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기자명 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입력 2023.12.04
[책 읽어주는 남자] 김지하 「밥」
밥이 없다면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까. 의식주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그 중에서도 밥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입는 것과 주거가 없이도 그냥그냥 살아갈 수 있겠지만 인간이든 동물이든 먹지 못하면 당장 생명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밥은 곧 생명이다. 한국인들의 흔한 인사는 "밥은 드셨습니까." "언제 밥 한번 먹읍시다." 같이 밥으로부터 시작된다. 인류 전쟁의 역사를 곰곰이 살펴보면 많은 전쟁이 궁극적으로 밥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의 반의어인 평화(平和)를 한자로 들여다보면. "공평하게 밥을 먹는다."라는 의미로 구성되어 있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주장한 적자생존의 이론도 식량 문제에서 출발한다. 현대와 같이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경우, 인류는 엄청난 식량 부족의 문제에 처하게 될 것이고 일정 한계를 넘어설 수 없게 된다. 기후변화와 질병의 위협으로 인류의 삶의 공간은 갈수록 힘들어 가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그 규모가 더욱 확산되는 전쟁과 내분의 중심에는 에너지와 식량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밥상 위에 오르는 쌀과 밀에서부터 시작해 국제적인 식량 안보 문제에 이르기까지, 공평하게 밥을 먹는다는 의미는 한 사회와 계층은 물론이고 생태계와 미래세대의 몫까지 정의롭게 보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먹고 산다는 것은 생존의 기본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밥은 단순하게 먹는다는 차원을 넘어 문화적·사회적 가치로 존재한다. 배고픈 이들에게 밥은 생명이고 삶이었기에 우리의 선조들은 밥을 하늘이라 생각했다. 동학 교주인 최시형은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는 말을 했다. 사람들이 먹고 있는 음식도 하늘의 일부이기 때문에 사람이 하늘의 일부인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동학이 배고픔에서 시작됐고 배고픈 민중에게 밥은 곧 하늘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밥과 그 밥을 만드는 쌀의 의미는 너무나 가볍게 여겨진다. 음식문화의 지나친 발달로 인해 우리는 쌀 한 톨의 소중함을 너무 간과하고 있다. 아무리 음식문화가 발달해도 여전히 밥상의 주인공인 쌀 한 톨의 무게에는 바로 생명의 무게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생각지 못한다. 일 그램도 되지 않는 쌀 한 톨의 무게에는 경제적 논리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담겨 있다. 농부는 한 톨의 쌀을 생산해 내기 위해 흙, 바람, 햇빛과 같은 자연과 우주를 만나고 공경하는 성스러운 생산자이다. 이들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 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인가.
시인 김지하는 「밥은 하늘 입니다」에서 밥을 이렇게 노래한다.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서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김지하의 시에서 '밥'을 통어하는 중심 사상은 생명이다. 죽음의 반대 의미로서의 생명이 아니라 시인은 '생명성'을 현대의 인간 중심적, 과학 중심적 세계관에 대응하는 정신으로 제시한다. 과학기술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현대문명은 갈수록 죽음의 길을 치닫고 있다. 인간과 자연, 정신과 육체,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이분법적 논리가 지배하면서 밥이 지닌 생명성이 사라져 가고 있다.
가을이 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겨울의 길목으로 들어선다. 가로수는 이파리를 떨군 채 가지만 앙상하다. 시골집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감 몇 개가 바람에 흔들린다. 어느 시인은 '까치밥'을 따 버리면 '빈 겨울 하늘'만 남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까치밥은 세상을 삭막하고 허전하지 않게 하는 마지막 밥이다. 힘들고 어려운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까치밥은 '따뜻한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한다. 밥은 곧 하늘이며 생명이다.
