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 건국전쟁2 봤다. 팩트에 충실하고, 메시지에 비약이나 흥분이 없다. 새롭게 아는 것도 많고, 피꺼솟 순간도... | Facebook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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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전쟁2 봤다.
팩트에 충실하고, 메시지에 비약이나 흥분이 없다.
새롭게 아는 것도 많고, 피꺼솟 순간도 몇번 있다.
여기까지만해도 감동적인데 적절한 음악(선곡)과 영화관의 음향효과가 가세하니
감동이 몇 배는 증폭되는 것 같다.
영화 첫 머리에 나오는 얘긴데, 40여년 전 내 대학생때 생각을 정확하게 가격해준다.
태생(피)이 더러운 종자가 대한민국이라는 생각말이다.
프랑스, 독일과 대한민국의 부역자 청산을 많이 비교하며 분개하며 자학했다.
돌아보니 무식이 충만한 생각이었다.북한과 잔존 좌익의 역사 뒤집기 공작에 놀아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2025년 4월3일 이 역사공작의 문선대 역할을 하던 (화산도 저자)
재일교포 김석범이 아직 죽지도 않고 개선장군처럼 온 모양.
역사인식이 뒤집히니 정의가 뒤집히고 나라가 뒤집힐 수밖에!!
청춘 시절에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나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같은 쓰레기 책을 읽으며
감동받고 흥분한 기억이 있는 중장년 들은 진실과 후대를 위해 이 영화를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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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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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전쟁2>에서 좀 아쉬운 것은 여순 반란 사건의 본질을 그 구호(자막)및 만행과 함께 자세히 소개를 안한 것이다.
사실 제주 4.3의 성격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은 여순반란 사건이다. 제주 4.3은 그래도 유격대의 무력이 약했기에 (인민의 지지와 동의를 의식하여) 그 본질을 많이 마사지를 했다. 하지만, 여순반란 때는 국군내 세포 조작 주도로 무력으로 여수와 순천을 다 장악했기에 그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1980년대 후반 학번부터 1990년대 학번 전체의 역사인식과 정치의식(표심 등)에 지대한 영향을 준 <다시쓰는 한국현대사>의 5.10 총선거와 여순반란 사건에 대한 서술을 보라.
사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참담한 정치 현실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아니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 핵심은 대한민국 개화, 독립, 건국, 호국, 부국 주도세력에 대한 지독한 증오와 혐오다.
****아직 60대 초반인 박세길과 노민영(본명은 노ㅎㄹ)이 식자의 책임과 용기가 있다면 자신이 싸지른 이 거대한 왜곡과 편향에 대해 뭐라 말 좀 해야하는 것 아닌가? 내가 알기론 이 두 분의 생각(역사인식)은 과거와 많이 바뀌었다.
122쪽
망국적 5.10 단독선거는 민주주의의 표상으로서의 선거가 아니라 민의를 총칼로 짓밟고 주권을 찬탈하기 위한 매국 놀음이요, 학살로 얼룩진 피의 잔치였다. 우선 선거는 대다수의 애국인사들이 불참을 선언하고 오직 이승만과 한민당 일파만이 입후보한 가운데 치루어졌다. 또한 5.10 단독선거는 말 그대로 가공스러운 폭력 선거였다.
124쪽
이렇게 하여 대한민국은 민주의 폐허 위에서, 난자된 주권의 시체더미 위에서, 그리고 미국의 사생아로서 오욕의 운명을 안은 채 태어나게 되었다.
3. 이승만 정권의 정체
남한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은 식민지 예속권력에 독립이라는 간판을 내 건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이전의 미 군정과 새로운 이승만 정권이 갖는 차이라고는 오로지 식민지 권력의 최고 운영자가 하지 중장에서 이승만으로 바뀌었다는 점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 미국인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남한은 미국의 무력으로 만들어지고 미국의 힘으로 보호되며 미국의 보조금에 의해 지탱되어지는 미국의 하청권력에 다름 아니다"(노민영 엮음, 잠들지 않는 남도, 온누리, 1988)
154쪽
10월20일 중앙동 광장에서 약 4만 여명의 여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인민대회가 개최되어....6개 항목의 결정서가 채택되었다.
