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가토 요코 (지은이),윤현명,이승혁 (옮긴이)서해문집2018-01-05
































Sales Point : 1,749

448쪽
책소개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벌인 대테러 전쟁, 1937년 중국을 상대로 일본이 일으킨 중일전쟁. 두 전쟁의 공통점은 전쟁을 벌인 국가가 전쟁 상대국을 '처벌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 특히 전쟁의 역사를 살펴볼 때는 시대와 배경, 그리고 세계사의 여러 사건과 관련지어 함께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도쿄대학 가토 요코 교수는 이런 의도에 따라, 일본의 역사를 세계사와 관련지어 설명하는 방식으로 중고생 대상 특강을 진행했다. 그는 강의에서 근대 일본의 침략전쟁이라 불리는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시기를 중심으로, 거의 10년마다 벌어진 큰 전쟁들의 근본 특징, 전쟁이 지역과 국가·사회에 미친 영향과 변화 등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리했다.
특히 침략이냐 아니냐를 넘어 당시의 국제관계, 일본의 국내사정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다. 또한 일본의 특수한 사정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여러 사건과 관련지어 설명하기 때문에 더욱 폭넓은 이해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는 그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결과물이다. 한편 2010년 제9회 고바야시 히데오상(저명한 비평가인 고바야시 히데오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일본 내 상당한 권위를 가진 학술상)을 수상함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은 책이기도 하다.
목차
머리말
서장 일본 근현대사를 생각하다
전쟁으로 보는 근대
9·11테러의 의미/역사는 외우면 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남북전쟁의 와중에서/무엇이 일본국헌법을 만들었는가
전쟁과 사회계약
국민의 힘을 총동원하기 위해/전쟁 상대국의 헌법을 바꾸다/일본의 헌법 원리는 무엇인가
왜 20년밖에 평화가 지속되지 못했을까
이상한 연구자 카/세계대전 직전에 쓴 책/잘못한 쪽은 국제연맹이다!/특수한 것에서 일반적인 것을 보다/과거의 역사가 현재에 영향을 미친 사례
역사의 오용
왜 가장 우수하고 똑똑한 인재가 오판하는가/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이유/전쟁을 막지 못한 이유
1 청일전쟁_ ‘침략?피침략’을 넘어 봐야 할 것
열강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중국과 일본의 경쟁/무역을 지탱하는 제도/화이질서의 안전보장
청일전쟁까지
중국의 변화/야마가타 아리토모의 경계심/후쿠자와 유키치의 등장/슈타인의 등장
민권론자는 세계를 어떻게 보았을까
일단 나라의 독립이 중요하다/그렇다면 국회의 의미는 무엇인가/“무기력한 노예근성!”/번벌정치에 대항하기 위해/전비를 조달한 것은 우리다
청일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외무대신의 강경한 태도/중국의 반론은 무엇일까/청일전쟁 시기의 국제 환경/보통선거운동이 일어난 이유
2 러일전쟁_ 조선이냐 만주냐, 그것이 문제로다
청일전쟁 이후
전쟁의 ‘효용’/러일전쟁의 새로운 점/2 ‘0억 엔의 자재와2 0만 명의 영령’/슈타인의 예언이 현실로
영일동맹과 청의 변화
러시아의 만주 정책과 중국의 변화/개전에 대한 신중론/러시아의 사료에서무엇을 알 수 있는가
전쟁 발발의 이유
러일협상의 쟁점/일본의 입장
러일전쟁이 초래한 것
미국과 일본의 공조/중국의 협조/전쟁은 무엇을 변화시켰나
3 제1차 세계대전_ 일본이 느꼈던 주관적인 좌절감
식민지가 허용되는 시대, 허용되지 않는 시대
총력전에 직면한 세계/일본이 일관되게 추구했던 것/미국과 일본의 전쟁 공포/서태평양의 군도/산둥반도의 전략적 의미
왜 국가개조론이 등장했을까
변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미래의 전쟁/위기감의 세 가지 요인
개전 과정과 미국·영국과의 조율
가토 다카아키와 에드워드 그레이/영국이 우려했던 것/미국의 각서
파리강화회의에서 비판받은 일본
마쓰오카 요스케의 편지/분개한 고노에 후미마로/3·1운동
참가자의 면면과 일본이 입은 상처
유례없는 외교전/젊은 학자 케인스/로이드 조지/거듭 비판받은 일본
4 만주사변과 중일전쟁_ 일본의 자멸과 중국의 역할
당시 사람들의 의식
모략으로 시작된 작전과 우발적 사건/만주사변에 대한 도쿄대학 학생의 생각/전쟁이 아니라 ‘혁명’
만주사변은 왜 일어났을까
만몽은 우리 나라의 생명선/조약의 회색 지대/육군과 외무성 그리고 상商사社/만몽에 대한 투자와 국가의 역할
사건을 계획한 주체
이시와라 간지의 최종전쟁론/엇갈린 의도/독단전행을 추인하는 각의/장제스의 선택/리턴 조사단과 그 보고서의 내용/요시노 사쿠조의 한탄
국제연맹 탈퇴에 이르기까지
제국의회에서의 강경론과 그 속내/마쓰오카 요스케 전권의 한탄/국제연맹, 국가 모두의 적!
전쟁의 시대로
육군의 슬로건에 매료된 국민/독일의 패전 이유에서/암담한 각오/왕자오밍의 선택
5 태평양전쟁_ 전사한 장소를 알려줄 수 없었던 나라
태평양전쟁에 대한 여러 가지 시각
‘역사는 만들어졌다’는 생각/천황의 우려/그릇된 통계 수치
전쟁이 확대된 이유
치열한 상하이전투/남진의 주관적 이유/중국의 요구/처칠의 불만/7월 2일 어전회의 결정의 이면
왜 서전에 승부수를 걸었을까
임시군사비특별회계/기습을 통한 선제공격/왜 진주만은 무방비 상태였나/속전속결 외의 길은 없었는가/일본은 전쟁할 자격이 없는 국가
전쟁의 양상
필사적인 싸움/그런데도 일본인은 반드시 이길 것을 믿었는가/전사한 장소를 알려줄 수 없었던 나라/만주의 기억/포로의 대우/그때의 전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후기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중국과 일본이 한반도의 종주권을 놓고 다투었던 청일전쟁 시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혐한 혐중서를 비판하는 작자의 후기가 본문의 내용만큼이나 인상적이고, 통찰력을 갖춘 사람이 되자는 취지의 마지막 문장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梨谷書生
P. 98 1880년대에 이홍장은 중국군의 근대적 개혁을 추진합니다. 또1881년에는 신장평정에 힘썼습니다. 중국의 서부 신장에지역의이리伊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종교적으로는 이슬람교권이지만 청의 지배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야쿠브 베그가 새로운 국가를 세웠습니다. 그러자 청 정부는 신속하게 군대를 보내 이를 멸망시켰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질서 회복을 도모하는한편, 러시아와는 영토 일부를 할양하는 조건으로 ‘이리조약‘을 맺었습니다. 이홍장의 무력 대응이 효과를 거둔 셈입니다. 접기
P. 100 임오군란에.....적극 관여했습니다. 그 결과 조선에서는 친청파가 힘을 얻게 됐습니다. 애당초 대원군을 연행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청이 강하다는 증거였습니다.
1884년 12월 김옥균 등의 개혁파는 청의 후원을 받는 민씨 정권을타도하기 위해 일본공사관의 도움을 받아 갑신정변을 일으켰습니다.
일본공사관 측은 청이 프랑스와의 전쟁, 즉 청프전쟁에 정신을 빼앗긴틈을 타 거사를 추진한 것입니다. 그러나 갑신정변은 청에 의해 진압됐고, 조선 정부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은 결정적으로 약해졌습니다. 접기
P. 101 게다가 청은 안남과의 관계에서도 대응책을 바꾸었습니다. 조선의갑신정변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청프전쟁이 바로 그것입니다. 프랑스는 영국이 중국의 창장강長江(양쯔강 유역, 화중 지방을 세력권으로 하는 것에 대응해, 그 남쪽으로 진출하고자 했습니다. 중국의 화난지방과 안남으로 말이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1884년 프랑스가 베트남의 항구를 독점적으로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청은 프랑스와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이것이 청프전쟁입니다. 청은 초기의 함대 결전에서는 대패하지만, 그 후 육상 전투에서는 상당히 선전했습니다. 그결과 강화조약은 비교적 청에 유리하게 맺어졌습니다. 여기서 열강은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청은 무력을 써서라도 화이질서 (조공체제) 아래에 있는 안남을 지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접기
P. 101 러시아·프랑스 · 일본이 각각 청의 화이질서에 도전하는 분쟁을 일으켰는데, 이들을 상대로 청이 제대로 대응한 셈입니다. 이것은 청에그만한 힘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1880년대 중반시점에서는 일본식 발전, 중국식 발전 둘 다 가능성이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중국식 발전은 중국 스스로 화이질서를 근대국가에 적응할 수있도록 조금씩 바꾸어가며 힘을 키우는 방식입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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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가토 요코 (加藤陽子)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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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일본 사이타마현 오미야시(현 사이타마시)에서 태어났다. 도쿄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1989년부터 야마나시대학에서 교편을 잡았고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 방문연구원을 거쳐 1994년부터 도쿄대학 문학부에 부임하여 현재에 이른다. 현재 도쿄대학 문학부 교수이다.