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입력 2023.12.04
[책 읽어주는 남자] 김지하 「밥」

밥이 없다면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까. 의식주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그 중에서도 밥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입는 것과 주거가 없이도 그냥그냥 살아갈 수 있겠지만 인간이든 동물이든 먹지 못하면 당장 생명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밥은 곧 생명이다. 한국인들의 흔한 인사는 "밥은 드셨습니까." "언제 밥 한번 먹읍시다." 같이 밥으로부터 시작된다. 인류 전쟁의 역사를 곰곰이 살펴보면 많은 전쟁이 궁극적으로 밥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의 반의어인 평화(平和)를 한자로 들여다보면. "공평하게 밥을 먹는다."라는 의미로 구성되어 있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주장한 적자생존의 이론도 식량 문제에서 출발한다. 현대와 같이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경우, 인류는 엄청난 식량 부족의 문제에 처하게 될 것이고 일정 한계를 넘어설 수 없게 된다. 기후변화와 질병의 위협으로 인류의 삶의 공간은 갈수록 힘들어 가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그 규모가 더욱 확산되는 전쟁과 내분의 중심에는 에너지와 식량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밥상 위에 오르는 쌀과 밀에서부터 시작해 국제적인 식량 안보 문제에 이르기까지, 공평하게 밥을 먹는다는 의미는 한 사회와 계층은 물론이고 생태계와 미래세대의 몫까지 정의롭게 보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먹고 산다는 것은 생존의 기본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밥은 단순하게 먹는다는 차원을 넘어 문화적·사회적 가치로 존재한다. 배고픈 이들에게 밥은 생명이고 삶이었기에 우리의 선조들은 밥을 하늘이라 생각했다. 동학 교주인 최시형은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는 말을 했다. 사람들이 먹고 있는 음식도 하늘의 일부이기 때문에 사람이 하늘의 일부인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동학이 배고픔에서 시작됐고 배고픈 민중에게 밥은 곧 하늘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밥과 그 밥을 만드는 쌀의 의미는 너무나 가볍게 여겨진다. 음식문화의 지나친 발달로 인해 우리는 쌀 한 톨의 소중함을 너무 간과하고 있다. 아무리 음식문화가 발달해도 여전히 밥상의 주인공인 쌀 한 톨의 무게에는 바로 생명의 무게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생각지 못한다. 일 그램도 되지 않는 쌀 한 톨의 무게에는 경제적 논리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담겨 있다. 농부는 한 톨의 쌀을 생산해 내기 위해 흙, 바람, 햇빛과 같은 자연과 우주를 만나고 공경하는 성스러운 생산자이다. 이들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 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인가.
시인 김지하는 「밥은 하늘 입니다」에서 밥을 이렇게 노래한다.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서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김지하의 시에서 '밥'을 통어하는 중심 사상은 생명이다. 죽음의 반대 의미로서의 생명이 아니라 시인은 '생명성'을 현대의 인간 중심적, 과학 중심적 세계관에 대응하는 정신으로 제시한다. 과학기술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현대문명은 갈수록 죽음의 길을 치닫고 있다. 인간과 자연, 정신과 육체,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이분법적 논리가 지배하면서 밥이 지닌 생명성이 사라져 가고 있다.
가을이 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겨울의 길목으로 들어선다. 가로수는 이파리를 떨군 채 가지만 앙상하다. 시골집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감 몇 개가 바람에 흔들린다. 어느 시인은 '까치밥'을 따 버리면 '빈 겨울 하늘'만 남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까치밥은 세상을 삭막하고 허전하지 않게 하는 마지막 밥이다. 힘들고 어려운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까치밥은 '따뜻한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한다. 밥은 곧 하늘이며 생명이다.
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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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리뷰
종이책se********|2001.04.22|신고/차단
7.5
김지하의 "밥"을 통어하는 핵심 사상은 생명이다. 생명의 반대말이 자연적인 죽음이 아니라 인위적인 죽음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김지하는 '생명성'을 현대의 인간 중심적, 과학 중심적 세계관에 대응하는 대항논리로 제시하고 있다.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현대문명은 '극단적인 분별지'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가진자-못가진자, 인간-자연, 남성-여성과 같은 이분법적인 논리가 세상을 결정하는 지배 논리가 되어 철저하게 전자(가진자-인간-남성) 중심의 세상을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문명은 당연히 반자연적(환경친화적)이면서 반여성적(가부장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21세기 우리나라 사상계를 지배하는 환경담론이나 여성담론들을 보라. 이런 사상들의 밑바탕에는, 프랑스 철학자 라캉의 말처럼 '억압된 것들이 복귀하는 현상',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세상을 지배한 흑백논리의 세계관을 철저하게 허물어뜨리려는 인식쳬계가 스며들어 있다.
