지막 225
작가의 말 241
책속에서
P. 26 인생을 거꾸로 산다면 어떻게 될까? 결말을 안 뒤에 다시 대조국전쟁을 거쳐 십대 시절로 돌아간다면? 장차 시인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네크라소프의 시를 읽는다면? 얘는 전쟁에 가서 돌아오지 못할 거야, 라고 생각하며 급우와 대화를 나눈다면? 그렇다면 원래보다 더 슬플지는 모르겠으나 그 순간에 더욱 집중하긴 할 것이다.... 더보기
P. 32 기행을 매혹시킨 불행이란 흥성하고 눈부셨던 시절,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의 결과물이었다. 다시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랑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불행해지는 것쯤이야 두렵지 않아서.
P. 85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있는 것, 어떤 시를 쓰지 않을 수 있는 것, 무엇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은 무엇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었다.
P. 88~89 “그런 게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 짓는 죄와 벌이지. 최선을 선택했다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 고통받은 뒤에야 그게 최악의 선택임을 알게 되는 것. 죄가 벌을 부르는 게 아니라 벌이 죄를 만든다는 것.”
P. 112~113 그늘은, 빛이 있어 그늘이었다. 지금 그늘 속에 있다는 건, 어딘가에 빛이 있다는 뜻이었다. 다만 그에게 그 빛이 아직 도달하지 않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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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연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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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 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 문학상을,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제14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으로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 있고, 장편소설로 《7번국도 Revisited》, 《사랑이라니, 선영아》, 《꾿빠이, 이상》,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 더보기
수상 : 2009년 이상문학상, 2007년 황순원문학상, 2005년 대산문학상, 2003년 동인문학상, 2001년 동서문학상, 1994년 작가세계문학상
최근작 : <일곱 해의 마지막>,<언유주얼 an usual Magazine Vol.5 : 어차피 애창곡은 발라드>,<시절일기> … 총 191종 (모두보기)
인터뷰 : 희망 없으나 절망은 아닌 따뜻함에 대하여 - 2008.10.17
출판사 제공 책소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후 8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시인 박준, 소설가 최은영 추천
개인이 밟아나간 작품 활동의 궤적을 곧 한국소설의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로 만들어내며 한국문학의 판도를 뒤바꾼 작가 김연수의 신작 장편소설. 삼십 년 가까이 작가생활을 하는 동안 김연수는 에너지와 불안으로 가득한 청춘의 눈빛을 가장 가까이에서 기록하는 한편으로 사랑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며 그만의 지적인 사랑학 개론을 펼쳐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방대한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사실로는 가닿을 수 없는 빈틈에서 개인의 진실을 발견해내는 작업을 해오기도 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후 8년 만에 펴내는 이번 장편소설은 청춘, 사랑, 역사, 개인이라는 그간의 김연수 소설의 핵심 키워드를 모두 아우르는 작품으로, 한국전쟁 이후 급격히 변한 세상 앞에 선 시인 ‘기행’의 삶을 그려낸다. 1930~40년대에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다가 전쟁 후 북에서 당의 이념에 맞는 시를 쓰라는 요구를 받으며 러시아문학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는 모습에서 기행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시인 ‘백석’을 모델로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행은 원하는 대로 시를 쓸 수 없는 상황, “희망과 꿈 없이 살아가는 법”(64쪽)을 새롭게 배워야만 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시를 붙들려 하지만 번번이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시를 향한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더라도, 개인을 내리누르는 현실의 무게가 압도적이라면 그 마음은 끝내 좌절되고야 마는 걸까. 속수무책의 현실 앞에서 작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도저히 버려지지 않는 마음,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일곱 해의 마지막』은 이러한 물음을 안고 한 명의 시민이자 작가로서 어두운 한 시절을 통과해온 끝에 마침내 김연수가 내놓은 대답처럼 보인다.
“기행을 매혹시킨 불행이란 흥성하고 눈부셨던 시절,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의 결과물이었다.
다시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랑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불행해지는 것쯤이야 두렵지 않아서.”