1. 인민위원회의 여수 행정기구 접수를 인정한다.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수호와 충성을 맹세한다. 3.대한민국의 분쇄를 맹세한다. 4.남한 정부의 모든 법령은 무효로 선언한다. 5.친일파, 민족반역자, 경찰관 등을 철저히 소탕한다. 6.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을 실시한다.
155쪽 다음날인 21일(1948.10)부터는 수천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인민재판이 개최되어 그 동안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데 앞장섰던 경찰과 테러단체의 간부 등 반동 무리들에 대한 처단이 이루어졌다. 이리하여 수십 명의 반동 인사들이 인민재판에 의해 처형되었다. .....여수시가 장악된 지 얼마 후 봉기군은 1개 대대만 여수에 남겨놓고 나머지 2개 대대는 즉시 순천으로 북상시켰다......봉기군은 (순천)경찰의 저항을 단숨에 제압하고는....봉기군에 의해 장악된 순천에서도 지지와 친일파들이 민중의 손에 의해 단죄되었고(각주), 시내 도처에는 '제주도 출동 절대반대!' '미국군은 즉시 철수하라!' 등의 포스터가 즐비하게 나붙었다. 155~156쪽 각주) 제일 먼저 봉기군에게 체포됐던 경찰관들은 무조건 총살되었으며, 나중에 체포된 70여 명의 경찰관은 순천경찰서 앞마당에서 군중들 앞에서 집단학살당하였다. 또 봉기군들은 체포된 경찰관을 산채로 모래구덩이에 파묻어 죽이기도 하였다. 모래구덩이에 묻힌 뒤 죽지 않고 꿈틀거리는 경찰관은 위에서 죽창으로 쿡쿡 찔러 죽였다고도 한다.이 같은 행위들은 일제시대부터 쌓여 왔던 경찰에 대한 사무친 증오심에서 우러나온 순간적인 것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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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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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전쟁2 봤다.
팩트에 충실하고, 메시지에 비약이나 흥분이 없다.
새롭게 아는 것도 많고, 피꺼솟 순간도 몇번 있다.
여기까지만해도 감동적인데 적절한 음악(선곡)과 영화관의 음향효과가 가세하니
감동이 몇 배는 증폭되는 것 같다.
영화 첫 머리에 나오는 얘긴데, 40여년 전 내 대학생때 생각을 정확하게 가격해준다.
태생(피)이 더러운 종자가 대한민국이라는 생각말이다.
프랑스, 독일과 대한민국의 부역자 청산을 많이 비교하며 분개하며 자학했다.
돌아보니 무식이 충만한 생각이었다.북한과 잔존 좌익의 역사 뒤집기 공작에 놀아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2025년 4월3일 이 역사공작의 문선대 역할을 하던 (화산도 저자)
재일교포 김석범이 아직 죽지도 않고 개선장군처럼 온 모양.
역사인식이 뒤집히니 정의가 뒤집히고 나라가 뒤집힐 수밖에!!
청춘 시절에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나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같은 쓰레기 책을 읽으며
감동받고 흥분한 기억이 있는 중장년 들은 진실과 후대를 위해 이 영화를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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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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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전쟁2>에서 좀 아쉬운 것은 여순 반란 사건의 본질을 그 구호(자막)및 만행과 함께 자세히 소개를 안한 것이다.
사실 제주 4.3의 성격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은 여순반란 사건이다. 제주 4.3은 그래도 유격대의 무력이 약했기에 (인민의 지지와 동의를 의식하여) 그 본질을 많이 마사지를 했다. 하지만, 여순반란 때는 국군내 세포 조작 주도로 무력으로 여수와 순천을 다 장악했기에 그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1980년대 후반 학번부터 1990년대 학번 전체의 역사인식과 정치의식(표심 등)에 지대한 영향을 준 <다시쓰는 한국현대사>의 5.10 총선거와 여순반란 사건에 대한 서술을 보라.