주요 저서로는 《모색하는 1930년대—미·일 관계와 육군 중견층 模索する1930年代—日米関係と陸軍中堅層》(1993),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満州事変から日中戦争へ》(2007),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それでも、日本人は「戦争」を選んだ》(2009), 《천황과 군대의 근대사 天皇と軍隊の近代史》(2019)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징병제와 근대 일본>,<일본은 왜 점점 더 큰 전쟁으로 나아갔을까>,<왜 전쟁까지> … 총 33종 (모두보기)
윤현명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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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히토쓰바시대학 사회학 연구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전공은 일본 근현대사의 정치사로, 현재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서로 『일본, 군비확장의 역사』(2014), 『폭격의 역사』(2015),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2018), 『일본은 왜 점점 더 큰 전쟁으로 나아갔을까』(2022) 등이 있다.
최근작 : <동북아 인물전>,<남자는 여행> … 총 18종 (모두보기)
이승혁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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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대학원 일본학과에서 일본 사회문화를 전공했으며, 히토쓰바시대학 사회학 연구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역서로 <폭격의 역사>(공역),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공역)가 있다.
출판사 소개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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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고고하게 걷길>,<맛집에서 만난 경제 수업>,<조선의 갈림길>등 총 545종
대표분야 : 역사 8위 (브랜드 지수 450,787점), 청소년 인문/사회 12위 (브랜드 지수 87,200점), 고전 17위 (브랜드 지수 252,370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살펴본 일본의 선택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제국 일본은 왜 전쟁의 길로 나아갔나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벌인 대테러 전쟁, 1937년 중국을 상대로 일본이 일으킨 중일전쟁. 두 전쟁의 공통점은 전쟁을 벌인 국가가 전쟁 상대국을 ‘처벌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 특히 전쟁의 역사를 살펴볼 때는 시대와 배경, 그리고 세계사의 여러 사건과 관련지어 함께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도쿄대학 가토 요코 교수는 이런 의도에 따라, 일본의 역사를 세계사와 관련지어 설명하는 방식으로 중고생 대상 특강을 진행했다. 그는 강의에서 근대 일본의 침략전쟁이라 불리는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시기를 중심으로, 거의 10년마다 벌어진 큰 전쟁들의 근본 특징, 전쟁이 지역과 국가·사회에 미친 영향과 변화 등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리했다. 특히 침략이냐 아니냐를 넘어 당시의 국제관계, 일본의 국내사정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다. 또한 일본의 특수한 사정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여러 사건과 관련지어 설명하기 때문에 더욱 폭넓은 이해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는 그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결과물이다. 한편 2010년 제9회 고바야시 히데오상(저명한 비평가인 고바야시 히데오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일본 내 상당한 권위를 가진 학술상)을 수상함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은 책이기도 하다.
잘 정리된 참고서와 정반대의 책이다. 꽤 과격한 책이기도 하다. 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그 과격함에 끌렸다. _호리에 도시유키(소설가, 고바야시 히데오상 심사위원)
강의가 (…) 용의주도한 편집 끝에, 마치 이야기하는 것처럼 집필되었고, 역동적이며 비평적인 책으로 완성되었다. _세키가와 나쓰오(소설가, 논픽션 작가, 고바야시 히데오상 심사위원)
이 책은 역사학의 묘미를 절묘하게 가르쳐준다. (…) 선입관에 좌우되지 않고, 독립된 자신의 판단을 공적으로 주장하는 용기가 그것이다. 그런 사람이 그에 어울리는 상을 받았다. 진심으로 기쁘다. _가토 노리히로(평론가, 와세다대학 명예교수, 고단샤 논픽션상·고바야시 히데오상 심사위원)
수상작은 출판 당시부터 화제가 되었고, 나도 이미 한 번 읽은 바 있다. 이번에 다시 정독하면서 내용이 훌륭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_요로 다케시(해부학자, 도쿄대학 명예교수, 고바야시 히데오상 심사위원)
청일전쟁, ‘침략·피침략’을 넘어 바라보다
청일전쟁은 근대 시기 일본이 강대국과 벌인 첫 전쟁이다. 전쟁 이전 동아시아는 중국 중심의 화이질서에 의해 유지되었다. 하지만 화이질서가 붕괴하고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중국과 일본은 조선을 두고 경쟁하게 되었고, 그 결과가 청일전쟁으로 나타난 것이다. 또한 청일전쟁은 러시아의 대리자 청, 영국의 대리자 일본이라는 구도로 이뤄진 제국주의 전쟁의 대리전이기도 하다. 청일전쟁으로 일본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청일전쟁 후 러시아는 독일, 프랑스와 함께 중국으로부터 빼앗은 영토 중 랴오둥반도를 다시 중국에 반환하라고 일본에 압력을 넣었다(삼국간섭). 이에 일본 지식인과 정치권에선 “전쟁에서 얻은 것을 외교의 실패로 빼앗겼다. 더 이상 정부가 국정을 마음대로 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실망감이 싹트게 됐고, 이는 참정권 확대를 요구하는 ‘보통선거운동’으로 이어졌다. 청일전쟁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다.
러일전쟁, 조선이냐 만주냐 그것이 문제로다
삼국간섭 이후 러시아는 만주와 조선으로 진출하며 세력을 뻗쳤다. 이에 일본은 영국과 동맹을 맺으며 러시아를 견제하는 한편 러시아와의 전쟁을 준비했다. 물론 전쟁에 대한 신중론도 있었지만 결국 군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러일전쟁을 벌인다.
러일전쟁 후 일본은 열강과의 불평등조약을 수정하며 대등한 지위를 인정받는다. 즉 일본은 청일전쟁의 결과 화이절서에서 벗어났고, 러일전쟁의 결과 서구의 식민지 질서로부터 벗어난 셈이다. 더 나아가 한국을 합병하고 남만주의 이권을 차지함으로써 대륙 세력의 일부가 된다. 러일전쟁은 상당한 규모의 전쟁이어서 일본과 러시아가 각각 2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러일전쟁 후 획득한 만주의 영토를 가리켜 ‘20억 엔의 자재와 20만 명의 영령’의 희생을 치루고 얻은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았다. 이러한 인식은 훗날 만주사변으로까지 이어진다.
제1차 세계대전, 좌절한 일본
제1차 세계대전은 주로 유럽에서 벌어졌다. 일본은 영국의 의뢰를 받아들이는 형태로 산둥반도의 독일 영역을 공격함으로써 전쟁에 참여했다.
전쟁 이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요구가 높아지고 식민지를 보유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다. 물론 그렇다고 열강의 영토 점령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식민지’가 아닌 ‘위임통치령’으로 영토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일본도 남양군도와 중국 산둥반도의 이권을 차지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처리 과정에서 일본은 산둥반도 이권, 조선 통치 등에 대해 중국·미국·영국으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이에 서구 열강으로부터 깊은 고립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후 일본은 서구 열강과의 협조 대신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더 넓은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일본의 자멸과 중국의 역할
만주사변은 1931년, 중일전쟁은 1937년에 일어났다. 식민지 지배를 조금씩 느슨하게 하는 국제적 분위기와 달리 일본은 대륙 진출, 즉 중국에 대한 침략을 꾀했다. 특히 만주와 몽골에 대한 이권을 확대해 가면서 그 책임을 중국에 전가했다. 이후 남만주에 주둔하는 일본 관동군은 모략을 일으켜 만주를 힘으로 점령했다. 일본의 돌출 행동은 서구 열강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이에 일본은 강경한 태도를 취했고 급기야 국제연맹을 탈퇴하기에 이른다.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 중국과의 긴장감 속에서 일본의 분위기는 점점 어두워졌다. 그러다가 일본은 1937년에 루거우차오에서 벌어진 중일 양국 간의 군사 충돌(루거우차오사건)을 계기로 중국과의 전쟁(중일전쟁)을 시작했다. 그런데 중국은 홀로 일본과 맞서지 않았다. 바로 세계 2대 강국인 미국과 소련의 협조를 얻은 것이다.
태평양전쟁, 일본은 전쟁을 할 자격이 없는 국가
중일전쟁 후 미국은 아시아에서 중국과 협조를 유지하며 일본을 견제했다. 일본은 미국이 중국 문제에서 손을 떼기 원했지만 미국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고, 결국 일본 정부는 힘으로 미국 세력을 몰아내기로 결정했다. 여기에는 중일전쟁의 전비를 조달하기 위해 설치된 임시군사비특별회계가 큰 역할을 했다. 중국과의 전비를 이유로 조성된 임시군사비를 전용해 육해군이 급격히 군비를 확장했고, 이는 아시아·태평양 방면에서 일본의 군사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일본 정부 수뇌부가 단기전이라면 승산이 있다는 오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었다. 전투는 치열했고 전쟁의 양상은 비참했다. 많은 사람이 전사했지만 일본 정부에서도 이들이 정확히 언제, 어디서 전사했는지 몰랐기 때문에 유족들은 시신도 없이 전사 통보를 받았다. 또한 만주에 소련군이 진주함으로써 그곳에 거주하던 수십만 명이 소련군에 의해 끌려가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더구나 식량이 부족한 전선에서는 많은 군인이 기아로 죽었다. 자기들도 식량이 부족한 일본군이 포로의 대우를 좋게 해줄 리 없었고, 그 결과 중국인, 한국인, 그 외 연합군 전쟁 포로들은 식량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채 강제노동 속에서 죽음을 맞았다.