순하고 여린 것들로 북적대던 아름다운 시절이 끝나고 찾아온 적막
그 세상에서 끝내 버릴 수 없던 어떤 마음과 그 마음이 남긴 몇 줄의 시
1958년 여름, 번역실에 출근한 기행은 한 통의 편지봉투를 받게 된다. 누군가가 먼저 본 듯 뜯겨 있는 그 봉투 안에는 다른 내용 없이 러시아어로 쓰인 시 두 편만이 담겨 있다. 시를 보낸 사람은 러시아 시인 ‘벨라’. 작년 여름 그녀가 조선작가동맹의 초청을 받아 북한에 방문했을 때 기행은 그녀의 시를 번역한 인연으로 통역을 맡았었다. 그리고 그녀가 러시아로 돌아가기 전 기행은 그녀에게 자신이 쓴 시들이 적힌 노트 한 권을 건넸었다. 지금은 아무도 기행을 시인으로 알고 있지 않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만 하더라도 기행은 시집 『사슴』으로 이름을 알린 시인이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세상이 바뀌어버렸고, 북한 문단은 기행에게 당의 이념을 인민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 문학만을 쓰기를 강요했다. 당이 요구하는 시를 쓰지 않으면 평양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기행은 어떤 시도 써 내지 않는다. 당이 요구하는 시란 기행이 “평생 혼자서 사랑하고 몰두했던”(190쪽) 언어로 이루어진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벨라에게 노트를 건네며 “폐허에 굴러다니는 벽돌 조각들처럼 단어들은 점점 부서지고”(162쪽) 있다고 고백하는 기행에게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 안에서 조선어 단어들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 죽음에 대해 당신도 책임감을 느껴야만 해요. 날마다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아침저녁으로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러지 않으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매일매일 죽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게 시인의 일이에요. 매일매일 세수를 하듯이, 꼬박꼬박.”(165쪽)
그런 만남이 있은 후 기행은 북한에서는 발표할 수 없는 시를 적어 러시아에 있는 벨라에게 보냈던 것인데, 그동안 어떤 회신도 없다가 일 년이 지나 답신이 온 것이었다. 봉투에 러시아 시 두 편만이 담긴 채로. 그 봉투를 먼저 뜯어본 건 누구였을까? 벨라라면 편지도 같이 보냈을 텐데 그건 누가 가져간 걸까? 벨라는 자신이 보낸 노트를 어떻게 했을까? 당의 문예 정책 아래에서 숨죽인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기행의 삶은 벨라에게서 온 그 회신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이루지 못한 꿈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다시 쓰인다
60년 전 그에게서 시작되어 마침내 지금 우리에게 도달한 빛
『일곱 해의 마지막』이 전쟁 이후의 행보가 불확실한 백석의 삶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니지만, 이 소설이 기행이 시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전쟁 전이 아니라 그가 꿈꾸던 것들이 계속 좌절되던 그 공백의 시간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 공백의 시간 동안 “시인으로 기억되지도 못했고,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지도 못했으며, 시골 학교의 선생이 되지도 못”(83쪽)한 그는 실패자와 다름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건 195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기행이라는 한 개인의 삶만 놓고 봤을 때에만 그러하다고, 김연수는 말하는 듯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 이것은 백석이 살아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던 소망에 대한 이야기다. _‘작가의 말’ 중에서
그러니까, 꿈꾸었으나 이루지 못한 것들, 간절히 원했으나 실현되지 못한 것들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시대와 개인이라는 조건을 뛰어넘어 “거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 지금이 아닌 먼 미래의 언젠가”(58쪽) 이뤄지기도 한다고 말이다. 그 삶의 공백을 새롭게 채워넣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그러므로 『일곱 해의 마지막』이 1950년대의 기행의 삶에서부터 시작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로 인해 소설 속 인물은 두 가지 방식으로 살게 된다. 한 번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끝내 이루지 못하는 방식으로, 다른 한 번은 자신이 원했던 바로 그 삶의 방식으로. 완결되었다고 여겨진 삶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음으로써 두 번의 삶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계속해서 김연수의 소설에 매혹되는 이유 중 하나임을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으며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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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클립 연재 들으며 귓속에 열심히 밑줄 긋고 있었는데(^^), 책 예약판매 소식 엄청 반갑습니다! 당장 구매했는데, 7월까지 기다려야 만날 수 있네요. 7월을 두근두근 기다립니다^^ 얼른 종이책에 사각사각 밑줄 그으며 읽고 싶어요! 구매
원주 2020-06-15 공감 (2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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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설. 구매
