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8

복잡한 계보… 운동권의 실체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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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계보… 운동권의 실체
Christian Thinking
2014. 9. 9. 

대한민국 진보 계열의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학생들을 통칭하는 말.
원래는 독재정권 당시 친정부 언론에서 학생운동을 하는 대학생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만든 표현이었는데, 딱히 대체 표현이 없어서 그런지 운동권 스스로도 계속해서 쓰고 있다.

운동권이란 표현이 널리 사용된 것은 80년대부터다. 60~70년 대 비합법 운동 시대가 끝나고 학생 운동
이 학내에서 광범위한 대중적 위치를 점하면서부터 이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자타공인 80년대 민주화운동의 핵심세력으로, 내부적으로는 분파가 다양했다. 노선 논쟁이 본격화 되는 것은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이후이다. 무슨 운동을 할 것이냐란 논쟁이 벌어지고 분파가 형성됐으며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정말 무협지처럼 다양한 노선 논쟁이 있었는데(김영하 작 무협학생운동),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NLPD 논쟁이다. 이는 사구체 논쟁에서 촉발된 것으로, NL-PD와 관련 된 내용은 따로 항목이 있으니 서술 생략.

물론 이 당시 NL이 지금과 같지도 않고, 이 당시 PD가 지금과 같지도 않지만 이 흐름은 아직까지도 한국사 운동세력 내에 커다란 구분선 중 하나이다. 현재 NL-PD 구분은 거의 통일운동 vs 노동운동 대립구도를 대신하는 단어로 쓰인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까지 엔하위키미러 참조

NL 즉 ‘민족해방 (民族解放, National Liberation)’은 민족 자결을 밑바탕으로 마르크스주의의 민족 이론을 필두로 한 또는 그에 대한 것을 연장선으로 6.25 전쟁 때에 존재했던 좌파 운동이면서, 1960년 12월에 81개국 사회주의 계 NL 계열은 1980년대 중반(강철서신 사건)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정확하게는 1996년 연세대 사태, 1997년 전남대학교 학생구타사망사건 이전까지는) NL이 다수파며 사실 이는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현재 NL내 최대 정파는 한대련이며, 현재 학생운동 내에서도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다.
PD, 즉 ‘민중민주(民衆民主, People's Democracy, People's Democratic)’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사회-철학적 전통을 중시하는 사회주의계의 1980년대 대한민국에서 시작된 진보주의 운동의 한 갈래이다.  평등파라고도 한다.

대한민국 사회를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로 규정하고, 사회 변혁 방법으로는 민중 민주주의 혁명론에 따르며, 사상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단일한 지도 이념에 따라 통일된 조직을 형성한 민족 해방(NL) 계열과 달리, 본래부터 단일 정파는 아니며 몇 개 정파가 독립적으로 형성되어 조직적으로도 분립된 양상을 보여왔다.
더불어, 민족 모순을 대한민국 사회의 주요 모순으로 파악하는 민족 해방 계열에 반해, 민중 민주 계열은 이를 민족 모순이 아닌 계급 모순으로 파악한다.
계급 운동의 관점에서 주로 노동 운동을 중심으로 사고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서도 대체로 비판적인 입장을 두어 민족 해방 세력과 대립했다. 이후 한국사회당 다수와 민주노동당 일부를 이루게 되었는데 민주노동당의 옛 평등파, 즉 노동당이 민중 민주 세력에 속한다.
여기까지 위기백과 참조 의외라고 느낄지 어떨지 모르지만, 뉴라이트 항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은 사실 운동권 출신들이 대다수이다. 즉 젊었을 때 운동권에 몸담아 열심히 좌향좌하던 사람들이 나이를 먹고선 방향을 180도 돌려 열심히 우향우한 결과물이 바로 뉴라이트.

운동권이었던 그들이 이처럼 극적인 전향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냉전의 붕괴 과정에서 겪은 멘붕 때문이었다.
흔히 운동권 소속 청년들이 그렇듯, 이들도 운동권 선배들의 영향으로 현실의 대한민국 사회와 미국 등에 대해선 대단히 부정적이었던 반면, 북한이라든가 공산주의, 주체사상 등에 대해서는 이상적인 부분만을 취사적으2로 받아들여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던 이들이 다수였다.

그렇게 운동권이 최극성을 이루던 80년대 말 압도적 화력을 선보였던 이들이었으나, 1990년대가 시작되면서 소련의 붕괴, 독일의 통일, 동구권의 변혁 등 공산주의 국가들이 일제히 몰락하고 90년대 중반들어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그 대내적 실상이 밝혀짐에 따라 상당수가 그제서야 "우리가 속았다!!"는 충격을 먹고 멘탈붕괴했던 것이다, 이 와중에 기존에 있던 한총련은 시대에 제대로 변화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96년 한총련 사태와 97년 프락치 오인 살해사건 등의 사건이 일어나면서 90년대 운동권 내부에서는 통렬한 반성의식이 소용돌이쳤고 이 때 운동권 인사들 중 상당수가 우익으로 전향하는 사례도 나왔다.