전후 미국은 승전국이 되었고 중국은 강대국으로 회복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 내에서는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 아니라 전쟁 책임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다. 그 책임을 묻고, 그때의 역사를 생각해 보는 일이 필요하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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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를 읽는 데 흥미로운 내용이 보인다. 대학원에서 보수적인 교수의 지도를 받았지만, 교수의 성향과는 정반대로 진보적인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는 부분. 학계라는 게 학맥과 인맥 등으로 촘촘히 얽혀 있곤 해서, 다른 소리를, 그것도 자신의 은사의 주장에 반대해 그렇게 활동하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아마 이건 일본도 마찬가지일 텐데, 용기 있는 결단이다.... 더보기
노란가방 2023-05-15 공감 (12) 댓글 (0)
마니아
=
평점
분포
9.0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 왜 일본이 그 때 전쟁이란 선택지를 계속 해왔는지 잘 설명한 책. 당시 국제관계나 일본 내부 사정등의 여러 부분을 정말로 쉽게 잘 설명해주고 역사의 연결성 같은걸 잘 집어주는 좋은 책이다. 아쉬운 것은 역시 너무 교양서...
로리! 2018-04-15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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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초계기로 인해 발생한 대한민국과의 경직된 관계를 만든 일본의 내심을 알게 해주는 일본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역사서여서 현일본정부의 대한민국과의 외교 의식을 돌아보고 되새기게 하는 좋은 지침서였습니다.
적극 추천합니다!!!
종로뮤직 2019-01-27 공감 (3) 댓글 (0)
Thanks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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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shuita 2022-03-16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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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입장에서만 서술하고, 침략당한 조선의 입장은 별로 고려하지 않은 저자의 태도가 유감이다.
바우 2021-01-0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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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자 입장에서 본 침략의 역사
지난 100여년전 우리의 역사는 굴종과 아픔, 아쉬움이 가득찬 역사였다. 절대적 피해자로서 우리는 그 역사를 기억하며 절대적 가해자로서 당시 일본을 규정한다. 더군다나 일본은 당시 식민지로서 전쟁에 강제 동원되었던 우리나 중국 등의 아시아 주변국들에 대한 가해자로서의 인식은 지나치게 부족하다. 반면 스스로가 전쟁을 일으킨 자임에도 피해자로서의 인식은 어이없게 과대해 더욱 우리와 아시아 각국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런 그들이 메이지 유신서부터 2차대전의 패망까지 어떠한 길을 선택했는지를 비추어주는게 이번에 본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이다. 일본인이 자신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절대적 가해자로밖엔 그들을 인식할 수 없는 한국과 한국인인 나에게 재밌고 신선한 책이었다. 그리고 물론 신선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선택이 그럴수 밖에 없었다는 논리와 피동적 입장이라는 이야기엔 절대 공감하거나 이해해주긴 어렵다.
이건 남이 나를 칠것 같기에 먼저 공격했다라거나 내가 먼저 저놈을 꼬봉으로 삼지 않으면 다른 놈이 꼬봉으로 삼을게 뻔하기에 내가 먼저 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인정해주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책은 청일전쟁시기부터 시작한다. 1876년 우리는 강화도에서 일본에 의해 역사상 최초로 불평등조약을 맺고 개항했기에 당시부터 그들이 무척 강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보단 모든면에서 개화에서 월등했지만 일본은 여러 열강과 맺은 불평등조약에 허덕이고 있었고 아직도 중국을 두려워하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능력에 자신이 없는 국가였다.
또한 메이지 유신은 이루어졌으나 사쓰마 번과 조슈번간에 내전에 가까운 다툼이 있었고, 주요 인사들도 이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암살되는등 사회적으로도 다소 혼란했다. 서구열강에게도 아직은 인정받지 못해 무역아니 불평등조약을 통한 착취의 대상이거나 중국과 러시아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 이를 지정학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부류일 뿐이었다.
당시 일본의 지배층은 오스트리아 슈타인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는데 슈타인은 이익선과 주권선이란 개념을 주창했다. 주권선은 한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범위를 말하는 것이며 이익선은 보다 폭넓은 것으로 나라의 존망과 관련한 외국의 상태를 의미했다. 당시 일본에게 이익선은 조선이었다. 일본의 세력들은 당시 제정 러시아가 극동으로 진출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였는데 러시아가 시베리아 철도를 완성하면 만주와 한반도가 사실상 러시아의 세력권으로 들어오게 되고 러시아가 장악한 한반도의 원산항을 해군기지로 삼으면 다음은 자신들의 순서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이런 일본에게 선택은 두가지 였다. 조선을 누구도 차지 할 수 없는 방패막이로서 중립국화하거나 자신들이 차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러시아는 한반도에 세력을 미칠 상황은 아니었고, 이에 일본은 청과 대치한다. 청은 과거 화이질서에 속한 조선이나 베트남등에 군사적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시대가 급변하며 정책이 군사적으로 바뀐다. 청은 조선에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군대를 보내 이를 제압했고, 그 수장인 대원군마저 데려가는 강수를 보인다. 이로 인해 조선내 일본 세력이 급격히 수축하자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일본은 무리수를 둔다. 조선조정은 어리석게도 동학을 진압할 힘이 없자 청에 파병을 요청했고, 일본은 조선에 군을 보낼 기회를 기다렸다는 듯, 바로 대규모 병력을 파병한다. 뒤늦게 조선조정이 동학군과 화약을 맺었음에도 양국은 충돌했고, 결과는 일본의 승리였다.
일본은 이 승리로 청으로부터 막대한 배상금과 여러개항장, 타이완, 펑후제도, 요동반도를 얻지만 일본의 영향력이 중국에 지나치게 확대되는걸 염려한 영국과, 러시아, 프랑스의 간섭으로 요동반도를 빼앗기고 만다.
이로 인해 일본내에서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은 커지게 되었으며 일본은 배상금을 군비확장에 이용하게 된다. 반면 조선과 청에서는 말한마디로 일본을 굴복시키는 러시아를 보며 일본의 견제를 위해 러시아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중국은 러시아의 만주지역 철도 건설에 적극협조하였고, 조선은 정권차원에서 친러성향이 두드러진다. 그 결과 일본은 조선에 을미사변을 일으켜 일국의 황비를 암살하는 초유의 테러를 일으키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일본은 열강의 하나인 러시아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 러시아의 요구는 일본에 좌절을 안겨주었고, 이는 선제공격으로 이어지는 개전결심을 불러온다. 일본은 러시아로 인해 당시 만주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하고 싶었다. 러시아 역시 한반도 보다는 만주에 관심이 많았다. 둘의 입장은 이렇게 이해되는듯 했지만 러시아는 대한해협을 비롯한 일본의 주요 해협에 대한 통과권과 한반도 이북에 대한 중립화를 요구했다. 이는 당시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러시아의 남하를 우려한 미국과 영국의 협조, 그리고 새삼 러시아의 위협을 느낀 중국의 중립화로 일본은 전쟁을 결심한다. 일본은 중국과는 다른 러시와의 전쟁으로 더 큰 피해를 보는 승리를 거둔다. 이로 인한 자신감도 상승하고 지위도 올라갔으나 러시아는 중국과는 달랐다. 재정적 손실이 컸던 일본은 청의 경우처럼 배상금과 전승국으로서의 요구를기대했으나 러시아의 짜르는 가볍게 이를 묵살한다. 러시아를 무력적으로 침공하거나 위협할 능력이 없는 일본으로선 요구를 더 지속할 수 없었다.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본 승전이었다.
그리고 10여년후 세계1차대전이 발발한다. 일본에겐 호기였다. 일본은 유럽의 열강에 전쟁물자를 팔아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변모했고, 독일에 선전포고해 남양군도와 산둥반도의 조차지와 철도권, 만주지역의 철도권을 얻는다. 물론 이조차 쉽진 않았다. 중국내로 지나치게 세력을 확대하는 것을우려한 영국이 일본의 참전에 많은 제한을 걸었고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이로 인해 일본내에선 미국과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생겨난다.
1차대전을 정리한 파리강화회의에선 더한 일이 일어난다. 파리강화회의에서 전승국임에도 미국과 영국인 일본이 중국내에서 권익을 누리는 것에 강한 비판을 한다. 또한 강화외의중 한국에서 일어난 삼일운동이 널리 알려지며 일본의 가혹한 식민통치가 세계적으로 비판받는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일본은 강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해양세력인 영국이 극동아시아에서 세력을 확장하려는 일본에 잠재적인 적국으로 느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만주사변이다. 일본은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내전이후 희안하게도 정치세력과 군사세력이 하나로 일치하는 것에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이로 인해 이후로 군사세력이 정치세력으로부터 상당히 독립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는데 이게 결국은 2차대전까지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일본 군부는 정치세력의 판단을 무시하고 독단적이고 무모하게 움직이기 일쑤였다. 놀랍게도 그 과정에서 하극상은 물론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이나 상관을 살해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만주사변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전체의 판단이라기보다는 만주 관동군 일부의 판단이었다. 물론 그들은 3년이상 치밀하게 준비했다. 그들은 스스로의 철도를 폭파한후 중국군의 소행으로 조작하여 전쟁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들만의 판단이고 나머지가 이를 따르지 않았다면 지속을 불가능했다. 군부의 상관들은 이들의 하극상을 묵인하거나 협조했고, 당대의 조사에 따르면 도쿄대학의 학생들 상당수가 전쟁에 동의했다. 당대 최고 지식인들의 수준이나 윤리성이 그정도였다. 이는 야당이나 좌파세력도 마찬가지였다. 본래 전쟁에 반대하던 그들은 여론의 절대다수가 전쟁에 동의하자 전쟁엔 찬성하되 전쟁 참여인력의 직장이나 자위를 보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 만주사변의 승리로 만주국이 성립하며 이는 주지하다시피 일본의 괴뢰국이었다.