꽁치 2020-07-06 공감 (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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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언제나 김연수의 새소설을 서둘러 읽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는 도무지 마음이 붙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문학이 중요하고 사랑이 중요하지. 근데 항상 하던 그 이야기를 굳이 북한 배경으로 하는 건 너무 쉬운 선택 아닌가. 해방후 월남한 우익작가들의 입장과 무엇이 크게 다른 것인지. 구매
초록비 2020-07-07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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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화자와 시간을 오가며 백석의 마음을 헤아린다. 챕터 사이 사이 작가의 고민이 느껴진다. 쓰는 사람이 안 쓰는 사람이 되는 이야기지만 작가는 쓰게 만든 이 소설이 소중하다. 구매
솔빛시인 2020-07-06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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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가 해석한 백석이란다. 시로 먼저 등단한 김연수이기도 하고, <꾿바이 이상>이라는 실존 작가를 모델로 한 흥미로운 작품을 이미 발표한 적도 있다. 30년대 조선에서 모던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웠던 이상과 백석. 요절한 이상과 달리 북으로 간 백석의 서사는 왠지 더 까슬할 것 같다. 구매
얼음장수 2020-06-17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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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새창으로 보기
소설을 다 읽은 후 그 여운이 길었다. 무언가를 써야할 것 같은데, 계속 백석 시인에 대하여 생각했다. 그러다 발견한 게 김연수 작가의 음성으로 '연재를 마치고 난후'와 연재소설을 듣기 시작했다. 귓가에 맴도는 소설의 내용이 내 주변을 장악하고 나는 그렇게 한동안 소설 속에 빠져있었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오래도록 기다려왔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후 8년 만의 신작이라고 한다. 이 소설이 어떤 내용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김연수 작가의 소설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백지 상태에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시인 백석의 이야기였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혹은 '사슴'으로 유명한 시인. 소설 속에서 백기행으로 불리는 시인의 삶을 바라본다. 작가는 이 소설을 가리켜 '백석이 살아보지 않은 이야기'라고 하였다. 백석 시인이 살았음직한 이야기. 그가 북한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작가의 시선으로 마치 백석을 다독이듯 풀어낸 글이었다.
백기행은 시인이다. 1957년과 1958년을 그리며 과거를 오가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소위 문학을 한다는 시인이 북한에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충성을 맹세해야하고 어떻게든 수령을 찬양하는 문구를 넣어야만 하는 사회주의 체제다. 글 한 문장, 단어 하나때문에 문학을 하는 사람이 육체노동을 해야하는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시를 쓰지 못한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는 일을 뿐이다. 샘솟는 말들을 침묵 속에 감추고 있어야 한다. 기행 뿐만 아니라 문학을 하는 많은 작가들이 그랬다. 기행의 벗인 준이 말했다. 이런 세상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를 속일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말이다.
북한의 작가 외에도 러시아의 시인인 빅토르와 벨라를 등장시킨다. 벨라가 북한의 조선작가동맹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기행과 만나게 되었다. 벨라의 옆에서 통역을 하고 헤어질때 자신이 쓴 시가 든 노트를 건넸다. 빅토르와 벨라는 세로로 길게 쓰여진 시, 그 시의 아름다움을 말하면서도 러시아와 북한이 처한 상황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기행이 벨라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기행의 생각을 대변하고, 작가의 생각을 말해주는 듯 하다. 마음속으로 죽여야만 하는 단어와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을 말이다.
당신 안에서 조선어 단어들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아침저녁으로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러지 않으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매일매일 죽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게 시인의 일이에요. 매일매일 세수를 하듯이, 꼬박꼬박. (165페이지)
사회주의 체제에서 문학은 어쩌면 죽은 단어일지도 모른다. 그가 사회주의 체제에 반하여 그들이 원하는 글을 쓰지 못했을때 멀리 삼수군의 축산반으로 내처졌다. 글을 쓰지 못하니 차라리 몸을 사용하는 일이 편했다. 기행이 합숙소가 아닌 사무실에서 수많은 편지를 쓰고 시를 썼다 난롯불에 태우는 작업을 밤마다 계속했다. 언어가 막히고 단어가 막힌 곳에서 드디어 숨통이 트였다. 비록 보내지 못하는 편지이고 발표되지 못하는 시였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비로소 그 사회주의 체제에 순응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므로.