이 책에서 김지하가 '밥'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에 주목하는 이유는 '밥'이 인간 생명의 기초라는 초보적인 인식도 있겠지만, 밥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통해서만 현대 사회의 극단화된 이분법적 논리를 비판하는 그의 생명론을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에게 밥은 '우주 생명의 창조적 활동'이면서 '그 생명의 결실을 생명 자신이, 즉 생명 활동의 주체인 생명 자신이 먹는 것을 뜻'한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생물-무생물)를 하나의 생명(한울님)으로 보는 동학사상에 기반한 지은이의 '밥'론은 '이천식천(한울님이 한울님을 먹는다)'이란 말 만큼이나, 모든 생명들의 연쇄, 곧 창조적 순환 체계의 바탕을 이룬다.
'이천식천'에는 우리가 밥을 먹고, 채소를 먹고, 고기를 먹는 행위가 생명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생명답게 만드는 힘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먹고 먹히는' 관계를 통해 서로 하나의 생명체가 된다는 생각이 이 말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끌어내진다. 나와 너, 인간과 자연이라는 기존의 대립적인 관계가 김지하의 사상에서는 통합적인 관계로 나타난다. 이 책에 두루두루 회자되고 있는 '밥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이야기도 모든 신성스런 대상의 바탕은 아주 작은(하찮은) 대상임을 드러내려는 지은이의 의도가 담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밥-생명에 대한 이와같은 지은이의 생각을 이해한다면, 그가 '신명'이나 '굿'을 새로운 세상의 모형으로 제시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신명'이란 쉽게 이야기하면 신바람이다.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생명의 환희, 그것이 신명이라면 이런 신명이 유난히 강조되는 세게가 바로 '굿의 세계'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굿'은 '춤이 일로, 일이 춤으로 서로 상승하는 생명 활동의 확대 재생산 과정과 그 매듭을 이루는 부분'이다. 분별지가 없는 세계, 인간, 자연 그리고 귀신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세계, 그런 세계가 생명의 세계이며 지은이가 지향하는 '대동굿'의 세계인 것이다.
결국 김지하의 "밥"은 밥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민중의 집단적 신명에 대한 이야기이며, 한편으로 그것들의 기반이 되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밥-신명-생명의 창조적 순환을 통해 '이천식천'하는 세계, 그 세계가--지은이가 이 책에서 자주 인용한 말을 빌어 말한다면--그가 계획하는 천지공사(증산사상의 세계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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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으로 나아 간 ‘김지하 미학’ 집대성
김진형2025. 1. 10. 강원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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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1주기 심포지엄 등 정리
예술·생명사상·미학 등 주제
1056쪽 방대한 분량으로 발간
‘양심선언’ 비롯 필독 글도 수록
“동학 풀이는 비교 불가능 업적”

생명으로 나아 간 ‘김지하 미학’ 집대성
김진형2025. 1. 10. 강원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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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1주기 심포지엄 등 정리
예술·생명사상·미학 등 주제
1056쪽 방대한 분량으로 발간
‘양심선언’ 비롯 필독 글도 수록
“동학 풀이는 비교 불가능 업적”
▲ 김지하를 다시본다 염무웅·이부영 유홍준·임진택
시인 김지하(1941~2022)를 한 마디로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는 시 ‘타는 목마름으로’와 ‘오적’을 통해 민주화의 선봉에 섰던 저항시인이었지만,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후 동학과 화엄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원주에서 생명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쳤다.
‘흰 그늘’의 시인 김지하의 사상과 그에 대한 글을 모은 책 ‘김지하를 다시 본다’가 나왔다. 2023년 김지하 1주기를 맞아 열린 ‘김지하 추모 학술 심포지엄’ 자료를 정리하고, 꼭 읽어야 할 김지하의 글을 모아 1056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제작됐다.
염무웅 문학평론가를 비롯해 이부영전 국회의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임진택 소리꾼이 함께 엮었고 임동확·김사인·홍용희·정지창·채희완·심광현 등 30여 명이 ‘김지하의 문학·예술과 생명사상’이라는 큰 주제 아래 시인의 미학, 그림과 글씨 등에 대해 썼다. 시인의 ‘양심선언’, ‘나는 무죄이다’, ‘생명평화선언’ 등의 글도 수록했다.
▲ 젊은 시절 김지하 시인의 모습. 그는 일찌감치 생명사상을 중심으로 사회운동의 또다른 흐름을 만들었다.
