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1

피눈물에 젖은 '백아산(白牙山)'을 아십니까?> 오종문목사 : 네이버 블로그

<피눈물에 젖은 '백아산(白牙山)'을 아십니까?> 오종문목사 : 네이버 블로그

<피눈물에 젖은 '백아산(白牙山)'을 아십니까?> 오종문목사

오제학

2023. 4. 7

<피눈물에 젖은 '백아산(白牙山)'을 아십니까?>

오종문목사


오늘은 필자가 목회하던 시절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임곡리 조그마한 시골 교회에서 11년 목회한 적이 있습니다. 제 30 대 인생을 고스란히 그곳에서 보냈지요.

그 화순군 북면에는 ‘백아산(白鹅山)’이라는 유명한 산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 산 이름이 ‘거위 아’ 鹅 자를 쓰는 ‘백아산(白鹅山)’이지만 원래의 이름은 ‘어금니 아’ 牙 자를 쓰는 ‘백아산(白牙山)’이었습니다. 겨울 눈 내렸을 때 멀리서 바라보면 산의 모습이 정말 어금니처럼 보이는 산이지요. 그 산의 이름이 바뀐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6.25 직전에 이승만의 반공 정책으로 남조선로동당의 거물들인 김삼룡, 이주하 등이 검거되고 남로당 조직이 붕괴하자 나머지 남로당원들은 산으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 정부에서는 그들을 ‘입산자(入山者)’라고 불렀어요.



그러다가 6.25가 터지고 인민군들이 밀고 내려와서 한 두달 인민공화국(줄임말 ‘인공’) 시절이 펼쳐지다가 인천상륙작전 이후 인민군들이 북으로 도주했는데 그때 미쳐 도망가지 못했던 잔당들이 또다시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빨치산’이라 부릅니다. 유격대를 뜻하는 프랑스어 ‘파르티잔(partisan)’에서 온 말입니다.

​화순 ‘백아산(白牙山)’일대는 그 빨치산들이 맹위를 떨치던 지역입니다. 빨치산 사령부가 그 ‘백아산(白牙山)’ 아래 마을에 있었습니다. 밤이면 빨치산들이 백아산 마당바위에 불을 피우고 횃불을 들고 위용을 과시했는데 산 아래 동네들에서 보면 수 백 개의 횃불들을 볼 수 있었답니다.

​그 무렵 그 ‘백아산(白牙山)’ 이 있으므로 해서 그 지역 마을 사람들은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교회가 있는 임곡리 마을 노인들은 당시의 사건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92년에 처음 그 마을에 도착해서 집집마다 방문하며 동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백아산 빨치산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느 날 밤, 산에서 빨치산들이 총 들고 내려와 소 돼지 닭 개 쌀 보리 된장 간장 고추장 다 퍼가고 부엌살림 이불 요 심지어 반짇고리까지 싹 쓸어갔답니다.

​그 정도는 문제도 아니지요. 마을 사람들을 붙잡아 백아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빨치산들이 마을 사람들을 끌어가서 뭐 했는가요? 일부는 ‘인민재판(人民裁判)’해서 죽였고 나머지는 자신들과 같은 ‘산사람(빨치산의 별명)’을 만들어 병력을 늘렸습니다.

​그 '인민재판(人民裁判)'이란 것은 무엇인가요? JTBC 손석희의 입에서 나온 좀 고급진 말로 바꾸자면 '집단지성'의 표현입니다.

​‘인민재판(人民裁判)’을 겪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날 죽었습니다. 살아난 사람은 극히 드물었지요. 필자는 당시 '인민재판'을 겪고서 살아나신 할머니 한 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밤중에 끌려간 마을 사람들 가운데 빨치산이 ‘누구 누구 나오라!’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들은 백아산 아래에 있는 한 마을 큰 집으로 불려갑니다. 그 집 마당에는 이미 수십 명 많은 사람들이 와 있고 그 집 대청마루에는 빨치산 대장이 큰 칼을 뽑아서 옆에 놓고 화로 불을 피웠는데 화롯불 위에는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답니다. 불려간 사람들은 심장이 쪼그라드는 분위기...!

이때 누군가 한 사람이 빨치산 대장에게 다가가 귀속말로 뭐라 뭐라 일러줍니다. 그러면 빨치산 대장이 끌려온 사람 중 한 명의 이름을 크게 부르고 그의 죄를 묻습니다.

왜정(倭政) 때 이런 저런 일을 했느냐?
몇십 마지기 논밭을 소유하고 농사를 짓느냐?
가족 친척 중에 군인이나 경찰 공무원이 있느냐?
살아오면서 이웃 마을 아무개와 재산 문제로 다투었느냐?
이웃 아무개와 함께 빨치산들의 구역으로부터 탈출하자고 모의하였느냐?

