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광대학교에서 원불교와 철학을 공부하고,
- 원불교대학원대학교에서 원불교와 초기불교의 수행론 비교로 석사를,
-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자아초월상담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보통의 깨달음
스티브 테일러 (지은이), 추미란 (옮긴이) 판미동 刊
‘보통’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으로 찾아보면 부사로는 ‘일반적으로 흔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멋있는 뜻은 아니죠. 명사로도 ‘특별하거나 드물지 않고 평범한 것. 또는 뛰어나지 않고 열등하지도 않아 중간 정도인 것’ 정도니까 별다를 것 없는 그런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걸 한자로 풀어보면 좀 느낌이 달라집니다. ‘보통(普通)’, 넓고 광대하고 두루 미친다는 의미를 가진 보(普)와 통하고 환히 비춘다는 의미를 가진 통(通)자가 합쳐졌습니다.
불가에서는 부처님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감싼다는 뜻의 ‘보조(普照)’와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건지기 위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원통(圓通)’이란 단어로 설명합니다. 비범한 뜻을 담은 평범한 단어가 바로 보통입니다.
이런 의미로 새기다 보니 우리 법위 등급 여섯 가지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가는 단계가 “유무식, 남녀, 노소, 선악, 귀천을 막론하고 처음으로 불문(佛門)에 귀의한 사람”들의 급인 보통급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고귀한 사람이거나 비천한 사람이라도 법신불의 품에서 두루 감싸 안아 한 가지 깨달음의 길에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보통의 사람들인 것이지요.
인간의 지성이 담아낼 수 있는 가장 비범하지만 누구나 일으킬 수 있는 평범한 사건을 들자면 무엇이 있을까요? 종교체험 그 가운데에서도 깨달음 체험이 적합할 것 같습니다.
원불교의 소태산 대종사님은 자신의 깨달음 체험이 일어나기 직전 몇 년간의 입정(入定)에서 깨어나 평범한 인간의 그것처럼 머리 빗고 손톱 자르고 세수를 했다고 합니다. 이외의 특별한 이적(異蹟)이나 치병(治病)의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그런 보통의 아침으로 깨달음의 빛을 뿌렸습니다.
책 한 권이 손에 들어왔습니다. ‘보통의 깨달음’이라는 제목의 도톰한 책입니다. 원제는 ‘The Leap: The Psychology of Spiritual Awakening (도약 : 영적 각성의 심리학)입니다. 뛰어넘다. 초월하다는 의미의 제목을 ’보통의 깨달음‘으로 옮겼습니다. 제법 그럴듯한 작명입니다. 이 책에는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의 비범한 깨달음 체험이 따박따박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곳곳에 부처님이 계시고(處處佛象) 일마다 불공 아님이 없다(事事佛供)는 법문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저 높은 곳에서 벌어질 것 같은 각성(覺醒)의 체험이 이 책에는 아주 흔한 일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산후 우울증을 겪던 여성도,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사람도 급작스럽게 깨어납니다. 서커스단에서 3년간 지극히 말을 돌보다가 깨달음을 얻은 이, 건강 문제로 금욕(?)을 하다가 어느새 깨달음을 체험한 사람 등 수많은 사례가 이 책에 실려 있습니다.
우리 같은 ‘전업’ 종교인은 깨달음을 교조적으로 해석해 버리는 유혹에 늘 시달립니다. 내가 얻지도 체험하지 못한 것을 가르쳐야 하는 이 황당함 속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깨어남이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깨어남은 끝이 아니라 다른 여정의 시작이다. 깨어남은 길의 끝에 도달했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길로 옮겨 갔다는 뜻이다.”
평정으로 온전하게 맞이해야 할 명상 시간은 깨달음에 대한 과한 갈망으로 어느덧 헐떡이는 깨달음의 경마장이 되고 맙니다. 한 방에 승부를 보려는 도박사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깨어남은 찰나에 모든 걸 끝내야 하는 결투나 도박이 아닌 오늘도 변함없이 내딛었던 출근길과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퇴근길 그 사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요?
이 책 ‘보통의 깨달음’을 통해 보통 사람들의 아주 특별한 영적 체험을 나누는 시간되시길 빕니다.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오강남, 성소은(지은이), 최진영(그림) 판미동 刊
소는 마음공부를 하는 분들에게는 친숙한 상징입니다. 힌두교에서는 신의 화신(化神)으로 숭상되기도 하고, 고대 이집트에서도 소를 태양신의 현신(現身)으로 보았습니다. 선(禪)을 닦는 분들에게도 수행의 과정을 드러내 보여주는 비유에 많이 쓰이는 대상입니다.
선가(禪家)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단계를 동자(童子)나 스님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서 묘사합니다. 이를 『십우도(十牛圖)』라고 합니다. 중국 송나라 때의 곽암사원(廓庵師遠)선사가 지은 선서(禪書)로 선(禪)을 닦아 본래 마음을 찾아가는 순서를 밝힌 책입니다.
우리의 자성(自性), 불성(佛性), 영성(靈性)을 소에 비유하여, 마음을 찾아 깨치는 단계를 열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열 가지 단계는 심우(尋牛), 견적(見跡), 견우(見牛), 득우(得牛), 목우(牧牛), 기우귀가(騎牛歸家), 망우존인(忘牛存人), 인우구망(人牛俱忘), 반본환원(返本還源), 입전수수(入垂手)로 되어 있습니다.