고삐가 풀린 일본의 군부세력은 중일전쟁도 일으킨다. 재정러시아에서 소비에트로 변한 소련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고, 미국이 태평양으로 세력을 본격적으로 뻗기전에 동아시아의 패권을 완성한 속셈이었다. 거기에 중국을 얕보기도 했다. 만주사변에서 그들이 보여준 저항이 형편없었고, 중국은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에, 국민당 자체에서도 반군세력이 있어 자중지란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군부는 중국의 광대한 영토에도 중심경제지역을 빼았아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것 같다. 하지만 장제스는 주요 핵심지역을 모두 상실하면서도 지휘권을 잃지 않고 장기투쟁했으며 국공합작이 한계가 많았지만 이루어졌다. 또한 일본을 견제하는 독일과 미국, 영국의 지원이 이루어졌고, 홍콩그리고 여기가 봉쇄된 이후엔 버마나 베트남을 이용한 지원이 이루어지며 중일전쟁은 장기화한다.
이 상황에서 유럽에 2차대전이 터진다. 1차대전때처럼 일본의 정치세력들은 초기에 이를 관망한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독일이 빠르게 유럽을 장악하고 미국은 관망하며, 러시아는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어 사실상 저항세력이 영국만 남게되자. 일본의 생각을 달라진다. 이 기회에 영국 프랑스등의 식민지를 차지하고 자급자족적 총력전이 가능한 대동아공영권을 완성할 욕심을 갖게 된 것이다. 전력에 대한 판단 착오도 한몫을 한다. 당시 일본은 수십년간에 전쟁으로 항상 국력대비 군사력이 최대화 되어 있었다. 자신들이 그럼에도 전쟁에 수동적이고 고립적이던 미국의 군사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미국의 잠재력을 우습게 본 것이다.
거기에초기 기습으로 영국과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격멸하고 그들이 전열을 다듬는 사이 태평양 지역을 석권하고 방어전을 펼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미, 영과 태평양 지역의 지배권을 인정받는 협상이 가능핟고 생각했다. 애초에 완전히 이길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과 미국은 일본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직접 침공이 어렵고 당시 일본의 국력으론 어림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판단으로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공격한다.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미국은 일본의 공격에 무방비였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영국과 미국은 일본의 태평양 지역에서의 선제공격을 예상하고 있었다. 진주만은 깊지 않은 바다였는데 수심이 12미터였다. 당시 공격기가 함대를 공격하는 방법은 비행하여 폭탄을 선상에 떨어뜨리거나 원거리서 어뢰를 투하하는 방법이었다. 전자는 함대의 강한 포격과 기관총소사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으며 어뢰는 수심 500m정도에서 서서히 올라와 함대를 공격하는 형식에어서 수심이 얕고 함대가 모여있는 진주만은 이 같은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고 미국은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조종사들은 중일전쟁으로 단련된 이들이었다. 진주만의 환경을 고려해 3달간의 연습으로 12m 수심에 어뢰를 투하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진주만의 태평양함대는 격멸된다. 이는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뽑은 겪으로 정신을 차린 미국은 막강한 국력과 자급자족이 가능한 막대한 자원을 바탕으로 태평양과 대서양 양쪽에서의 전쟁을 수행해간다. 미국이 총력전에 돌입하자 그들의 생산력은 일본의 수십배에 달하기 시작했으며 전쟁막바지의 양국의 전력차는 무려 20배에 달하게 된다.
100년전 일본은 전쟁국가나 다름없었다. 현대 미국이 그러한 것처럼 일본은 지역의 패권을 얻기 위해 청일전쟁, 러일전쟁, 1차대전, 만주사변, 중일전쟁, 2차대전을 차례로 일으키거나 참전하며 거의 10년에 한번 전쟁을 수행했다. 책에 등장한 것처럼 그들은 피해를 얻거나 당하기 전에 선공하여 피해를 막는 식으로 식민지를 확장하거나 전쟁을 수행하였고, 그래서인지 가해자로서의 인식이 매우 미약했다.(물론 책의 저자는 아니다. 그는 을미사변과 삼일운동, 제암리사건, 관동대지진을 모두 잘 인정한다.) 문제는 이 같은 시각이 현대일본에도 남아있다는 점이다. 이웃과의 협력과 연대를 통한 지역의 평화보다는 지역을 장악하거나 넘어서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지역안정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어떤 분야든 탈아시아를 외치는 것이 그러한 생각의 대표적 표상이라 생각한다. 이런 이웃과 평화와 연대에 기초한 지역의 안정성을 추구해나가는 것. 매우 힘든 우리의 과제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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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슈 2019-04-14 공감(3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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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 교수의 내공이 느껴지는 명강의!!
대학교수는 모두 자신의 전공분야에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교수가 얼마나될까? 그래 보통 사람들 보다는 많은 식견을 가지고 있겠지. 그러나 나는 대학교수라는 간판을 가진자가 너무도 수준 이하의 모습을 드러낸 경우를 많이 보았다. K대학의 L교수의 경우, 한국사 국정화에 앞장서며, '국제화시대에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낭인의 심정을 이해해보라는 탐구활동을 만들었다.'라는 괴변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기까지했다. 이렇게 추악하다는 생각이 드는 모습의 교수들을 나는 많이 보아왔다. 때로는 이 사람이 어떻게 교수자리에 앉았는지, 의심이 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아왔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능력도 성품도 함량미달인자가 교수가 되는 모습을 많이 목격한 나는, 도쿄 대학교수가 중고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강의를 엮은 이책에 약간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도쿄대 교수 가토 요코의 내공에 많은 감탄을 했다. 그렇다면 그 내공을 함께 나눠보자.
1. 일본인이 바라본 일본사라는 한계
가토 요코가 도쿄대학교의 탁월한 교수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일본인이다. 일본인이기에 일본의 역사를 일본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예를 들어보자. '미우라는 흥선 대원군을 다시 옹립하기 위해 병력을 경복궁에 침투시켜 명성황후를 잔혹하게 살해했습니다.'라는 표현에 어떠한 문제가 있을까? 일제가 일으킨 을미사변은 친러파가 득세하는 상황속에서 친러파의 핵심인 명성황후를 제거하여 한반도에서 일본세력의 확대를 꾀하려는 일본의 극단적 선택이었다. 이를 마치 일제가 흥선 대원군을 재옹립하고자하는 순수한 목적에서 발생한 일로 폄하하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일본인으로서 일본의 침략전쟁을 비교적 양심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가토 요코 교수가 을미사변의 목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그 총명함을 잃어 버렸다.
가토 요코 교수가 강의한 학생들은 어떠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을까? 가토 요코 교수가 "민권파와 후쿠자와가 쌍수를 들어 청일전쟁에 찬성을 하는 것을 보면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하자 학생들은 "특별히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가토 요코 교수는 "아, 예상 밖의 대답이네요. 이거 곤란한데요."라며 멋적어했다. 나는 놀라웠다. '민권파'라는 이름에서 유추하자면, '민'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무리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민'을 위해서라도 전쟁에 반대해야하지 않을까? 당연히 의문을 가져야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에 대해서 전혀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특히 전쟁 처럼 국론을 한군데로 모아야하는 시기라면 국가에 반대되는 의견을 표명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학생들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의 공산당 조차도 천황제를 부정하지 못했다. 천황제를 부정하느니, 공산주의를 내팽겨쳤다. 국가의 명령에 개인을 자연스럽게 소거해버리는 일본인의 무서운 모습을 일본 학생들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포가 밀려왔다.
그럼, 일본의 대중들은 어떠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을까? 만주사변에 대한 정당성 여론조사에서, 전쟁전에는 정당하다는 응답이 88%였고, 전쟁이 발발하자 정당하다는 주장이 90%로 치솟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설문조사가 지성인이라고하는 도쿄 대학생을 대상으로한 조사였다는 것이다. 지성인이라도 비판정신이 없다면, 일제의 집단광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는 달라졌을까? 똑같은 여론 조사자료를 얻을 수는 없지만, 종전 60년 후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을 요미우리신문에서 2005년에 시행했다. '중국과의 전쟁, 미국과의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둘다 침략전쟁이 아니다.'라는 입장이 무려 10.1%였다. 또한 '대답없음'이 21.85였다. 이 수치는 '침략전쟁이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표현할 수 없기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은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추측할 수 있다. '중국과 전쟁은 침략전쟁이었지만, 미국과의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었다.'라는 주장은 33.9%였다. '둘다 침략전쟁이었다.'라는 주장은 34.2%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인의 과반수 이상은 미국과의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제대로된 전범처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의 대중들은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 우경화하고 있는 아베정권을 바라보며, 그들의 행동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임을 상기시켜본다.
2. 장차 약하게 하고 싶다면, 반드시 강하게 만들어라!
노자 '도덕경' 36장에 '장차 움츠리려면 반드시 펴고 장차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강하게하며, 장차 피폐하게 하려면 반드시 흥하게하고, 장차 빼앗으려면 반드시 주어라 이를 미명이라한다.(將欲歙之, 必固張之; 將欲弱之, 必固强之; 將欲廢之, 必固興之; 將欲奪之, 必固與之. 是謂微明.)'라는 말이 있다. 적을 약하게하려면 반드시 강하게하고, 적의 것을 배앗으려면 반드시 주어라!! 정말 역설적이고 비현실적인 말들로 가득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노자의 이 말이 탁월한 전략임을 입증하는 두가지 사례가 있다.