언어를 모르는 불행과 병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언어는 뜻밖의 방식으로 인간을 위로한다. 당신, 이미 죽은 사람, 이라는 말. 그 겨울의 골짜기에서 당신도 얼어붙고 당신의 노래도 얼어붙었다는 말. 그리고 봄에 내가 당신의 노래를 분명히 들었다, 는 말. (213페이지)
수령을 찬양하는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기행이 안타까웠다. 그것을 써야만 했을 그 마음 때문이었다. 작가는 시인을 계속 기행이라고 불렀다. 시인이기 전에 기행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으로 보았음직하다. 언어와 단어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마음의 소리를 죽여야만 했던 그의 내면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단어를 가지고 시를 쓰는 시인이므로 단어와 언어와 화해해야 했다. 러시아의 언어에 매달렸어도 조선의 단어와 언어에서 나오는 그 그리움을 잊지 못했던 것이다.
비교적 짧은 소설이다. 그럼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백석의 삶을 말하는 글에서 아픔을, 안타까움을, 같은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애정과 다정한 위로가 감동적이다. 우리가 그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더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그의 시집을 제대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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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 2020-10-05 공감(3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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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 새창으로 보기
-20201111 김연수.
Jaurim - #1
https://m.youtube.com/watch?v=SpVV6HvtX8c
아기에게 먹이지 못하고 흐르는 젖. 사랑하는 이에게 가닿지 못하고 허공에 뿌려진 씨앗물. (야이 원초적인 새끼야…)
시를 빼앗긴 시인. 소설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
읽는 내내 슬픈 것들을 생각했다.
전기나 전기소설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을 영웅 만드는 게 싫다. 칭송 받는 아동 운동가가 사실은 소아성애자였고 고통 받는 아이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것 같은 불온한 상상을 한다. 그 시절 살아보지 않은 후대 사람이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옆에서 지켜보았다는 사람의 증언도 추억 필터가 씌인 것이라 믿지 않는다. 애를 어떻게 키우면 이런 뼛속까지 불신자로 자라는 걸까 나도 궁금하다.
이 소설은 시인이 정상에 선 순간을 그리지 않는다. 그나마 가장 큰 기쁨의 순간이라면 시집 사슴을 출판해 벗의 손에 든 걸 때 탈까 집어 넣어라 할 때일까. 작가의 말대로 시인은 자신이 죽은 뒤에 그리던 남쪽 동네 사람들이 자기 시를 읽게 될 걸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어리고 젊은 애들이 수능 대비를 위해 밑줄 쳐가며 자기 시를 ‘분석’할 줄은...심지어 진짜로 수능에 나올 줄은…
수능 출제 시 한 편 감상하고 갑시다.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씨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고향(故鄕)’<사슴> (1936).
우리 아빠(혹은 아빠 같은 으르신) 친구는 관우 같고 여래 같은 삼수 갑산 화타….ㅋㅋㅋㅋㅋㅋ
시인이 나오는 소설이지만 내내 시를 쓰지 않는다. 다만 그가 썼던 시가 남의 입에 오르내리고 남몰래 추운 방에서 몰래 연필로 썼다가 남볼새라 불태워진다. 아름답게 울리는 말을 쓰면 혼나는 세계에서 멍텅구리가 되어 가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일은 왜 그걸 보는 나만 미치고 팔짝 뛰겠는 거지...정작 시인은 너무 담담해서 더 슬퍼… 1984도 생각나고 감옥에 갇힌 소설가나 자살한 시인들도 생각난다.
글로 남기지 못하는 순간에도 시인은 시를 보고 시를 만진다. 잃어버린 시들을 잊지 않았지만 잊으려고 애쓴다. 나는 언젠가 읽기도 쓰기도 집어치우고 무덤덤하게 사는 나의 미래를 가끔 상상한다. 생각보다 불행하지는 않을 것도 같다. 그러니까 괜히 미치고 팔짝 뛰었네. 어쩄거나 시가 남았으니 남은 나는 조만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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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11-11 공감(25) 댓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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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언제나 시를 쓸 수 있어야 하고, 삶은 언제나 계속되어야 한다. 새창으로 보기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 시를 쓴 사람
어쩌면 사랑에 목마른 젊은 시인의 치기가 보여주는 저 문장을 쓸 때, 가난해도 백석은 행복했을 것이다.
사랑을 하고 시를 쓸 수 있었으므로...
