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7

총독의 소리 | 최인훈 | 알라딘 2009

  • 총독의 소리 | 최인훈 전집 9 | 최인훈 | 알라딘
    총독의 소리 - 개정판 검색 | 최인훈 전집 9
    최인훈 (지은이)문학과지성사2009-07-31

    557쪽
    책소개

  • 최인훈 전집 9권 <총독의 소리>. 최인훈의 연작 단편소설 '총독의 소리' 1~4와 '주석의 소리', 작가 스스로 '소설로 쓴 소설론'이라 밝힌 중편소설 '서유기', 현실과 유리된 화자의 자의식의 흐름을 좇는 단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3·4 등, 실존적 주제들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 폭넓은 서사형식을 실험하는 단편들을 함께 실었다.


    연작 단편 '총독의 소리' 1~4와 '주석의 소리'는 최인훈의 소설 가운데에서도 매우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에 속한다. 환상 속에 존재하는 총독과 주석의 목소리가 오로지 라디오 방송으로 전달되는 특이한 형식을 통해, 해방 후 요동치는 정치적 격변기의 혼란과 고뇌와 문제의식을 폭발적으로 분출하여 그 돌파구를 찾고자 한다.


    '총독의 소리' 연작은 프랑스 알제리전선의 자매단체이며 한국의 지하비밀단체인 '조선총독부 지하부 소속 유령해적방송'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즉, 한국 역사에 실존했다가 사라져버린 두 가지의 타자, 상해임시정부와 일제 총독부를 소설 속으로 불러들여 그 역사적 타자들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이다.


    '주석의 소리'에서 상해임시정부의 주석은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건강한 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방책을 웅변적인 목소리로 설파한다면, '총독의 소리'에서 일본 총독부의 총독은 한반도에서 재식민화를 획책하고 분단 상황을 영속화하기 위한 전략을 치밀하게 제시한다.
    목차
    동물원
    전사戰史에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견례총
    주석의 소리
    총독의 소리
    옹고집뎐
    낙타섬에서
    무서움
    하늘의 소
    서유기


    해설 '우리' 세대의 작가 최인훈
    해설 「총독의 소리」와 「주석의 소리」에 관한 몇 개의 주석


    책속에서
    P. 87 아시아의 밤
    오 아시아의 밤!
    말없이 默默한 아시아의 밤의
    虛空과도 같은 속모를 어둠이여 - '총독의 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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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및 역자소개
    최인훈 (지은이)

    1936년 함북 회령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법대에서 수학했다(2017년 명예졸업). 1959년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이 『자유문학』에 추천되어 등단했다. 1977년부터 2001년 5월까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작품 집필과 후진 양성에 힘써왔다. 『광장/구운몽』 『회색인』 『서유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태풍』 『크리스마스 캐럴/가면고』 『하늘의 다리/두만강』 『우상의 집』 『총독의 소리』 『화두』 등의 소설과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산문집 『유토피아의 꿈』 『문학과 이데올로기』 『길에 관한 명상』 등을 출간했다. 동인문학상(1966),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1977), 중앙문화대상 예술 부문 장려상(1978), 서울극평가그룹상(1979), 이산문학상(1994), 박경리문학상(2011) 등을 수상했다. 『광장』이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중국어 등으로, 『회색인』이 영어로, 『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가 영어와 러시아어 등으로 번역, 간행되었다. 2018년 7월 별세했다. 사후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접기
    수상 : 2011년 박경리문학상, 1994년 이산문학상, 1979년 서울시문화상, 1966년 동인문학상
    최근작 :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D 세트 - 전12권>,<한국 현대희곡선>,<달과 소년병> … 총 63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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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제공 책소개

  • 신식민지적 현실의 위기의식을 첨단의 기법으로 표현,
    폭발적으로 분출한 도발의 텍스트 !


    최인훈의 연작 단편소설 <총독의 소리>1~4와 <주석의 소리>는 최인훈의 소설 가운데에서도 매우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에 속한다. 환상 속에 존재하는 총독과 주석의 목소리가 오로지 라디오 방송으로 전달되는 특이한 형식을 통해, 해방 후 요동치는 정치적 격변기의 혼란과 고뇌와 문제의식을 폭발적으로 분출하여 그 돌파구를 찾고자 한다.