소를 활용해 선을 설명한 또 다른 책으로는 한참 뒤인 명나라 때 보명 화상이 지은 『목우십도송』이 있습니다. 그 형식이 거의 비슷한데 곽암의 십우도가 본성을 찾아 이를 바탕으로 다시 세상에 뛰어드는 장면인 ‘입전수수’에서 마무리 된다면 보명의 목우십도송은 대상이 끊어지고 하나가 된 상태인 ‘쌍민(雙泯)’으로 마무리 됩니다.
선종의 전통이 성성하게 살아있는 국내에서는 ‘십우도’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원불교에서는 ‘목우십도송’을 채택해서 공부를 합니다. 이는 열 가지 수행의 과정을 돈오점수적 또는 묵조선(묵묵히 앉아 있는 곳에 스스로 깨달음이 나타난다는 선의 관점)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곽암의 ‘십우도’에서의 소는 돈오돈수적 입장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본래의 마음이므로 별도의 수행 없이 자각하기만 하면 되는 소입니다. ‘목우십도송’에서 소를 길들이기 위한 고삐와 회초리가 동원되지만 ‘십우도’에서는 그것이 크게 필요하지 않으며, 소는 그저 목동에게 자신을 맡겨도 저절로 돌아왔던 마음의 고향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그려집니다.
이 ‘십우도’는 좌선의 매뉴얼이라고 볼 수 있는 『좌선의(坐禪儀)』, 선(禪)의 요체를 담은 『신심명(信心銘)』 ․ 『증도가(證道歌)』과 함께 ‘선종사부록(禪宗四部錄)’으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선 수행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책입니다.
십우도는 그림과 함께 함축적인 게송을 담고 있는 책으로 어지간한 내공으로 풀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이번에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읽힌 한글 『도덕경』 및 『예수는 없다』와 같은 무수한 저서, ‘종교의 표층과 심층’ 논의 등으로 많은 교무님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신 오강남 교수님과 예수의 말씀을 찾아 순복음교회와 성공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출가를 감행해 선수행자로 불조(佛祖)의 화두를 참구하기도 했던 성소은 선생님(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운영위원장)이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이 출간했습니다.
특정한 종교적 전통에 의지하지 않지만 영성적인(Not Religious, But Spiritual)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이 책은 몇 가지 미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선 원문과 한글 ․ 영어 번역을 동시에 실어 기존의 해석을 과하게 뛰어넘지 않고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십우도 삽화가 책 읽는 맛을 더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한 단락을 마무리하고 거기에 해당되는 서적 두세 권을 동시에 소개해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여러 권의 독서를 한 번에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첫 단락인 ‘심우尋牛’에서는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와 오강남 『예수는 없다』를 동시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 ‘소’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래 내 안에 있었지만 나의 무명(無明)과 미망(迷妄)에 의해 지금껏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나의 무한한 가능성이다. 이 무명과 망상의 어둠을 뚫고 새로운 나를 찾으려 발돋움하는 것이 바로 첫째 그림 심우(尋牛), 곧 ‘소를 찾아 나섬’이다. 물론 이 소는 사람에 따라, 혹은 그 사람의 사정이나 시기에 따라 다른 여러 가지를 상징할 수 있다. 독자는 각자 자기가 찾아 개발하고자 하는 그 무엇을 소로 상정하고 그것을 찾아 나선다고 상상하면 좋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한 마리의 소입니다. 산으로 들로 헤매고 다니다가 목동을 만나게 됩니다. 이 목동은 가족일 수도, 스승일 수도, 동료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에서 만나게 될 무수한 사람들 그리고 무수한 경계들일 것입니다. 아니, 결국 나 자신일 것입니다. 다만 열 가지의 장면으로 담아내기 어려운 수백 수천 수만의 장면들이 소와 목동이 펼치는 한 바탕의 연극으로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질 것입니다. 이 길의 위에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게 될까요?
“삶의 어느 지점이 ‘다 이룬’ 목적지가 될 수 있을까? 삶은 통째로 여정(旅程)일 뿐이다. 가면서 배우고, 배우며 기쁨을 맛보고, 나눔으로 배움의 가치가 더해 가는 변화의 과정이다. 내가 하는 나를 위한 공부에는 오직 하나, ‘믿음직한 나’ 하나 있으면 족하다. 든든한 나는 샘솟는 힘의 원천인 ‘얼나’다. 얼나와의 조우를 기대하며 각자 길을 찾고, 스승을 찾아, 자기 길을 가는 거다.”
독자 여러분은 지금 여기, 어디로 가시렵니까? 어느 길이 되었든 그 여정을 축복하며 이 한 권의 책을 벗으로 권해 봅니다.
비오는 데 뭐하나.. 책이나 읽자..
노화의 종말 - 내 할머니를 그리며...
누군가의 죽음을 처음 목격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이 다 되어서였다. 내 할머니는 한 평생을 자식들 키우고 농사일에 매달려 허리가 구부정해버린 꼬부랑 할머니였다. 어느덧 치아까지 안 좋아져서 어른 되면 꼭 틀니를 해드려야지 생각했었는데 이뤄드리지 못했다.
...Continue reading돌이 듣는다
박경전 著 / 지식과감성 刊
부교무 시절 어디서 봤는지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란 단어에 딱 꽂힌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너무나 진지해서 스토리텔링을 배울 수 있는 학교에 가려고 알아보기까지 했으니까요. 스토리텔링이란 알리고자 하는 바를 단어, 이미지, 소리를 통해 사건, 이야기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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