"서과나무에 사과가 안 열린다면, 사과가 열매를 맺었다고 쓰면 되는거야. 알겠어? 그게 바로 창조의 원리거든. 그걸 잘 알아야 해. 우리 문학가들은 창조자들이야. 당이 원하는 인간이 있다면, 우리는 그걸 만들어내는 거야. 그게 우리가 하는 문학이야. 알겠어? 자네는 시로 그 힘을 보여야 해.‘- P150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정해진 시어들, 아니 선동구호들만으로 시를 쓰라는 요구를 받는 시인이라니.
"저 역시 시를 썼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말들은 제 안에서 점점 지워지고 있습니다. 음식 이름들, 옛 지명들, 사투리들..- P162
시인이 시를 쓸 수 없게 만드는 사회에서 백석은 언어 자체를 잊어버려간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하고 안타까웠다.
한국전쟁 이후 온 국토가 폐허가 된 북한에서 중요한 것은 아마도 생존이었을 것이다.
공습의 공포, 전쟁의 공포, 모든 인민이 멸절될 수 있다는 그 공포는 아마도 절망이었을 것이다.
그런 절망은 거의 항상 절대자에 대한 쉬운 열망을 가져온다.
인간의 나약함은 절대적인 절망상황에서는 너무도 쉽게 비상식적인 권위를 희망으로 여긴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처참한 경제의 몰락으로 고통받던 독일인들이 히틀러를 창조했고,
한국전쟁 이후 폐허의 공포가 김일성을 창조했다.
어디 그 뿐이랴?
강대한 자본주의 국가에 위협받던 소련에서는 스탈린의 독재가 용인됐고,
마오쩌뚱은 문화혁명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다.
그곳들에서는 항상 문학이든 예술이든 존재하기 힘들다.
인간의 마음을 규격화하는것이 어떻게 예술과 양립할 수 있을까?
김연수의 소설 일곱해의 마지막을 읽으며 시를 잃어가는 시인 백석을 만난 밤
지금의 한국사회를 생각한다.
코로나란 공포가 다시 우리를 강타하고, 불신과 증오가 난무하고, 이 사태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고 싶은 사람들.
처음엔 신천지였고,
지금은 사랑제일교회고.
증오는 나아가 어제 오늘 진행된 온갖 공무원 시험에 대한 비판으로,
개학하는 학교로, 정부는 왜 셧다운을 하지 않는지 비난에 비난....
신천지나 사랑제일교회, 광복절 집회를 통해 바이러스를 퍼뜨린 세력들에게는 구상권을 청구하면 된다.
그리고 집회를 허가한 공직자들은 공식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사태가 기독교 세력 전체에 대한 증오로 연결되어서는 안된다.
이러다가 한국에서 기독교 금지법안이라도 만들라고 요구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분노와 화가 어떤 존재 전체의 금지로 나아가서는 안된다. (아 제발 내가 기독교인이라서 이런 말을 한다고 오해하지는 말자.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다만 모든 종교를 존중하여 절에 가도 교회에 가도 이슬람 사원에 가도 기도를 할 뿐... 그 종교의 성인들은 다 인간다운 사회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라고 믿는 사람일 뿐이다.)
모든 증오는 결국 시인이 시를 쓰지 못하는 사회로 나가는 첫걸음이다.
백석이 시를 쓰지 못한 것은 그가 권력이 원하는 사회의 일률적인 규격을 맞출 수 없는 영혼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세력에 대한 일방적인 증오와 폭력은 곧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만큼 전염의 힘이 세다.
인간의 힘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직면했을 때 인간은 언제나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밀고 싶어해왔다.
지금은 기독교를 증오하지만, 이 사태가 더 걷잡을 수 없어진다면 그 다음에는 누구를 증오할까?
시인은 언제나 시를 쓸 수 있어야 하고, 삶은 언제나 계속되어야 한다.
시와 삶을 지속시키는 건 언제나 증오나 배제가 아니었다.
시를 쓰지 못하는 백석의 삶을 오늘 다시 살펴보는 김연수의 책이 나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지만, 우리 공동체의 연대가, 다른 사람을 살피는 배려가 우리를 시와 삶으로 이끌어갈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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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8-24 공감(1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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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계속되는 삶 새창으로 보기
"나는 왜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을까?"
그건 어쩌면 불행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는 언제나 불행에 끌렸다.