    “충용한 제국 신민 여러분. 제국이 재기하여 반도에 다시 영광을 누릴 그날을 기다리면서 은인자중 맡은 바 고난의 항쟁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제국 군인과 경찰과 밀정과 낭인 여러분……”


    <총독의 소리> 연작은 이렇게 프랑스 알제리전선의 자매단체이며 한국의 지하비밀단체인 ‘조선총독부 지하부 소속 유령해적방송’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즉, 한국 역사에 실존했다가 사라져버린 두 가지의 타자, 상해임시정부와 일제 총독부를 소설 속으로 불러들여 그 역사적 타자들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이다. <주석의 소리>에서 상해임시정부의 주석은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건강한 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방책을 웅변적인 목소리로 설파한다면, <총독의 소리>에서 일본 총독부의 총독은 한반도에서 재식민화를 획책하고 분단 상황을 영속화하기 위한 전략을 치밀하게 제시한다.
    그렇다면, 왜 작가는 이 역사적인 타자들을 필요로 했고 그들이 소설의 공간 속에서 말하게 하는 방식을 택했을까.


    나는 문학의 형식을 파괴하면서라도 온몸으로 부딪쳐야 할 위기의식을 느껴 이 작품 <총독의 소리>에 착수했다. 한일협정이라는 해방 후 정치사회사의 새 장을 여는 사건에 대한 한 지식인의 충격과 혼란과 위기의식을 폭발적으로 내놓기 위해서 소설의 통념적인 형식을 벗어나보려고 했던 것이다. 적의 입을 빌려 우리를 깨우치는 형식, 빙적이아(憑敵利我)이다. (최인훈)


    식민지 시기의 문제의식이 나라 찾기에 있었고 해방공간의 문제의식이 나라 만들기에 있었다면, <총독의 소리>가 씌어진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하면 다시 식민지의 나락에 떨어지지 않고 민족국가를 유지.발전시킬 것인가에 있었을 터이다. <총독의 소리>의 총독은, 한반도의 해방은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 내부의 식민 지배 조건은 해방 이후에도 고스란히 유지·보존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재식민화를 위한 그들의 비밀 지하활동은 여전히 기지를 갖고 있고, 분단 대치상황으로 인한 군사비 과도 지출, 남북간에 적대적 무한경쟁 체제로 인해 통일은 요원한 문제일 것이라고 방송을 통해 진단한다. 빙적이아(憑敵利我), 최인훈은 <총독의 소리> 연작(<주석의 소리> 포함)에서 적의 적나라한 육성을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을 냉철하게 진단하고 온몸으로 부딪쳐 그 답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준열한 문제의식을 던지는, 최인훈 문학의 현재성


    <총독의 소리>의 내용과 형식에서의 파격은 작품 발표 당시는 물론 40여 년 가까이 세월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유효하게 통용되고 있다. 해방 이후 이 땅 곳곳에 숨어 있는 일제 잔재 세력의 총집결을 요구하는 이 작품은, 우리 역사가 걸어온 길에 대한 맹렬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주목할 만하다. 식민지에서 벗어난 땅이 언제든 신식민지적 현실에 처할 위기에 있다는 것을 직시하게 만들면서, 현실의 모순을 매섭게 질타하는 것이다.
    요컨대 <총독의 소리>에서 최인훈의 언어는 한국 민족을 둘러싼 위험요소에 대한 경고의 텍스트이면서, 동시에 한국을 둘러싼 국제질서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촉발하는 풍자적인 텍스트이며, 더 나아가 이 모든 상황을 초극할 수 있는 그 어떤 힘을 불러내고자 하는 도발의 텍스트이다(김동식/ 문학평론가).
    그 밖에도, 이 책에는 작가 스스로 “소설로 쓴 소설론”이라 밝힌 중편소설
    <서유기>와, 현실과 유리된 화자의 자의식의 흐름을 좇는 단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3ㆍ4 등, 실존적 주제들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 폭넓은 서사형식을 실험하는 주옥같은 단편들이 함께 실려 있다.


