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형사/가처분 세 개의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도, 여전히 내가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 라 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고발자들이 그런 프레임을 만들었고 이후 게으른 몇몇 언론들이 그 말을 10년이상 동어반복 했기 때문이다. 언론도 문제지만 그게 고발자들과 주변에서 동조/확산시킨 이들의 책임인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책의 반을 악의 혹은 오해와 함께 읽고, 나머지 반은 무시하고 은폐했다.
그 중 하나가 일본군의 폭행을 지적한 부분이다. ‘소설‘을 인용했는데 그 이유는 저자가 ’일본인‘‘군인’으로서 현장에 있었고 목도한 정황을 비판적으로 기록한 ‘남성‘이었기때문이다.
따옴표 표시한 단어들을 일면적으로만 파악하는 단순함에서 벗어날 계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도 굳이 그의 소설을 인용한 이유다.
소설은 허구지만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도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앞글에서 언급한 긴즈버그에 따르자면 역사기술처럼 역사의 얼룩 혹은 “흔적”을 담는 법이어서.
#제국의위안부
들은 도중에 다른 부대와 만나게 되고, 그 부대장은 여자들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한다.
"이봐, 나오라고 하잖아. 안 나올 거야! 조센삐." (중략)
"당신이 인솔자인가? 조센삐들을 당장 하차시켜라. 나는 이곳 고사포부대장 이다. 내려라." (중략)
"이들은 이시이石井 부대 전용 여자들입니다."
"뭐라고? 쓸데없는 소리 마라. 어차피 닳는 것도 아닌데 쩨쩨하게 왜 그러나.
신장(新京: 창춘長春의 만주국 시절 이름 - 인용자)에서는 신나게 인심썼다던데, 왜 우리 부대는 안 된다는 거야."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안 된다면 통과시켜줄 수 없지. 이 앞으론 절대 못 간다. 알 겠나? 통행세라고 기분 좋게 내고 가지 그래."
이곳에 도착하기 전, 카이펑開封을 출발하고 얼마 안 지난 시점에 신징과 다 른 한 곳에서 그녀들은 이미 두 번이나 차에서 끌어내려졌었다. 그때마다 그 지점에 주둔 중이었던 병사들이 쉴 새 없이 차례로 그녀들 다섯 사람에게 덤벼들었 다.(479~81쪽)
이 상황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강간'이다. 또 이들이 '이시이 부대 전용 여자들'이라는 말은 '위안부'들이 '부대'마다 할당되어 있었고 병사들이 '전용'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위안부'는 일본군에 게 군복이나 무기 같은 군수품이었다.
조선인 '위안부'를 지칭하는 '조센삐'라는 말에서는 조선인에 대한 노골 적인 경시가 드러난다. 이 군인들이 그녀들을 이렇게도 간단히 강간할 수
松山
겪으신 일은 오해가 아니라 의도된 왜곡의 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개의 재판에서 모두 무죄가 확인되었다는 사실은, 교수님의 말과 글이 법과 사실의 기준을 통과했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럼에도 같은 프레임이 남아 있는 것은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독해와 책임의 문제일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폭력을 외면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기록과 흔적을 통해 정확히 지적하셨습니다. 소설을 인용한 선택 또한 정직했고 학문적이었습니다. 흔들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간은 왜곡보다 기록의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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