사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참담한 정치 현실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아니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 핵심은 대한민국 개화, 독립, 건국, 호국, 부국 주도세력에 대한 지독한 증오와 혐오다.
****아직 60대 초반인 박세길과 노민영(본명은 노ㅎㄹ)이 식자의 책임과 용기가 있다면 자신이 싸지른 이 거대한 왜곡과 편향에 대해 뭐라 말 좀 해야하는 것 아닌가? 내가 알기론 이 두 분의 생각(역사인식)은 과거와 많이 바뀌었다.
122쪽
망국적 5.10 단독선거는 민주주의의 표상으로서의 선거가 아니라 민의를 총칼로 짓밟고 주권을 찬탈하기 위한 매국 놀음이요, 학살로 얼룩진 피의 잔치였다. 우선 선거는 대다수의 애국인사들이 불참을 선언하고 오직 이승만과 한민당 일파만이 입후보한 가운데 치루어졌다. 또한 5.10 단독선거는 말 그대로 가공스러운 폭력 선거였다.
124쪽
이렇게 하여 대한민국은 민주의 폐허 위에서, 난자된 주권의 시체더미 위에서, 그리고 미국의 사생아로서 오욕의 운명을 안은 채 태어나게 되었다.
3. 이승만 정권의 정체
남한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은 식민지 예속권력에 독립이라는 간판을 내 건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이전의 미 군정과 새로운 이승만 정권이 갖는 차이라고는 오로지 식민지 권력의 최고 운영자가 하지 중장에서 이승만으로 바뀌었다는 점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 미국인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남한은 미국의 무력으로 만들어지고 미국의 힘으로 보호되며 미국의 보조금에 의해 지탱되어지는 미국의 하청권력에 다름 아니다"(노민영 엮음, 잠들지 않는 남도, 온누리, 1988)
154쪽
10월20일 중앙동 광장에서 약 4만 여명의 여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인민대회가 개최되어....6개 항목의 결정서가 채택되었다.
1. 인민위원회의 여수 행정기구 접수를 인정한다.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수호와 충성을 맹세한다. 3.대한민국의 분쇄를 맹세한다. 4.남한 정부의 모든 법령은 무효로 선언한다. 5.친일파, 민족반역자, 경찰관 등을 철저히 소탕한다. 6.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을 실시한다.
155쪽 다음날인 21일(1948.10)부터는 수천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인민재판이 개최되어 그 동안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데 앞장섰던 경찰과 테러단체의 간부 등 반동 무리들에 대한 처단이 이루어졌다. 이리하여 수십 명의 반동 인사들이 인민재판에 의해 처형되었다. .....여수시가 장악된 지 얼마 후 봉기군은 1개 대대만 여수에 남겨놓고 나머지 2개 대대는 즉시 순천으로 북상시켰다......봉기군은 (순천)경찰의 저항을 단숨에 제압하고는....봉기군에 의해 장악된 순천에서도 지지와 친일파들이 민중의 손에 의해 단죄되었고(각주), 시내 도처에는 '제주도 출동 절대반대!' '미국군은 즉시 철수하라!' 등의 포스터가 즐비하게 나붙었다. 155~156쪽 각주) 제일 먼저 봉기군에게 체포됐던 경찰관들은 무조건 총살되었으며, 나중에 체포된 70여 명의 경찰관은 순천경찰서 앞마당에서 군중들 앞에서 집단학살당하였다. 또 봉기군들은 체포된 경찰관을 산채로 모래구덩이에 파묻어 죽이기도 하였다. 모래구덩이에 묻힌 뒤 죽지 않고 꿈틀거리는 경찰관은 위에서 죽창으로 쿡쿡 찔러 죽였다고도 한다.이 같은 행위들은 일제시대부터 쌓여 왔던 경찰에 대한 사무친 증오심에서 우러나온 순간적인 것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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