    살아 있는 지식인의 표상이자, 삶과 소설이 쉽게 분리되지 않는 운명을 지닌 작가의 상에 가장 적확한 최인훈. 그의 문학적 진면모를 오늘에 되살려 독자들이 한층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려 독자, 문학과지성사는 2008년 11월부터 새로운 판형, 정교 가편집으로 독자들에게 ‘최인훈 전집’을 새로이 선보이고 있다. ‘최인훈 전집’ 9권 <총독의 소리> 역시 최인훈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과 예술적 깊이를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텍스트로써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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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리뷰

    빙적이아(憑敵利我), 오늘 한국을 바라보는 지점 

  • 1967~ 1972년에 각기 써진 한반도내에서 암약하던 일본 간자(間者;오늘의 말로 간첩)의 목소리로 전하는 한국인의 자신들이 알지 못하게 뼛속 깊숙이 내재화 되어있는 식민지 노예근성과 그 비루함과 몽매성에 대한 관찰기이며 담화문이다. 故최인훈 선생의 이 소설 《총독의 소리》는 5년에 걸쳐 총 4편으로 집필된, 소설의 통념적 형식을 파괴하면서까지 이 사회에 전하려 했던 빙적이아(憑敵利我)의 간절한 외침이기도 하다. 일본의 간자와 일제에 부역하던 무리가 그것들이 우려했던 징벌과는 달리 그대로 부패한 축재와 권력을 이어가며 반도의 상층부 지배 집단으로 기득권층을 이루고 있게 되었음에, 바로 그러한 결코 깨어나지 못할 반도민의 정치적 인식능력의 한계를 보았음에 대한 쾌재의 풍자이기도 하다.

    ‘빙적이아(憑敵利我)’란, 적(敵,친일부역의 무리)의 입을 빌려 내부(한국민과 그 사회)를 깨우치려는 방편으로 최인훈 작가가 역사적 타자의 입을 빙자해서 한국 사회 내부의 문제를 환기하기 위해 사용한 서술 도구이다. 소설에서 유령방송국을 통해 담화를 발하는 ‘총독(總督)’은 한국 내에서 일본을 위해, 한국의 정치사회는 물론, 외교, 국방, 경제를 망라한 그 현황에 도사린 일제 부역자들의 활약상, 즉 식민지 잔재가 왕성하게 반도를 망치고 있음으로 인한 재 침탈 가능성이 숙성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환호이며, 부역자 무리의 노고에 대한 칭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을 달리 말하자면 한국의 기득계층은 곧 친일 부역자무리가 점령하고 있다는 인식이며, 그것들이 지속적으로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성장을 방해하고, 국론을 분열시켜 결코 화해할 수 없이 사분오열되어 어떤 단일한 민중의 권력도 부상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제어함으로써 외세에 무기력한 민족으로 남아있도록 하고자 하는 사대주의와 그것들의 자기 영달과 이익 이외에는 철저하게 분쇄하고자 하는 반민주, 권위주의 사회의 지향이며 정착이다.

    여기에 동원되는 수단은 남북의 휴전상황 고착화를 이용한 반공(反共)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효과이다. 즉 빨갱이 몰이는 불의한 친일 뿌리의 기득권을 영속화하는 기막힌 방법이며, 몽매한데다 노예근성까지 갖춘 반도인의 맹목적 충성이 거들어주기까지 한다. 일제 식민지 기간 내내 일제에 저항했던 모든 반도인을 빨갱이로 몰아 처단했던 효율성의 경험이, 이제 반도인의 정신에 각인되어 손쉽게 정치적 반대세력을 몰아세우는 유효한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총독의 소리》, 제1편 89쪽에서】

    소설 속 총독이 발하는 4편의 담화를 읽다보면, 2025년 지금 한국사회에 펼쳐지는 이 혼란의 정국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가의 역사적 실체를 성찰 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그 근원인 민족 배반자들을 청산하지 못하고, 친일의 근성을 발본색원하지 못한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망각증세, 다시 말해 일제 부역자의 종자인 멸종되어 마땅한 반(反)민주주의 친일 정당 소속 윤 모가 말하듯 ‘1년만 지나면 개, 돼지들은 모두 잊고 다시 (국회의원으로) 선택해준다’는 어리석은 노예근성에 근거한 흉측스런 말에 가닿는다. 아마 이 근성은 한국 내 일본 간자들의 우두머리인 총독의 말처럼, 이들 노예근성의 한국인들이란, “인간 조건에 대한 감각이 모자란 종족”이며, “정치적 음치(音癡)이자 풍문에 사는 자”이고, “이목구비가 있으면서 죽은 자”들로서, 목하 극우를 표방하는 폭력적 야만의 작태에 대해 부끄러움도 모르는 종자들이다.