김지하는 1981년 로터스상 수상 연설을 통해 ‘생명의 세계관’을 제안했다. 이같은 인식은 그의 생애 후반기에 더욱 뚜렷해진다. 지구촌 곳곳에서 생명이 파괴되고 있는 현실 속에 ‘생명운동가’ 김지하의 발언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이듬해 봄 발표한 ‘원주보고서’는 다른 사회운동과 차별되는 가치 지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주요섭 생명운동가는 이에 대해 “생명운동은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진보와 보수 양쪽과 거리를 두면서 자신만의 사회운동을 만들어갔다. 그것은 양끝도 아니고 중간도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차원 변화였다”고 언급한다.
박맹수 원광대 명예교수는 동학을 중심으로 한 ‘김지하 생명사상의 뿌리’라는 글을 통해 김지하 시인과의 인연을 풀었다. 박맹수 교수는 “김지하가 생명의 세계관으로 풀이한 동학 해석은 오늘날에도 비교할 수 없는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김지하는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이 “밥 한 그릇이 만사”라고 말한 것을 두고 “서푼짜리 밑바닥 인생을 한울님처럼 모시는 것이 참다운 개벽이니 이제 그것이 보편화되고 일상화되어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했다.
인혁당 사건에 대한 1976년 김지하 시인의 최후 진술 ‘나는 무죄이다’에 실린 후반부 글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도 시인의 태도는 당당했고 불의에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을 박해하는 이들에게도 “흰 눈처럼 은총이 폭폭 쏟아지기를 빌었다”는 시인의 태도가 놀라울 뿐이다.
“나는 행복하고, 매일매일 영광스럽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무죄가 아닌 어떤 형벌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행복하게 이 길을 , 내 십자가를 지고 가겠습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진리를 위해서 판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진형
#김지하 #시인 #생명 #미학 #집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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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지하(1941~2022)를 한 마디로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는 시 ‘타는 목마름으로’와 ‘오적’을 통해 민주화의 선봉에 섰던 저항시인이었지만,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후 동학과 화엄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원주에서 생명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쳤다.
‘흰 그늘’의 시인 김지하의 사상과 그에 대한 글을 모은 책 ‘김지하를 다시 본다’가 나왔다. 2023년 김지하 1주기를 맞아 열린 ‘김지하 추모 학술 심포지엄’ 자료를 정리하고, 꼭 읽어야 할 김지하의 글을 모아 1056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제작됐다.
염무웅 문학평론가를 비롯해 이부영전 국회의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임진택 소리꾼이 함께 엮었고 임동확·김사인·홍용희·정지창·채희완·심광현 등 30여 명이 ‘김지하의 문학·예술과 생명사상’이라는 큰 주제 아래 시인의 미학, 그림과 글씨 등에 대해 썼다. 시인의 ‘양심선언’, ‘나는 무죄이다’, ‘생명평화선언’ 등의 글도 수록했다.
김지하는 1981년 로터스상 수상 연설을 통해 ‘생명의 세계관’을 제안했다. 이같은 인식은 그의 생애 후반기에 더욱 뚜렷해진다. 지구촌 곳곳에서 생명이 파괴되고 있는 현실 속에 ‘생명운동가’ 김지하의 발언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이듬해 봄 발표한 ‘원주보고서’는 다른 사회운동과 차별되는 가치 지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주요섭 생명운동가는 이에 대해 “생명운동은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진보와 보수 양쪽과 거리를 두면서 자신만의 사회운동을 만들어갔다. 그것은 양끝도 아니고 중간도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차원 변화였다”고 언급한다.
박맹수 원광대 명예교수는 동학을 중심으로 한 ‘김지하 생명사상의 뿌리’라는 글을 통해 김지하 시인과의 인연을 풀었다. 박맹수 교수는 “김지하가 생명의 세계관으로 풀이한 동학 해석은 오늘날에도 비교할 수 없는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김지하는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이 “밥 한 그릇이 만사”라고 말한 것을 두고 “서푼짜리 밑바닥 인생을 한울님처럼 모시는 것이 참다운 개벽이니 이제 그것이 보편화되고 일상화되어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했다.
인혁당 사건에 대한 1976년 김지하 시인의 최후 진술 ‘나는 무죄이다’에 실린 후반부 글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도 시인의 태도는 당당했고 불의에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을 박해하는 이들에게도 “흰 눈처럼 은총이 폭폭 쏟아지기를 빌었다”는 시인의 태도가 놀라울 뿐이다.
“나는 행복하고, 매일매일 영광스럽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무죄가 아닌 어떤 형벌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행복하게 이 길을 , 내 십자가를 지고 가겠습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진리를 위해서 판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진형
#김지하 #시인 #생명 #미학 #집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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