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으로 불거진 '사이비역사(일명 유사역사, 재야사학)' 논란을 보다 생산적인 논의로 전환하기 위해 경향신문에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기 사이비역사 신봉자들의 터무니없는 비방과 일부 정치권 인사들의 동조로 중단된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의 "Early Korea Project" 와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사업"이 갖고 있었던 국제적 의미를 되짚어 보고, 이재명 정부와 정치권에 한국사 연구의 국제화와 관련해 전향적 태도와 전폭적 지원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대수롭지 않은 글이지만, 지난 10여년간 두 사업을 추진하다 엄청난 고초를 겪으신 분들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을 담아 성탄절 이브에 혼신을 다해 썼으니 찬찬히 살펴주시고 널리 공유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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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역사’ 논란, 한국사 연구의 국제화 재추진 계기로 삼아야
수정 2025.12.25
여호규 한국외국어대 사학과 교수
이재명 대통령의 ‘환빠’와 <환단고기> 발언은 ‘사이비역사’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학계의 성명 발표와 언론보도를 통해 온 국민이 <환단고기>는 위서이고, 사이비역사는 부정선거론만큼이나 황당무계한 주장임을 알게 되었다. 사이비역사가 역대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국수주의적 이념을 제공했고, 박근혜 정부 때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관여한 사실도 알려졌다. 많은 국민이 사이비역사의 비합리적·극우적 생각이 퍼져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지 않을까 염려하게 되었다.
사이비역사의 위험성이 명확해진 지금, 한국사 연구의 무대를 세계로 확장해 소모적 논란을 생산적 논의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사이비역사는 역사학계를 일제 식민사관의 추종자라고 비방해왔다. 이들의 주장은 언뜻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외형상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것처럼 포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터무니없는 모함에 불과하다. 이들의 무분별한 ‘식민사관 몰이’는 한국사 연구가 국제적으로 도약할 소중한 기회를 망가뜨리기도 했다.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의 ‘Early Korea Project’(EKP)와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사업’이 대표적이다.
EKP는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가 국내 연구기관들의 지원을 받아 2007년부터 추진한 국제 학술 프로젝트였다. EKP는 서구학계에 올바른 한국사 인식을 확산하고, 한국 고대사 연구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강연(37회), 워크숍(9회), 출판(8권) 등 다양한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이를 통해 국내 학계의 연구 성과를 서구 학계와 공유하고, 국제적 학술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만약 EKP가 지금까지 추진되었다면 ‘K-History’ 연구와 확산의 핵심 거점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이비역사 신봉자들이 EKP가 ‘한사군에 관한 학술서’를 간행했다는 이유만으로 식민사관을 서구 학계에 전파했다고 비방하며 정치권과 결탁해 사업을 중단시켰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서구 학계는 여전히 문명개화론의 관점에서 한사군의 설치·소멸을 중심으로 한국 고대사의 전개 과정을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서구 학계의 편향된 시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한국 고대사의 관점에서 한사군의 성격을 새롭게 연구한 국내 학계의 성과를 확산할 필요가 있었다. 그 일환으로 위의 학술서를 출간한 것인데, 사이비역사 신봉자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한국사 연구의 국제화를 가로막은 것이다.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사업은 동북아역사재단이 2008년부터 8년간 40억원 예산을 투입한 초대형 국책사업이었다. 당시 연구진은 각종 지도를 수집해 디지털지도를 제작하고, 한·중·일 3국의 거의 모든 역사지명을 표기해 동북아 전역을 포괄하는 방대한 역사지도 편찬을 추진했다. 이 지도가 정상적으로 간행되었다면, 우리 학계의 연구기반을 획기적으로 확충하고, 한·중·일 3국의 역사 연구를 선도하는 발판을 마련했을 것이다.
그런데 출간 직전에 사이비역사 신봉자들이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에 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식민사관을 추종했다고 비방하며 정치권과 결탁해 사업을 중단시켰다. 313년까지 낙랑군이 평양에 위치한 것은 조선총독부가 경복궁에 있었던 것처럼 명백한 역사적 사실일 뿐인데 말이다. 사이비역사 신봉자들이 사실과 해석의 구분이라는 역사 연구의 기본도 모른 채, 역사적 사실을 자신들과 달리 본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학계가 동북아 역사 연구를 선도할 기회를 가로막은 것이다.