    자신들의 역사를 안다는 것이 요즘보다 처절하게 그 중요함을 인식하여야 할 때가 없었던 듯 하다. 이 땅에 민주주의와 그 기반 요소들인 인권과, 평등과 공정성, 법치주의가 표면적으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표면아래서 이를 집요하게 방해하고 훼손하는 엄청난 규모의 퇴행적 세력이 있었음을 목도하고 있는 지금, 한국인, 우리들의 역사적, 민족적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뼛속까지 아려오는 통증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너무도 연약하게 흔들리고 있으며, 법치는 일제 부역의 무리들, 민주주의와 헌법수호를 열망하는 국민을 향해 빨갱이 타령을 하며, 법 초월의 무도함을 지껄이는 바로 그것들이 이를 증거한다 할 것이다.

    【《총독의 소리》, 제2편 121쪽에서】

    50여 년 전에 써진 이 인용문은 <총독의 소리> 노변담화방송을 듣던 한 시인의 자괴감 어린 자기성찰의 목소리다, “방대한 헛소문이 엉킨 전선들의 잡음처럼” 난무하는 실상은 마치 지금 벌어지는 저열함에 지배된 소셜미디어와 사이비 언론들에 넘쳐나는 조작과 날조, 기만과 거짓을 통해 돈벌이에 나선 군상들과, 이에 영합하여 맹목적 신뢰로 옹졸하고 편협한 이성 없는 무지를 뽐내는, 자신들의 노예근성에 복무하는 군상들의 악의적 댓글과 퍼나르기를 보고 있는 듯하다.



    “원시인의 귀보다 더욱 가난한 초라한 장치를 조작”하면서 “이 세상의 악의와 선의의 목소리를 알아들으려는” 시인은 그나마 자신의 무지에 대한 성찰이 보이기라도 하지만, 저 친일 부역 종자들이자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부패한 기득권 무리들의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무도함과 불순함, 폭력성, 이를 선전 선동하는 것들에게서는 그 어떤 역사적 각성은 물론 도덕성조차 찾을 수 없다. 오직 자신들의 편익과 편의, 권력과 축재(蓄財)라는 탐욕만이 목적인 불의함만이 더러운 썩은 내를 풍길 뿐이다. 이것들에게는 헌법의 수호, 즉 법치의 질서도,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정신도, 헌법 전문에 새겨진 대한민국의 민족정신인 현대사까지도 왜곡과 파괴의 대상이 된다.

    【《총독의 소리》, 제3편 129쪽에서】

    외교 무대에서 버젓이 자국의 국기를 외면하여 국가를 모멸하고, 적국의 입장에서 식민지민이 생각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발언을 국영방송에서 서슴지 않고 뇌까리는 것들이야말로 한국사회의 기득권 계층의 낯짝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의 한 표징일 것이다. 위의 인용문장은 청산되지 않고 이 사회의 권력과 부를 움켜쥔 친일부역의 종자들이 지닌 혐오스러운 믿음의 실체를 토설한 내용이다. 움켜쥔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이것들이 자신들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국민을 향해 빨갱이 몰이와 민주주의 근간의 파괴라는 이중의 배격 수단을 활용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소설은 해방 후 2025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식민지 황국신민의 충성스런 노예로서의 민주주의의 싹이 자랄 수 없도록 사회의 혼돈을 상시화하며, 일본의 한반도 재탈환의 토양을 성숙시키고 있음에 대한 자기 격려의 말을 그치지 않고 있음에 매서운 질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식은 식민지 지배 조건이 해방 이후 80년이 지난 지금에도 고스란히 유지 보존될 수 있는 가에 대한 국민 각자의 반성의 요구이다. <총독의 소리>에서 간자가 한반도의 정세에 대해, “분단 대치상황으로 인한 군사비 과도 지출, 남북 간에 적대적 무한경쟁 체제로 인해 통일은 요원한 문제일 것”이라고 진단하듯, 친일 부역의 무리들은 이 불안한 분단의 지속이 권력의 유지와 방어에 요긴하기 때문에 종전(終戰)이나, 남북의 평화적 화해무드를 방해한다.
    이 불안정성이 곧 기득권 유지의 필요조건인 탓이다. 2025년, 현재에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와 국가적 현실의 이해를 향한 적극적 앎의 여정이며, 우리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 가에 대한 충실한 지혜를 향한 탐구의 노력이 될 것이다. 소설은 비단 국내 정치질서에 대한 성찰만이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질서에 대한 냉혹한 인식을 촉발시키는 현실적 진단의 통찰도 있으며, 엔카(演歌)를 기원으로 한 일본의 리듬을 그대로 답습한 트로트에 열광토록 분위기 몰이를 하는 황색 미디어들이 유행처럼 하는 짓, 즉 일본풍의 선율과 음계에 익숙해짐으로써 정서적으로 내지(內地;일본을 의미)와의 유대를 계속하고 있음의 제국일본을 향한 복종의 표지임을 말하는 것들을 향한 반면교사의 비판적 메시지도 있다. 즉 보이지 않는 문화적 식민 토양을 축조하려는 은밀하고 더러운 반민족적 행위에 대한 응징의 메시지다.