『일곱 해의 마지막』, 32쪽
읽은 지 두 달 만에 다시 펼쳐든 『일곱 해의 마지막』. 잘 읽혔지만 읽고나니 정리되지 않는 무언가가 계속 남아 있었고, 김연수 작가가 쓴 또 다른 시인의 이야기인 『꾿빠이, 이상』이 떠올라서, 그 책을 읽고 다시 읽게 되었다. 역시 한 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은 재독이 진리다.
1956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백석은, 1962년 5월 『아동문학』에 「나루터」라는 동시를 발표했다. 이 시는 시인이 "압록강 변에서 나무를 심고 길을 닦는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며 사십여 년 전 그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에 그 강을 건너가던 '나이 어리신 원수님'을 떠올"리며 쓴 것이다. 당시 북한 문학잡지에 실린 다른 시에 비하자면 노골적인 찬양시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 일곱 해 동안 무슨 일이 있어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노래하던 시인은 어디 가고 찬양시만 남았을까?
(※ 이 리뷰는 사건을 시간 순으로 재구성해 정리한 것으로, 다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읽기 전 주의 요망. 원망 금지.)
조선일보를 통해 등단한 백석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쿄로 유학을 떠난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백석은 해방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사와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근무하는데, 이때 여러 편의 시들을 발표하게 된다. 당시 '모던보이'였던 그의 시들은 인기가 많았지만, 194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의 조선어 말살 정책이 극에 달하자, 그는 만주로 가 몇 편의 시를 발표하고 절필한다. 해방이 되자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로 돌아간 기행(그러니까 그는 '월북'한게 아니라 그저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었고, '월북시인'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은 소박한 삶을 꿈꾸지만, 평양에서 조선민주당을 이끌던 고당 선생이 통역 겸 비서로 그를 부른다. 그때만 해도 기행은 곧 좋은 시절이 오리라 믿었고, 정국이 안정되면 선생으로 살면서 적어도 한 달에 한 편 정도의 시를 꼭 쓰리라 다짐했다.
당시 소련에서도 해빙의 물결이 일어 세계가 바뀌고 있었고,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해방 후 십여 년 동안의 경직된 도식주의에서 벗어나 문학의 감동과 개성을 되찾자"(106쪽)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었다. 기행은 작가동맹 기관지에 '나의 항의, 나의 제의'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은 협동조합과 공장에 관한 것이라면, 내면을 깊이 추구하지 않아도, 문학도 감동이 없어도 무조건 좋은 시라고 말하는 당시의 시단에 대한 정면공격이었다."(105쪽)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이 년간의 짧고도 그나마 어렴풋했던 해빙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지고"(132쪽) 말았고, 당은 이 글을 트집 삼아 그의 사상 검증에 나선다.
그런 게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 짓는 죄와 벌이지. 최선을 선택했다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 고통받은 뒤에야 그게 최악의 선택임을 알게 되는 것. 죄가 벌을 부르는 게 아니라 벌이 죄를 만든다는 것. 88~89쪽
"아이들에게 사상성보다 교양성을 심어주는 게 우선입니다. (…) 아프리카 기린에 대해 쓰면 안 되는 것입니까?"
"동무는 우리의 서정이란 우리나라 아동들의 실지 생활감정에 의거해야만 한다는 당의 창작 지침을 여태 이해하지 못하겠소? (…) 이 시에는 주체적인 우리의 생활, 우리의 감정이 없소. 주체적으로 시를 창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으니 아프리카의 기린 같은 것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겠소." 20쪽
1958년 5월 15일, 소련은 스푸트니크 3호를 쏘아올렸다. 문학신문 편집위원회에서 이를 기념하는 시를 게재하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뜻밖에도 집필자로 기행이 결정됐다. 일 년 전 가을이 시작할 무렵, 『아동문학』의 확대 편집위원회 회의에서 기행이 발표한 동시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뒤로 동시 청탁이 끊어진 상황인지라 기행 자신도 의아한 결정이었다. 문학신문은 당의 문예 정책을 정확하게 창작에 반영시키기 위해 만든 주간신문이었다. (…) 당은 생각하고 문학은 받아쓴다는 것. 그러자면 쓰는 동안에는 생각하지 말아야만 했는데, 기행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비판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자아'가 너무 많았다. 그 자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그들은 말했다. 53~54쪽
또다시 찬양시를 쓰라고 하는 당 지도위원에게 시를 쓰지 않은 지 십수 년이 지나서 더이상 시를 쓰지 못한다고 말하는 기행. 지도위원은 "창작이 부진하다면, 그 이유를 추궁받을 것이오. 그때는 노동계급 속으로 파견돼 그들의 사상으로 재무장하는 절차를 거치게 될 것"(57쪽)이라고 말한다.