사이비역사 논란을 생산적 논의로 전환하려면, 사이비역사 신봉자들에게 휘둘렸던 박근혜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고, 한국사 연구의 국제화를 적극적으로 재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재명 정부와 정치권의 전향적인 태도와 전폭적 지원이 절실하다. 이재명 정부 들어 대폭 늘린 연구·개발(R&D) 예산의 극히 일부만 한국사 연구의 국제화에 배정해도,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각지에 ‘K-History’ 연구 거점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역사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은 한층 넓고 깊어지고, 명실상부한 선진한국의 실현도 더 가까워질 것이다.

여호규 한국외국어대 사학과 교수
이재명 대통령의 ‘환빠’와 <환단고기> 발언은 ‘사이비역사’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학계의 성명 발표와 언론보도를 통해 온 국민이 <환단고기>는 위서이고, 사이비역사는 부정선거론만큼이나 황당무계한 주장임을 알게 되었다. 사이비역사가 역대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국수주의적 이념을 제공했고, 박근혜 정부 때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관여한 사실도 알려졌다. 많은 국민이 사이비역사의 비합리적·극우적 생각이 퍼져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지 않을까 염려하게 되었다.
사이비역사의 위험성이 명확해진 지금, 한국사 연구의 무대를 세계로 확장해 소모적 논란을 생산적 논의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사이비역사는 역사학계를 일제 식민사관의 추종자라고 비방해왔다. 이들의 주장은 언뜻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외형상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것처럼 포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터무니없는 모함에 불과하다. 이들의 무분별한 ‘식민사관 몰이’는 한국사 연구가 국제적으로 도약할 소중한 기회를 망가뜨리기도 했다.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의 ‘Early Korea Project’(EKP)와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사업’이 대표적이다.
EKP는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가 국내 연구기관들의 지원을 받아 2007년부터 추진한 국제 학술 프로젝트였다. EKP는 서구학계에 올바른 한국사 인식을 확산하고, 한국 고대사 연구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강연(37회), 워크숍(9회), 출판(8권) 등 다양한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이를 통해 국내 학계의 연구 성과를 서구 학계와 공유하고, 국제적 학술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만약 EKP가 지금까지 추진되었다면 ‘K-History’ 연구와 확산의 핵심 거점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이비역사 신봉자들이 EKP가 ‘한사군에 관한 학술서’를 간행했다는 이유만으로 식민사관을 서구 학계에 전파했다고 비방하며 정치권과 결탁해 사업을 중단시켰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서구 학계는 여전히 문명개화론의 관점에서 한사군의 설치·소멸을 중심으로 한국 고대사의 전개 과정을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서구 학계의 편향된 시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한국 고대사의 관점에서 한사군의 성격을 새롭게 연구한 국내 학계의 성과를 확산할 필요가 있었다. 그 일환으로 위의 학술서를 출간한 것인데, 사이비역사 신봉자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한국사 연구의 국제화를 가로막은 것이다.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사업은 동북아역사재단이 2008년부터 8년간 40억원 예산을 투입한 초대형 국책사업이었다. 당시 연구진은 각종 지도를 수집해 디지털지도를 제작하고, 한·중·일 3국의 거의 모든 역사지명을 표기해 동북아 전역을 포괄하는 방대한 역사지도 편찬을 추진했다. 이 지도가 정상적으로 간행되었다면, 우리 학계의 연구기반을 획기적으로 확충하고, 한·중·일 3국의 역사 연구를 선도하는 발판을 마련했을 것이다.
그런데 출간 직전에 사이비역사 신봉자들이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에 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식민사관을 추종했다고 비방하며 정치권과 결탁해 사업을 중단시켰다. 313년까지 낙랑군이 평양에 위치한 것은 조선총독부가 경복궁에 있었던 것처럼 명백한 역사적 사실일 뿐인데 말이다. 사이비역사 신봉자들이 사실과 해석의 구분이라는 역사 연구의 기본도 모른 채, 역사적 사실을 자신들과 달리 본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학계가 동북아 역사 연구를 선도할 기회를 가로막은 것이다.
사이비역사 논란을 생산적 논의로 전환하려면, 사이비역사 신봉자들에게 휘둘렸던 박근혜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고, 한국사 연구의 국제화를 적극적으로 재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재명 정부와 정치권의 전향적인 태도와 전폭적 지원이 절실하다. 이재명 정부 들어 대폭 늘린 연구·개발(R&D) 예산의 극히 일부만 한국사 연구의 국제화에 배정해도,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각지에 ‘K-History’ 연구 거점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역사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은 한층 넓고 깊어지고, 명실상부한 선진한국의 실현도 더 가까워질 것이다.

여호규 한국외국어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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