첫번째는 케인즈에게서부터 시작된다. 케인즈가 파리강화회의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케인즈하면 우리는 '유효수요이론'을 떠올린다. 영국 대표단의 재무부 수석대표였던 케인즈는 베르사유강화조약 조인을 하지 않고 직책을 사임하고 귀국했다. 그리고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를 책으로 내놓았다. 그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독일에 대한 가혹한 징벌적 배상금이 대공항을 일으킬 수 있음을 미리 예견했다. 돈이 한쪽에 쏠리게 된다면 세계 경제는 막힐 수 있다. 그러하기에 독일의 산업복구를 도와주고 제품 수출로 배상금을 지불하게 해야함을 케인즈는 주장했다. '장차 빼앗으려면 반드시 주아라.'라는 도덕경의 역설적 말을 케인즈는 주장했다. 케인즈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강대국은 몇년 지나지 않아서 세계 대공항을 맞이해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그 고통은 전쟁의 전조에 불과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보내야했다.
두번째는 후스의 탁견이다. 1935년 후스는 장제스, 왕자오밍 앞에서 "미국과 소련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중국이 일본과의 전쟁을 정면으로 버티면서 2~3년간 계속 패배해야한다."라고 주장한다. 즉, 일제가 중국 연안의 항만과 창장강 하류 지역을 점령하고, 중국의 여러 성들이 함락된다면,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절박한 위협을 느끼며 참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나의 살을 내주어 적의 뼈를 취하겠다는 후스의 전략은 무모해보이기도하다. 그러나 그의 전략은 정확했다. 격렬히 저항하는 중국에게 일본은 연전연승을 거두지만, 일본은 중일전쟁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된 확전의 길을 걷게 된다. '장차 약하게 만들려면 반드시 강하게 하라'라는 도덕경의 말이 정확히 일치하는 사례이다.
'도덕경'을 제왕학의 교과서라고 말한다. 무위자연과 같은 현실도피적 삶을 노래한 책으로 많이들 알고 있으나, 잘뜯어보면 '도덕경'의 탁월한 식견과 마주하게 된다.
3. 우리를 되돌아보다.
이 책은 일본 근대사를 강의한 책이다. 그러나 단순히 일본의 역사를 아는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는 실미리들을 제공하고 있다.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을 아는가? 정의당이 거대 정당들 사이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소선거구제'를 비판하고 '중대선거구제',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주장하고 있다. 다양한 국민의 의견이 반영되기 위해서 선거구제를 개편해야한다는 의견 정도로만 선거구제 개편논의를 이해했다. 그런데, 일본도 '소선거구제'가 실시되는 나라이다. 그리고 이 소선거구제로 인해서 투표의 열의가 높은 60대 이상의 유권자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고 있다. 이로인해서 국회의원은 고령층의 이익대변자로 전락했으며, 아이를 기르는 젊은 이들의 이익은 현실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가토 요코 교수가 지적한 일본 선거구제의 문제점은 우리현실에도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고향의 시골 노인정에는 난방비와 쌀등이 잘 나온다고 한다. 물론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정말 좋은 제도이다. 그런데, 저출산으로 한국사회가 위기에 내몰리고 있고,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한 현실 개선을 위한 대책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못하다. 특히 지난 보수정권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하다는 생각을 금치 못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젊은이가 투표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기도 하지만, 노인세대에 유리한 선거구제에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이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우리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선거구제는 개혁되어야한다.
"역사는 교훈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이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흔히들 역사를 통해서 교훈을 배울 수 있으며, 그런점에서 역사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토 요코 교수는 그 교훈이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한예로 정치가로서의 압도적인 힘과 군사적 리더십을 겸비했던 사이고 다카모리가 세인난 전쟁을 일으킨 것에 교훈을 얻은 일본정부는 다시는 국민에게 인기있고 지도력을 갖춘 사이고 같은 인물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정부 통수권 독립을 추진한다. 통수권 독립의 결과 일본군부는 정치 지도자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게되며,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쟁을 주도하게 된다. 특히 전쟁 기간 동안 정치 외교 분야와 군사 분야가 서로 소통하지 못했다. 이 사례는 적폐청산을 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기무사 해편을 비롯해서 과거의 적폐를 철저히 개혁을 할때, 과거의 교훈을 토대로 개혁을 함에, 새로운 문제점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유념하며 신중히 개혁을 추진해야할 것이다.
미즈노 히로노리라는 현역군인은 "일본은 전쟁할 자격이 없다."라는 말을 했다. 믿어지는가?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일본에서, 그것도 현역군인이 일본의 약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다니.... '지구전을 수행할 수 없다면 전쟁할 수 없는 나라'라라는 지적을 일본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기습전에 의존해서, 수치를 왜곡해서 그들의 희망사항을 부풀려서 전쟁계획을 수립했고, 많은 동아시아인들을 불행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이것은 일본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우리도 지구전을 수행할 수 없다. 대부분의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지구전이 가능한 나라와 전쟁을 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평화를 외쳐야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탁월한 외교력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정부에서 주는 조성금이 탐나서 분촌 이민을 권유하는 현 공무원'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지 않는가? 일본 정부에서 만주로 이주를 독려하기 위해서 제시한 달콤한 돈에 유혹되어 많은 일본인들이 만주로 갔으며, 전쟁에서 패전하고 나서 돌아오면서 많은 고통을 겪었다. 어찌보며, 정부의 침략전쟁에 협조한 그들의 자업자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에서 주는 조성금'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은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00고등학교에서 재직했을 때, 돈을 얻어낼 목적으로 교과교실제에 응모해서, 돈만 얻어낸 경우가 있다. 이에 항의했더니, 당시 교장과 교감이라는 자와 소위 부장이라는 작자는 우리 현실에 부적합한 교과교실제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교육부에서 시찰나온다고 하니까 강제로 교과교실제를 하라고 했다. 그때, 소위 관리자라고 불리는 작자들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다. 보신주의에 철두철미한 그들은 약자에게는 강하지만, 자신보다 강한자에게는 너무도 비굴해진다. '정부에서 주는 조성금이 탐'나서 주민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몬 공무원들 처럼....
이책은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강의! 학생들에게 생각을 유도하는 질문! '이 압권인 책이다. 아울러 일본 침략전쟁의 확전과정과 의도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탁월한 식견을 제공해준다. 조선 중립화론을 유길준과 부들러만이 주장한 것이 아니라, 독일의 슈타인도 주장했다는 새로운 사실들을 알려준다.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역사지식을 얻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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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2018-08-06 공감(31) 댓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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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상대국의 헌법을 바꾸는 것 !
즐겨보는 웹툰 중에 <왕 그리고 황제> 라는 웹툰이 있다 . 정이리이리 작가의 작품인데 , 발상이 아주 발랄 기발하다 . 역사는 흔히 그 자 체로 스포일러라고 우스갯말을 하곤 하는데 이 작가는 그 뻔함에 변화를 타임슬립이나 공간이동으로 주지 않고 원래의 인물 속에 다 른 인물이 빙의되는 형식을 취한다 .
우리 역사에서 태종을 고종으 로 고종을 태종으로 서로 영혼 교환하듯 겉모습만 유지시키고 속은 다른 인물이 활약하는 시대상을 그려낸 거다 . 때는 고종이 ( 물론 가상이다 ㅡ 태종이 ) 북양대신 리홍장으로부터 서신을 받고 영국과 미국등의 나라와 교류하여 노서아 ( 러시아) 와 일본을 견제하라는 조언을 듣는 이이제이 편 . ( 웹툰 39화) 그 보다 앞서서는 고종이 일본보다 선수를 쳐 재교섭을 맺는 과정을 보 여 주는데 거기서 서계에 유리한 조항을 넣으려는 회차( 22화)가 있어 아주 통쾌하게 본 기억이 있다 . 물론 뜻대로 되지않아 리홍장 의 서신까지 오가는 상황이 된 걸테지만 .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 좀 뜬금없게 보이겠지만 이 가토 요코 교수의 역사 책이 단순한 역사서가 아닌 법의 이야기이기 때문 이다 . 지금까지 역사책이라고 하면 우린 각각의 연대에 주루룩 나열된 인물과 나라 , 그 나라의 군대 이동과 승패에 관해서만 뻔히 아 는 이야기를 정말 교과서처럼 들어왔었다 .
아닌 말로 이 책의 차례만 봐도 1장 , 2장 , 3장 , 4장 , 5장 에 쓰인 각 전쟁의 기록만 대충봐도 견적이 뻔한 교과서가 연상되었다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 , 세상에 역사의 관점을 이렇게 달리 볼 수 있다니 ! 왜 이렇게 재미있게 쓴 역사책을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재미없게 표현해 놨을까 ! 하고 무척 놀랐다 .
역사책이니 그렇다 고 하면 할 수 없지만 가토 요코 교수는 부러 강 의를 통해 나눈 주제를 가능한 그대로 우리에게 전하려고 애를 쓰 고 있었고 그것은 전쟁으로 얻는 , 혹은 얻을 각국들의 실리 , 즉 상 법 , 민법을 구체적 으로 어떻게 변화시켜 근현대에 이르렀나 하는 걸 요목조목 알려주고 있었다 .
전쟁이 상대국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 하는 단순한 질문을 던져 학생들로 하여금 계속 문제를 주지시키는 점 , 전쟁이란 상대국의 헌법을 바꾸는 것이라는 이야기 ( 장 자크 루소 ㅡ본문 46 )는 정 말 흥미로웠다 .
' 역사는 수다 . 정치는 수천명이 호소한다고 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 수백만 명 정도는 돼야 비로소 움직인다 ' 고 한 블라디미르 레닌 ( 본문 37 )
그를 뒷받침하듯 각 국력 비교 그래프까지 ( 인구 , 상비군 , 전투기 , 주력함 , 구축함 , 잠수함 ㅡ 연합국, 삼국동맹 , 미국 , 소련 ,1931 ~1945년 ) 보여 준다 .