시를 쓰는 것이야 어렵지 않았다. 기행은 얼마든지 쓸 수 있었고, 또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당이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장이라도 집필 금지를 당할 시가 분명했다. 이제 사상 검토에 내몰릴 각오를 하고 그런 시를 읽어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거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 지금이 아닌 먼 미래의 언젠가라면 혹시 모르겠지만, 57~58쪽
노동자가 되지 않고서는 부르주아 사상 잔재를 청산하고 노동계급의 사상으로 무장하기 힘들기 때문에 사상 검토 위원회를 열어 모든 작가들을 심사, 분류한 뒤 현지 파견 등 적절한 조치를 통해 개조할 것을 결의했다.(133쪽) 기행 역시 천리마 작업반에 투신하겠다며 지원서를 쓸 수 밖에 없었는데, 다른 작가들처럼 희망하는 생산 현장을 고향으로 적어 냈다. 그런데 정작 기행이 파견된 곳은 생판 낯선 삼수의 협동조합이었다.(삼수는 예로부터 벽지였고, 유배지로 자주 언급됐던 곳이다. 이곳으로 유배를 갔다가 살아돌아온 사람은 윤선도가 유일하다고 할 정도 악명 높은 곳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예전에는 기행의 동지였지만, 지금은 위원장 자리에 있는 병도를 찾아간다. 병도는 기행에게 개조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옥심과 리진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편, 기행은 1957년에 평양으로 초청 받아온 소련 시인 벨라의 통역을 맡게 된다. 자신과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기행은 벨라에게 자신의 시작 노트를 건넨다. 소련으로 돌아간 벨라는 소련에서 유학중이었던 리진선에게 노트를 맡기며 번역을 부탁하지만, 약속한 날짜가 되어도 리진선은 나타나지 않고 벨라는 영영 그 노트를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 기행은 소련으로 돌아간 벨라에게 한글로 쓴 자신의 시를 보낸다. 당은 이것 또한 모두 알고 있었고, 이것에 대해 추궁하기도 한다. 시를 쓰지 못하는 기행의 시를 소련의 시인은 어떻게 많이 읽을 수 있었냐고 말이다.
노어번역실에서 자신 대신 번역해 달라고 기행에게 벨라의 편지를 건넸던 옥심은 아빠를 구하기 위해 소련 국적도 포기하고 평양으로 돌아온 소련 유학생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국 숙청 당했고, 가족 모두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옥심이 친한 친구가 쓴 것이라며 건넨 노트에는 기행의 눈길을 끄는 시가 한편 있었다.
시대의 눈보라 앞에 시는 그저 나약한 촛불에 지나지 않는다. 눈보라는 산문이며, 산문은 교시하는 것이다. 당과 수령의 말은 눈보라처럼 휘몰아치는 산문이다. 준엄하고 매섭고 치밀하다. 하지만 시는 말하지 않는다. 시의 할일은 눈보라 속에서도 그 불꽃을 피워 올리는 데까지다. 잠시나마 타오르는 불꽃을 통해 시의 언어는 먼 미래의 독자에게 옮겨붙는다. 81쪽
기행은(작가 조차도) 말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이 시는 벨라에게 건넨 자신의 시였을 것이다. 시인을 꿈꿨던 리진선이 벨라에게 돌려주기 전에 필사해 두었을 것이다.