    매국 황색미디어에서 시작된 이러한 친일 부역 도당의 신(新)황국신민화 표방은 이제 공중파 방송에까지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사회의 기득권 계층이 거의 모두가 친일의 뿌리를 지니고 있음의 반증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최인훈 선생은 아직도 ‘이따위 소리를 하고 있구나’ 라며, 작금의 한국사회에 대해 비통과 울분을 금치 못했을 것 같다. 지금 벌어지는 내란의 심판은 바로 신(新)식민지화를 도모하던 매판 세력과 민족적, 민주주의적 민중세력과의 싸움이라는 오래된 뿌리를 지닌 역사적 심판인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과 소수의 반민주 기득권 집단과의 결전이라는 의미이다. 이 작품으로부터 현대사의 구체적이고 수월한 이해를 수행하고, 나아가 『해방전후사의 인식』,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와 같은 우리 현대사의 독서로 나아가면 보다 명료한 역사인식을 갖추는데 적절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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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아 2025-01-30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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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진정한 숙고의 힘으로부터 제기된 창조적 물음과 사색의 과정을 통해서만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그것’[존재]을 알게 되며, 그것을 자신의 진리 속에서 참답게 보존하게 된다. 이러한 숙고로 인해 앞으로 도래할 인간은, 그 안에서 자기가 존재에 귀속하면서도 존재자들 속에서는 낯선 자로 머물게 되는 그런 ‘사이’(Zwischen) 안에 놓이게 될 것이다. 하이데거가 근대의 근본과정을 ‘세계를 상으로 정복하는 과정’이라 정의했을 때, 그리하여 출현하게 된 근대 학문의 전개를 ‘세계관의 논쟁’을 둘러싼 존재자의 ‘결단’의 과정으로 정립했을 때, 역설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시인의 언어였다. 기술(techne)의 미시화를 통해 개별 존재에게 표상되는 세계는, ‘언제라도 철저히 계산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의 가시화가 아니라 오히려 ‘더 이상 계산할 수 없는 그것’이 되고 만다. 표상되지 않는 공간인 동시에 ‘존재의 진리가 일어나는 열린 터전’이기도 한 이 그림자. 이 그림자를 사색하는 인간, 그리하여 광기의 언어를 실어나르는 시인(횔덜린)이야말로 하이데거에게는 근대시의 탄생을 알리는 존재였다.