세법 , 돈의 흐름 , 각국의 이익을 꾀하는 관심거리가 그 시대에 무 엇이었는지 다시 보게된 책이기도 했다 . 지금까지 이런 역사책은 없었다 . 이런 관점으로 역사를 이야기한 선생도 없었다 . 이런 주제로 역사를 배우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 전쟁사하면 감히 재미있다고 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 이 책은 재미있다 . 한마디로 신박하다 . 올 해 첫 역사책으로 넘 즐겁게 읽어서 기억에 두고 두고 남을 것 같다 .
#그럼에도일본은전쟁을선택했다
#가토요코_지음
#윤현명_이승혁_옮김
#서해문집
#파란자전거
#신박한_역사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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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8-01-19 공감(26)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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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역사는 유기체와 같아서 그 실체를 알기가 요원하다. 단순한 기록이 아닌 시대가 가지고 있던 정황과 구조 그리고 세계관을 읽는 방식에 따라, 혹은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읽히기도 하니까 말이다.
일본.
군국주의, 제국주의 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는 이웃나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제강점시기라는 아픈 역사 때문일거다. 사죄도 반성도 없는 일본에 대한 감정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그들은 어째서 반성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들을 피해자처럼 여기게 되었을까. 어째서 자신들을 아시아의 맹주라고 여기게 되었을까. 단순히 민족감정이거나 선민의식이 아닌 그들만의 무엇의 정체는 뭘까?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했던 시대의 오래전 지도, 좁디좁은 세계관과 주변국에 대한 이해밖에 없었던 지도를 보면 일본은 보이지도 않았다. 물론 조선도.
그 강대한 나라였던 중국, 청나라는 어떻게 일본과 전쟁을 치르게 되었고, 러시아는? 식민지 시대의 막을 연 1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은? 만주사변과 태평양전쟁에서의 일본은? 그 많은 전쟁을 치르고도 여전히 군사력을 키우고 즉시 출동태세를 갖추는 일본. 어째서일까?
이 책은 '가토 요코'가 2007년 5일간 진행한 강의를 토대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중학생부터 고등학생 스무명 남짓의 인원과 문답형식으로 이루어진 내용이다. 사실 어리다면 어린 친구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강의이니만큼 깊은 이야기가 나오지는 안겠구나 하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과연 이 내용들을 학생들이 다 이해했을까? 싶을만큼 강의의 내용은 밀도있고 전문적이었으며 때때로 강력한 비판을 동반하기도 했다.
굵직한, 세계정세의 판도를 바꾸거나 영향을 준 다섯가지의 전쟁을 치른 일본.
내용을 들여다보면 간단치 않았을 전쟁들이었다. 6.25 전쟁을 치르고 피폐해진 삶을 다시 추스르는데 걸렸던 시간을 따져본다면 청일전쟁의 발발부터 태평양전쟁까지 겨우 50여년의 시간동안 저들이 치른 전쟁은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국의 영토에서 치른 전쟁이 아니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말이다. 그들이 받았을 내상(內傷) 또한 간단치 않았을것임에도 다시 전쟁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를 지금의 세대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가.
책을 읽으며 어떤 선입견으로 읽어나가면 이 책을 일본의 변명처럼도 읽히겠구나 싶은 걱정도 있었다. 어차피 판단은 독자의 몫이니 그리 읽히는 것 역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서구 열강의 침략이 본격화 되던 시기. 제너럴 셔면 호가 출현하고, 병인양요와 신미양요가 잇달아 터지던 때. 격동의 시기에 운요호 사건과 그것으로부터 본격화되던 근대사 속의 일본. (임진왜란은 좀 밀어두더라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까지 개혁과 보수의 대립은 첨예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내정을 간섭하던 일본의 이야기는 시험준비를 위해서라도 딸딸 외워야했다. 동학혁명이 일어나고 청에 원군을 요청하고, 텐진조약에 의해 일본의 출병도 이루어지고 조선에 대한 청의 지배를 약화할 목적으로 '조선은 자주국'이라 했던 자신들의 주장을 뒤엎고 조선에 대한 내정간섭과 급기야 나라의 국모까지 시해했던 그 시기. 청일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그로부터 50년간 크고 작은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이야기. 일본 국내의 정세와 국민정서, 급변하는 주변국과 강대국의 입김에 살아남기 위한 그들만의 전략. 그 과정 속에서 자신들이 전쟁에 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그들의 판단은 어디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를 낱낱히 읽어낼 수 있다. 무모하다고 여겨지는 부분까지..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로, 전쟁이라는 것은 몇장의 사진이나 피해자들의 증언, 각색된 영화나 논픽션 소설, 르포등으로 접하게 되다보니 전쟁은 파괴되고 죽어가고 사람들이 유린되는 장면들로 떠오르곤 했다. 전쟁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님을 승전과 패전의 결과가 막연히 수탈과 복종의 관계설정만은 아님을 다시 확인한다. 한 나라의 체제를 바꾸는 일. 그것은 참으로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적으로 이루어지는 불평등조약들.
일본 역시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이라는 것을 체결했었다.
이 조약은 '가나가와. 나가사키, 니가타, 효고의 개항' '통상의 자유' '개항장에 거류지를 설치해 일반 외국인을 거주하게 함' ' 일본에 쳬류하는 자국민에 대한 영사재판권(치외법권)',' 일본은 관세율을 정할 수 없음(관세자주권 박탈)'을 골자로 한다.
이런 내용의 조약을 네덜란드, 러시아, 영국, 프랑스와도 체결했다고 한다.
어딘가 낯익지 않은가?
1876년 강화도 조약과 닮았다. 너무나도 많이..
부산,원산, 인천 개항. 치외법권 인정, 조선 연안 측량, 일본화폐의 통용과 무관세 무역 인정..
분절되어 알고 있는 근현대사 속의 전쟁과 그 속의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를 생각하게 한다.
정치적 셈법이 작용하고, 참전과 반전의 입장 속에서 수없이 작용하는 이익 계산. 전쟁을 통해 자극되는 국민들의 정치력. 이것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전쟁은 말 그대로 용광로처럼 뜨거운 격전의 시간임에 분명하다. 적국과의 전투 뿐 아니라 주변국과의 외교전, 국내의 민심과 보상에 대한 계획까지 동시에 촉발되는 것이다. 나라마다 자신들의 정체성과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위한 전략과 전술이 있겠지만 근현대사를 넘어오면서 일본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전쟁'이었던 것이다.
책은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전쟁을 선택하고 그것을 이어올 수 밖에 없었던 일본의 민낯을 보여준다.
계속 반문하며 읽어야 했다. 다른 방법은? 그 사람은 왜? 어째서 이렇게까지?
전쟁은 답이 아니다. 어떤 경우라도. 답이 되어서도 안된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한 나라의 발전이거나 이익을 위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미 벌어졌던 역사 속의 전쟁들은 그렇다 치고, 이후로 전쟁이 대안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
일본의 전쟁으로 점철된 근현대사를 읽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라는 말이 쓰인 배경이 궁금했다. '그래서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로 자꾸 읽힌 탓이다. 아마 놓친부분이 있거나 오독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큰 맥락으로 전쟁을 정리해 낸, 그 속에 흐르던 전쟁의 본질을 감정적인 이해가 아닌 이성적인 이해가 가능했던 것은 큰 성과라 하겠다.
잘 모르는 일본 정치가들의 이름과 이야기는 낯설기도 하고 잘 읽히지도 않았지만 가까운 시간대로 넘어오며 낯익은 이름들이 등장하자 훨씬 수월했다.
일본과의 관계를 떠나서 '전쟁'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금방이라도 한반도에 전쟁이 터질것처럼, 혹은 전쟁을 해야만 할 것처럼 떠드는 사람들이 늘어난 요즘. 과연 그게 답인가? 묻고 싶어진다.
머리말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육군이든 해군이든 군이라는 조직은 국가의 안전보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련이나 미국과 전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국민 생활 개선을 위한 개혁을 가장 먼저 포기합니다.>
국가의 안전 보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군조직도 없고, 전쟁을 해야한다고 분위기를 조성해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자들을 위정자로 두었다면 이 얼마나 섬뜩한 일인가 생각하게 된다.
여러가지의 생각거리들을 적어두게 한 책이다. 또한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전쟁의 본질, 국민들이 배려되거나 계산되지 않는 전쟁이 현재도 가능하다는 생각, 하지만 전후의 이익협상은 불가능 할거라는 판단. 현재의 전쟁은 아타를 막론하고 공멸할 것이라는 생각이 짙어진다.
차분히 읽어볼만 한 책이다.
#서해문집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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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샤 2018-02-04 공감(16)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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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은 계획적 전쟁으로 성장했다
저자 소개를 읽는 데 흥미로운 내용이 보인다. 대학원에서 보수적인 교수의 지도를 받았지만, 교수의 성향과는 정반대로 진보적인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는 부분. 학계라는 게 학맥과 인맥 등으로 촘촘히 얽혀 있곤 해서, 다른 소리를, 그것도 자신의 은사의 주장에 반대해 그렇게 활동하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아마 이건 일본도 마찬가지일 텐데, 용기 있는 결단이다.
책은 고등학생에서 대학생 정도 되는 역사 동아리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중간 중간 질문과 답변도 섞어 가면서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전개해 나간다. 여기에서 다뤄지고 있는 건 근대 일본이 참여한 다섯 번의 전쟁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 사이에 있었던 중일전쟁이 그것.

저자는 각각의 전쟁들의 단순한 경과가 아니라, 그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후의 배경을 중심으로 인과적 서술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일본이라는 나라가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조금씩 주변국들을 침략, 공격해 가며 자국의 안전을 도모하려고 했다는 점과, 이 과정 내내 철저하게 자국중심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강경파가 득세했다는 점이다.