한편, 유배지와 같았던 삼수에 도착한 첫날. 출근 통지만 받았을 뿐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지 알 수 없어서 역에서 난감해하고 있는 기행에게 한 사람이 알은채를 한다. 삼수읍에 있는 인민학교의 교원 진서희라며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작가동맹에서 파견한 시인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자신이 안내하겠다고 한다. 그녀는 여학교 시절, 흠모하던 국어 선생이 수업시간이면 줄줄 외던 시"를 쓴 시인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며 사람들로 북적대는 대합실 한켠에서, 어떤 두려움이나 부끄러움도 없는 선한 표정으로 시를 낭송하기 시작한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그런 곳에서, 오래전에 잊어버렸던 시를, 다른 사라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니 그의 목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치밀어올랐다. 여학생 시절, 국어 선생을 따라 외웠다는 그 시의 한 음절 한 음절은 쇠도끼 날처럼 그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우연히 만난 시인 앞에서 그의 시를 욀 줄 안다고 자랑하고 싶은 그 높은 자부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쓸쓸히 앉어'라든가 '소주의 마시며' 따위의 비관적이고 퇴폐적인 문장을 저토록 큰 소리로 말하는 철없는 입술을 만류하기도 전에, 기행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어졌다. 아니, 비로소 그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게 된 것이랄까. 타오르는 갈탄의 힘으로 한쪽 표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난로며, 좀체 귀에 와닿지 않는 변방의 사투리며, 도내에서도 손꼽히는 축산반을 자랑한다는 협동조합을 찾아간다는 사실 등등이 모두. 그때 그는 눈이 푹푹 나리는 밤 안에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안에 있었다. 그 밤과 마음이 지금 그와 함께 있었다. 196쪽
게다가 그녀는 기행이 시에 썼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하지만 기행은 사람을 잘못 봤다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왜냐하면 그때 그 시를 쓴 시인과 지금의 자신은 다른 사람이니까.
일 년 동안 삼수에서 '노동을 통한 개조시간'을 가지고 있는 기행에게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다. 최근 완성된 삼지연 스키장에 관한 오체르크, 즉 현장 보고의 집필이 맡겨진 것이다. 어떤 관점으로 써야되는지는 알지만, 기행은 결국 쓰지 못한다. 삼수에 남은 기행은 자신만을 위해서 시를 쓴다. 그리고 이내 불태워버린다. 서희의 부탁으로 아이들이 쓴 시를 봐준다. 시인이라고 꼬박꼬박 부르는 서희에게 이제는 농사꾼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꿈이 있어 우리의 혹독한 인생은 간신히 버틸 만하지. 이따금 자작나무 사이를 거닐며 내 소박한 꿈들을 생각해. 입김을 불면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작고 가볍고 하얀 꿈들이지. 우선은 시집을 한 권 내고 싶었지. 제목은 사슴이면 좋겠고. 시골 학교 선생이 되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으면 싶었고. 착한 아내와 함께 두메에서 농사지으며 책이나 읽고 살았으면 하지." 223~224쪽
이것은 오래 전 기행이 품었던 꿈이다. 조금 다른 모습이기는 하지만, 어찌됐든 기행은 삼수에서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후 40년을 그렇게 살아내지 않았을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작가의 말」 245쪽
8년 만에 만나는 김연수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여기에는 백석 시인의 7년(1956~1962년)이 담겨 있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우리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남긴 백석 시인은, 전쟁이 끝난 후 땅도, 몸도, 마음까지 모두 황폐한 곳에서 더 이상 시를 쓸 수가 없었다. 그는 시를 쓸 수가 없어서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며 근근이 살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에게 기필코 시를 다시 쓰라고 한다. 시인의 마음속에서 움튼 시어가 아닌, 그들의 사상을 담은, 그들이 원하는 시를 쓰라는 것이다.
일곱 해의 마지막(1962년)에 쓴 시를 마지막으로, 1996년 생을 다할 때까지 더이상 시를 발표하지 않았던 시인. 그의 실제 삶을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소설가의 손끝에서 그의 삶이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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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20-12-07 공감(15)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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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일곱 해의 마지막 새창으로 보기
( 백석의 이야기다. 북에서 사상과 검열속에서 거짓된 단어들론 시를 쓸 수 없어 슬펐지만, 살기위해 가족을 위해 뭐든 해야했던 절박함이 가득하다)
읽으면서도 읽고나서도 우울했다.
시에도 사상이 필요한걸까. 그것도 편협된 사상.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의 바다와 바람과 비는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하는 걸까
사랑에도 붉은 줄을 그어대며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한다면 이별조차 사상앞에서 가차없어야 한다면 그 세상의 시인은 어디서 어떻게 어디에 서야 하는 걸까.
사상으로 검열되는 세상
그럼에도 시대의 잘못으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일은 하지 말라는, 그래서 그는 시인인가보다
그는 마냥 겨울인 그 곳에서 올동말동한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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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0-08-29 공감(1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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