    그와는 반대로, 그러나 동시에, 저 ‘알 수 없음’과 ‘볼 수 없음’의 무기력 그 자체가 대도시 체험으로부터 촉발된 근대시의 출발이기도 했다. 서정시의 불가능성을 노래하는 최후의 서정시. 악취, 소음, 난투가 폐허처럼 쌓여가는 길목에서 판에 박힌 언어를 토해내는 사람 또한, 아니 이 사람이야말로, 파국의 징후가 끝없이 쌓여가는 근대세계의 종말과 구원을 동시에 낚아채는 시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 세계의 인식 불가능성과 시인의 사명, 정치와 일상, 역사와 현실, 파국과 구원 사이에서 내내 서성이며, (세계를)쓰면서 (세계를)읽고 싶은 사람이 있다. “달에서 지구를 본 육체의 눈만한 의식의 눈이 있다면. 지구는 한 줄의 시가 되리라. 지구는 말이 되리라. 지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 눈이 있다면 둥근 슬픔의 그림자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들리는 건 소리요, 나오느니 비명 뿐인 세계의 밤. 「총독의 소리」는 새벽을 기다리는 시인이 이 세계의 비밀같은 사실을 누설하는 ‘조선총독부지하부’의 방송의 장광설과, 그것을 듣고 난 후 자신이 발붙인 현실의 어찌할 수 없음을 떠올리며 쓰기를 예비하는 과정에 대한 소설로 읽힌다. 세계를 단숨에 독해해버리는 총독의 소리와, 그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을 때 ‘이 도시를 바라다보면서 오래오래 서있는’ 시인이 떠올리는 파국의 상황으로 구성된 이 (소설 같지 않은)소설은 공히 저 ‘계산할 수 없는 그것’에 대한 해석 욕망과 눈 앞에 보이는 해독불가능한 현실 사이의 간극 그 자체를 지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아는 것이다. 󰡔구운몽󰡕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이 방송은 ‘세계상’간의 투쟁에서 소외된 개인을 그리는 장치로 기능해왔다. 독고민은 자신을 각하로 지목하는 혁명군과 정부군의 방송 사이에서 어찌할 줄 모르며 도망가기만을 반복했고, 독고준은 ‘그 해 여름’을 찾아가는 의식 속에서 방송을 듣지만 이내 자신에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기서 󰡔태풍󰡕 이후에는, 실감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저 수다스런 방송이 세계에 대한 일말의 진실과 비밀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변화한다. 그러나 시인에게만 들리는 이 비밀의 방송과 현실사이에는 여전히 큰 괴리가 존재한다. 파국의 진실을 듣고, 처음에 시인이 내밷는 것은 다만 ‘아구구아구구아구구구아구구구구. 비명’이다. 그런데 이후 이어지는 「총독의 소리」에서 방송을 듣는 시인은 이미 쓰고있는 사람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들리는 방송에 대해서 이렇다 할 평가나 대응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지만 이 파국의 상황을 구원의 순간으로 전화시키기 위해 더한 파국의 순간을 요청하고 있다.





    밤이여 익어라. 밤이여 익어라. 땅이 썩고 눈이 먹물처럼 흐리도록 밤아 익어라. 마지막 한마디를 어느 시인이 쓰는 순간에도 지구는 가라앉지 않는다. 밤은 더 익기를 원한다. (중략) 더 많은 재앙을. 풍성한 재앙을 (197~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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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린킨박 2011-12-07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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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 의원, 최인훈 작가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은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날.



    도대체... 도덕성이 강한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잘 용서하지 못한다.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지도 못하고, 설령 안다고 해도 끝까지 부인하고, 부인하다 안 되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인간들이 널려 있는 정치판에서, 도덕성이 강한 정치인은 치명적인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쉽게 생각했던 일이 자신을 벼랑으로 몰라가는 경우가 생긴다. 이렇게 해서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더한 일을 하는 인간들은 살아남고, 세상을 조금이라고 좋은 쪽으로 움직여 보려는 사람은 자기에게 묻은 티끌을 스스로 용서하지 못해 세상을 떠난다.



    노회찬 의원이 죽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왜 이리 서글픈 생각이 든 것인지...





    최인훈 작가가 쓴 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어이'가 떠올랐으니... 세상을 바꿀 힘을 지니고 태어났으나 강고한 현실을 이기지 못한 환경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기 장수.



    우리 세상을 바꾸려고 그렇게 노력했던 노회찬 의원이 이렇게 세상을 떠나다니...



    좋은 사람은 떠나고 안 좋은 인간들은 남아 있는 현실. 똥 묻은 개들은 득시글한 현실에서,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스스로를 심판한 노회찬 의원의 명복을 빈다.



    저 세상에서도 이 땅 민주주의가 발전하도록 지켜볼 것이라 믿고...



