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7

소설가 김영하의 진짜 데뷔작 《무협 학생운동》 : 네이버 블로그

소설가 김영하의 진짜 데뷔작 《무협 학생운동》 : 네이버 블로그

소설가 김영하의 진짜 데뷔작 《무협 학생운동》 안 읽고 읽은 척

2008. 9. 23. 16:06

https://blog.naver.com/bookgram/120056426071


우리 시대의 소설가 가운데 내로라하는 한 사람에 속하는 김영하의 데뷔작은 공식적으로는 1995년 《리뷰》 지에 실린 <거울에 대한 명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삼 년 전에 당대의 사회 과학 전문 출판사 가운데 하나였던 [도서출판 아침]에서 장편 소설을 펴낸 기성 작가나 다름없다. 물론 문단에 데뷔했다기보다는 하이텔 통신망과 학생 운동권에서 인기를 끈 묘한 위치의 기성 작가가 되겠지만 말이다.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기실 이 책의 표지 디자인 역시 걸작에 속한다. 무협지답다기보다는 (약간 B급다운) 만화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표제 서체가 일품 아닌가 말이다. 짐작건대 표제를 감싸고 있는 저 차가운 현판 디자인을 보고 떠올리는 감성 역시 세대마다 조금씩 다를 게다.

이 책이 출판된 지가 벌써 16년. (물론 김영하는 스스로 등단 13년째라고 우기고 있지만!) 1992년 6월 출간되었고, 270쪽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책은 어느새 헌책방에서도 쉽게 구하기 어려운 희귀본 가운데 하나가 되고 말았다. 아무래도 이 책의 진가를 아는 이들이 쉽사리 내놓지 않는 모양이다.

당시 하이텔에서 이름을 날린 김영하의 《무협 학생운동》은 표지에서 보다시피 작가의 실명이 버젓이 달려 있다. 그러고 보면 김영하가 이 책에 대해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씁쓸하기도 하다. 김영하가 내뿜는 서사적 힘과 상상력의 원천을 생각해 보자면 이 책을 자랑스럽게 내걸고 웬만하면 재판을 출판해 봄직도 하건마는 말이다. 내 생각에는 이 책은 표지 디자인을 그대로 살려 재출간하는 게 좋을 듯싶은 책이다.

이 책이 조용한, 아주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을 무렵 나는 뭔 시시껄렁한 작자의 글솜씨냐고 비웃었던 듯싶다. 이 책의 진가를 알아본 건 김영하가 한창 잘나가게 됐을 때였고, 내 대학원 선배와 결혼하던 무렵이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진작에 사인이나 하나 받아 둘 걸 싶기까지 했더랬다.

어지러운 강호를 지배하는 악의 무리─ 독두 마왕 전두, 노갈, 보안 마귀, 안기 마귀. 그들의 수하에는 일마두 삼청교대, 이마두 암살 공자, 삼마두 공작왕, 사마두 도청자, 오마두 임시 동행자, 그리고 백건단의 무리들이 있다.

한편 이에 맞서 싸우는 민민방의 류와 자민방의 초아. 서역에서 변증창과 유물검을 이어받아 무공을 연마한 민민방과 일성천존의 주사신공을 받드는 자민방.

이 말들이 한눈에 들어온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이미 낡은 세대다!

이 말들이 전혀 이해가 안 된다면 지극히 정상이다!

그렇다고 한때의 우스갯소리나 지나간 연대의 샛길 정도로 치부해 버리면 곤란하다.

이 책 안에는 분명 B급 이상의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시민 무협의 시대, 그 상상력을 생각다가 언뜻 떠올라서 끄적거려 봤다. 참고로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학생 무협운동>에 관한 재미있는 글이 하나 있어서 링크해 둔다.

헌책방에서 만난 책─헌책방의 기억 (4) [부깽]

내친 김에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니 한 블로거가 이 책의 <작가 후기>를 옮겨 두었기에 여기에 담아 두련다. 홍순언(talmake) 님의 블로그에서 따왔다.

http://blog.naver.com/talmake?Redirect=Log&logNo=60050738496

이 후기가 16년 전의 것이라고는 잘 믿어지지 않는다는 게 슬플 뿐이다. 김영하의 <작가 후기>가 담고 있는 진실성에 경의를 표하며......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마치 자기를 발가벗기운 것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이 어떤 글이든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과 같기 때문이리라.

처음 재미 삼아 썼던 초고를 완성시켜 소설로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망설였다. 과연 끝낼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글솜씨에 대한 자신없음도 이에 한몫을 하였다.

그러나 가장 두려웠던 것은 80년대라는 치열한 시대를 살아 낸 분들의 삶을 희화화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영웅주의적으로 그리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그 분들은 엄혹한 시대를 영웅적으로 경과하였지만 결코 영웅들만의 시대는 아니었다. 어쨌든 이 소설이 80년대를 무협지의 형식을 차용해 그리기로 마음 먹은 이상 몇 가지 피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게 되었다.

첫째는 무협지적 세계관이 권선징악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협지가 현대 문학으로 평가 받기에 어색한 것도 바로 이런 약점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온갖 정견과 정파가 스팩트럼화하는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5공화국 시절은 그래도 선악의 구도가 명확한 시기였고 아타의 근별도 훨씬 수월했던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원시적인 고문이 횡행하고 수천 명이 한꺼번에 감옥에 갇히는가 하면 기찻길 옆과 바닷가에서 의문의 주검들이 잇따라 발견되었다. 이런 야만적인 압제에 대항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이 학생 회관 옥상에서, 대강당 지붕에서 밧줄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싸웠던 시절은 모더니즘적 세계관보다는 차라리 무협지적 세계관에 가깝다.

또 하나 이 소설은 무협지의 틀로서 한 시대의 복잡다기한 역사적 사실들을 나타내고자 하였기에 아무래도 인물 중심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고 현실의 다양한 맥락을 사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리얼리즘에 입각한 작품이라고 해서 시대적 진실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이러한 틀로 '이야기'를 전개한다고 해서 곧바로 현실을 외면하고 역사발전의 동력을 희석하는 형식을 전화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아마 이 시대를 이러한 환경에서 지나온 이들은 자신들의 걸어온 길도 역사가 되는구나 라는 애틋한 감정이 들지도 모른다. 어차피 역사란 우리의 발끝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 시대를 그런 방식으로 살아오지 않았던 이들도 이 글에 나타난 여러 모습들이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기에 이전 세대와는 색다른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저자로서 자신의 글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주제넘은 일이고, 독자들의 상상력과 건강한 판단에 이 글을 맡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이 나오기까지 애써 주신 도서출판 아침의 배진호 편집장과 문학적 자질이라곤 조금도 없는 필자의 졸고를 찬찬히 읽어주시고 꼼꼼하게 지적해주신 정도상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불충분한 초고를 끈기있게 읽고 평을 해주신 바통모 회원 여러분께도 이 자리를 빌어 작으나마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그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다면, 한 때는 같은 강의실에서 앉아 공부를 하였으나 지금은 자신의 등 뒤에 깔린 쇠사슬을 끌며 최루탄 연기 가득한 하늘로 날아간 영원한 이름, 한열이에게 이 글을 바치고 싶습니다. 그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다면....

김영하.


[출처] 소설가 김영하의 진짜 데뷔작 《무협 학생운동》|작성자 부끄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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