사실 근대 일본은 서양세력에 의해 강제 개항과 개화가 이루어지면서, 종래의 쇼군에 의해 이루어지던 정치체제가 무너지면서 일종의 아노미 현상을 맞게 된다. 일부는 텐노를 중심으로 중앙집권체제를 이루어 서양식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고, 미약하게나마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을 추진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성공한 것은 전자였고, 이들이 태생적으로 힘에 호소하기를 좋아했다는 게 모든 사건의 근원이었다.
시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대표되지 않은 채, 소수의 정치가들과 군인에 의해 좌우된 일본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주변국은 물론 자기 자신의 엄청난 손해로 끝나고 말았다. 사실 전쟁을 거듭할수록 피해가 누적되었고, 다시 그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또 다른 전쟁에 나서는 느낌이 진작부터 들었지만, 일단 그 안에 들어가 버리고 나면 이 뻔한 그림이 보이지 않았던 걸까.
보통 사람들은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들 똑똑하고 자신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어 현명한 판단과 결정을 내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반대 의견에 귀를 막고, 좀 더 큰 시야에서 상황을 볼 줄 모르는 소견이 좁은 인간들이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질 때 얼마나 파괴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저자는 담담하게, 일본이 주변국에 입힌 피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면서 사안을 다룬다. 이렇게 깔끔하게 인정할 때 비로소 앞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거다. 그저 무조건 과거를 덮고 잊자고 우긴다고 해서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사실 이건 유치원 다니는 애들도 알 수 있는 너무 단순한 진리다)
부디 이런 양심적인 학자들과 시민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자국이 일으킨 전쟁을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꾸며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내가 보기에 한일 양국이 제대로 된 우호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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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가방 2023-05-15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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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읽을 만한 책
한 주 늦어지긴 했지만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아직 해가 바뀌었구나란 실감을 갖게 해주는 책은 눈에 띄지 않지만(우리도 아직 설을 남겨놓고 있으니 해가 바뀐 것인지 안 바뀐 것인지 모호한 시간을 살고 있다) 정중동의 분위기는 읽힌다. 아마도 이번주부터는 좀더 강력한 책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된다. 1. 문학예술 문학 쪽에서는 우선 2014년 맨부커상 수상작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문학동네)을 고른다. 처음 소개되는 작가 리처드 플래너건의 소설로 <굴드의 물고기 책>과 동시에 ... + 더보기
로쟈 2018-01-07 공감 (6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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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괜히 한번 더 살펴보기는 하지만 실제 덥석 책을 구입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국내 문학상 수상 작품이라면 좀 더 관심을 갖지만 외국의 문학상 수상작품은 이러나 저러나 관심이 가는 책만 읽곤 했는데.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그 내용을 알고 난 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그에 한 몫을 더했는지는 나도 알수없다. 이 책을 광고하는데는 분명 한몫을 크게 했겠지만.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역시 그런 의미에서 그냥 스치고 넘겨버렸을지 모르는 작품을 한번 들춰보게는 하고 있다. 춥고 졸립고 속이 맹숭맹숭한 월요일 아침, 쌓여있는 다른 것들을 팽개치고 신간소식을 들여다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히가시노 게이고, 사실 나와도 너무 많이 나온다...싶다. 책 사재기 속도가 빨라짐으로 인해 금세 읽곤 하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마저 쌓여가고 있어서 작년부터는 왠만하면 그냥 참고 있다. 처음엔 안될 것 같더니 이젠 그냥 신간이 나왔나? 이건 개정판일까 그냥 신간일까, 이러면서 보고 있다. 그건 유독 히가시노 게이고뿐만 아니라 미미여사도 그렇고 온다 리쿠도 그렇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내가 신간을 사는 의미가 뭘까, 또 들여다보게 된다는 뜻일뿐..이네.






일본의 역사학자인 가토 요코 도쿄대 교수는 근대 일본이 왜 전쟁에 몰두했는지 설명하는 연속 특강을 기획했다. 설정한 청중은 10대 학생들, 당대의 국제관계와 일본 내의 사정ㄷ을 넘나들면서도 사건을 그저 시간에 따라 훑지 않고 치열하게 질문을 던져가며 역사의 숲을 헤쳐나가는 강의록. 과연 그들은 그들의 선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지네.
히브리민중사. 1980년대의 시대 정신을 이해하려면, 마르크스나 레닌의 저서보다 히브리 민중사를 읽으시라 권하고 싶다니. 그러게. 사실 지금의 나로서는 그냥 정신줄 놓고 있지만. 히브리 민중사라니. 그것도 문익환 목사님이 쓰셨던.







발부리 아래의 돌.
1977년 발생한 재일교포 간첩단 조작사건의 피해자인 고 김추백씨의 딸이 쓴 글.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한 저자가 진실을 찾기까지의 여정을 되새기고 기록한 역사적 사실이자 간첩단으로 몰려 세상을 등지거나 핍박을 받아야 했던 아버지들에 대한 이야기. 그러고보니 오래전에 내가 아는 신부님께서도 몇십년만에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된 본당 신자의 무고함이 밝혀져 그의 무죄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집유도 받고 그러셨던 것이 완전무죄방면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하긴 집에만 오면 게으름에 빠져 누워 잠자고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만두를 먹거나 계란 프라이를 엄청 먹어대던 오래비도 간첩조작사건과 관련하여 경찰조사가 있었다고 하니, 나는 그때부터 간첩사건이 터지면 무조건 의심부터 했다. 집으로 전화가 걸려오고 한참 후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는데 그걸 어떻게 믿을수가 있겠는가. 우리 오래비가 그 조작사건의 희생자가 될뻔했는데 말이다.












얼마전 친구가 영화를 보고 왔다고 한다. 영화보면서 너무 울어서 집에 오니 힘이 다 빠진다고 그럴때까지만 해도 도대체 얘가 무슨 영화를 봤나, 했는데. 1987.
나도 그 영화를 봐야할까? 아픈 이야기는 점점 더 피하게 되는데. 더구나 과거의 아픔은. 아니. 그래도 역사를 외면할 수는 없으니 기회가 되면 꼭 보게 될 영화가 되겠지. 왜 이제 1987을 이야기 하고 있는 걸까, 했었는데 거리를 지나가다가 한 갤러리에 붙은 전시회현수막을 보고 깨달았다. 우리, 만남 이후 30년. 그래 2017년이 1987, 그 후 30년이어서.
35년은 일본에 강제병합된 1910년부터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2019년까지 7권 출간이 예정되어 있다.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독재자는 32년만에 물러났다. 1998년의 일이다. 인도네시아는 그ㅡ날 이후 새로운 에너지로 들끓었다. 가장 큰 변화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문화예술이었다. 검열이 사라진 자리에 이야기가 자랐다. "전쟁은 인생을 신파로 몰아넣고 싶어 하지만 때로 삶은 전쟁보다 강하다"
시베리아 시간 여행. 철도기관사이자 철도덕후로 유명한 저자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일 베를린까지 3개 나라 13개 도시를 지났다. 18박 19일 철도 여행기를 읽다보면 덩달아 마음이 두둥실 뜬다. 100년 전 같은 열차를 탄 망국의 조선인, 사회주의 혁명가, 조선 독립투사의 사연 또한 흥미진진하다.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저자는 내면의 힘을 키워준 책 12권을 소개한다. 단지 인문학 고전에 대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그 책이 저자의 내면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현재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밀도있게 그려낸다.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사유'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의 실무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이유도 사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사유는 비판이고 곧 행동이다. 사유하는 사람만이 인생의 품격을 지키고 세상을 위해 싸울수도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소소한 과정에서 유혹을 이겨내고 진실을 지켜냈을 때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 고 말한다.
















동물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나?
미국 해군은 1960년대부터 돌고래를 바닷속 기뢰탐지 등에 활용하다가 금세기 들어 전 세계의 지탄을 받았다. 저자들은 예로부터 동물이 전쟁의 도구인 동시에 희생물이 되어온 역사를 고발하고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에도 여전히 동물을 활용하고 있음을 폭로한다. 현대에는 오히려 동물 사용이 더 악랄해졌다. 1차대전 때 소련은 독일 탱크를 폭파시킬 때 개를 이용했다. 굶주린 개에게 폭탄을 실어 탱크 밑으로 숨어들도록 조련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당나귀와 탁타가 이 같은 용도로 희생됐다. 전쟁관련 생체실험에서 부상을 입고 죽임을 당한 동물은 부지기수다.









음식에 대한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에 기초해 실천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장하는 책. 저자는 탐욕과 이윤을 동력으로 하는 세계화된 산업농이 생물 다양성에 기초한 소농을 파괴함으로써 식령과 농업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유병재는 유명한 방송인이다. 방송작가지만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 인기가 있다. 아마 돈도 많이 벌 것이다. 돈을 많이 버는 만큼 삶도 화려할 것이다. - 라고 적혀있지만 왠지 나는 그의 삶이 그럴 것 같아 보이지는 않다. 책을 읽으면서도 그의 화려한 삶의 모습을 느끼지는 못했으니까.
딸 같아서 성희롱하고 아들 같아서 갑질하는 대한민국에서 내가 겁이 많아서 참는거지 착해서 참는 게 아니야, 라며 버티고 사는 동세대의 소심한 저항을 전하며 나는 가끔 내 취향까지 허락맡으로 하는 것 같다고 자조한다.
