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왜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하지 않는가
서도영 | 기사입력 2025/09/11
현재 열리고 있는 제80차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과 이른바 ‘2국가 해법’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질 전망이다.
이미 2024년 5월, 유엔 총회 193개 회원국 중 143개국이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를 인정하는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현재까지 총 147개국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식 인정한 상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대다수 국가 그리고 최근에는 아일랜드, 노르웨이, 스페인에 이어 프랑스, 캐나다, 호주, 몰타, 포르투갈, 벨기에까지 동참하며 서유럽과 서방 진영 내부에서도 인식 전환이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포괄적 평화협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라는 조건부 태도를 유지하던 주요 국가들조차 가자지구에서 이어지는 집단 학살과 전쟁 범죄 앞에서 더 이상 기존의 이중적 논리를 고수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사실상 미국과 이스라엘의 편에 서 있다.
한국 정부는 ‘2국가 해법을 지지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반복하면서도 정작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하는 국제적 흐름에는 동참하지 않는다.
이는 국제법적 정의와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이자 스스로를 제약하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에서 팔레스타인 정회원 가입이 차단된 상황에서, 다수의 국제사회가 총회라는 민주적 기구를 통해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를 인정한 것은 단지 외교적 제스처가 아니다.
이는 국제질서의 다극화, 그리고 제국주의적 억제와 봉쇄를 돌파하려는 전 세계 민중의 의지 표현이다.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지지한 세력은 소련, 중국, 인도, 유고슬라비아와 같은 사회주의 비동맹 국가들이었고, 1988년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의 독립 선언 이후 다수의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이 이를 이어받았다.
20세기 말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 정책) 체제를 종식한 뒤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 것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식민 지배와 인종 분리 정책의 상흔을 경험한 국가들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우리의 역사적 진실”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최근 들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특히 콜롬비아와 멕시코)이 이스라엘과의 경제, 외교 관계를 축소하거나 단절하면서 팔레스타인에 대사관을 개설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는 지역 외교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적 질서에 대한 전 세계적 저항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왜 침묵을 유지하는가.
그 이유는 단지 이스라엘과의 양자 관계 때문이 아니다.
미국과의 동맹,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의 전략적 요구에 종속된 안보, 외교 구조가 한국의 결정을 제약한다. 서아시아 문제에서 한국은 자주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미국의 입장을 사실상 추종한다.
그 결과 국제사회의 다수와 어긋나는 길을 선택하며 스스로 도덕적 신뢰를 훼손한다.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결국 한국 외교의 자기모순을 드러낸다.
한편으로는 인권과 평화를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오랜 민족해방 투쟁을 벌이고 있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유엔총회에서 세계의 눈은 한국에도 향하고 있다.
과연 한국은 여전히 미국과 이스라엘의 외교적 이해를 우선시하며 다수 국제사회의 흐름을 거부할 것인가.
아니면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을 공식화하고 가자지대 봉쇄와 전쟁 범죄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낼 것인가.
선택의 기로는 분명하다.
K-Pop이나 케데헌을 뛰어넘어 한류의 양심을 보여줄 차례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그저 그런 외교 현안이 아니다.
제국주의적 억제와 봉쇄 그리고 폭력적 지배에 맞선 민족 해방 투쟁의 역사적 연장선에 있는 문제이며 과거 식민지를 경험했던 한국이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147개국이 이미 내린 결정을 한국이 끝내 외면한다면 그것은 국제적 고립일 뿐 아니라 도덕적 파산이 될 것이다.
이 순간, 우리가 직면한 질문은 단순하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국가적 권리를 부정하는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역사적 정의와 연대의 편에 설 것인가.
한국 정부가 스스로 답하지 않는다면 결국 역사가 대신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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