심문이 끝나면 빨치산 대장이 큰 소리로 외칩니다.

“여러분! 이런 놈은 죽여야 되겠지요?”

그러면 한 동안 아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답니다.

​......!

......!



공포가 지배하는 숨 막히는 분위기...!!!


아무도 나서서 “그 사람이 그런 일을 했다고 해서 그게 사람 죽일 일입니까? 죽이지 말고 살려줍시다”이런 말 못할 때...

마당에 둘러선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알 수 없는 누군가 한 마디 합니다.

“죽입시다!”

​그러면 빨치산 대장이 재차 묻습니다. “다른 의견 있습니까?”

​......!

......!

​“그러면 다들 죽이자고 하니 여러분들 뜻을 따라 죽입시다!”

​판사, 검사, 변호사도 없는 재판에서 사형이 내려지면 총알이 아까운 시절인지라 총살이 아니라 몽둥이로 죽창으로 잔인하게 사람을 죽였답니다.

​저에게 그 인민재판 이야기를 들려주신 할머니는 그때 20여 명이 끌려간 그 날의 인민재판에서 살아난 유일한 분이셨지요.

​시어머니도 남편도 인민재판에서 다 죽고 젊은 아낙네 혼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돌아와 보니 집안에 아무 것도 없어......!!! 곡식 한 톨도 없고 가축도 없고 간장 된장도 없는데 남아 있는 아들 딸 입에다 무엇을 넣어줘야 할지 몰라서 그렇게 서럽게 울었답니다. 맨 손으로 그 시절을 어떻게 살아남아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면서 막 우셨습니다. 밥 때가 되어서 친구 친척 집에 찾아가면 사람들이 먹던 밥을 손으로 가리우고 고개 돌려 외면했답니다.

​그 할머니 손녀가 신학교 나와서 전도사님, 이제는 평택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 사모...

​6.25 이후에도 빨치산의 악행은 계속되었고 결국 국군 1개 사단 병력이 투입되어서 '백아산(白牙山)'을 함락시키고서야 빨치산 시대가 끝났습니다.

​제가 그 교회에서 목회하는동안 할머니 한 분은 빨치산과 함께 산사람으로 3 년을 살다가 '백아산(白牙山)' 함락 직전에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산에 사는 동안 아들 셋을 질병으로 잃어버리셨답니다. 셋째 아들이 죽었을 때 남편이 죽은 아들을 파묻고 땅에 무릎 꿇고 엎드려 일어나지를 못하고 소리 죽여 울더랍니다.

​같은 마을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은 남편이 국군으로 있다가 젊은 나이에 전사해서 나라에서 돈이 나와 먹고살았습니다.

​저는 목회하는 내내 그분들 마음에 한을 어떻게 풀어볼 길이 없었습니다.

​그 인민공화국 빨치산 시절... 그들의 인민재판...!!! 그 시절 화순 백아산 밑에 여러 마을들...

​그 때가 왕이 다스리던 왕정(王政) 체제였던가요?

​아닙니다!

그러면 빨치산들이 민주정치(民主政治) 했나요?

이 질문에 대해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이 투철한 사람들은 “예! 물론 문제가 많기는 했었지만 그것은 민주정이었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빨치산 대장 혼자서 내린 결정이 아니라 마당에 둘러선 여러 사람들 의견을 물어서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지요.

칼 맑스의 후예들은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을 동반한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도 왕정은 아니며 그것들이 ‘독재정치’ ‘공포정치’ '세뇌교육'으로 만들어진 선동정치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민주정치’와 교집합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자유 민주정치에 익숙한 우리들이 바라보기에 그런 것은 전혀 민주정치가 아니지요. ‘공포’와 ‘독재’ '세뇌교육' '선동정치'는 다만 ‘공포’와 ‘독재’요 기만일 뿐 절대로 민주정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공포'와 '독재'와 기만을 민주주의라고 끝가지 우기는 짓은 검은 것을 희다고 우기는 똥고집일 뿐입니다.



북한 김가왕조처럼, 남한의 주사파 전교조 민노총처럼, 문재인 조국 이재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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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이 백아산(白牙山)!

겨울에 눈이 쌓일 때 보면 정말 흰 어금니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어금니 아' 牙 자를 쓰면 사람 물어죽이는 산이란 뜻이 되기에 피눈물에 젖은 백아산(白牙山)은 훗날 '어금니 아' 牙자를 '거위 아' 鹅 자로 바꾸어 오늘날 흰 거위 산, '백아산(白鹅山)’이 되었습니다. 봄철 철쭉으로 유명한 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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