그러나 사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전투종족적인 강경성은 어디 가지 않았기 때문에 운동권 특유의 저돌성을 고수하는 상태에서 방향만 180도 튼 꼴이 되었고, 그것이 바로 지금의 뉴라이트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뉴라이트 주요 인사로 불리는 인물들의 약력을 보면 의외로 젊은 시절 운동권 이력이 있거나 운동권과 관련을 지었던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실제 운동권 경험을 해 보았던 이들이기 때문에 운동권에 대해 누구보다 그 생리를 빠삭하게 꿰고 있으며, 극단적인 좌향좌에서 급격히 극단적인 우향우로 트는 이런 현상은 아직도 현재진행, 아니 원래부터 동서고금 꾸준히 역사적으로 있어 온 사실이다.
운동권의 주축은 대부분은 소위 명문대 재학생, 출신들이 독점했다. 운동권 세력판도도 NL, PD 계파로 분류되기 이전에 대학 순위별로 갈려 버리는 건데 명문대 출신과 3류대 출신이 똑같이 운동권 활동을 벌일 경우 3류대 운동권은 니 앞가림이나 잘하라는 비웃음을 사고 해당 학교 학생들의 호응도 이끌어 내기 어려워서 적극적으로 운동권에 개입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학벌과 학력 덕분에 명문대 출신들은 사회에서 한자리씩 하는 선배들의 도움을 받거나, 사상적 전향 이후에도 국가고시든 어디든 먹고 살 길과 능력이 있었지만 3류대가 운동권 전력을 가질 경우 앞날이 심하게 암담했다.

심한 경우에는 명문대가 주축이 된 운동권조직이 3류대 학생회에 개입해 학내분규를 조장 혹은 학생회 자금만 유용해버리고 발을 빼는 일도 있었다.
과거의 시위대하면 흔히 꽃병과 파이, 그리고 바리케이트와 짱돌로 대표되는 폭력시위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다. 90년대 들어서는 폭력시위로 많은 비판을 받았고, 이게 극단적으로 폭발된게 1996년 연대 한총련사건이었다.
이 때를 계기로 내부적으로 필요이상의 폭력시위는 자제하자는 비판이 돌았고, 2000년대를 기점으로 학생운동권2의 전투력은 급격하게 감소했다. 2006년 평택 미군기지 반대 시위정도가 학생운동권이 마지막 전투력(?)을 보여준 때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론 무기가 등장할 정도의 굵직굵직한 충돌은 대부분 노동조합 대오와 전경들 사이에 벌어졌다. 최근에는 학생대오가 과거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전투력이 하락해 집회 때 오히려 시위대에게 위험한 상황을 만든다는 비판이 있다.
권위주의 문화에 대한 비판 역시 존재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박노자 교수가 과거 운동권의 문화를 비판한 적도 있다. 내부적으로 지나치게 엄격한 생활계율을 적용해 내‧외적으로 비판을 받은 적도 있었다.

특히 NL 계열의 경우 주체사상의 수령론의 영향으로 인해 이러한 권위주의 문화가 매우 심했다. 80년대에는 선후배 간의 체벌도 꽤 많았다고 하여 몇몇 학교들은 2013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가령 새내기 군기잡는다고 한 학번 위 학생들 집합시켜서 기합을 준다든가 … (이하 중략)

가장 중요한 건 학생들의 생각이 변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암울했던 70~80년대에는 학생들에게 공감을 살 수 있었으나 글쎄, 지금 정부 정책을 운운하며 어디서 모이자고 하면 모일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즉 학생들이 운동권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데다가 등록금과 관련된 학교의 횡포가 심해지면서 학생들이 학생회에게 원하는 건 학교와 맞서싸워줄 학생의 대표인 학생회가 되어달라는 쪽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즉 정부나 정당이 아니라 당장 학생을 괴롭히는 학교랑 싸워달라는 것인데 이러한 요구랑은 달리 일부 운동권 학생회는 학교 측과 교섭을 하거나 투쟁을 하는데 시원찮은 행동을 보였다. 이러니 대부분의 학생들 에겐 운동권이란 그저 회장, 부회장 경력 아서 정치권에 진출하는데만 안달 난 모습의 이미지가 박혀버렸다.
여기까지 엔하위키미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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