    노회찬 의원의 죽음만큼이나 내게 다가온 죽음이 있다. 최인훈 작가의 죽음. 그래, 최인훈 작가 하면 참 오래 전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오늘 돌아가셨다고 한다.



    1960년에 나온 '광장'으로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라섰으니 말이다. 단지 광장뿐이겠는가. '가면고'는 어떤가. 또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는...



    일제시대가 오래 되어 조국을 생각하지 못하는 대체 역사 소설이라 할 수 있는 '태풍'은... 우리나라 현실을 박태원 소설에 빗대어 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그리고 '총독의 소리, 주석의 소리'는 또 어떤가.



    소설에서 희곡으로 넘어가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어이'는 아기 장수 전설을 극화해서 우리 민족의 수난을 다루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자서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화두'까지... 최인훈 작품을 빠짐없이 찾아 읽으면서 그에게 중독되다시피 했었는데...



    이제 그는 떠났다. 작품만 남기고. 그 작품들을 통해 계속 내 맘에 남아 있기는 하겠지만.





    최인훈 작가도 하늘에서 잘 쉬시기를...



    노회찬 의원과 최인훈 작가, 이제는 편히 쉬시기를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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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nye91 2018-07-23 공감 (3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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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 때, 이 소설을 읽어 보자





    우리는 일제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을까?



    이런 생각이 자꾸 든다. 일본이 평화헌법을 왜곡해 군사재무장을 시도하고 있는 아베를 비롯한 보수주의자, 아니 군국주의자들의 후손이 정권을 잡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재무장을 통해 군사력을 강화하고, 우리나라와는 독도로, 중국과는 센카쿠 열도로 갈등을 빚고 있는데,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간다고 한다.



    길이 오로지 자신들만을 위해 있지 않은데, 마치 그 길이 자신들만의 길인양 행동하고 있다. 이런 것과 더불어 우리는 아직도 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받지 못했으며, 징용에 끌려갔던 노동자들 역시, 원자폭탄에 피폭된 2세,3세들 역시 제대로 인정받지도 보상받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남북분단의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하다못해 통일이 되지 못하더라도 남북이 평화적인 관계, 서로 신뢰하는 관계는 유지해야 하는데, 그도 하지 못하고, 갈등이 일어나고, 단절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상태니, 어떻게 일제로부터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자꾸 생각이 나서 최인훈의 소설 "총독의 소리"를 다시 펼쳐들었다.



    소설이 예언서는 아니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시인의 귀에 들린 조선총독의 방송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는 소설.



    가상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70년대 당시의 상황에서 쓴 소설이지만 지금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지하에 숨어 있는 조선총독부 총독이 이제는 자신들이 다시 나설 때가 되었다는 듯이 회심의 미소를 띠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묘해졌다고나 할까.



    이 소설에서 총독은 여러가지를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의 남북분단으로 인한 갈등도 이들에게는 다시 조선으로 들어올 기회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렇듯 하나가 되지 못하는 나라, 문화민족으로 성장하지도 못하고 있는 나라, 일제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도 못한 나라를 비웃도 있다. 지하에서.



    물론 소설적 상황이기는 하지만, 과연 소설에서만 그칠까.



    일본과 교류를 해도 좋다. 세계화 시대에 일본과 당연히 교류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안정되어야 한다.



    우리를 되돌아보고, 우리들 자신에게서 부족한 점을 먼저 메워야 한다. 우리들 자신이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으면 그것은 이 소설 속 총독을 도와주는 것 뿐이다.



    다시 등장한 차벽, 물대포, 국민을 테러집단에 비유하는 대통령, 그럼에도 자신들은 가면 뒤로 쏙 들어가는 권력자들.



    이들이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바로 이 소설의 총독을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한다. 다시 한 번 "총독의 소리"를 읽어 보라.



    제발, 좀, 책 좀 읽어라. 적어도 정치를 한다는 인간들이라면 말이다. 이런 소설에 나타난, 이미 40년 전의 소설 속 현실이지만, 좋은 소설은 특정한 시대에 국한되지 않으니... 좀 읽고 생각 좀 해라.



    그 다음에 정치를 한답시고 나서라. 이런 말을 그들에게 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속이 시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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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nye91 2015-12-11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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