유병재의 블랙코미디, 웃픈 현실이 바로 코미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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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8-01-22 공감 (3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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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사이
오후에도 다시 잠을 자고 저녁이 다 돼서야 연휴 일정을 가늠해보았다. 연휴라고는 하지만 다음주 목요일부터는 정상적인 강의일정이 잡혀 있으므로 생각만큼 길지는 않다. 연휴 독서계획도 늘 그렇듯 계획에서 끝나기 십상이겠다. 그런 무망한 계획 가운데 하나는 전쟁 관련서들을 읽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강의로 한해를 시작하기도 해서 자연스레 ‘전쟁과 평화‘가 올해의 화두가 되었다.
관심을 갖는 주제는 그것이 어떤 조건하에서 선택이 되는가이다. 전쟁의 가능성은 거꾸로 평화의 가능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도 마찬가지고 한국전쟁도 그렇다. 역사에서 필연이 있다면 왜 그런가. 만약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면 어떻게 해서 전쟁이 선택되었는가. 평화를 희구하고 영구평화의 시대를 갈망한다면 그것이 가능한 조건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는 것은 당연한 과제다.
그런 관심에서 전쟁과 전쟁사 관련서들을 모으고 있는데 최근에도 여러 권이 출간되었다. 그 중 하나가 일본 도쿄대 교수 가토 요코의 <왜 전쟁까지>(사계절)다. 일본 근현대사가 전공분야인 저자의 책은 몇권 소개되었는데 모두 전쟁은 주제로 한 책들이다. 제목에도 드러나지만 저자는 주로 일본이 왜 전쟁을 선택했는가를 묻는다. 그것이 선택이었던 상황에서 어째서 전쟁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는가를 복기해보는 것이다.
전쟁이 우연이라면 우리는 전쟁사에서 배울 게 없다. 필연이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기에. 그렇지만 우연과 필연 사이에 놓여 있다면,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 선택의 문제라면, 더 나은 선택을 위해서 공부가 필요하다. 더 나은 선택의 조건은 무엇이고 어떻게 마련될 수 있는가. 그렇기에 전쟁학은 평화학의 조건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 이 문제에 대한 더 진전된 생각을 갖기까지 당분간 전쟁과 평화는 독서의 화두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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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18-09-22 공감 (3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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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ㅡ 오늘 도착한 책 F ㅡ
#그럼에도일본은전쟁을선택했다
#가토요코_지음
#윤현명_이승혁_옮김
#서해문집
#파란자전거_출판사
#청일전쟁부터태평양전쟁까지
#2010년제9회_고바야시히데오상수상
#아마존재팬역사분야스테디셀러
ㅡ
우리 나라 안에서 바라보는 전쟁사가 아닌 일본의 근현대사 전공
교수의 시선이라 읽어보고 싶었다 . 교과서에서 주입식으로 배우
고 역사의 흐름처럼 조금씩 관점이 달리 보이는 것 같던 논평 속
이야기만이 아닌 정말 가깝고도 먼 나라 이웃인의 목소리와 시선
속 전쟁사는 어떠한지 ... 아마 다들 호기심이 생길거라고 본다 .
어느 한 시대만을 언급하는 게 아니라서 지루한 역사 눈높이 교육
이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 역사학의 묘미를 절묘하게
가르쳐준다 ‘ 는 띠지에 끌려버렸다 . 직접 체험해보겠다 . ‘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 ‘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재미있다 ‘ 는 그 유혹의
부름을 .
1장 ㅡ 청일전쟁
2장 ㅡ 러일전쟁
3장 ㅡ 제 1 차 세계대전
4장 ㅡ 만주사변 , 중일전쟁
5장 ㅡ 태평양전쟁
개인적으론 3 장 , 4 장의 챕터가 가장 궁금한 전쟁지대이다 . 전쟁
사이기에 흥미진진하다는 표현은 차마 못하겠지만 ...어쨌든 ,
시작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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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8-01-04 공감 (2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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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쟁사학자가 본 일본의 전쟁 결정
도쿄대에서 전쟁사와 외교사를 가르치는 가토 요코 교수가 지은 전쟁사 책입니다.
일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세계대전,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그리고 태평양전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행한 5번의 역사강연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으로 일본의 시각이지만 비교적 객관적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이 책은 흔한 전쟁사 책들처럼 전투과정이나 전투 전략을 서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전쟁을 정치와 외교의 연장으로 보면서 전쟁의 당사국들과 주변국들이 어떻게 하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하는지 국익을 위해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느 국가와 무슨 내용으로 외교협상울 진행했는지, 그리고 당시 일본이 처한 국내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설명합니다.
따라서 전쟁의 정치사 또는 전쟁의 사회사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한 평가일 것 같습니다.
본문이 430여쪽이니까 두께로는 중간정도라고 볼 수 있고, 일본에서는 문고판이 2016년 출판되었습니다. 한국어판 출판이 2018년이니 2년의 시차가 존재합니다.
원래의 강연은 2007년 5일간 행해졌고 2009년에 초판이 나왔습니다.
일본학자들의 책들이 그렇듯 대부분 이 책에서 인용되는 책들은 일본학자가 쓴 일본문헌들이 대부분이고 미국을 비롯한 서구인들의 글은 아주 적게 인용됩니다.
이 책을 보면서 한국의 일제강점기을 좀 더 거시적으로 봐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일본이 조선을 1910년 병합했고 조선이 제2차세계대전 후 연합국의 결정에 따라 해방되었다는 서술로는 20세기 전반기 한반도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후 세계열강의 일원으로 뒤늦게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었으며 조선을 식민화 하기 이전에 이미 타이완과 홋카이도 그리고 오키나와를 식민지로 병합했습니다.
청일전쟁을 거치면서 청의 조선에 대한 영향력과 속국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무력화시켰고 부동항을 찿아 시베리아와 연해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를 러일전쟁에서 이기고 한반도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가지게 됩니다. 해양세력인 영국과 미국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데 동의합니다.
러일전쟁이후 러시아가 계속 연해주에서 이권을 챙기고 동북 3성에 영향력을 강화하자 남만주와 몽골을 대륙세력에 대한 일본의 이익선으로 인식한 일본은 이후 남만주철도의 이권을 중국으로 부터 받고 요동반도에 대한 경제적 독점권을 향휴하면서 산동반도와 화중 지방으로 영향력을 강화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독일령 산동 반도를 장학했으며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이권을 챙기려고 합니다.
일본은 영국과 미국이 중국에서 과도한 이익을 누린다고 생각하고 이를 빼앗으려 했습니다.
즉 일본제국주의는 후발주자로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누려온 경제적 이익을 빼앗아 누리기 위해 조선을 비롯한 남만주와 산동 반도를 복속시켰으며 영국과 프랑스의 이권이 걸린 인도차이나 반도를 침공하였고 중국에서도 이권을 되도록 많이 획득하도록 했습니다.
소련은 연해주애서 일본과 마주하고 있는 대륙세력으로 일본은 안보상의 이유로 소련의 연해주와 동죽3성 진출을 극도로 경계한 것입니다.
일본은 공산주자들이 중국의 이권을 독점하지 못하도록하면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얻은 경제적 이권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외국인 중국땅애서 제멋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민간인을 학살하며 호전적인 전쟁국가라는 인상을 주변국들에게 심어줍니다.
심지어 태평양 전쟁 발발이후 객관적인 경제력과 잠재력에서 상대가 될 수 없었던 미국과 전쟁을 벌여 결국 전쟁에서 패전하고 맙니다.
제2차세계대전은 기계화된 총력전으로 기본적으로 한국가의 생산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쟁을 지속할 수가 없습니다. 일본은 미국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고 이후 패전이라는 대가를 치룹니다.
아무튼 이와같은 총력전에 따른 군수물자조달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독일과 미국의 전쟁물자동원(mobilization)에 대해서는 두권의 연구서가 있는데 전쟁의 경제적 측면을 다룬 드문 연구서입니다.
아래의 두 책을 참조바랍니다.
Wage of Destruction (Penguin Books,2008)
Destructive Creation (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2018)
이 두책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은 재국주의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고 식민지 주민들을 동원하고 쥐어짰으며 포로로 잡힌 군인들에게도 가혹행위를 일삼았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인들은 아직도 스스로를 일본군국주의의 희생자 원폭의 희생자라는 이미지만을 강조하려 합니다.
적어도 일본인들이 가해자로서 저지른 전쟁범죄와 함께 그들의 피해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가해자로서의 행위에 대해 반성이 없다면 그건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체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 밖에 안되는겁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조선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군에 의해 점령당했을 때 일본도 미군에 의해 점령당한 상태였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미군정기를 이야기하면서 일본의 점령기를 같이 이야기 하지 않는 건 미국의 아시아정책과 공산주의 봉쇄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졌는지 전체적인 구도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미국의 맥아더 장군이 일본을 1945년부터 1952년까지 사실상 통치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미국은 일본에 민주주의를 이식했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하고 같은 맥락에서 한국도 바라봅니다. 하지만 과연 일본의 정치가 민주주의 정치인지는 다시 따져 볼 문제입니다.
일본과 한국에 대해 앨리트들은 어느정도 이해할 지 몰라도 이해의 한계가 존재하고 서양의 정치제도 이식이 아시아에서 그렇게 만만하지 않기 때문에 이 역시 별도로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변국이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사항은 아무래도 관심이 가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역사적인 애증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웃국가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일제 패망 후 70여년이 지났는데도 한국 정부가 일본에 대한 제대로된 정책이 없는 것 같아 매우 우려가 됩니다.
특히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손해배상은 반드시 관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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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nis Kim 2022-09-15 공감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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